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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경게(開經偈)---측천무후(則天武后)의 개경게(開經揭)가 유명하다.
당(唐)나라시대 우전국(于闐國-지금의 호탄) 출신 실차난타(實叉難陀, 喜學, 652~710)가 695년~699년에
<80 화엄경>을 번역해 당시 당의 여제 측천무후(則天武后)에게 바쳤더니,
이를 본 무후가 <화엄경>을 잃고 너무 감동해 즉석에서 게(偈)를 읊었다.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 - 지고무상 더 없이 심오하고 미묘한 법이여,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 백천만겁이 지나도록 만나기가 어려운데,
아금견문득수지(我今見聞得受持) - 내 오늘 보고 들어 우러러 높이 모시나니,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義) - 원컨대 여래님의 진실하고 깊은 뜻을 알고 싶나이다.
측천무후의 개경게는 대체로 이런 뜻으로 번역할 수 있으나 그 참뜻을 헤아리기는 너무나도 심오하다.
측천무후가 이 개경게를 쓴 지도 이미 천 여 년이 지났다. 이 천 여 년 동안 당ㆍ송시대가 지나가고
원ㆍ명ㆍ청이 지나면서 그처럼 많이 나타났던 고승 대덕들도 측천무후의 이 개경게를 보고
이 이상 더 잘 쓸 수 없다면서 누구도 이를 초월할 글을 쓸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측천무후가 <화엄경>을 위해 쓴 이 개경게가 오늘날에는 <화엄경>뿐만 아니라 <천수경>을 비롯한
모든 불교경전의 개경게로 돼있다. 경전을 송독할 때 처음으로 읊는 게가 바로 측천무후가 지은 개경게이다.
경전에서는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기 쉽지 않지만 불법을 듣기는 더욱 쉽지 않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측천무후가 실차난타가 번역한 <화엄경>을 읽고, 듣기도 쉽지 않은 데 그 부처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화엄경>을 직접 손으로 받아 볼 수 있었으니, 그 감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법화경> ‘화성유품’에 아래와 같은 글이 있다.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개공성불도(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 我等與衆生 皆共成佛道) -
원컨대 이와 같은 공덕이 일체에 널리 미쳐서 우리가 중생과 더불어 모두 부처의 도를 이루기를…” 그리고
<법화경> ‘제바달다품’에 축생 용녀(龍女)의 성불, 곧 사갈라 용왕의 딸 용녀가 성불했다는 사례가 있다.
비록 용녀라고 하지만, 다겁생래로 부터 성불 수행하던 중, 인연 따라 축생의 몸으로 있다가 성불 인연이
무르익어 남방으로 가서 남자의 몸으로 바꾸어 성불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축생인 용녀가 성불(成佛)하는
사례를 말씀 하시면서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곧 일체중생 즉신성불(卽身成佛)을 전제로 한 구세경(救世經)
<법화경>을 설하셨다. 따라서 동업중생(同業衆生)의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가 모든 불자들 삶의 목표가 된
이유다. 혼자 성불은 진정한 성불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법화경>의 권능은 일체 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한다는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사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개구즉착(開口卽錯)---입을 여는 순간 어긋나버린다(틀린다), 말한 즉 곧 틀리다, 입만 벌리면 잘못 된다,
입을 벙긋하는 순간 어긋난다, 대체로 이런 뜻으로서 진리의 세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따라서 입을 여는 순간 진리의 참모습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빗나가 버린다는 말이다.
진리 ‘그 건’은 언어 문자가 아니니까. 어떤 생각 또는 깨달음을 얻었다 하더라도 입 밖으로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언어의 한계, 표현 능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말로써 선(禪)의 세계를 설명하려고 하면
십만 팔천 리나 멀어진다는 뜻인데, 동념즉괴(動念卽乖)라, 생각만 움직여도 곧 어긋난다는 말과 비슷하다.
이러함은 언어와 문자로는 어떤 형상, 어떤 경험도 온전히 전하기는 힘듦을 말하고 있다.
예컨대, 지금 손톱 밑에 가시가 들어가 몹시 쓰리다고 가정할 경우, 그 쓰라림을 아무리 교묘하게 무량한 언설로 잘 묘사한다고 하더라도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말을 하는 사람의 경험을 완전히 느끼고 알 수는 없다.
이와 같이 구체적인 현상도 말로써 온전히 전하기 힘든데, 하물며 진리는 언어라는 수단으로 닿지 못하는 곳,
문자를 세워 전할 수 없는 곳에 있으니, 어떻게 언설로써 완벽하게 전할 수 있으랴. 언어는 한편으로는
이해를 돕는 좋은 가교(架橋) 역할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해를 낳는 나쁜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오해의 근원으로 작용할 것이 예상되는 주제 및 상황에 임해서는 아예
거룩한 침묵[無記]을 보이셨다.
그리고 “생각이 일어나기 전의 마음 바탕은 마음이라고 할 이름조차 세울 수 없는 진여자성(眞如自性)인
무상(無相)의 체(體)이다. 교리적인 용어로 말하면,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이므로 적정열반(寂靜涅槃),
본래심(本來心), 당처(當處) 혹은 여래(如來)라고 한다.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에 집착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므로 이를 망념이라고 하며, 이에 수반해 좋은 것은 취하고 싫은 것은 멀리하고 싶은 분별심과
취사심이 일어나므로 이를 취착(取着)이라고 한다. 즉, 본성의 체성은 한 순간도 작용(움직임)하지 않는 적이
없으므로 근본적으로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을 수 없게 돼 있다.
다만, 모든 생각 이라는 것에 체성(본성)이 공한 이치를 알고 쓸 따름이다.
이와 같이 개구즉착이란 입을 열자마자 바로 입을 열기 전의 공인 체성을 그르치는 것이고, 동념즉괴(動念卽乖) 또한 한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이미 본성의 체인 무자성(無自性)인 공성(空性)과 어그러진다는 의미이니, 이는
본성의 체성이 본래 한 티끌도 세울 수 없는 청정(淸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동념즉괴(動念卽乖) 참조.
* 개권현실(開權顯實)---천태교학에 나오는 말로서, 개권현실(開權顯實)에서 개(開)는 개제(開除)의 뜻이니
집착하는 마음을 열어서 제거하는 것을 가리키며, 현(顯)은 현시(顯示)의 뜻이니 진실한 뜻을 드러내 보임을
말한다. 이는 방편을 치우고 진실을 드러낸다는 말로서, 방편으로서의 가르침을 통해, 진실한 교리를 나타내
보인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개권현실은 여러 가지 경교(經敎)나 사상을 버리지 않고, 그러한 것들을
통합하는 곳에 진실하고 최고인 경교(經敎)나 사상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쉽게 이해하고 행할 수 있는 쉬운 법부터 가르치시고 난 다음 어느 정도 중생의 근기가
무르익은 다음에 진실한 진리를 밝히시는 가르침을 폈다. 이것을 전권후실(前權後實) 또는 개권현실(開權顯實)
이라고 한다. 먼저 권교(權敎) 곧 방편(方便)을 설하시고, 나중에 실교(實敎) 곧 진실을 설하시는 것이며,
방편을 열어서 진실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법화경> 이전의 가르침은 아직 진실한 가르침이 나타나 있지 않은 방편의 가르침 이었으나[未開顯],
<법화경>에 이르러 비로소 집착돼 있는 마음을 열므로 진실이 나타난다고 한다고 해서 이를 법화개현(法華開顯)이라 했으며, 이것이 곧 개권현실(開權顯實)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상은
천태 대사 지의(智顗, 538~597)에 의해 정립한 이론이다.---→전권후실(前權後實), 개현법(開顯法) 참조.
* 개근현원(開近顯遠)---<법화경> 여래수량품을 해석함에 나오는 말이다.---→개현법(開顯法) 참조.
* 개념적 사고(槪念的 思考, conceptual thinking)---개념적 사고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보편적 속성의
연관관계를 일반화, 추상화, 종합적 분석, 본질적 이해 등을 하는 고등 전신기능의 요체이다.
개념적 사고란 문제 해결에 관련되는 구체적인 사물이나 사상(事象)을 개념 즉 문자, 기호, 부호 등으로
바꾸어 놓고 - 치환(置換)해 놓고, 그 개념을 이용해 문제를 일정한 규칙이나 원리에 따라 분석하거나
해결을 유도하는 사고 양식이다. 따라서 개념적 사고는 추상적인 것이다.
우리는 부여된 대상 또는 직면하는 문제 사항을 그들의 특징에 의해서 상기되는 일반적 추상적 개념의 도움을
빌어서 분석한다. 바꾸어 말하면 구체적으로 부여된 것을 개념으로 바꾸어 이 치환(置換)된 개념으로써 분석한다.
어린이 들의 경우에는 이 치환을 잘 못한다. 삐아제(J. Piaget)는 어린이들이 치환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자기중심적 사고를 한다고 했다. 자기중심적 사고가 어린이와 같은 사고특징을 가지고 있음에 대해
개념적 사고는 성인적 사고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학생들은 익숙한 단어는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러나 익숙하다고 해서 그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예컨대 ‘사회’ 혹은 '정치', '경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제대로 답하는 학생이 적다. 어휘력이 풍부하다는 것은 어휘에 대한 사전적, 지시적 의미를 많이 알고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념이 가진 외연과 내포가 정확히 어디까지 이며, 그 개념의 구체적 사례, 하위 개념은 어떤 것이고,
상위개념은 어떤 것인지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하고, 어떤 사례가 그 개념에 포함되는지 혹은 되지 않는지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개념적 사고를 잘 하는 사람이다.
예컨대, 논술문제에 창의적 사고력 문제로 '변화'라는 개념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지를 묻는 경우,
평상시 개념적 사고에 대한 연습이 충분히 돼있는 학생들은 굳이 논술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문제를 스스로
적절하게 사고할 수 있으나, 개념을 지식으로 생각하고 암기만 하고 자기 것으로 충분하게 소화하지 못한
학생들은 당위적이고 상투적인 글을 쓰게 된다.
개념적 사고란 둘 또는 그 이상의 현상이 공유하고 있는 특성을 추상화하고 명명함 으로써
개인이 자기 나름의 정의를 내리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대체로 세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논리가 강하고 사실 그대로 해석하는 성향이 강한 구체적 사고의 사람이다.
또 한 사람은 직감이 강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개념적 사고의 사람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그 가운데에 속하는 사람이라 하겠다.
그런데 구체적 사고의 사람과 개념적 사고의 사람 간에는 대화가 거의 불가능하다.
하나의 언어를 쓰지만, 각기 이 두 사람은 다르게 그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표현도 다르다.
그러다 보니 아~ 하면 어~ 하고 서로 통하는 법이 없다. 이 둘 사이는 영원한 평행선을 긋고 만다.
자, 예를 들어보자. 아침에 이 두 사람이 직장에서 만나는 상황이다.
어제 잘 지냈어요? 하고 개념적 사고의 사람이 구체적 사고의 사람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하자.
그럼 구체적 사고의 사람은 대개는 자신이 있었던 사실대로 짤막하게 예, 혹은 아니 별로요 등으로 답한다.
이로써 이 둘 사이에 대화는 끊기고 두 사이엔 커다란 갭이 생기고 만다.
왜냐면 이 개념적 사고의 사람이 인사말을 건넸을 때에는 뭔가 다정한 인사말을 듣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는 먼 극히 사무적인 재미없는 답변이 나오고 만 것이다.
거꾸로도 역시 예상해볼 수 있다.
구체적 사고의 사람이 아침 인사를 건넨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럼 이 개념적 사고의 사람은
아, 예~ 오늘 아침에는 웬 지 기분이 좋아요. 날라 갈 것만 같아요, 왜냐면 제가 아침에 버스를 타고 오는데,
아, 글쎄 ~ 이렇게 수다 섞인 답변이 터져 나온다. 인사를 건넨 측인 구체적 사고의 사람은 잔뜩 머리가
복잡 해지고 만다. 자신이 기대했던 건 짤막하고 간단한 인사 치레의 답변 이었는데, 물론 답하고 있는
개념적 사고의 사람도 그런 반응에 기분이 썩 유쾌해 지지만은 않는다.
개념적 사고의 사람은 사고가 유연하고 유머 감각이 많은데 비해 구체적 사고의 사람은
딱딱하고 사무적인 형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간미가 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
문학이나 철학, 인문학은 대개 개념적 사고 형의 사람들이 하는 장르이다.
* 개념화(槪念化)---사람이 하나의 사물을 나타내는 여러 관념 속에서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요소를
찾아내거나 만들어서 그 무엇이라고 이름붙이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 있어서는 모든 현상, 나타난 모든 것들은 연기적으로 일시적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다가 이름을 붙인다.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소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소통이 가능하다. 예컨대, “컵 가져와” 이렇게 했는데, 누가 볼펜을 가져오면
아주 불편하다. “이게 컵이냐? 너는 컵도 모르니!” 이렇게 소통이 안 되니까, 여러 가지 불편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계는 전부 이름을 붙여서 - 개념화해 가지고 소통을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개념이 ― 가명(假名)인데, 그것을 실체인 것처럼 착각을 하게 된다.
또 예컨대,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라는 이 노래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개념화했다. 사랑을 이와 같이 정의(定義)해버리면 사랑을 즐거움의 씨앗이나
환희의 씨앗이라고 할 수 없다. 정의라는 것은 이처럼 울타리를 치는 것이다.
그리아혀 다른 단어와 구분해서 도드라지게 드러내는 것이 정의(定義)이자 개념화(槪念化)이다.
*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법장(法藏)은 진리의 창고로서, 즉 경전을 말하는데, 기도를 시작하는 일은 이 법장을 여는 일이고, 참선에 들어가는 것도 법장을 여는 일이다. ‘옴 아라남 아라다’는 <천수경>의 개법장진언이다.
* 개보판대장경(開寶版大藏經)---중국 송(宋) 대에 최초로 조성된 <북송관판대장경(北宋官版大藏經)>을
일컫는다. 약칭 <개보장(開寶藏)>이라 한다. 송 태조 연간인 개보(開寶) 4년(971)에 착수해 다음 대인
송 태종 8년(983)에 완성했으므로 <개보판대장경>이라 통칭되며, 칙명으로 조성됐다고 해서
<칙판대장경(勅版大藏經)> 혹은 <관판대장경(官版大藏經)>이라고도 한다.
오류가 많았다는데 현재 전하지 않는다. 고려에서 조성된 <초조대장경>이 바로 이 개보판대장경을 바탕으로
했었다고 한다.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은 당나라 초기 AD 730년에 지승(智昇)이 쓴 불경목록집인데,
당시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인정됐다. 송(宋) 대에 조성된 개보판대장경은 바로
<개원석교록>에 수록된 5,048권의 불전을 판각한 것이다.
* 개삼현일(開三顯一)---<법화경>에 나오는 말로서, 회삼귀일(會三歸一)과 같은 말인데, 처음 삼승(三乘)을
설해 중생을 인도한 연후에 오로지 대승으로써 제도해 해탈하게 함을 말한다.
여기서 삼(三)은 보살(菩薩)ㆍ성문(聲聞)ㆍ연각(緣覺)의 삼승을 나타내는 말이고,
일(一)은 일승(一乘) 즉 불승(佛乘)을 나타내는 말로서, 보살ㆍ성문ㆍ연각 등 삼승의 방편에 의해 진실인 일승
즉 불승으로 들어가도록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삼승은 방편으로서 진실인 일승에 들어가게 하는 징검다리와
같은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천태대사 지의(智顗, 538~597)는 <법화경>을 크게 본문(本門)과 적문(迹門)으로 구분했다.
즉, 법화경 8권 28품 중 서품 제1에서 안락행품 제14까지의 전반을 적문, 종지용출품 제15에서
보현보살권발품 제28품까지의 후반을 본문이라고 구분했다.
적문이란 본체(本體)로부터 그림자로 비춘 부처, 즉 적불(迹佛)이 설한 문(門,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이다.
― 적(迹)이란 족적(足跡), 그림자라는 뜻으로 연못에 비친 달의 그림자와 같은 것을 말한다.
― 전반의 14품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인도에 태어나 29세에 출가해, 35세 때에 처음으로 정각을 이룬
시성정각(始成正覺)의 부처라고 설하고 있다.
이에 비해 여래수량품 제16에 있어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나는 실로 성불한 이래 무량무변’이라고 선언하고,
구원 오백진점겁(五百塵點劫)이라고 하는 아득히 먼 옛날에 성도했다고 하는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입장을 밝혔다.
이것에 의해 이전 경부터 <법화경> 적문까지 견지해 온 시성정각이라는 입장은 구원성도의 본체의 부처가
그림자를 비춘 적불(迹佛)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후반 14품을 본문, 전반 14품을 적문이라고 하며,
적문의 중심의 되는 것이 방편품이고, 본문의 중심이 수량품이다.
그리고 삼승과 일승의 관계를 개삼현일(開三顯一)이라 표현했다. 삼승과 일승은 불법(佛法)을 따르는 모든 제자는 다 같은 부처님의 제자라는 대승불교의 이상을 말해준다. 또한 다양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부처님과 같은 성불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이 가르침에서 대승불교가 기존의 불교계에
인정받는 단계를 넘어 기존의 불교를 수용, 흡수해 새롭게 재해석하는 원대한 이념임을 엿볼 수 있다.
한편 <법화경>에서는, <법화경> 이전의 경들에서는 영원히 성불할 수 없다고 했던 이승(二乘, 성문계·연각계)이 차례로 미래 성불의 기별을 받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구원(久遠)이라고 하는 아득한 옛날부터 부처였다는 것
등이 밝혀져 있다. ---→개권현실(開權顯實) 참조.
* 개시오입(開示悟入)---<법화경> 방편품에 나오는 말이다. 제불세존(諸佛世尊)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세상에 출현했나니, 어떤 것을 일러 일대사인연으로 세상에 출현했다고 하는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한 일대사 인연의 근본목적 네 가지[사불지견(四佛知見)]를 제자인 사리불(舍利弗)에게 설명한 것이다. 즉, ‘개시오입’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신 네 가지 뜻(목적)을 말하는 것으로, 중생이 진리를 열고, 보고, 깨닫고, 그 길에 들게 하는 일이다. 석가모니불이 중생들에게 불지견(佛知見)을
개(開)ㆍ시(示)ㆍ오(悟)ㆍ입(入)하기 위한 근본원(根本願)을 가지고 태자의 몸으로 화현한 것이란 말이다.
① 개(開)는 개제(開除) - (장애물 따위를) 열어 헤친다는 말로서 중생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열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여래의 진리를 열게 한다는 말이다.
② 시(示)는 현시(顯示) - 깨달은 바를 보여주는 것, 즉 모든 번뇌가 사라진 진리세계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즉, 진리를 보게 한다는 말이다.
③ 오(悟)는 각오(覺悟) - 깨닫는다는 말로서 우주의 본체 그대로가 현상이며, 현상 그대로가 본체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즉, 중생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도록 한다는 말이다.
④ 입(入)은 증입(證入) - 중생들로 하여금 진리의 본체에 들어가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중생들을 열반의 길로 인도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부처님 께서는 중생들 에게 불법을 열어 보이고, 법을 통해 진리를 보게 하고,
중생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고, 그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이것을 ‘개시오입(開示悟入)’이라고 한다. ---→사불지견(四佛知見) 참조.
* 개아(個我, 뿌드갈라/pudgala=인상/人相=아체/我體)---개아란 <금강경>에서서 말하는 4상(四相) 중 하나인 인상(人相)을 일컫는 말로서, 보특가라(補特伽羅)라 한역하기도 한다. 붓다는 바라문들이 윤회의 주체라
주장하는 아트만(atman-아체/我體)을 현실적으로 경험하기가 불가능한 가공망상의 것이라고 부정했다.
그러나 부파불교 시대에 와서는 윤회에 중심적 주체가 없다는 점을 혼란스럽게 여겼다.
그리하여 무아론(無我論)은 차츰 세력을 잃고, 불명 후 300년 경 부파불교 독자부(犢子部)에서는 생사윤회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윤회하는 개개 존재의 인격주체로 뿌드갈라(pudgala)라는 새로운 개념을 설정했다.
즉, 변하지 않는 자아(自我=아체/我體)가 있다는 것이다.
마치 바라문들의 주장인 아트만(atman)과 비슷한 개념이다. 이것을 개아(個我)라 한역했다.
이와 같이 뿌드갈라(푸드갈라)란 중생에게 무너지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어떤 실체(아체)가 ‘개체적으로
존재한다는 견해’로서, 나고 죽음을 영원히 반복 하더라도 이 실체는 영원히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불교가 흥기하던 초창기에는 무아(無我)사상이 강력하게 주장됐지만, 시대가 바뀜에 따라 교리가 변용되면서
불교는 차츰 아트만 사상에 동화돼갔다. 모든 법은 인연에 의해 조직된 허구임을 모르고 몸과 마음속에 따로
어떤 본질이 숨어 있다고 여기는 그릇 된 착각이 개아, 즉 인상(人相)이다. 이것은 초기불교의 무아사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다. 따라서 대승불교에서는 이 뿌드갈라[개아(個我)]를 부정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이 이루어지고, 그 대표적인 것이 공사상(空思想)이다. ---→독자부(犢子部), 4상(四相) 참조.
* 개운 조사(開雲祖師)---개운당 조사(開雲堂祖師)라고도 한다. 1790년(정조 10년)에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김씨(金氏)이고, 일찍 부모를 잃은 고아로 자라 13세에 문경 봉암사로 출가해 혜암(慧庵) 선사 제자가
됐다. 이후 여러 경로를 거쳐 크게 깨달음을 얻고 상주 도장산(道藏山, 828m) 심원사(深源寺)로 들어갔다.
거기서 51세까지 수행 정진한 나머지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얻어 중생으로서 최고경지에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근래에 개운 스님에 대해 신비화 내지는 과장된 평전이 퍼져 전설적인 인물이 돼 있다.
그래서 그 이후 지리산으로 들어가서 182세까지 살다가 지리산 묘향암에서 신선이 됐다고 한다.
그의 죽음을 본 사람이 없어 신선이 됐다는 설이 제기된 것이다.
개운 스님은 지리산으로 가기 전에 <능엄경>의 주석을 달았다. 간략하게 자신의 자서전도 썼다.
이것들을 하나로 묶어 책으로 만들어, 책의 말미에다가 이런 얘기도 덧붙여 두었다.
“이 책을 심원사 천장에 숨겨둔다. 도장산 계곡물에 사는 용들에게 이 책을 잘 보호하라 일렀다.
앞으로 1백년 후에 인연이 닿는 사람이 이 책을 발견해 세상에 전할 것이다. 그때에 가면 바른 도(道)가 널리
퍼지리다. 큰 도를 이루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의심하지 말고 정진해라.
나는 바위에다 맨손으로 글씨를 새겨놓았다. 이것이 정법(正法)을 따라 정진해 내가 도(道)를 이룬 증거이다.”
그런데 1950년대의 일이다. 양성(陽性)이란 스님이 심원사에 들러 그 책을 발견하고 개운 스님이 당부한 대로
이 책을 출판해 널리 전했다. 책명은 <유가심인정본수능엄경환해산보기(瑜伽心印正本首楞嚴經環解刪補記)>
이라 하는데, 보통 줄여서 <유가심인 능엄경(瑜伽心印楞嚴經)>이라 한다.
헌데 이러한 설화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분들도 있다.
*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래, 시대가 내려오면서 번역된 경전의 종류와 수량이 점차 늘어나게 됐다. 이에 따라 한역 경전을 종합해 정리한 목록 작성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일찍부터 역출된 불전의 목록들이 연이어 편찬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것은 중국불교 성립의 기초를 마련한
인물로 평가되는 전진(前秦)의 도안(道安, 314~385)이 작성한 역경록 ‘종리중경목록(綜理衆經目錄)’이다.
그리고 역경 사업이 거의 마무리돼가던 당나라 초기(730년)에 편찬된 지승(智昇)의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은
종래의 경록(經錄)을 집대성한 것으로서 일체경(一切經)의 목록이라고 평가된다.
그런데 도안의 경록에 수록된 것은 611부 859권에 불과했지만, 지승의 경록은 ‘총괄군경록(總括群經錄)’에서
후한(後漢)부터 당대까지 664년 동안 19대로 나누어 176명의 역경승(譯經僧)에 의한 2,275부 7,046권이
수록됐다. 특히 그 경록의 ‘현장입장목록(現藏入藏目錄)’에서는 1,076부 5,048권 480질이나 수록돼있어서
그 뒤 대장경을 서사(書寫)할 때의 유력한 기준이 됐다.
그리하여 당시 가장 권위있는 것으로 인정된 중국 최초의 대장경이라는 송(宋) 대에 조성된
<개보판대장경(開寶版大藏經)>은 바로 이 <개원석교록>에 수록된 5,048권 불전을 모두 판각한 것이다.
* 개적현본(開迹顯本)---자취를 밝혀서 근본 부처님을 드러낸다는 뜻이다.---→개현법(開顯法) 참조.
* 개차(開遮)---개(開)는 방편으로 어떤 행위를 허락한다는 말이고, 차(遮)는 어떤 행위를 금한다는 말이다.
불교의 계율에 있어서, 경우에 따라 어떤 때는 계율을 어기는 것을 허락하고, 어떤 때는 어기는 것을 금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목숨이 위태롭거나 많은 사람을 살려야 할 경우에는 방편으로 계율을 어겨도 좋다고
허락하지만 어떤 때는 죽더라도 반드시 계율을 지키라고 한다. 즉, ‘큰 것을 지키기 위해 작은 것을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지범개차(持犯開遮)라고 한다. ---→지범개차(持犯開遮) 참조.
* 개태사(開泰寺)---개태사는 고려 태조인 왕건이 936년 후삼국통일을 이룬 후 세운 사찰이다.
개태사 지역이 충남 논산시 연산면 일대로서 바로 옛 황산벌이다. 이곳 부근에서 견훤군을 격파함 으로써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것이다. 현재 개태사는 대한불교 법상종 소속 사찰이다.
개태사에는 석불입상(보물 제219호)과 엄청난 크기의 가마솥이 있다. 이 가마솥(철확)은 현존하는 조리기구 중
그 규모면에서 세계 최대의 것으로 자랑할 만하다.
벙거지 모자를 뒤집어 놓은 모양으로, 지름이 약 2m, 둘레길이 6.28m, 높이 97㎝이다.
* 개현(開顯)---닫힌 것을 열고 숨은 것을 드러내어 진실상(眞實相)을 나타내 보인다는 말이다.
<법화경> 법사품에는, “방편의 문을 열고 진실상을 나타내 보이는 것[開方便門 示眞實相]”을 개현이라고 했다.
개현이란 개권현실(開權顯實), 개삼현일(開三顯一)의 줄인 말이다. 천태대사(天台大師, 538-597)가 말하기를,
“<법화경>을 설함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49년 설법 가운데, 앞의 40여 년간은 방편을 진실같이 설하고
굳이 방편을 방편이라고 하지 않았는데, 지금 <법화경>을 설함에 이르러서는 삼승이 방편[權]이고
일승은 진실[實]이라 해, 방편을 열어서 진실을 나타냄을 개권현실 ‧ 개삼현일이라 한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개현’은 천태교학의 대표적 사상의 하나이다. ---→개권현실(開權顯實), 개삼현일(開三顯一) 참조.
* 개현법(開顯法)---‘개현’이라는 뜻은, 열어서 나타낸다 ― 드러낸다는 뜻으로, <법화경>을 통해 부처님 이라고 하는 실체를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3천여 년 전 고대 인도에 오신 역사적 실존인물인 석가모니 부처님은
단순히 금생에 오셔서 성불하신 금생불(今生佛)만이 아니라, 구원실성(久遠實成)의 본불이라는 것을
신앙적으로 정확하게 드러내기 위한 방법론의 하나가 개현법(開顯法)이다.
즉, ① 개근현원(開近顯遠) ② 개적현본(開迹顯本) ③ 개권현실(開權顯實) ④ 개삼현일(開三顯一) 등의
상대적인 숙어가 여럿 있는데, 이를 줄인 말이 개현법이다.
그리고 <법화경> 앞부분 14품을 적문법화경(迹門法華經), 뒷부분 14품을 본문법화경(本門法華經)이라고
나누어 말하는데, 이것도 ‘구원의 본불’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한 방법론이다.
다시 말하면 경전상 구성효과이다.
① 개근현원(開近顯遠) ― 가까이 있는 사실에서 출발해, 점차 그 사실의 근원으로 찾아 올라가서 멀리 있는
진실을 알아낸다는 의미이다. 우리들 가까이 눈앞에 계셨던 석가세존을 통해, 부처의 근본체,
우주의 본체적 존재인 본불(本佛)을 깨닫는 이치를 말한다.
가까운 것이란, 석가세존께서 역사적으로 우리 인간의 눈앞에 나오셔서 정각(正覺)을 이루고,
80세까지 45년간 중생을 교화하신 후 쿠시나가라 성 밖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에 드셨는데,
이 금생의 부처님 차원 에서의 일들을 말한다.
먼 것이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출세하신 근본을 분석해서 그 가운데 들어 있는 깊은 뜻,
부처님 본체를 잘 살피고 연구한 결과를 말한다. 즉, 그것은 부처님이 한량없는 과거세 백 천 만억 나유타겁에
이미 성불하셨고, 그 부처님 이야말로 구원실성(久遠實成)의 본불, 곧 우주의 본체로서, ‘먼 것’이란
바로 이 본불의 입장을 밝힌 것을 말한다. 그러니 현세에 출현하셨던 석가모니불(迹佛)을 통해
구원의 본불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② 개적현본(開迹顯本) ― 자취를 밝혀서 근본 부처님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역사적인 실존 인물이신 석가세존의 발자취를 밝혀서 진짜 본불 본체를 표출하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정반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나신 싯다르타 태자께서,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성불하신 후 45년간 교(敎)를 설하시면서, 처음엔 불교의 기초지식을 설하셨고,
마지막 8년간 <법화경>을 통해 구원실성(久遠實成)을 선언하신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말한다.
무릇 사람들은 석가모니 부처님 이라는 어른이 3천여 년 전, 고대 인도의 가비라성에서 싯다르타 태자라는
이름으로 태어나서, 출가해 수행하신 인연으로 깨달음을 여시고, 그 후 45년간 중생을 제도하시다가
80세에 열반 하셨다는 역사상 실존 부처님을 전부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일불승(一佛乘) <법화경> ‘여래수량품’ 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오신 것은 아주 오랜
옛날 부터의 일체 중생구제를 전제한 인연에 의한 것이라 했다. 즉, 석가세존 께서는 한량없는 과거세
백 천 만억 나유타겁에 이미 성불하신, 곧 구원의 본불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사량분별로는 알 수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존재 ‘큰 하나’라고 했다.
그러니까 <법화경> ‘여래수량품’ 에서 역사상에 등장한 실존의 부처님만 있는 것으로 아는 중생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이와 같이 <법화경>은 모든 중생의 고정 관념을 바꾸어 놓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의
불사(佛事)이다. <법화경>은 금생불로만 알고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켜 놓은,
경전이란 말이다.
역사적인 금생불에서 구원의 본불로 바꾸어 놓는 기점이 바로 <법화경> ‘여래수량품’이란 것이다.
이와 같이 석가세존께서 설하신 8만 4천 법문은 방편의 가르치심 으로서, 적불(迹佛) 석가모니 부처님과
본불(本佛) 석가모니 부처님을 구분해서 본불 부처님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 개적현본이다.
---→적문(迹門)과 적불(迹佛) 참조.
③ 개권현실(開權顯實) ― 개권현실이란, 방편을 열어서 진실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불교는 방편의 가르침과 진실의 가르침으로 나누어진다. ‘권(權)’은 방편을 뜻하고, ‘실(實)’은 진실을 뜻한다.
그리고 방편의 가르침은 진실의 가르침에 들어가는 길잡이, 도와주는 것임을 밝히는 것으로,
그것이 개권현실 이다. 방편으로서의 가르침을 통해, 진실한 교리를 나타내 보인다는 말이다.
천태대사 지의(智顗, 538~597)가 그의 저서 <법화현의>에서 제시한 말인데, 보살행(菩薩行)과 더불어
<법화경>의 중심사상을 이루고 있다.
<법화경>의 중심사상은 크게 진리를 밝히는 부분과 보살의 실천행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진리를 밝히는 부분은 개권현실(開權顯實)을 나타내는 적불(迹佛) 사상과 구원실성(久遠實成)을 나타내는 본불(本佛)사상으로 구분된다.
개권현실(開權顯實)은 적불사상 으로서 방편을 열어 중생들로 하여금 진실의 세계인 구원겁(久遠劫)의
본불의 세계로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다. 이 세계에 탄생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문은 중생들의 근기를
고려해 설하신 방편 법문인데, 그 방편을 통해 궁극적인 진실(부처님)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세존이 성문ㆍ연각ㆍ보살의 삼승에 대해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했지만, 그것은 모두 일승(一乘)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일승(一乘)만이 진실이라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을 강조하는 것이다.
방편설이란, 부처님께서 29세에 출가하셔서 6년간 고행하시고,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단좌명상(端坐瞑想)
하신 인과(因果)로 35세에 정각을 이룬 후부터 72세까지 설하신 것을 방편의 가르침이라 한다.
곧, 방편설이다. 진실설이란, 부처님이 72세부터 열반에 드시는 80세까지 8년간 설하신 일불승(一佛乘)인
<법화경>을 진실의 가르치심 이라 한다. 곧 진실의 교라 한다.
헌데 이러한 주장은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천태종의 입장에서 <법화경>을 가장 완벽한 진실교임을
주장하기 위한 억지 논설이다. <법화경> 자체를 부처님이 설하신 것이 아니다.
<법화경>이야말로 부처님이 입멸하신 훨씬 후에 대승불도들이 창작한 방편설에 지나지 않는다.
부처님이 72세부터 80세까지 8년간 <법화경>만을 설하셨다는 것은 아주 허무맹랑한 거짓말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이 <법화경>의 가치를 실추시키고 있다.
④ 개삼현일(開三顯一) ― 개삼현일은 셋을 열어서 하나를 나타낸다는 뜻이다.
회삼귀일(會三歸一)과 같은 말인데, 보살ㆍ성문ㆍ연각 등 삼승의 방편설에 의해 진실인 일승(一乘)
즉 불승(佛乘)으로 들어가도록 한다는 뜻이다. 처음 삼승(三乘)을 설해 중생을 인도한 연후에 오로지 대승으로써 제도해 해탈하게 함을 말한다. 그러니 삼승은 방편으로서 진실인 일승에 들어가게 하는 징검다리와 같은 것
이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삼승과 일승의 관계를 개삼현일(開三顯一)이라 한다.
