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사랑하는 남자니까 죽여야 돼
김 용 만
필동집에 급히 도착한 화경은 은미의 표정이 밝은 데 우선 마음이 놓였다. 아까 전화를 받을 때만 해도 위급한 일이 터진 것만 같아 마음이 조마조마했었다. 급히 와 줘. 은미의 그런 긴장된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아무리 급한 일이 생겨도 경거망동하지 않고 앞뒤 사리를 가려 행동한 은미였다. “급히”란 부사는 은미답잖은 말투였다. 만약 병세가 악화되어 숨을 거둘 지경이라 해도 단말마를 혼자 삼킬 여자가 아닌가. 죽을 날자를 기다리는 처지인데도 그녀는 화장과 옷차림을 단정히 꾸밈으로써 죽음을 예의로 맞아들이고 있잖은가. 그런데 급히라니.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사람 하나를 죽이려고 그래.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해.”
“사람 죽이는 일? 신나는 얘긴데, 네가 죽을 때가 돼서야 사는 재미를 느꼈나보구나. 물론 협조하고말고지. 하기야 너는 사람을 죽일 인물이 못 되니 내가 처리할밖에.”
“농담이 아냐.”
“누가 농담이래? 도대체 처치할 대상이 누군데?”
“정우를 낳은 사람.”
“겨우 성재를 죽여? 그 착한 걸 죽여 뭘 하게?”
“딴 사람야. 정우는 딴 남자가 났거든.”
“얘, 농담말고 어서 용건이나 말해.”
“지금 부산에 살고 있어.”
은미의 표정이 너무 진지한 탓에 화경의 얼굴에 순간 그늘이 졌다. 농담이 아니라면? 화경은 벽을 기대고 앉아 있는 은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은미는 오윤수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털어놓았다. 어떻게 해서 정우를 낳게 되었으며 기른 과정과 심리적 갈등에서부터 남편과 차문수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빼지 않고 소상히 밝혀주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화경은 말 없이 창 밖을 내다보았다. 정원에 쌓인 눈이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이럴 수가. 화경은 평생 기대온 벽이 무너지는 낭패감에 젖어 좀처럼 입이 열리지 않았다. 고교시절에 만나 평생 동안 어울려온 친구 사인데 자그마치 삼십 년 동안 비밀로 숨겨오다니. 더구나 치부를 감출 사이가 아니잖은가. 되레 치부를 드러내놓고 서로 고민하고 위로하고 감싸줘야 할 사이가 아닌가. 그녀는 배신감마저 들었다. 화경의 그런 심정을 읽은 은미는 화경의 손을 잡고 숨길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밝혔다. 단순한 강도 강간 사건도 아니고 정우의 문제만도 아닌 은미 자신의 묘한 심리가 개입된 일이어서 화경에게 진작 밟힐 수 없었음을 사과했다.
“오윤수씨에 대한 네 마음을 왜 진작 밝힐 수 없었다는 거지? 네가 그 사람한테 정을 품었다면 그 사실을 맨 먼저 고백할 사람이 나잖니? 그걸 내가 알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 거니? 내가 성재한테 본격적으로 대들까봐?”
“무슨 말을 그리 하니? 내가 이제야 밝힌 건 미안하다만 너한테마저 보이기 민망할 만큼 흉한 치부잖니. 생각해봐라, 자기를 강간한 치한에게서 정을 느낀다, 그게 상식으로 통할 일이냐구.”
“상식? 그걸 젤 무시하며 사는 게 우리잖니? 그런 반역에 자부심을 느끼며 사는 게 우리잖냐구. 네가 성재에게 별 애정을 느끼지 않으면서 평생을 숨어 살아온 것, 내가 톱스타의 자리와 숱한 청혼을 팽개치고 알콜 중독자가 된 것, 재벌로까지 키울 수 있는 굴지의 사업체를 남한테 맡겨버린 성재, 만약 상식을 내세운다면 우리의 삶에 무슨 당위성을 부여하겠어. 그러니 상식을 따지면 우린 타락한 존재일 뿐이라구. 그런데 네가 상식을 내세워 변명하다니.”
