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스마니아 |
개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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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 : 68,331 sq km - 호주에서 가장 적은 주임 인구 : 470,470명 - 대부분 북부 남부 그리고 북서부에 분산되어 있음 기후 : 뚜렷한 4 계절을 가진 온화한 해양성 기후. 겨울은 매우 춥고 습함 주의 수도 : 하버트 주요 도시 : 하버트 ( 194,974명) 론스톤(98,352명) 버니 앤드 디벤포트(78,605명)
주요 생산품 농업 - 소고기, 유제품, 맥주, 라벤더, 양고기, 감자, 목재, 울, 과일,야채 임업 - 창꼬치류, 가재, 연어, 가리비, 전복 산업 - Alginate, 알루미늄, 냉동음식, 깡통과일, 종이, 펄프 광업 - 석탄, 구리, 금, 철, 납, 주석, 아연
주요 관광명소 : 론스톤 앤드 하버트 카지노, 플랭크린 리버, 타스마니아 데블, 골돈 리버, 호트 아더, 파괴되지 않은 산새, 청결한 해안선, 동굴, 역사적인 장소들, 네션널 파크, 피싱, 웅장한 바다경관, 타스마니아는 휴양지 섬으로 알려졌다.
주요 페스티발 및 이벤트 1월 - 시그넷 혼 포크 페스티발 하버트 섬머 페스티발 2월 - 디벤포트 푸드 앤드 와인 페스티발 3월 - 디벤포트 리가타 론세스톤 나이트 인 더 조지 5월 - 리치몬드 하베스트 페스티발 10월 - 부니 로도덴드론 페스티발 로얄 하버트 어그리컬쳐럴 쇼 론세스톤 가든 페스티발 11월 - 데로라인 타스마니아 크레프트 페어 12월 - 시드니 - 하버트 얏트 레이스(끝지점)
Tasmania(타스마니아)洲 호주 본토에서부터 Bass 海峽을 사이에 두고 240km 남단에 떨어져 있는 Tasmania는 1642년 유럽인으로서 처음 이 섬을 발견한 네덜란드 탐험가 Abel Tasman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타스마니아의 면적은 직할군소島嶼를 포함하면 약 6만7천km2이며 Tasmania의 수도는 Hobart(호바트)이다. Tasmania는 호주의 본토와는 지형적으로 매우 이질적이다. 건조하고 황량하기까지한 호주대륙이 매우 이국적인 반면 타스마니아는 지형적으로 산악과 구릉지역이 많은 한국과 매우 유사하게 느껴질 것이다. 1803년에 영국군 대위 John Bowen이 現 Hobart근역에 상륙함으로써 영국식민지의 역사는 시작되었고 1825년에는 NSW주로부터 분리된 독립식민지로 승격되었다. 벌써 1820년대에는 약 3000-5000명 정도였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원주민들은 유럽인에 의해 죽임을 당하던지 그들이 가지고 온 질병으로 거의 대부분이 죽었고 생존한 원주민들은 Flinders섬으로 강제이주를 당한 후 결국 멸종되어버렸다. 타스마니아의 경제는 유업, 목축업,광업,임업이 가장 중요한 산업이다. 관광업이 점차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가고 있는데 타스마니아의 여러 국립공원을 중심으로 한 eco-tourism(환경관광업)이 활기를 띠고 있으며 과거 유형지였던 Port Arthur 가 관광 주요 목적지이다. 본토에서 타스마니아로의 여행은 항공편 아니면 멜번에서 출항하는 자동차 운반 가능한 페리를 이용할 수 있다
(http://www.discovertasmania.com.au) (http://www.tas.gov.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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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bart(호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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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바트는 타스마니아의 수도로서 Derwent江어귀 구릉지대에 위치한 아름다운 타스마니아 제일항구 도시다. 영국이 프랑스의 식민지 잠식을 발본색원하기 위한 조치로 새운 전초기지가 발전 유지되어 현재에 까지 이르고 있는 호주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유서깊은 도시이기도 하다. 시의 배경에는 1270m의 Wellington山과 남쪽에는 Nelson산이 버티고 있다. 호바트는 호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정평이 나있다. 이 도시를 방문했던 미국이 낳은 최고의 소설가 Mark Twain은 다음과 같이 호바트를 평했다고 한다. 'How beautiful is the whole region, for form, and grouping, and opulence, and freshness of foliage, and variety of colour, and grace and shapeliness of the hills, the capes, the promontories; and then, the splendour of the sunlight, the dim, rich distances, the charm of the water-glimpses! And it was in this paradise that the yellow-liveried convicts were landed, and the Corps-bandits quartered, and the wanton slaughter of the kangaroo-chasing black innocents consummated on that autumn day in May, in the brutish old time. It was all out of keeping with the place, a sort of bringing of heaven and hell together.' 산수의 아름다움을 극찬하면서도 원주민 학살로 얼룩진 과거에 대한 예리한 비평을 잊지 않으며 천혜의 파라다이스와 인간이 만든 지옥이 만난 곳이라고 트웨인이 평한 곳. 타스마니아의 최고관광명소로는 물론 호바트에서 100km거리에 있는 Port Arthur이다. 강력범들과 죄수 중 유형지에서 재범을 하는 우를 범한 불쌍한 인간들이 보내졌던 지옥이 바로 Port Arthur이다. 이 외에 사과의 산지로 유명한 타스마니아에서 사과 농장을 방문할 수 있는 Huon Valley(휴언 계곡) 그리고 타스마니안 데빌(Tasmanian Devil)과 캉가루를 볼 수 있는 Bonorong Wildlife Park(보노롱 야생동물공원)등.
