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어느 겨울날 어머니가 독감에 걸리셔서 꼼짝을 못하고 있을 때였다. 겨울 저녁에다 눈발까지 날리고 얼씨년스런 날이었다. 당시 약국이라곤 읍내에 있는 ‘중앙약국’ 단 하나였고, 누군가 읍내까지 가서 어머니의 약을 사와야 했다. 아버지는 마실을 가셔서 오지 않았고, 형은 무슨 시험을 준비한다고 갈 수 없어서 결국 내가 가야 했다. 잠바를 두껍게 입고 장갑을 끼고 읍내로 갔다. 20분쯤을 걸어서 중앙 약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 다 되었다. 약국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무로 된 긴 의자들에는 낮에 사람들이 놓고 간, 과자 봉지들과 신문들이 널려 있었다. 약국에는 한쪽에 연탄난로가 있어서 매우 따뜻했다. 그런데 손님은 아닌 것 같은 누추한 차림의 한 사람이 의자들 한 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곁 눈길을 하면서도 애써 모른 척 하였다. 약국의 주인아주머니는 어머니의 초등학교 동창생이었고, 가끔 뵌 적이 있어서 친한 척 하면서 인사도 야무지게 하였다. 약국 아줌마는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어머니의 증세를 듣고는 능숙한 솜씨로 약을 제조했다. 척 척 약첩을 만들더니 불과 5분 만에 3일분의 약을 만들어 봉지에 넣어 내어놓았다.
약봉지를 받아들고 약값을 지불하고 나서려니 무언가 아쉬움이 남았다. 먼 길을 어렵게 왔는데, 5분 만에 떠나려니 아쉽기도 했겠지만, 노련하고 매력적인 아줌마와 조금만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나름 용기를 내었다. 나는 구석에 앉아 있는 불쌍한 한 사람을 핑계로 하여 말을 건넸다. “아줌마!” 용기 있고 대담하게 불렀다. 그러자 약국 아주머니는 ‘왜?’ 라고 호기심 어린 듯이 힘주어 대답했다. “저기 저쪽에 앉은 사람 보세요. 옷도 다 떨어졌고, 신발에 흑도 묻어 있고, 술 냄새도 풀풀 풍기고 꼭 거지같은 데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그런데 그게 어때서?”라고 약간은 미소를 띄면서 물었다. 나는 아줌마가 세상물정을 잘 모른다는 듯이 다시 말을 건넸다. “그냥 술 냄새만 풍기는 게 아니에요, 잘 들어 보세요. 저사람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욕 투성이에요. 욕이 아주 심해요. 모르겠어요. 저런 사람이 여기서 저러고 있는 것을 사람들이 보면 약국 이미지가 아주 나빠진단 말이에요. 그러면 약국 손님도 떨어질 테고, 그냥 가라고 하세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약간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철이 엄마는 이 약이 약이지, 하지만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술 먹고 욕을 지껄이는 것이 약인데 우짜겠노! 마음의 병도 병 아이가, 아픈 사람에게 약을 먹지 말라고 할 수야 없다 아이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그리고 너무나 확신에 차서 하는 그 약국 아주머니의 말은 나의 뇌를 강타하면서 순간적으로 나를 멍하게 하였다. 여지 끗 그런 생각이나 그 같은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나는 아주머니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 그 불쌍한 사람을 핑계로 이용하였다는 사실에 부끄러웠고, 또한 시골 아주머니가 어떻게 저 같은 말을 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 이었다. 그런 말은 사실 무슨 스님이나 목사님이나 수녀님 같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주머니는 당시 읍내의 개신교 교회인 ‘제일교회’의 집사인가 무언가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 아주머니는 ‘가장 보잘 것 없는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성서의 진리를 일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거지같았던 그 불쌍한 사람은 당시 읍내에서 부자로 소문난 건축업자 였지만 무슨 사기를 당해 회사가 망하고 아내마저 집을 나가 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한 동안 폐인처럼 술에 절어 세상 욕만 하고 다녔는데, 친구들도 모두 외면한 그 사람이 쉴 수 있는 유일한 곳이 겨울밤에도 난로가 켜져 있었던 그 약국뿐이라고 했다.
물론 그 이후로 그 사건은 잊혀 졌고, 그 불쌍한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의 병을 헤아리고,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기꺼이 장소를 내어준 그 약국 아주머니의 선한 마음씨’는 평생 나에게 작은 하나의 등불이 되어 주었다. ‘진정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생텍쥐페리의 메시지를 나는 이미 중학교 초년생 때 동네 아주머니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이었다. 후일 프랑스에서 공부를 할 때 프랑스 사람들은 그 같은 아주머니의 정신을 ‘똘레랑스’라고 부르고 있었다.
반 고흐의 <슬퍼하는 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