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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를 또 무사히 마감하고 6월 22일 오전에 원장님과 행정실의 김 계장님을 포함한 우리 행정대학원생 서른
네 명의 해외세미나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일정은 4박 5일.
많은 추억과 큰 행복을 싸안고 돌아와 잠시 하루하루의 일들을 곱씹어 봅니다.
첫째 날(6월 22일)
오전 10시까지 인천 국제공항 3층 M 카운터 앞으로 모여 달라는 문자가 아마 열 번은 온 것 같습니다. 일정표를
보니 비행기 뜨는 시간은 오후 1시로 되어 있던데 너무 서두르는 것이 아닐까 약은 척을 하며 10시 5분쯤 약속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약은 척도 헛일!!!
비행기의 연결 관계가 어쩌고저쩌고 하며 처음엔 한 시간쯤 지연 출발을 할 거라던 비행기가 그 후 30분을 더
기다린 후에야 북경으로 출발을 하였습니다. 북경에서도 첫 날의 최종 목적지인 호화호트로의 국내선 비행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우리 일행은 뛰고 또 뛰어 간신히 연결 비행기를 타기 위한 수속을 마치고 북경
국내선 E 27 게이트 앞에 당도하였건만.....
아뿔싸~~~
이것이 웬일이란 말입니까?
중국의 국내선은 얼마큼이나 지연 출발을 할 것이라는 예고도 없이 우리들을 마냥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너무 진력이 나서 힘들어할 때 쯤 방송이 나오기에 비행기를 타라는 소리인가 하고 쳐다보니 항공사 측에서
콜라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각자 아침 일찍부터 집에서 나온 우리들이 콜라 한 잔에 점점 지쳐가는 심신을
달래며 여기저기에서 편한 자세를 취하고 쉬려니 우리와 모든 일정을 같이 하기로 예정이 되어있는 여행사
사장님이 아무래도 비행기가 많이 지연될 것 같으니 알아서 각자 저녁을 먹으라고 하더군요. 같은 비행기를
탈 중국인들은 아무도 불평을 않고 마냥 기다리는 모습이 조금은 생소했습니다.
우리 일행들이 각자 헤어져서 공항 구경을 하다가 그조차도 싫증이 나서 다시 게이트 앞으로 가니 이번에는
도시락을 나눠주는 항공사...
도대체 얼마나 늦으려고....
오랜 기다림 끝에 일정표 상으로는 이미 현지 호텔에 투숙해 있어야 할 시간에 우리는 비행기를 탔고 호화호트에
도착을 했습니다. 피곤하고 지쳐 그대로 휴식을 취하고 싶은 우리의 열망을 현지 가이드는 책임 상 그렇게 할 수
없었는지 그 늦은 시간에 양고기 샤브샤브 집으로 우리를 인솔해 갔습니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할 것 같은 기분도 잠시, 양고기 샤브샤브와 몽골주를 앞에 한 우리들은 어느새 왁자지껄~~~
권하고 마시고 먹으며 여행 첫 밤을 즐기고 있었지요. 포만감에 배를 두드리며 하이량 대주점이라는 호텔로 간
우리들은 각자의 방을 배정받고 다음날의 편안한 일정을 위하여 모두 흩어졌습니다.
둘째 날(6월 23일)
각자 알아서 호텔 조식을 먹은 우리들은 기다리고 있는 전용버스에 올랐습니다. 그 버스는 경장고속도로(조선족
가이드의 발음이라 확실한 명칭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를 달려 땡볕이 계속될 때에는 소리를 내서 [소리사막]
이라고도 불린다는 [향 사막]으로 3시간을 갔습니다. 중간에 잠시 내려 휴게실(화장실)도 들리고 사진도 찍고,
달리는 차창 밖으로 물이 많지 않은 황하강도 관람하며 드디어 도착한 사막.