(http://hobart.ozactivity.com.au/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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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갑(Battery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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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어느 도시와도 같지 않은 특유의 도시인 배터리 포인트. 타즈매니아 판의 록스(Rocks: 시드니 항구 옆으로, 로맨틱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과 특유 기념품점이 줄지어 있는 동네)라고도 할 수 있는데, 록스는 관광객들을 끌어드리는 100% 관광 명소인 것에 반해, 배터리 포인트는 우아함을 풍기는 보통 마을이다. 아름답고 소중히 보존돼 있는 19세기의 주택들이 모여 있어 특이한 곳. 배터리 포인트를 구경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살라만카 플레이스(Salamanca Place)에서 켈리의 계단(Kelly`s Steps - 아마도 제임스 켈리 선장을 위해, 1839-40년 사이 만들어진 것)을 올라가, 꼬불꼬불한 골목들을 돌아다녀 보는 것이다. 매 골목마다 신비함을 느낄 수 있고, 가두풍경이 가관이다. 배터리 포인트의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1818년 본 갑에 올랐던 멀그레이브(Mulgrave) 포병중대(Battery)에서 따온 것이다. 이미 1804년부터 유럽인들이 이 곳에 정착했음을 고려해 볼 때, 이곳의 이름이 지어진 속도는 늦다고 본다. 1830년대까지는 원래 시골의 모습이었던 배터리 갑은 이 당시부터 탈바꿈을 하기 시작했다. 건물들이 들어섰으며(1831년에 완성된 스토웰 하우스와 세셔론 하우스가 유명하다), 도매 상점들이 건설되었는데, 현지 살라만카 플레이스에서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다. 1850년 즘이 되어서는 살라만카 플레이스와 배터리 포인트는 호밧의 해운업의 초점이 되었다. 전 세계에서 선원들이 모여들었다(몇몇은 본 갑에 위치한 주택에서 거주했으나, 몇몇은 부둣가의 선술집을 사용했다). 이들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선원과 일꾼들을 위한 많은 오두막집이 세워졌다. 영국 시골의 골목과 도시의 골목을 흉내내어 디자인한, 고상한 주택건물 거리와, 일꾼들의 오두막집이 어울려, 호밧의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준다. 배터리 포인트의 가장 인상적이며 유명한 건물은 성 조지 교회(St. George' s Church), 아니 교회의 탑이라고 할 수 있다. 1836년에서 38년 사이 건축된 교회에, 1847년 제임스 블랙번(James Blackburn)의 디자인으로 탑이 증축되었다. 호주 최고의 그리스 교회로 여겨지며, 도리스 지방의 주방 현관과 화사한 조각들로 인상적이다. 배터리 포인트의 오두막집들은 콘도로 많이 사용된다. 72번지 햄든 로드(Hampden Rd)의 오두막은 1837년, 윌리암 윌슨 선장(Captain William wilson)이 건축했는데, 현재 숙소로 사용된다. 비슷한 경우로, 32번지 모나 스트리트(Mona Street)의 콜빌 오두막(Colville Cottage, 1877)과, 6번지 크롬웰 스트리트(Cromwell Street)의 크롬웰 오두막(Cromwell Cottage, 1880), 8번지 모나 스트리트의 2층 짜리 탤탈론 롯지(Tantallon Lodge) 모두 역사 깊은 건물들로, 독특한 숙박을 제공한다. 곳곳에 놀라움이 숨어있는 배터리 포인트를 탐험하는 건 신난다. 더욱 계획적인 관광을 하고 싶다면, 매주 토요일마다 문화 보호 협회가 운영하는 산책 투어를 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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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 있는 역사 깊은 건물들(The Historic Buildings in the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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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호밧의 역사를 가르쳐 주고 싶거나, 호밧의 예 건물의 구조를 조사하거나 참고하고픈 건축가/미술가, 여행의 추억을 아름다운 뒷 배경에 세기고 싶은 이들은 호밧의 역사 깊은 건물들을 방문해 보라고 권장한다. 긌et`s Talk About Hobart`s Historical Buildings)라는 제목의 팜플렛을 구해 보면, 자세한 안내를 제공한다. 이 팜플렛이 중요히 설명하는 또 다른 부분은 호밧 시내의 상업지역에 대한 것이다. 배터리 포인트와 살라만카 플레이스에 위치한 건물들이 당신을 압도시킬 정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면, 시내의 주요 지역까지 걸어가 보면, 후회하지 않을 일이 기다리고 있다. 데이비와 맥콰리 스트리트(Davey and Macquarie Street)에는 문화 보호 협회 등급을 받은 60개의 건물들이 2개의 길 안으로 빽빽이 서 있다. 시청에서 맥콰리 스트리트로 올라가, 헤링튼 스트리트(Harington Street)에 도달해, 살라만카 플레이스로 내려와, 데이비 스트리트로 다시 본점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돌면, 이 도시의 최고 중요한 건물들을 거의 다 볼 수 있다.