그런데 천태대사 지의(智顗, 538~597)는 <법화경>을 크게 본문(本門)과 적문(迹門)으로 구분했다.
즉, 법화경 8권 28품 중 서품 제 1에서 안락행품 제 14까지의 전반을 적문,
종지용출품 제 15에서 보현보살 권발품 제 28품까지의 후반을 본문이라고 구분했다.
적문이란 본체(本體)의 그림자인 부처, 즉 적불(迹佛)이 설한 문(門,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여래수량품 제16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구원 오백진점겁(五百塵點劫)이라고 하는 아득히 먼 옛날에 이미 성도 했었다고 하는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입장을 밝혔다. 이로 인해 이전의 여러 경과 <법화경> 적문까지 견지해 온 시성정각(始成正覺) 이라는 입장은 구원 성도한 본불의 그림자인 적불(迹佛)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개현’의 개념을 정확히 안다는 것은, 석가세존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올바른 삶을 산다는 것을 말한다.
개근현원ㆍ개적현본ㆍ개권현실ㆍ개삼현일은 같은 맥락의 말로서, 모든 일체중생을 금생불(迹佛)에서 본불로
인도해서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한다는 <법화경> 사상을 드러내는 기본 ‘틀’이라 할 수 있다.
* 객진번뇌(客塵煩惱)---객진(客塵)이라고도 한다. 우연히 밖으로부터 들어온 먼지라는 뜻으로,
번뇌는 본래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서 스스로 일으킨 불청객이라서 손님처럼 왔다가 때가 되면
스스로 갈 뿐이다. 그래서 객진번뇌, 허상, 가관(假觀)을 지칭하기도 한다. 즉, 번뇌는 본래부터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와 청정한 마음을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갱락(更樂, 빠알리어 phassa, 산스크리트어 sparśa)---육근(六根)과 육경(六境)과 육식(六識)의 화합 ― 즉,
삼사화합(三事和合)으로 일어나는 마음작용, 이는 촉(觸)과 같은 뜻이다. 연기법을 설함에 있어
<중아함경>에서는 특이하게도, <연기경>에서 말하는 촉(觸)을 여기서는 갱락(更樂) 이라고 한다.
갱락은 반복되는 즐거움이라는 의미이다. 즉, 감촉하는 것을 반복하는 즐거움 이라고 한 것이 특이하다. 또한
<연기경>에서의 식(識)을 <중아함경>에서는 각(覺)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해 식(識)과 각(覺)을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 사용한다. 그래서 육촉처(六觸處)를 육갱락(六更樂)이라 하고, 처(六處)를 인연해 갱락(更樂)이 있고,
갱락을 인연해 각(覺)이 있으며, 각(覺)을 인연해 애(愛)가 있고,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음은 <대구치라경(大拘緻羅經)>에 나오는 말이다. 존자 사리자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몇 가지 감각이 있습니까?”
“세 가지 감각이 있습니다. 곧 즐거운 감각과 괴로운 감각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입니다.
이것들은 무엇을 인연해 있는가 하면 갱락(更樂)을 인연해 있습니다.”
* 거돈사지(居頓寺址)---남한강변인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한계산(寒溪山, 535m) 서쪽 기슭에 펼쳐진 절터로서 사적 제168호이다. 발굴조사결과 신라후기인 9세기경에 처음 지어져 고려 초에 확장 보수돼 조선 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밝혀졌으나 언제 폐사됐는지 확실치 않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거돈사지는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며, 신라 말 고려 초의 절터로서는 보기 드문 일탑식 가람으로
주목할 만한 곳이다. 중문지 북쪽엔 3층석탑(보물 제750호)이 남아있고, 탑의 동쪽에는 원공국사
지종(智宗, 930∼1018)을 위한 원공국사 승묘탑비(보물 제78호)가 남아있다. 탑비와 함께 원공국사 승묘탑
(보물 제190호)이라 불리는 부도도 있었으나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뜰 안에 옮겨놓았다. 거돈사는 고려 초기
법안종(法眼宗)의 주요 사찰이었지만, 고려 중기 천태종이 유행해지면서 천태종 사찰로 흡수됐다.
* 거두절미(去頭截尾)---앞뒤의 불필요한 말은 없애고, 요점만 말하다.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버리고 사실의 요점만 말하다. 이런 뜻이다. 없앨 거(去), 머리 두(頭), 끊을 절(截), 꼬리 미(尾), 고기의 머리와 꼬리를 잘라버리고, 이런 살생의 의미가 있어서, 불가에서는 이 말을 금기시 하므로 사용하면 안 된다.
* 거량(擧量)---법거량(法擧量)의 줄인 말.---→법거량法擧量) 참조.
* 거래중도(去來中道)---「수행승들이여, 시각(眼)이 생길 때 어떤 다른 것에서 오지 않으며,
그것이 사라져 버릴 때 어떤 곳에 축적돼 가지도 않는다.” - 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
어디서 오는 것(래)도 아니고, 어디로 가는 것(거)도 아니다. 조건에 따라 생성되고 조건에 따라 소멸되는
연기법칙에 따를 뿐임을 말한다. 인과성에 공간적 접근성이 수반되지 않는다.
즉, 거래중도란 사물이 생겨 날 때에 원인이 결과에 가까이 와서(來) 생겨나거나 멀어져서(去)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고 오는 거래(去來)에 구속되지 않고 생겨나거나 사라지기 때문에 인과에서의 근접성은 필수적인
것이 아님을 말한다. 그러므로 시공적인 근접성과 관계없이 조건적으로 발생하는 연기법을 알아
팔정도의 길을 가는 것이다.
* 거사(居士)---거사란 출가하지 않는 재가 남자신도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삼귀(三歸) 오계(五戒)를 지키며
불교신행(信行)을 하는 덕이 높고 수행을 원만히 성취한 사람을 말한다. 거사(居士)란 말은 부처님 당시
재가 남자 신도로 덕이 높고 수행을 원만히 성취한 유마힐(維摩詰)거사 이름에서 유래한다. 세계 3대 거사로는
<유마경(維摩經)>의 주인공인 인도 유마힐(維摩詰) 거사, 중국 방(龐) 거사, 신라 부설(浮雪) 거사가 있다.
중국 방 거사는 당나라 시대 사람으로 이름은 온(蘊)이라 했으며, 있는 재산을 다 버리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고 한다. 부설 거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사람으로 성은 진(陣), 이름은 광세(光世)라 했다.
그 외에 의상 대사 동생 윤필(潤弼) 거사, 파계 후의 원효 대사는 소성(小性) 거사로 행세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백봉(白峯) 김기추(金基秋)(1907~1985) 거사가 있다. <화엄경>의 대가 탄허(呑虛 1913~1983) 스님은 김기추 거사를 ‘말법시대의 등불’이라고 격찬했다. 김기추 거사님은 부산 영도(影島)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불심 깊은 재가 불자로서 재가 수행단체인 보림회(寶林會)를 결성, 운영했고, <유마경대강론>, <금강경송> 등
많은 저서도 남겼으며, 경남 산청에 보림선원(寶林禪院)을 창설해서 수행활동을 하다가 거기서 입적한 인물이다.
---→부설 거사(浮雪居士), 윤필 거사(潤弼居士)참조.
* 거울과 벽돌---마전성경(磨磚成鏡)을 이르는 말이다.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든다는 말인데, 중국 당나라시대
남악 회양(南岳懷讓, 677∼744) 선사와 그의 제자 마조 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에 얽힌 이야기이다.
---→마전성경(磨磚成鏡) 참조.
* 거지성자---불교학자 전재성 박사가 독일 유학 중에 만난 거지성자 페터 노이야르(Peter Neujahr)와의 7년간의 교류와 거기에서 배운 깨달음을 담은 책이다. 독일 쾰른대학에 입학해 초기 유학 시절의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저자는 어느 날 쾰른대학을 둘러싸고 있는 숲속의 호숫가에서 한 사람의 거지를 만난다.
그리고 예수처럼 생긴 외모에 비범한 기운을 발산하는 이 거지와 대화를 나누게 되고 동서양의 많은 성자들의
이름과 말씀을 줄줄이 토해내는 이 거지야말로 깨달음을 실천하는 진실한 수행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페터 노이야르는 붓다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집과 가족을 떠나 거지처럼 살고 있다.
탁발로 얻은 과일과 채소, 흑빵만으로 하루 한 끼의 식사만을 하고, 몇 겹으로 기운 누더기와 양말 한 켤레로
살아간다. 책에는 페터 노이야르가 저자에게 전해준 붓다와 예수, 기독교 신비주의자들,
마호메트와 이슬람의 수피들, 공자와 노자, 장자 가르침의 핵심이 담겨 있어 깊은 울림을 안겨준다.
“여러분이 말한 고행은 부처님이 말한 고행이 아닙니다. 나의 고행은 진실을 말하는 것,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 그리고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송광사 학승들과 대화중에서 ‘왜 고행을 하십니까?’ 라고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거지성자라는 이 분은 부처님 말씀을 진실로 실천 하시고자 노력하시는 분이다. 어느 종파에도 속하지 않고
오직 자신과 법을 의지하며, 무소 뿔처럼 홀로 외롭게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부끄러움 없이, 철면피하고, 무례하고, 대담하고, 죄악에 오염된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쉽다.
그러나 부끄러움이 있고, 항상 청정을 구하고, 집착 없이, 청정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의 생활은 어렵다.”…
“잘못을 범하지 않게 한 나의 가난에 감사한다.” 페트 노이야르의 말이다.
한 분의 성자가 이 시대에 밝히는 등불은, 우리 모두에게 큰 축복이다. 그 페트 노이야르가 한국에 왔다.
다음은 1999년 11월 전재성 박사의 초청으로 한국에 온 페트 노이야르와 나눈 문답 내용이다.
왜 집 없이 숲의 나무 밑에 살고 있는가?
“무소유의 삶은 새처럼 자유롭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무소유를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숲으로 들어가
나무 밑에서 명상을 하고 허물어진 빈 집에서 명상을 하셨다. 대자연과 함께 하는 것이 수행자의 길이다.
부처님 가르침의 근원으로 돌아가려다 보니 소유한 모든 것을 버리게 됐고,
자연스럽게 나무 밑에서 잠자며 탁발하는 생활을 하게 됐다.”
기성종단의 생활과 위배되는 것 아닌가?
“종교가 조직화되면 정치적이고 경제적이 된다. 그래서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런 것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법을 말씀하셨다. 즉, 가르침만을 유일한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계율을 지키지 못해 승단 분열이 일어나는 것이다. 계율만 지키면 분열과 혼란은 저절로 사라진다.
또 싸움은 무아(無我)사상을 이해하지 못해서 시작되는 것이다. 내가 없는데 누가 싸움을 하는지 찾아봐야 한다. 에고에서 나오는 분쟁의 마음은 삼법인(三法印)의 가르침을 정확히 이해하면 해결된다.”
기성승단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부처님은 승가에 어떤 계급이나 서열을 정해주지 않았다. 제자와 문중을 만들게 하지 않았다.
또 승가 내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는 장치인 자자(自恣)와 포살(布薩)을 보름마다
시행하도록 했다. 부처님은 그러한 모임을 통해 제자들이 법을 상기하고 가장 겸손하게 반성하도록 했다.
수행자는 권력과 부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처님 가르침은 변질된다.”
어떻게 해서 부처님가르침에 따르게 됐는가?
“인도 관련 서적을 접하면서 부터다. 그리고 티베트 라마가 인도 고아를 만나 깨달음을 구한다는 내용으로,
키필링의 <킴>이라는 책을 15번쯤 본 것이 불교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
인도 보드가야에 갔을 때 버마 승려가 ‘부처님은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어 놓으셨다.
부처님 경지는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고 말한 것을 듣고 감명을 받았다. 처음에는 <벽암록> 등 선불교를
공부하고 영국의 선공동체에도 들어갔는데, 가르침과 실천이 부조화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초기불교에 들어가 부처님이 실천한 것을 따르게 됐다.”
※ 키필링---1907년 노벨상을 받은 영국 자가 러디어드 키필링(1865~1936)을 말한다.
유명한 <정글북>의 저자이기도 하다. 종교를 보는 눈이 넓은 것 같다.
“부처님과 위대한 성자들의 삶과 가르침을 보면 동일하다. 종교들은 욕망이라는 자신과의 싸움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욕망에 패배한다. 부처님께서 오욕을 이기라고 말씀한 것이 그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면서 충분하지 않는 분야를 알고자 한다면 다른 종교의 가르침도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불교가 특히 위대한 점은 어디에 있는가?
“부처님이 설한 진리의 세계는 분명하고 깨끗한 가르침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조목조목 밝히고 있다. 나는 부처님 가르침을 25세기나 30세기 인류가 돼야 받아들일 수 있는 미래적인
사상이라고 본다. 부처님 가르침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과학적이고 물리적이고 아름답다.
또 다른 종교 창시자들과 달리 예언을 배격하고 세월이 변해도 수정처럼 맑은, 변치 않는 진리를 설하셨다.
부처님 법에는 지혜로 인간의 우매함을 걷어낼 수 있도록 하는 희망이 담겨 있다.”
깨달음의 추구를 얘기하는 것인가?
“그렇다. 최종 목표는 깨달음이다. 부처가 되려는 욕심이 있으면 부처가 될 수 없다.
단지 수행을 오래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현대 과학문명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받아 들여진다.
“그렇다. 부처님은 이 세상의 의사이다. 어려운 난제들도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저절로 해결된다.
서양에서는 물질문명이 발달해 자기 자신이 살아가는 터전을 잃어버렸다. 부처님의 자연 친화적이고 생태적인
사상과 자신을 다스리는 마음법이 대안이 될 것으로 본다. 문제는 실천이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보는가?
“자연이나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는 지속 가능한 일을 해야 한다. 살아가는 것은 간단하다.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아야 한다. 5계를 지켜 인간정신이 올바로 서야 한다.
사소한 관찰을 함으로써 진실한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거짓을 고쳐나갈 때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개개인의 마음이 따뜻하면 혼탁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 현대불교신문 김원우 기자
* 건달바(乾闥婆, 산스크리트어 gandharva)---빠알리어로는 건답바(gandhabba)라 하는데, 건달바엔
세 가지 뜻이 있다.
① 긴나라(緊那羅)와 함께 도솔천에서 제석천(帝釋天)을 모시면서 음악을 담당하는 천신으로 팔부중의 하나이다. 심향(尋香), 식향(食香)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며. 술과 고기는 일체 먹지 않고 향기만 먹고 사는 천신의 일종이다. 수미산 남쪽 금강굴에 살며 언제나 부처님이 설법하는 곳에 나타나 찬탄하며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통상 놀고먹는 ‘건달’이란 말도 이 건달바에서 유래됐다.
② 정신적인 존재현상을 건달바라 했다. 초기경전의 여러 경에는 건달바가 곧 식(識)이라 했다.
정신적 요소인 이 건달바가 12연기에 있어서 행(行)에서 식(識)으로 전환될 때 개입한다고 한다.
다음은 <맛지마 니까야>에 나오는 말이다.
「부모가 교합하더라도 어머니의 때가 아니고 건달바가 나타나지 않으면 임신이 되지 않고,
부모가 합하고 어머니가 때라 하더라도 건달바가 나타나지 않으면 역시 임신이 되지 않는다. 부모의 합함이 있고, 어머니의 때가 맞고, 건달바가 나타나야 임신이 된다. 그리고 열 달 동안 어머니의 뱃속에 있다가 세상에 태어나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이때의 건달바는 재생연결식(paṭisandhi-vinñāṇa)이다.
③ 향기(gandha) 나는 곳에 사는 신을 뜻한다. <상윳따 니까야(S.iii.250f)>에 따르면 간달바의 신은
나무의 뿌리나 껍질이나 수액이나 꽃의 향기에 거주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건달바(乾達婆, 산스크리트어 gandharva, 빠알리어 간답바/gandhabba)---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노는 자를 뜻하는 ‘건달’이라는 우리말이 여기서 나왔다. 고대 인도 신화에서 건달바는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 했었기에 이에 대한 의미와 해석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① 긴나라(緊那羅)와 함께 도솔천에서 제석천(帝釋天) 인드라의 시중을 들면서 인드라 신의 궁전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천신으로서 팔부중의 하나이다. 인도 말로 간다르바 비드야(Gandharva vidya)가 음악을 의미한다.
그리고 간다(gandha)라는 말은 향(香)을 의미하므로, 간달바는 술과 고기는 일체 먹지 않고 향기만 먹고 사는
천신으로 묘사되며, 이런 어원적으로 해석돼 의역해서 식향(食香) 또는 심향(尋香)이라 한다.
이들은 수미산 남쪽 금강굴에 살며 언제나 부처님이 설법하는 곳에 나타나 찬탄하며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통상 놀고먹는 ‘건달’이란 말도 이 건달바에서 유래됐다.
② 정신적인 존재현상을 건달바라 했다. 초기경전의 여러 경에는 건달바가 곧 식(識)이라 했다.
정신적 요소인 이 건달바가 12연기에 있어서 행(行)에서 식(識)으로 전환될 때 개입한다고 한다.
다음은 <맛지마 니까야>에 나오는 말이다.
「부모가 교합하더라도 어머니의 때가 아니고 건달바가 나타나지 않으면 임신이 되지 않고,
부모가 합하고 어머니가 때라 하더라도 건달바가 나타나지 않으면 역시 임신이 되지 않는다.
부모의 합함이 있고, 어머니의 때가 맞고, 건달바가 나타나야 임신이 된다.」
그래서 이때의 건달바는 재생연결식(paṭisandhi-vinñāṇa)이다.
건달바는 물의 요정이자 춤의 요정인 압사라(Apsaras)와 어울리며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그리하여 그는 수태를 관장하는 신으로서의 역할도 한다고 했다.
생명체가 어떤 종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암수의 결합, 두 번째로 적당한 시기, 세 번째로 캄마 웨가(Kamma-vega)라고 하는 업력이 필요한데, 이 캄마 웨가가 업력(業力)으로서 건달바를 말한다.
즉, 생명체는 업력에 의해서 형성됨을 말한다. 그리고 이 업력은 임종에 임한 사람의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 방출된다고 한다. 그래서 재생연결식이라고 한다.
③ 특히 밀교에서 건달바는 태아와 어린아이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귀신을 제압해 태아와 어린아이를 수호한다.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이 건달바신왕을 본존으로 삼아 거행하는 불공을 동자경법
또는 건달바법이라고 한다.
* 건당(建幢)---스님의 수행과 구도(求道)가 원만(圓滿)해지면 당(幢)을 세우고 법호(法號)를 주던 일.
건당(建幢)이란 깨달은 선사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전수받아 일가를 이루게 됐음을 뜻한다.
즉, 당을 세운다는 것은 자신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만 천하에 알리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확인을 받아들이고 후학을 지도 하겠다는 의미이다.
* 건도(建度, Khandhaka) - 건도부(建度部) 불교의 율장(律藏)에는 내용면에 있어서 크게 두 가지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개인적으로 지켜야 할 윤리규범인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다.
이를 계(戒)라고도 하는데 비구계와 비구니계가 이것에 해당된다.
또 하나 공동 생활에서 지켜야할 규범과 규약을 건도(楗度)라 한다. 이를 율(律)이라고 하는데
수계와 설법에 관한 규정, 자자(自恣)와 포살(布薩)의 방법, 옷과 약에 관한 법, 안거와 방사에 관한 규정,
다툼이 생겼을 때 해결하는 규정 등이 있다. 불교에서 계율이란 이 두 가지를 합성한 말이다.
그런데 건도부는 법조문과 같은 것만 모은 그런 형식이 아니다. 즉, 어떻게 하라 혹은 하지마라 하는
규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판단에 대한 설명, 부처님이 생각하신 진리의 세계와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직후의 여러 날들을 다룬 내용 등도 들어있다.
그리고 제자들과 신자들을 만나면서 불교교단이 견고하게 확립돼 가는 과정도 보여 준다.
따라서 건도 부문은 승단 내의 규칙ㆍ규정과 부처님이 판단하신 배경들을 모은 것이다.
그리고 건도부는 대품(Mahavagga)과 소품(Cullvagga)으로 나뉘며,
대품(大品)은 부처님의 성도에서부터 베나레스에서 처음 교단을 건설할 때까지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 외에 출가 수계 및 계본에 의한 포살식, 의식주에 관한 여러 규정, 승단을 통한 행정절차 및 승단분열시
조정방법이 수록돼 있다.
소품(小品)은 제1차 ‧ 제2차 결집에 대한 설명과 비구의 재출가, 승단에서 비행을 처리하는 계. 목욕, 의복,
주거와 가구, 음식과 약, 비구의 등급과 스승과 사미의 의무 등을 담고 있다.
그리고 부수(Parivara)는 19장으로 돼 있으며, 일종의 교리문답으로서 율장에서의 계율을 요약, 분류하고 있다.
* 건율타야식(乾栗陀耶識, 산스크리트어 Hrdaya-vijnana)---인간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고, 의식으로 분별하는 6식 까지 밖에 못 쓴다. 동물은 의식 판단은 못하니까 6식도 못 쓰고 5식까지만 쓴다.
사람은 6식이 모두가 아니다. 그 아래 제7식이 있고, 7식 아래에 제8식 아뢰야식이 있으며,
제9식 암마라식(菴摩羅識)을 주장하기도 한다.
중국 양나라 무제(武帝) 때 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진제(眞諦, Paramartha, Gunarata 499∼569) 계통의
섭론종(攝論宗)에서는 9식설을 주장했고, 당나라 현장(玄奘, 602-664) 계통의 법상종(法相宗)에서는
8식설을 주장했다.
그러던 것이 후대에 더 발전해 제9식 암마라식 다음 그 가장 밑바닥에 제10식 건율타야식(乾栗陀耶識)이
추가됐다. 제8 아뢰야식은 모든 식들의 저장식이고, 제9 암마라식은 선과 악을 초월한 무구(無垢),
백정(白淨)의 세계를 일컬으며, 제10 건율타야식은 최후의 진실심(眞實心), 견실심(堅實沁)을 일컫는데,
석가여래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불식(佛識)을 말한다. 이것이 불심(佛心)이고, 불성(佛性)이고, 진여(眞如)이며,
불타(佛陀)라는 것이다. 비록 개발이 못 됐을 뿐이지 일체만유 존재의 근본이 불심(佛心)이고,
이것이 또한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이라고 한다.
다만 그 존재 자체의 업(業) 따라서 계발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수행을 하면 차근차근 6식,
7식에서 8식으로 나아가고, 8식 다음 더 깊이 들어가면 제9식 다음이 제10식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제10식(十識)에 이르면 그때는 성불하게 된다.---→암마라식(菴摩羅識) 참조.
* 건혜(乾慧)---간혜(乾慧)라 발음하기도 하며, 건혜지(乾慧地)라고도 한다. 아직 원숙하지 못하고 메마른 지혜.
참다운 지혜를 발현하지 못하는 ‘알음알이’ 단계라 할 수 있다.
비록 깨우쳐 지혜를 얻었다고 해도 선정(禪定)의 힘이 충실하지 못하면 건혜라 한다.
겨우 욕망의 습기(濕氣)는 말라 없어졌지만 아직 실질적인 덕이 갖추어지지 않았으므로 효용을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에 건혜라 한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계행 없는 정(定)은 죽은 물이고, 죽은 물에 사는 용(龍)은 활력이 없고,
정력(定力) 없는 지혜는 건혜(乾慧)일 뿐, 생사의 길에서는 쓸모가 없다.”
지혜와 반야는 비슷한 말인데, 반야를 지혜로 번역하지 않는 이유도 이러한 데에 있다.
즉, 반야(panna)는 수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예지이므로 건혜(乾慧)에 가까운 뜻의 지혜로 번역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란 수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예지, 즉 바라밀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 바라밀이 아닌 - 지혜를 불교에서는 간혜라고 한다. 건(乾) 자를
써가지고 간혜 혹은 건혜라 하는데, 성숙되지 않은 ‘알음알이’라고 하는 지해(知解)에 가까운 말이다.
그리고 지혜에는 건혜亁慧와 윤혜潤慧가 있다. 건혜는 자비가 없는 메마른 지혜이다. 이러한 팍팍한 지혜는
누구를 이롭게 할 수 없다. 반대로 윤혜는 적실 윤자를 써서 자비로 젖은 윤택한 지혜를 말한다.
* 걸식 사사(乞食四事)---비구가 걸식할 때에 지켜야 할 네 가지 행의작법(行儀作法). 탁발 사사라고도 한다.
① 주정계(住正戒) ― 심신을 바르게 가져 정계(正戒)에 머무는 일.
② 주정위의(住正威儀) ― 용모를 바르게 하고 위의를 점잖게 해 보는 이로 하여금 공경해 믿게 하는 일.
③ 주정명(住正命) ― 부처님의 법도에 따라 걸식하고 다섯 가지 부정한 일을 하지 않는 일.
④ 주정각(住正覺) ― 몸은 괴로움의 근본인 줄을 알아서 음식은 겨우 몸을 지탱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일.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에선 탁발을 하는 승려를 볼 수 없다. 인심이 각박해져서 그런지, 아니면 풍요로워
스님들이 탁발하기를 꺼려서 그런지, 부처님 법이 무너지고 있는 단면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다.
허긴 기독교 신자들이 많아져서 스님들을 폄하하는가 하면, 스님들은 스님들대로 걷기 싫어서
자가용을 타야하고, 호화로운 옷을 걸쳐야 하며, 어떤 여승의 경우 멋 부리기를 좋아하니
이런 풍토에서 걸식은 가당치 않는 일일 것이다.
*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검소하되 결코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말이다.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 쓰인 말로 온조왕 15년에 백제 사비성을 중축하면서 신궁을 지은
모습을 보고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고 했다. 이는 고대 우리민족의 정서와 아름다움, 즉 우리 민족의 미학을 한마디로 정의한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사찰 건축 역시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원칙에 따랐다. 오래된 사찰일수록
이 원칙이 철저히 지켜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 새로 지어지는 사찰 시설물들이
이런 원칙을 무시하고 거대하고 사치하기만 해서 오히려 천박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 겁(劫, 산스크리트어 kalpa)---겁(劫)은 칼파(Kalpa)의 음역어로, 겁파(劫波, 劫破) 또는 갈랍파(羯臘波)라
음역하기도 한다. 분별시분(分別時分), 분별시절(分別時節), 장시(長時), 대시(大時) 등으로 의역하고 있다.
불교의 시간 개념으로서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시간을 뜻한다. 천지가 개벽한 때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기간이란 뜻으로 매우 길고 오랜 시간을 이르는 말이다. 본래 인도에서는 범천(梵天)의 하루,
곧 인간계의 4억 3200만년을 1겁이라 했다. 그 외에 겁에 관한 시간 개념으로 아래와 같은 것이 있다.
① 연ㆍ월ㆍ일이나 어떤 시간의 단위로서 계산할 수 없는 무한히 긴 시간을 광겁(曠劫)ㆍ영겁(永劫)이라 한다.
② <지도론(智度論)> 권5에 의하면, 사방(四方) 40리의 성안에 개자(芥子)를 가득 채우고 백년마다 한 알씩
집어내어 그 개자가 다 없어져도 겁(劫)은 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역시
<지도론(智度論)> 권5에 의하면, 사방 40리 되는 바위를 백년마다 한 번씩 엷은 옷으로 스쳐서 마침내 그 바위가 닳아 없어 지더라도 겁은 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비유에 근거해 긴 시간을 반석겁(磐石劫)이라 한다.
③ 2종의 진점겁(塵點劫)이 있다. 삼천 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를 먹으로 삼아 그 먹이 다 닳도록 갈아서 만든
먹물로 일천국토(一千國土, 세계)를 지날 때마다 한 방울씩 떨어 뜨린다고 하고, 그 먹물이 다 없어질 때까지
지나온 모든 세계를 부수어 만든 수없는 먼지 하나 하나를 일겁(一劫)으로 한 그 모든 겁(劫)을
삼천진점겁(三千塵點劫)이라고 한다.
또 오백천만억 나유타아승지(五百千萬億那由他阿僧祗, 아주 많은 수의 단위)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부수어 먼지를 만들어 오백천만억 나유타아승지(五百千萬億那由他阿僧祗)의 세계(국토)를 지날 때마다
그 먼지를 하나씩 떨어뜨려 그 먼지가 다 없어질 때까지 지나온 모든 세계를 다시 먼지로 부수어서 그중
한 먼지를 일겁(一劫)으로 셈한다고 할 때, 저 모든 먼지 수의 겁(劫)을 오백진점겁(五百塵點劫) 또는
오백억진점겁(五百億塵點劫)이라 한다.
<법화경>에 나와 있는 진점입원겁(塵點入遠劫)이나 삼천진점겁(三千塵點劫)이란 말은 여기서 유래했다.
시간과 수량을 나타내는 말들로는 겁(劫) 외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는데, 모두 과장된 내용이다.
• 찰나(刹那, ksana) - 아주 짧은 시간, 75분의1초라는 주장이 있다.
• 아유타(阿由陀)---아승기(阿僧祇)와 더불어 인도에서 아주 많은 수를 표시하는 수량의 단위임.
• 나유타(那由他, nayuta) - 인도에서 아주 많은 수를 표시하는 수량, 아유타(阿由陀)의 백배라고 한다.
천만 혹은 천억이라 표현한다.
• 미진수(微塵數, parmanu) - 세세하게 부서진 것 같이 수많음.
• 항하사수(恒河沙數), 항하진수(恒河塵數) - 항하(갠지스강) 모래처럼 많은 수량.
• 모호(模湖) - 확실하지 않은 모양 또는 애매한 상태.
• 순식(瞬息) - 수유의 1/10, 눈을 한 번 깜빡이고(瞬), 숨을 한 번 쉬는(息) 짧은 시간,
순식간이 찰나의 100배 정도.
• 탄지(彈指) - 찰나의 10배, 역시 짧은 시간을 나타내는 말,
탄지지간(彈指之間)의 줄임말로 손가락(指)을 튕길(彈) 사이(間)라는 뜻.
• 수유(須臾) - 순식의 10배 또는 준순(浚巡의 1/10, 지극히 짧은 시간, 불전에 따라 다양하게 나온다.
인도에서 주야의 30분의 1.
• 준순(浚巡) - 수유의 10배 또는 모호의 1/10.
• 소겁(小劫, 산스크리트어 antara-kalpa) - 사람의 목숨이 8만 살부터 100년마다 한 살씩 줄어서
열 살이 되기까지의 동안. 또는 열 살에서 100년마다 한 살씩 늘어서 8만 살에 이르는 동안. →사겁(四劫) 참조.
• 유순(由旬) - 유순(由旬)은 고대 인도에서 사용된 길이 단위로, 1유순은 왕이 하루에 행군하는 길의 길이로,
대략 10㎞ 정도 된다.
•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사겁(四劫)이 한번 진행되는 것을 일대겁(一大劫)이라 하는데 부처님이 한번 발심해서
성불하기 까지의 시간을 삼아승기겁(三阿僧祇劫), 백대겁(百大劫)이라 한다.
흔히 영겁(永劫)이란 것이 아마도 이럴 것이다. 이렇듯 불교의 시간개념은 초월적이고 몽환적이다.
* 겁화(劫火, 산스크리트어 kalpagni)---우주의 파괴되는 때(괴겁)의 종말에 일어나는 화재를 말한다.
일곱 개의 해가 하늘 위에 나타나 이 때문에 초선천 이하 일체가 불타버린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세계를 태워 재로 만들어 버리는 큰 불을 말한다. 세계가 파멸될 때 일어난다.
불교에서 세상은 성(成)ㆍ주(住)ㆍ괴(壞)ㆍ공(空)을 되풀이하는데, 괴의 마지막이 되면 큰 불과 큰 바람,
큰 물이 일어난다고 했다. 큰 불을 겁화, 큰 바람을 겁풍(劫風), 큰 물을 겁수(劫水)라고 한다.
* 게송(偈頌, 산스크리트 gāthā)---산스크리트어 가타(gāthā)의 음사인 게(偈)와 의역인 송(頌)을
함께 부른 것이다. 게송을 게타(偈陀) 혹은 가타(伽陀)라고도 한다. 여러 가지 형식이 있으나 불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8음절을 하나의 구(句)로 하여 2개의 구가 하나의 행(行)을 이루고,
다시 2개의 행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32음절의 시이다.
내용은 붓다의 공덕을 찬탄하거나 중요한 교리를 서술할 때 운문으로 쓴 것을 게송이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운문으로 표현한 것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즉, 고기송(孤起頌)과 중송(重頌)이다.
고기송은 산문은 없고 경문 전체가 운문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법구경(法句經)>이다.
중송은 산문체로 된 내용을 다시 운문체로 요약해서 설한 것이다. 여기서 ‘중(重)’은 무겁다는 뜻이 아니고
‘거듭’을 의미한다. 즉, 본론의 산문 내용을 좀 더 자상하고 미세하게 표현해 산문에서 이야기하지 못한 내용을
중복해서 운문체로 부연 설명하는 것이다. <금강경(金剛經)>의 경우,
각 품마다 그 말미에 그 품의 핵심내용을 다시 중송으로 읊고 있다. 이 중송을 일명 기야(祇夜)라고도 한다.
게송은 바로 게타의 게(偈)와 중송의 송(頌)을 따서 게송(偈頌)이라 하게 된 것이라서 고기송이든 중송이든 모두 게송이라 일컫는 것이 일반적이다.---→고기송(孤起頌), 중송(重頌), 십이분경(十二分經) 참조.
* 게타(偈陀)---가타(gatha, 伽陀)라고도 하는데, 게송이란 말이다.
* 격외구(格外句)---격식(규격) 밖의 초월한, 말 밖의 소식을 이르는 선문 용어이다. 다시 말하면,
말이나 문자로써 의논 할 수 없는, 이치나 말뜻을 벗어난 말을 이르는 것으로 선법에서 쓰이는 용어이다.
이 격외구로 이르는 선법은 최상승선(最上乘禪)을 이르는 것이다. 일체를 뛰어넘은 향상의 어구,
즉 향상일구(向上一句)인 것이며, 조사가 전한 말씀(어구)이다. 다시 말하면, 말 밖의 소식이요,
뜻이 붙지 않는 선지도리(禪旨道理)로 이르는 것이다.
우리의 근본인 불성은 말로써 이를 수 없기에 뜻이 붙지 않은 말 밖의 도리로써 이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 "아~시원하다" 하는 것과 같다. 거듭 설명하자면, 격외구(格外句)는
말 밖의 의지(義旨)를 활구(活句)로써 들어 보이는 것을 이르는 것으로 말 밖의 소식이다.