은미는 할 말이 없었다. 화경의 말이 모두 옳았다. 내심 화경을 멀리해온 그 간격이 미안했다. 그동안 화경과 숱한 대화를 나누며 살아왔으면서, 심지어 성재를 소외시키면서까지 둘만의 비밀스런 대화를 나눠왔으면서 가장 중요한 내용을 숨겨온 자신의 그 옹졸함이 양심에 꺼렸다. 화경은 자기한테 한가지도 숨겨온 게 없잖은가.
“정말 미안하구나. 나 자신도 모르게 너한테 간격을 둬온 것만 같애.”
“성재도 내게 그 사실을 숨겨온 것이 섭섭해. 하지만 성재는 남자로서 네 치부를 가려줄 만하니 이해할 수 있어. 그래서 네가 더 섭섭한 거야. 암튼 그건 그렇구, 내가 도와줄 일이 뭐지?”
“성재는 정우에게 사실대로 알려야 된다고 말했어. 분명 그럴 사람이야. 하지만 그럴 순 없잖니?”
“물론 그래야지. 아버지가 둘인 것과 강간 사실과는 다르니까.”
“그래서 너를 부른 거야.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 성재 성격에 내가 죽은 뒤라도 틀림없이 정우를 차문수 씨와 만나게 해 줄 거라구. 그러다 보면 예상 못한 일이 생길 거구. 어느 순간 강도 사실이 탄로날지도 모르잖아.”
“그건 막아야지.”
“그리고 정우를 온전히 윤성재의 자식으로만 만들어 주고 싶어. 문수 씨에겐 안됐지만 성재에겐 그만한 보답이 필요해.”
“네가 그토록 성재를 사랑하는 줄 몰랐구나.”
“사랑이 아냐. 공로야. 인간적인 배려랄까.”
“그럼 차문수 씨를 어떻게 하면 좋겠니?”
“죽이는 게 젤 좋지.”
“회개한 사람을 죽인다는 게 아름다운 일일지도 몰라. 회개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 않거든. 하지만 회개한 자를 죽이는 걸 아름답게 느끼는 세상이 아니잖니. 가짜로 회개한 자가 판치는 세상이라.”
“그래서 고민하는 거라구. 진짜 회개한 사람을 죽일라니까.”
“그 정도 얘기로도 네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겠다. 두 사내 다 아깝다 그거군.”
담배를 피워 문 화경은 술상부터 차려오게 했다. 은미의 부름을 받고 방에 들어온 아줌마에게 화경은 양주를 주문했다. 농담 같으면서도 진담 같고 진담이면서도 농담처럼 들리는 은미의 말, 그 죽인다는 말이 살인을 뜻하는 게 아님을 화경은 잘 알고 있었다. 그 말은 이성이나 감성 중 어느 한쪽의 귀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이니 두 귀를 활짝 열어놔야 해석이 가능한 말이었다. 한쪽 귀에서 더 적극적으로 죽여야 된다고 들릴 때 다른 귀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살려야 된다고 들렸던 것이다. 차문수를 죽여야 된다는 은미의 말은 그처럼 이중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술상을 차려온 아줌마가 돌아나가려 하자 화경이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아줌마도 많이 늙었네요 했다. 아줌마가 방긋 웃으며 방을 나가자 은미가 조용히 귀띔해주었다.
“죽기 전에 아파트라도 사줄 참이야.”
그러면서 은미는 오랜 세월 함께 지내온 아줌마가 더없이 고맙다는 말도 덧붙였다. 은미의 말이 끝나자마자 거듭 두 잔을 비운 화경의 입에서 경쾌한 목소리가 굴러나왔다.
“역시 술이 좋아. 술을 마시니까 금방 물리가 터지잖아. 암튼 정우가 차문수란 자를 못 만나게 하면 되잖니? 너희들이 그자를 영영 못 찾게 되면 더 좋을 테고. 네 마음이 언제 변할지 모르니까. 방법은 있어. 그 대신 내가 무슨 짓을 하든 상관 말아야 돼. 알지?”
“나도 모르는 곳에 가 살도록 해줘. 지금 고생하고 있을 테니.”
“끔찍히 생각하는구나. 그러고 보니 속으로는 차문수를 생각해서 그러는 거였군. 도대체 너는 어떤 여자니. 나도 별나지만 너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구나.”
“네 수단껏 대책을 세워 줘.”
