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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무엘하2장1~11절
제목 : 두 왕국의 출범
다윗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북쪽에서는 아브넬이 마하나임에서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삼습니다.
1. 유다 사람들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다(1~7절)
1) 다윗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 물어 행동했습니다(1절)
“[1]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그 후에 - 본장과 전장(前章)사이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하였음을 나타내 주 는 관용적 표현입니다.
역대상의 기록에 의하면 다윗은 사울의 전사 소식을 듣고서도 얼마 동안은 블레셋 땅 시글락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대상 25:5-7).
그리고 이때 더욱더 많은 용사들이 다윗에게로 몰려왔기 때문에 그의 세력은 더욱 강성해진 듯합니다(대상 12:1-22).
이는 곧 이제 다윗이 전사한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할 때가 이르렀음을 시사해 줍니다(Pulpit Commentary).
여호와께 물어. - 아마도 이때 다윗은 우림과 둠밈으로 여호와께 물었을 것입니다.
그 근거로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림과 둠밈을 단 에봇을 아비아달 대제사장이 입고 있었는데,
당시 그가 다윗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삼상 23:6).
*삼상23:6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더라”-[도액] 22:18-85명 죽임
둘째, 다윗은 과거에도 아비아달의 아버지 아히멜렉에게 우림과 둠밈을 사용, 하나님의 뜻을 물어봐 달라고 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삼상 22:10).
한편 이처럼 다윗은 사울의 사후(死後)자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는 정세(政勢)속에서도 자기의 기분에 따라 행동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행동은 중요한 일에 부딪칠 때마다 취한 행동으로서(5:19;삼상 22:10), 이는 그가 그만큼 자기의 앞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 이제 사울이 죽은 시점에서 다윗은 고국으로 돌아오려 합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 다윗이 특별히 유다 땅을 염두에 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는 아직 사울 가문을 추종하는 적대 세력이 있었으니(8,9절) 그는 자기 지파, 유다 땅에서 필시 정착지를 구하려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헤브론 - 예루살렘 남서쪽 약 40km 지점에 위치한 고성(古城)입니다.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Kirjath-Arba)이며(수15:13;삿 1:10),
'헤브론'(Hebron)의 뜻은 '연합','친교'입니다.
*수15:13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을 유다 자손 중에서 분깃으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었으니 아르바는 아낙의 아버지였더라”
그런데 여호와께서 새로운 정착지를 찾는 다윗에게 헤브론으로 가라고 명하신 까닭은 아마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입니다.
(1)헤브론은 유다 지파의 성읍이며 유다 지파 지역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다윗이 유다 지파의 세력을 업고 왕이 될 정치적인 거점으로 알맞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4절).
(2)헤브론은 여호수아 시대에 갈렙에게 패퇴당한 아낙 자손들이 차지했던 요새로서(수 15:13-17)산지가 성읍으로 둘러싸인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3)그리고 무엇보다도 헤브론에는 다윗과 친분이 두터운 유다의 장로들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삼상 30:26,30).
2) 두 아내를 데리고 헤브론으로 올라 갑니다(2절)
“[2]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을 데리고 그리로 올라갈 때에”
이스라엘 여인 아히노암. - '아히노암'(Ahinoam)의 뜻은 '호감가는 형제'입니다.
그녀는 다윗이 자신의 첫 번째 아내 미갈을 발디에게 빼앗긴 후 새로이 취한 또 다른 아내입니다. 삼상 25:43 주석 참조.
그녀는 다윗에게 한 아들을 낳았는데 곧 장자(長子)암논입니다(3:2).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 - '아비가일'(Abigail)의 뜻은 '아버지가 기뻐하심'입니다.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인으로 본남편 나발 사후(死後) 다윗에게로 개가(改嫁)하였습니다. 삼상 25:39-42주석 참조.
그녀 역시 다윗에게 아들을 낳았는데 일명 '다니엘'(대상 3:1)이라고도 하는 '길르압'입니다(3:3).
3) 추종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다 헤브론에서 살게 합니다(3절)
“[3] 또 자기와 함께 한 추종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다윗이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읍에 살게 하니라”
삼상 27:2에는 당시 다윗을 추종하던 자들의 수가 600인 이었던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도 권속(眷屬)들, 즉 딸린 식구들이 있었다 하니 적어도 그 수는 두 배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들에게는 아말렉족에게서 탈취한 무수한 양떼와 소떼도 있었습니다(삼상 30:18-20).
따라서 아마 다윗은 이들을 헤브론에 다 수용치 못하고 헤브론 및 그 인접한 성읍들에 분산 수용하였을 것입니다.
4) 유다 사람이 와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습니다(4절).
“[4]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 - 일찍이 야곱은 유다 지파에 대하여 예언하기를 그들 중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나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창 49:8,10).
그런데 그때 이후 약 850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비록 유다 족속만의 왕이긴 하나 다윗이 왕위에 올랐으니 비로소 그 예언은 성취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예언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 때에 보다 본격적으로 성취되었긴 하나(5:1-3) 그 궁극적 성취는 '실로'(Shiloh) 곧 유다 혈통을 좇아 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므로 궁극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창 49:10 주석 참조.
