|
지리산 함양 神占 대가
최고만 할매
“내 슬픈 가족사 한번 들어 보소!“
“곧. 나는 (연로해) 죽을 끼다. 애기동자 도움으로 그동안 돈 많이 벌고 잘 살았다. 인생은 빌 공(空). 죽으몬 아무 것도 없능거라. 혼은 있겄제. 나 죽으몬 애기동자 내 아들캉 지리산을 새처럼 훨훨 날며 천하태평 신선처럼 살끼다. 모라꼬? 하모(그럼). 함양은 내 안태고향인데. 나 죽으몬 지리산 선신(善神)이 되어 함양에 복 가득 하라고 맨날맨날 축원해 주쿠마”
무녀한테 애기동자 영이 실리면
죽은 아이 혼(魂)이 무녀에게 실린 것을 태주(太子). 명두(明圖) 혹은 산동동자. 선동(仙童). 애기동자라 한다. 순우리말로는 새타니. 새치니라 한다. 무녀한테 애기동자 혼이 실리면 무녀. (해독할 수 없는) 새 소리 같은 소리를 내뱉는다.
이. 새소리 같은 소리는 신어(神語)로서 일종의 공수(空授). 무녀한테 애기동자 영이 실리면 무녀는 어린이 음성을 내는데. 아주머니를 아드머니. 슬프기를 틀프기. 고맙습니다를 고맙덥니다와 같이 설단음(舌端音) ‘ㄷ’ 형태로 발음한다. 또 무녀에게 명두(애기동자)가 실리면 아기처럼 투레질을 하며 혓바닥을 낼름낼름 내민다. 또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며 손과 팔을 비비꼬이는 듯하다가 아기처럼 방긋방긋 웃어댄다….
계사년 정초 때 필자 친구가 함양에 놀러왔다. 경기 용인시 구갈동 김영삼 행복한기린한의원장. 정초라. 마땅히 아침 먹을 곳도 없어 읍내 칠구식당으로 데려가 콩나물국밥을 대접했다. 김 원장은 “어젯밤 읍내 탑 모텔에서 잤네. 신새벽에 노고단으로 올라가 일출 보려 했건만 폭설 땜시롱 오도재 쪽에서 바꾸 했네(되돌아 왔네). 자네 덕분에 정초 지리산 구경도 다하고. 대학시절 지리산 가려고 함양에 온 적이 있었지. 30여년만에 이 곳에 오니 감회가 새롭구먼. 올해 나 말일쎄. 지리산 옻 추출액. 진귀약초로 한방신약 만들어 보고 싶네. 나. 자네한테 용채 두둑히 줄 터이니 진짜배기 약초꾼 좀 소개해 주게나”
친구가 떠난 후 지리산 여행기 아이템도 구할 겸 친구 부탁도 들어줄 겸 이현규 마천면장을 찾았다. 필자는 늘. 이 면장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이현규 면장. 필자가 집필하는 주간함양 지리산 여행기에 기막힌 기사거리를 제보를 종종 해줘 여간 고맙지가 않다.
- 면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지난번 추성계곡 풍운도사를 소개해 줘 고맙습니다. 경향각지에서 풍운도사 도력. 문의하는 전화가 쇄도. 허허허. 제가 이만저만 바쁜 게 아닙니다. 제가 이번 참에 면장님을 찾아뵙게 된 데에는 이런저런 사연이 있습니다.
“아하. 그래요. 마천하면 옻 아닙니까. 그리고 마천에 숨어사는. 걸출한 약초꾼들 많지요. 약초꾼이지만 스토리텔링이 풍부하면 더 좋겠지요. 어디 보자. 마천에 송알마을 아세요?”
