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넴이 2년째 방학을 반납하고 열공하는데, 기도하는 심정으로 올 여름도 방캉스로 떼우려 했더니 드뎌 막내 녀석이 '딴 친구들은 다 해외여행 떠났는데 나만 어쩌구 저쩌구'...폭발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딸네미는 두고 마눌, 막내 셋이서 뗌빵으로 가까운 일본 디즈닐랜드에 갔다 오기로 하였다.
디즈닐랜드는 본토 미국의 것을 포함하여 5-6 번을 갔다 왔으나 주로 한두시간이 기본인 줄서는데 시간을 다 보내느라 아직도 구경을 다 못한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갔다 온 다음의 애들의 희열에 찬 얼굴을 보노라면 다시 또 찾게 만드는 마력의 장소이다. 무엇보다도 10여년전 유학시절 2살박이 딸넴이를 데리고 처음 갔을 때 정교한 로봇의 구경거리, 밤의 환상적인 퍼레이드는 신선한 충격으로 어른인 나도 "디즈니여, 또다시..." (일본에서는 이들을 리피터(repeater)라 부름)라는 의지를 불태우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최근 일본에는 디즈닐랜드 옆에 씨디즈니 라는 새로운 아이템의 디즈니랜드가 개장되어 본인도 언젠가...하고 벼르고 있던 참이었다. 또 올여름은 만국박람회와 겹쳐 다소 인파가 분산됨을 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서기 시간을 최소로 줄이기 위한 1주일간의 예비학습을 통하여 임전무퇴의 전의를 가다듬었다.
방학 중 개장은 8시부터이나, 6시부터 기다려야 탈거리를 다 탈수 있다는 정보를 귀가 아프도록 입수하였으나 막상 골골거리는 마눌과 늦잠 뗑깡의 아들녀석을 데리고 입장한 시간은 9시 조금 넘은 시간.... 헐레벌떡 뛰어서 찾아간 가장 인기종목이라는 탈거리 '인디존스-어드벤처'는 2시간 행렬표시가 되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시간예약제'인 '패스트카드'를 12시 타임으로 끊고 다른탈거리에... (패스트 카드는 한번 끊으면 그것을 탈때까지 다른 패스트 카드를 못 끊으므로 되도록 아껴야 됨)
그러나 어딜 둘러봐도 인기종목은 2시간 이상의 긴 행렬이...
압권은 '레이징스피릿'이라는 제트코스터인데, 패스트카드마저 오전 중 매진되고, 애 성화로 폐장 (밤 10시) 직전 9시 너머에 도전했으나 1시간 행렬이 서 있어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도 1주일의 예습복습 효과로 한산해지는 낮퍼레이드, 낮의 쇼 시간대를 맞추어 1시간 이내의 줄서기로 애초에 계획된 탈거리, 볼거리는 거진 정복하였다 (퍼레이드, 쇼를 희생한 것은 적지않은 아픔이었다....다음번을 기약해 본다).
탈거리로 애는 제트코스터계 일명 '절규머신'을 선호하였으나 나는 40대가 넘으면서 이들은 머리가 아파서 눈뜨고 탄 기억이 없다. 반면, 앉아서 편안히 관람하는 쇼 종류가 낙인데, 과연 씨디즈니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밀림을 무대로 한 '미스틱리듬'은 무대에 폭포가 있고 원숭이 분장을 한 액션 배우들이 공중을 붕붕 날으는 환상적인 연기와 불과 물, 그리고 자욱한 수증기안개로 천여명 관객을 압도하였다.
미국의 디즈니월드에서 한번 봤기에 피하려 했던 인어공주쇼는 전혀 다른 컨셒으로 엄청난 공중부양 장치와 화려한 의상으로 '과연 경제대국 일본' 이라는 탄성으로 미국판 인어공주쇼를 훨씬 능가하였다.
마지막으로 최대의 압권은 늘 디즈니랜드의 백미가 밤의 쇼였듯이 씨디즈니의 밤의 쇼 '플라빗치모' 이다. 밤의 쇼의 문제는 리피터들이 가장 잘 보이는 장소를 몇 시간 전에 선점해 버려서 초보 방문객은 불편한 자리에서 몇시간을 기다린 끝에 어깨너머 까치발 서기로 관람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1주일 예복습의 위력을 발휘하야 가장 좋은 자리에 30분전에 선점, 앉아서 편안히 보는데 성공하였다. 30분간의 지리한 기다림 끝에 잠실운동장 몇 배 크기의 호수에 나타나는 미키 마우스의 휘영 찬란한 배 ! -원패턴이지만 눈물이 핑돌 정도로 반갑고 감동적이다.
이어서 벌어지는 무지개 조명과 온통 일대를 수놓는 물보라, 물의 나라를 연출하고 호수 가운데엔 여신의 모습을 한 분수의 거대한 배....음악은 여인을 연상시키는 한없이 부드러운 음률이다. 이윽고 음악은 낮은 톤으로 바뀌고 뒤에 솟은 커다란 화산에서 불꽃 화염과 함께 물속에서 거대한 철제 용의 모습을 한 불의 신이 등장하면서 호수는 순간 불바다로 변한다 (석유가 몇 드럼이나 들었을까...걱정하는 쫌팽이 아저씨의 단상). 그리고 피날레는 물과 불의 신의 조화 ...그날따라 강풍이 불어 불꽃놀이는 자제하였다는 방송에도 불구하도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 불꽃놀이 발사는 다음 번 또다시 본격적인 것을 봐야겠단 리피터 양산 전술이 먹혀들게 만드는 순간이다.
무엇보다도 지금도 귓가에 쟁쟁한 시끄럽지 않으면서 엄청난 음량으로 다가오는 쇼의 아름다운 음악은 쇼가 끝나가면서 보는 이의 모든 눈시울을 촉촉히 적셔주고 "스고이네~~(굉장하다)", "정말 감동이노 했스무니다"는 탄성을 발하게 하는 연출이었다.
덥고 짜증나는 여름에 방캉스로 떼우는 친구들에게 미안하지만, 갈 곳 마땅 찮으면 가까운 이 곳이 나름대로 즐겁고 보람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뜻에서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후기 2-
디즈니씨는 디즈닐랜드에 비해 캐릭터 출연 정도가 낮고, 곳곳의 풍치가 유럽풍으로 잘 꾸며져 어른들을 위한 공원이라는 인상이다. 특히 탈 것이 없어서 요번에 찾지 않았던 지중해 및 뉴욕항 테마 거리엔 카페에 걸터앉아 화려한 쇼를 구경하는 연인들이 눈에 띄었다.
-이상은 6년전 수기입니다. 올여름, 일본은 원전 사고 대책으로 전국적인 절전운동을 벌여 찜통더위에도 에어컨을 가동치 않는다고 합니다. 해서, 올여름엔 피해야할 장소이고, 더구나 어린아이들한테는 방사능 위험으로 피해야 할 나라가 되었지만, 혹 수습이 되면 꼭 한번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