(http://www.ausvillas.com.au/Attractions/battery_point.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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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글시 군인 막사(Anglesea Barra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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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 스트리트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앵글시 군인막사가 있다.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군용 설립으로, 1814년에 건설되었는데, 현재 아직 사용되고 있다. ‘Let`s Talk About Anglesea Barracks` 라는 또 다른 팜플렛은 본 군인막사의 역사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며, 이 콤플렉스 안의 각각의 주요 빌딩들에 대한 설명이 담긴 지도가 포함되어 있어, 편리하면서 좋은 기념품 역할을 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맥콰리 장관(Governor L.Macquarie)의 지시하게 세워졌다. 1811년 타스마니아 방문 시, 호밧의 군사시설의 부족함을 보고 걱정을 하게 되었는데, 이후 10년 동안 본 앵글시 군인 막사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1814년 초석이 깔린 후, 1818년부터 군대가 사용하기 시작했다. 막사 투어 하면서 보게 될 건물로는, 호위병 하우스(Guard House, 1838), 병원(the Hospital, 1818), 군용 수용소(Military Gaol, 1846), 장교 막사(the Officer`s Quarters, 1814), 구 훈련소(Old Drill House, 1824)이다. 월요일~금요일, 오전 8시에서 오후 10시 사이 관람 가능한데, 현재는 많은 건물들이 일반인들에게 닫혀있다. 매주 화요일 오전 11시, 무료 안내 투어가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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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호바트의 역사적인 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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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중심의 상업지역에 위치한 건물들로, 눈에 띄는 것들로는, 호밧의 가장 많은 나이를 먹은 코미사리엇 스토어(Commisariat Store, 1808-10)로 맥콰리 스트리트의 40번지에 위치했으며, 본 건물 뒤편의 본드 스토어(Bond Store, 1824)와 타즈매니아 박물관 및 미술관(1863), 인상적인 무도회장의 주인, 시청건물(1864)이 있다. 머레이 스트리트(Murray Street)에 자리잡은 구 법원(Old Court House) 콤플렉스를 채우는 건물은 대법원(Supreme Court, 1823-23), 재무성(Treasury office, 1859-64), 증서 담당 오피스(Deeds Office, 1884)등이다. 법원 맞은편에는, 비록 현재 존재하지는 않지만, 식민지의 첫 교도소가 있었다. 맥콰리 스트리트 위쪽에는 타즈매니안 클럽(Tasmanian Club, 1846), 1850년대부터 자리를 지킨 석조집, 성 요셉 교회(St. Joseph`s Church, 1840)등이 있다. 성 다윗 공원(St. David`s Park)은 데이비 스트리트에 위치해 있는데, 공원이 마주 보고 있는 곳엔, 1840년대에서 50년대의 벽돌집들이 든든히 서 있다. 공원 옆은 1855년에 처음 사용된 주 의사당이 있으며, 그 뒤로, 위에 언급된 머레이 스트리트에는 커스틈스 하우스 호텔이 (Customs House Hotel) 서 있다. 캠벨 스트리트(Campbell St)의 29번지, 호주의 가장 오래된 극장인 씨에타 로얄(Theatre Royal)은 1837년에 건축되었다. 조지 왕조 시대의 황홀한 인테리어는, 1830년대, 식민지 당시 때에도 교양이 있는 사회이었을 가능성을 상기 시켜준다. 극장에 유령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러 가보자! ( http://www.erin.gov.au/cgi-bin/heritage/register/site.pl?01130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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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 항구(Port Arth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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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형법 식민지 당시 건물 보존 콜렉션 타즈매니아에, 모든 호주인 들이 방문해야 할 곳이 있다면, 바로 이곳, 아더 항구이다. 놀랍게도 잘 보존되어 있는 형법 식민지는, 호주의 초기 역사를 최고로 힘있게 간직하는 장소이다. 방문 시, 잠깐 동안만 영국의 산 나무의 아름다움, 예쁘게 깔려 나아있는 길, 반듯하게 깔린 잔디는 잊고, 눈을 지긋이 감고, 그 당시 죄수들의 생활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라. 당신이 만약 런던의 빈민굴이 바글바글 모여있는 이스트 엔드(East End)에 살았는데, 천을 훔쳐 도주하거나, 음식을 훔쳤다거나, 사소한 범죄에 가담을 하여, 7년형의 선고를 받고 나라에서 추방되었다면... 지구 반대쪽에 위치한, 신조차 버린 어느 기관에 박혀 노동을 해야 한다면... 범죄의 무게에 비해 죄의 값이 혹독하다고 느끼지 않겠는가? 1830~1877년 사이 12,500명의 죄수들이 이곳에서 그들의 형벌을 감수했다. 그래서 호밧에서 100km 떨어진 이 곳은, 섬의 한 부분을 세로로 잘라, 격리 시켜졌으며, 이 작은 땅은 EagleHawk Neck 라 알려져 있다. 상습범과 재범자는 다시 영국으로 보내졌고, 1830년 식민지의 총독, 아더에 의해 아더 항구는 설립되었으며, 2류 범죄자들을 다스리게 되었다. 이 곳의 비참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려는 목적으로, 1864~49년 사이, 바다 맞은편 푸어 항구(Port Puer)에 어린이와 청년들을 위한 특별한 감옥이 세워졌다. 아더 항구의 제일 재미있는 특징은, 감옥과 유형에 대한 주관의 변화를 반영함이다. 적용하던 영국식 법의 개념과 평등이 47년간 급진적인 변화를 거쳤다. 아더 항구가 바로 이 변화를 반영해 준다는 것이다. 1830년, 죄수들은, 커다란 감방을 수많은 죄수들과 나누어야 했고, 이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었다. 