말 밖의 소식이라는 것은 말을 쓰되 말뜻이 직역되지 않고 숨긴 뜻으로 쓰며, 아는 이는 알고 모르는 이는
알려고 참구하게 하는 방편으로 쓰는 선문(禪門)의 것이다. 이를 대치해 말 가운데 뜻과 자취를 들어 보이는
교문(敎門)인 차별구(差別句)가 있다. →향상일구(向上一句) 참조.
* 격외도리(格外道理)---논리를 초월한 언어의 도리를 말한다. 또한 언어의 격식이나 관례를 초월한 말이지만
진리를 담고 있음을 말한다. 설정된 언어의 뜻에 구애받지 않고 부정과 긍정 양 날개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언어 격식을 뛰어넘는 진리에 대한 표현이다. 말이 있으면,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하는 생각이 뜨고,
옳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나쁘다고 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그래서 틀이 잡히고, 논리가 생기고,
문법이 생기고, 격식이 생겨, 격식을 벗어나면 틀렸다, 그리고 아니다 하는 갈등이 생긴다.
때문에 진리는 옳다 혹은 그르다 하는 이분법을 뛰어넘는 곳에 있으므로 그 표현도 통상적인 격식과는 달라진다. 선문답(禪問答)이나 화두(話頭)의 경우 대개 격외도리에 해당한다.
스승이 제자를 보니 공부가 거의 끝나갈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았다. 이 때 스승이 제자에게 격외도리를
거량(擧揚)해 의심을 돈발(頓發)시켜 준다. 이렇게 돈발 된 의심 때문에 무기(無記)에 빠지지 않고 다른 번뇌가
일어날 틈을 주지 않는다. 여기에 스승이 제자에게 의심을 돈발 시켜주기 위해 거량한 격외도리를
화두(話頭)라고 한다. 혹은 수행자가 수행을 하다가 무언가에 콱 막힌 듯하고 더 뚫고 나가지 못할 때,
스승이 제자에게 격외도리를 거량해 의심을 돈발시켜줘 미망을 한 순간에 벗어버리게 하는 것이 화두이다.
따라서 화두에는 선지(禪旨)가 깃들어 있어야 한다.
다음은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 선사의 수행에 관한 이야기이다.
임제 선사는 중국 선종의 하나인 임제종(臨濟宗)을 창시한 분이다. 고려시대 태고종사(太古宗師) 보우(普愚)
국사에게 법을 전한 석옥 청공(石屋淸珙) 선사가 임제 선사의 문하이니 따지고 보면 보우 역시 임제문손인
셈이다. 임제 선사는 제자를 지도할 때 장황한 설명을 피하고 격외도리(格外道理)를 즐겨 사용했다.
어느 날 경전을 강론하는 좌주(座主) 스님이 임제 선사를 찾아갔을 때 임제 선사가 좌주 스님에게 물었다.
“좌주는 무슨 경을 강론하는가?” “저는 깊이 공부하지 않아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백법론(百法論)>을 대강 읽었을 뿐입니다.”
“만약 한 사람은 경전을 통달했고 한 사람은 통달하지 못했다면 같은가 다른가?”
“통달했다면 같겠지만 통달하지 못했다면 다릅니다.”
이때 임제 선사를 시봉하던 악보(樂普) 스님이 뒤에 서 있다가 말했다.
“좌주 스님 여기가 어디라고 같다느니 다르다느니 합니까?”
이때 임제 스님이 악보를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러자 악보 스님이 임제 선사를 향해 대답대신 “악(喔)”하고 소리쳤다.
임제 선사가 좌주를 전송하고 돌아와 악보에게 물었다. “아까 나에게 소리쳤는가?” “그렇습니다.”
임제 선사는 대답이 끝나기 전에 악보의 따귀를 한 대 후려쳤다. 지나친 분별심(分別心)은
공부에 해가 된다는 교훈을 법(法)으로 보인 것이다.
※ <백법론(百法論)>의 원명은 <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名門論)>으로 세친이 지은 유식의 중요한 경전이다.
* 격외선(格外禪)---말이나 글로써 나타낼 수 있는 이치를 초월한 선법. 의리선(義理禪)을 넘어선
구경선(究竟禪)을 말한다. 불교의 경전에 수록된 부처가 설법한 가르침 밖에 따로 전한 마음의 법리(法理)인
교외별전(敎外別傳), 격식과 단계를 벗어난 수행의 이치인 격외도리(格外道理), 글자에 구애받지 않은
불립문자(不立文字)에 의한 선을 줄여서 일컫는 말이다. 이러함을 바탕으로 한 선(禪)을 줄여서 격외선이라 한다. 격외선이란 이치적인 접근이 가능한 의리선(義理禪)과는 상반되는 것으로, 통상적인 논리와 지식, 견해 등을
초월한 선의 경지를 말한다. 말하자면 조사선(祖師禪)과 그 계통을 이어받은 간화선(看話禪)을 일컫는다.
6조 혜능(慧能) 계통의 격외선을 남종선(南宗禪)이라 하는데, 이 남종의 격외선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받아들인 이는 신라 말 도의(道義) 선사였으며, 그를 이어 많은 선사가 격외선법(格外禪法)을 중국에서 받아들여
산문(山門)을 열었다. 그리하여 고려 초에 이르기까지 아홉 산문이 이루어 졌으므로 구산선문(九山禪門)이라
일컬었고, 그 이후는 물론 지금도 조계종(曹溪宗)을 비롯한 한국불교의 참선법은 격외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의리선(義理禪), 조사선(祖師禪), 간화선(看話禪) 참조.
* 격외어(格外語)---선불교에서 제시하는 ‘화두(話頭)’라는 말에서 ‘화(話)’란 말 또는 이야기라는 뜻이며,
‘두(頭)’란 접미사로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니 화두란 그저 ‘말’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이 선사들이 쓰는 특별한 말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화두란 모든 사유와 분별의 통로를 막는
선사들의 독특한 언어이다. 이러한 말은 일상적인 생각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 화두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사유 분별을 끊어버리는 힘이 있다. 그래서 화두를 일상적인 격을 벗어났다 해서 격외어(格外語)라 한다.
이성의 사유작용이 따라 붙을 수 없는 절대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가(禪家)에서 언어를 사용해 선지(禪旨)를 직접 표현하는 경우는 이른바 격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선장(禪匠)이 격외어를 말하는 경우에는 겉으로는 보통의 의미에서 말을 하는 것 같으나,
선지식이 이 말을 함에 의도하는 것은 그 말의 의미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선(禪)에서 말하는 진리의 세계, 그 깨달음의 자리로 들어서려면 생각이 무너져야 한다. 경계가 해체돼야 한다.
그런데 대화를 하려면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을 진리의 세계로 이끌려면 말을 사용하되,
그 말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생각과 이성을 배경으로 한 말을 통해 생각과 사유하는
나와 이성을 괴멸 시키는거나 다름 아니다. 이것은 지극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말을 하면서 말을 부정하는 선문답은 일상의 생각의 잣대로는 보면 완전한 동문서답이며 기상천외하다. 그래서 그러한 말은 법식과 표준, 관례나 규정을 벗어났기 때문에 격외어(格外語)라고 한다.
또한 바른 모양이나 일상적인 세상을 벗어났기에 방외어(方外語)라고도 한다.
격외의 도리나 방외의 도리도 마찬가지 의미다. 이와 관련해 격외지사(格外之師)와 방외지사(方外之師)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일정한 격식이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 격외지사의 대표적인 인물이 선사들이다. 선의 황금시대라 불리는 당나라 시절에는 이러한 격외지사들이
많이 출현했다. 그 선의 대종장들 사이에 활발한 선문답이 전개돼 결코 적지 않은 선사들이 깨달음을 열어나갔다.
* 격의불교(格義佛敎)---격의불교(格義佛敎)는 중국에서 불교 수용의 초기 단계에, 인도 불교의 원전에 따라서
직접 그 원뜻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유형이 다른 중국 고전과의 대비에서 불교를 이해하려는 것을
격의불교라고 한다. 시대적으로는 위진시대(魏晋時代, 220-420)에 성행하고, 노장(老莊) 현학(玄學)이
주류를 차지한 사상계의 상황을 반영해서, 노장의 무(無) 사상에 의해서 반야 경전의 공(空) 사상을 해석했다.
원래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나 기타 방언으로 기록된 불경(佛經)의 한역(漢譯) 사업이 중국 불교의
토착화 과정에서 제일 먼저 수행해야 했던 작업이었다.
그런데 불교가 처음 중국에 전래됐을 당시 중국인들 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은 불교교리가 많았다.
이를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유교나 도교 등 중국 고유사상 으로 부터 유사한 개념이나 용어를 차용해
설명하는 편법을 썼는데, 이를 가리켜 격의(格義)라 했다.
즉, 구마라집(鳩摩羅什)이 서역에서 중국에 건너오기 전 당시 중국 불교는 불법의 경전이 희소해 불교의 대의를 바로 알지 못하고 노장학(老莊學)에서 말하는 허무주의의 담론에 젖어 이를 불교로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청담현학(淸談玄學)을 즐기던 당시의 도가적(道家的) 불교 지식인들이 도가의 개념을 빌어 공(空) 사상을
논의했는데, 이와 같이 중국 고유의 이념을 빌어 와서 ‘의미의 짝 맞추기’하는 것을 격의불교(格義佛敎)라 했다.
당시의 격의불교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논서로는 진(晉)나라 도항(道恒)의 <무심론(無心論)>, 축법태(竺法汰)의
<본무론(本無論)>, 도림(道林)의 <즉색유현론(卽色遊玄論)> 등이 있었다.
이렇게 기존 자국 언어를 빌어 이질적인 문화를 방편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격의라 했는데,
불교 도입초기인 위진시대(魏晋時代)에 나타났던 불교교리 이해 및 연구방법이었다.
그러나 이는 불교교의의 진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혼란을 가져와서 오호16국 시대에 이르러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과 그의 제자 승조(僧肇, 384~414)에 의해 극복돼 나갔다.
* 견(見, 산스크리트어 dṛṣṭi 혹은 darśana, 빠알리어 diṭṭhi)---견(見)의 원어는 다르샤나(darsana)이다.
이는 ‘보다’는 뜻의 동사어근 √drs에서 파생된 말로서 다만 눈으로 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실상이나 존재 본성에 대한 통찰을 의미한다. 인도에서는 전통적으로 철학을 다르샤나라고 했는데,
불교는 붓다(Buddha) 다르샤나, 자이나교는 자인(Jain) 다르샤나로 일컬어진다.
그리고 그 의미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자기의 의견(意見)이나 생각(生覺), 주장(主張)을 말한다.
생각하며 헤아리고 사물(事物)에 대한 견해(見解)를 정하는 사상(思想), 주장(主張), 정견(正見), 사견(邪見)
등으로 쓰이지만 일반적으로는 편벽된 견해나 주장과 같이 나쁜 의미로 사용된다.
불교용어 로서 견(見)은 일반적으로 보는 것, 보는 힘ㆍ작용(특히 정신적으로) 또는 지혜ㆍ견해를 뜻하며,
넓은 뜻으로는 어떤 일에 대한 견해를 말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혜(慧)의 작용의 하나로 보며 팔정도(八正道)의 정견(正見)이 그것이다. 아견(我見) 등은 악견(惡見)이지만, 견(見)만으로도 악견을 뜻할 때가 있다.
외도(外道)의 62견 등이라고 할 때는 여러 학파의 학설체계를 말한다.
좋은 의미의 견은 정견(正見) 혹은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는 표현 속에 인정된다.
그 외에 심려(審慮: 심사숙고)하고 결탁(決度: 확인 판단)하는 것, 또는 심려와 결탁을 통해 형성된 의견,
주장을 말한다. 즉, 견(見)의 본질적 성질은 심려(審慮)와 결탁(決度)이다. 그러나 부파불교와 대승불교 에서는
모두 견(見)이 혜(慧), 반야(般若) 또는 지혜(智慧), 즉 판단작용 또는 식별력의 일종이라고 봤다.
불교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견(見)은 바른 견해나 주장인 정견(正見)과 진리에 어긋나는 잘못된 견해나
주장인 부정견(不正見), 악견(惡見) 또는 사견(邪見)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지만, 5견(五見)의 경우처럼
부정견(不正見), 악견(惡見) 또는 사견(邪見) 등 부정적인 의미를 가리키는데 사용된다.
견의 분류에는 2견 · 4견 · 5견 · 7견 · 8견 · 10견 · 62견 등이 있다. 대표적인 분류로는 8견(八見)을 들 수 있다.
<구사론>에 따르면, 견은 유신견(有身見), 변집견(邊執見), 사견(邪見), 계금취(戒禁取), 견취(見取)의 5견(五見)
또는 5염오견(五染汚見: 5종의 그릇된 견해)과 세간정견(世間正見), 유학정견(有學正見), 무학정견(無學正見)의
3정견(三正見)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을 통칭하여 8견(八見)이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특기할 사항은 <구사론>에 따르면 8정도의 정견(正見)이 세간정견, 유학정견, 무학정견의
3가지로 세분돼 정의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간정견은 유루혜(有漏慧)에 속하고, 유학정견과 무학정견은
무루혜(無漏慧)에 속하며, 무루혜의 일부라도 성취하면 성자가 된다고 한다.
※ 세간정견(世間正見)---세속의 정견(바른 견해)을 말한다.
※ 유학정견(有學正見)---유학(有學:무루지를 성취한 성자)의 정견. 예류자 이상의 경지를 실현한 예류자(豫流者), 일래자(一來者), 불환자(不還者)를 유학(有學, sekha/sekkha)이라 한다.
※ 무학정견(無學正見)---무학(無學:성도를 모두 성취한 성자)의 정견, 아라한(阿羅漢)은
더 배울 게 없는 위 이므로 무학이라 한다. 따라서 아라한의 정견을 말한다.
※ 유루혜(有漏慧)---무루혜가 성인의 지혜인데 비해 유루혜는 범부의 지혜이다.
※ 무루혜(無漏慧)---더러운 번뇌와 무명(無明)이 없어지고 공(空)ㆍ무아(無我)의 상주실상(常住實相)을
확실히 깨닫는 지혜를 무루혜라 한다. 모든 지혜 가운데 가장 높은 부처님 지혜가 무루혜이다.
그리고 견과 비슷한 개념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이 동일하지는 않다.
그러므로 전후 문장의 맥락을 살펴서 파악해야 한다.
• 관(觀) - 자기 생각을 떨쳐버리고 보는 것.
보통 일상적으로 사용할 때는 관(觀)이라는 말 속에는 일관성 있는 생각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 사(思) - 의도가 있는 생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분별이나 판단의 뜻도 있다.
• 념(念) - 생각이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된다. 망념(妄念)이라고 하면 헛된 생각이다. 기억이나 새김의 뜻으로
사용될 때도 있다. 팔정도의 정념(正念)은 바른 기억이나 바른 새김으로 봐야 할 것이다.
• 상(想) - 어떤 대상을 떠올리는 것.
* 견견 문문 각각 지지(見見聞聞覺覺知知)---언제나 보이는 것은 보기만 하고, 들리는 것은 듣기만 하고,
느끼는 것은 느끼기만 하고, 아는 것은 알기만 하라. 즉, 볼 땐 볼 뿐, 들을 땐 들을 뿐, 느낄 땐 느낄 뿐,
알 땐 알 뿐! 이처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완전 연소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성품의 자리인 시비분별이 없는
그 자리를 바로 봐야 하는 것이다. 그러할 때, 거기에 그대는 없다. 이것이 고통의 소멸이다.
- <바히야경(Bahiyasutta)>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는 세상사 많은 현상과 사물들을 제대로 보고 듣고 느끼며, 또 알지 못하고 아상(我相)에 사로잡혀 왜곡해
보고 듣고 느끼며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왜곡된 채 그 내용을 전달해주고 있으며,
또 다른 그 사람은 거기에 보태고 비틀어서 다시 전달해주고 있다. 부처님의 이 가르침은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정확히 보고 ‘나’를 놓아버릴 때에 자유로운 ‘나’가 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바히야경>은 <우다나경(Udana)> 제1품인 ‘깨달음의 품’ 10번째에 나오는 경(법구경은 두번째 경)이다.
<우다나경>에서 우다나(優陀那)란 감흥 해 저절로 나오는 말로,
한역하면 자설(自說) 또는 무문자설(無問自說)이 된다.
<우다나경>은 부처님의 우다나를 모은 것으로, 빠알리어 경장 중 소부(小部, 쿳다까니까야)의 세 번째 경이다.
* 견(見)과 관(觀)---사람이 사물을 보는 데는 단순히 눈에 비치는 대로 피상적으로 보느냐
마음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견(見)과 관(觀)으로 구분된다. 견(見)은 눈에 비치는 대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즉, 견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며 벽이라고 하듯이 단편적인 면밖에는 볼 수 없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는 시각을 관(觀)이라 한다. 대체로 이렇게 견과 관에 대한 해석이 일반적이다.
흔히 대화를 할 때, "제 사견(私見)입니다만"하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사견이 전형적인 견(見)이다.
사견은 자기가 자라온 여건, 환경, 교육, 경험치를 바탕으로 형성된 일종의 이데올로기가 내면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사이에 의견 차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내 기준으로 보면 상대의 의견은 모두가 틀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말한다.
가까이 있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을 ‘견(見)’이라 하며, 멀리 있는 것을 큰 눈으로 살피는 것을 ‘관(觀)’
이라 한다고, 그리하여 남의 어려움을 살필 때에는 한 걸음 더 다가가서 ‘견(見)’의 눈으로 봐야 하며,
남의 잘못을 대할 때에는 한 걸음 뒤에서 대자대비 한 큰 눈으로 살피는 ‘관(觀)'의 눈으로 봐야 하고,
또 내 잘못에는 ‘견(見)’의 눈으로 자세히 살펴야 하며, 내 어려움에는 한 걸음 물러서서 ‘관(觀)’의 눈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극히 통속적인 해석이다.
그리고 견(見)은 낮은 수준의 단어이고, 관(觀)은 보다 심오한 개념의 단어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극히 위험한 해석이다. 견(見)도 정견(正見), 지견(知見)과 같이 수준 높은 말에도 쓰인다.
초기경을 통해서 견과 관에 대해서 살펴보면, 중국에서 관으로 옮긴 원어는 일단 위빠사나(vipassanaa)로
이해된다. 지관(止觀)이라 할 때, 관이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vipassanaa를 관으로 옮긴 경우는 법의 무상ㆍ고ㆍ무아를 통찰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중국에서 견으로 옮긴 대표적인 용어가 정견(正見, sammaa-dit*t*hi)으로서 정견(正見)은 사성제에 대한
이해와 연기를 아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그런데 딧티(dit*t*hi)가 단독으로 쓰일 때는 거의 대부분
삿된 견해(邪見)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 외에 지견(知見, ñāṇadassana)이라는 말은 안목(眼目)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후대로 올수록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견이니 관이니 하는 술어를 쓸 때,
확실한 기준 없이 쓰는 사람 입장에서 그냥 썼다. 그러므로 견과 관을 뚜렷이 구분하기가 힘들어졌다.
* 견도(見道, 산스크리트어 darśana-mārga)---초기불교에 있어서 성문과 보살 수행단계인 삼도(三道)의
첫 단계로서 통속적으로 견성오도(見性悟道)한 위치를 말한다. 번뇌가 없는 청정한 지혜에 의해 4제(四諦)와
12연기(12緣起) 도리를 깨닫는 수행과정을 말한다. 4제를 명료하게 관찰해 견혹(見惑)을 끊고,
무루(無漏)의 바른 지혜를 발휘해 4제와 같은 진리를 통찰하는 단계이므로 견제도(見諦道)라고도 한다.
불교에서는 견도 - 견성오도를 성취한 유정을 성인 또는 성자라 부른다.
견도(見道)는 부파불교의 수행계위인 성문의 4향4과에서는 수다원향(須陀洹向=예류향/預流向)에 해당하고,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의 5위(五位)의 수행 계위에서는 제3위인 통달위(通達位)에 해당하며,
대승불교(화엄경) 일반의 52위(五十二位)의 보살 수행계위에서는 마지막인 제41위에서 제50위까지의
십지(十地) 가운데 첫 번째 계위, 즉 환희지(歡喜地=初地)에 해당하는데,
이 이상의 단계에 이른 사람을 성자라고 한다.---→삼도(三道) 참조.
※ 삼도(三道)---견도(見道), 수도(修道), 무학도(無學道)를 말함.
※ 예류향(預流向)---초기불교 성문(聲聞)의 수행 단계인 수다원(須陀洹), 사다함(斯陀含), 아나함(阿那含),
아라한(阿羅漢) 사과(四果) 중 수다원을 예류향이라 함.
※ 통달위(通達位)---유식설(唯識說)에서, 수행과정을 다섯 단계로 나눈 수도 5위(修道5位) 중 셋째 단계.
※ 10지(十地)---<화엄경>에 천명한 보살수행단계 52위 중 제41에서 제50까지가 10지이다.
* 견경심불기(見境心不起) 명불생(名不生)---<선가귀감> 38장부터 40장까지는 아름다운 삶으로서
계율의 중요성을 이야기했고, 41장은 계율을 잘 지켜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요한 선정의 힘이 길러진다고
했으며, 42장에 고요한 선정에서 나오는 맑고 깨끗한 부처님 지혜로 세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모습을
알게 된다고 했다. 이 내용을 정리해 <선가귀감> 43장에서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아름다운 삶으로서의 계율을 ‘불생(不生)’이라 하고, 이 불생은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고요한 선정이니 ‘무념(無念)’이라 부를 수 있으며,
이 무념은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지혜이니 해탈이라 부를 수 있다고 했다.
「견경심불기(見境心不起) 명불생(名不生) 불생명무념(不生名無念) 무념명해탈(無念名解脫)」
어떤 경계를 마주해도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불생(不生)이라 하고, 불생은 무념(無念)이라 하며,
무념은 해탈(解脫)이라 한다.
이 글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4권 ‘무주전(無住傳)’에 나오는 글로서 그 앞뒤 내용을 보면 불생이
무념이며 해탈인 것을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묻기를, 어떤 것이 ‘불생(不生)’이고 ‘불멸(不滅)’이며
어떻게 해야 ‘해탈’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니, 스승이 답변했다.
“어떤 경계를 마주해도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불생’이라 하고,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 멸할 것이 없으니 ‘불멸’이다.
이미 생겨나거나 멸할 것이 없으면 어떤 경계에도 얽매이지 않으니 그 자리가 바로 ‘해탈’이다.
‘불생’을 ‘무념’이라고도 하니, 무념은 생멸할 것도 없고 구속될 것도 없으며 해탈할 것도 없다.”
어떤 경계를 마주해도 그 경계에 집착해 일어날 마음이 없으니 이를 ‘불생’이라 하고, 이 불생에는 어떤 경계에
집착해 일어나는 마음 자체가 없으니 이를 ‘무념’이라 한다. 무념에는 집착하는 마음 자체가 없으니 본디 거기에 얽매일 일이 없어 해탈할 것도 없다. 해탈할 것이 있다면 어떤 경계에 얽매이는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니,
해탈할 것도 없는 이 자리야말로 ‘참 해탈’인 것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불생이 무념이고 무념이 참 해탈이니, ‘불생’과 ‘무념’과 ‘참 해탈’은 그 바탕이 하나라는 뜻이다.
* 견류(見流)---그릇된 견해, 번뇌의 일종이다. 견폭류(見暴流)라고도 한다.→견폭류(見暴流), 사폭류(四瀑流) 참조.
* 견문각지(見聞覺知)---견(見) ‧ 문(聞) ‧ 각(覺) ‧ 지(知)가 합쳐진 것으로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을 총칭하는 말이다. 견(見) ‧ 문(聞) ‧ 각(覺)은 전5식의 마음작용에 해당하고,
지(知)는 제6 의식과 이보다 더 심층의 식(識)들의 마음작용에 해당한다.
따라서 견문각지(見聞覺知)는 마음[心], 즉 6식 또는 8식이 객관세계를 접촉하는 것을 총칭한다.
마음의 모든 인식활동 또는 인식기능을 통칭하면서, 그것을 견ㆍ문ㆍ각ㆍ지 네 가지로 정리한 것이다.
『여기서 각지(覺知)는 ‘깨달아 안다’는 뜻이 아니라, ‘느끼고 안다’로 풀이해야 한다.
견문각지는 불교의 인식론(유식론)에서 나온 것으로 인식기능인 여섯 가지 인식(六識) 작용 - 내지
여덟 가지 인식작용을 네 가지로 정리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눈(眼), 귀(耳), 코(鼻), 혀(舌), 피부(身), 마음(意)의
여섯 가지 인식기관이 있고, 이 기관들은 각각 고유의 인식기능이 있다. 그 기능의 작용을 보면,
눈은 보고(見), 귀는 듣고(聞), 코는 냄새를 맡으며(聞), 혀는 맛을 느끼고(覺), 피부(온 몸)는 촉감 등을 느끼고(覺), 마음은 앞의 다섯 가지를 통합하거나 고유의 기억작용 등과 연계해서 판단하고 아는(知) 것이다.
다시 말해 견ㆍ문ㆍ각ㆍ지(見聞覺知)는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이 지닌 탁월한 모든 능력을 요약한 것이며,
그 작용이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는 충고를 듣는다. 그것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뜻이 숨어 있다.
분명 탁월한 능력이기는 하지만 오직 그것만이 진실이라고 집착하게 되면 그때부터 자신이 자신을 속이는
묘한 상황이 전개된다. 흔히 인간이 다른 생명체에 비해 우월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이 탁월한 인식능력을 왜 불교에서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인식능력 자체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주인 노릇하게 두지 말라는 말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보고, 듣고, 느끼고, 분별’ 해서 아는 그것이 가장 확실하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문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없다 - 그만큼 감각이라는 게 부정확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게 되면 다른 사람과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바로 갈등과 싸움으로 이어져 큰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
세상에서 벌어졌던 엄청난 전쟁도 그 시작은 단순한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처님은 낱낱의 생각들이 절대적으로 영원히 옳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가르쳐 주셨다.
따라서 이미 일어난 그 생각에 절대적 가치를 두지 말고 치우침이 없는 중도적 지혜로 밝게 보라는 말이다.
중도적 지혜를 발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생각이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며, 번갯불 같은 것임을
밝게 봐야 한다. 한 생각이 일어나 끌려가기 시작하면 그림자처럼 고통이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이 일어나기 전의 그 자리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송강 스님
그러니 견문각지란 육식(六識) 작용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중생은 견문각지로 살아간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와 혀와 몸으로 느끼고, 의식으로 많은 것을 안다[覺知].
이것을 분별식(分別識)이라고 한다. 각지(覺知)는 분별하여 안다. 이건 산이다, 이건 몸이다, 이건 넓다, 작다,
좋다, 싫다,… 이렇게 미추호오(美醜好惡)를 분별한다. 그런데 이러함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순전히
자기 혼자 생각이기 때문이다. 견문각지(見聞覺知)에서 성성적적(惺惺寂寂)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 수행이다.
* 견번뇌(見煩惱)---<대지도론>에 견애 이번뇌(見愛二煩惱)를 설하고 있다. 여기서 견번뇌란 존재의 이치에
대한 번뇌, 이성(理性)에 의한 번뇌, 즉 유신견(有身見)ㆍ변집견(邊執見)ㆍ사견(邪見) 등과 같이,
이치를 명료하게 알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는 지적 번뇌를 말한다. 이에 반해,
애번뇌(愛煩惱)란 탐(貪)ㆍ진(瞋)ㆍ치(癡) 등과 같이, 대상에 집착함으로써 일어나는 심리적 번뇌를 말한다.
* 견분(見分)과 상분(相分)---유식학(唯識學)에서 설하는 4분설에 나오는 말이다.
견분(見分)은 대상을 인식하는 것을 말하고, 상분은 인식대상을 말한다. 따라서 견분은 보고 인식하므로 주관이고, 상분은 보이는, 보여지는 대상, 즉 인식주관에 드러난 인식대상인 객관을 말한다.
견분ㆍ상분 모두 마음 작용인데, 견분은 인식하는 장(場)이 되고, 상분은 인식하는 대상이다.
즉, 견분은 사물(事物)을 인식하는 주체인 심식(心識) 작용이고, 그 반대가 인식의 대상인 상분(相分)이다.
여기서 주관의 부분을 견분(見分)이라 하고, 객관의 부분 즉 주관에 나타나는 영상(影像)을 상분(相分)이라고 한다.
견분은 눈으로 빛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아보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촉감을 느끼고,
뜻으로 법을 알아보는 견ㆍ문ㆍ각ㆍ지(見聞覺知)로서 사물을 마음 안에서 인식하는 내용이다.
이에 비해 상분은 마음속에 객체인 대상으로 만들어 놓은 내용이다.
이와 같이 견분은 대상을 인식하는 주관의 작용이므로, 수행에 있어서 만일 견분이 없다면 관조(觀照)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유식(唯識) 4분설(四分說), 견문각지(見聞覺知) 참조.
* 견사혹(見思惑)---천태종의 번뇌론에, ① 견사혹(見思惑) ② 진사혹(塵沙惑) ③ 무명혹(無明惑)의
삼혹(三惑)이 있다.
그 중 견사혹(見思惑)은 우리들 마음속에 있으면서 불도의 성취를 방해하는 번뇌를 말하는데,
견혹(見惑)과 사혹(思惑)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견혹(見惑)은 신견(身見), 변견(邊見), 사견(邪見), 견취견(見取見), 계금취견(戒禁取見)의 5리사(五利使)를 말하고, 사혹(思惑)은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ㆍ의(疑)의 오둔사(五鈍使)를 말한다.
5리사와 5둔사를 합쳐 십사(十使)라 하니, 견사혹은 결국 십사를 말한다.
여기서 ‘이(利)’는 예리하다는 뜻이고, ‘사(使)’란 번뇌를 뜻한다. 이것을 끊는 순서로는 수행단계 수도5위의
견도위(見道位)에서 견혹(見惑)이 끊어지고, 수도위(修道位)에서 사혹(思惑)이 끊어진다고 한다.
※ 견도위(見道位)와 수도위(修道位)---대승불교에서 보살이 성도하기 위한 다섯 단계 수행과정을 수도5위라
하는데, 이에는 자량위(資糧位), 가행위(加行位), 견도위(見道位/통달위), 수도위(修道位/수습위),
구경위(究竟位)의 다섯 단계가 있으며, 그 중에 제3위가 견도위이고, 제4위가 수도위이다.
특히 견혹(見惑)이란 사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이로 인해 일어나는 잘못된 번뇌를 말하며,
이 견혹을 이혹(理惑)이라고도 한다. 관념적이고 지적인 번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념적이고 지적인 번뇌인 이혹(견혹)은 그 도리를 알면 단번에 해결할 수가 있다.
즉, 알게 되면 자연히 해결돼 없어지는 번뇌, 이를 일컬어서 견혹이라 한다.
특히 견혹(見惑)이란 사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이로 인해 일어나는 잘못된 번뇌를 말하며,
이 견혹을 이혹(理惑)이라고도 한다. 관념적이고 지적인 번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념적이고 지적인 번뇌인 이혹(견혹)은 그 도리를 알면 단번에 해결할 수가 있다.
즉, 알게 되면 자연히 해결돼 없어지는 번뇌, 이를 일컬어서 견혹이라 한다.
그리고 사혹(思惑)이란 수혹(修惑)이라고도 하는데, 구생혹(俱生惑)이라 해서 태어남과 동시에 따라오는 번뇌이다. 견혹(見惑)처럼 분별의 잘못으로 일어나는 번뇌가 아니라, 훈습적이고 감정상의 미혹이기 때문에
떨쳐 버리기가 오히려 어렵다. 견혹이 후천적인 번뇌라면, 사혹은 선천적인 번뇌이고,
견혹은 이론적이고 사상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사성제의 이치만 바로 알면 바로 해결되지만,
사혹은 올바른 수행에 의해서만 닦아 없앨 수 있다.
번뇌를 극복하는 해탈 사상은 대 ․ 소승을 막론하고 불교수행의 근본대의가 돼 있다.
헌데 대승불교가 일어나고부터 번뇌는 꼭 끊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번뇌를 그대로 두고도
수행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꼭 번뇌를 끊으면서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번뇌를 끊지 않고
그대로 두고 수행을 한다는 말이다. 잘못 들으면 큰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 말이지만,
번뇌가 일어나도 그 번뇌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 견삭(羂索)---견(羂)은 올무 견. 삭(索)은 색이라고도 하는데, 새끼 삭이다. 견(絹)은 새나 짐승을 잡는 그물,
삭(索)은 고기를 낚는 낚시 줄에 비유해서, 그 그물을 번뇌의 산야에 두루 펴서 번뇌중생을 얽어 잡아내고,
또는 낚시 줄을 생사윤회의 고해에 드리워 고뇌중생을 낚아챈다는 뜻이다.
곧 대자대비의 그물을 던져 펴서 거기에 걸리면 누구도 빠져 나갈 수 없다.
그리하여 모두를 구제하는 관음보살이라 해서 불공견삭관음(不空羂索觀音)이라 한다.
* 견상(見相)---3세(細)의 하나. 능견상(能見相)의 준말임.
무명의 망념이 움직이면 이 움직임에 의해 사물을 보는 작용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능견상(能見相) 곧 견상이다. 이때의 보는 작용이라는 것은 실제 눈으로 본다는 것이 아니라 극히 미세한 인식작용을 말하는 것으로 마음이
밖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즉, 상주부동(常住不動)하는 진여가 무명(無明)을 일으키는 동시에 흔들리는 모양을 드러내고, 다시 주관적으로 반연하는 보는 작용을 일으키는데, 그 반연하는 보는 작용을 견상이라 한다.---→삼세(三細), 견처(見處) 참조.
* 견색명심(見色明心)---<벽암록>에 견색명심 문성오도(見色明心聞聲悟道)라는 선어(禪語)가 있다.
사물의 모양을 보고 거기에 응해 마음을 밝히고, 자연의 소리를 듣고 진리를 깨친다는 말이다.
이는 곧 산하대지 두두물물(頭頭物物) 일체만물 모두가 불성을 갖춘 진리의 세계 아님이 없고,
선의 세계가 아님이 없다는 무처불시선(無處不是禪)의 경계를 말하고 있다.---→문성오도(聞聲悟道) 참조.
