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충주목忠州牧
충주목忠州牧은 본래 고구려의 국원성國原城 (미을성未乙省또는 완장성莞長城이라고도 함)인데 신라가 탈취하여 진흥왕은 中原小京을 두었고 경덕왕은 中原京으로 고쳤다.
고려태조 23년 또 충주로 고쳤다. 성종 2년 처음으로 전국에 12 개의 목을 설치했을 때 그 중의 하나였다. 14년 12개 주에 절도사를 두면서 본 주는 창화군이라고 이름 지었으며 중원도라고 불렀다. 현종 3년에 안무사로 되였고, 9년에 8목중의 하나가 되었다. 고종 41년 (1254)에 국원경으로 승격되었다.
양진명소와 양진연소가 있으며 대원 또는 예성(고종 42년(1255)에 다인철소 사람이 몽고병을 격퇴함에 공이 있어 익안현으로 승격시키다.)이라고도 부르며 본 목에 속한 군이 1개, 현이 5개, 령 지사군이 1개있다.
양진명소 揚津溟所 - 揚子江의 물빛이 어두울 정도로 아주 깊은 곳
양진연소 揚津衍所 - 揚子江의 물이 범람하여 넘치기 쉬운 곳
공주에 웅진연소 熊津衍所(상류는 금강이다. 이것이 고려사 지리지의 기록이다. 웅진의 상류는 금강(금사강)이란 기록이다.)가 있다.
청주목 연기현에 웅진 熊津(신라때의 서쪽 개천인 웅천하인바 중사에 기록되어 있다.)이 있다.
천안부 가림현에 속한 서림군에 웅진명소 熊津溟所가 있다.
공주에 부여군이 있는데 백제의 소부리군(사비泗批라고도 한다.)으로 백제의 성왕이 웅천熊川으로 부터 이 곳으로 도읍을 옮기고 남부여라고 불렀다.
다산 정약용의 경세유표에 " 지금 금강을 옛 사기에 사비하라고 한 까닭으로 성 명칭을 사천성이라고 했다. "고 기록되어 있다.
사비, 웅진, 양진은 모두 양자강의 사천성, 호북성 지역을 지날때 이름이다.
특히 웅진의 상류는 금강(금사강)이라고 밝혀 놓았다.
그럼 고려사 지리지에 나타난 충청도의 지명들을 살펴보자.
1) 괴주槐州(회나무 槐)는 원래 고구려의 잉근내군인데 신라 경덕왕은 괴양군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지금 명칭으로 고쳤고 현종 9년에 본 충주목에 소속되었다. 후에 감무를 두었으며 시안 始安(성종이 정한 명칭이다.)이라고도 부른다.
이 곳에 廣安이라는 지명이 있다. 廣州와 始安을 합친 명칭이다.
2) 長延현은 본래 고구려의 上芼현인데 현종 9년에 지금 명칭으로 부르고 본 목에 속하게 하다. 온천이 있다.
3) 長豊현은 현종 9년에 지금 명칭으로 부르고 본 목에 속하게 하다.
이 곳에 長壽, 豊都라 도시가 있다. 장풍을 두 도시로 갈라 놓았다.
4) 음죽현은 본래 고구려의 노음죽현으로 신라 경덕왕이 현 명칭으로 고쳐 개산군 관할 현으로 하였다.
5) 음성현은 본래 고구려의 잉홀현인데 신라 경덕왕이 현 명칭으로 고쳐 흑양군 관할 현으로 하였다.
6) 청풍현은 본래 고구려의 사열이현인데 신라 경덕왕이 현 명칭으로 고쳐 내제군의 관할 현으로 하였다.
현종 9년 본 목에 속하게 하고 후에 감무를 두었으며 충숙왕 4년(1317)에 이 현의 중인 청공이 왕사로 됨에 따라 지군사로 승격되었다. 월악이 있고, 풍혈이 있다.
양자강 상류 티베트와 사천성의 경계에서 양자강은 금사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다가, 사천성과 중경시 즉 청주와 충주 경계를 흐를 떼에는 웅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이곳 중경, 중원경에 청풍, 월악이 있는데 현재 무륭武隆이라고 이름을 붙혀 놓았다.
천생삼교등 풍혈이 있다.
