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체적 가치와 우유적 가치 =
올림픽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유도 선수가 금메달을 아깝게 놓치고 원통해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외국인 기자가 ‘은메달을 따고 왜 눈물을 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얼굴이 뜨거웠다. 그리고 그 옆에는 동메달을 딴 동유럽의 한 선수가 껑충 껑충 뛰며 기뻐하는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루어 더욱 부끄러운 적이 있었다. 이는 실제척인 것과 우유적인 것을 혼동하는 한국인의 아주 이상한 생활철학 때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실체란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물을 설명할 때 중요하게 사용하는 개념이며,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계승되어 매우 심도 있게 논의된 개념이다. 실체를 의미하는 라틴어는 ‘substantia’인데 이는 ‘우유’라는 ‘accidentia’와 대립되는 개념이다. 실체란 어원적으로 ‘sub’ 즉 ‘~아래에’와 'starer' 즉 ‘서 있다’의 명사형 ‘stantia’가 합쳐진 것으로 ‘~아래에 서 있는 것’ 혹은 ‘~의 기저로 혹은 지반으로 놓여있는 것’ 이란 뜻이다. 반면 ‘우유’란 ‘우연’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는데, ‘부수적인 것’ 혹은 ‘비본질적인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서 인간에게 있어서 실체란 나의 모든 인간적인 속성들의 기저에 놓여 있어서 이 속성들의 원인이 되는 ‘인간성’ 혹은 ‘인간의 본질’ 혹은 ‘인간의 영혼’ 등을 지칭한다. 반면 어떤 사람이 ‘금발인 것’이나 ‘피부색이 검은 것’ 등은 실체적인 것이 아닌 ‘우유적인 것’이다. 즉 실체를 의미하는 ‘인간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파생되어 나오는 것이 ‘실체적인 성질’이라고 한다면, ‘목소리가 예쁜 것, 피부색이 흰 것’ 등은 ‘인간성’으로부터 반드시 그렇게 파생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수적으로 혹은 우연적으로 즉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우유적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쉽게 ‘인간성이 좋은 것’은 ‘실체적인 가치’이며, ‘노래를 잘하거나, 공부를 잘 하는 것’ 등은 ‘우유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침대는 잠을 편하게 잘 수 있는 기구이다. 따라서 편한 잠을 자게 하는 것은 침대에 있어서 ‘실체적인 가치’이며, 침대의 색깔이나 디자인 등은 우유적인 것이다. 가치의 문제가 부각될 때 실체적인 가치는 우유적인 가치보다 우선적인 것이다. 화분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꽃을 심을 수 없는 화분이라면 이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망각한 것이다. 즉 실체적인 가치를 망각한 것이다. 아파트를 장식하려고 너무나 많은 화려한 장식물을 들여다 놓으면, 그 장식물들 때문에 마음 놓고 쉴 수가 없으며, 아이들은 조심스러워 장난도 잘 칠 수가 없다. 이는 부수적인 가치 즉 ‘우유적인 가치’들 때문에 본질적인 가치 즉 ‘실체적인 가치’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인’이란 진정한 시를 쓰는 사람을 말하고, 화가란 진정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말한다. 화가에게 있어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란 실체적인 것이며, 시인에게서 ‘시를 쓰는 사람’이란 역시 실체적인 것이다. 반면 그 시인이 베스트셀러의 시집을 냈거나, 혹은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은 그림을 그렸거나 하는 것은 ‘우유적인 것’이다. 그 시들이 그림들이 진정한 시로 진정한 그림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1등을 했건, 2등을 했건 혹은 대중들에게 외면을 당했건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유적인 가치도 매우 중요할 때가 있지만 우유적 가치보다는 ‘실체적인 가치’가 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다. 옷보다는 몸이 중요하고, 몸 보다는 마음이나 정신이 보다 중요하지 않는가!
하지만 ‘경쟁사회’ 혹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가치가 역전되고 만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학생이 아니라 공부 잘 하는 학생이며, 진정한 소설가가 아니라,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진정한 체육인인 아니라, 메달을 딴 운동선수이다. 일등이 아니고, 인기가 없고, 메달을 따지 못한 작가나 선수들은 마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한 사회가 ‘경쟁사회’이고 ‘신자유주의 사회’이다. 그러다 보니, ‘잉여 인간’이란 말도 안 되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모든 곳에서 ‘세계최초’니, ‘국내제일’이니, ‘동 업계 1위’니 하는 등의 말이 유행어가 되었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마치 인생에 있어서 실패를 한 듯 착각을 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더 이상 상을 받거나 메달을 따거나 혹은 최소한의 등수에 들지 못하는 시인들, 선수들은 더 이상 시인으로 운동선수로 존재할 수 없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 같다. 부수적인 가치 즉 ‘우유적인 가치’가 ‘본질적인 가치’ 즉 ‘실체적인 가치’의 자리를 차지하고 없애 버리는 역전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금메달 선수만 남고, 1등 학생만 남고, 베스트셀러 작가만 남아 있는 사회는 끔찍하다. 이는 달리 말해 더 이상 시인도, 화가도, 체육인도 존재하지 않는 그러한 사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대학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문학도는 진정한 문학도가 되는 것이 먼저요, 철학도는 진정한 철학도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먼저요, 음학도는 진정한 음악도가 되는 것이 모든 것에 앞서는 실체적인 가치이다. 1등이니, 2등이니, 장학생이니, 토플 점수가 몇 점이니, 하는 등은 모두 ‘우유적인 가치’에 지나지 않는다. 취업이 중요하지만 취업준비 때문에 진정한 문학도가 되거나 진정한 철학도가 되거나 진정한 예술학도가 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면, 이는 부수적인 가치를 위해 본질적인 가치를 희생하는 것이요, 더 심하게 말해 대학생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모든 한국의 대학생들이 진정한 대학생이 되고자 할 때, 대학이 건강하고 국가와 사회가 건강할 것이다. 대학생들이 더 이상 존재하는 않는 사회란 참으로 끔직한 사회일 것이다. 최근 통계청 조사를 보면 한국의 년 간 초중고 학생 자살자 수가 200여명에 이르고 있다. 왜 꽃다운 나이에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일까? 아마도 더 이상 청소년이기를 학생이기를 포기하게 하는 사회적 현실 때문이 아닐까? ‘우유적인 가치’ 때문에 ‘실체적인 가치’를 포기하게 하는 기성세대들의 바보스러운 짓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