* 견성(見性)---‘견성(見性)’이란 ‘견불성(見佛性)’의 준말로 “불성을 본다 - 깨친다”는 뜻인데,
불성은 곧 ‘중도(中道)’를 의미하며, 견성은 ‘중도의 자각’이다. 여기서 중도는 ‘탈이분법(脫二分法)’으로서,
이분법에서 벗어난 불이(不二)의 마음, 바로 부처님의 마음이다. 따라서 견성은 중도를 자각해
자기 본성(본마음)을 깨치면, 부처가 된다는 뜻이다.
견성의 ‘성(性)’은 본성을 가리킨다.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견성이란 본래의 자기면목,
즉 본시 그대로의 자기 본성(本性)을 본다 ― 깨닫는다는 뜻이다. 보통 깨달음의 경우 견성이라 하고,
일반적 지식은 견해라 한다. 즉, 진리의 영역을 견성이라 하고, 지식의 영역을 견해라 한다.
견성이란 말은 육조 혜능(慧能, 638~713) 대사로부터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학설이다.
과연 달마(達磨, ?~528) 대사가 중국에 와 "이심전심 견성성불(以心傳心 見性成佛)"이란 말을 했는지
역사적으로 쉽게 확인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혜능 이전엔 ‘관조(觀照)’ 또는 ‘적조(寂照)’로서 깨달음을
보편화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혜능이 ‘조(照)’ 대신에 ‘견(見)’을 넣어 "견성"이라고 한 것이다.
관조와 적조가 편견에 빠지기 쉬웠던 데 비해 견성은 혜능 당대에 성불로까지 파악됐던 것은 흥미롭다.
세상을 지식으로 보나 지혜로 보나 형상에는 변함이 없지만 다른 점도 있다. 우리의 인식, 다시 말해서
안식(眼識)의 허망함을 알고, 안식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지 않는 무상(無想)의 상태가 견성이다.
본연의 자기는 항상 존재하는데 어째서 보지 못할까, 생각에 번뇌 망상이라고 하는 구름이 계속 덮여 있어서
하늘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과 같다. 그 흐림을 걷어내고 본성을 보는 것이 견성이요,
진리의 발견이고, 깨달음이다. 결국 견성(見性), 성불(成佛), 해탈(解脫), 득도(得道), 돈오(頓悟), 혜오(慧悟),
확철대오(廓徹大悟), 깨우침, 한 소식 등이 모두 같은 말이다.
달마(達磨) 조사, 그리고 육조 혜능(慧能) 선사도 성품을 보면 ― 각자의 본래면목(본성)을 보면,
부처를 이룬 것과 같다[견성성불(見性成佛)]고 가르쳤고, 그 가르침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인간의 본성은
불성(佛性) 그대로인데, 경계에 따라 본성이 흐려지는 것이므로, 그 흐림을 걷어내고 본성을 보는 것이
깨달음이라 했다. 즉 모든 망념과 미혹을 버리고 자기 본래의 성품인 자성(自性)을 깨달아 아는 것이 견성이다.
부처의 성품이 있는 것과, 부처의 성품을 발견하는 것과, 부처의 성품을 완전히 드러낸 것에는 차이가 있다.
부처의 성품을 한번 힐끗 봤다고 부처가 바로 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중생에겐 불성이 있지만 가려져 있다.
중생과 부처의 차이는 바로 불성이 가려져 있느냐, 완전히 드러나져 있느냐 하는 차이다. 뭐가 가리느냐,
바로 망념에 물든 내 마음이 가리고 있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라, 내려놓으라고 하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쓰는 이 마음, 움직이는 이 마음은 허상이고, ‘나’가 아니다. 그냥 생겼다가 사라지는 생각의
파편들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구름에 가린 하늘과 같다. 그래서 하늘의 태양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하지만 태양은 언제나 거기에서 빛나고 있다. 그 구름을 단 한방에 모조리 치워 버리는 것이
돈오돈수(頓悟頓修) 이고, 꾸준히 수행을 하면서 조금씩 치워 나가는 것이 돈오점수(頓悟漸修)이다.
* 견성성불(見性成佛)---‘견성성불(見性成佛)’은 자기본성을 보면, 즉 자기 자신의 본래 모습[참나]을
깨쳐서 알면 부처가 된다는 말이다. 이는 중국 선종(禪宗)의 개조 달마(菩提達摩, ?~528) 대사의 가르침으로,
인간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불성(佛性)을 깨달아 자기 자신이 본래 부처였음을 깨치게 되면
그대로 부처가 된다는 말이다.
이 ‘견성성불’은 자기 자신이 곧 부처임을 깨쳐야 한다는 선종(禪宗)의 이치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이다.
‘견(見)’이란 눈으로 본다 ‧ 돌이켜 본다 ‧ 터득 한다 ‧ 생각 ‧ 변별 ‧ 견해라고 하는 뜻이 담겨있다.
보는 것과 깨쳐 아는 것이라는 뜻이 함께 함축된 글자이다.
그리고 견성(見性)의 ‘성(性)’은 본심(本心), 본성(本性)을 말한다. 마음의 본질, 마음의 주체,
마음의 실체로서 선문에서는 불성(佛性), 자성(自性) 또는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 한다.
그리고 ‘견성(見性)’이란 ‘견불성(見佛性)’의 준말로 “불성을 본다 - 깨친다”는 뜻인데,
불성은 곧 ‘중도(中道)’를 의미하며, 견성은 ‘중도의 자각’이다. 따라서 견성성불은 중도를 자각해
자기본성(본마음)을 깨치면, 부처가 된다는 뜻이다. 본래의 자기면목(自己面目), 본시 그대로의 자기본성을
깨치면 성불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진리는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으므로 수행을 통해 자기 본래면목을 찾게 되면 그것이 곧 성불이 된다는 말이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다. 그런데 그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음에 도달 하려는 것이 교종(敎宗)이라면, 선종은 부처님의 마음을 통해 깨달음에 도달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학수행이나 계율을 통해 마음을 맑게 함으로써 지혜를 얻는 교종과는 달리, 선종에서는 단도직입적(單刀直入的)으로 단번에 깨쳐서 - 돈오(頓悟)하면, 부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문득 깨쳐서 자기 본래의 성품을 바로 볼 수 있게 되면, 그렇게 해 자기 안에 있는 부처를 찾으면, 즉 견성하면 바로 부처가 되는 것이다.
이는 누구나 본래 자기 안에 부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견성성불은 중국 선종의 6조 혜능(慧能, 638~713)을 시조로 하는 남종선(南宗禪)에서 강조했다.
견성성불이라는 말이 처음 나온 것은 중국 양(梁)나라시대 보량(寶亮, 444~509)이 지은
<대반열반경집해((大般涅槃經集解)>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이 확립된 것은 혜능의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부터이다.
<육조단경> ‘반야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우리 본래 스스로의 성품이 청정하니
만약 자신의 이 마음을 알면 그대로 견성이라, 모두 도를 이루리라(我本元自性淸淨 若識自心見性 皆成佛道).
우리의 본래 성품이 바로 부처이며, 이 본래 성품을 떠나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本性是佛 離性無別佛)”.
이러한 생각은 부처는 하나가 아니라 ‘모든 중생이 스스로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대승의 불성설에서
나온 것으로, 이것을 선불교에서 ‘마음이 곧 부처(心卽佛)’이며,
‘자성이 부처(自性是佛)’라는 심성(心性) 이해로 받아들여 성립시킨 사상이 곧 견성성불설이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달마의 견성성불설을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달마는 사람들이 헷갈리기 좋도록 교묘하게 암시와 최면을 걸고 있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구절 속에
들어있는 '성불(成佛)'이 그것이다. 이 한 마디 때문에 사람들은 달마의 선이 마치 성불의 첩경인 줄로
깜빡 속고 말았다. 성불, 부처가 되라는 소리다. 그런데 문제는 달마가 말하는 부처는 신선이지,
석가세존이 이루신 부처가 아니다. 그 방법도 석가세존이 가르쳐주신 방법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달마는 직지인심(直旨人心)해서 견성(見性)하면 그 자리에서 성불(成佛)할 수 있다고 헛소리를 했다.
공부도 필요 없고, 경전도 소용없으며, 근기도 막론이고, 아저씨나, 아줌마나 할배나 할매나, 심지어 개나 소나
전부 자기 마음 하나 척 바로 보고 자기 본성을 척 보면 곧바로 부처가 된다고 했다. 그런데
달마 이후 천년이상 지나도록 마음 하나 바로 보고 곧바로 앉은 자리에서 성불한 사람이 과연 있는가.”
그리고 견성성불 에서 ‘불(佛)’은 부처님이 아니라 ‘아라한(阿羅漢)’을 지칭한다는 주장도 있다.
“부처님은 초기불교 경전인 <5부 니까야> 를 통해서 자신의 오온을 먼저 관해 ―
오온의 성품을 통찰해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 열반을 성취함으로써 생사윤회를 벗어날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런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지혜를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려면
우선 선업과 공덕이 있어야 한다. 보시(보살행)하고 계율을 지키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7불통게(七佛通戒)에도 나오는 제악막작(諸惡莫作)과 중선봉행(衆善奉行)이다.
이렇게 선업의 힘이 쌓이면 사마타 수행을 거쳐 자정기의(自淨其意) 하면, 위빠사나 수행으로 있는 그대로
아는 통찰지혜, 오온의 무상 ․ 고 ․ 무아를 직관하는 지혜. 그리고 고ㆍ집ㆍ멸ㆍ도 사성제를 경험으로 체득하는
지혜가 생긴다. 그 결과는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 모든 갈애가 소멸된 아라한이 돼 생사윤회의 고리를
잘라버리게 된다. 이런 초기불교의 가르침은 지금까지도 7불통계로 잘 전수돼왔다.
그러나 부처님 입멸 후 수백 년이 지나자 부처님 당시의 무상 ․ 고 ․ 무아를 통달해 윤회를 끊는 것보다
대승불교라는 이름으로 보살행을 하며 모든 중생이 성불할 때까지 윤회를 끊지 않고 어딘가에
태어나고 죽고 또 태어나고를 반복하는 사상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말씀하시지 않은 수많은 보살이 출현하고 수만 억 불국토와 수만 억 부처님이 출현하고,
드디어 모든 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이론까지 나왔다. 헌데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무아에 완전히 반대 되는, 재생이 아닌 환생이론으로 바뀌면서, “나는 죽을 때 몸은 버리고 마음은 어딘가에 다시 태어나 새로운 생을 사는 나의 실체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자아(아트만)사상, 즉 힌두교의 이론이 삽입된 변질된 불교가 됐다는 것이다.
내가 윤회를 끊어 완전히 소멸되는 것보다,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보살이라는 근사한 삶을 사는 나의 환생을
중생들이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이러한 현란한 이론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게 돼, 부처님 당시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뜻에서 선불교가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선불교는 대승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어 성불해 윤회를 끊는 것보다는 보살행을 강조한 것에
반발해 마음만 깨치면 부처라는 견성성불을 주장했다. 그러나 여기서의 성불은 모든 번뇌를 소멸한
‘아라한(阿羅漢)’을 지칭하는 것이다. 결코 18불공법을 지닌 부처님을 지칭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선불교의 견성성불은 오온의 성품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견성과 탐 ․ 진 ․ 치라는
모든 번뇌나 집착을 소멸한 아라한의 경지를 성불이라고 한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는 우선 보시하고 계율을 지키며 선업을 행하는 것을 중요시했고,
거기에 다시 오온의 무상 ․ 고 ․ 무아를 통찰하는 수행을 강조했으며, 그 결과로 해탈 열반(아라한)을
성취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불교가 부처님 입멸로 힘을 잃게 되면서 해탈 열반보다는 보살행을 주장하는 대승불교가 일어났고, 다시 이런 대승불교에 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선불교가 일어나면서 보살행을 강조하지 않고 우선 자신의 견성성불―아라한이 되는 것을 주장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왔다 갔다 하다가보니 더 후퇴해버린 것이다.---→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 참조.
* 견성성불(見性成佛)과 화두 참선---참선을 하면서 화두를 들었으면 그 화두를 깨쳐야 된다고 하는데,
화두를 깨친다는 말은 견성성불 한 것은 아니다. 다만 화두의 의미를 안 것일 뿐이다.
화두를 깨쳤다는 것은 별다른 것이 아닌 것으로 두뇌 세포가 더 많이 활성화 되거나
정신이 좀 맑아 진 것일 뿐이다. 그런데 화두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첫째, 경전과 조사들의 어록을 통해 언어 문자로써 짐작하고 추측하는 것으로는
화두를 참으로 안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화두란 법외지법 물외지물(法外之法 物外之物)을 가리키는 것으로
화두의 언어란 단순히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둘째, 화두라는 의식의 틀을 홀연히 깨지고, 그 너머 진여(眞如) 세계를 직관하는 것으로,
이것을 화두를 깨쳤다는 것인데, 곧 견성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견성했다고 곧 성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견성즉성불(見性卽成佛)’이라는 말이 있으나 사람마다 근기가 다르므로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래서 견성성불론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있는 것이다 → ‘견성성불(見性成佛)’ 참조.
인간은 구조상 아라한(阿羅漢) 이상은 오를 수 없다. 중생은 아라한이 한계이다. 따라서
견성즉성불(見性卽成佛)이란 위험한 표현이다. 화두 참구를 통해 얻은 견성은 이제 공부의 시작에 불과하다.
자성(自性)은 단박에 깨달을 수 있으나 시작도 없는 옛날부터 무시겁(無始劫)으로 내려오면서 쌓아온
기(氣)와 습(習)은 그렇게 단박에 사라지지 않는다. 업장(業障)도 자기 힘만으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백겁동안 지은 죄업이라도 한 생각 깨쳐 광명을 보면 찰나에 없어진다 ―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일념돈탕제(一念頓蕩除)’하는 말도 이치상으로는 말이 되는듯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기 힘들다. 돈오돈수(頓悟頓修)는 오직 붓다의 화신에게만 가능하다.
흔히 선가(禪家)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새벽 별을 보고 깨쳐 붓다가 되셨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확철대오(廓撤大悟) 했다고 해서 붓다라고 할 수 없다. 오랜 생(生) 동안 여러 단계와 관문을 통과해서
불신(佛身)을 얻어야 붓다가 되는 것이다. 대오견성은 아라한 자리에 이른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비관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 견성성불 요익중생(見性成佛饒益衆生)---안으로는 자기 자신의 본성을 밝고 바르게 보아 앎으로써
정각(正覺)을 이루어 성불할 것이며, 밖으로는 중생을 널리 구제해 이롭게 한다는 가르침이다.
대승불교에서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과 같은 말이고, 요익중생(饒益衆生)의 경우,
우리역사의 홍익인간(弘益人間)과 비슷한 말이다.---→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참조.
* 견성오도(見性悟道)---견성과 오도를 합친 말이다. 견성은 본래성품을 깨닫는 것이고,
오도는 번뇌를 해탈하고 부처의 지혜를 얻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본래성품을 찾아 깨달으면 번뇌 망상을
해탈하고 반야의 지혜광명을 얻어서 부처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말이다.
간화선에 있어서 화두를 가지고 자신의 성품을 잘 관찰하면 도를 깨달을 수 있고,
부처의 경지가 될 수 있다는 말로서 견성성불(見性成佛)과 같은 말이다.
그러나 선종(禪宗)에서 말하는 견성(見性)과 부처님의 정각(正覺)은 다르다.
견성(見性)은 자기에게 있는 불성(佛性)의 본바탕을 보는 것인데, 그 본바탕은 모든 부처님과 꼭 같다.
그러나 견성한다고 해서 부처님과 같은 육신통(六神通)ㆍ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ㆍ
사무소외(四無所畏)와 같은 만덕의 묘용(妙用)이 다 나타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선종에서 말하는 견성이 곧 석가모니불의 견성오도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러므로 고려시대의 보조국사(普照國師)께서 선사(禪師)가 참선하다가 견성한 것은 자기의 불성(佛性)을
발견한 것이니 그 불성을 발견한 뒤에 자꾸 닦아서 최후에 부처님 경지가 완성되도록 하라고 가르친 것은
만고불역(萬古不易)의 큰 교지(敎旨)이다. 이것과 달리 말하는 것은 사마외도(邪魔外道)의 소리이다.
* 견유몰유(遣有沒有) 종공배공(從空背空)---<신심명(信心銘)>에 나오는 말인데, 있음을 버리면 있음에 빠지고, 공(空)함을 따르면 공함을 등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유(有)와 공(空)을 상대로 말하고 있는데
현상적으로 보이는 일체 문제는 모두 있음과 없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논함으로써 사람 심리(心理)의 깊은 곳을 다루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의미는, “있음의 세계 즉, 세상 삶이 어렵다고 세상을 벗어나고자 하면 벗어 나겠다는 그 마음이
더 큰 문제가 되고, 공적(空寂)함을 추구하면 구하는 그 마음이 이미 공을 그르친다.”는 뜻이다.
내 몸이라고 하는 이 육신이 있는 한 결코 세상을 벗어날 수가 없다. 내 몸이 곧 세상이기 때문이다.
내 몸이 곧 세상이라면 어디로 벗어난다는 말인가? 그리고 세상을 벗어나려는 목적이 내 몸 하나 행복하고자
하는 마음이라면 그건 벗어나려는 게 결코 아니다. 이 몸에 대한 집착이다.
공(空)함의 대자유(大自由)마저 이 몸을 위해서 이용하려는 업(業)의 작용이다. 자기 생각에 자기가 속고 있다.
다만 자기 자신이 속는 줄을 모를 뿐이다.
그래서 있음을 버리려고 할수록 오히려 있음에 더 깊이 빠져들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예컨대, 사람이 어떤 일에
중독됐을 때 무조건 끊으려고 하면 오히려 몸에서 그것을 요구하는 욕구가 더 강해질 수도 있다.
또 부부지간에 살다가 한 쪽에서 바람이 났을 때, 그 바람을 막으려고 강력한 경고나 행동을 하게 되면
뜻밖에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을 사귀거나 이성교제를 할 경우,
너무 성급하게 접근하면 의심을 사서 오히려 멀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더구나 공(空)이란 이 몸을 떠나서는 알 도리가 없다. 이 몸이 세상이라면 세상 법 떠나서 공을 알려면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세상 법 떠나서 공을 찾는다면 이미 양변에 떨어진 것이다.
예컨대, 인간이 지닌 제7 말나식은 제8 아뢰야식에 저장된 과거에 지은 업들 중에서 ‘나’라고 하는 존재에 집착해 그 ‘나’란 존재를 보존하고 유지시키고 번영하게 하고자 온갖 생각을 다하고,
그 생각들을 제6 의식으로 하여금 집행하게 한다. 그러나 제6 의식은 제7 말나식의 지시를 받으면서도
현재 자기로서 해야 할 일을 분석하고 판단하고 행하는 능력이 있어 본래부터 청정한 제8 아뢰야식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도 있다. 이 욕구를 원력(願力)이라 하는데, 이 원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제7 말나식과 접전(接戰)을 벌려야 한다.
그런데 접전을 벌리게 되면 말나식도 그 동안의 업력에 의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있는 것을 없애려고 하던 것이 오히려 있음에 빠지게 되고, 공(空)하게 되려하다가 오히려 공을 등지는 사례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없애고자 하는 업의 종자를 하나하나 찾아 소멸 시켜가는 방법을 택해 서서히 진행하든지 아니면
백척간두(百尺竿頭) 진일보(進一步)처럼 백 척이나 되는 벼랑에서 떨어져 죽더라도
한발 앞으로 나간다는 정신으로 대담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그래서 상(相) 속에서 상을 떠나야 되고, 공(空) 속에서 공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세상사 귀찮다고 안 보고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보기 싫은 꼴 안 보려고 눈감고 살 수는 없다. 시각 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 보기 싫다는 그 모습이 얼마나 보고 싶은 대상인가. 보고 싶은 꼴 안 보고 시각 장애로서 살지 않으려면
오만 꼴 다 보고 살아야지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안 보고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느 선까지를 봐야 할지, 어느 것을 안 봐야 할지 하루 종일 그것을 분별하느라
아무 일도 못한다. 있음의 세계란 시시각각 변해가는 그림자인데 어떻게 환영의 그림자를 실체화 시킬 수가
있겠나? 그래서 “있음을 버리려면 오히려 있음에 빠진다”고 한 것이다.
반대로 공(空) 함을 따르면 모양도 빛깔도 없는 공을 따를 수가 없다. 공(空)을 좋아한다는 그 생각 자체가
공을 등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공(空)이란 공을 추구하는 그 생각이 끊어진 상태, 시비분별 끊어진 곳, 내가
없어진 자리이다. 내가 없어 진다면 죽거나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이 몸이 바로 이 자리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초월하고 양변을 벗어나 완전한 행복, 상락아정(常樂我淨) 무위도(無爲道)에 드는 것을 말한다. 대자유인 것이다. 그래서 “있음을 버리면 있음에 빠지고 공(空)을 따르면 공함을 등진다”고 했으니 이 얼마나 소중한 가르침인가.
* 견저자이파비(見猪子而把鼻)---옛날 어떤 스님이 공부를 하고 있는데 멧돼지가 쫓아와서 대들기에
그 코를 쥐어 잡고 소리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의 코를 잡고 있었더라는 것이다.
이런 제 정신이 아닌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모두 제 마음의 움직임 탓이므로, 마음의 틈을 타서 마(魔)가
침노해서 벌어진 일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지어내 바깥 마를 불러들인 것이다.
마(魔)란 바른 생각을 잃어버린 데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옛 말에 벽에 틈이 나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나면 마가 들어온다고 했다. 마(魔)가 본래 씨가 없는 것이라서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재주가 헛수고가 될 것이다. 그래서 정신 바짝 차려라 하는 것을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 →견효자이작고(見孝子而斫股) 참조.
* 견지(見地)---일반사회에서는 어떤 사물을 판단하거나 관찰하는 입장을 말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수행의 기틀이 잡힌 불퇴전(不退轉)의 지위를 일컫는다.
즉, 삼계(三界 -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견혹(見惑)을 끊어 다시 범부의 상태로 후퇴하지 않는 경지이다.
천태종에서는 보살 수행의 단계로서 통교(通敎) 10지(地)를 말하는데, 통교 10지는 초발심(初發心) 단계에서
부처의 지위까지를 열 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그 통교 10지 중, 제4위가 견지(見地)이다.
---→‘통교(通敎) 10지(地)’ 참조.
* 견처(見處)---견처는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로 쓰인다. 따라서 의미도 다르고, 전혀 반대 되는 의미도 있다.
① 자기가 보는 입장, 자기견해, 자기가 파악하고 있는 바란 뜻이고, ‘견(見)’은 견해, 세계관이라는 뜻이다.
② 잡다한 생각을 가진 중생들이 모여 사는 사바세계 에선 각자 제가 처한 위치(집단)에 따라 제 눈에 안경으로
제가 옳다는 아상(我相)으로 서로 다른 견해가 상충 격돌하게 된다. a 또는 a 집단은 a가 옳다하고
b 또는 b 집단은 b가 옳다 주장 고집하는 바, 그것이 제 나름의 견처(見處)인 것이다.
③ 자신이 스스로 깨달은 경지를 말한다. 비록 다른 사람은 잘 몰라도 자신이 어느 정도 깨쳤는가는 자신이 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깨쳤다고 칭찬해 주어도 스스로 볼 때 깨치지 못했다면 깨치지 못한 것이고,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몰라도 스스로가 아는 깨친 경지가 있다. 그것을 그 사람의 견처라 한다.
④ 경계는 곧 외계의 대상이고, 경계상(境界相)은 마음작용인 견상(見相)에 의해 인지되는 대상을 말한다.
망상심이 일어남에 따라 경계를 비추어 나타내는 의지적 작용이 작용할 때 거기에는 반영돼 나타 나는바
경계상이 존재한다. 그것이 견처이다. 따라서 견처란 망상심에 따르는 의지적 작용에 의해 나타난 차별의 상,
허망의 상에 불과한 것이며, 진여의 본성에 적응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망상심에 따르는
의지적 작용이 멎어 없어진다면, 거기에 비추어 나타나는 경계도 또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⑤ <구사론>에서는 견처(見處)를 유루(有漏)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다. 유루법은 유신견(有身見) 등
다섯 가지 사견(邪見) 등을 일컫는 말이므로 부정적인 말이다.
⑥ 선불교 에서는 견처(見處)를 특별하게 쓰이기도 한다. 선불교에서 견처란 자신의 본성(本性), 시비 분별하는
내 마음 본래의 성품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우주전체에 오직 하나뿐인 이 견처를 떠나서는 우리는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다. 하나뿐인 견처, 이것이 우리들 이라는 존재 자체인 동시에 이 세상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것, 우리들, 우주 삼라만상이 내 본성(本性), 견처를 떠나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말도 한다. “그래, 그렇지. 견처(見處)가 스승과 같으면 도(道)는 반쯤밖에 안 되고, 견처가 스승을
능가해야만 전수(傳受)를 감당할 만하다. 다행히 그대는 스승을 훨씬 넘어설 만한 견처가 있군.”
* 견 청정(見淸淨, 빠알리어 diṭṭhi-visuddhi)---위빠사나 수행에 있어서 마음의 청정(visuddhi)을 닦음의 일곱
단계를 칠 청정(七淸淨)이라 하는데, 그 하나가 견 청정이다. 초기경전인 <역마차경(驛馬車經/Rathaviniitasutta)
중부아함(맛지마니까야) 제24경>에 실려 있는 내용으로, 왕이 다른 지역으로 갈 때 일곱 대의 역마차를 번갈아 타고 그곳에 당도하는 것에 비유해서 7청정이 설해져 있으며, 초기불교 수행관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경이다.
7청정은 아래와 같다.
① 계 청정(戒淸淨) ② 마음 청정(心淸淨) ③ 견 청정(見淸淨)
④ 의심을 제거함에 의한 청정-도의 청정(渡疑淸淨) ⑤ 도(道)와 도 아님에 대한 지견 청정(知見淸淨)
⑥ 도(道) 닦음에 대한 지견 청정(知見淸淨) ⑦ 지와 견에 의한 청정(知見淸淨)
여기서 순서에 따라, 계의 청정은 마음의 청정을 위해서, 마음의 청정은 견 청정을 위해서,
견 청정은 의심을 제거하는 청정을 위해서, … 이런 식으로 차례대로 수행을 해서 완전한 열반에 이르기 위해
닦는 것이 7청정 수행이다. 수행 체제에서 단계적으로 먼저 계 청정이 이루어져야 계 청정을 통해
마음의 청정이 이루어지고, 마음의 청정에서 견 청정 즉 정견(正見)에 이르게 된다.
견 청정이란 ‘아는 혹은 이해하는’ 단계이다. 학교를 비유하자면, 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수업을 받거나 교과서를 읽거나 도서관에 가서 조사를 하면서 공부를 한다. 그것은 위빠사나 수행에서 심 청정(心淸淨)에 닮았다.
공부를 하고 있으면 그 내용에 대한 이해가 차츰 깊어진다. 공부하면 할수록 이해가 깊어진다.
그리고 머리가 영리해진다. 이것이 위빠사나 실천의 경우, 견 청정의 단계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자아론(自我論)’은 잘못이다. 무상(無常)이 올바르다. 삶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삶과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이 올바르다.
욕망이 있기 때문에 모두가 밝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욕망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세계는 신(神)이 창조한 것도, 우연히 생겨난 것도 아니고 인연(因緣)에 의해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등으로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납득하게 된다. 이것이 견 청정이다. →칠 청정(七淸淨), 심청정(心淸淨), 계청정(戒淸淨)참조.
* 견취견(見取見)---<법화경> 비유품에 나오는 5견[(五見=오리사(五利使)]의 하나.
그릇된 견해를 바른 것으로 간주해 거기에 집착하는 견해, 졸렬한 지견(知見)을 잘못 믿고 스스로
훌륭한 견해라고 고집하는 그릇된 견해를 말한다.
목구멍이 좁아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는 것을 흔히 견취견에 비유한다. 견취견은 자기가 한번 긍정한 것에
집착해서 절대로 고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으므로 목구멍이 좁아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는 것에 비유한다.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된 좌파들이 주로 이렇다.
불교공부를 함에도 자기마음에 드는 것만 믿고,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무시한다면 그 게 다 견취견이다.
공자님이 60대에 들면, 이순(耳順)이라고 해서 귀에 거슬리는 말이 없었다고 했다.
귀에 거슬리는 게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오래 동안 세상을 살아오면서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려서 자신만의 울타리, 그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생겨서 이순이 된 것이다. 말하자면, 깨달음을 얻어
견취견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나이 들면 오히려 똥고집이 세지는 게 일반적인데 말이다.
현실적으로는 주변사람과 잘 다투는 경우, 의견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다
결국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다다.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압적인 자세로 자기주장만 하니까 그렇다.
---오견(五見), 견혹(見惑) 참조.
* 견폭류(見暴流)---그릇된 견해, 번뇌의 일종이다. 견류(見流)라고도 한다. 사폭류(四瀑流)의 하나임.
폭류(暴流)는 범어 ogha의 번역어로, '사나운 흐름'이라는 뜻인데, 견폭류는
일체의 선(善)이 사나운 물결에 밀려 흘러내려 간다는 뜻으로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견폭류는 유신견(有身見), 변집견(邊執見), 사견(邪見), 견취견(見取見), 계금취견(戒禁取見)을 말한다.
* 견해(見解, 빠알리어 diṭṭhi)---인간은 견해의 동물이다. 인간은 매순간 대상과 조우하면서 수많은
인식을 하게 되고, 그런 인식은 항상 견해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 가지는 견해는 너무도
다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견해는 항상 무엇이 바른 견해인가라는 질문을 수반한다. 견해의 문제에 대한 고뇌를 누구보다 많이 하신 분이 바로 붓다이다. 그래서 붓다는 <디가 니까야(Digha Nikaya, 長部)>의 첫 번째가 되는
<범망경(梵網經, Brahmajāla Sutta)>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견해를 과거에 관한 것 18가지와
미래에 관한 것 44가지로 나누어서 모두 62가지로 분류해서 심도 있게 설명하셨다.
그리고 붓다는 이렇게 다양한 견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연기(緣起)의 관점으로 명쾌하게
설명해주셨다. 견해란 “느껴진 것(vedayita) 혹은 체험되고(anubhūta) 경험된 것(anu-bhavana)”으로 설명하셨다. 그리고 경험된 것은 감각기능(根)과 대상(境)과 알음알이(識)의 세 가지가 서로 조우함을 조건으로 일어나는데,
이러한 조건발생을 연기(緣起)라고 하셨다.
이렇게 붓다께서는 견해를 감각기능(6근) ‧ 감각대상(6경) ‧ 알음알이(6식), 즉 근(根) ․ 경(境) ․ 식(識)의
삼사화합(三事和合)에 기인한 감각접촉의 산물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견해에 해당하는 말이 상(想, 빠알리어 산냐/saññā)이다.
그런데 우리마음은 어느 정도의 견해(見解)ㆍ신앙(信仰)ㆍ미신(迷信)ㆍ사고(思考)ㆍ철학(哲學) 등으로
억압당하고 있을까? 사람들은 “치성을 드린다, 기도를 한다, 제령(除靈-나쁜 영을 쫓아냄)을 한다, 점을 친다,
명소를 찾아 우주의 힘을 받는다, 풍수(風水)나 방위학(方位學)에 의지한다, 아무런 신앙이 없음에도 모든 종교가 동일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종교마다 경의(敬意)를 느끼거나 위협을 느낀다, ……”,
이와 같이 끝이 없다. 따라서 견해가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라고 하는 사람은「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는 견해」에 빠져 있다.
이와 같이 견해에 갇혀 있는 것은 존재의 욕구에 갇혀 있기도 하다. 존재욕이 있으면 당연히
두려움, 공포감, 불안으로 부터도 빠져 나올 수 없다. 이것은 성냄의 감정이다. 이 두 가지(욕구와 성냄)는
무지(無知)로부터 일어난다. 요컨대「견해가 있다」라는 것은 마음이 오염돼 있는 것이다.
---→견청정(見淸淨, 빠알리어 diṭṭhi-visuddhi), 상(想 빠알리어 산냐/saññā) 참조.
* 견혹(見惑)---견혹은 2혹(二惑)의 하나로 사혹(思惑)에 대칭되는 말이다. ‘혹(惑)’이란 마음의 미혹,
번뇌를 의미한다. 그리고 견혹이란 진실의 도리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알음알이에 따라 분별하는,
사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인해 일어나는 잘못된 번뇌이고, 후천적 번뇌이다.
이에 비해 사혹이란 세간의 현상에서 일어나는 탐 ‧ 진 ‧ 치 따위 습관적 ․ 선천적 번뇌를 말한다.
견혹에는 신견(身見)ㆍ변견(邊見)ㆍ사견(邪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ㆍ견취견(見取見)의 오리사(五利使)가 있다. 견혹과 사혹, 이 두 혹(惑)을 끊는 데에는 순서가 있으니, 먼저 견혹을 끊고 뒤에 사혹을 끊어야 한다.
그리하여 견혹을 끊는 단계를 견도위(見道位), 사혹을 끊는 단계를 수도위(修道位)라 한다.
• 신견(身見)이란 나(我) 또는 나의 것(我所) 등이 실제로 있다고 생각해 모든 일을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 변견(邊見)은 사물을 한쪽으로만 보는 것이다. 사물은 모든 면에서 유심히 살펴보아야만 제대로 알 수 있는데, 한쪽에 치우친 단견(斷見) 또는 상견(常見)과 같은 견해에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편견이 이에 해당한다.
• 사견(邪見)은 인과(因果)의 이치를 믿지 않는 생각들로서 바른 인과(因果)를 뒤집어서
제 복만 구하는 삿된 견해를 말한다.
• 계금취견(戒禁取見)은 자기가 한번 부정한 것에 대해서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어디까지나 부정을 고집하는
것으로 여기서 ‘계(戒)’란 부정(否定)을 말한다. 야당이 여당이 하는 일엔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계금취견이다.
• 견취견(見取見)은 계금취견과는 달리 자기가 긍정한 것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타좌(打坐) 수행을 하다 경계가 나타나거나 빛을 보기도 하는데, 이 빛이야말로 도(道)라고 생각해
이것이 나타나지 않으면 도를 얻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바로 견취견에 빠진 것이다.
이들은 모두 견해와 관념상의 문제이다.