기름을 부어 - 다윗은 그의 일생동안 다음과 같이 세 번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1) 약 15년 전 사무엘에게서(삼상 16:13),
(2) 본절에서 유다의 장로들로부터 유다의 왕으로,
(3)약 7년 6개월 후 이스라엘 장로들에게서 온 이스라엘 왕으로(5:3).
그런데 다윗의 두 번째, 세 번째 기름부음은 원칙적으로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하신 사건이었으며 그 결과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두, 세 번째의 기름부음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성격상 두 번째, 세 번째의 기름부음은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구체화되는 사건, 즉 다윗이 실제로 왕위에 오르는 공식적인 행사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1) 하나님이 말씀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삼상 15:29) 과 (2)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는 당시에는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필경에는 승리한다는 영적 진리(요 16:33)를 발견하게 됩니다.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
길르앗 야베스(Gilead-Jabesh)는 요단 강 동편, 므낫세 지파의 영토 내에 있는 성읍입니다(민 32:39,40).
벧스안에서 동남쪽으로 약 20km 지점에 위치한 이곳 일대는 요단 강 동쪽 유역에서 가장 비옥한 땅으로 일찍부터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생명을 걸고 사울의 시체를 되찾아 엄숙히 장례를 치뤄 준 까닭(삼상 31:11-13)은 일전에 그들이 암몬 왕 나하스에게 포위당했을 때 사울이 와서 구해 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였습니다(삼상11:1-11).
5)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령들을 보내 그들에게 복을 빕니다(5절).
“[5]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령들을 보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그를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
전령들을 보내. - 이는 다윗이 왕위에 오른 후 공식적으로 행한 첫 행사로 그 의미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면 다윗이 이처럼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사자들을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혹자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1)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에게 큰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므로(삼상 11장)그들의 오해가 없도록, 즉 다윗이 사울 왕을 반역하여 스스로 왕이 된 것이 아님을 그들에게 설득하기 위해서(7절)라는 견해.
(2)그들도 다윗을 왕으로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는 견해.
그러나 이 견해만을 주장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정치적인 이해관계보다 하나님의 공의(公義)에 더 큰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왕적 권위가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진다는 진리를 아는 사람으로서 그와 같이 얄팍한 수를 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1:14,15).
따라서 다윗이 이처럼 저들에게 사자들을 보낸 근본 이유는 자기를 대신하여 사울의 시체를 장사지낸 야베스 사람들의 선행에 보답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이는 앞서 다윗이 사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한 '활 노래'(1:17-27)를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사자들을 보낸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노고를 치하한 것은 그의 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지 결코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6) 다윗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갚겠다고 합니다(6절)
“[6]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은혜와 진리. - 이 두 단어는 하나님의 언약(covenant)과 관계된 용어들입니다.
그중 먼저 '은혜'(Kindness)로 번역된 '헤세드'는 단순한 관대함이나 인자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즉, 이는 하나님의 언약대로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어 그의 보호를 받게 되는 은혜를 의미하는 말입니다(출 19:5,6;신 5:32,33).
다음으로 '진리'(truth)로 번역된 '에메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식언(食言)치 않으시고 그대로 지키신다는 의미의 '진실'을 말합니다(삼상 15:29).
따라서 다윗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계속적으로 하나님과의 언약 가운데 있으면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풍성한 복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이 용어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Lange).
7) 다윗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 보호하겠다고 합니다(7절).
“[7] 이제 너희는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지어다 너희 주 사울이 죽었고 또 유다 족속이 내게 기름을 부어 그들의 왕으로 삼았음이니라 하니라”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지어다. - 성경에서 '손'은 종종 '힘'이나 '능력'을 상징합니다(창 9:2;14:22;32:11;출 2:19;레 26:25).
그리고 '담대히 할지어다'라는 말의 직접적 뜻은 '용맹의 아들이 되라'입니다.
따라서 본절은 내가 너희를 보호할 터이니 '낙심말고 힘을 내라'(공동 번역)는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약속입니다.
즉 일찍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암몬의 침략 위기에서 사울 왕의 도움으로 구출된 경험을 한 바 있습니다 (삼상 11장).
그러나 사울 왕이 없는 지금 저들은 외적의 침략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이와 같은 의사는 왕적 권위로서 저들을 보호하겠다는 최상의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2.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우다(8~11절)
1)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갔습니다(8절)
“[8] 사울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
넬의 아들 아브넬. - 그의 아브넬(Ner)은 사울의 숙부였으니(삼상 14:50), 아브넬(Abner)은 사울의 사촌이자 이스보셋의 당숙(堂叔)입니다.
이스보셋. - 대상 8:33;9:39에 의하면 그는 사울의 넷째 아들로서 그 본명이 에스바알(Esh-baal)로 되어 있습니다.
*대상8:33,9,39 “넬은 기스를 낳고 기스는 사울을 낳고 사울은 요나단과 말기수아와 아비나답과 에스바알을 낳았으며”
에스바알은 '바알의 사람'이란 뜻인데 이것이 '부끄러움의 사람'이란 뜻인 이스보셋(Ishbosheth)으로 바뀐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측됩니다.