점심을 먹으며 고비사막 당시의 몽고인들의 생활 풍습과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어얼도스 혼례식 공연”을 보여
준다더니 여행사와 현지 가이드 간에 소통이 덜 되었는지 추가 요금을 요구하더군요. 약간의 실랑이 아닌 실랑이
끝에 누군가 나와서 노래도 부르고 악기도 연주했지만 혼례식 분위기는 “절대” 아닌 공연을 보고 우리는
사막관광에 나섰습니다.
원하는 사람만 신발에 덧씌우는 천을 발에 감고 2인승 리프트에 오른 우리 일행. 가는 중간에 내리는 비를 피해
우산을 쓴 채 40분쯤 느리게 사막의 공중을 지나 도착한 [쿠부치 사막=향 사막]에선 사막지프를 타고,
사막으로 된 모래 동산에서 썰매타기도 하고 나서야 오늘의 메인 관광인 [낙타 타기] 체험을 시작했습니다.
일 년 강우량이 400mm 밖에 안 된다는 내몽고에 우리가 있는 동안은 왜 그렇게 비가 흔했는지...
비를 싫어한다는 낙타의 마음을 헤아려가며 4인 1조가 되어서 체험을 하는데 처음 생각했던 것만큼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네 마리씩 줄에 엮여있고 맨 앞에는 마부가 인솔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모두의 체험이 끝날 때쯤 비가 너무 쏟아져 우리는 체험용 사막지프를 타고 출발했던 곳으로 되짚어
왔습니다. 입안에도 모래, 옷에도 모래, 귓속까지 모래로 범벅이 된 우리들은 그 꼴을 하고도 현지
식당으로 갔습니다. 매번 같은 형식의 맛과 꼴을 갖춘 음식을 앞에 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건배사를
따라 하며 식당 바깥에서 터지는 다음 날의 단오 기념 폭죽 소리와 함께 우리의 이튿날은 저물고 있었지요.
호텔로 돌아온 우리들은 그냥 방으로 흩어지기 아쉬웠는데 김태순님과 이희경님, 그리고 3학차 몇 분이
더 도와 아침부터 미리 준비한 깜짝 이벤트가 있다고 하여 1123호실로 모두 모였습니다.
그 자리는 45대 원우회장님의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코자, 그리고 우리 46대를 이끌어줄 김숙희
새로운 회장님의 당선을 축하코자 마련한 자리라고 하였습니다. 원장님까지 모두 참석한 그 자리에서
우리는 또 한 번 일배일배부일배를 하였습니다.
사진-용환종
셋째 날(6월 24일)
어제 저녁 굿나이트 인사는 드렸던가요?^^
어쨌든 새 날이 또 밝았습니다.
아침을 먹고 2007년에 내몽고 자치주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증개축을 하였다는 내몽고 박물관으로
우리들은 갔습니다. 웅장하고 멋진 초현대식 건물 앞에 우리들을 내려주며 이대군 가이드님은 4층부터
순서대로 보고 내려오라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박물관의 건물 형태부터 시작해서 내몽고를 상징하는
많은 형상이 용맹한 늑대와 자상한 노루가 합쳐져 몽골 사람이 되었다는 전설 덕분에 늑대와 노루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대로 전시실마다 늑대와 노루가 참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너무 야박하게 주어서 꼼꼼히 다 볼 수는 없었지요. 아시아에서는 제일 크다는 공룡의 화석,
그리고 옛 몽고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몇 가지의 전시실을 둘러보다 시간에 쫓겨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버스에 오르기 전에 1차 송지현 회장님의 아이스케키 서비스로 박물관을 꼼꼼히 보지 못한
서운한 마음은 접었습니다.
카메라-이혜경
조 작-용환종
일정표에는 있었지만 아무런 언급도 없이 금강좌사리보탑의 관광은 하지 않고 우리를 실은 버스는
오늘의 메인 관광인 승마체험을 위해 [시라무원 초원]으로 1시간 30분 20초를 달려갔습니다.
(제가 시간을 잰 것이 아니라 가이드의 안내를 그냥 옮겨 적은 것입니다.ㅎㅎ)
초원에 도착하니 환영을 하기 위해 버스 앞까지 말을 타고 달려온 현지인들.