견혹을 때로는 이혹(理惑) 이라고도 하는데 관념적이고 지적인 번뇌이기 때문이다. 헌데 이러한 지적인
번뇌이므로 그 도리를 알면 단번에 해결할 수가 있다. 알게 되면 쉽게 해결돼 없어지는 번뇌, 이를 일컬어서
견혹이라고 한다. 이치에 관한 번뇌, 이론적인 번뇌이기 때문에, 견도위에서 견성오도(見性悟道)할 때 문득
다 끊어진다.---→오견[(五見)=오리사(五利使))], 오위(五位) 참조.
* 견효자이작고(見孝子而斫股)---옛날 어떤 스님이 좌선을 하고 있는데 상복을 입은 사람이 송장을 메고 와서,
'당신이 왜 우리 어머니를 죽였느냐?'고 달려 드는지라, 옥신각신 시비를 하던 끝에 도끼로 그 상주를 찍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기 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더라는 말이다. 참선을 하는 건 좋지만 상성성(常惺惺) 하지
않고 정신을 놓고 있었으니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신을 놓고 있은 나머지 제 생각으로
마(魔)를 지어낸 것이다. 견저자이파비(見猪子而把鼻)와 비슷한 말이다. →견저자이파비(見猪子而把鼻) 참조.
* 결(結, 빠알리어 saṃyojana, 산스크리트어 bandhana)---결은 번뇌의 다른 이름, 결박(結縛)을 뜻한다.
결박의 일반 사전적인 뜻은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두 팔이나 다리를 묶는 것'으로,
번뇌는 몸과 마음을 결박하여 자유를 얻지 못하게 하므로, 즉 중생을 미혹된 상태에 결박시켜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 해탈하지 못하게 하므로 결(結)이라고 한다. 흔히 속박(束縛) · 결박(繫縛) · 계박(繫縛)의 뜻으로
해석되고 있으며, 결에는 2결(二結) · 3결(三結) · 4결(四結) · 5결(五結) · 9결(九結) · 10결(十結) · 98결(九十八結) · 108결(百八結) 등으로 구분한다.---→구결(九結) 참조.
* 결가부좌(結跏趺坐)---수행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로서, 두 다리를 서로 교차시켜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 것.
줄여서 가부좌(跏趺坐) ‧ 결좌(結坐)라고도 하는데, 항마좌와 길상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 항마좌(降魔坐)---먼저 오른발을 왼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아,
두 발바닥이 모두 위로 향하게 하며, 손도 오른손을 밑에 두고 왼손을 위에 올려놓는다.
이는 천태종(天台宗)이나 선종(禪宗)과 같은 현교(顯敎)에서 많이 사용하며, 요가의 기본자세이기도 하다.
• 길상좌(吉祥坐)---먼저 왼발을 오른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아, 두 발바닥이 모두 위로 향하게 하며, 손은 왼손을 밑에 두고 오른손을 위에 올려놓는다.
길상좌는 밀교(密敎)에서 많이 사용되며, 연화좌(蓮華坐)라고도 한다.
이러한 가부좌의 자세는 원래 인도의 요가 수행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타마 붓다도 결가부좌의 자세로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성취했다. 이 때문에 좌불상은 모두 결가부좌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처럼 가부좌의 자세는
인도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의 기본 앉음새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남방 상좌부 불교국의 스님들은
대부분 결가부좌로 앉지를 못한다. 오랫동안 의자와 침대생활을 계속하는 동안 자신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다리가 굳어져 버린 것이다. 의자와 침대문화가 가져 다 준 부작용인 셈이다. 인간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어떤 특정한 부위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자연적으로 퇴화하고 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중국, 특히 대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침대와 의자 문화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들도 결가부좌의 자세로
바닥에 앉지를 못한다. 반면 일본인들은 의자와 침대를 많이 사용하지 않고 다다미 바닥 위에서 주로 생활하기
때문에 가부좌로 앉거나 꿇어앉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다. 현재의 한국인은 중국인과 일본인의 중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가부좌는 보다 높은 정신적 경지를 체험하기 위한 참선,
즉 명상수행에 꼭 필요한 자세일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세속의 공부를 함에 있어서도 유익한 자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안방에 침대가 물밀듯 들어오고 있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우리도 머지않아 남방의
사람들처럼 가부좌의 자세를 잃어버릴까 크게 염려스럽다. - 마성 스님 ---→가부좌(跏趺坐) 참조.
* 결사(結使, 산스크리트어 bandhana)---<법구경>에 나오는 말인데, 여기서 ‘결(結)’은 결박하다,
‘사(使)’는 번뇌란 의미이다. 그래서 결사란 몸과 마음이 번뇌에 결박당해 자유를 얻지 못하게 된 상태를 말한다. 번뇌라는 놈은 우리 마음속에 꽁꽁 맺혀 있다. 그 맺힌 것들이 우리 행동을 방해하며 복잡하고 불편한 행위로
이끌어간다. 그런 번뇌의 모습을 결사(結使)라 한다. 그리하여 우리 마음이 탐욕이나 무명에 휩싸여 사물을
바르게 보지 못하고 판단을 그르치게 된다. 이와 같이 결사란 우리의 마음을 결박해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서 탐욕(貪慾) ․ 무명(無明) ․ 사견(邪見) ․ 애착(愛着) ․ 교만(驕慢) ․ 취착(取着) 따위를 말한다.
* 결사(結社)---불교 혁신운동을 말한다. 불교내부의 잘못을 혁신하려는 운동은 시대마다 있었으나 특히 고려시대 태동한 운동을 결사(結社)라 했다. 불교를 국교로 삼은 고려시대에는 왕실과 결탁해 세속의 명예와 권력,
재물을 탐하는 승려가 많았다. 이에 몇몇 뜻있는 승려들이 모여 혁신운동을 시작한 것이 그 유래이다.
13~14세기는 무신집권 후 종파와 산문에 국한되지 않고 지방의 결사불교가 유행한 시기다.
무신집권 초기에 흥왕사, 부석사, 부인사 등 전통적인 대찰은 무신세력에 저항하기도 했으나 모두 좌절됐고,
선종을 종지로 한 수선사와 천태종을 이은 백련사를 중심으로 수행과 절제를 강조하는 결사운동이 전개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 중에서도 보조국사 지눌(知訥)의 정혜결사(定慧結社)와 요세(了世) 스님의 백련결사(白蓮結社)가 유명하다.
지눌은 수선사(修禪社: 현재 송광사)에서 <정혜결사문>을 쓰고 세속화된 호국 ‧ 기복 ‧ 미신 불교를 타파하고,
타락한 불교를 척결, 정법불교와 수행불교를 주창했다. 무신(武臣)난에 의해 정치가 혼란해지고,
부패한 승려들에 의해 교단이 타락해갈 때 일어난 혁신운동이었다.
한편 지눌과 비슷한 시기에 요세(了世)는 강진 만덕산(萬德山) 백련사(白蓮寺)를 중심으로 무신난 이후 혼란한
사회와 타락한 불교에 대한 자각과 반성을 촉구한 신앙결사로 백련 결사운동을 통해 천태종을 중흥시켰다.
그리고 최근 결사로는 1947년 가을에 결행된 봉암결사(鳳巖結社)가 유명하다.
해방 후 성철, 청담, 자운, 보문, 우봉 스님들이 문경 봉암사에 모여, ‘부처님 당시의 수행가풍을 되살리자’고
결의해, 일제에 의해 무너진 불교계의 개혁운동을 일으킨 것을 말한다.
일제하에 왜곡되고 타락했던 불교계 풍토로 인해 스님들이 수행은 뒷전이고 물욕과 권력에 눈이 어두워,
사업가나 정치인도 아닌 주제에 대형 고급차에 비단가사를 걸치고, 운동부족으로 인해 비만에 걸려 중 흉내만
내고 있었다. 따라서 성철 스님은 “중 벼슬은 닭 벼슬보다 못하다.”고 하면서, 대부분 돌중들은 봉암결사의 정신을 깊이깊이 새겨야 한다고 주장하며 조직한 것이 봉암결사였다. 그리하여 한국불교 본래의 화두선풍(話頭禪風)을 재정립하는 불교정화의 계기를 만들었다.---→수선사(修禪社) 참조.
*결생심(結生心, 빠알리어 patisandhi-citta)---주로 남방 상좌부불교에서 논의되는 말이다. 결생(結生)이란
중생이 죽어서 다음의 어떤 생이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결생심을 재생연결식(再生連結識)이라고도 한다. 인간의 식(識)이라고 하는 마음은 죽기 직전에 일어나는 마지막 마음인 사몰심(死沒心)에 의해,
즉시 다음 생의 결생심(結生心)이 일어난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의 마지막 마음이 사몰심(死沒心)인데 반해
결생심은 인간이 태어날 때의 처음 마음이다. 이 마음은 태어날 당시에 일어난 마음인데, 일생의 문제를
과보심(果報心)으로 결정하고 소멸한 뒤에 바로 다음 마음인 유분심(有分心)이 일어나서 그 마음이 평생
계속해서 생멸한다. 즉, 인간의 마음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새로운 생명에 연결 된다고 한다.
「사몰심 --> 결생심(재생연결식) --> 바왕가 찌따(유분심, 잠재의식)」
사람이 죽으면 마지막 마음은 곧바로 다음 생의 마음으로 전달된다. 그런 단계가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죽자마자 순간적으로 빠르게 다음 생으로 건너 가버리는 것이다. 너무나 빨리 변하기 때문에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다. 이러함은 사(死)와 다음의 결생(結生)은 빈틈없이 연속하고 있음을 말한다. 앞의 찰나는 사(死)이고 다음의 찰나는 결생(結生)이다.
결생심(結生心)이 생겨나면 거기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성장해 간다. 그 생명이 결생한 마음은 일생동안
유분(有分)이라는 작용을 한다. 결생심이 유분심(바왕가 찌따)에 연결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태어날 때의
마음이 일생 동안 이어진다. 이 마음이 금생의 우리들의 기본적인 마음이다. 그 기본적인 마음이 계속 이어지고, 그 기본적인 마음을 평생 동안 사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에 DNA가 구성된다.
일단 DNA의 시스템이 결정 돼버리면 죽을 때까지 어쩔 수가 없다.
최초에 조합된 프로그램으로 일생 살아 나가야 한다.
이때 일어나는 마음은 기본적으로 네 가지 마음으로 구성돼 있다.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지는 마음이다.
아라한이나 부처님께서도 태어날 당시는 이 네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네 가지 마음은 다음과 같다.
①선심(善心) ②불선심(不善心) ③과보심(果報心, 異熟心) ④무표심(無表心)
누구나 선하고, 선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과보심은 현생에 지은 업의 과보심이 아니라
전생의 업에 따른 과보심이다. 이 과보심이 한 인간의 일생을 결정하는 작용을 한다.
그리고 무표심은 원인과 결과가 없는 마음이다. 아라한이나 부처님의 경우에 선심과 불선심이 없어지고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이것이 무표심이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경우가 있다. 반면에 별 다른 노력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돈벼락을 맞아 여유 있게 사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난 신동이나 천재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모든 것이
다 신의 뜻일까. 아니면 우연의 산물일까. 불교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 모든 것이 업(業)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천재의 경우 이미 전생에 그들의 특출한 능력 기반을 닦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타고난 성향 역시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그 또한 업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은 의도적으로 한 행동인 업의 주인이고 상속자이며, 업은 그가 태어난 모태이자 친구이며 피난처 이기도 하다. 그들이 짓는 업이 선업이든 악업이든 그들은 그 업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맛지마 니까야> 135경 이른바 ‘선인선과 악인악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개인의 성향은 축적된 결과이다. 그것도 금생뿐만 아니라 과거 전생에서부터 축적돼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성향을 빠알리어로 ‘짜리따(carita)’라 한다. 짜리따는 ‘행동, 성향, 처신, 기질’이라는 뜻이다.
즉, 중생이 가지는 성벽이나 기질을 뜻한다. 중생의 성향과 기질이 다양한 것은 중생이 지은 업(業)이 다양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데 불교에서 “희론(戱論, 산스크리트어 prapanca/쁘라빤짜)”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희(戱)’는 진실이 모자라는 것이고, ‘론(論)’은 사물에 대한 생각이 진리에 맞지 않는 언론을 말한다.
따라서 희론이란 허망한 언어, 무의미한 말, 헛소리에 가까운 쓸데없는 말장난, 망언, 망상을 일컫는다.
그래서 용수(龍樹)는 <중론(中論)>에서 희론을 ‘무대 위에서 춤추는 광대’ 같은 것이라 했다.
최근 남방불교의 아비담마가 도입되면서 침체한 우리 불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 이지만
그래도 이해하지 못할 허황된 희론이 많이 보인다. 그 대표적인 것이 결생심(結生心), 사몰심(死沒心),
재생연결식(再生連結識), 바왕가찌따bhavanga citta)니 하는 것 등으로, 언뜻 보기엔 제법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깊이 사유해보면 완전히 ‘무대 위에서 춤추는 광대’ 같은 소리다.
---→재생연결식(再生連結識), 사몰심(死沒心), 바왕가 찌따(빠알리어 bhavanga citta) 참조.
* 결정심(決定心)---부처님은 <대집법문경(大集法門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무릇 수행자는 자심(慈心)을 닦아 진심(瞋心)을 제거하며, 비심(悲心)을 닦아 해심(害心)을 제거하며,
희심(喜心)을 닦아 불희심(不喜心)을 제거하며, 사심(捨心)을 닦아 탐심(貪心)을 제거하며,
무상심(無相心)을 닦아 취상심(取相心)을 제거하며, 결정심(決定心)을 닦아 의혹심(疑惑心)을 제거해야 한다.
”라고 하셨다.
위와 같이 불교에선 의혹심의 반대말이 결정심(決定心)이다. 결정심은 의심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정법(正法=진리)을 확고히 믿겠다는 의지다. 그래서 결정심은 불자가 갖춰야 할 신행조건의 하나로
열거되고 있다. 정법(正法)에 대해 의심하고 믿지 못한다면 실천행이 뒤따를 수 없을뿐더러 삼보에 대한
예경(禮敬)을 기대하기 어렵다.
<성실론(成實論)>에서도 “법을 의심하면 배움을 얻지 못하고, 스승을 의심하면 능히 공경하고 순종하지 않으며, 자신을 의심하면 배울 때가 없다. 이러한 세 가지 의심을 일으키면 도(道)에 장애가 되는 근본이다.”라고 했다.
따라서 의심을 낸다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의심을 내지 않는 것을 일러 불생의혹(不生疑惑)이라 한다.
따라서 불교의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결정심(決定心)이다. 이것인가 저것인가 망설이고 주저하는 것이 아니라
확정하는 마음, 결정하는 마음, 이 결정심이 바로 믿음이다. 결정심은 굳게 안주해서 움직이지 않는 마음.
선우(善友) 등의 가르침을 듣고 의심을 일으키지 않으며, 마음을 다해 그것을 실행하는 마음,
아미타불의 본원을 분명히 믿는 신심을 말한다.
* 결제(結制)---안거(安居)엔 하안거(夏安居)와 동안거(冬安居) 두 번 있다.
안거 기간은 대개 3달 동안인데, 그 안거를 시작함을 결제라 한다. 여름의 결제를 결하(結夏),
겨울의 경우를 결동(結冬)이라 구분하기도 한다. 안거가 끝나는 것은 해제(解制)라 한다.
그런데 결제엔 단순히 안거가 시작되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의미가 있다.
결제란 ‘맺고 억제하다’는 뜻이 있다. 그래서 승려들이 안거(安居)를 맺는 일을 결제라 하며,
입제(入制)라고도 한다. 안거 기간엔 스님들이 외출을 하지 않고 한데 모여 수행을 하는데,
스님들의 개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개성을 억제하고 다른 스님들과 화합을 하면서 수행을 한다.
수행에 참여하는 스님들은 이때 대분심(大憤心). 대포고(大怖苦). 대용맹정신(大勇猛精進)의 마음을 일으켜
수행에 들어간다. 따라서 결제란 이런 큰마음의 결심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자기의 주인공을 마음이라 하고, 불성(佛性)이라 하기도 하며, 진여자성(眞如自性) 등
여러 가지로 표현하지만 어느 하나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인생에 있어서 이 자기의 주인공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가장 보람된 일이며, 가장 행복한 일이라 한다. 결제란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한 특별한 제도이다. 마음 닦는 일일수록 어떤 마음으로 얼마나 애쓰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큰 일일수록 시작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고,
“처음 마음을 내었을 때 이미 깨달음을 얻는 것과 같다(初發心時便正覺)”는 말도 있다.
시작이 그만큼 중요하다. 그리하여 “첫걸음에 잘못이 있으면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진다(初步有錯 天地顯隔)”
이라고 하듯이 시작의 중요성을 잘 헤아린 말이 곧 결제이다.---→안거(安居, 산스크리트어 varsika) 참조.
* 결탁(決度, 산스크리트어 saṃtīraṇa)---판단하고 헤아린다는 뜻인데, 불교에서는 ‘확인 판단’이란 뜻으로
쓰고 있다.
<구사론>에 따르면 결탁(決度: 확인판단)은 심려(審慮: 심사숙고)와 함께, 정견(正見)이건 악견(惡見)이건
모든 견(見: 견해)의 마음작용의 본질[性]을 이룬다고 했다. 그래서 <구사론>에서는
"심려한 후 결탁하는 것을 견(見: 견해)이라 이름 한다[審慮為先決度名見]."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6식(六識) 중 전5식은 ‘심려한 후 결탁하는 능력’, 즉 견(見)의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이 능력은
6식 중에서 오직 제6 의식만이 가지고 있다고 말해, 전5식과 제6 의식을 분별하고 있다.
또한 ‘심려한 후 결탁하는 것’을 다른 말로는 추탁(推度: 추리판단) 또는 추구탁(推求度: 추리하고 탐구해 판단함)이라고도 한다. 추탁의 일반 사전적인 의미는 추측하다, 미루어 짐작하다, 헤아리다는 뜻이다.
* 결택(決擇, 산스크리트어 nirvedha, nairvedhika)---판단[決]해 간택(簡擇)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택(擇)이란 간택(簡擇)의 뜻으로 지혜 혹은 지혜의 작용을 말한다.
또한 택(擇)은 지혜로써 번뇌를 소멸시킨 상태, 해탈 ‧ 열반과 같은 말이다.
따라서 결택은 지혜로써 모든 의심[疑]을 결단(決斷: 판단해 끊음)해 이치를 완전하게 이해하게 된 것,
즉 이치를 완전히 알게[擇] 된 것, 이치를 체득[擇]하게 된 것, 의심을 끊고 이치를 분별함을 말한다.
따라서 결택은 바르게 판단함, 바르게 분별함, 바르게 선핵함, 이런 뜻으로 쓰인다.
예를 들어, 무루지(無漏智)로 모든 의심[疑]을 결단(決斷)해 4성제(四聖諦)의 진리를 완전히 알게 된 것,
즉 4성제의 진리를 체득하게 된 것, 이런 경우를 말한다.
* 결택정안(決擇正眼)---결택정안이라 함은 명안조사(明眼祖師)를 만나 화두를 결택(決擇)받아 대의정(大(疑情)
으로 참구해 확철대오함 으로써 부처님 가르침을 증명해 부처님 은혜를 갚는 것이다.
그런데 깨치는 정도에도 천층만층(千層万層)이 있다. 눈 밝은 선지식(善知識)이라야 잘못 깨친 것과 설익은
깨침을 판단해 줄 수 있으며, 바르고 깊게 인도해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스승 없이 스스로 깨친 것을
무사자오외도(無師自悟外道)라고 한다. 따라서 설사 혼자 깨쳤다 하더라도 스승을 찾아가서 인가(印可)를
받아야 한다. 이러함을 결택정안이라 한다. 그래서 <선가귀감(禪家龜鑑)>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한 생각을 깨친 뒤에도 밝은 스승을 찾아가 눈알이 바른가를 점검해봐야 한다
(然이나 一念子를 爆地一破然後에 須訪明師하여 決擇正眼이니라)」
또한 큰 바다와 같아서 들어갈수록 더욱더 깊어가는 것이니 작은 것을 얻어가지고 만족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리고 깨친 뒤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될 수도 있다고 경책하고 있다.
* 결합인설(結合因說)---붓다 생존 당시 바라문들은 인간의 길흉화복의 원인을 설명함에 있어서 올바른
업보설(業報說)을 채용하지 않고 그릇된 주장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 주장을 다섯 종류로 분류했다.
①자재화작인설(自在化作因說) ②숙작인설(宿作因說) ③결합인설(結合因說)
④계급인설(階級因說) ⑤우연인설(偶然因說)
그 중 하나인 결합인설은 이 세계 인생의 모든 것은 지ㆍ수ㆍ화ㆍ풍 등의 몇 가지 요소의 결합에 의해 발생하고, 그 결합 상태의 좋고 나쁨에 의해 인간의 길흉화복이 정해진다고 주장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결합상태는 우리가 태어난 때에 이미 확정돼 그것이 한평생 일정불변하게 존속하기 때문에
금세의 우리 노력에 의해 운명을 변화시킬 여지는 전혀 없다고 했다. 따라서 결합인설도 카스트제도를
합리화 시키려는 일종의 숙명론이라고 할 수 있다.---→계급인설(階級因說) 참조.
* 겸익(謙益)---백제승려. 백제 성왕 4년(526년)에 인도로 가서 상가나사(常伽那寺)에서 산스크리트어를 익혀
율부(律部)를 깊이 공부하고, 성왕 9년(531년)에 산스크리트어로 된 경전, 아비달마 논서들과 <오부율(五部律)>
을 가지고 인도 승려 배달다 삼장(倍達多三藏)과 함께 귀국했다. 겸익이 율장(律藏)을 가지고 돌아오자 성왕은
국내 고승들을 불러 겸익을 도와 번역케 하고 주석서를 짓게 했으며, 왕이 몸소 서문을 썼다고 한다.
겸익의 율학으로 백제불교는 예의와 의식에 치중하는 계율중심 불교가 됐으며,
이것이 훗날 일본 율종의 토대가 됐다.
* 경(經, 빠알리어 sutta, suttanta, 산스크리트어 sutra)---경(經)’이란 본래 지구상의 위치를 표시하는 좌표의
하나인 경도(經度)에서 온 말로서 이것이 직물(織物)의 날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경(經)은 가르침의 기본 틀, 가르침을 꿰뚫는 요점이란 의미이다.
실제로 날실을 보면 그 모양이 쭉 뻗어있어서 똑바르기 때문에 이를 우리 생활 속의 교훈에 비유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이와 같이 경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불교에서 사용하는 경전이란 그 내용이 긴 것이든지 아니면 짧은 것이든지 간에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말씀으로써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또한 부처님께서 말씀 하신 법은, 마치 실(絲)로 꽃 등을 꿰어서 화환을 만드는 것과 같이 온갖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자각한 뒤에 진리 그 자체를 설하신 것이 경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다 해도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 불교에는 수많은 경전이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데, 그 내용을 흔히 8만 4천 법문이라고 한다.
이것은 또한 중생들의 번뇌의 숫자와도 일치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부처님께서 이 모든 번뇌에 대해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알맞은 말씀을 일일이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많게 됐다는 것이다.
고대 인도에서는 일반적으로 종교 또는 학문의 기본 이론을 정리한 짧은 문장을 수타(sutta)라 불렀다.
이것을 경(經)으로 번역했다. 따라서 함부로 경이라 하지 않았다. 불교의 경우, 반드시 부처님 가르침을 문장으로 정리한 것만을 경 혹은 경전이라 했다. 그런데 수탄타(suttanta)는 잘 조직되고 정리돼 주제의 견고한 핵심을
제공하는 설법을 의미했다. 따라서 빠알리어의 경우, sutta와 suttanta, 두 말을 같이 썼다. 예컨대,
범망경(梵網經, Brahmajāla Sutta)과 합송경(合誦經, Sangiti Suttanta)의 경우가 그렇다.
---→경전(經典), 불경(佛經) 참조.
* 경(境)---근(根)의 대상, 외계의 존재, 현상, 사물, 감관(感官)과 마음에 의해 지각되고 사려 되는 대상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는 귀ㆍ눈ㆍ코ㆍ혀ㆍ몸ㆍ의(意)의 여섯 기관(6根)이 감각작용을 일으키는 대상
즉 육경(6境)을 말한다. 이들은 인간의 마음을 더럽히기 때문에 진(6塵)이라고도 한다.
경계(境界)를 의미할 때도 있다. 이럴 경우엔 마음의 상태. 경지를 말한다.
* 경계(境界, 산스크리트어 visaya)---일반적으로 경계라 하면, 영역, 영토, 변경의 끝, 국경 같은 것을 말하는데, 산(山), 강(江), 바다, 호수, 혹은 돌(경계석) 등 자연물에 의해 경계가 표시된다. 따라서 이럴 경우,
경계란 자기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 혹은 영역을 말한다. 그리고 도시와 산의 경계,
하늘과 바다의 경계 따위와 같이 서로 다른 자연물과 자연물 사이를 나타내는 말로도 쓰인다.
그러나 불교에서 경계라 함은 이런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불교에서는 어떤 한계를 경계(境界, boundary)라고
부른다.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사물뿐 아니라 느낌이나 생각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도 모두 경계가 있다. 생각이나 느낌도 다른 것과 차별돼야 식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계가 생기면 동시에 이쪽과 저쪽이 생긴다.
이쪽과 저쪽은 서로 붙어서 동시에 존재한다. 저쪽이 없는 이쪽은 상상할 수 없다. 물론 분별을 하지 않으면
경계도 생겨나지 않고 이쪽 저쪽도 있을 수 없다. 이렇게 저쪽과 이쪽이 동시에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을 뿐
어느 한 쪽만 독립해 따로 존재 할 수 없는 것을 ‘연기한다’고 말 한다. 모든 경계는 연기하고, 연기하는 것은 있다 할 수도 없고 없다 할 수도 없다. 있는 것 같은데 실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을 공(空, sunyata)하다고 한다. 공(空)은 아무것도 없다(無)는 뜻이 아니라 정해진 모양이 없이 늘 변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정의(定義)를 내리고 이름을 붙이는 것은 ‘경계를 정하는 것’이다. 정의가 모여 개념이 되고,
개념이 모여 지식이 되고, 지식이 모여 원리나 법칙이 된다.
인류가 쌓아 올린 모든 개념이나 지식, 원리나 법칙 등에는 모두 경계가 있고, 경계가 있으므로 연기한다.
연기는 모든 인류, 모든 상황에 예외 없이 적용되는 보편적인 사유법칙일 뿐만 아니라 우주만물에 적용되는
존재 원리이기도 하다. 연기는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준말이다. 인(因)이란 씨앗 같은 내부 조건이고
연(緣)이란 물, 온도, 햇빛 같은 외부 조건이다. 인이 연을 만나면 변화가 생기고 그 변화가 또 다른 변화를
연쇄적으로 일으키며 삼천 대천세계를 나타나게 만든다. 이를 중중무진연기(重重無盡緣起)라고 한다.
모든 과학의 토대가 되는 인과(因果)의 법칙도 연기에 속한다. 연기는 불교의 핵심교리이다.
이와 같이 불교에 있어서 경계는 정신적인 용어인데, 이도 쓰이는 상황에 따라 그 뜻이 약간씩 다르다.
① 경지(境地)란 뜻으로 쓰일 때 ― 몸이나 마음, 기술 따위가 어떤 단계에 도달해 있는 상태,
혹은 수행으로 도달한 결과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② 상황(狀況)의 뜻으로 쓰일 때 ― 인과응보의 이치에 따라 자기가 놓이게 되는 처지. 과거의 업에 따라 주어진 현재의 지위나 처지를 의미한다. 그리고 ‘어떤 경계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도 쓰인다.
③ 모든 감각 기관에 의해 지각할 수 있는 대상, 지각할 수 있는 일, 인식하거나 가치판단을 주관하는 마음의
대상을 가리킨다. 감각기관 이라는 것은 우리가 느끼고 감각할 수 있는 우리 몸의 기관을 말한다[육근(六根)].
즉, 인식이 미치는 범위 혹은 대상[육경(六境)]를 뜻한다.
④ 인과의 이치에 따라서 일상생활 속에서 부딪치게 되는 모든 일들. 곧 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을 말한다.
이 경우, 나를 주관(主觀)이라고 할 때 일체의 객관(客觀)이 경계가 된다. 생로병사ㆍ희로애락ㆍ빈부귀천ㆍ
염정미추ㆍ삼독오욕ㆍ부모형제ㆍ춘하추동ㆍ동서남북 등 인간생활에서 맞게 되는 모든 일과 환경이 다 경계이다.
⑤ 시비ㆍ선악이 분간되는 한계를 말하기도 한다. ― 이 경우, 경계ㆍ계경ㆍ계역 따위가 혼용될 수 있다.
⑥ 구분이란 뜻으로 쓰인다. “무아(無我)에는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 두 가지가 있다.
대승불교는 특히 법무아를 많이 얘기한다. 법무아란 밖의 대상도 실재하지 않지만 마음 자체도 실체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안과 밖이 경계가 없음을 얘기한다.”
이런 많은 경우가 경계이듯이 인간은 항상 경계 속에서 살아가고,
경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확인하게 되며, 경계가 곧 삶의 내용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경계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또는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사람의 참 가치도 경계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천만 경계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경계에 끌려가거나 물들지 않고, 나와 경계를 다 잊어버리고 하나가 되는 경지, 곧 주객일체(主客一體)ㆍ
물심일여(物心一如)의 경지가 바로 해탈을 향한 세계이다.
다음엔 청화(淸華, 1924~2003) 스님의 법문을 보자.
『공부할 때에는 여러 가지 경계가 많이 나온다. 우리 마음은 바로 우주의 생명 자체이기 때문에 마음 가운데는
지옥도 있고, 아귀도 있고, 축생도 있고, 천상도 있고, 또는 극락이 다 잠재해 있는 것이다.
십법계(十法界) 곧 지옥ㆍ아귀ㆍ축생ㆍ수라ㆍ인간ㆍ천상ㆍ성문ㆍ연각ㆍ보살ㆍ부처 등 일체만법이 우리 마음
가운데에 본래로 다 갖추어 있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를 닦아나가면 잠재의식에 들어있던 업의 종자들이
업장(業障) 따라 그에 상응한 경계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과거 전생에 경험했던 것들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불쑥 나올 수가 있단 말이다. 더러는 우리 영식(靈識)이 맑아져서 방안에 있는데도 저만치 바깥까지
투시해서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영식이 맑아지면 누구나가 가지가지 경계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헌데 아무리 좋은 경계라도 집착하면 병이 되고 나쁜 경계라도 집착하지 않으면 무방한 것이니
자성(自性) 곧 진여불성을 여의지 않고서 정진해나가면 필경에는 불생불멸한 진여법성을 깨닫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성취하는 것이다.』
* 경계(境界), 그 수준---춘성(春城. 1891~1977) 스님은 만해(萬海, 1879∼1944) 스님의 유일한 상좌(제자)였다.
스님은 언행에 승속을 초탈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걸쭉한 입담은 수많은 일화를 남겨 놓았다.
스님은 <화엄경>을 거꾸로 외울 정도로 경학에 밝았고, 유언을 “다비한 재와 사리를 서해바다에 버려라”라고
할 정도로 걸림 없는 삶을 실천한 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스님 곁에서 수십 년을 공부한 보살님이 계셨는데, 그 보살님의 손녀딸이17~8세에 이르게 됐다.
손녀딸이 그 정도 나이면 스님의 ‘말 귀’를 이해할 것 같아 노보살님은 손녀딸에게
“춘성 스님께 가서 법문 좀 청해 듣고 오너라”라고 했다.
손녀딸은 춘성 스님께 정중히 삼배를 올리고, “할머니가 스님 법문을 듣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하며,
다소곳이 앉아 법문을 기다렸다. 노보살의 의도를 잘 알고 있는 스님은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내 물건이 너무 커서 작은 네 것에 들어갈지 모르겠다.”고 했다.
손녀딸은 스님의 그 말에 질겁을 했다. 얼굴은 홍당무가 된 채로 할머니에게 달려와 울면서 스님의 말을 전했다.
그랬더니 노보살님은 “이것아, 내가 염려했던 대로구나, 네 소갈 머리가 그렇게 작으니 스님의 큰 말씀이 어디
들어가겠느냐?” 하며 스님이 역시 안목이 높다고 한탄을 했다고 한다.
이렇듯 ‘말 귀’를 알아듣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듣는 ‘말귀’의 수준도 모두 그 경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중생심은 그 경계에 따라 천차 만별인데,
그 각각의 다름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명백한 착각이나 오류라 하더라도 본인은 그 당시에는
전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작 문제이다. 경계의 한계 때문이다. ‘큰 것’이라니
그 손녀딸은 크다는 것을 무엇으로 받아들여 질겁을 하고 얼굴이 홍당무가 된 것인가.
섹스 심볼로 생각했으니 춘성 스님의 큰 법문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 경계반야(境界般若)---경계는 외계의 대상, 곧 인식대상을 말한다. 따라서 경계상은 주관,
즉 마음에 인식되는 외계의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무명(無明)에 의해 마음이 움직임으로써 일어나는 인식주관 앞에 나타나는 객관계를 경계상(境界相)이라 한다.
경계는 마음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이지 말로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밖에 수도ㆍ수행을 하거나 독서를
할 때에도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다른 경계가 나타난다. 조금씩 문리가 터진다는 말이다.
예술가라면 그럴 때마다 새로운 영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도 조금씩 진전이 있을 때마다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그것이 곧 경계이다. 대상 자체는 어떠한 특질도 가지고 있지 않은데,
주관의 작용에 따라 그 대상의 의의가 나타나는 지혜를 말한다.
마찬가지로 수도하는 사람에게도 수행이 어떤 경계에 이르면 인생의 경계도 그만큼 트이고 밝아진다.
보통사람의 경계는 번뇌 아니면 질병이다. 나이 들면 눈이 침침하고 머리가 희어지는데,
이것이 살면서 겪는 고뇌의 경계이다.
옛 사람들이 “불법 공부는 대장부가 할 일로서 관료나 군인, 장사꾼이 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왜? 대장부의
기백, 경계, 흉금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 다른 경계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반야로부터 오는 것이다. 도체(道體)에서 나오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온다. 따라서 진정으로 도를 깨달은 사람은 지혜가 무궁 무진하게
개발된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무사지(無師智 - 스승의 가르침으로 얻는 지혜가 아님. 스스로 깨달은 지혜) 또는
자연지(自然智 - 본래부터 갖추어 있는 지혜)라고 한다. 자기 본래지혜 창고가 열려 다른 사람에게 배운 적이
없는 자기 고유의 지혜가 폭발한다. 이렇게 되면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경계반야이다.
