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명절 연휴에 인근에 있는 전계대원군 묘역을 찾았습니다. 그동안 한번 가봐야지 생각만 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던 것을 손자에게 [사적지 탐방]이라는 명분을 세워 손자와 함께 묘역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습니다.
초등학교 3학 년인 손자는 신이나는지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준비해간 노트에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노트도 하고 묻기도 합니다.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 1785년 - 1841년)은 경기도 강화군 출신으로 본관은 전주, 휘는 광(壙), 자는 창강(昌康), 초명은 해동(海東)이다.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의 생부이며 장조의 서자인 은언군의 서자다. 이복 형인 상계군과 아버지 은언군에 연루되어 강화도로 추방되어 일생을 빈농으로 57세를 일기로 불우하게 생애를 마쳤으며, 서자라는 이유로 작위가 내려지지 않았다.
1849년 셋째 아들 원범(철종)이 순조의 양자 자격으로 왕위에 오르면서 사후 8년 만에 전계군(全溪君)의 작호가 내려졌다가, 다시 대원군으로 추봉되었으며, 전계대원군이 되었다.
대원군 하면 ‘흥선대원군 이하응’만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대중적 인지도에도 크게 기인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실상은 조선 왕실에는 흥선대원군을 포함하여 모두 네 분의 대원군이 있습니다.
제14대 선조대왕의 생부인 이초(덕흥(德興)대원군:1530~1559)
제16대 인조대왕의 생부인 이부(정원(定遠)대원군:1580~1619)
제25대 철종대왕의 생부인 이광(전계(全溪)대원군:1785-1841)
제26대 고종대왕의 생부인 이하응(흥선興宣)대원군:1820-1898)
예나 지금이나 부모 잘 만나서 자식들이 호강함은 다반사 이지만 자식 잘 둬서 부모가 호강하는 것 또한 동서고금의 불변의 이치인 것 같습니다.
1.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의 생애
♦ 출생과 가계
조선후기의 왕족으로 장조의 서손자이며, 정조의 조카이고, 철종의 아버지이다. 은언군의 5남이자 서자(庶子)로 1785년(정조 9년) 3월 21일 탄생하였다.
아버지는 장조의 서장남 은언군(恩彦君)이며, 어머니는 전주인(全州人) 이덕희(李德喜)의 딸로 전산군부인 이씨(全山郡夫人 李氏)이다. 아버지 은언군이 상인들에게 진 부채가 증조부 영조에게 알려져 1771년(영조 47년) 직산에 유배되고, 다시 제주도 대정현에 안치되었다가 1774년에 풀려났다.
이광은 왕족이었으나 아버지 은언군이 상계군 사건과 계속된 탄핵으로 유배당한데다가, 이광은 다시 은언군의 서자였으므로 작위가 내려지지 않았다.
♦ 강화도 살이
부인은 전주인(全州人) 최수창(崔秀昌)의 딸로 완양부대부인 최씨(完陽府大夫人 崔氏)였으나 일찍 죽고 용담인(龍潭人) 증 영의정(領議政) 염성화(廉成化)의 딸로 용성부대부인 염씨(龍城府大夫人 廉氏)와 재혼하였다. 또한 첩실인 이씨(李氏)가 있었다.
한편, 백형(伯兄) 상계군 이담(常溪君 李湛)은 1786년에 음독사했으며, 적모 송씨(宋氏)와 형수 신씨(申氏:상계군 담의 처)는 1801년(순조 1)에 천주교신자로 사사되면서 아버지 은언군도 사사되었다.
이와같이 그는 부모와 형·형수의 죄로 연좌되어 강화부 교동으로 쫓겨나 불우한 일생을 빈농으로 보내다가 1841년(헌종 7년) 11월 2일 사저에서 향년 57세로 별세하였다.
1844년(헌종 10년) 중인 출신 민진용(閔晉鏞)이 그의 장남 이원경(李元慶)을 왕위에 추대하려는 모반을 꾀하다 사전에 발각되어 능지처참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해 원경(元慶)도 역시 사사되었다.
♦ 사후
묘를 경기도 양주군 신혈면 은언군의 묘 아래인 해좌원에 예장하였다가 후에 경기도 포천군 포천읍 선단리(현 포천시 선단동) 산11번지에 이장하였다. 현재 묘역과 신도비는 1986년 4월 이후 포천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1849년 헌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그의 셋째아들 원범이 철종으로 등극하자 먼저 전계군(全溪君)에 피봉되었다가, 축호와 사식을 송나라 복황(濮皇)과 수왕(秀王) 및 본조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정원대원군(定遠大院君)의 전례에 따라 다시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으로 추봉하고, 묘(墓)도 다시 정비하고, 묘 앞에 신도비를 세우게 하고, 가묘(家廟, 전계궁)를 중건하여 신주는 불천지위로 정하고 영평군과 그 후손으로 봉사하게 하였다.
♦ 묘소
묘소는 포천시 선단동에 있으며, 본부인인 완양부대부인 전주최씨와 합장하였고, 묘소 옆에는 부실이자 철종의 생모인 용성부대부인의 묘소, 회평군 묘, 영평군 묘가 인근에 소재해 있다.
♦ 가족 관계
아버지: 은언군(恩彦君, 1754년 - 1801년)
어머니(적모) : 상산군부인 송씨(常山郡夫人 宋氏, 1753년 - 1801년), 진천인(鎭川人) 송낙휴(宋樂休)의 딸.
형 : 상계군 담(常溪君 湛, 1769년 - 1786년)
형 : 이창순(李昌順)
형 : 이창덕(李昌德)
형 : 풍계군 당(豊溪君 瑭, ?년 - 1826년), 숙부(淑父) 은전군 이찬(恩全君 李禶, 1759년 - 1778년)에게 출계.
누나 : 참봉(參奉) 한각신(韓覺新)에게 출가.
어머니(생모) : 전산군부인 이씨(全山郡夫人 李氏, 1764년 - 1819년), 전주인(全州人) 이덕희(李德喜)의 딸.
서모 :
이복형제 : 이철득(李鐵得, 1801년 5월, 초 아버지 은언군과 함께 강화도를 탈출, 도주하려다 실패했다.)
이복형제 : 이쾌득(李快得)
정실 : 완양부대부인 최씨(完陽府大夫人 崔氏)
장남 : 회평군 명(懷平君 明, 다른 이름은 원경(元慶) 1827년 - 1844년)
후실 : 이씨(李氏)
2남(서자) : 영평군 경응(永平君 景應, 1828년 - 1901년)
계실 : 용성부대부인 염씨(龍城府大夫人 廉氏, 아들 원범이 철종이 되면서 부대부인으로 추증되었다.)
3남 : 덕완군 변(德完君 昪, 1831년 - 1863년) - 철종(哲宗)
첫댓글 살아 생전에는 불우하게 보내다가 아들 잘 둔 덕택으로 사후에야 이름을 남기게 되니,
이래서 인자는 명, 호자는 피라 했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