우리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알려준 대로 그들이 주는 하마주(손님맞이 술)를 받아 하늘에 한 번,
땅에 한 번, 이마에 한 번 모두 세 번을 약지로 찍어서 튕긴 후 원샷!을 하였습니다. 몇 분은 쓰다고
뱉어내든데, 도수 높은 술이 그렇지요...하하하
점심식사를 위해 들어선 식당에선 박순태 교수님이 우리들의 즐거움을 위해 준비해 주신 “통 양 바비큐”가
기다리고 있었고 박순태 교수님 부부를 왕과 왕비로 분장을 시켜 모두가 같이 즐거워하는 가운데 다시
한 번 종업원들이 권하는 하마주를 마시며 전통 환영식을 구경하였습니다.
소화가 좀 된 후에 승마체험을 시작하자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사진을 찍으며 초원을 즐기고 있는
중에 점점 흐려지는 하늘... 걱정이 된 우리들은 말 타기를 빨리 시작하자고 재촉을 하였지요.
전날의 낙타 체험에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이...혜...경...
아무 생각 없이 손짓하는 마부가 시키는 대로 말에 올라탔는데...
아니, 이게 웬일이란 말입니까? 제가 탄 것을 확인한 마부는 그대로 고삐를 제게 넘겨주고 자리를
뜨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밀려드는 공포... 놀이동산에 가면 회전목마 빼고 아무 놀이기구도 못 타는
저인데 무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으로 눈물이 다 찔끔 나오려 했습니다.
그래도 설마 죽기야 하겠는가? 하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일행들과 제가 올라탄 말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잘 훈련된 말들은 제가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가는 것이었습니다. 중간에 내려 전통 우유차와 유제품을 시식하고 몇 분은 몽골족의 의상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다가 다시 또 말에 올라 한참을 가서 옛날에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고
젊은 청춘 남녀의 만남의 장소가 되어주기도 했다는 [오보산]이라는 작은 돌탑 앞에서 우리는 참관 및
두 번째의 휴식을 가졌습니다. 아마 우리가 내려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말들도 여물을 먹으며 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시 말에 올라탄 우리들, 처음보다 많이 익숙한 솜씨로 원래 탔던 곳으로 돌아가니 몽고 전통의 씨름쇼와
기마쇼가 진행이 되고 있었습니다. 힘센 총각을 골라내는 전통이라고 하는데 그곳에선 대충 구경하는
척만 하고 말았습니다. 초원으로 가는 길목에서는 박학다식한 원장님께서 그곳에서 비롯된 사자성어라며
“새옹지마”와 “결초보은”에 대한 유래를 설명해 주셨고, 가이드는 몽고 인사를 하나 알려주었습니다.
“안녕하세요?”라는 “샌~베~노”인데 한 번도 써먹지 못하고 온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네요.
모든 관광 일정을 마치고 시내로 돌아온 우리들은 저녁 식사 후 애초에 발마사지만 받으려던 계획에서
장재원 원우회장님의 배려로 전신마사지로 바꾸어 마사지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기대와는
달리 마사지도 신통치 않고 게다가 인원도 많이 부족하여 마사지실 입구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던 저는
2시간짜리 마사지를 1시간밖에 못 받고 말았습니다.
어쨌거나 피곤한 몸을 잠시라도 쉬고 호텔로 돌아간 우리들...
꿀 같은 단잠을 자게 되었겠지요?^^
사진-용환종
넷째 날(6월 25일)
고국에선 6.25 행사라도 있었는지...
우리들은 몽고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위해 아침 식사 후에 버스 앞으로 집결했습니다.
