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3:3, 성령으로 시작했습니다. 2024.7.14.
사람들은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변질되기 쉽습니다. 거기에는 결국 인간의 사욕만이 남게 됩니다. 정치를 하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 그리고 각부 장차관들이나 공무원들, 그들이 처음에 정치를 하거나 공무를 집행할 때에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헌신하겠다는 오직 유일한 목적이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이나 또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 이런 본래의 목적을 버리기 시작하고, 그런 일을 아무런 가책도 없이 저지르게 됩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뇌물을 받거나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서 올바른 판단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다들 그렇게 한다느니 하면서 핑계를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 얼마나 서글픈 일입니까?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이 변질 된 복음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복음이 아닌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받은 바 은혜를 버리고, 율법만 강조하게 됩니다. 은혜의 예수를 버리고 자기 행위나 자기 의를 강조하는 율법의 행위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교회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것을 갈라디아서는 우리에게 뼈저리게 되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첫째. 성령으로 시작해서, 성령으로 마쳐야 합니다.
은혜의 복음을 변질시키는 일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십자가 예수를 눈 앞에 밝히 보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복음을 변질시키려는, 즉 은혜의 복음이 아니라 행위의 구원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갈 3:1–3,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여러분은 성령으로 시작하고 성령으로 성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자기 육신으로 살아가는 지 모릅니다. ‘마치다’(에피텔레오)는 끝내다, 이루다, 성취하다. ‘완전히, 또는 철저하게 어떤 것을 시행하다’는 뜻입니다.
이런 일은 당대 최고의 사도였던 베드로에게도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런 베드로를 엄하게 꾸짖고 책망까지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은혜의 복음을 변질시키려는 이런 현상들은 목회자나 중직자들에게서도 너무나도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목회자도 복음을 변질시키려 할 때는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습니다.
갈 2:11–13,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이 말을 한 후에,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이 은혜이며, 믿는 자는 누구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 은혜로 사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갈 2:20–21,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여러분은 성령으로 시작해서 성령으로 철저하게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은혜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이 은혜!!
둘째. 다른 복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변질시키고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지 모릅니다. 지금은 엉망으로 살아도 되고, 나중에 죽을 때 잘 믿으면 된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지금은 잠깐 하나님께 죄를 짓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지 원하는 바 목적을 이루는 것이 은혜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는 언제든지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십자가에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는 이 은혜와 복음에서 속히 떠나 버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이 ‘속히 떠났다. 내가 이것을 이상하게 여긴다’고 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 태연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아무도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상히 여긴다’(따우마조)는 ‘깜짝 놀라다, 이상히 여기다’는 뜻입니다. 사도는 교회 안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갈 1:6–7,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십자가의 은혜만이 구원을 가져다 줍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복음이 있다고 교회 안에 파급되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복음은 할례를 행하는 것과 같은 율법의 행위입니다. 그런데 그 율법의 행위가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그 중에는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이 있습니다.
갈 5:19–21,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이렇게 다른 복음을 따르거나, 또는 유혹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은혜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갈 1:8–9,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셋째, 믿음이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게 합니다.
오직 십자가의 은혜, 오직 믿음만이 구원을 가져다 줍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됩니다. 다른 복음, 곧 행위나 율법이 아니라 오직 은혜의 복음만이 복을 받게 합니다.
갈 3:8–9, 8 또 하나님이 이방(또는 족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그렇다면 은혜의 복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으로 마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 외의 모든 것은 다른 복음입니다. 은혜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성령의 열매로 당연히 귀결됩니다.
갈 5:22–26,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교회는 성령으로 시작해서 성령으로 마쳐야 합니다. 신자는 누구든지 성령의 열매를 맺고, 성령으로 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은혜의 복음의 능력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정욕과 탐심의 다른 복음을 따르게 되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은혜로, 성령으로 철저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