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50분에 L.A.공항에 도착하여,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역사적인 큰 테러를 당한후 훨씬 많이 까다로와진 미국입국 심사를 무사히 잘 마치고 각자의 트렁크를 끌고 밖으로 나오니 반가운 얼굴들이 <창덕 23기 환영>이라는 소형 현수막을 들고 우리들을 환호했다. 어떤 젊은 남자가 우리들을 한군데로 모이라하며 단체사진을 찍어주기에 미주 친구들이 행사를 위해 고용해 놓은 사진사인줄 알았더니 그들이 다름아닌 중앙일보 기자였는지라. L.A.현지 신문 1면 좌측 상단에 우리친구들의 활짝웃는 아름다운 얼굴들이 신문의 질을 한껏 높여놓게 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은 근1년반 동안이나 이번 35주년 행사를 위해 너무나도 준비에 심혈을 기울여 온 김정진 친구가 시아버님 상을 당해 그토록 갈망해오던 35주년 크루즈행사를 함께할 수 없게 되었더라는 사실..... 참으로 인간 능력의 한계를 절감한 순간이다.
삼호관광에서 준비해 놓은 대형버스에 올라 San Pedro로 이동(11시20분), 아름다운 해변가의 우정의 종각이라는 곳에서 간단하게 김밥으로 요기를 하기로 했었지만 바람이 몹시 불어 단체사진만을 얼른 찍고 버스로 달려가 버스안에서 김밥을 먹었다.
롱비치 항구 선착장에 도착하여 승선 수속을 밟는데 선상에서는 외부에서 사용하는 어떠한 캐쉬나 신용카드도 직접 사용할 수 없으며, 교통카드처럼 캐쉬로 충전하거나 신용카드로 선상에서만 사용가능한 특별한 전용카드(Sea-Pass)를 발급받는다. 그 카드는 각자 자기 방의 키역할도 겸하기 때문에 선상에서 한푼도 쓰지 않을 계획인 사람도 카드를 소지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승선수속을 완료하고 두 명씩 방을 배정 받은 후 짐을 풀자마자 점심이 준비되어 있는 5층 식당으로 갔다. 다음날 35주년 행사에 입을 드레스는 트렁크 깊숙한 곳에 잘 감춰두고, 그 이외의 최대한 깔끔하고 단정한 정장차림들이다. 가장 편한 몸빼바지를 둘러입고 앉은뱅이 나무밥상에 앉아서 갓 씻어온 무공해 상추위에 기름 잘잘 흐르는 압력밥솟 흰쌀밥을 한숫가락 소복이 얹고, 빨간고추장 양념해 구은 두툼하고도 넓적한 돼지고기 한점을 흰밥위에 또 올려놓고,저민마늘, 잘게 썰은 풋고추를 그위에 얹어 푸짐하게 한 입 가득 꾸역꾸역 밀어넣고 1분간의 행복을 음미하며 오물오물 씹고있는 젊은 농촌 아낙의 모습이 괜시리 비교스럽게 상상되어진다. 저녁식사 테이블 옆의 타원형 창문밖에선 잔잔한 물결이 한없이 찰랑인다. 어지러운가? 아닌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