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9
축구를 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여럿이서 힘을 겨룬다는 것.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공이 오면 달려 나가야 하는 책임감과 긴박함, 내 시신경과 근육이 일치된 관점에서 물체에 대한 타격을 가하지 않는다면 공은 원하는 곳으로 가지 않는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축구를 하는 곳은 언젠가 보았던 어린 시절 미루나무가 줄지어 서있고 고르지 않게 펼쳐진 잔디밭이다. 건너편엔 학교건물이 나무에 가려져 고스란히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미루나무 아래엔 작은 시냇물이 흘렀다. 영혼이 없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위치해 있었고 공기의 흐름은 공을 차야 한다는 데 모아졌다. 하지만 공을 차겠다는 사람들이 어떤 규칙을 갖고 공을 차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대충 인원을 헤아렸는데 한 사람이 부족하다고 한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구두공장을 하던 때 함께 공장을 운영했던 사장이 생각나서 정릉 언덕에 위치한 그 사장의 집으로 갔다. 나보다 칠 팔세는 위였으나 즐거운 공차기에 집중했던 나는 나이에 대한 개념을 잊어버리고 그 집을 찾았다.
“사장님! 공 차러 가시죠.” 방안에서는 차고 싶은데 그럴 형편이 못 된다는 목소리가 힘없이 들려왔고 머리는 벗겨지고 다리를 저는 사람이 힘겹게 걸어 나왔다. 나를 맞이하는 얼굴엔 반가워하는 표정이 가득했으나 지금은 예전의 얼굴을 전혀 찾을 수 없는 깡마르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나는 더 이상 조를 엄두를 내질 못했고, 그냥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옛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국가부도사태에 다다른 상태에서 많은 자영업자들은 어려움이 많았다. 어음을 빌려주었는데 갚지를 않아서 어음 도래일에 내가 막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도통 전화를 받지 았았고 공장문은 닫혀있고 거주하는 집은 알 길이 없어서 동네 파출소에 찾아가 사정얘기를 하니 내 사정이 딱해 보였는지 집을 가르쳐 주었다.
아마 꿈속에서 간 집도 딱 한 번 가보았던 그 집이었던 듯싶었다. 집에서는 상상이 가는 혼란스러운 일도 없었고 부인이 따뜻하게 맞아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 힘들었던 시기를 견디지 못하고 나름의 힘을 다했음에도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사람이야 순하고 착했다. 열심히 살았을 터인데 사업을 어렵게 끌고 다니는 역량밖에 발휘될 수 없는 상황에, 지금에야 어찌 되었을는지 알 수가 없다. 다들 망해서 곁을 쳐다볼 여유가 없었을 터여서 닫힌 세상에 살고 있겠지. 꿈속에서 보고는 허망한 지난날이 스쳐지나갔고 과장된 내 꿈속의 사람은 왜 이리 야위었는지 조금만 눈을 늦게 떴다면 눈물 펑펑 쏟다 깨어났을 터였다.
나의 꿈
나만이 간직한 세상이다
누구와 교류되지 않는 경직된 아름다움이다.
어느 먼 하늘에 박혀 호흡할 수 있는 나만의 세상
혼자라도 두렵지 않은 세상이다
꿈이 잦아지면 손에 잡혀질까
잡혀도 가지지 못하는 것
잡히지 않아도 가질 수 있는 곳
온전히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눈감아야 보이는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