당시 '바알'이란 히브리어는 '주인', 또는 '주님'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이스라엘에 바알 종교가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바알이란 말을 경멸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아마 사람들은 이름에 포함된 바알이란 말을 '부끄러움'이란 의미의 보셋으로 바꾸어 버렸을 것입니다.
'여룹바알'이란 이름이 '여룹보셋' 또는 '여룹베셋'(11:21)으로 바뀐 것도 아마 같은 이유에서 일것입니다.
마하나임 - '두 진영' 또는 '두 군대'라는 뜻입니다.
이곳은 유서 깊은 땅으로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가던 중 천사들을 만났던 곳입니다(창 32:1,2).
*창32:1,2 “[1]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2]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때문에 야곱은 그곳을 '마하나임'(Mahanaim)이라 칭하였는데 그 정확한 위치는 분명치 않습니다.
다만 추측하건데 요단 동쪽 갈르엣과 압복강 사이에 위치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갓 지파와 므낫세 반(半)지파의 기업 경계에 위치했으므로 아브넬과 이스보셋은 이 두 지파를 쉽게 통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수 13:26,30).
한편, 이곳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다윗이 위기에 처했을 때 피신하였던 곳이기도 합니다(17:24,27;19:32).
2)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았습니다(9절)
“[9]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더라”
길르앗. - 다윗이 이곳의 야베스 거민들에게 사절단을 파송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4-7절)길르앗 족속이 이스보셋을 추종한 것으로 보아 아직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민심을 온전히 얻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술. - 아셀(Asher)성읍과 그 지역을 가리킨다는 추측입니다.
이스르엘. - 요단 강에서 길보아 산(삼상 31:1)을 거쳐 갈멜 산 부근을 지나 지중해에 까지 뻗쳐 있는 비교적 넓은 계곡과 평야 지대입니다.
하지만 사울 당시 이스라엘은 길보아 전투에서 패하여 이곳을 블레셋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런데 이스보셋이 이곳의 왕이 되었다고 하니 분명 아브넬이 다시금 군사들을 규합하여 정복하였을 것입니다.
3) 이스보셋과 다윗의 통치 기간입니다(10,11절)
“[10]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이스라엘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사십 세이며 두 해 동안 왕위에 있으니라 유다 족속은 다윗을 따르니[11]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칠 년 육 개월이더라”
(1) 사울의 아들 이스보세이 이스라엘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사십 세이며, 두 해 동안 왕위에 있었습니다(10절).
(2)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칠 년 육 개월이었습니다(11절).
두 통치자의 통치 기간이 서로 상이합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사울 왕의 사후(死後)얼마 안 있어 유다의 왕이 되었으나(1-4절),
이스보셋은 5년여 동안 아브넬과 함께 재편성한 군대를 이끌고 블레셋과 싸워 빼앗겼던 땅을 다시 탈환한 뒤에 왕위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사울의 장래를 치른 뒤 다윗은 더 이상 블레셋 진영에 머물 이유가 없습니다(1절).
그는 다음 행보를 결정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묻습니다.
자신의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라도 유다 땅으로가는 게 당연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받고 출발하려 합니다.
묻는다는 것은 인생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요,
주신 응답대로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응답에 대한 절박함의 무게만큼 내 물음에 믿음과 순종의 무게를 담고 있습니까?
2) 하나님의 뜻과 백성의 뜻에 따라 다윗은 유다 지파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습니다(4a절)
유다 백성은 사울의 자손이 아닌 하나님이 선택한 다윗을 왕으로 세웁니다.
베들레헴에서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지 약 15년 만의 일입니다(삼상16:13).
다윗은 오랜 시간 기다리면서도 스스로 왕위 계승의 당위성을 내세우거나 왕위를 넘보지 않았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매일같이 속도전을 치르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때도 몸에 조급함이 베어있진 않습니까?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뜻 사이에 간격이 커질수록 한계를 느끼진 않습니까?
3) 사울을 장사한 자들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라는 소식을 듣자 다윗은 그들에게 전령을 보냅니다(4b~7절).
사울은 죽었지만 사울 세력은 여전히 건재한 상황에서, 다윗은 사울 집안을 중심으로 형성된 북쪽 세력을 끌어안아야 했습니다.
그는 사울에게 선행을 베푼 야베스 사람들을 축복하고,
보상을 약속함과 동시에 간접적으로 그들의 지지를 구합니다.
위압적인 자세를 버리고 자신을 인정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의 마음을 배려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도 내 편 네 편의 경계를 허물 때 하나님 나라를 세워갈 수 있지 않을까요?
4) 아브넬은 다윗을 통해 세우실 하나님의 왕권에 순복하지 못하고 급기야 ‘두왕’을 세우고 맙니다(8~11절).
사울이 죽은 후 처음 5년은 아브넬이 일종의 군정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에게도 인간적인 욕망과 야심으로 만들어낸 불순종과 반역의 상징이
‘이스보셋’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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