“분명히 대답해. 내가 하는 짓을 너희들이 영영 몰라야 돼. 꼭 약속을 지켜야 된다구. 너희가 수사관의 고문에 못이겨 불면 큰일이거든. 차문수를 진짜로 죽일 테니까. 그 대신 지옥에 가도 내가 갈 거니 사례비나 두둑히 줘. 사례비는 네가 죽은 뒤에도 성재한테서 받아낼 거야. 비용은 내 돈으로 먼저 쓸 테니.”
화경은 술을 한 잔 더 마시고 자리를 떴다. 방문을 닫고 나간 그녀는 다시 문을 열고 얼굴을 디밀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우선 부산에 다녀와서 결정하자고 이른 다음 다시 문을 쾅 닫았다. 은미는 창을 통해 대문 밖으로 사라지는 화경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술상 앞에 앉았다. 약속을 꼭 지키는 친구여서 화경은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를 짖겠지만 한편 화경의 그 실천력이 은근히 원망스럽기도 했다. 화경은 차문수를 꼭꼭 숨겨 놓고 숨긴 곳을 알려주지 않을 여자였다. 그렇다고 아무리 친구 사이라 해도 숨긴 곳을 물어 볼 수도 없잖은가. 그나저나 화경이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건지 은미는 갑자기 차문수가 가여워졌다. 그녀는 가슴속에서 꿈틀대는 슬픔을 누르기 위해 술을 따라 마셨다. 그동안 피해온 술이었다. 또 술을 따라 마셨다. 간암에는 치명적인 술, 그녀는 세번째 잔을 비웠다.
다음날 화경은 느지막이 부산행 여객기를 탔다. 은미가 가르쳐준 약도대로 택시를 타고 달리니 쉽게 덕문교회를 찾아갈 수 있었다. 교회에 많은 신도들이 모여드는 광경을 보고서야 화경은 오늘이 일요일임을 깨달았다. 그녀는 성경책을 들고 힘겹게 걸어오는 한 늙은 여신도에게 사찰집사인 차문수 성도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노인은 구내를 바쁘게 헤집고 다니는 육십대 초반의 한 사내를 불러놓고 화경을 그쪽으로 보냈다. 양복 차림인 그 사내는 환한 얼굴로 화경에게 허리를 굽히며 다가와 도와드릴 일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언뜻 보아 촌티나는 형색이 아니었다. 허드렛일을 도맡은 청소부의 외모가 아니었다. 말씨도 음전하거니와 환갑 넘은 나이에 비해 살색이 맑고 이목구비가 수려했다. 눈빛 또한 범속하지 않았다. 이글거리는 눈빛 속에 얼비치는 안개 같은 슬픈 기색이 그의 얼굴을 신비스럽게 꾸며주었다. 뒤죽박죽인 인상, 평온과 갈등과 욕망과 허무가 뒤엉킨 묘한 인상이었다. 은미한테서 들은 차문수의 인상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되레 그와 정반대라는 게 옳았다. 은미가 말해준 인상대로라면 겉은 호인상이지만 속은 몽짜스럽기 짝이 없고 남을 등쳐먹는 데에 이골이 난 위선의 때가 기름처럼 매끄러울 텐데.
“교회에 다닌 지 몇 주 안 되는 신잔데요, 잠깐 시간 좀 내실 수 있겠어요?”
화경은 조심스레 말을 걸어보았다. 오윤수가 예배를 끝낸 뒤에나 시간을 낼 수 있다고 대답하자 화경은 주위를 휘 둘러보고 나서 교회 근처에 있는 호텔을 가리키며 그곳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차문수가 교회에서 만나면 좋겠다며 숙박업소에서의 만남을 꺼려하자 화경은 몸이 아파 예배도 못 보는 입장이니 그동안 방에서 쉬겠다는 말로 둘러댔다. 사실 몸이 피곤한 터라 조용한 방에서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안색이 정말 안 좋으시군요.”
오윤수는 공손히 허리를 굽히고 나서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화경은 교회 정문을 나오면서 된숨을 내쉬었다. 마치 교도소 안에 갇혔다가 풀려나는 기분이었다. 행복한 발걸음으로 교회에 들어서는 신자들이 포승줄에 줄줄이 묶여오는 죄수들처럼 보였다.
