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만담[1]
「첫
번 크리스마스」
개역개정, (마
2:1-23)[2]
여러분, 크리스마스에 케이크 많이 드세요? 아버지들이 퇴근하면서 돌아가는
길에 케이크 가게에 들러 케이크를 고르는 것이 크리스마스의 풍경이 아닐까요?
빵집 점원: “어서 오세요! 크리스마스 케이크 골라보세요?”
아버지
: (흐 음, 잔뜩 만들어 놨네. 어라? 가격이 장난이 아닌 걸! 어떡하지?)
“아, 저기, 맨 밑 구석에 저거, 소가 타고 있는 거.”
빵집 점원: “손님,
이거 말씀이세요?”
아버지 : “아,
그거.”
빵집 점원: “손님,
이건 소가 아니에요! 루돌프예요. 루돌프 사슴
모르세요?”
아버지 : “무슨 소리. 모르긴 왜
몰라?”
(뭐야, 왜 사슴이 케이크 위에 올라가 있는 거지?)
빵집 점원: “손님,
양초는 몇 개 드릴까요?”
아버지 : “양초?
양초를 왜?”
(가만, 크리스마스라면 예수님 생일이잖아? 그러면, 예수님은 올해 몇 살?)
“아! 올해가
이천십칠년이니까 이천십칠세?”
빵집 점원: “손님,
그건 안돼요! 그렇게 조그만 케이크에 양초 이천개를 꽂으면 고슴도치가 되잖아요?”
예수님께서는, 헤롯 왕 시대에 유대의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첫 번 크리스마스는
매우 혹독했습니다. 춥기도 하였고, 로마황제의 명령으로 사람들이
호적등록을 위해서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임신한 마리아도 여관을 찾지 못해서, 남편인 요셉은 가축의 우리에 마리아를 위한 산실을 준비했습니다. 그
때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동방박사들: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왕자아기는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 분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습니다.”
이것을
듣고 헤롯 왕은 불안을 느꼈습니다. 예루살렘의 백성들도 모두 놀라워했습니다. 헤롯 왕은 백성의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을 모두 모으고 물었습니다.
헤롯 왕: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 “유대의 베들레헴입니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중에 결코 작지 않도다. 너에게서 지도자가 나타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것이다.’”
그래서
헤롯은 동방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났던 시기를 확인하고 나서,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냈습니다.
헤롯 왕: “가서, 그 아기를 만나거든 나에게도 알려주시오. 나도 가서 아기에게 경배하고
싶으니.”
그들이
예루살렘의 궁전에서 나갈 때, 동방에서 본 그 별이 앞서 진행하며, 마침내
어린 아기가 있는 곳 위에 멈추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그 별을 보고 기쁨에 넘쳤습니다. 안에 들어가 보니, 어린 아기는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들은 어린 아기께 경배하고 보물상자를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바쳤습니다. 그날 밤 꿈에 천사가 나타나 말했습니다.
천사: “헤롯 왕에게 돌아가지 마라.”
그들은
다른 길을 지나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돌아간 후에, 천사가 꿈에서 요셉에게 나타나 말했습니다.
천사: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집트로 도망치시오. 내가 다시 전할 때까지 거기에 머물고 있으시오. 헤롯이 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고 있으니.”
요셉은
일어나 밤중에 어린 아기와 그 어머니를 동반하고 이집트로 떠나, 헤롯 왕이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습니다.
헤롯
왕은 동방박사들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고 많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병사들을 보내 동방박사들에게 확인해
두었던 때를 근거해서, 베들레헴과 그 주변 일대에 있던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한 명 남김없이 죽이게 했습니다. 베들레헴의 첫 번 크리스마스는
그야말로 잔인한 크리스마스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 “큰일났다! 큰일났다! 병사들이 습격해온다! 아기들을
죽인대!”
엄마: “빨리 도망쳐야 돼! 아, 안돼요! 살려주세요! 하늘아! 우리 하늘이는 예수가 아니에요! 아, 안 돼! 하늘아! 왜 우리 하늘이가 죽어야 되는데? 예수가 죽어야지 어째서 하늘이가
대신 죽어야 되는데?”
엄마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엄마는 울었습니다. 피를 흘리며
죽은 하늘이의 작은 몸을 가슴에 꼭 껴안고 울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어도 맛을 몰랐습니다. 즐거운
일이 있어도 의미를 몰랐습니다. 엄마는 하늘이가 죽게 된 것은 예수 탓이라고 원망했습니다. 어째서 우리 하늘이가 예수 때문에 죽어야 했는지 엄마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흘렀건만 엄마는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이윽고 엄마도 죽었습니다.
엄마는
깊은 잠으로부터 깨어났습니다. 어두운 하늘로부터 환하게 빛나는 밝은 언덕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기에는 커다란 옥좌가 있고 그 주위에는 많은 아기들이 등에 날개를 펄럭이면서 날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엄마: “아, 천사다! 아기천사다! 어!”