처음 행선지는 내몽고의 가장 큰 라마교 사원이라는 [대소사]로 갔지요. 대소사는 아홉 개의 변방
중에서 최고의 물(泉)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구변제일천이라고도 불렸는데 아직도 그 옛날 청나라
시대의 산서문인이 지어 편액에 새겨 넣은 시가 대소사 산문에 걸려있다고 합니다. 시간을 넉넉하게
주지 않아 우리들은 서둘러 대소사 인근에 있는 옛 거리 관람에 나섰습니다. 그곳에서는 자그마한
수공예품들을 펼쳐놓은 노점상들이 꽤 많았습니다. 20위안씩 주고 팔찌를 구입하시는 분들이 제법
있더군요.
마지막 날답게 바삐 서둘러 우리는 서한의 절세미인으로 알려져 있는 [왕소군의 묘]로 향했습니다.
역시 이어지는 원장님의 특강. 중국의 4대 미인을 설명해 주셨지요.
그 첫째가 서시(西施), 둘째가 바로 왕소군이라고 하네요. 세 번째는 초선, 네 번째가 양귀비
(아름다운 순서가 아니라 시대적 순서입니다.)
아울러서 원장님께선 중국의 3대 여걸에 대한 설명도 해주셨습니다.
한고조의 부인인 여氏(여태후), 그리고 당나라를 주나라로 바꾸어 15년을 장악한 측천무후,
마지막으로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서태후.
이런저런 설명과 전설을 듣고 도착한 왕소군의 묘는 규모가 아주 컸습니다. 돌로 아로새겨진
왕소군의 미모는 돌로도 감출 수가 없었음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무덤 위에는 작은
정자가 있어서 그곳까지 올라갔다 내려온 우리 일행은 이제 드디어 마지막 일정인
[민속공예품 공장] 참관을 위하여 움직였습니다.
각종 유제품과 캐시미어, 보석과 가죽 제품, 전통 복장 등이 있는 그곳에서 많은 분들이
쇼핑을 하는 중에 저는 달랑, 그야말로 달랑, 남편 장갑 한 개만 사가지고 돌아섰습니다.
점심을 한식으로 먹고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시간 맞춰 북경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이대군 가이드님과는 바이바이~~~
정시에 북경에 도착하여 정시에 김순희 현지 가이드와 접선(?)에 성공한 우리들.
우리의 북경 일정이 만 하루도 되지 않아서인지 현지 가이드는 이제 막 비행기에서 내린 우리들을
바로 [차박사]라는 중국차를 파는 곳으로 안내했습니다. 이럴 때는 쇼핑을 강요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썩 좋지 않습니다만 가이드로서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하지 않을 수도 없겠지요...
[차박사]에서 나와 발마사지 하는 곳으로 이동한 우리들. 전날의 내몽고의 전신마사지보다도
좀 더 나아보이는 마사지를 받고(주관적인 생각이니 다른 분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마지막 밤을 보낼 호텔로 간 우리는 다시 또 김태순, 이희경님의 방으로 모여 몇 명의
수고로움을 빌려서 남은 즐거움을 모두 토해놓기로 하였습니다.
사진-누규???
원장님과 행정실의 김 계장님도 참석하여 진지한 얘기도 좀 나누고, 즐거움도 나누고,
행복도 나눈 우리들. 원장님과 김 계장님이 나가시고 김숙희 회장님도 나가시니 전들
남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12시쯤 방으로 돌아와 다음날의 일정도 있는데 주룩주룩
쏟아지는 비를 하염없이 내다보고 있으려니 저와 여행 내내 한 방을 쓰던 저의 동거녀(ㅋㅋ)가
많이 늦어서야 방으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오뉴월 땡볕에 하루가 어디라고...” 하는 말이 생각나는 순간이었지요.
그렇게나 늦게까지 같이 있었던 원우님들의 생동하는 젊음에 부러움을 느낍니다.
다섯 째날(6월 26일)
드디어 돌아가는 날입니다.