저런 소굴 속에 옥빛처럼 맑은 미소가 피어나고 있다니, 은미가 연정을 품을 만해. 은미가 그처럼 평생동안 숨어지내는 것도 그 고통을 끌어안고 살기 때문일 거라구.
화경은 오윤수가 자기 말을 들어줄 지가 걱정이었다. 일단 교회를 빠져나온 화경은 교회 근처에 있는 호텔을 찾아갔다. 방에서 쉬고 있다가 교회가 조용해지면 그를 불러낼 작정이었다.
충분히 죽일 수 있어!
화경은 침대에 넉장거리로 퍼져 누우며 미소를 지었다. 어려운 숙제를 풀었을 때의 쾌감이랄까, 일이 쉽게 풀릴 것만 같은 예감이 그녀를 흥분시켰다. 창 밖으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 하늘 아래에 파란 파도가 넘실댈 것이다. 바다를 생각하니 금방 긴장이 풀렸다. 몸이 나른해졌다. 화경은 눈을 감았다.
침대 밑에서 파도가 넘실댄다. 침대는 배가 되고 그 배는 바람을 타고 바다 멀리로 흘러간다. 수평선 멀리에서 커다란 얼굴이 떠오른다. 소름이 끼친다. 저 오묘한 악마의 눈.....
전화벨 소리에 화경은 눈을 떴다. 아직도 숨이 찼다. 벨이 연거푸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다.
“누구세요?”
“접니다.”
“저라뇨?”
“오윤숩니다.”
“누구요?”
“오윤숩니다.”
“왜 여길 왔죠?”
“여기서 만나자고 약속하셨기에.....”
그제야 화경은 깜짝 놀라며 목소리를 다듬었다.
“금방 내려갈게요. 미안해요. 잠결이라 까막 잊었네요.”
화경은 의자에 걸쳐놓은 겉옷을 주어 입고 서둘러 방을 나갔다. 커피숍으로 들어서자 오윤수는 정장 차림인 채 의자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화경이 미안하다며 거듭 예의를 차리자 오윤수도 단잠을 깨워 죄송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 웃음새가 봄볕처럼 따스했다.
“나오지 않을까 하다가, 먼데서 오신 수고를 생각해서....”
“먼데서 오다뇨? 그걸 어떻게 아셨죠?”
“댁의 행동과 말에서 느낄 수 있었죠. 여태가지 저를 그런 식으로 만나자고 한 성도는 아무도 없었거든요. 더구나 댁은 얼굴이 팔린 분이고요. 옛날에 은퇴하셨지만 지금도 흔적이 뚜렸하죠.”
“사실은 서울에서 왔습니다. 정우엄마와는 죽마고우죠.”
“용건부터 말씀하시죠.”
부드럽던 오윤수의 목소리가 갑자기 단단해졌다. 화경은 분위기를 눙칠 양으로, 그렇게 다그치면 어떻게 말이 나오냐며 일부러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차문수는 화경의 비나리를 무시한 채 목소리를 높였다.
“은미 씨에 대한 이야기라면 듣지 않을 거구요.”
“그 친구는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
“다른 할 얘기가 없으시면 이만 실례합니다.”
오윤수는 벌떡 일어났다. 화경은 그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평범한 말로는 그를 잡아둘 수 없겠다 싶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이런 실례가 어딨어! 예의부터 차리는 게 순서 아냐? 은미는 얼마 살지 못한다구. 간암 말기란 말야!”
화경은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오윤수의 어깨를 짓눌렀다. 뻣뻣한 차문수의 허리가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찾아오셨을 때 심상찮다는 예감이 들었죠. 정확히 이십칠 년이 지났는데......”
오윤수는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내다보았다. 화경은 세월의 흐름을 계산해온 그가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년, 이년, 삼 년, 오 년, 십 년, 이십 년, 이십칠 년, 그 세월의 마디마디에는 피어나다 메말라버렸을 새순의 아픔이 엉겨 있을 터였다. 새순이 돋아날 때마다 스스로 물관의 맥을 끊어버린 잔인한 인간, 그 긴긴 동안 사랑하는 여인과 혈육에 대한 그리움을 참고 짓누르기에 가슴이 얼마나 망가졌을까를 생각하니 그가 여느 사람 같지가 않았다. 화경은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회한이나 슬픈 기색이 한 점도 묻어 있지 않았다. 평온한 얼굴 그대로였다. 눈씨 한 점 흔들리지 않았다.