그러나 1840년대에 이르러는, 죄수들에게 개인 감방을 주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1850년대가 되자, 죄수들은 그들의 신용성, 건강, 위생, 나이 등의 부류로 나우어 놓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돌았다. 눈치 빠른 사람이나 정밀한 관찰가는 19세기부터 죄수들에 대한 대우가 향상하고 전개되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외롭고 격리된 형법 식민지 이곳, 아픈 이들에게는 병원이 마련되어 있고, 기숙사 식의 숙박 시설로, 개인감방이 제공되며, 정신병자들에겐 그들만을 위한 정신병원 또한 준비되어 있었다. 죄수들은, 가혹하고 축축한 날씨에서 본인들과 감시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간단한 나무 오두막을 지었으나, 현재, 정착 초기시의 자국은 남아있지 않다. 이 당시 죄수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참고 일해야 했으며, 그들의 주요 직업은 벽돌 제조업과 채석업 시설을 설립하는 일이었다. 1833년, 죄수들의 감시 탑과 감시원 주택 뒤 언덕에 군인사막을 완공했다. 최근, 이 곳을 발굴했는데, 대량의 사기 파이프, 부러진 석필 조각들과 석판(아마 죄수들을 위한 학교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이 발견되었다. 이 폐허는 아더 항구의 제일 오래된 건물이다. 주차장 건너편의 부두에 위치한 감화원(Penitentiary)라 알려진 건물이 주요 교도소인데, 1844년 완공되었을 때, 호주에서 최고로 큰 건물이라 알려졌다. 본 건물의 본래 건축 목적은 곡물 창고와 밀가루 찧는 풍차의 역할이었다. 허나, 10년 후, 노폭 섬(Norfolk Island)에서 옮겨진 죄수들을 수용하는 목적으로 사용도가 바뀌었다. 본 건설은 로얄 기술자(Royal Engineers)라는 기관의 감독 아래, 풍차 기술자 알렉산더 클락(Alexander Clark)의 지도 아래 죄수들(무역이 직업이었던 죄수들)이 완공했다. 풍차는, 거대한 24명의 죄수들이 발로 굴리는 바퀴의 힘으로 돌았다. 고안된 처벌 중 제일 험하고, 품격을 떨어뜨리는 처벌이다. 교도소에서 감회원으로의 전환은 형법 기관에 대한 당시의 사상을 보여준다. 75m의 길이로 거대한 규모를 지닌 본 4층 건물은, 1,2층을 136개의 개인 감방들로 채웠다. 513명의 죄수를 포용하는 기숙사 또한 포함되어 있다. 형법 식민지가 1877년 폐쇄된 후, 감회원은 아더 항구의 주요 명소가 되었으나, 관리 태만으로, 1897년 산불로, 본 건물의 목재는 전부 타 버렸다. 지금은 건물 내, 산책로를 닦아 놓아, 쉽게 죄수들의 생활을 맛볼 수 있다. 매일 밤 노동 후, 망치를 걸어놓던 쇠 고리, 공기를 들여 마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통풍관등은 아직 남아있다. 단 135cm의 폭을 가진 감방에 한 사람을 감금시키는 이런 몰인정함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850년대와 1860년대, 고위인사들에게 식민지의 현대성의 예라면서 본 감회원이 보여졌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다. ( http://www.portarthur.org.au/index.html)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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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교도소(Model Pr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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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이 감금되어 있는 교도소? 안타깝게도(?) 아니다. 단지 이름이 ‘모델’일 뿐이다. 세틀먼트 내(Settlement Creek)를 건너, 정신병원(Asylum) 옆에는 1814년에 지어진 ‘모델 프리즌’이란 곳이 있다. 이곳 또한 그 당시, 형법 기관에 대한 사상을 잘 말해준다. 1840년 초, 영국의 교도소 건물들에는 급진주의가 소개되면서, 펜튼빌(Pentonville)같은 경우는, 운동장과 개인감방이 포함되어 있었다. 유행하고 있던 개인감방에 대한 철학은, 즉 격립과 분리는 죄수들이 반성하게 만들어 준다는 거였다. 잇따라 죄수는 본인의 죄에 대해 고려해 볼 것이며, 결국엔 회개 할 것이라는 거였다. 또 다른 제안된 원리는, 인간이 다른 인간과 의사 소통이 불가능해지면, 어떤 종류의 형벌보다, 침묵이라는 가혹한 처벌아래 죄수들은 무너질 것이라는 것이다. 로얄 기술자란 기관에 의해 설계되고, 죄수들의 노동으로 지어진 이 모델 교도소는 런던의 펜튼빌 교도소(Pentonville Gaol)를 모형으로 지었다. 이 건물의 근본 철학은, 크로포드(William Crawford)와 젭(Joshua Jebb)이 주장하던 의견들로, 죄수들은 개인 감방에 감금되어야 하며, 이름대신 번호로 불려야 할 것이며, 완전 침묵이 요구되어야 하며, 교회 예배시도 격리 시켜 놓아야 하고, 교도소관 및 슬리퍼를 신고, 핸드 제스처로 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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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정부의 오두막’(The Church and Government Cot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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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기억될 만한 건물인 본 교회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정부의 오두막’ 바로 옆이다. 이 유명한 장소는 1836-37년 부근에 설립되었고, 아마 부 병참부 위원장인 토마스 렘프리어(Thomas Lamprier)와 건축가였던 죄수, 헨리 래잉(Henry Laing)의 디자인을 토대로 세웠을 것이다. 이름이 지어지거나 헌당되는 일은 없었다. 공 들여서 만은 이 건물에는 나무 첨탑이 있는데, 돌처럼 보이게 하려고 페인트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안타깝게도, 식민자가 폐쇄되기 1년 전,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교회 내의 방은 1000명의 죄수들과 200명의 공무원들을 포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했다. 교회는 지속되었으나, 1884년 화재로 너무나 큰 손상을 입었다. 주 정부가 1913년부터 책임을 맡았으며, 그 후 부분마다 재 공사를 해, 다시 옛 모습을 되찾고 있다. 지금 우리는 식민지의 이 부분을 나타내는 부유함에 크기에 대해 짐작만 할 수 있지만, 옛 그림들을 보면 ‘정부의 오두막’ 앞, 언덕을 지나 쭉 뻗어있는 정원이 얼마나 애써서 만들어 졌는지, 로코코 양식의 정밀함으로 만들었고, 죄수 정원사들에 의해 가꾸어 진 것을 볼 수 있음에, 거의 정확한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더 항구의 정착 후 바로 죄수들은 부스 사령관(Charles O`Hara Booth)을 위한 작고 깨끗한 오두막을 만들었다. 