-예. 오동춘(연세대학교 교수) 선생님 고향 마을. “맞아. 교수님 고향은 덕전인가 그렇죠. 덕전 실덕마을 동쪽에. 백무동 가는 초입. 그 신작로에 진주수퍼라고 있습니다. 이 구멍가게 할머니 한번 찾아가 보세요. 기막힌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애기동자 실린 무속인인데. 무녀이지만 일반 사람에게는 점(占)을 절대 안 봐 주는 걸로 알고 있심더. 평생 지리산 곳곳을 배회하며 약초를 캔 억척분투 할매라서 ‘지리산 여행기’ 기사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을 깁니다”
#마천면 송알마을 신작로 옆 진주슈퍼. 나그네가 가게 문을 열자 50대 초반(?)된 여인이 대뜸 경계의 눈길을 보낸다. “이현규 면장님 소개로. 할머니…” 여인은. 손사래부터 하며 “뭣땜시롱 우리 어무이를. 저도 면장님헌테 전화 받았어요. 우리 어무이 신문 같은데 소개될 말한 그런 분이 아닙니더. 괜히 그런 데 소개되어 구설수에 오르는 것 싫습니더. 돌아 가이소”
이때. 방안에서 헛기침. 무녀 할머니 음성이다. “날씨도 추분데. 멀리서 왔는데 와 그리 야박하게 쪽가낼라고 그라노. 추분데 얼릉 일로 들어오소. 나. 이 면장헌테 전화 받았소. 우야튼 고맙소. 가난한 우리 마천에 쩐(돈) 이 철철 넘치도록 해줄라꼬 고생이 많소. 근디 내가 김지미(金芝美)처럼 예뿐 년도 아이고 꼬부랑 할마신데. 신문 겉은데 소개되면 그 쪽에서 손해일낀데. (잠시후) 나. 맞소. 약초장사 오래했소. 옻칠에 하수오에 세신. 능소화. 복령 오만 것 때만 것(온갖) 약초 다 취급했지렁. 평생 신용. 신의 그것 하나만으로 약초장시를 한 년이지. 내가 그런 일은 없겠지만. 중국 것을 국산이라고 속여도 저 할매 것은 진짜다! 그렇게 믿고 있다 이 말씀이오”
▲ "내 역상은 서리 내린 가을 황혼녘 무거운 짐 지고 가파른 언덕을 향해 올라가는 나귀와 같았다. 고달픈 내 인생. 팔자도 기구했다"
내 이름은 최고만! 경주 최씨여. 딸 고만 낳아라케서 이름이 고만잉거라
내 생월에 육해살(六害殺) 끼여 있어
# 내친김에 무녀 할매 풀스토리를 들었다. 존함은 경주 최씨 최고만. “내가 기사년(己巳年)에 태어났으니 올해 84세요. 안태고향은 실덕” 함양군 마천면 덕전리 실덕마을. 이 마을은 백무동과 삼정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합수 해 흐르는 곳에 위치해 있다. 마을 어원을 풀이하면 열매를 얻어 온다 ‘실득(實得)’. 실덕마을에는 꽃밭말. 송알이라고 부르는 조그마한 마을이 함께 있다.
“내 나이 열여섯 등구 창원마을 팔계정씨 집으로 시집 갔지. 서방 이름은 정희옥. 이 양반과 합궁하야 슬하에 아들 둘 딸 하나를 뒀지. 아까 당신한테 타박을 한 애가 내 딸이오. 내 팔자 기구하야 내 나이 스물일곱 때 서방 세상을 버렸소. 폐병땜에. 이 깊고깊은 산골에 논이 있나 밭이 있나 자식새끼 안 굴머지길라꼬 온 산을 헤매며 약초 뿌리를 캤지만 그기 (당시엔) 돈이 안 됐어. 잘 아는 산골 노인이 보기엔 우리 버러지 같은 가족. 하도 불쌍해 보였던지 고욤 열가마. 아주 싼 값에 주길래 그놈 팔라꼬 부산 마산 등지로 가. 팔아 생계를 유지 안 했나. (할매 담배 한 개피 또 꺼내 물며) 우짜노. 내 생월에 육해살(六害殺)이 끼여 있어. 집안에 병고의 환(患) 그칠 날이 업능거라. 둘째 놈 먹을 것 제때 못 묵어 그만 영양실조에 걸려 스물 조금 지나 그만 죽어부린거라. 아들 시신 붙잡고 천지신명이여 이 가혹한 형벌. 와 나한테만 이리 안겨 줍니꺼. 쌍욕을 고래고래 질렀다 아이가 이 씨벌 놈으 세상!” <육갑(六甲>에 따르면 생월에 육해살이 끼면 안궁(兄弟肉親)이 조화나 화합을 못 이뤄 해를 보게 된다고 했다.