“제 명 대로 살 여자가 아녔습니다. 자기 몸을 태울 줄만 아는 여자죠. 가장 깨끗한 여잡니다, 그런 여자를 더는 오염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 포기가 제 보람이죠. 그러니 제 마음을 흔들지 마세요.”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부탁이라.....”
“무슨 부탁인진 몰라도 그분의 죽음과 저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윤사장님이 보냈나요?”
“정우아빠는 제가 여기에 온 걸 모릅니다. 정우엄마가 보냈어요.”
“.......”
“댁을 죽여달라고 부탁했어요.”
오윤수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앉아 있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호탤 밖으로 나온 그는 꼿꼿한 자세로 교회 쪽을 향해 걸어갔다. 뒤좇아 나온 화경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그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함부로 입을 열 수도 없었다. 어떤 말로도 그의 발길을 멈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차문수는 길을 걸으면서 자꾸 소매로 눈을 훔쳤다. 우는 모양이군. 눈물을 흘리는 지금이 그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일 거라고 화경은 생각했다.
오윤수의 뒷모습이 길 모퉁이로 사라지자 화경은 택시를 잡아타고 김해공항을 향해 달렸다. 다음에는 꼭 죽여야 돼. 그녀는 차창 밖에 펼쳐진 너른 김해 평야를 바라보며 살의를 북돋았다. 낙동강 유역의 기름진 평야는 도로에 찢기고 건축물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까마득한 들판 멀리에서 한 무리의 철새가 날아오고 그보다 훨씬 더 높은 상공에서 여객기 한 대가 머리를 숙인 채 고도를 낮추는 중이었다. 화경은 그 여객기를 향해 산매들린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동정심은 인간을 타락시키기 십상이지. 타락이 별것인가?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이 타락이지.
서울로 돌아온 화경은 곧바로 은미에게 달려갔다. 은미는 화경의 당당해진 표정에 안심했는지 대뜸 죽일 수 있겠지? 라고 물었다. 충분히 죽일 것 같다며 화경이 환한 미소를 짓자 그 미소에 더욱 마음이 놓인 은미는 화경의 손을 덥석 쥐며 죽어서도 잊지 않을게, 라고 속삭였다. 어느새 은미의 눈자위에 물기가 젖어들었다. 화경은 은미의 처음 보는 눈물이 당혹스러웠다. 그 눈물 속에는 차문수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있을 성싶어 화경은 이렇게 말했다.
“네 소식을 듣고 윤수 씨가 많이 울었어. 너와 헤어진 날짜까지 외고 있더라구. 그렇게 너를 사모하면서도 삼십 년 가까이 참아왔다니 무서운 남자야. 정말 네가 부럽구나. 너는 행복한 여자라구. 그런 애정을 받으며 죽는 여자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니.”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화경도 울먹이기 시작했다. 죽은 남편을 생각하겠지, 은미는 그런 생각을 하며 화경의 몸을 끌어안았다.
“너 같은 친구를 둔 것이 자랑스러워. 태어난 보람을 우리의 우정에서 찾을 수 있을 거야.”
은미의 말에 화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포옹을 풀고 난 은미는 몸을 뭉기적거리며 윗목에 있는 문갑 곁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흰 봉투 하나를 꺼냈다.
“일을 치르려면 자금이 필요할 텐데 우선 이걸 쓰라구. 십억이야. 남편한테는 다른 말로 변명했어.”
“연예활동을 벌써 그만 둔 형편이라 내 능력만으론 부족하구나. 그러니 네 도움을 받아드릴게. 그리고 성재한테는 끝까지 내가 죽인 걸로 못박으라구. 알지?”
“알았어. 끝까지 숨길게. 이나저나 곧 죽을 텐데 뭐.”
“호주 오빠네에 다녀올 거야. 네가 죽기 전에 빨리 다녀와야지. 그리고 네가 죽으면 아주 이민을 떠날 거야. 그리 되면 오윤수의 살인사건은 영원히 미궁에 빠질 테구.”
화경은 앉은 채 몸을 앞으로 내밀어 은미의 몸을 껴안고 흐느꼈다.