경계반야의 지혜를 가지게 되면 삼천대천 세계 안의 일어나고 소멸하는 모든 사체(事體)들을 모르는 것이
없게 된다. 육조 혜능(慧能) 선사는 경계반야가 뛰어났던 것 같다.---→‘반야(般若)의 종류’ 참조.
* 경계상(境界相)---경계란 인과의 이치에 따라서 일상생활 속에서 부딪치게 되는 모든 일들.
곧 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을 말한다. 이 경우, 나를 주관(主觀)이라고 할 때 일체의 객관(客觀)이 경계가 된다. 생로병사ㆍ희로애락ㆍ빈부귀천ㆍ시비이해ㆍ염정미추ㆍ삼독오욕ㆍ부모형제ㆍ춘하추동ㆍ동서남북 등
인간생활에서 맞게 되는 모든 일과 환경이 다 경계이다.
경계는 이와 같이 외계의 대상, 곧 인식대상을 말한다. 따라서 경계상은 주관, 즉 마음에 인식되는 외계의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무명(無明)에 의해 마음이 움직임 으로써 일어나는 인식주관 앞에 나타나는 객관계를
경계상이라 한다. 이는 삼세(三細)의 하나로서, 망념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現相)에 해당한다.
마음의 작용인 견상(見相)에 의해 인지되는 대상으로서, 망상이 일어남에 따라 경계를 비추어 나타내는 의지적
작용이 작용할 때 거기에는 반영돼 나타나는바 경계의 상이 존재한다. 그것은 망상심에 따르는 의지적 작용에
의해 나타난 차별상으로서, 허망의 상에 불과한 것이며, 진여의 본성에 적응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망상심에 따르는 의지적 작용이 없다면, 거기에 비추어 나타나는 경계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연애를 할 때는 모든 것이 예뻐 뵌다. 심지어 얼굴에 붙어 있는 검은 점조차 매력적으로 보인다.
망념의 작용으로 나타난 경계상이다. 그러다가 결혼해서 권태기에 접어들면,
“내 눈도 삐었었지, 어떻게 저런 여자를 예뻐했을까 하고 후회하게 되고, 검은 점이 보기 싫어진다.
이 모든 것이 망념의 작용이고, 경계상이다. 경계상을 좀 어렵게 말하면, 능견상(能見相)으로 인식하는
대경(對境)을 말한다. 이는 주관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대상으로, 오직 망념(妄念)에 의해 나타나는 차별상이니
만약 망념을 여의면 일체의 경계상(境界相)은 없을 것이다.
무상(無相)의 일심이 한 생각이 일어남에 따라 흔들려서 주객의 경계가 성립된다.
능견상[주체]과 경계상[객체]은 늘 동시에 일어난다. 능견상에 의해 경계상이 나타난다고 하지만,
세 가지 미세 번뇌[삼세(三細)]는 동시에 의존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서 선후의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능견상과 경계상은 둘 중의 하나가 사라지면 나머지 하나도 사라진다. ---→삼세육추(三細六麤) 참조.
※ 삼세(三細)란---<대승기신론>에서 설하는, 무명(無明)에 의해 움직이는 마음의 세 가 지 미세한 모습을 말한다. ① 무명업상(無明業相) ― 무명에 의해 최초로 마음이 움직이지만 아직 주관과 객관의 구별이 없는 상태.
② 능견상(能見相) ― 마음의 움직임에 의해 일어나는 인식 주관.
③ 경계상(境界相) ― 인식 주관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객관.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줄여서 <전등록(傳燈錄)>이라고도 한다.
중국 송(宋)대의 경덕 원년(1004)에 고승 승천 도원(承天道原)이 엮었다.
붓다 이후 역대 법맥(法脈)을 체계화해서, 진리의 등불이 어떻게 전해지고 이어져 왔는지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내용은 과거칠불과 역대 인도 조사와 중국 조사들의 법맥, 즉 서천(西天) 28조와 동토(東土) 6조를 거쳐 법안 문익(法眼文益, 885~958)의 제자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전등법계(傳燈法系)를 밝혔다.
그리고 선사들의 행적과 치열한 수행기록, 깨달음의 기연과 법어를 수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승과과목에 들어 있었다.
저자는 도원(道原)ㆍ도원(道元)ㆍ도언(道彦)ㆍ도원(道源)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그의 생존연대ㆍ경력 등이
모두 미상 이지만, 매우 상세한 승전(僧傳)을 기록하고 있어 선종에서는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
특히 조사들의 말이나 문답과 의문을 좌선의 대상으로 하는 간화선(看話禪)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전등록(傳燈錄)>은 송 진종(眞宗) 경덕(景德) 원년 1004년에 편찬 됐으므로 연호를 붙여 <경덕전등록>이라
하는 것이 본래의 이름이다. 편찬자는 도원(道原)으로 알려져 있으나 공진(拱辰)이 편찬했다는 이설도 있다.
공진이 책을 지어 가지고 임금에게 헌상하러 경사(京師, 서울)로 가던 도중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함께 배에
타고 있던 어느 스님에게 이 책을 보였더니 나중에 그 스님이 몰래 책을 훔쳐 가 먼저 임금에게 바치고 자기의
저작인 것처럼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등록> 뒤에 정앙(鄭昻)이 쓴 발(跋)에는 공진이 지은 것이라 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까지 도원이 지은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 경량부(經量部, 빠알리어 숫타바다/Suttavāda, 산스크리트어 사우트란티카/Sautrā–ntika)---부파불교 시대
상좌부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Vaibhashika)에서 분리된 부파이다.
과거엔 세우(世友, AD1~2세기경)의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에 의거해 경량부가 설일체유부로부터 분리
독립했다고 여겨왔으나 최근에는 기원후 1세기경 설일체유부에 이단자 그룹인 ‘비유자(譬喩者)’라는 논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해, 이들 비유자(譬喩者)들의 교의가 논사(論師) 쿠마랄라타(Kumāralāta)를 거쳐서 그의 제자
슈릴라타(Śrīlāta)에 이르러 정비돼, 4세기경 부파로 성립했다. 이들은 유부가 경(經)의 주된 취지를 일탈한
논장에 너무 의존한다고 보고, 경장에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경량부’라 자칭했다.
이들은 “(누가 설한 것이든) 법성(法性)에 어긋나지 않으면 불설(佛說)”이라고 주장하는 설일체유부의
불설론(佛說論)을 비판하고, 불타에 의해 직접 설해진 것이 확실한 불설(佛說)을 요의경(了義經)으로 간주해
“이러한 경(經)만을 인식의 근거[量]로 삼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경량부(經量部)’라 이름 했다.
그리고 세친(世親)은 이들의 사유에 기초해 <구사론>을 저술했기 때문에 세친은 경량부 논사 라거나
비유자라 불리기도 했다.
이 부파는 불교의 4대 철학파의 한 파로 지칭되지만 현재 남아 있는 독자적인 논전은 없다.
그래서 그 학설을 <구사론>, <성실론> 등의 다른 논전을 통해서 고찰하는 수 밖에 없다.
설일체유부의 법의 이론은 법의 실체성과 현상(現相)하는 것은 순간마다 생멸한다고 하는 찰라멸을 설한다.
다시 말하면 현상의 사물은 찰라멸 이면서도 사물의 본질인 법체는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실재한다는
삼세실유 법체항존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경량부는 사물은 단지 현재 한 찰라에만 존재하며 과거, 미래의 사실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현존재체과미무체(現存在體過未無體)를 설했다.
이러한 찰라성의 입장에서 볼 때 실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물질과 마음, 마음의 작용을 하나로써 생각한
심리현상 이고 그것도 현재 한 찰라에만 존재하는 순간적 존재라고 했다.
그리고 경량부는 법의 분류에 있어서도 유부의 오위 칠십오법(五位七十五法)에 대해 색법의 사대(四大)와
심법만을 인정했다. 또한 무위법(無爲法)의 열반을 유부가 실체적인 것으로 보는데 반해 경량부는 열반이란
일체의 번뇌가 사라지고 제법이 적멸된 것이며 그것은 또한 실체가 아니라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인식 이론에 있어서도 경량부는 존재를 순간적인 법들의 연속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유부의 외계의 모든 대상을 직접 지각한다는 설을 부인했다. 존재가 찰라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현재 찰라적인 어떤 사물을
지각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지나가 버린 어떤 사물을 우리들의 의식 속에 간직하게 되고 만다.
지각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지나간 대상에 대한 인상에 불과 하므로 우리들의 지각은 외계의 대상을
알 수밖에 없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외적 대상이 직접 지각되는 것이 아니라 외적 대상의 표상 또는 모사인
우리들의 지각으로부터 추리해 아는 것이라 했다.
업의 이론에 대해서 유부는 의업(意業)을 마음의 작용으로 간주하지만 외적으로 표현되는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은 물질이라 했다. 그러나 경량부는 행위의 본질은 의사에 있다고 보고 신업과 구업은 단순히
의업의 표출된 형태로 업은 물질적 색(色)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심소법(心所法)에 속한다고 봤다.
행위와 그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는 인간의 찰라멸적인 마음의 흐름 가운데서 일어나는 특수한 변화,
즉 상속 전변 차별이다. 그리고 인간 존재의 밑바닥에는 동일한 본질로서 계속해서 작용하고 있는 미세한
의식이 있어 그 의식 속에 지식이나 행위에 대한 인식이나 영향력을 종자(習氣)의 형태로 남기는데
이를 훈습(薰習)이라 한다. 이 종자가 잠재적으로 마음의 흐름과 함께 상속하고 성장해 때가 되면
현세화(現行)해 업보의 결과를 낳는다. 경량부의 이러한 종자 훈습설은 유식설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게 됐다.
* 경묘(境妙)---적문십묘(迹門十妙)의 하나. 지혜에 따라 관조하는 10묘(妙)ㆍ4제(諦)ㆍ3제(諦)등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 대상은 실상(實相)이며 사려의 범위를 넘게 되므로 묘(妙)라 했다. →적문십묘(迹門十妙) 참조.
* 경봉(鏡峰, 1892∼1982)---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 덕유산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했으나,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출가를 했다.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와 고성 건봉사(乾鳳寺) 조실을 지내며, 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말년에 통도사 극락암에 주석했다. 그리하여 그 유명한 ‘통도사화엄산림법회’가 경봉 스님으로부터 시작됐다.
아래는 경봉스님이 ‘물’에 대해 읊은 게송이다. 물 한 가지를 가지고 사유하면서 중생을 일깨운 탁월한 게송이다.
「사람과 만물을 살려주는 것은 물이다. 갈 길을 쉬지 않고 나아가는 것은 물이다.
어려운 굽이를 만날수록 더욱 힘을 내는 것은 물이다. 맑고 깨끗하며 모든 더러운 것을 씻어 주는 것이 물이다.
넓고 깊은 바다를 이루어 많은 물고기와 식물을 살리고 되돌아 이슬비가 되는 것이 바로 물이니,
사람도 이 물과 같이 우주만물에 이익을 주어야 한다.」
* 경분별(經分別, 빠알리어 Sutta-vibhanga, 숫따비방가)---율장(律藏)은 붓다가 제정한 계율의 조례를 모은
교전(敎典)을 일컫는다. 그 율장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본(戒本, 빠띠목카)과 갈마본(羯磨本)과 부수(附隨, Parivara)이다. 그리고 계본과 갈마본에는 주석이 붙어 있다. 계본에 대한 해설은 경분별(經分別, Suttavibhanga)이라 하고, 갈마본에 대한 해설은 건도부(犍度部, Khandhaka)라 한다. 그리고 부수는 부대사항을 적은 부분으로서, 경분별과 건도부에서 설명한 사항을 분류하고
요약 정리한 보유편(補遺編)이다.
• 계본(戒本, 빠띠목가/Patimokkha) - 계본이란 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 할 규칙을 모은 것이다.
이 계본에 대한 설명이 경분별(經分別)이다.
• 갈마본(羯磨本, 칸다까/Khandhaka) - 공동생활에서 지켜야할 규범과 규약을 갈마라 한다.
이를 율(律)이라고 하는데, 수계와 설법에 관한 규정, 자자(自恣)와 포살(布薩)의 방법, 옷과 약에 관한 법,
안거와 방사에 관한 규정, 다툼이 생겼을 때 해결하는 규정 등이 있다. 이에 대한 설명을 건도부(健度部)라 한다.
• 부수(附隨, 빠리와라/Parivāra) - 계본과 갈마본의 보유편이다.
이 중에서도 경분별(숫따비방가/Suttavibhanga)은 율장의 핵심으로서 계본 각 조항과 그 성립의 인연,
조문 자구(字句)의 해석과 아울러 조문 운용의 실례 등을 설명하고 있는데, 비구의 227계를 설하고 있는
대분별(大分別, Maha-vibhanga)과 비구니 311계를 설하는 비구니분별(比丘尼分別, Bhikkhuni-vibhanga)로
구별된다.
‘경분별(經分別)’이란 말은 經(sutta)의 설명 혹은 해석이란 뜻이다.
경분별은 나열된 문제에 대해 개개의 규정이 어떻게 언제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 인가를 언급하고 있다.
상가에 들어간 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 할 규칙을 모은 것을 빠띠목가
(빠알리어 Patimokkha,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 戒本)라 한다.
이것은 이른바 250계(비구니의 조문은 이보다 많다)이다. 비구의 바라제목차는 8절로 돼 있으며,
비구니의 바라제목차는 7절로 돼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무거운 죄는 파라이(Parajika, 바라이) 죄목이다.
이에는 유(游-성행위)ㆍ도(盜-도둑질)ㆍ단인명(斷人命-살인)ㆍ
대망어(大妄語-큰 거짓말-깨닫지 못했으면서도 깨달았다고 하는 것)의 4조(비구니는 8조)로서
이것들을 범하면 상가로부터 추방되고 다시는 상가에 들어갈 수가 없다.
---→계(戒, 빠알리어, 산스크리트어 sila)와 율(律, vinaya) 참조.
* 경산((鶴月京山, 1917∼79)---학월경산 스님은 평생 불교중흥의 원력을 실천한 수행자의 길을 묵묵히 걸으며, 정화불사의 완성과 종단화합 성취를 위해 앞장섰고, 선(禪)ㆍ교(敎)ㆍ율(律)의 정립을 발원했던 분이다.
스님은 1917년 함경북도 북청에서 출생, 1936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홍수암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고,
1945년 부산 동래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보살계와 비구계를 받았다.
1956년 정화불사 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1962년에는 재단법인 동국학원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치열했던 불교정화 운동을 거쳐 대한불교 조계종이 새롭게 태어난 이후 1963년, 1973년, 그리고 1979년,
세 번에 걸쳐 총무원장 자리를 맡아 대한불교 조계종단의 기틀을 탄탄히 다져놓고, 1979년 12월 25일
서울 돈암동 적조암에서 홀연 좌탈입망(坐脫立亡) 열반에 드셨다고 한다.
오늘날 총무원장을 서로 하려고 날뛰는 권승들, 그리하여 온갖 비리가 난무하고 뒷말이 무성한 자리인데,
이를 맡으시면서, “나는 총무원장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 이것이 1979년 세 번째 총무원장으로 선출된 경산 스님의 취임 일성이었다.
당시 종단은 조계사(曹溪寺) 측과 개운사 (開運寺) 측으로 갈라져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경산 스님은 종단 화합을 위해 소임을 맡았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종단 화합을 하기 위해 (총무원에) 온 것”
이라면서, “앞으로 2개월 안에 종단수습을 마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취임 한 달 만에
원적에 들어 종도들을 안타깝게 했다.
총무원장을 세 차례 역임하는 등 종단의 핵심에 있었지만, 스님은 교구본사를 당신 문중의 절로 만들지 않았다. 제자들이 “스님께서 노년에 머무실 만한 교구본사가 하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문도들도 교구본사가 있어야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라고 건의도 했지만, 스님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출가자의 본분은 수행하는 것이지, 큰절을 차지하는데 있지 않다”면서, “더구나 총무원장을 지낸 내가
교구본사를 문중 절로 만들면, 남들이 크게 웃을 일”이라고 경책했다.
그래서 스님이 겨우 몸 붙이며 거처하던 곳이 서울 돈암동에 있는 허름한 암자 적조암이었다.
적조암(寂照庵)은 그 이름 그대로 적막함이 느껴지는 쓸쓸한 처소였다.
스님은 동국대학교의 재단이사장을 거쳐 1963년에는 통합 조계종단의 총무원장 자리에 올랐으니,
말 그대로 한국불교 최고 지도자의 반열에 오른 셈이었다. 그러나 스님은 수행자 시절의 그 모습 그대로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겸양의 미덕을 변함없이 실천하고 보여주는 그런 스님이었다.
총무원장 으로서 종무처리에 바쁘다는 이유로 예불을 단 한 번도 빠진 일이 없었다.
심지어 종무로 지방에 출장을 가든, 해외 불교행사에 한국대표로 참석을 하든, 호텔방에서 라도 부처님의
탄생지 인도 땅을 향해 예불을 올리고 참선 정진을 빠뜨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사찰의 청규를 철저히 지키는데 모범을 보였고, 총무원장으로서 종무를 처리하다 공양시간을
놓치게 되면 어김없이 “때 아닐 때 먹어서는 안 된다”는 청규를 엄격히 지키느라고 굶는 쪽을 택했다.
개인적인 용무로 출타할 적에는 총무원장용 승용차를 타지 않고 반드시 버스를 타고 다녔다.
스님은 조용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총무원장용 자가용과 운전기사, 그리고 휘발유는 총무원 공무를 보는데 사용하라는 것이지,
내 개인 볼일 보러 다니는데 쓰라고 있는 게 아닐세."
스님은 또한 계율을 지키는데도 스스로 엄격함을 보여주었다. 스님이 함경북도 출신인지라 고향의 유명한
냉면을 좋아 하실 거라는 제자들의 생각에 일부러 스님을 함흥냉면 집으로 모신 일이 있었다.
그러데 함흥냉면은 육수에 면을 말아 나오니 스님은 그런 냉면을 드시지 않고 면(麵)만을 따로 달라고 주문,
기어이 동치미 국물에 면을 말아 잡수셨다고 한다.
그리고 스님은 늘 온화한 얼굴이셨고, 늘 얼굴 가득히 잔잔한 미소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당신 스스로에 대해서는 엄격하기 칼날 같았다. 총무원장을 지내면서도 손수 속옷을 빨아 입고
구멍 난 양말을 손수 기어서 신었다. 곁에서 보다 못한 제자들이 이제 시봉 아이를 두도록 하자고 몇 번이나
간청했지만 스님은 고개를 조용히 흔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걸 보시게. 나에게는 이렇게 열 개의 손가락이 있으니 바로 이 열 개의 손가락이 내 시봉(十奉) 이라네.”
오늘날 권승(權僧) 들이 새겨들을 말이다.
* 경안(經眼)---경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이 경안이다. 경전을 보고 이해할 만한 안목(眼目),
경전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는 안목을 말한다. 따라서 경전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경안이 열린다고 한다.
그리고 경전을 볼 때는 경안이 있어야 혜안이 생긴다. 예컨대 초월적인 이야기나 천상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건 거짓말이다 이건 옳고 이건 틀린다고 왁자지껄 할 이유가 없다. 그런 것은 그대로 놔두면 된다.
겉으로 드러난 초월적 이야기보다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가르침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경전에 그렇게 씌어 있으니 무조건 초월적인 이야기를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요즈음의 초기불교가 위빠사나 수행이니 사띠수행이니 하는 등의 수행위주로 전파되고 있다.
실질적인 생활불교의 가르침이 거의 없다. 그리고 남방과 한국의 사회구조나 풍습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가르침을 놓고도 우왕좌왕하게 된다. 또한 초기불교의 가르침이 우리들을 체질적으로 이해 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럴수록 올바른 불자라면 책만 들고 초기불교를 한다고 외칠 것이 아니라
마음도 생활도 초기불교식으로 바꾸어가야 한다.
선불교에 반발하고 한국불교에 반발해서 초기불교를 선택하다가 과거 부파불교 시대에 날밤을 세워가며
논쟁하던 것 이상으로 교리논쟁을 하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청정도론> 등의 논장을 앞세워 교리를 주장한다. 오계(五戒)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청정도론>이 어떻고, 팔리어 경전이 어떻고 하는 게 결코 초기불교
하는 것이 아니다. 학승도 아닌 불자들이 교리를 따질 일이 아니다. 그런 것은 별로 중요치 않다.
행하지도 않을 것이라면 남의 목장에서 남의 소나 세는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더구나 한국 불자들은 선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불교 = 깨달음(성불)>이라는 등식에 얽매여 있거나
아니면 기복불교에 갇혀 있다. 그렇다가 보니 초기불교를 대하면서도 무조건적으로 "깨달음"을 기준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초기불교는 역사적으로 실존하셨던 붓다라는 인간과 그분의 가르침을 배우는 종교이다.
그분의 가르침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법"이다. 관념적으로 깨달음이나 논하고 희론이나 일삼는 가르침이
아니다. 따라서 두 눈을 밝게 뜨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경전을 보고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는 눈 뜬 소경이나 다름이 없다. 경안(經眼)이란 경을 볼 때 내가 아난이 돼,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그 회상에 함께 앉아있다고 생각하고, 경전구절을 알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을 수지 독송한다는 것은
경전의 가르침대로 실천하며 산다는 의미까지 포함돼 있음을 꿰뚫어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 경안(輕安, Passaddhi)---불교 용어로 가벼울 경, 편안할 안자인데,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한 것을
이름 하는 것으로 우리가 참 진리를 만나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편안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되며 이것이
진리의 증표가 되기도 한다. 즉, 참선하다가 의정을 일으켜 법신도리와 상응하게 되면 심신이 거뜬해짐(輕安)을 느끼고 일거일동에 모두 막히거나 걸림이 없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함을 말한다.
※ 경안각지(輕安覺支)---수행하는 과정에서 수행자에게 평온한 기쁨이 생기고, 나아가 수행자의 몸과 마음이
경쾌해진 상태를 말함. 수행을 통해 심신이 매우 편안하고 지극히 가벼운 상태가 된 것을 말한다.
* 경전(經典)---경전(經典)은 종교의 믿음 또는 교리의 근간을 이루는 문서이다.
불교에서 경전은 부처님의 언행을 기록한 것을 뜻하며, 불경(佛經)이라고도 한다.
경전(經典)이란 말에서 ‘경(經)’은 지구상의 위치를 표시하는 좌표의 하나인 경도(經度)에서 온 말로서, 직물(織物)의 날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실제로 날을 보면 그 모양이 쭉 뻗어서 똑바르기 때문에 이를 우리 생활 속의 교훈에 비유해, 부처님의 말씀을 경이라고 했다. 따라서 불교에서 말하는 경전이란 그 내용이 긴 것이든지 짧은 것이든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말씀으로써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을 상징한다. 또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마치 실[絲]로 꽃 등을 꿰어서 화환을 만드는 것과 같이 온갖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자각한 뒤에 진리
그 자체를 설하신 것이 경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다 해도 쉽게 흩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도 간직하고 있다.
우리 불교에는 수많은 경전이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데, 그 내용을 흔히 8만 4천 법문이라고 한다.
이것은 또한 중생들의 번뇌의 숫자와도 일치하는데, 그것은 부처님께서 이 모든 번뇌에 대해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알맞은 말씀을 일일이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많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교경전은 BC 6세기의 고타마 붓다의 삶과 가르침을 모아, 그가 사용했던 마가다어와 관계가 깊은
빠알리어로 정리돼 암송으로 구전되다가 훗날 문자로 정착됐다.
그리하여 부파불교 시대에 각 부파에는 나름대로의 경전이 있었다고 하는데 오늘날 남아있는 경은,
① BC 3세기 아소카왕의 3차 결집 때 상좌부가 주도하여 공식적으로 만든 빠알리어 <니까야>와
② AD 2세기 카니시카왕의 4차 결집 때 설일체유부 중심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산스크리트어
<아가마(아함경)> 뿐이다.
그 이유는 니까야의 경우 아소카대왕의 명으로 인도에서 멀리 떨어진 섬나라인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한
상좌부의 분별설부가 니까야를 지금껏 잘 보존하여 왔기 때문이며, 또한 아가마는 북인도에서 번성한
쿠샨왕조 에서 보호되다가 북방으로 전래돼 오늘날 동북아시아에서 <아함경>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 외 나머지 경전들은 인도의 정치적 격변기에 이슬람세력의 침입과 힌두교의 포섭으로
불교가 소멸됐기 때문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세월이 흘러 불경이 본격적으로 인도 밖으로 전파되면서 인도 고전 표준어 격인 산스크리트어를 채택했다.
여기서부터 정통적이라고 여겨지는 빠알리어로 보존된 소승불교 상좌부(上座部, Theravda)의 문헌과
보다 널리 전파된 대승불교의 수많은 문헌 사이에 차이가 생기게 됐다.
동아시아로 전파된 대승불교 경전은 티베트어,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로 번역되고 증광됐다.
흔히들 사람들은 기독교의 성전은 신약과 구약 두 종류뿐인데, 불교의 성전은 왜 그렇게 많으냐고 한다.
그 차이는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한 말은 물론 그 제자들이 한 말도 성전 속에 넣어서 계산할 뿐만 아니라
부처님이 한 말을 이해하기 쉽도록 쓴 이른바 참고서(論藏)도 성전에 넣어서 계산하기 때문에 분량이 많다.
이에 관한 이야기가 <소품반야경>에 전하고 있다. 어느 날 불제자의 한사람인 수보리가 석존의 명을 받고
설법을 하려고 할 때, 불제자의 한사람인 사리불이 이 설법은 수보리의 힘인가 석존의 힘인가라고 의문을 품고
물었는데,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대답을 했다. 즉, 불제자의 설법이라도 그 불제자가 법을 깨달은 후에
하는 것이므로 부처님의 설법과 같아서 제자가 말하더라도 그것은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석존 이외에 사람이 행한 설법이라도 그것을 설한 사람이 불법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그 설은 불설과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법이라는 것은 석존 이외의 사람들에 의해서도
설해지는 것인데,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석존의 깨달음 자체가 중심이어야 하며 그로부터 이탈되면
불법이 될 수 없다. 즉 석존의 깨달은 내용과 어긋나는 것은 경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경(經)ㆍ율(律)ㆍ논(論) 세 가지를 합한 것을 일체경, 또는 대장경이라고 부르는데,
이들 세 가지 가운데에서 경의 부분이 주부(主部)를 이루고, 율(律)과 논(論)은 경의 부수적인 것이다.
어디까지나 불설이 중심이 돼야 하는 것으로, 이 불설을 중심으로 해서 율이 부가되고 논이 전개돼 있으며,
일체경이나 대장경은 그들 전부를 모두 합한 일대 불교총서(佛敎叢書)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불교경전은 일차적으로 출가승을 위한 교리수행서의 성격이 짙다. 경전내용에서 출가 할 것을 권유하고, 대부분의 설법이 출가승 위주로 돼 있다. 그래서 경전마다 시작도 “비구들이여…”라고 해서 설법의 대상자가
출가비구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물론 설법의 대상자가 출가승이라고 해서 일반 재가자들 에게
전혀 무의미한 내용은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히 출가승을 위한 경전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경전해석의 기준을 명확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붓다의 45년 행적을 되돌아 볼 때 재가자들을 위한 가르침이 상당히 많았을 것이고 또 재가자들 중에서도
뛰어난 분들의 에피소드도 상당할 것 같은데 그런 부분이 거의 없다. 이것은 경전의 전승이 전적으로
수행승들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결국은 전승의 내용이 수행승 위주로 그리고 출가주의 위주로
전승이 되고, 수행승들에게 불리하거나 또는 재가자들과의 많은 이야기들이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불교경전의 특징과 이의 활용에 주의를 요할 점이 있다.
『첫째, 불교 경전은 그 전체로서 하나의 정합적 내용으로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경전의 여기저기에서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 해주는 이 구절 저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것이 이 문제에
대한 불교적 대안 혹은 해답”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거의 무의미할 수 있다.
경전은 성립의 공간적 역사적 환경에 따라 서로 상충되고 모순되는 내용들이 함께 경전 전체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여간 세심하게 텍스트의 역사적 성격 그리고 맥락을 살피지 않고서는 경전의 내용을 인용해서 사회적
문제해결을 위한 해답으로 제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든다면, 경전에서 우리는 세속의 일에
참여할 근거도 찾을 수 있지만 세속의 일에 결코 참여해서는 안 되는 근거 또한 찾을 수 있다.
예컨대 생명윤리의 문제가 사회적 현안으로 대두됐을 때 나는 한 사람의 학자가 처음에는 경전의
이러저러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반대’의 입장을 취하다가 나중에는 또 다른 경전을 인용하면서
‘찬성’의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경우는 한 사람에게서 벌어진 좀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많은 경우 서로 입장이 다른 두 학자가 경전의 서로 다른 곳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소위 ‘불교적 논지’ 라는 것을 서로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는 경우조차 있다.
둘째, 불교 경전은 특히 경(經)의 경우 논리적 정합성을 추구하는 체계적 이론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사태’를 설명하고 그 사태에 대한 해결을 제시하는 텍스트이기 때문에 그 ‘사태’의 상황적 맥락을
떠날 경우 설명력을 상실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경(經)에서 이렇게 말했다”는 것을
전거로 전혀 상황이 다른 현안에 대한 불교적 입장으로 일반화 하거나 논거로 제시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러나 한편 경(經)이 논리적 정합성의 추구가 아닌 ‘사태’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에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며 사실성(reality)이 뛰어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활용한다면 사회적 현안문제에 대한 매우 훌륭한 해석학적
근거를 제공해 줄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사태’에 따른 상황적 맥락의 차이를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가장 중요한 문제로서 ‘적용의 오류’에 관한 문제이다.
우선 두 가지 종류의 ‘적용의 오류’를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종류의 오류는 출가자 혹은 출가자 집단인 상가에 대한 담론을 세속사회에 적용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경우이다. 불교 경전은 양적으로 그리고 내용적으로도 대부분 출가자를 위한 것들이다.
말하자면 사회를 (공간적으로, 심리적으로) 떠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예를 들면
<대반열반경>에서 붇다가 “너희들은 정치와 관련 된 일에 대해 논의하지 말 것이며…”라는 구절을 불교가
정치적 일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으로 확대해서 이해하는 경우이다. 이 구절은 명백하게 비구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또 초기불교의 승단의 구조와 제도에 주목해 불교는 “사회주의” 혹은 공산적 공동체“
심지어 ”무정부주의“적인 입장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붓다 당시의 출가와 재가라고 하는 이원적 구조를 간과한 적용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오류는 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무아’ 혹은 ‘열반’과 같은 본체론적인 담론을 사회적 현상이나
개인 윤리의 문제에 곧 바로 작용함으로써 공허하고 현실성 없는 결론으로 맺어지는 경우이다.』
실론섬 ---→불경(佛經) 참조.
* 경전 결집---→불경결집(佛經(結集) 참조.
* 경전공부(經典工夫)---경전을 펴면 글자가 나온다. 이를 경문(經文)이라고 한다.
경문을 보다 보면 연결되는 뜻이 있다. 그것을 경의(經義)라고 한다. 그 밑에는 경에서 가리키고자 하는
뜻이 있다. 그 뜻을 경지(經志)라고 한다. 이렇게 경에는 경문이 있고 경의가 있고 경지가 있다.
그것을 공부하는 것이 경전공부이다. 경을 공부하려면 첫째, 글을 접해야 한다.
글을 접하고 읽는 것을 송경(誦經)이라고 한다. 송경을 하다보면 말씀을 해석하는 석사(釋詞)를 하게 된다.
‘경을 새긴다’고도 한다. <금강경>에서는 이 과정을 수지독송서사(受持讀誦書寫)라고 한다.
글로 보고 말로 읽고 경문을 쓰는 것이다. 이것이 다 경문공부이다. 경전공부는 거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을 멈추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경전을 읽으면 불만, 의심, 공포가 자기도 모르게 멈춰진다.
멈추어지면 멈추어질수록 밝은 지혜가 점점 더 밝아진다. 그 다음이 해경(解經)인데,
경의 뜻을 해석하는 공부이다. 이것을 의해(義解)라고도 한다. 경의 뜻을 해석하면 더 깊어져야 한다.
원효(元曉, 617~686) 대사의 <대승기신론소>라든지 <금감삼매경론>이라든지 하는 책은 전부 의해이다.
엄청나게 공부를 많이 해서 다른 불교 전적으로 경을 해석하는 것이 논(論)이고 소(疏)이다.
한두 가지만 봐서는 해석하지 못한다. 이 방면에 많은 학습을 해야 논, 소라는 것을 쓸 수 있다.
경은 해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경에서 말하는 해탈, 진여, 본성, 인간의 본래 면목을 봐야 한다.
이 몸은 부모로부터 받은 수신면목(受身面目)이다. 본래면목(本來面目)은 부모가 낳기 전부터 있던 면목인데,
그것이 진여의 ‘나’이다. 오온의 ‘나’와 진여의 ‘나’가 만나는 것이 깨달음이다.
그것을 보는 것이 간경(看經)이다. 경의 뜻은 경을 해석하고 외운다고 해서 알 수 없다.
간경을 <반야심경>에서는 조견(照見)이라고 했다. 오온이 개공(皆空)이라는 것을 비추어보는 것이다.
‘경(經)’이라는 것은 깨달음에서 흘러나온 문자이다. 또 깨달음으로 가도록 하는 문자이다. 그런데 실제로 경을
읽다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인간은 항상 성과(成果)를 구한다. ‘나는 왜 모르지?’ 그러는 것이 경전공부를
못하게 되는 마장이다. 결과를 생각하면 그 때부터 제대로 된 불교공부는 안 되는 것이다. 결과를 생각하지 말고 하기만 하면 된다. 세간공부는 결과부터 생각해야 하고 성과를 내어야 한다. 불교공부는 자기가 자기를 만나는
공부이기 때문에 성과를 내야지하고 측량하지 말고 그냥하기만 하는 것이다. 경을 여러 번 읽었다,
몇 십, 몇 백 독을 했다, 그런 숫자는 다 쓸 데 없다. 자기가 자기를 만날 때까지 원력을 갖고, 만난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외우고 관하고 외우고 관하고 하는 습관을 갖도록 하는 것이 경전공부의 옳은 방법이다.
경전공부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만나려는 노력, 득도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 경전(經典) 번역---한나라 무제(武帝)가 서역 진출 정책을 펴서 동서의 교통로를 열었다.
