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장날*
민구식
아침부터 침이 꼴깍거립니다
달걀 두 꾸러미 닭들이 못 보게 조막손으로 감싸 안았습니다
엄니는 참깨 한 말, 고추 댓 근,
넉 달 여름 긴긴날 부지런 떨던 넉넉함을 이고
내 손 잡고 힘겹게 일어선 새벽
반은 뛰며 반은 걸으며 흙먼지 차내며 따라가는 장
뒤꿈치 벗겨지는 까막 고무신이 걸음 붙잡습니다
치맛자락 붙잡고 송송 솟는 땀방울 훔친 삼십 리
야무진 흥분이 숫돌고개 넘자마자 장꾼들 농간 흥정 하나마나
손수건에 꼭꼭 싼 지폐 몇 장이 오뉴월 흘린 땀을 씻어 냅니다
확성기 소리 멀리 들리는 장터 입구
벌써 국밥집 냄새가 콧구멍을 키웁니다
외삼촌 고무신 가게에서 주변 백 리쯤 되는 달포 소식 듣고
엄마의 작은 엄마 친정 오라버니 싸전 들려 한참 수다 신이 난 엄니
보채는 손에 동전 몇 개 쥐어지면 몰래 빠져나가
확성기에 이끌려 어른들 다리 사이로 몰래 품바 구경하다가 엄마 잃어버린 장터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뛰어보지만 모두가 엄마 옷자락
키 작은 엄마도 몸 달아 발뒤꿈치 들며 장 바닥 훑어대고
아는 사람 모두 나서 요섭아! 요섭아~~!
장터 사람들 내 이름 다 알게 될 때쯤
다섯 살 설움 울기 직전 모자 상봉 이룬 이야기 두고두고 회자 되고
국밥 한 그릇, 계피 떡, 눈깔사탕, 검정 고무신, 나일론
양말, 벙어리장갑, 털모자
안고 집으로 가는 해 질 녘 입술 주위 엿 가루에 노을 붉던 무기 장터
50년 지나
다시 가보니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 인도네시아, 브라질, 멕시코, 이집트 깃발까지, 난 이방인이 되었습니다
옛 고추전에는 망고, 바나나, 두리안, 구아바, 람부탄, 드래곤 후르츠, 파파야 이름도 생소한 이름표 달고 품평회 합니다
품바 펼쳐지던 다리 옆 공터에선 마츄피츠 그림 걸고 팬플릇 연주단이 제 동네라고 신이 난 국제 시장이 되었습니다
* 무기장- 5일 10일 장이 서는 충북 음성 무극無極리 場.
첫댓글 어떤 때는 동네 마차를 타고 집으로 오곤 했습니다. 요즘 자가용 타고 다니는 것보다 더 신나는 장날 삼십리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