“너답잖게 울긴?”
“은미야 약해지지 마. 제발 죽음을 즐기라구.”
“그래. 네 말대로 창녀가 될게. 창녀가 되어 죽음을 짓밟아 버릴게. 창녀가 느낄 자유라면 충분히 허무를 극복할 수 있을 거야.”
은미의 목소리가 몹시 떨렸다. 화경은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마당에는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대문 밖으로 나온 화경은 한참동안 서성이다가 차에 올랐다. 그때 소나타 한 대가 집 앞에 서고 차에서 내린 명희가 어머니를 부르며 달려왔다.
“안녕하세요? 이 시간에 자주 오신다기에, 지금 오면 뵐 수 있다는 예감이 들었어요 어머니.”
“어머니라니?”
“선생님을 어머니로 여기고 싶었어요. 선생님을 어머니라고 부르니까 참 행복해요.”
화경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런 농담이 어딨어, 하고 웃어주었다. 명희는 앞으로 어머니로 모시겠다며 어리광을 부렸다.
“그런데 선생님 같은 분이 어머니가 된다는 게 좀 이상해요. 어머니란 이미지는 좀 칙칙하거든요. 선생님 이미지는 나뭇잎에서 반사되는 햇살 같은데 어머니 이미지로는 좀 그래요.”
명희는 연방 생글생글 웃었다. 저 귀여운 아가씨. 화경은 빙그레 웃으며 명희와의 대화를 궁리해보았다.
“그러니까 나를 늙은이로 구겨놓지 말고 차라리 언니라고 불러. 아 참 그건 안되지. 정우와 동급이 되니까. 그냥 지금처럼 선생님이라고 불러. 그게 좋겠지? 생각해봐. 내가 명희처럼 큰 아가씨를 끙끙거리며 낳았다고 상상해봐. 내 몸이 징그럽잖겠어? 그지? 여자는 어머니 소리를 듣는 순간 일단은 폭삭 삭아버리거든. 어머니란 늙는 걸 전제로 한 보험금인 셈야. 그지?”
“그러고보니 그렇네요. 어머니란 이미지는 보험금이 딱 맞네요. 보험금, 축 처지는 어감이죠? 그런데요, 보험금에는 안정감도 느껴지거든요. 안정감은 요동치지 않는 순탄한 이미지, 순탄한 이미지는 깊고 깊은 이미지, 깊고 깊은 이미지는 멀고 먼 은하수의 이미지, 은하수는 신비의 이미지, 신비는 영원성의 이미지, 그래요.”
“또 영원성의 이미지는 순간성의 이미지도 되지. 순간성의 이미지는 죽음의 이미지이고. 안 그래?”
“그러고보니 그것도 맞네요. 선생님 말씀은 틀리는 게 없어요.”
“틀리는 게 없는 게 아니라 틀리는 걸 안 찾으려는 거지.”
“틀리는 걸 눈에 띄지 않게 숨기는 재주가 매력 아닐까요?”
“명희와 얘기하면 참 재밌어. 얼굴이 탈 텐데 여기 그늘 속으로 들어와.”
“얼굴이 탈 위험성을 제거하는 그 조심성, 즉 미용은 무슨 이미지일까요?‘
“두 가지야. 하나는 아름다움을 담보하는 이미지고 하나는 추함을 인정하는 이미지고. 이제 헤어질까? 명희는 어서 집안에 들어가 미래의 어머니를 뵈야지? 나는 혼자 처량한 남산 고갯길을 넘어야되니까. 그럼 안녕.”
“어머니, 조금만 더 계셔줘요. 자꾸 얘기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어머니처럼 느껴져요.”
“나도 그런 것 같은데. 명희와 자꾸 얘기하다보니 딸처럼 여겨져. 그럼 우리 잠깐 모녀가 될까? 오분간만. 그리고 오분간만 침묵을 지키자구. 그 침묵이 모녀의 이미지를 씻어줄 거라구. 침묵은 언어의 소멸이니까. 그러니 침묵이 계속되면 어머니의 이미지도 자동 소멸될 거구.”
“침묵은 소멸이 아니고 말의 휴식이죠. 그러니 어머니의 이미지는 이미 저장으로 클릭 된 셈에요. 어머니 그렇죠?”
“못 말리겠군.”