후세에 이 길을 실크로드라 부르는데, 비단 같은 물자뿐만 아니라 사상이나 종교까지도 서로 소통하는 중요
교통로가 됐다. 이 실크로드를 타고 불교가 차츰 동쪽으로 진행해 중국에 전래된 때는 기원후 1세기가
되면서였다. 그 뒤를 이어 비단길을 걸어서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전법승들이 중국에 불교경전을 처음
전한것은 후한(後漢) 무렵이었다. 안식국(安息國=파르티아제국, 지금의 이란),
대월지국(大月支國=쿠샨제국-아프카니스탄, 파키스탄), 강거국(康居國-사마르칸트) 등 소위
서역이라 일컫는 중앙아시아의 사문(沙門)들이 불교경전을 가지고 중국에 들어왔다. 따라서 이들이 가지고 온
삼장(三藏)이 통과했던 지역에도 불교가 전파됐고, 그 지역에 포교됐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리하여 당시 개발된 실크로드를 따라 2세기 이후 후한(後漢)시대에 본격적으로 중국으로 불경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서역 전법승들이 불교를 전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경전을 한문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이때 산스크리트의 경전을 한자로 번역한 이들은 주로 실크로드 주변에 위치한 국가 출신의 불교인들 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 중국어에 능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중국인의 도움을 받았다.
역경에는 일단 말만의 번역과, 그 말을 문자로 다시 옮겨 책으로 펴내는 일이 있다.
이 역경에 종사하는 승려를 역경삼장(譯經三藏)이라고 하는데, 중국에는 수많은 역경삼장들이
산스크리트어를 비롯한 인도어 및 중앙아시아어의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했다.
중국의 역사서인 <위지(魏志)>의 <위략서융전(魏略西戎傳)>에, BC 2년 대월지국(大月氏國) 사자가
<부도경(浮屠經)>을 전해와서 번역했다고 한 것을 보면, 가장 오래된 역경은 이미 전한(前漢)시대에 일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확실한 한역(漢譯)의 기원은 AD 58∼75년(후한 明帝 때) 인도 승려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이 뤄양[洛陽]에 와서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등 5부를 번역한 것을
기원으로 해서, 147∼188년(후한 桓帝, 靈帝 때) 안식국(安息國)에서 중국에 온 안세고(安世高)와
지루가참(支婁迦讖)의 번역으로 이어진다. 안세고는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십이문론(十二門論)> 등을
번역했고, 지루참은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을 번역했다.
처음 북부지역인 뤄양(洛陽)ㆍ장안(長安) 지역에 전래된 불교는 그 뒤 역경승 지겸(支謙)이 오(吳)나라의
서울 건업(建業)에서 포교하고, 월남에서 북상한 강승회(康僧會) 역시 오나라에 들어와 포교에 종사함 으로써
점차 남부중국에 까지 교세를 확장하게 됐다. 특히 불도징(佛圖澄)은 중앙아시아의 구자국인(龜玆國人)으로서
신통력과 주술로 사람들의 신망을 얻었고 국왕의 고문을 지냈다. 그의 제자 도안(道安)은 전진왕(前秦王)
부견(符堅)의 신임을 받아 경전목록과 중국인 출가자를 위한 생활규범을 작성했다. 또 도안의 제자 혜원(慧遠)은 여산(廬山)에서 백련사(白蓮寺)를 짓고 염불 중심의 결사운동(結社運動)을 전개했다.
특히 혜원의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者論)>은 불교의 보편주의와 중국의 민족주의가 대립하면서
불교가 중국적 풍토에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관한 논설이다. 또한 서진(西晉)시대에는 축법호(竺法護)가
<정법화경(正法華經)>, <광찬반야경(光讚般若經)> 등을 번역했다.
이 무렵 중국의 일반 사상계에서는 노장사상(老莊思想)이 성행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불교를 노장사상에
의해 이해하려는 풍조가 현저히 나타났다. 이를 격의불교(格義佛敎)라고 하는데, 불교사상의 공(空)을
노장 사상의 무(無)와 대비해 설명하고 해석하려는 경향이 격의불교의 특징이다.
이는 불교가 중국에서 정착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고, 동시에 중국 사대부 층이 불교에 접근하는 길을
터놓은 것이기도 했다. 또 불교의 윤회사상이 도입돼 전생ㆍ현생ㆍ내세에 대한 인과응보 개념이
중국인들의 생활에 깊이 뿌리내린 것도 이때였다.
중국 불교의 역경사(譯經史)나 사상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남긴 인물은 구마라습(鳩摩羅什)이다.
중앙아시아 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소승불교를, 나중에는 대승불교를 공부했던 그는
<대품반야경>, <금강반야경>, <묘법연화경>, <유마경>, <아미타경> 등의 대승경전과 용수의 <중론>,
<십이문론> 등 중관학파(中觀學派)의 논서들을 번역 소개해 중국불교 발전에 획기적인 계기를 줬다.
특히 중관사상은 그의 한역(漢譯)을 근거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그의 제자 승조(僧肇)는 <조론(肇論)>을 저술해 중국인이 이해한 공사상을 피력했다. 이 <조론>의 영향은
이후 중국불교 사상계를 풍미했고, 구마라습이 번역한 <중론>, <십이문론>은 중국의 삼론종(三論宗) 성립
근거가 됐다. 그 뒤를 이어 역경승 불타발타라(佛謁跋陀羅)는 <화엄경>을 번역했다.
담무참(曇無讖)은 <열반경>을 번역해서 중국불교에 ‘일체중생에게는 모두 다 불성이 있다.
(一切衆生悉有佛性)’는 사상을 전래해 불성설(佛性說)을 전개시켰다.
또 한편 역경승 진제삼장(眞諦三藏)은 <섭대승론(攝大乘論)> 등 유식학파 경전을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의 대표적인 논서인 <대승기신론>을 번역해 당나라 화엄종 성립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 경전들은 역경이 이루어진 것과 거의 같은 시기, 또는 100∼200년의 간격을 두고 모두 우리나라에
전래됐으며, 우리나라 고승들에 의해 깊이 있게 연구되고 유포됐다.
이들 경전들이 우리나라 불교사상의 골격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승려들 중에서도 역경에 직접 참여한 고승들이 있었다. 백제의 겸익은 중인도의
상가나사(常伽那寺)에서 범어(梵語)를 배우고, 특히 율부(律部)를 전공한 뒤 인도 승려 배달다삼장(倍達多三藏)과 함께 귀국할 때 범문(梵文)으로 된 율문(律文)을 가지고 들어와 그것을 번역했다.
또 신라의 원측(圓測)은 당나라의 현장(玄奘)이 인도로부터 돌아와서 역경을 할 때 그 역장(譯場)의
증의(證義)로서 참석했고, 그 뒤에도 당나라에서 역경과 저술 등에 종사했으며,
신라의 승려 승장(勝莊)도 당나라에 머물면서 의정(義淨)의 역장에서 증의가 됐다.
경전을 제대로 번역해야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실로 엄정한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는데,
경전들의 한역화 과정은 대단히 철저하고 치밀해서 내용상 원본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요즘처럼 전문가 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후원 아래 국가적 사업으로 집단을 이루어 한자 한자
옮기고 정리했다.
이렇게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정확하게 번역해 나갔으나 한자로 된 북방경전은 인도로부터 직접 전수된 경전에 비해 그 본래의 의미가 다소 변질되거나 이질적인 요소를 담고 있을 소지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즉, 경전을 번역할 때 원본을 그 나라 실정에 맞게 첨삭 개조하기도 하고, 그 뜻을 이어 새로운 경전을
편찬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도 불교가 북방 중앙아시아로 전해지면서 다소 변질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이것이 다시 중국에 전해지면서 한역과정에 중국 실정에 맞게 번역하거나 새로운
경전을 편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중국 찬술의 위경(僞經)이 다수 있다고 하는 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그것은 외래 종교인 불교가 중국에 토학화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다.
경전 번역 사업에는 다양한 분업의 직책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문헌에 따라 차이가 보인다.
시대적, 역장별 상황에 따라 직책의 가감이 있었고, 그 수행하는 역할에도 차이가 발생했다.
복잡한 내용은 생략하고, 개략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① 역주(譯主) ― 정면 좌석에 앉아서 원전의 문장을 낭독하는 사람. 주로 서역승으로서,
번역자로 기록되는 이가 바로 이 역주다.
역주는 역장(譯場)을 주관하며, 초기의 역주들은 번역과 설법을 겸했기 때문에 역장에는 수많은 대중이 참여했다. 예를 들어 구마라습(鳩滅什)의 역장에는 3,000여 명, 담무참(曇無讖)의 역장에는 500여 명,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의 역장에는 700여 명, 보리유지(菩提流志)의 역장에는 1,000여 명의 대중이 운집해
역경불사에 동참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장(玄奘)과 같은 수ㆍ당 이후의 역주들은 전국에서 선발된 소수의 정예 인원들로 전문 번역단을
구성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번역 구술하는 방식을 취했으므로 불필요한 논의를 줄이는 등
전문성과 효율성을 지향했다.
② 증의(證義) ― 역주의 왼편에 앉아 역주와 함께 원문의 뜻과 구성을 검토하는 역할이다.
범어의 의미가 번역을 통해 의미 손실이 일어나지 않는지를 점검하는 역할로서 대부분 서역인이 맡았다.
번역된 문장에 대해 교리적으로 점검하고 역주와 토론한다. 이를 위해 주로 번역 문장이 원문의 뜻에 부합하는지, 불법의 이치에 모순되지 않는지를 점검했다. 증의는 역장에서 빠질 수 없는 인원으로 역주,
윤문과 함께 3대 직책에 해당한다.
③ 증문(證文) ― 역주의 오른쪽에 앉아, 역주가 낭독하는 범어 문장을 듣고,
그 글자와 발음에 관해 검토하는 직책이다.
④ 서자(書字) ― 범어 원문의 낭독을 자세히 듣고, 그 음을 중국 글자로 옮기는 과정, 즉 범음(梵音)을 한자로
음사하는 직책이다. 이를테면 sutra를 음사해서 ‘수다라(修多羅)’로 하는 일 따위가 그것이다.
⑤ 필수(筆受) ― 역주가 한어로 구술하거나, 도어가 옮긴 말을 충실히 받아 적는 역할이다.
범음을 옮겨서 중국어로 만드는 역할이다. 서자(書字)가 음사의 단계에 있는데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의역의 단계이다. 이를테면 ‘수다라(修多羅)’를 번역해 ‘경(經)’이라 하는 일 따위이다. 단,
여기서는 아직도 단어의 번역 단계이다. 대체로 필수는 철문(綴文)과 그 역할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⑥ 철문(綴文) ― 필수가 받아 적은 거친 번역문을 다시 정리해 자연스러운 한문 문장으로 바꾸는 역할이다.
문자를 연결시켜서 구절을 이루는 역할도 한다. 번역된 단어를 늘어놓고, 그 순서를 고쳐서
중국어의 문법에 맞는 순서로 배치하는 것이다.
⑦ 참역(參譯) ― 번역된 문장을 원문과 대조, 검토하면서 문장을 다듬어가는 과정이다.
⑧ 간정(刊定) ― 불필요하게 긴 부분을 잘라내어 구절의 의미를 분명히 드러내는 역할이다.
군더더기를 제하고 정확하게 원문의 뜻을 확정하는 과정이다. 지리한(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같은 상태가 오래
계속돼 따분하고 싫증이 나는) 데를 깎아 구절을 결정한다. 이를테면 ‘명(明)’ 이란 무명(無明)이 없는 것이라 해서,
‘무무명(無無明)’이라 돼있는 것을 두 ‘무(無)’를 삭제해서 다만 ‘명(明)’이라고 하는 따위이다.
⑨ 윤문(潤文) ― 마지막으로 문장을 손질하는 과정이다. 주로 전문 승려로 임명하고 남향해 자리를 잡는다고
돼 있다. 역주(譯主) 다음 가는 중요 직책이다. 그 임무는 문장의 마지막 손질이다. 이를테면 <반야심경>의
번역에 보이는 '일체고액(一切苦厄)'이라는 구절은 범어 원본에 없다. 또 '시고공중(是故空中)'이라 돼 있는
‘시고(是故)’도 원본에는 안 보인다. 그것들은 윤문이 문장을 손질할 때 넣은 것이 분명하다.
윤문의 역할에 따라 문장이 유려해 지기도 하고 거칠어 지기도 한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것들이 경우에 따라 시설되기도 했다.
• 증범의(證梵義) ― 범어의 의미가 번역을 통해 의미 손실이 일어나지 않는지를 점검하는 역할로서
대부분 서역인이 맡았다.
• 증범본(證梵本) ― 불법에 대한 스스로의 깨달음과 학문적 이해에 바탕 해 범어 원본의 설명과 표현에
오류가 없는지 점검하는 역할로서 주로 서역인이 맡았다.
• 증선의(證禪義) ― 자신의 깨달음과 체험에 기초해 번역문이 불법의 도리를 오류 없이 전달하고 있는지를
검증하는 역할을 했다.
• 도어(度語) ― 역주의 경전 해석을 한어로 바꾸어 이해할 수 있도록 통역하는 역할이다.
역어(譯語), 전어(傳語)라고도 하며 통역의 역할을 수행했다. 도어가 있었으므로 한어를 하지 못하는
서역의 삼장도 중국에서 역장을 맡을 수 있었다. 구마라습이나 현장, 의정과 같이 범어에 능통할 경우,
역주 스스로 도어를 겸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서자(書字)가 도어(度語)를 맡기도 했다.
• 교감(校勘) ― 여러 자료와 대조해 번역문의 오류를 수정하는 역할, 번역된 경전 중에 위작으로 의심되는 것,
결본으로 완전하지 않은 것 등이 있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필요한 일이었다.
• 범패(梵唄) ― 음율이 있는 문장일 경우, 범패를 두어 번역본이 낭송하기에 적당한 음률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하는 일을 했다.
• 감호대사(監護大使) ― 황제의 명을 받은 대신으로서 역경을 감독하고 위호하는 역할을 했는데,
승려가 맡는 경우도 있었다. 감호대사는 명목은 감독이었지만 황제를 대신해 역경에 필요한 제반 조건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직책이었다. 감역(監譯), 감열(監閱)로도 불렸다.
이러한 과정을 거쳤기에 우리가 구마라습 번역이라고 알고 있지만 구마라습 혼자서 한 것이 아니다.
많은 인원의 역할과 도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구마라습 번역의 경전 문장이 유려해서 널리 보급된 것도
당시 구마라습을 도운 윤문(潤文)의 뛰어난 역할이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이런 관제와 직책의 서술은 당시 역경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 파악함에 있어서,
그 과정이 마치 눈앞에 보듯이 실감 있게 전해준다.
이렇게 전문적이고도 집단적으로 번역된 한역 경전들은 그 내용이 대단히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따라서 원본이 실전돼 구할 수 없게 되면 한역 경전을 바탕으로 그 내용을 역으로 정확히 추정할 수도 있다.
이러함을 통해 경전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와 저술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고,
그 결과 많은 종파가 성립되기도 했다. 대장경은 오랫동안 이루어진 이러한 과정의 총결산이자,
토착화돼 문화의 일부가 된 불교사상의 정수를 담은 것이다.
* 경전 암송---→불전암송(佛典暗誦) 참조.
* 경절문(徑截門)---‘경절(徑截)’이란 바로 질러간다는 뜻으로, 소위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의
단도직입적인 길을 말한다. 즉 일체의 어로(語路), 의리(義理), 사량분별의 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마음의 본체에 계합함을 일컫는다. 수행 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간화선으로 곧바로
본래면목, 즉 진제(眞諦)를 터득, 부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지름길이 경절(徑截)이고, 그 수행법이 경절문이다. 경절문이란 질러가는 문, 지름길로 통하는 문, 수행의 빠른 방법,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경문에 나오는 ‘문(門)’은 대개 출입문이란 의미 이외에, 따위, 부류, 그런 종류, 상태, 가르침 등의 의미가 있다.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최초로 이 이론을 정립했다. 지눌은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을 지어서
일체의 언어와 문자, 이론과 사유를 초월해서 화두를 잡아 활구(活句)로 증입(證入)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말을 여의고 지해(知解:알음알이)를 잊는 경절문의 방편을 인증해 참선하는 자만이 해탈할 수 있다.”는
경절문 사상을 천명했다. 또한 경절문을 곧바로 체득할 수 있는 방편으로는 간화선(看話禪)을 채택했다.
즉, 화두를 통해서 곧바로 본래면목을 깨닫게 하는 방편을 쓴 것이다.
그리하여 지눌 이후 우리나라의 선종에서는 간화선을 방편으로 한 경절문의 공부가 주류를 이루게 됐고,
오히려 불교의 교학을 경시하는 풍조까지 일어나게 됐다.
조선 중기의 고승 휴정(休靜)이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경절이란, 큰 코끼리가 강을 건널 때 물결을 곧바로 질러가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간화선에 입각한 경절문을 크게 중시했다. 그의 제자인 언기(彦機)도
<심검설(尋劍說)>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경절문ㆍ원돈문(圓頓門)ㆍ염불문(念佛門)으로 나눈 뒤 경절문을
최상의 법문으로 취급했다. 그리고 현재 한국불교의 선 수행에서도 이 경절문 법문이 중요시되고 있다.
* 경집(經集)---숫따 니빠타(Sutta-nipata)를 말한다. 빠알리어 삼장 가운데 경장(經藏 Sutta Piṭaka)의
소부(小部, 굿다까니까야/Khuddaka Nikāya)에는 15개의 작은 경문이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숫따 니빠타>이다.
빠알리어 sutta는 경(經)이란 말이고, nipāta는 모음, 집성(集成)이라는 뜻이므로 경집(經集)이라 번역한다.
아마도 이 경은 각장의 작은 경들에 각기 이름을 부여하기 전의 부처님 말씀을 모은 것인 듯한데,
이 경의 각장이 각각 독립된 경전으로 전해지다가 어느 땐가 뒤에 경 이름을 붙여 모아 하나의 경으로
합해졌기 때문에 경집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경전에 경 이름이 있는 것은 부처님께서 차후에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해 붙인 것이다. 내용은 여러 가지 부처님 말씀을 모아놓은 것으로, 갖가지 설화, 대화, 짧은 서정시,
격언, 속요(俗謠) 등을 운문(게송)으로 엮은 것이기에 마치 시문집(詩文集)과 같고,
그 속에 법구경(法句經), 본생경(本生經), 여시어경(如是於經), 닛데사(義釋, Niddesa), 숫따 니빠타(Sutta-nipata) 등 15개의 경문이 실려 있다. ---→숫따 니빠타(Sutta-nipata, 경집/經集) 참조.
* 경행(經行)---고려시대에 민간의 질병과 재액을 물리치기 위해, 스님들이 향불을 들고 북을 치며
불경을 외면서 거리를 걸어가며 복을 빌었던 불교행사를 일컫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스님들이 좌선하다가 졸음을 막기 위해, 또는 건강을 위해 일정한 구역을 가볍게 거니는
것을 경행(經行)이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 원칙적으로 포행(布行) 혹은 경행(輕行)이라 한다.
---→행선(行禪), 포행(布行) 참조.
* 경허(鏡虛, 1849~1912)---조선말기 승려, 속성은 송씨(宋氏), 속명은 동욱(東旭), 법호는 경허(鏡虛)이며,
법명이 성우(惺牛)이다. 조선 500년 동안 잠자던 한국불교를 다시 일으킨 근세 최고 선승이라 평하고 있다.
1849년 전주에서 태어났고, 9세 때, 경기도 과천 청계산에 있는 청계사로 출가했다.
개심사, 부석사, 범어사, 해인사 등에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교화 활동을 펴면서 크게 선풍을 일으키다가
마지막엔 주로 수덕사에 주석하면서, 삼월(三月)로 불리는 혜월(慧月), 수월(水月), 만공(滿空)과 한암(漢岩),
용성(龍城) 등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선종 1대 조사인 마하가섭 존자 이래 75대 조사라고 한다.
“경허(鏡虛) 선사는 봉건적 잔재를 깨부수고 오염된 조선불교를 깨끗이 씻어냈다. 경허를 통해 한국불교는
다시 회생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경허 문하에서 배출된 고승들이 주도한 1954년 이후 불교정화운동에 의해
현대 한국불교가 정립된 것을 보면, 한국불교는 선구자 경허의 압도적인 영향 아래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경허는 잿밥에만 골몰하며 목탁을 두드리던 구한말 불교계에 선(禪)의 정신과 선종교단 으로서
한국불교가 지녀야 할 전통의 복원을 이룬 인물이다.”
그러나 그 당시 일상적인 안목에서 보면 파계승이라 오해 받을 괴이하게 여겨질 정도의 일화를 많이 남겼다.
문둥병에 걸린 여자와 몇 달을 동침했고, 남의 여인을 희롱한 뒤 몰매를 맞기도 했으며,
술에 만취해서 법당에 오르는 등 낡은 윤리의 틀로는 파악할 수 없는 행적들을 남겼다.
그런가 하면 돌연 환속해 박난주(朴蘭州)라고 개명해서, 서당 훈장이 돼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술 담배를 즐겨, 윤리와 도덕을 한국불교에서 깔아뭉개기 시작한 것은 경허 성우(鏡虛 惺牛) 이후라고
평하는가 하면, 일제 강점기 대표적 불교 학자였던 이능화(李能和) 같은 사람은 경허를 사악한 자,
사기꾼이라 혹평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1918년도 간행된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는
경허 스님을 음행과 투도를 끊임없이 자행한 무법자이며, 선종총림에서 마땅하게 제거돼야 할
마설(魔說)을 설한 기인으로 묘사해 놓고 있다.
그리하여 후대인들 중에도 경허를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일탈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일탈은 한두 번에서
끝나야 하고 지속돼서는 안 된다. 깨달았다고 하여 막행막식을 해도 좋다는 것은 율장 그 어디에도 없다.
부처님도 그러신 적이 없고 마조, 조주, 대혜 종고, 그리고 보조 국사, 청허 휴정 등 역대 고승들도 음주와
여색을 한 적은 없다. 심지어 장로종색의 ‘선원청규’에는 불음주, 불사음계를 범하면 추방하라고 명시돼 있다.
경허 스님의 반복적 지속적인 술과 여색은 비록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승가 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경허 스님은 선은 크게 일으켰지만 동시에 한국불교를 깊은 수령으로 몰아 넣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들이 ‘깨달은 선승의 무애행’이고 ‘깨달은 분상에서
대 자유인의 경지’라고 왜곡돼선 안 된다. 무애자재란 번뇌 망상 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며,
욕망으로 인해 본분사를 망각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차법(開遮法, 허용과 제한)이란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서이다. 막행막식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 윤창화
“무명(無明)과 갈애(渴愛)가 일어나지 않도록 뿌리 뽑기 위해서는 팔정도(八正道)를 통한 수행이 필요하다.
이는 사성제(四聖諦)의 마지막 진리로서 명확하게 설명돼 있다. 연기법(緣起法)을 이해한 것을
‘깨달아 해탈한 것’이라고 잘못 알게 되면, 갈애가 일어나는 대로, 혹은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하는
막행막식(莫行莫食)을 하게 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 대표적인 예로 경허 스님을 들고 있다.
깨달음과 해탈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경허 스님의 막행막식을 걸림 없는 행 또는 기인의 행이라고 평가하면서
우러러보며 따르기도 한다. 경허 스님은 연기법을 이해한 상태에 불과하며, 그 막행막식을 보면 경전에서
정의되고 있는 수다원(須陀洹) 상태에도 이르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경허 스님도 말년에 자신의 삶을
후회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경허(鏡虛) 선사 스스로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 게송을 들어보자.
“이치는 단박에 깨치나 망상이 여전히 일어나도다. 단박에 깨달아 내 본성이 부처님과 동일한 줄은 알았으나
수많은 생애를 살면서 익힌 습기는 오히려 생생하구나. 바람은 고요해 졌으나 파도는 여전히 솟구치듯
이치는 훤히 드러났으나 망상이 여전히 일어나는구나.”
소위 수행승이라 이름 하면서 이토록 적나라하게 자기의 치부를 드러낸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것이 어찌 경허 선사만의 고뇌 였겠는가. 이 땅에 살다 간 수많은 수행승, 그리고 오늘도 수행에 정진을
거듭하고 있는 수많은 수행승들, 그들 역시 사람인 한, 끓어 오르는 번뇌 망상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경허는 1912년 4월 함남 갑산군 웅이방 도하동에서 육신의 옷을 벗었다. 세수 67, 법랍 59세였다.
임종게만이 그의 열반을 지켰다. 경허 스님의 열반송이다.
“마음의 달 홀로 둥근데 신령스러운 빛은 삼라만상을 삼키네,
빛과 만상이 모두 사라졌으니 다시 무엇이 있겠는가 (心月孤圓 光呑萬像 光境俱忘 復是何物)”
어떻든 현재 ‘북 송담 남 진제(北松譚 南眞際)’ 두 큰스님의 경우에, 송담 스님은 경허(75대) - 만공(76대)
전강(77대) - 송담(78대)의 계보이고, 진제 스님은 경허(75대) - 혜월(76대) - 운봉(77대) - 향곡(78대)
진제(79대)의 계보이다.
경허 스님에 대한 평은 계속되지만, 고려 말 불교의 부패와 퇴락, 조선 오백년간에 걸친 불교탄압, 그리고
일제침략 등으로 거의 멸종될 위기에 있던 한국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운 분이 경허 스님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국 불교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이었고 한 몸을 불살랐다고 본다. 당시 깨달았다는 분도 오직
경허 선사 한 분 정도였다. 당시 워낙 문맹율도 높아, 불자들은 대승불교의 신격화된 부처님과 보살들의 영향으로 역사적으로 실존하셨던 인간 붓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을 뿐더러 또한 대승경전의 부처님처럼 신이나
절대자로 착각하고, 그분은 아무런 인간적인 갈등도 고민도 없는 완벽한 분으로 생각하는 정도였다.
그런 상황의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데, 그것도 동조자도 없이 혼자 힘으로….
경허 선사도 깨달음을 얻은 뒤 많은 인간적인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산 속에 홀로 구름과 물과 산을 벗 삼아
일생을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그분은 한국불교가 처해 있는 상황을 직시하고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그런 삶을
포기하고 온 몸으로 직접 불교를 중흥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부 행동이 막행막식으로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분의 판단과 결정에 따른 것이지
결코 제 삼자가 함부로 말할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실론섬
경허 스님의 법제자에 대해서는, ‘경허 성우선사 법어집 간행회’가 편찬한 <경허법어>에, 수월 음관
(水月音觀, 1855~1928), 혜월 혜명(慧月慧明, 1862~1937), 용성 진종(龍城震鐘, 1864~1940), 침운 현주
(枕雲玄住, ?), 혜봉(慧峰, ?~?),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 한암 중원(漢巖重遠, 1876~1951)으로 돼있다.
* 경흥(憬興, 생몰연대미상)---신라 고승. 웅천주(熊川州, 현 공주) 출생. 18세에 승려가 돼 경(經)ㆍ율(律)ㆍ논(論) 삼장에 통달했다. 681년 문무왕(文武王)의 유언에 따라 신문왕(神文王)에 의해 국로(國老)가 돼,
삼랑사(三郞寺)에서 저술에 정열을 쏟으며 법상종(法相宗)을 발전시켰다.
저서에 <열반경소(涅槃經疏)>, <법화경소(法華經疏)>, <금광명경술찬(金光明經述贊)>,
<미륵경술찬(彌勒經述贊)>, <유가론소(瑜伽論疏)>, <유가기(瑜伽記)>, <기신론문답(起信論問答)>,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 등 다양하다.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이 681년 유언으로 백제 출신 경흥을 국사(國師)로 삼을 것을 유언으로 당부했다.
그 이유는, 경흥은 원효 다음으로 많은 저술을 했을 만큼 교학에 뛰어났고, 백제 유민을 포섭하고
불교신앙으로 민족의 융합을 도모하려는 종교적ㆍ정치적 배려였을 것이다.
그러나 신문왕은 경흥을 국사로 삼지 않고 ‘국로(國老)’로 삼았다. 선왕의 유언을 살짝 왜곡시켜 국사와 비슷한
국로로 삼았던 것이다. 신문왕은 경흥을 국사로 삼고자 했겠지만, 강하게 반발하는 신라계의 설득을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국로였을 것이다.
* 계(界, 산스트리트어 dhatu, 빠알리어 dhatud)---계(界)라는 것을 불교에서는 영역, 경지, 상황 등으로
해석하지만 세계라는 뜻도 있다. 일반적으로 세계라 하면 달이 있고, 태양이 빛나고, 별이 있고, 그 지구 속에
인간이 살고 있는 이런 것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불교에서 세계라고 하는 것은 그것과 다르다.
그것은 한 부분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 바깥 세계만 세계가 아니라 마음속에 그린 것(의식)까지 합한 것이 불교적 세계관이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계(界)란 말은 종족의 뜻도 있고, 본생(本生)의 뜻도 있으며, 영역, 세계라는 뜻도 있는데,
육근, 육경, 육식의 18개가 동시 작용할 때를 계(界-18계)라고 부른다.
계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안 ․ 이 ․ 비 ․ 설 ․ 신 ․ 의(眼耳鼻舌身意)의 6근(根)과
색 ․ 성 ․ 향 ․ 미 ․ 촉 ․ 법(色聲香味觸法)의 6경(境=육진/六塵)을 합해 12처라 하는데, 이 12처(處)에
안식(眼識)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의식(意識)이 일어나서 이 6식(識)을 더한 18개가
모인 것을 18계라고 한다. 결국 18계란 십이처에 인식작용의 주체인 육식을 포함한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이
의식할 수 있는 광범위한 영역 전체를 계라고 한다. →경계(境界, 산스크리트어 visaya), 십팔계(十八界) 참조.
* 계(戒, 빠알리어, 산스크리트어 Sila, 시라/尸羅)---‘계(戒)’란 불교에 귀의한 자가 지켜야 할 규칙이다.
습관 ․ 관습 ․ 경향을 말하는데, 여기서 악을 버리고 잘못을 예방[방비지악(防非止惡)]하는 세간의 도덕이나
윤리에 해당하는 개념으로서 윤리적 행위, 즉 선행을 일컫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계(戒)란 규율을
지키고자하는 자발적인 마음작용, 자신을 제어하는 규칙을 지키려고 부처님에게 맹세하고 결의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재가불자가 지켜야 할 오계(五戒) 가운데 불살생계(不殺生戒)라는 것이 있다. 살아있는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계이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방 안에 모기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그대로 두면 밤새 피를
빨릴 것이고 결국 뒤척거리다 날밤을 샐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망설이다가 결국 두 손바닥을 쳐서 모기를
터뜨려 죽이고 말았다. 손바닥 안에서 묘한 피의 습기가 느껴지고, 한 순간 찜찜한 기분에 휩싸인다.
“내쫓을 걸 그랬나?” 이 경우, 우리는 불살생계를 어겼다 해서 벌을 받게 될 것인가? 아니다.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모기를 죽이기 전에 느끼게 되는 망설임과, 죽인 후에 느끼는 찜찜함이다. 계란 바로 이런 것이다.
옳지 못한 행동을 앞에 두고 느끼게 되는 죄책감이나 갈등을 통해, 두 번 다시 똑 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참회하고 이를 계기로 올바른 행동들을 자발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새 이것은 좋은 습관으로 발전하고, 결국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평안한 상태로 유지시켜 주게 된다.
그리하여 성철(性徹) 스님은 “계(戒)는 물을 담는 그릇과 같다.
그릇이 깨지면 물을 담을 수 없고, 그릇이 더러우면 물이 더러워진다. 흙 그릇에 물을 담으면 아무리 깨끗한
물이라도 흙물이 되고, 똥 그릇에 물을 담으면 똥물이 되고 만다.”라고 하셨다.
“계(戒)는 천상에 오르는 사다리요, 열반(涅槃)의 도시로 들어가는 문이거늘 어디에 그런 사다리와 문이
또 있을까!” 불교 수행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청정도론(淸淨道論)>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불교는 지혜와 해탈을 위해 계ㆍ정ㆍ혜(戒定慧) 삼학(三學)을 닦아야 함을 가르친다. 생활에서 계를 닦아
마음의 고요함과 청정함에 이르며, 마음의 청정함에 이르게 될 때 지혜를 증득(證得)하게 된다.
그리고 ‘계(戒)’란 우리의 행동과 말, 그리고 생각을 통제함 으로써 자신과 남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고
덕을 쌓는 것이다. 계는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계가 공감, 친절, 사랑의 뇌를 이루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계는 조절에 주로 의존하는데, 긍정적인 경향을 강화하고 부정적인 것을 억제한다.
나아가서 계란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저 구도자들의 뒤를 따르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는
바로 그것이다.
“윤리나 도덕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모든 시대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처럼,
계(戒) 역시 사람인 이상 모두가 지니고 살아야 할 덕목이다. 특히 불교도라면 출가자와 재가자를 막론하고
항상 계의 정신을 상기하며 악행에 대한 꺼림을 통해 자신의 심신을 평안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악행을 일삼으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 사람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발적인 선행의 실천’, 이것이야 말로 불교도로서의 출발이자 깨달음을 향한 첫걸음이다.” - 이자랑.
따라서 ‘계(戒)’는 우리들 수행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그러나 계율에 맹목적으로 집착할 필요는 없다.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는 계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의도이다. 계율에 지나치게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
계율을 적절히 지킬 때 수행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어떤 스님은 사소한 계율에 신경을 지나치게 쓴 나머지
잠도 제대로 못 잔다고 한다. 이처럼 계율 지키기가 짐이 돼서는 안 된다. 물론 수행에서 기본은 계율이다.
훌륭한 계행은 고된 수행과 계율을 포함한다. 기본적인 227계뿐 아니라 도움이 되는 많은 규칙까지도 주의를
기울이고 마음을 집중하는 것은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준다. 생활을 아주 단순하게 만들어 주니까.
그러나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그것이 마음에 부담이 돼, 진작 행해야 할 수행에
지장이 있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마음챙김을 잘 해서 계율과 함께 조화롭게 생활하고 수행에 임해야 할 것이다.
계율은 더 깊은 선정과 지혜로 가는 디딤돌이다. 승려의 계율과 고행자의 계율을 적절히 이용함으로써 우리들
생활은 소박하게 살게 되고 무소유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계(戒, sila)와 율(律, vinaya)’ 참조.