몇 해가 지나고, 사령관마다 달랐던 가족의 수가 부담이 되어, 이 건물은 크게 증축될 수밖에 없었다. 1844-48년동안 식민지를 감독한 챔프 사령관(William Champ)의 대가족을 위해 많은 터가 더 해졌으며 1851년엔 돌로 만든 출입구가 들어섰다. 여기에 딸린 최고급의 정원, 골동품, 바다 경치는 죄수들과 그들의 감시원의 생활의 차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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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탑과 군용 콤플렉스(Guard Tower and Military Comp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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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의 오두막 옆에는 감시탑과 군용 콤플렉스가 있는데, 아더 항구의 건축상 최고로 정교한 건물이라 본다.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만, 식민지에 3번째로 지어진 군용 단지였다. 첫 번째였던 목재건물은 1841년 벽돌 건물로 바뀌었고, 1847년, 2층 짜리 군인 막사로 바뀌었다. 건물의 제일 눈에 띄는 유품은 감시탑(1836)인데, 탑의 돌은 푸어 항구의 어린 죄수들이 깎은 것이다. 타워 오두막과 스미스 오브라이언의 오두막(Tower Cottage and Smith O`Brien`s Cottage) 감시탑 뒤편 언덕엔 타워 오두막이 있고, 근처엔 스미스 오브라이언의 오두막이 있는데, 지금은 마구간으로 사용된다. 1850년, 3개월 동안 아일랜드의 혁명자인 오브라이언(William Smith O`Brien)이 이곳에 거주하며,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영국의 법칙에 반항하여 이 곳으로 추방된 오브라이언은, 당시의 정치에 따라, 다른 죄수들과 같이 선고를 받고 추방되었지만, 특별한 경우라고 고려, 다른 죄수들에게서 격리되었다. 1856년까지 타즈매니아에 거주했고, 사면을 받고 아일랜드로 귀국했다. 그의 오두막 밑에는, 한때 80명의 수용자 환자들을 보살폈던 병원(1842)이 페허가 되어있다. 이 병원은, 비록 파멸했을지라도, 아더 항구도 한때는 죄수들에게 친절한 대우를 베푸는데 앞장섰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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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세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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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즈매니아의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유난히 아름다운 19세기 건물로 유명한 곳 호밧에서 북쪽으로 199km가면 타마 강을 만나면서, 타즈매니아의 두 번째로 중요한 도시를 만나게 된다. 65,000명의 인구를 가진 이 곳은, 그냥 유래 깊은 역사와, 19세기의 우아한 건물들이 많은 도시에 불과하다. 호주의 어느 도시보다도 19세기 건물이 많이 모인 곳이라는 논의가 있다. 그렇게 중요한 도시라는 느낌이 안 나지만, 특유의 분위기와 매력이 베어있어 19세기 마을을 탐험하는데 이상적이다.(도심지에서 30분 안의 거리에 있다). 타마 강(Tamar River)은 유럽인들이 발견했는데, 바로 배스와 플린더스가 1798년, 밴 디먼스 랜드를 주항하는 도중이었다. 16일 동안 강을 탐험한 후, 영국 해군본부 수로학자였던 알렉산더 댈림플(Alexander Dalrymple)의 이름을 따, 댈림플 항구라고 지었다. 불란서인들이 밴 디먼스 랜드에 정착하는 것을 염려한 킹 장관(Governor King)이 패터슨 연대장(William Paterson)의 지휘 아래 작은 원정대를 보내었을 때, 이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패터슨 대위는 현 조지타운이 위치한 곳에 진영했으며 탐험 후, 남쪽으로 향하면서 현재의 론세스튼에 다다르게 되었다. 이곳에서 강한 인상을 받은 그들은, 이곳에 작은 요새를 지었고, 1806년 3월 경, 여기로 재배치하길 원했다. 본래 페터소니아(대위의 이름과 흡사한가?)가 이름으로 정해졌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킹 장관이 태어난 콘월의 마을에 이름을 따라 론세스튼이라고 지었다. 호밧같이, 이곳의 경제의 중요성은 항구로서의 역할에 의지했다. 1824년에는, 본 섬의 공식적인 북쪽 군 본영이 되었다. 조지타운을 주 정착지로 삼고 싶었던 맥콰리 장관의 계획에는 어긋나는 일이었다. 1826년에는 측량되었고, 1827년에는 2,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살았으며, 주위 지역에서 양모와 밀을 선박하게 되었다. 3년 후, 1830년대가 오자, 정식 군용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포경선과 바다표범-잡이들에 의해 항구가 메어졌다. 1852년, 론세스튼은 타즈매니아의 2번째 중심이라고 여겨졌으며, 시정기관임을 공포했다. 비쇼프 산(Mount Bischoff)에선 1871년 주석이 발견되었으며, 10년 후 론세스턴은 스스로의 주식거래 시장을 열었다. 1911년에는 전차가 들어왔으며, 유물인 No.16은 페니 로얄 밀 콤플렉스(Penny Royal Mill Complex)에서 아직도 달려,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끈다. 현재 론세스턴은 인기도 많고, 중요하기도 한 곳이다. 타즈매니아의 공원 도시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의 수많은 공원과 정원 때문이다. 타즈매니아에 설립된 도시 중 2번째이며, 배스 해협(Bass Strait)을 건너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에게는 데본보트나 조지 타운(Davenport or George Town)에 도착 이후 첫 번째 체류지 일 것이다. ( http://www.launceston.tco.asn.au/index.htm)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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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즈매니아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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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쎄스턴 시에서 근접한 벨리베이(Belly Bay)는 남반구에서 가장 큰 제련업소 중하나이다.