“안녕히 가세요 어머니.”
“정말 못 말리겠군.”
“참 어머니, 전화 번호를.”
“내가 귀찮아지는데. 할 수 없지. 명희니까. 공삼일 칠칠일 팔오칠칠.”
“고마워요. 귀찮게 안 할게요.”
명희가 손을 흔들었다. 화경은 빙그레 웃으며 차에 올라 핸들을 잡았다. 그때 명희의 귀에 새소리가 들려왔다. 자동차 클랙슨 소리는 새소리보다 먼 곳에서 들려왔다. 그 클랙슨 소리가 들려온 곳에서 화경의 손사래가 차창 밖으로 보였다.
18. 석양에 비쳐진 십자가는
김해공항을 빠져나온 화경은 곧바로 택시를 타고 덕문교회로 달렸다. 그동안 오윤수를 설득하기 위해 한 차례 더 부산에 다녀왔으니 이번이 세 번째 길이었다. 지난번에도 처음과 마찬가지로 커피숍에서 대충 의향만 떠보고 헤어졌으니 이번에는 결딴을 낼 참이었다. 죽어가는 친구의 소망인데 설득하고 사정해봐서 그래도 거절하면 교회에 주저앉을 작정이었다. 화경은 교회에 도착할 때까지 은미의 말을 떠올려보았다. 내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자를 꼭 죽여야 돼.
평일이라 그런지 오윤수 혼자 교회를 지키고 있었다. 화경은 관리실 구석에 꾸며진 오윤수의 단간방으로 안내되었다. 대여섯 평 공간에 낡은 책상 하나가 놓여 있고 벽에는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처녀의 액자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은미가 말한 오윤수의 죽은 여동생이 틀림없었다. 젊었을 대의 사진을 걸어 둔 모양이었다. 오빠의 노름 밑천을 대기 위해 몸을 팔았다는 동생의 얼굴은 티 없이 맑은 미소가 젖어 있었다. 동그스름한 얼굴에 코가 오뚝하고 눈이 순해 보였다. 화경은 그 사진을 바라보며 무슨 말을 먼저 꺼내얄지를 생각했지만 좀처럼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순수한 호의로 받아달라는 그런 미온적인 설득으로는 오윤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차문수는 죽는 날까지 빈손으로 남의 종으로만 사는 게 소망이라며 화경의 설득에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교회에서 사찰집사로 있는 것도 너무 과분한 은혜로 여기는 그였다. 화경은 그렇다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피할 수만은 없었다. 그녀는 상대방이 듣기에 거북하지 않도록 동래 쪽에 아담한 상가 한 채를 봐놨다는 말로 의향을 떠보았다. 모자란 돈은 은미가 책임질 수 있다 싶었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습니다만 정우아버지만 비밀을 지켜주시면 아무 탈이 없을 겁니다. 내가 정우를 찾아갈 일은 평생 없을 테니까요.”
오윤수는 화경이 망서려지는 말을 미리 꺼내주었다. 간단한 말, 성재와 정우 부자를 평생 만나지 말라, 는 그 간단한 다짐을 화경은 곧이곧대로 밝힐 수 없어 여태 참아왔는데 오윤수가 먼저 꺼낸 것이다. “물론 정우엄마는 집사님한테서 그 다짐을 받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 친구의 속마음은 솔직히 다른 데에 있습니다. 그 다짐을 빌미로 집사님에게 마지막 정표를 남겨주고 싶어하는 겁니다. 정우엄마의 마음정리랄까요. 죽기 전에 마무리하고 싶은 순수한 정표. 그러니 그 마음을 단순히 물질적 호의로만 해석해선 안되죠.”
오윤수는 긴 숨을 내쉬었다.
“그 정표가 순수하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은미 씨의 마음 정리도 중요하지만 그 정표를 받으면 제 인생은 뒤틀리고 맙니다. 뿌리째 흔들리고 말죠. 그럴 바엔 차라리 은미 씨를 쫓아다니든가 아니면 진작에 딴 여자와 가정을 꾸몄을 겁니다.”
“그러시다면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군요. 정우아빠 말입니다. 그분은 언제고 정우를 집사님한테 데려올 겁니다. 그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거든요. 그분의 깊은 마음을 잘 아시잖아요. 그럴 경우를 예측하면 집사님이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게 좋겠어요?”