“내 나이 37세때 신(神)이 찾아 왔어. 나는 한사코 신 안 받을랍니다. 즐대 신 안 받을라요. 피하고 또 피했네. 그러나 신은 네 년이 신 안 받으몬 디진다(죽는다)! 그래도 나는 신을 안 받았네. 내가 그런다고 신이 그냥 가만있나. 허구헌 날 밤에 나타나 우리 집 장독대를 깨지 않나. 우리 집 남은 자슥들 몸 속에 들어가 해꼬지 하질 않나. 이러다 집안 거덜나겠다 싶어 마침내 강신무를 했네. 신내림을 받았다 이 말 잉거라”
- 몸주는? “몸주? 내 몸에 애기동자가 들어 온거라. 애기동자.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싶어 다시 그 애기동자를 보니 옴마! 죽은 내 아들놈이라. 우리 둘째 아들! 세근아! 세근아! 니가 우얀일이고 내 아들 세근아. 몸주 세근이가 예쁜 꼬까옷 차려입고 나헌테 말하길 어무이 인자마. 제가 말입니다 어무이 밥 절대절대 안 굶게 해 주케요. 내캉 두 손에 횃불 들고 훠워이 훠워이 지리산천을 돌아 댕깁시더. 좋은 약초 있는 자리 내가 다 찾아 주케요. 이 약초 팔아 누이. 승님 집도 사고 어무이 맛있는 것도 잡수게 해 주케요. 나는 신내림 받으몬서 미친년츠름 얼씨구좋다 나비춤을 춘거라. 애기동자 내 아들을 이렇게 만날 줄이야! 세월이 흘러 지리산 사자굴 조개바위 영험한 곳에 토굴을 짓고 애기동자 지켜보는 데서 일월성신께 산기도를 안 했나. 애기동자는 안 있나. 사람을 아주 싫어해. 사람 냄새만 맡아도 구토를 하지. 그래서 우리 모자는 사람 인적이 없는 깊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산기도를 했다네”
기도가 끝나면 애기동자는 무녀에게 좋은 약초 있는 곳을 가르쳐 줬다. 애기동자가 진분홍빛 각시봉숭아 꽃잎 아래를 손짓했다. “저 곳에 삼(蔘)이 있심더 어무이”
사람의 몸을 닮은 인삼 중에서 아기 모습을 한 '동자삼'과 남녀 생식기를 닮은 '음양삼'을 제일로 친다. 또한 봉황이 날아가는 모습을 한 '봉황삼'. 용이 무지개를 타고 하늘을 나는 모양을 한 '용삼'. 거북이의 엎드린 모양새를 띤 '구삼'들도 장수의 묘약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애기동자 말하길 동자삼. 천년 묵은 산삼인데 이것 케몬 사람이 반드시 죽심더 즐대 캐지 마이소 그래. 와 그렇노 하니카 동자삼은 사람 명(壽命)을 관장하는 영물이래!” 무녀 할매는 애기동자 덕택에 약성 좋은 약초를 많이 캤다.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
먼저 죽은 아들 사진이 벽에 붙어 있다, 옆에 옷은 저승아들이 입을 동자복이다.
#송알마을 진주슈퍼 무녀 할매 방 한 켠에 신단(神壇)이 있다.
할매가 “우리 애기동자 얼굴 한번 보시려나”하며 신단을 보여준다. 신단 우측 벽에 총각 영정이 있다. 할매 아들 생전 모습. 그 옆에 애기동자 옷 두벌이 걸려져 있다. 할매가 애기동자를 하염없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애기동자가 즐대 사람들 불러들여 점 같은 것 봐주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이 맞다. 내 팔자도 기구해 엉망진창인데 남(他人) 앞날 우찌 봐줄 수 있겠노. 그건 이치에 안 맞다. 그라이 신문에 진주슈퍼 할매 점 본다. 그런 것 일체 쓰몬 안 된다이. 곧 나는 (연로해) 죽을 끼다. 애기동자 도움으로 그동안 돈 많이 벌어 큰아들 집 사 줬다. 이 가게도 딸내미 이름으로 등기해 놨다. 나 말이다. 딸 보고 그랬다. 나. 죽으몬 이 신단. 없애라. 인생은 빌 공(空). 죽으몬 아무 것도 없능거라. 혼은 있겄제. 나 죽으몬 애기동자 내 아들캉 지리산을 새처럼 훨훨 날며 천하태평 신선처럼 살끼다. 모라꼬? 하모(그럼). 함양은 내 안태고향인데. 나 죽으몬 지리산 선신(善神)이 되어 함양에 복 가득 하라고 맨날맨날 축원해 주쿠마”
#이렇게 말하곤 할매가 어스렁 가게 뒤 창고로 간다. 필자도 뒤쫓아 가 봤다. 고종씨 곶감이 있다. “하나 주몬 아쉽다 할 끼고 두 개만 묵어 바라. 우리 애기동자 좋은 기운이 이 곶감에 가득 들어가 있어 이것 묵으몬 올해 자네. 크하하하하. 액운 피해 갈 끼다!”
…최근 지리산 종주길에 최고만 만신을 찾았더니 몇해전 돌아가셨다고 한다. 필자소개 구본갑/전 주부생활 스포츠서울 기자. 레저팀장. 출판물로는 <지리산 인물걸물> <거창 풍류여행기>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