엄마의
눈에는 아기천사의 무리로부터 하늘이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엄마: “아, 하늘이다! 하늘아! 하늘아! 하늘아!”
엄마는
꿈에도 잊지 못하던 아기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불렀습니다. 하늘이도 엄마의 소리를 듣고 이곳을 뒤돌아보았습니다.
하늘이: “아, 엄마다! 엄마!”
하늘이는
저 편에서부터 서둘러 날아왔습니다.
엄마: “하늘아! 하늘아! 살아 있었구나! 이렇게 건강하게!
하늘아!”
하늘이: “엄마! 왜
그렇게 울었어! 엄마, 울지 마! 엄마, 울지 마! 아무리
말해도 엄마는 듣지 않았어!”
엄마: “미안해, 미안해. 몰랐어! 네가 이렇게 살아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하늘이: “엄마, 우리
베들레헴의 친구들은 예수님을 돕기 위해 조금 일찍 온 것뿐이야! 그 날부터 우리는 예수님과 늘 함께
있었어!”
엄마: “아, 그랬구나! 나는 네가 예수님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고 원망해 왔었어!”
하늘이: “엄마, 이제
괜찮아! 예수님께서 엄마를 기다리고 계셔! 자, 엄마, 어서 가! 예수님이
기다리고 계신 저 낙원으로!”
예수님께서는
왜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죽도록 내버려두셨을까요? 예수님의 이름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신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오신 분인데 왜 죄 없는 베들레헴의 아기들이 대신 죽어야 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의 희생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사랑하는 아기를 잃은 슬픔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어떤 슬픔과 고난이 있더라도 예수님을 의지하고 기다리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만 있으면 우리는 어떤 슬픔이나 고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난과 슬픔과 고난과 질병으로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죽음이나
가족과의 이별이 슬프고 두렵습니까? 예수님을 굳게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의 믿음에 신실하게 보답해주실 것입니다.
타임·오브·지저스[3]
울고 싶을 만큼 괴로울 때에라도
주 예수께서는 언제나 곁에 있어 기도를 들으신다.
자신을 잃고 모든 것이 어둠이어도
빛은 예수님 계신 곳에서 끊임없이 비추인다.
아무것도 변한 것 없이 시간은 흘러가지만
언젠가 예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인도해주시리.
그 때를 기다리고 소망하면 기도를 들어주신다.
그러니 믿음으로 나아가자.
타임·오브·지저스
예수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어떤 슬픔이나 고난도 이겨 낼 수 있게 하소서.
[1] 일인다역드라마식 전도설교의 작성양식에 따라 문화전도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네 편의 바이블 만담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기독교 복음에 관한 예비지식이 전혀 없는
비신자를 대상으로, 그들에게 친숙한 만담의 형식을 빌려 적절한 유머와 성경본문속의 다양한 극적 이야기를
소재로 채택하여 바이블 만담의 작성을 위해 참고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만담은 언제 어디서나 환영받는
전통방식이면서도 그 형식과 구성에 있어서 설교와 매우 유사하며, 그 형식을 빌린 바이블 만담은 성경본문속의
다양한 극적 이야기를 바이블 만담의 원고로 채용하여, 비신자에게 성경본문의 메시지를 친근하게 전달할
수 있는 유용한 방식이다. 여기에 제시한 바이블 만담은 비신자를 위한 문화전도의 현장에서 전도설교를
실행하기 위한 기본적 형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전도현장의 상황에 따라 필요한 유머와 적절한 표현을 부가하여
효과적인 바이블 만담으로 발전시킬 것을 염두에 두고 작성하였다.
[2] 헤롯에 의해 살해당한 베들레헴의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과 그들의 부모에 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는다. 또한, 어느 주석가도 억울하게 살해당한 베들레헴의 아기들과 그 부모에 대해 주목하지 않고 있으며, 이 사건에 관한 성경적 해답을 주지 않는다. 단지 (렘 31:15)을 인용하여 베들레헴의 학살 사건을 통해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Ihsou'")라는 이름에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약속이 있고, ‘임마누엘’(laeWnM;[)이라는 이름에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약속이 담겨있다. 이러한 구원과 위로의 약속에
대한 성취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 대신에 베들레헴의 어린 아기들이 무참히 살해된 것에 관해, 설교자는
본문에서 인용한 라헬의 애곡에 이어지는 자녀의 귀환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본문의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를 발견하게 된다. 본 설교에서는 이러한 귀환의 약속을 재회의 약속으로 구성하여 살해당한 아기와 엄마의 소망스러운 재회로 구성하였다. 본 설교에서 설교자는 외면적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했으나 그 사건의 내면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를 발견하여,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 절망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의 부모들에게 참사랑이신 하나님의 약속과 위로의
소망을 전하고자 한다.
[3] 후쿠오카Joy Hope
Chapel의 마쓰우라 요시노부목사가 요한복음3장16절을 근거로 작사
작곡하고, 직접 불러 취입한 미 발매 CD『J-Street』에서 녹취하고 번역하여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