타즈매니아 수력 발전 업계의 많지 안은 자랑거리인데 알루미늄 원광을 제련시키기 위해필요한 상당량의 전력을 저렴한 값으로 공급하기 때문이다.이런 이유로 퀸슬랜드 주(Queensland)와 노던 테리토리 주(Northern Territory)에 있는광산에서 알루미늄 원광을 이 곳까지 수송해 오고 있다.론쎄스턴의 다른 산업체는 식용 수육 수출, 섬유 산업, 식품 가공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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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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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쎄스턴 시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도시 건축 및 계획부(City Architect and Planner's Department)에서 간행되는 '론쎄스턴의 도보여행(Walk About Launceston)이라는 안내 책자를 구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이 책자에서는 론쎄스턴 시의 역사적 흐름과 배경을 알게 해 주는 25곳을 추천 및 자세히 소개하고 있으며 모두 시내 중심가에 위치해 있다. 또한 이 격조 높은 건축물들을 상세하며종합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카타락트 고지(Cataract Gorge) 공원도 포함돼 있다. 브리스베인 스트릿 상가(Brisbane Street Mall)로 시작하여 19세기 보석상 F&W Stewart, 타즈매니아 호텔과 조지언 호텔(Georgian Hotel)로 이어진다. 왕자의 광장(Princes Square) 또한 매우 흥미로운 곳으로서, 19세기를 지나면서 이벤트들이 많이 있었다. 열기구를 날려보냈으며, 산적 2명을 교수대에서 처형 한 곳이기도 하다. 1858년에는 파리 전시회(Paris Exhibition)에서 구입해 온 반나체 요정 형상의 분수대를 시민들의 반대에 의해서 파인애플로 바꾸기도 했다. 그 다음으로 모튼 하우스(Morton House)를 소개하고 있는데, 원래는 세인트 존스 병원(St. John`s`s Hospital)로 알려져 있으며, 1847년 호주 최초로 마취약을 사용한 곳이다. 밀튼 호텔(Milton Hotel, 1842), 유대교회당(Synagogue,1844)등은 그 당시 사회적 배경을 말해주는 역사의 선물이라 하겠다. 그 외에 많은 역사적 배경을 지닌 곳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쿼드랜트 상가를 중심으로 한 건물도 매우 흥미롭다. 시티호텔(City Hotel, 1870년대), ANZ 은행(ANZ Bank, 1880년대), 호주 호텔 중 가장 큰 역사를 지닌 론쎄스턴 호텔(Launceston Hotel, 1814), 맥주 양조장(Brewery Oast House), 몬즈 앤드 애플랙 방앗간(Monds and Affleck Mill, 1860), 우체국 등등. 론쎄스턴을 진정으로 즐기는 방법은 위에 소개된 곳들을 통해 이 도시의 모습을 상상하며 꺏돎맙㈖?을 떠나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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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쎄스턴 도심지의 역사적 하이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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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의 시간이 제한돼 있다면, 아래 소개되는 건축물만으로도 충분한 역사적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 퀸 빅토리아 박물관 및 미술관(Queen Victoria Museum and Art Gallery) : 호주 지역 박물관 중 최고로 손꼽히며, 원주민과 최초 정착민이었던 죄수들의 과거를 통해 론쎄스시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나)왕자의 광장(Prince`s Square) : 시내에서 가장 인상적이며 멋진 곳으로써 분수대와 많은 조지 왕조 시대의 건축물과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건축물들이다. 다)맥콰리 하우스(Macquarie House) : 1830년 지역 상인인 리드(Henry Reed)씨에 의해 지어졌으며, 지금은 퀸 빅토리아 박물관의 한 부분이 되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까지 방문 가능하다. 전화) (03) 6331 6777. 라)배트맨 포크너 여관(Batman Faulkner Inn) : 원래는 콘월 호텔(Cornwall Hotel)로 알려져 있고, 배트맨(John Batman)씨와 그의 친구들과 만나 베스 해협(Bass Strait)을 건너서 새로운 식민지를 세우기로 정한 장소이다. 후에 그 식민지가 멜번(Melbourne)으로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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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락트 골짜기(Cataract Gor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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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쎄스턴에서 피크닉지로 가장 유명하며 유난히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카타락트 골짜기 공원은 한번쯤 방문해 볼만한 곳이다. 분지 위로 다니는 리프트와 숲 속을 가르는 산책길, 매혹적인 경치를 가지고 있으며, 현수교, 야외 음악당, 정자 등 수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산책길은 다양한 식물들 - South Esk Pine(솔나무의 일종), Bull Oak(떡갈나무의 일종), lime(라임 감귤 나무), 사이프레스 나무(Cypress Tree)로 둘러싸여 있으며, 식당과 수영장도 준비돼 있어 피크닉을 위해 1899년에 개장하였고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오픈 하는데 정확한 시간과 주차를 위해서는 미리 문의하길 바란다. 공원 입구는 요크 스트리트(York Street)에 위치해 있다. ( http://www.launceston.tas.gov.au/Gorge.htm)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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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명소들(Tourist Attr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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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페니 로얄 월드(Penny Royal World) 1840년에 지어진 페니 로얄 풍차를 비롯하여 1970년에 완공된 이 곳 페니 로얄 월드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이다. 