2. 청주목淸州牧
청주목淸州牧은 본래 백제의 上黨현인데 신라 신문왕 5년 (685)에 처음으로 서원소경을 설치하였고 경덕왕은 서원경으로 격상 시켰다. 태조 23년에 청주로 고치고 성종 2년 전국 12개 목중 하나가 되며 14년에는 전국 12개주에 절도사를 두면서 全節軍이라 부리고 中原道에 속하게 되었다.
현종 3년에 폐지하고 안무사가 되었고 9년에는 8목 중의 하나가 되었다.
본주에 속한 군이 2개, 현이 7개이며, 지사부가 1개, 지사군이 2개, 현령관이 2개가 있다.
1) 연산군燕山郡은 본래 백제의 일모산군인데 신라 경덕왕이 이름을 바꾸었다. 고려에 와서 청주에 소속, 고종 46년 위사공신 박희실의 내향이라며 문의현으로 승격되었고 충렬왕때는 가림현에 합쳤다가 회복되었다.
2) 목주木州는 원래 백제의 大木嶽郡(나무가 울창한 매우 큰 산맥을 의미한다. 사천성의 서부 대설산맥은 그 최고봉이 7556m나 되며 이랑산은 3437m, 아미산은 3099m 이며 목천이라는 도시가 있다.)인데
신라 경덕왕은 대록군大麓郡으로 고치다. 산기슭이 어마어마하게 큰 사슴뿔 같은 곳이다.
명종 2년 감무를 두었는데 신정新定 (성종이 정한 이름)이라고도 부른다.
이곳 사천성 대설산 주위에 新龍, 康定이란 지명이 있다. 신정이란 지명을 둘로 갈라 놓았다. 흔히 하는 역사지명의 왜곡 방법이다.
3) 진주鎭州는 본래 고구려의 今勿奴郡(萬弩郡, 또는 首知, 新知라고도 한다.인데 신라 경덕왕은 흑양군 黑壤군(黑은 黃으로도 쓴다.)으로 고쳤다. 고려초에 강주降州라고 칭하다가 다시 鎭州로 바꾸다.
성종 14년 자사를 두었다가 목종 8년 폐지하고 현종 9년 청주목에 속하게 하다. 고종 46년에 林 衍의 내향이라며 彰義縣으로 승격 현령을 두었고 원종 10년에 또 林 衍을 이유로 知義寧郡事로 승격하였으나 林 衍이 사형 당하자 도로 낮추어 진주라고 불렀다. 상산常山이라고도 부른다. 태령산胎靈山(신라때 만노군 태수 김서현의 처 만명이 유신을 낳아 그 태를 이 현 남쪽 15리 지점에 묻었더니 귀신이 되었다 하여 태령산이라고 불렀다 한다. 신라 때부터 사당을 설치하고 봄 가을에 왕이 향을 보내어 제사를 지냈으며 고려에서도 그 대로 하였다.) 이 있다.
4) 전의현은 원래 백제의 구지현인데 신라 경덕왕은 금지라고 고치어 대록군 관할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에 와서 명칭을 바꾸고 본목에 속하게 하다.
5) 청천현은 옛날의 살매현으로 고려에 와서 명칭을 바꾸고 본목에 속하게 하다.
이 곳 사천성에는 수많은 양자강의 지류가 있는데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지명이 있다. 합천, 청천, 북천, 문천, 목천, 남천, 이천, 영천, 달천등이 있다.
4) 도안현은 본래 고구려의 도서현인데 신라 경덕왕은 도서라고 고치어 흑양군 관할에 두었다.
5) 청당현은 일명 청연현인바 고려초에 고쳐서 본 목에 속하게 하고 후에 감무를 두어 도안을 겸임케 하다.
6) 연기현은 본래 백제의 두잉지현으로 경덕왕이 고쳐서 연산군 관할현으로 만들었다. 현종 9년에 본 목에 속하게 하고 명종 2년 감무를 두었으며 후에 목천 감무로 겸임케 하다. 이 현에 원수산(충렬왕때 한 희유, 김 흔등이 현 남쪽 정좌산 아래에서 합단 침략군을 크게 격파 하였는데 세간에 전하기를 부대가 주둔하고 있던곳이라 하여 원수산이라고 한다.)이 있고 웅진 (신라때 서독 웅천하로 중사에 기록되어 있다.)이 있다.
이 곳 청주를 흐를때 양자강을 웅천이라고 불렀다.
사천성의 양자강변의 지명이 연가현이다.
7) 회인현은 백제의 미곡현인데 경덕왕은 매곡으로 고쳐서 연산군 관할현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