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과 아산 조방원, 청화대종사 - 중생제도의 공간
구례 국포고택의 안채, 사랑채, 문간채 2동은 곡성으로 이축되어 지금은 성륜사 안심당과 육화당으로 기능하고 있다. 소유자 김원배에 따르면 대규모 집으로 보존관리 등에 어려움이 있어 남매간에 합의를 통해 매매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이 집을 사들인 이는 아산 조방원화백(雅山 趙邦元, 1926~2014)이다. 남농 허건(1907~1987)선생의 화맥을 이어 받은 한국화가이다. 지금의 곡성 성륜사 자리에 전통예술의 교육과 창작 시설을 조성해 후학을 양성하고 교육센터를 마련한다는 계획으로 추진하여 전남 각지의 고택을 이축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1987년 이축된 현재의 안심당과 육화당에서는 성륜사에 기증되기 전에 아산선생이 한국화 후진 양성을 한 바도 있다.
뒤에 더 큰 뜻을 갖고 청화대종사가 주석한 성륜사에 토지와 함께 기증하게 된다. 비로소 승당이 되어 성륜사의 안심당과 육화당이 된 것이다. 청화대종사(淸華大宗師,1924~2003)는 전남 무안 출신으로 당시 곡성 성륜사의 조실 스님으로 계셨다.국포고택을 해체하여 이축할 때 목수로서 관여한 공동수8)에 따르면 아산 조방원과 함께 7차례에 걸쳐 구례를 답사 방문하여 고택의 규모와 상태, 내력을 살피고 탐문했다고 한다. 그만큼 정성을 들여 고택을 선정하고 이축했음을 뜻한다. 공동수목수는 이축전 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이축할 현재의 자리에 기초공사할 때까지 참여 했다고한다. 기초부분은 시멘트가 아니고 점토를 다져 기초를 했다고 한다.
구례에 있을 때 국포고택을 여러차례 살피면서 이축에 대한 자문을 했던 공동수 목수에 따르면, 현재의 안심당과 육화당 건물은 대체적으로 원형 그대로 이축되었다고 한다. 다만, 안심당의 기둥 일부가 사각에서 원형으로 바뀌고 육화당 뒤쪽의 작은 문짝2개가 교체되었다고 한다. 대문 2개소 가운데 1개소는 현재의 안심당 출입문으로, 한곳은 바로 이웃한 벽련당의 출입문으로 이축되었다는 점을 증언하였다.
9)실제로 구례 고택의 종도리 장혀에 쓴 상량문 부재가 그대로 옮겨와서 결구되어 있다. 당초의 건물이 변형이 되었다면, 가구 구조상 종도리 등의 부재는 그대로 쓸 수 없는게 한옥건축물이다. 1984년의 구례 현지 사진과 현재의 안심당, 육화당을 비교해 보아도 원형 그대로임을 알 수 있다.(사진 참조)
이건전 육화당 누마루(국포고택 사랑채)
이전후 육화당 누마루(성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