관광을 하고 비행기를 타는 일정이라 모두들 아침 식사를 하고 재빠르게 가방을 들고
내려왔습니다. 밤새 내리던 비는 잠시 주춤하는 것 같더니 우리가 자금성으로 향하는 동안
더욱 줄기차게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막상 천안문광장에 도착을 하니 비는 말끔히 그쳐
우리는 우산 없이 관광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안문광장에는 1인 시위자도 있었고,
목이 터져라 공산당을 성토하는 사람도 볼 수 있었습니다. 중국도 많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였다고나 할까요? 어쨌든 9,999칸으로 이루어져있다는 명, 청시대의 황궁인 자금성까지
무사히 관광을 마친 우리들은 잠시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불법현장인(이 내용은 자세히 설명할
수 없음을 해량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냥 소문으로 들으시옵소서.) 어떤 장소에 들렀다가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갔습니다.
사진-용환종
갈 때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시간을 기다린 끝에 우리 일행 모두는 단 한 건의 안전사고도 없이
인천공항에 내릴 수 있었습니다. 수하물을 찾고 아쉬운 마음은 공항의 보도블록 위에 흘려놓은 채
7월 18일 해단식 때 만나자는 인사를 뒤로 하고 우리들은 각자의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저는 5번의 해외세미나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 번도 놓치지 않으리라는 혼자만의 결심이 첫 번째
세미나 때에 시아버님의 병세가 위중한 탓으로 지켜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나머지
두 번의 기회에는 열심히 참여하게 된 것이 무척 기쁩니다. 집에서는 가족들이 응원해주어 기뻤고,
같이 머문 시간속의 원우님들은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행복한 분위기 속에 있게 해주어
기뻤습니다. 다음 세미나 때에 더 많은 원우님들과 이런 즐거움을 같이 할 수 있다면 지금의
기쁨보다 더욱 크게 기쁠 것이라는 희망을 전하며 긴 후기 마칩니다.
고맙습니다./꾸벅/
첫댓글 멋진 후기 감사드립니다..언제나 기쁨조 혜경언니.. 멋져요!!!!!!!!!!!
내가 원제부터 기쁨조가 되얐디야
그렇죠.. 이런게 바로 멋진 후기입니다..ㅎㅎ 아~~ 저도 후기 써야되는데..ㅠㅠㅠㅠ
써야 되면 쓰면 되죵
잘 읽었습니다. 누님...
고맙습니다. 동상...
선배님과는 이번여행의 처음과끝을 저와함께 했네요. (공항버스 동석) ㅎ
후기잘읽었습니다. 즐거운시간들 함께기억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우와, 정말 대단하세요..기억력도 대단하시구요.,, 전 돌아온 즉시 깔끔하게 잊었어요..
깔끔하게 잊은 걸 상기시켜 미안하구먼
저두 .. 완전 깔끔하게 잊었어요 ㅋㅋㅋ 혜경언니 후기 짱!! ^^ 넷째날 동거녀님이 늦게가실때 전 아침에 눈을뜨니 룸메이트가 둘로 늘어나 셋이 잤다는 ㅋㅋㅋㅋ 쉿!! 비밀입니다 ㅎㅎㅎ 아~~~ 후기를 다시 읽고 사진을 다시 봐도 참..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
"정말로거운 여행"에 몰표)
근데 비밀 지켜줄 테니 우리 반띵하자...(셋이 잔 거 들켰으면 상당액을 변상했어야 하는데...
와우~~대단한 기억력과 문장실력...혜경쌤!!!
파노라마처럼 기억되는 제게는 처음인 해외연수.....ㅋㅋ
그래서 더욱 즐겁고 잊지못할 추억이 될것같아요~~^^
태클을 걸 사람은 없겠지
필력, 기억력 대단하시네요!! 여행후기 잘 읽었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누락된 부분이 있어요 "비밀리 다방 운영한 두마담 이야기" ~~ㅎ
비밀이라면서 이렇게 만천하에 공개해 버리면 울 다방, 폐업 신고 들어감돠
비밀인데 우리 다 아는 비밀 ㅋㅋㅋㅋ
ㅋㅋㅋ
늦게 봤습니다...너무 너무 대단한 "몽골ㅡ북경 여행기" 입니다. 100점 만점에 " 110점!!"
어익후 영광이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