숙박시설과 19세기에 재건된 여러 가지 분쇄기들이 눈길을 끈다. 1973년, 544km 떨어진 바톤(Barton)이라는 곳에서 옮겨진 페니 로얄 물방앗간과 1825년에 복제되어 작동하고 있는 옥수수 분쇄기도 있는데 페니 로얄 월드는 19세기 여러 가지 관광객을 위한 투어로 물방앗간과 풍차 사이에 1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시가 전처와 타마 강(Tamar River)을 따라 카타락트 골짜기로 향하는 래드 스텔폭스(Lad Stelfox Paddle Steamer)가 45분 간격으로 준비되어있다. 자세한 사항은 전화 (03) 6331 6699로 문의. ( http://www.ausvillas.com.au/AdvPass/penny_royal.htm) 나) 프랭클린 하우스와 마을(Franklin House and Franklin Village) 론쎄스턴의 가장 역사적인 명소인 프랭클린 하우스. 이 웅대한 조지 왕조 시대 식 건물은 1838년, 양조자 존스(Britton Jones)를 위해 죄수들이 지은 것이다. 1842년부터 40년 동안, 남학생들을 위한 학교(W.K.Hawkes School)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문화 보호 협회의 소유이며, 1961년 출입이 개방되었다. 실은, 1960년 타즈매니아에 문화 보호 협회가 설립한 목적은 본 건물을 구매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알맞은 가구들로 장식이 되어있는데, 주목할 만한 품목들로는, 18세기 마호가니 시계, 오르간, 타즈매니아 산 삼나무로 만든 피아노, 불란서 자명악, 다양한 사람들의 초상화들, 그리고 광대하게 사용된 삼나무이다.(문과 틀, 창문과 굽도리널에 사용되었다).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열려있는데, 겨울에는 한 시간 일찍 닫는다. 문의) (03)6344 7824. ( http://www.yorkmansions.com.au/Attractions/franklin_house.htm) 다) 구 우산 가게, 60번지 조지 스트리트, 론쎄스턴 (The Old Umbrella Shop, 60 George Street, Launceston) 1860년대에 지어졌으며, 숏 가족(Shott Family)의 3세대에 거쳐 소유되었던 본 상점은 현재, 문화 보호 협회의 기념품점을 겸해 안내소로 사용되고 있다. 주중에는 9시에서 5시까지, 주말에는 9시에서 정오까지 운영한다. 가게 앞과 인테리어는, 아주 훌륭하고 진기한,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스타일을 보존하고 있다. 전화) (03) 6331 9248 라) 웨이벌리 양모 제조 공장(Waverly Wollen Mills) 론쎄스턴의 도심지에서 5km의 걸리에는 1874년 건축된 웨이벌리 양모 제조 공장이 있다. 호주의 가장 오래된 양모 제조 공장으로, 1889년에 세워진 수력 전기 발전소가 딸려있다. (본 회사는 남반구에서 제일 오래된 수력 전기 발전소라고 주장한다). 30-40분 정도 걸리는 안내인이 함께 하는 투어는 주중 오전 9시에서 4시 사이에 제공되고, 전시실은 주중 9시에서 5시까지 운영하는데, 공장의 생산품을 구매 할 수도 있다. ( http://www.austrade.gov.au/AOD/Page33773.asp)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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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본포트(Daven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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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스 해협을 건너는 방문객들의 주요 입구 데본포트 도시는 타즈매니아 북 해안의 가장 크고도 가장 중요한 항구이다. 머지 강(Mersey River) 어귀에 자리한 본 항구는 론쎄스턴에서 서쪽으로 98km 떨어져있다. 데본포트가 본 대륙에서 건너오는 방문객들에게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멜본에서 매주 화요일, 목요일과 토요일에 떠나오는 카페리(Able Tasman)의 도착 장소가 여기이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타즈매니아의 대문(긖he Gateway to Tasmania)이라고도 알려져 있기도 하다. 본토와의 이 연결이 데본포트에게 이득이 되는 이유는, 론쎄스턴과 호밧 외에, 타즈매니아의 다른 도시에 비해 다양한 현대식 모텔과 호텔이 있기 때문이다. 데본포트의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 확실히 아는 이는 아무도 없지만, 영국 남부의 데본 군(County of Devon)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것을 확신한다. 어느 학교에서는, 확실한 증거 없이도, 영국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해, 데본 군의 해안에 위치한 데본포트 마을의 이름을 따 왔을 거라고 주장한다. 가장 있음직한 이론은 아마, 본 도시 주위의 지역이 데본 군이라고 불려서, 이 곳의 항구를 데본포트라고 이름지었다는 것이다. 누가 맞을까? 머지 강의 밑 범위는 1823년에 탐사되었다. 그 당시 본 지역에 관한 보고서는 호의적인 것에서는 거리가 멀었다. 한 탐험가는 그 땅에는 산이 너무 많았으며, 절대로 농작물이 나지 않을 것이며, 거주하기에는 전적으로 부 적절하다고 결론 내렸다. 1826년 밴 디먼스 랜드 회사에 의해 다시 답사되고 측량되었다. 그 해 사람들이 하나 둘씩 정착했으나, 본래 주민인 호주 원주민들의 반대와 분노에 부딪히게 되었고, 이 충돌의 절정으로, 이 곳의 첫 이주자인 토마스 선장(Captain Bartholomew Boy Thomas)이 운명하게 되었다. 머지 강의 서쪽의 폼비(Formby)와 동쪽의 토키(Torquay)가, 1890년 2월 11일 합쳐지면서 데본포트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합병 전, 항구의 시설들 - 상점, 부두, 등대, 기찻길(Don Railway)-은 1854년 즈음 다 완성되었었다. 1850년대 초기, 본 항구의 주요 사용자들은, 목재 사업자들, 보트 건조인들이었고, 강 하류에는 석탄 채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초창기의 여행자들이나, 주민들에게는 하나의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이 머지 강을 건너는 것이었다. 1860년 전에는 말을 수영시켜 건너는 것이나, 아무 배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때 건너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1860년에 라트로브 마을, 강 상류에 대충 틀만 잡힌 통나무 다리를 지었다. 