“강도의 자식, 그게 탄로날까 걱정이군요.”
“.......”
“그래도 그 돈만은 받을 수 없습니다.”
화경은 할 수 없이 오윤수를 서울로 데려가 은미를 만나도록 주선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접 오윤수를 데려가려고 함께 올라갈 것을 사정해보지만 오윤수는 막무가냈다. 그는 서울에 갈 일이 생겨도 일부러 올라가지 않거니와 서울 쪽을 바라보지도 않는다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교회 지붕 너머에 종탑이 서 있고 초가을 햇살을 받은 플라타너스 고목 한 그루가 그 종탑을 에워싸고 있었다.
“얼마나 그리운 곳이겠어요. 집사님의 맘을 제가 모를 리 있겠습니까. 그런 분이시니까 사정하기가 더 힘들고요. 암튼 문병가시는 셈치고 마지막으로 만나주세요. 그 친구의 마음 속에도 맺힌 그리움이 있잖겠습니까. 물론 집사님도 알고 계시겠지만요.”
화경은 오윤수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의 표정은 거의 일그러질 듯 굳어 있었다. 저럴 수가, 그리운 사람을 만나달라는데 저토록 괴로워하다니. 화경은 그에게서 연민과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은미 씨는 저를 괴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되지 말아야 저를 사랑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 말뜻을 해석하려고 이십칠 년 동안 생각해왔죠.”
오윤수는 여전히 창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그의 얼굴은 아직도 일그러진 상태였다. 그 일그러진 얼굴 속에서 눈빛만이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강렬한 눈빛이었다.
“정우엄마가 왜 집사님을 괴물이라고 했죠? 그리고 인간이 되지 말라고 했죠?”
“저도 역시 모릅니다.”
오윤수는 입을 다물었다. 대화가 끊긴 방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화경은 조바심이 났다. 이번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은미의 뜻을 관철해야 했다. 호주 이민 준비에 바쁜데다 은미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가 아닌가. 화경은 어떤 극적인 상항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자 불쑥 아까 내비쳤던 상가 이야기를 꺼냈다.
“그 정도 건물이면 혼자 사시기에 넉넉할 거에요.”
그 말에 오윤수는 당장 떠나라며 버럭 화를 냈다. 화경은 이때다 하고 더 큰 소리로 화를 냈다.
“이봐! 당신이 뭔데 그리 도도해? 당신은 강도였어. 강도는 죽어서도 강도란 말야. 그런 주제가 감히 성인이 된 것처럼 건방지게 굴어? 당신은 지금 꿈속을 헤매고 있는 거야.”
“꿈속에서 헤매게 그냥 놔두세요.”
“뭐라구? 뭐 이런 인간이 있어!”
화경은 핸드백을 열고 손바닥만한 양주병을 꺼냈다. 심심풀이로 넣고 다니는 술이었다. 그녀가 단숨에 술을 반병이나 비우자 오윤수는 벌떡 일어나 부엌에서 깍두기를 담은 접시와 젓가락을 들고왔다. 그는 목사님이 곧 오실텐데 쫓겨나기 십상이라는 농담까지 곁들였다. “목사한테 들켜 쫓겨났으면 좋겠어요.”
화경은 또 술병을 집어들었다. 오윤수가 그 술병을 빼앗자 화경이 그의 뺨을 쳤다.
“당신은 행복한 인간야. 은미 같은 여자의 사랑을 받다니. 하기야 그년도 미쳤으니까 강도를 사랑하겠지만.”
화경은 핸드백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뺨 때린 거 미안해요. 화경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뒤따라오던 오윤수가 앞장을 서더니 길가로 달려가 택시를 잡았다. 호텔까지 모셔드리겠다는 호의였다. 화경이 핸드백에서 탑승권을 꺼내보이자 그제야 오윤수는 택시 뒷문을 열어 화경을 차에 태워주었다. 차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오윤수는 제자리에 서 있다가 관리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해가 지고 밤이 깊어져 아홉 시 뉴스를 보려고 텔레비전을 켤 즈음 해운대에서 걸려온 화경의 전화를 받았다.
“만약 내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횟집에 데리고가서 음식에 독약을 타먹일 거야.”
화경의 첫마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