마침내 배가 정기적으로 왕복 운행하기 시작했으나, 1902년이 되어서야 진정한 다리가 지어졌다. 본 지역의 해운업 단체가 1868년에 창립되었고, 1885년, 론쎄스턴으로부터의 기찻길이 깔렸으며, 현재 국가 소유의 등대(아직 머지 절벽에 위치한다)는 1899년에 완성되었다. 1908년에는 데본포트 지방 자치 의회가 창건했다. 타즈매니아의 남은 지역들을 찾아 떠나기 전 방문객들의 발이 떨어지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유난히 많은 이 곳. 이 도시의 제 1의 볼거리로 여겨지는 티아가라와 돈 리버 전차(Tiagarra and Don River Tramway)는 역사와 현대가 희한하게 어우러지는 혼합이다. 티아가라(타즈매니아 원주민어로, 지키다, 장소를 지키다 라는 뜻이다)는 머지 강 서쪽 강기슭에 위치한 머지 절벽에 자리를 잡고 있다. 타즈매니아의 유적 중 유일하게 원주민들의 암벽 조각이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그리하여, 타즈매니아 북 해안에 정착한 원주민들에 대한 기록만큼이나 소중히 여겨진다. 암벽 조각은 1929년 이곳 학교 선생님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금방 보호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1976년 니콜스 경(Sir Douglas Nicholls)이 개관한 티아가라 미술 센터에는 18개의 전시를 통해 2000개의 예술품을 뽐낸다. 투시화와 본 지역의 원래 주민들의 생활 모습을 묘사하는 진열들이 흥미롭다. ( http://www.devonport.tco.asn.au)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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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리버 철도(Don River Rail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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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 디먼 경편 철도회가 소유하며 운영하는 돈 리버 철도는 데본포트의 서쪽, 돈 강(江) 어귀에 깔려있다. 매일 11시에서 4시 사이, 한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데, 강을 따라 콜스 해변가(Coles Beach)까지의 짧은 승차이다. 옛 증기 기관차와 객차에 대한 전시도 구경할 수 있다. 1854년 완성된 돈 리버 전차로는 원래 돈 리버 계곡에서부터 목재를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었지만, 현재 관광 목적으로 사용되는 전차는 목재를 나른 적이 없다. 현재는, 멜로즈(Melrose)의 채석장에서 사암을 나르기 위해 깔았던, 1916년 BHP가 만든 철도의 한 부분을 사용하는데, BHP가 만든 철도는 1963년까지만 사용되었다.
(http://www.dcc.tas.gov.au/online/don-rail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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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힐(Home 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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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드 부인과 조세프 라이온스(Dame Enid and Joseph Lyons)의 보금자리였던 홈 힐은 역사적으로도 소중한 곳이다. 77번지 미들 로드(Middle Road)에 위치한 홈 힐은 낡았으면서도 품위 있고, 절묘하게 가꾸어진 정원과 등나무 덩굴, 거대한 늙은 나무가 신비함을 조성한다. 문화 보호 협회가 만든 팜플렛의 설명을 들어보자. ‘그들의 결혼 1년 후인 1916년에 지어졌으며, 5년이란 기간을 제외하고는 평생 이 집에서 거주했다. 본 건물과 토지는 데본포트 시가 소유하며, 집안의 물건들은 본 문화 보호 협회의 소유이다. 라이온스는 1923-28년까지 타즈매니아 주지사였고, 1929년 연방 정부에 참가했으며, 1923-39년까지 호주의 수상을 맡았다. 사무실에서 39년 사망한 그는, 호주 수상 중 유일하게 타즈매니아 주민이었으며, 주지사를 맡고선 수상이 된 유일한 호주 국민이다. 1943년, 라이온스의 부인은 첫 여성 하원위원으로 당선되었다. 1951년, 약해진 건강으로, 하원에서 은퇴했다.’ 이니드 부인이 남긴 그대로인 홈 힐은 수상의 추억거리와 기념품을 많이 보관하고 있다.? 이니드 부인이 ‘So We Take Comfort'라는 회고록을 쓴 것도, 은퇴 후 거주했던 것도 바로 이 홈 힐이다. 매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과 주말에,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 오픈 한다. 타즈매니안 마리타임 앤드 포크 박물관(Tasmanian Maritime and Folk Museum) 본 지역의 다른 명소로는 글로쎄스터 에브뉴(Gloucester Avenue)에 위치한 본 박물관이 있다. 해운상의 기록할 만한 사건에 대한 전시물(이 도시의 해양 역사에 대해 중점을 두었다)들로, 여러 멋있는 모형들이 있는데, 그중 4개의 돛대를 갖춘 범선은 탐낼 만하다. 여름에는 매일(월요일 제외) 오후 1시에서 4시 반까지 오픈하며, 겨울에는 2시에서 4시까지만.
(http://www.devonport.tco.asn.au/homehill/index.htm)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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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본포트 쇼케이스 (Devonport Show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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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지 버트 스트리트(Bert Street)에 위치한 이곳은, 서쪽 해안에 위치한 트란스 머지 페리(TransMersey Ferry)의 종점에 가깝다. 데본포트를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 본 섬의 북서쪽 해안을 탐험하게 될 관광객들을 보조하는 역할 또한 맡고 있다. 본 지역 미술과 공예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와 은은한 향기의 커피를 파는 카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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