* 계경(契經)---빠알리어 숫타(sutta), 산스크리트어 수트라(sūtra)의 의역이며, 음역어로는 수다라(修多羅)라
하는데, 부처님 가르침을 기록한 경전을 가리킨다. 계(契)는 계합(契合) 부함(符合)의 뜻으로
경전 가르침(내용)이 정법의 이치에도 맞고, 중생의 근기에도 맞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불교에서 계경이라고 하건 수다라라고 하건, 경전의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의미는 '부처 즉 깨달은 자로서의
고타마 붓다가 가르친 가르침' 또는 '그러한 가르침이 기록된 책'을 말한다. 즉, 불교경전의 다른 이름이다.
* 계금취견(戒禁取見)---<법화경> 비유품에 나오는 5견[(五見=오리사(五利使)]의 하나.
계금(戒禁)에 대해 생기는 그릇된 소견―잘못된 계율이나 금지조항을 열반으로 인도하는 올바른 길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그것을 받들고 집착하는 견해를 말한다. 인(因) 아닌 것을 인이라 하고 도(道) 아닌 것을 도라고
하는 그릇된 견해로서, 잘못된 도를 고집해 그것이 천상(天上)에 태어나거나 해탈(解脫)하는 도가 된다고
믿는 잘못된 견해(見解)이다.
계율과 의례에 대한 잘못된 집착으로 타당한 이유는 배제된 채, 무조건 어떻게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있다. “무조건 술을 마시면 안 된다, 무조건 하루 한 끼만 먹어야 한다, 무조건 생명체를 죽여선 안 된다, 무조건 육식을 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이 앞 뒤 사정없이 ‘…무조건’하고 선ㆍ불선도 구분하지 않고,
윤리ㆍ도덕과 전통ㆍ권위에 묶여서 중도를 통찰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계율과 의례에 대한 취착 즉,
계금취견(戒禁取見)이다. 계도견(戒盜見)이라고도 한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명상을 하거나 계율을 지킬 필요는 없다. 법문을 잘 듣고 정신과 물질의 본성을
암기해서 알면 된다.”라고 설법하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수행법은 계ㆍ정ㆍ혜의 세 가지 도를 배척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설법은 계율과 의식에 대한 잘못된 취착(取着)으로 이도 또한 계금취견이다.
도에서 벗어나 있는 줄도 모르고 자기가 한번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어디까지나
고집을 부리는 것 따위이다. →견혹(見惑), 오견(五見) 참조.
* 계급인설(階級因說)---붓다 생존 당시의 바라문들이 인간의 길흉화복의 원인을 설명함에 있어 올바른
업보설을 채용하지 않고 그릇된 주장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 주장을 다섯 종류로 분류했다.
① 자재화작인설(自在化作因說) ② 숙작인설(宿作因說) ③ 결합인설(結合因說)
④ 계급인설(階級因說) ⑤우연인설(偶然因說)
그 중 하나인 계급인설은 인간은 태어나면서 부터 흑(黑), 청(靑), 적(赤), 황(黃), 백(白), 순백(純白)의 여섯 가지
계급으로 구별돼 있어, 그 계급에 따라 인간의 성격, 지혜, 환경, 가계 등이 결정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숙명론으로 후천적인 인간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결합인설(結合因說) 참조.
* 계단(戒壇)---계율을 수여하고 받는 의식을 행하기 위해 마련된 단을 말한다.
주로 정식승려가 되는 구족계(具足戒)를 주는 장소이다.---→금강계단(金剛戒壇), 구족계(具足戒) 참조.
* 계론(界論, 界說論, 빠알리어 다뚜까타/Dhatukatha)---부파불교시대 남방 상좌부의 논서인데, 작자는 미상이다. ‘요소(dhātu)들에 관한 가르침(kathā)’ 으로 번역되는 <계론>은 술어가 나타내는 개념의
내포(內包) ‧ 외연(外延)을 엄격하고도 명확하게 하기 위해 그것들
서로의 포섭 ‧ 피포섭 관계, 상반(相伴)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관계
등을 논하는 극히 형식적이고도 번쇄한 논서이다. 쉽게 말하면, 여러 가지 법들이
무더기(蘊), 장소(處), 요소(界)의 세 가지 범주에 포함되는가 되지 않는가, 관련이 있는가 없는가를
교리문답 형식을 빌려서 설명하고 있다. <법집론>을 보충한 논서이다.
*계명자상(計名字相)---<대승기신론>에서 ‘계명자상(計名字相)’이란 말이 나온다. 내용인즉 이름에 홀리고
이름에 팔리는 인간의 의식을 말하는 것인데, 지금 이 시절의 ‘의식’이란 것이 바로 그런 것 같다.
예를 들어보자. 대학을 입학할 때도 그렇다. 학교 이름을 쫓아간다. 명문(名門)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최우선이고 자신의 적성이나 관심 방향은 일단 뒷전이다. 취직할 때도 그렇다. 기업체의 이름에 홀린다.
유명(有名)한 것이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된다. 상품을 살 때도 그렇다. 브랜드가 선택의 기준이다.
명품(名品)이라는 이름에 팔린다.
장래희망이 뭔가를 말할 때도 이름이다. ‘대통령’ ‘국회의원’ ‘의사’ ‘판사’ ‘교수’등으로 말한다. 이름을 쫒아간다. 무슨 일을 하고자 하는지, 그 일을 하는 동기가 무어고 그 계획이 어떤지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이름이 앞선다.
선거에서도 이름에 팔린다. 소위 인지도를 말하고 지명도(知名度)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는 정당의 이름을 보고 투표한다. 문화행사를 해도 인기 강사, 인기 연예인들의 이름을 보고 사람들이 몰린다. 이렇듯 이름에 팔리고 이름에 홀리는 것을 말한다.
* 계박(繫縛)---마음이 번뇌나 망상 등에 의해, 혹은 외계의 사물에 의해 구속돼 자유를 잃은 상태를 말한다.
박(縛)은 결박(結縛), 구속(拘束), 속박(束縛) 등의 뜻으로, 번뇌의 여러 다른 이름 가운데 하나이다.
번뇌가 마음을 결박해 생사의 감옥에 가두는 것을 뜻한다. 즉, 번뇌가 마음을 묶어서 선법(善法)을 자유로이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이염(離染)을 가로막아 그 결과 생사의 감옥에 가두어진 상태에 계속 처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이염(離染, 산스크리트어 virāga)은 이탐(離貪) 또는 이욕(離欲)이라고도 하는데,
좁은 뜻으로는 탐(貪)을 떠나는 것을 말하며, 넓은 뜻으로는 모든 번뇌를 떠나는 것을 말한다.
박(縛)은 계(繫, 산스크리트어 grantha-얽맴)와 동의어로도 사용된다.
* 계분별관(界分別觀)---계차별관(界差別觀)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나에게 불변하는 실체가 있다는
그릇된 견해를 버리기 위해 오온(五蘊)과 십팔계(十八界) 등을 주시함으로써
이것들이 모두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수행법이 계분별관이다.
계분별관은 오정심관(五停心觀) 중 한 수행법인데, 일체현상으로 나타난 것은 영원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관찰하며, 사물을 올바르게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계분별관 수련이 필요한 사람은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 남을 무시하고 나를 내세우는 사람, 비겁한 사람, 교활한 사람, 지기 싫어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 자기중심적 사고를 많이 하는 사람, 자신의 신분, 학력, 가문들을 내세우는 사람
등에게 해당한다.
불교적 관점에서 세계란 십팔계(十八界)를 말한다.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의 18개가 동시 작용할 때 이를 합해 십팔계(十八界)라 한다. 그러니까 계분별관(界分別觀)이라는 것은 이 십팔계의
모든 법은 지 ․ 수 ․ 화 ․ 풍 ․ 공 ․ 식(地水火風空識)의 육대(六大)화합에 지나지 않는다고
관해 아견(我見)을 여의는 것을 말한다.
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은 사대(四大)라고 해서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네 가지 요소이고,
여기에 공(空)과 식(識)을 더한 것을 육대(六大)라고 하는데, 이 십팔계라고 하는 존재들은 독자적으로 부동한
그런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육대(여섯 가지 요소)가 합해져서 사람도 되고, 물질도 되고, 형상도 되고,
운동도 하고, 있다가도 없어지고, 이 모두가 그렇게 된다.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이것이 고정적으로 있다고
하는 집착을 버리라고 하는 것이다. 집착을 붙잡고 놓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이 아견(我見(자기고집)이고,
그것(我見)을 버려라 하는 것이 계분별관이다. →오정심관(五停心觀), 육대(六大) 참조.
* 계빈국(罽賓國, 카슈미르/Kashmir)---계빈국은 인도 북부에서 AD 2~5세기에 불교가 매우 성행했었던
고대국가로서 AD 7세기까지 존속했었다. 그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펀자브(Punjab) 북쪽,
카불(Kabul) 동쪽에 있었다고도 하고, 혜초는 <왕오천축국전>에서 현 아프간의 수도 카불 일대를 계빈국이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체로 현 카슈미르(Kashmir) 지역이었다고 하는 의견으로 좁혀져 있다.
현재 카슈미르(Kashmir) 지역은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맥의 서쪽 끝 부분의 남쪽에 있는 계곡을 말한다.
면적은 약 22만km2로 한반도 면적과 비슷하다. 아열대 기후인 인도대륙과 달리 이곳은 고원지대라서 쾌적한
환경으로 유명한 관광지로 알려져 있으며, 보석, 그 중에서도 루비는 카슈미르 산이 최상급이라고 한다.
다만 이 지역이 북부는 파키스탄령 이고, 남부는 인도령 잠무 카슈미르 주, 동쪽은 중국이 관할하는
아크사이친의 고원지대, 이렇게 삼분된 상태로 국경분쟁이 있고, 인도 점령지의 경우 주민의 70% 이상이
이슬람교도 로서 인도 정부에 반향하고 있어서 이래저래 치안이 불안한 상태이다.
카슈미르 지역에 있었던 고대 왕국을 중국에선 계빈이라 했다. 계빈은 중국에 비교적 잘 알려졌던 나라였다.
불교관계 한역(漢譯) 전적(典籍)에도 계빈이 자주 나온다. 이 계빈국이 한(漢) 무제(武帝, 재위 BC 141~87) 때부터 중국과 통교가 이루어 졌다고 한다. 당나라 때에도 계빈국과 왕래가 있어 계빈에서 사신을 파견해 오고
명마 등 조공을 바친 일이 있었다.
이미 BC 3세기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왕에 의해 이 지역에 불교가 전파됐으며, AD 2세기 쿠샨 왕조
카니시카왕 때는 쿠샨제국에 복속돼 불교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쿠산 왕조 이후 계빈국은 폐르시아
(지금의 이란) 사산왕조에 복속돼 이슬람화 됐으며, 6세기 중엽에는 돌궐의 지배하에 들어간 것으로 돼 있다.
이러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당나라와 통교가 있었던 것을 보면 계빈국은 강대국에 복속되면서도
자치권은 누린 상태로 오래 존속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현장(玄奘)은 카슈미르에 2년간 머물면서 <구사론>과 <순정리론>을 학습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초기불교사를 장식한 역경승들 중 많은 이가 카슈미르 출신이거나 이곳으로 유학했고,
법현(法顯), 현장(玄奘), 혜초(慧超) 등의 구법승 또한 이곳을 통해 인도로 들어가고 나갔다.
현장(629~645년 인도여행)은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에서 간다라(페샤와르) - 오장나(밍고라) - 탁샤실라(탁실라)
카슈미르-책가(시알코트) - 치나북티(암리차르 일대)를 거쳐 중인도로 들어갔고, 해로로 입국한 혜초는
치나북티-책가-카슈미르-간다라를 거쳐 출국했다. 이렇듯 카슈미르와 간다라는 불교학의 고향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 불교의 전초기지와 같은 곳이었다.」 - 권오민
다음은 계빈국에 관련된 인사들이다.
• 계빈국은 불교가 매우 성행했던 나라로서, 위대한 역경승 구마라습(鳩摩羅什, Kumārajīva, 344~413)이
어려서 계빈국에 유학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 비마라차(卑魔羅叉, 산스크리트어 Vimalāksā, 337~413)---계빈국 승려. 무구안(無垢眼)이라고 번역.
구마라습(344~413)도 그에게 율법을 배웠다. 유송(劉宋)에 와서 율장을 선양하다가 77세로 입적했다.
그는 특히 눈이 푸르다고 해서 당시 사람들은 청안율사(靑眼律師)라 불렀다고 한다.
• 구나발마(求那跋摩, Gunavarman, 367~431)---공덕개(功德鎧)라고 번역하는데 북인도 계빈국 출신으로
20세에 출가해 스리랑카를 경유해 자바 섬에 이르러 불교를 전파하고, 424년에 해로로 중국[유송(劉宋)[에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살선계경(菩薩善戒經)>, <사분비구니갈마법(四分比丘尼羯磨法)>,
<우바새오계상경(優婆塞五戒相經)> 등 10종 18권을 번역했고, 비구니 승단 구성에도 도움을 주었다.
• 불타야사(佛陀耶舍, 산스크리트어 Buddaha-yasas)---계빈국 출신으로 구마라습의 역경사업을 도왔으며,
스스로 <장아함경>과 <사분율>을 번역했다.
• 불야다라(弗若多羅, 산스크리트어 Punyatãra)---계빈국 출신으로서 공덕화(功德華)라고도 한다.
경ㆍ율ㆍ논 3장에 통달했으며, 399년 중국 후진(後秦=姚秦)에 와서 구마라습과 함께
<십송률(十誦律)> 번역에 종사했다.
• 선종 제24대 조사 사자(師子) 존자는 계빈국에서 교화를 폈다. 그런데 당시 불심이 깊던 계빈국왕이
모함에 빠져 폐불 군주로 돌변하자 사자 존자가 의연히 막아섰다. 이에 왕이 물었다.
“스님은 오온이 공함을 깨달았소?” “오온이 공함을 이미 깨달았습니다.”
“그래, 삶과 죽음을 벗어났소?” “삶과 죽음을 이미 벗어났습니다.”
“그럼 내게 머리를 줄 수 있겠군.” “본래 내 것이 아니데 어찌 아까워 하겠습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왕은 사자 존자의 머리를 잘라버렸다. 그러자 하얀 젖이 하늘로 솟구쳤고,
왕은 팔이 저절로 떨어져 7일만에 죽었다고 한다.
• 제25대 조사 바사사다(婆舍斯多, ?~325) 존자는 출생지가 계빈국이었다.
• 상가데바(승가제바/僧伽提婆, Samghadeva)---본래 성은 구담씨(瞿曇氏)로 중천(衆天),
혹은 제화(提和)라고도 하는데, 계빈국 출신의 삼장(三藏)으로 동진(東晉)시대인 317년 <증일아함경>을 최초로 한역했다. 그는 AD 4세기 중반 전진(前秦)왕 부견(符堅) 시대에 장안에 와서 포교에 종사했고,
동진(東晋)시대까지 활약해서 <대념처경(大念處經)>, <옥야경(玉耶經)> 등도 한역했다.
• 불타집(佛馱什)---불타집은 한역해서 각수(覺壽)라 하며, 계빈국(罽賓國) 사람이다.
부파불교시대 미사색부(彌沙塞部) 출신으로 5세기에 중국 남북조시대에 남조 송(宋)나라에 와서
<오분율(五分律)>을 한역했다. 미사색부를 화지부(化地部)라고도 한다.
• <반야심경>은 여러 차례 번역됐는데, 가장 널리 읽혀지는 것은 당나라 현장 법사 번역본이고,
계빈국 출신의 반야(般若)ㆍ이언(利言)이 공역한 <반야심경> 또한 유명하다.
• <화엄경> 중 <40화엄>은 8세기 말 계빈국 출신의 학승 반야삼장(般若三藏, 푸라주나/Prajna)이 한역했다.
• <원각경>은 당나라시대 계빈국 출신의 승려 불타다라(佛陀多羅)가 한역했다.
* 계수(稽首, 산스크리트어 Vandana, Vandi)---반담(伴談)ㆍ반제(伴題)라 음역. 계수례(稽首禮)라고도 한다.
이마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머리를 숙여 공경의 뜻을 표하는 예법을 말한다.
<천수경>에 “계수관음대비주(稽首觀音大悲主)”란 말이 나온다.
* 계수념(戒隨念)---수념(隨念)이란 늘 기억하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을 늘 기억하면 불수념(佛隨念)이 되고,
가르침을 늘 기억하면 법수념(法隨念)이 된다. 따라서 계수념이란 자기가 지키는 계를 늘 기억하고 고찰하는
것 이다. 불교도라면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수념(隨念)이다. 불도(佛道)는 계ㆍ정ㆍ혜(戒定慧)라는 삼학으로
성립되고 있다. 불도를 성공으로 이끄는 세 걸음 가운데 첫째가 계(戒)이다. 계(戒)는 어려운 것이 아니고 도덕을 중시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도는 단지 도덕적으로 되는 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엄중하게 지켜야 하는 도덕항목이 목록으로 제시돼 있다. 그것이 계율(戒律)이다.
계율(戒律)은 단순한 종교적 의식이 아니다. 열광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마음의 집중력을 올려서 지혜를 개발하기 위한 기초훈련이다. 해탈을 이루게 하는 기초이다.
형식적이고 열광적으로 계(戒)를 지키면 성장해야 할 마음이 오히려 경직될 가능성도 있다. 이것은 역효과이다. 이 문제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생겨난다. 이 상황은 불교에서 계금취(戒禁取)라고 한다.
10종류의 번뇌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필수조건인 계율을 지켜야 하지만 그것이 계금취(戒禁取)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계수념(戒隨念)은 그러한 일을 막아준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자신이 매일 지키고 있는
계율에 대해 이성을 바탕으로 해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것도 하나의 계수념이다.
* 계신족론(界身足論, 산스크리트어 Abhidharma-dhātukāya-pāda-śāstra)---원명은
아비달마 계신족론 (阿毘達磨界身足論)으로서 부파불교시대 설일체유부 논서 7론 중의 하나이다.
저자는 세우(世友, 바수미트라/Vasumitra)로 돼 있고, 당(唐)의 현장(玄奘)이 한역했다. 이는 마음과 마음작용에
대한 해석을 크게 진전시키고 있다. 이에 이르면, 법수(法數)에 따라 정리된 술어 (아가마 이래의 법수 외에
설일체유부의 독특한 법수도 나타남) 에 대해 극히 복잡한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개개 술어 사이 관계에
대해서도 극단적으로 미세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어, 아비달마 논의의 번쇄함과 정치함의 도를 더하고 있다.
* 계아착상자(計我著相者)---계아(計我)는 자기 좋을 대로만 생각하는 범부의 속성, 혹은 범부를 말한다.
착상(著相)이란 집착하는 마음이 엉겨 굳어서 조금도 변통이 없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자기의 욕망을
성취 하기에만 집착해 있는 사람은 부처님께서 계행을 주시는 뜻을 모른다. 자비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기 좋을 대로만 욕심을 부려서 거리낌이 없고 남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 이른 바 계아착상자이다. 즉,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지 인정사정 없는 경제동물이다. 오늘날 천민자본주의 인간상의 전형이다.
* 계(戒, 산스크리트어 sila)와 율(律, vinaya)---원래 산스크리트어에서는 계(戒, sila)와 율(律, vinaya)을 별개로
사용해 ‘계율(戒律)’이라고 붙여 쓰지 않았으나, 한역하면서 ‘계율’이라는 합성어가 생겨나고,
한국이나 일본불교도 이 영향을 받고 있다. 이는 계와 율이 동일한 뜻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일상어로 사용할
때에 완전히 구별 지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엄격히 살펴보면 계와 율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계(戒)란 선행을 이끌려는 자발적 도덕규범인데 비해 율(律)은 승가의 질서유지를 위한 강제적 규칙이다.
계와 율은 불교의 맨 앞에 놓인다. 나침판이며, 첫 발자국이다.
붓다의 재세 시에도 출가자들의 파계 행위가 꽤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마라’고 만들어진 것이
율이다. 계는 출가자이든 재가자이든 불도들의 일상적인 삶의 지침이라 할 수 있고, 율은 계를 어겼을 경우
처벌하는 규칙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계와 율은 다르다.
계는 출가자이든 재가자이든 다 지켜야 하지만 재가자에게 해당하는 것은 다섯 가지(오계)이다.
율은 출가승이 지켜야 하는 것인데, 오계는 율 속에 포함돼 있다.
그렇다고 보면, 계는 재가자, 율은 출가자의 것이라 볼 수 있다.
종교윤리에는 두 가지 형식이 있다. 하나는 규범윤리이며, 다른 하나는 응용윤리이다.
계율이란 종교윤리에서는 규범윤리에 속하는 것이며, 윤리의 정합성을 논하기 이전에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하는 일종의 강제성이 내포돼 있다.
규범윤리에 속하는 계율은 세분하면 개인에 관한 조항과 단체에 관한 조항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개인에 관한 것을 계(戒)라 하고, 단체에 관한 것을 율(律)이라 한다.
결국 개인적인 규범과 단체규범을 합쳐 계율이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불교도는 재가자나 출가자 모두 지켜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규범이 5계(五戒)이다.
그 외에 대승계의 대표적인 계율로서 재가불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십선계(十善戒), 그리고 팔재계(八齋戒)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개인적인 규범이며, 기타 교단을 운영하기 위한 조항이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시설된 조항 등은 모두 단체규범이다.
• 계(戒, 산스크리트어 Sila, 시라/尸羅) ― 계란 불교에 귀의한 자가 지켜야 할 규칙이다.
습관 ․ 관습 ․ 경향을 말하는데, 여기서 악을 버리고 잘못을 예방[방비지악(防非止惡)]하는 세간의 도덕이나
윤리에 해당하는 개념으로서 윤리적 행위, 즉 선행을 일컫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계(戒)란 규율을
지키고자하는 자발적인 마음작용, 자신을 제어하는 규칙을 지키려고 부처님에게 맹세하고 결의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재가불자가 지켜야 할 오계(五戒) 가운데 불살생계(不殺生戒)라는 것이 있다.
살아있는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계이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방 안에 모기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그대로 두면 밤새 피를 빨릴 것이고 결국 뒤척거리다 날밤을 샐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망설이다가 결국
두 손바닥을 쳐서 모기를 터뜨려 죽이고 말았다. 손바닥 안에서 묘한 피의 습기가 느껴지고, 한 순간 찜찜한
기분에 휩싸인다. “내쫓을 걸 그랬나?” 이 경우 우리는 불살생계를 어겼다 해서 벌을 받게 될 것인가? 아니다.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모기를 죽이기 전에 느끼게 되는 망설임과, 죽인 후에 느끼는 찜찜함이다.
계란 바로 이런 것이다. 옳지 못한 행동을 앞에 두고 느끼게 되는 죄책감이나 갈등을 통해, 두 번 다시 똑 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참회하고 이를 계기로 올바른 행동들을 자발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새 이것은 좋은 습관으로 발전하고, 결국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평안한
상태로 유지시켜 주게 된다.
그리하여 성철(性徹) 스님은 “계(戒)는 물을 담는 그릇과 같다. 그릇이 깨지면 물을 담을 수 없고,
그릇이 더러우면 물이 더러워진다. 흙 그릇에 물을 담으면 아무리 깨끗한 물이라도 흙물이 되고,
똥 그릇에 물을 담으면 똥물이 되고 만다.”라고 하셨다. “계(戒)는 천상에 오르는 사다리요,
열반(涅槃)의 도시로 들어가는 문이거늘 어디에 그런 사다리와 문이 또 있을까!”
불교 수행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청정도론(淸淨道論)>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불교는 지혜와 해탈을 위해
계ㆍ정ㆍ혜(戒定慧) 삼학(三學)을 닦아야 함을 가르친다. 생활에서 계를 닦아 마음의 고요함과 청정함에 이르며, 마음의 청정함에 이르게 될 때 지혜를 증득(證得)하게 된다.
그리고 계란 우리의 행동과 말, 그리고 생각을 통제함으로써 자신과 남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고 덕을 쌓는
것이다. 계는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계가 공감, 친절, 사랑의 뇌를 이루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계는 조절에 주로 의존하는데, 긍정적인 경향을 강화하고 부정적인 것을 억제한다.
나아가서 계(戒)란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저 구도자들의 뒤를 따르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는 바로 그것이다.
“윤리나 도덕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모든 시대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처럼,
계(戒) 역시 사람인 이상 모두가 지니고 살아야 할 덕목이다. 특히 불교도라면 출가자와 재가자를 막론하고
항상 계의 정신을 상기하며 악행에 대한 꺼림을 통해 자신의 심신을 평안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악행을 일삼으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발적인 선행의 실천’,
이것 이야말로 불교도 로서의 출발이자 깨달음을 향한 첫걸음이다.” - 이자랑.
• 율(律, 산스크리트어 vinaya) ― 법률 ․ 규칙의 뜻이다. 출가한 제자들에게 악행이 있을 때마다
그 행위를 금지하고 벌칙을 규정했는데, 그 조항들을 모은 부처님 가르침을 뜻한다.
율이란 한 나라의 법률 내지 한 단체의 규칙과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을 통해 어떤 단체에 가입하려 할 때 우리는 반드시 그 단체가 제시하는 회원 조약에
동의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이를 어겼을 때는 그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외국에 나갔을 경우에도
마찬 가지이다. 우리는 한국인 이지만, 외국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부터 그 나라의 법률 하에 있게 된다.
율도 이와 같다. 일반인 이었던 사람이 출가라는 행위를 통해 승가 공동체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그는 승가가 제시하는 규칙에 따라야 한다. 만약 그가 따르지 않고 불자가 되기 전일 때와 똑같은 행동을
반복 한다면 승가의 질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소 강제적 이기는 해도 승가의 질서를 유지해
그 안에 있는 모든 출가자들이 수행에 전념하고 화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율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계와 율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는데, 우리는 계율이라는 합성어를 사용하며,
이를 승가의 규칙 으로서의 율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계에는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강제성은 없다. 오로지 자발적인 정신력의 문제이다. 한편, 율 역시 계의 정신을 기반으로 지켜져야 함을
말할 필요도 없다. 아무리 강제적인 규칙이라 해도 자발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정신이 결여돼 있다면,
그것은 언제 바닷물에 씻겨 나갈지 모를 모래성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계는 수행자 개인이 지켜야 할 덕목이고, 율은 무리를 이룬 집단인 대중이 지켜야 할
도리를 일컫는다. ‘계’가 자발적으로 지키는 것으로 도덕과 비슷한 데 비해, ‘율’은 타율적인 규칙으로 법률과
비슷하다. ‘율’은 출가교단(出家敎團-僧團)의 교단규칙으로 단체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고 입단자들은 이를
지키도록 강요되지만, 불교수행 으로서는 이를 자발적으로 지켜야 하므로 ‘계’의 입장에서 ‘율’을 지키고,
‘계’와 ‘율’을 합해서 ‘계율’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타율적 의미의 율보다 자율적 의미의 계를 더 강조하는 데에 불교계율의 특징이 있다.
부처님께서는 계율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바닷다에게 “데바닷다여,
교단에는 계율과 규칙은 본질적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그런데 청화(淸華, 1924~2003) 스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율 가운데 부처님이 설하신 계율만큼
합리적인 것은 없다. 계율은 우리 사회 생활에서 꼭 지켜야 할 우주의 질서이다.”라고 하셨다.
계율은 주로 율장(律藏)에 실려 있다. 계율이란 부처님이 제정한 교단생활의 규칙을 말하며, 계본(戒本)
건도부(犍度部)ㆍ경분별(經分別)ㆍ부수(附隨)로 이루어졌다. 율장이 최초로 성립된 것은 석가모니 열반 직후
제1결집 때의 일이며, 이때 결집된 율이 그 후 점차 정리, 조직돼 오늘에 전해진 율장이 됐다.
율장에는 남방 상좌부의 팔리율과 더불어 화지부의 <오분율> 30권, 법장부의 <사분율> 60권,
대중부의 <마하승기율> 40권, 설일체유부의 <십송율> 61권, 설일체유부의 <유부신율> 170여 권 등이 있다.
* 계율의 성립과 분류
1) 계율의 성립---율장(律藏)이 성립된 시기에 대해서는 다른 불교경전의 성립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연대를
유추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율장의 성립연대는 부파분열 이후 즉,
불멸 후 300년 이후(서기 150년경)로 보인다.
물론 율장의 내용은 다소 변형되고 증보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 가운데 가장 일찍 성립된 것은 BC 1세기경
(불멸후 300∼400년)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사분율(四分律)ㆍ오분율(五分律)이며, 다음으로 AD 1세기경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십송율(十誦律)>이고, 그 후 다시 AD 2세기경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승기율(僧祇律)>이고, 최후에 성립된 것이 AD 4세기경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유부율(有部律)>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그리고 빠알리 율은 <십송율(十誦律)>에 가까운 것으로 AD 100년 전후에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역(漢譯) 율장의 번역 연대는, <십송율>은 서기 404년, <사분율>은 412년, <승기율>은 416년,
<오분율>은 524년, 그리고 <유부율>은 703년경이다.
2) 계율의 분류---<사분율행사초(四分律行事鈔)>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① 계법(戒法) … 부처님께서 정한 법.
② 계체(戒體) … 계를 지키려고 하는 불자들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는 ‘계’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말한다. 즉, 수계식에서 이루어지는 자발적인 결의는 ‘계체(戒體)’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돼 수계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고, 이후 그 사람이 불교도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게 해 주는 하나의 길잡이가 된다.
따라서 수계를 통해 계체가 원만히 이루어질 때 계품에 맞는 신분이 만들어지게 된다.
특히 한역(漢譯)으로 전해지는 율(律)이나 논(論)에는 ‘계체(戒体)’라는 것이 있어서 이 문제가 각양 각색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수계를 거침으로써 발생해 몸에 배게 되는
‘방비지악(防非止惡-죄를 방지하고 악을 그치게 함)의 힘인 것이다.
빠알리율에서 말하는 ’비구성(比丘性, bhikkhu-bhāva)’이 계체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③ 계행(戒行) … 계체가 낱낱의 행동으로 나타난 것을 말한다.
④ 계상(戒相) … 신자로서 계행을 지킴으로서 겉으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모습을 말한다.
다른 사람이 볼 때, 계행을 하는 불교 신자의 모습은 남다를 것이다. 그 게 계상이다.
1). 소승에 있어서의 계의 분류
◆ 오계(五戒) … ㉮ 살생을 하지 말라. ㉯ 훔치지 말라. ㉰ 음행하지 말라. ㉱ 거짓말 하지 말라. ㉲ 술 마시지 말라.
◆ 팔계(八戒) ― 오계에 아래 셋을 더한 것. ㉳ 꽃다발 쓰거나 향 바르지 말라.
㉴ 노래하고 풍류에 휩싸이지 말며, 일부러 가서 구경하지도 말라. ㉵ 높고 잘 꾸민 평상에 앉지 말라.
◆ 십계(十戒) ― 팔계에 아래 둘을 더한 것. ㉶ 때 아닌 적에 먹지 말라.
㉷ 제 빛인 금이나 물들인 은이나 다른 보물을 갖지 말라.
◆ 삼귀의계(三歸依戒) ― 불교에 처음 귀의할 때 하는 의식으로, 곧 불(佛)ㆍ법(法)ㆍ승(僧)에
귀의하는 것을 의미한다.
◆ 비구의 250계
◆ 비구니의 348계
2). 대승에 있어서의 계의 분류
보살이 수행하는 육바라밀(六波羅密)의 하나가 돼 보다 적극적인 수행덕목으로 발전했으며,
일체의 계를 삼취정계(三聚淨戒)로 구분한다.
<삼취정계(三聚淨戒)>
◆ 섭율의계(攝律義戒) ― 계율을 지킴으로써 자신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곧, 5계ㆍ10계ㆍ250계 등
일정하게 제정된 여러 규율위의(規律威義) 등을 통한 윤리 기준이다.
◆ 섭선법계(攝善法戒) ― 금계(禁戒)로서 만족하지 않고 봉사정신으로 이타(利他)적인 선행을 닦아가는 것이다. 곧, 선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총섭(總攝)하는 선량한 마음을 기준으로 하는 윤리 원칙이다.
◆ 섭중생계(攝衆生戒) ― 궁극적으로 중생을 보살로, 그리고 부처로 성취시켜 불국토를 실현하는 것이다.
곧, 일체의 중생을 제도한다는 대원칙에 따르는 윤리 기준이다.
* 계인(契印)---부처님이 취하고 있는 수인(手印)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수인(手印)은 손의 형상으로서 진리와
서원을 전달하는 것이고, 계인(契印)은 특별한 물건을 들어 그 구제적인 내용과 의미를 표현한다.
즉,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아미타불은 수인을 하고 있으며, 약사여래불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등
보살들과 신장님들은 물건을 손에 들고 계인을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이 손에 든 물건으로 그 뜻을 전하는 것을 계인(契印)이라 한다.
약사여래는 중생의 병고를 고쳐주기 위해 약그릇을 들고 있는데, 약기인(藥器印)이라 한다.
즉, 중생의 고난과 업장을 멸해 주고, 병마를 치료해주시는 서원의 상징으로 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는
계인(契印)을 하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흔히 중생들의 고통을 씻어주고, 소원을 가피하는 상징으로 감로수병을 들고 있는
감로인(甘露印)을 하고 있다. 혹은 업보와 고뇌로 힘들어하는 중생들에 대한 구제의 상징으로
연꽃을 들고 있는 자비인(慈悲印)을 하기도 한다.
지장보살은 고통 받는 지옥중생을 구제하는 서원의 상징으로 육환장(六環杖) 지팡이를 들고 있고,
꽃. 약기(藥器) 등 각종 지물을 들고 있는데, 이를 비원인(悲願印) 혹은 구제인(救濟印)이라 한다.
* 계장(戒藏)---3장(藏) 중의 하나. 계율을 기록해 놓은 경전을 계장이라 한다.
다음은 <화엄경> ‘십무진장품(十無盡藏品)’에 나오는 말이다.
“자기 마음이 청정한 것을 믿음이 신장(信藏), 제어하고 그치는 것이 계장(戒藏), 어질고 선한 것을 받들어
존중하는 것을 뉘우침인 참장(慙藏), 포악을 막는 것이 부끄러움인 괴장(愧藏), 가르침을 받아들여 넓게 하는 것이 들음이 문장(聞藏), 자기보다 남에게 베푸는 것이 베풂인 시장(施藏), 모든 법을 잘 결택하는 것이 지혜인
혜장(慧藏), 마음에 밝게 기억하는 것이 염장(念藏), 배운 것을 잘 지니어 기억하는 것이 지장(持藏),
지닌 법을 공교히 선양하는 것을 변장(辯藏)이라 한다.”
위의 것을 아래와 같이 말할 수도 있다.
“믿음의 에너지로 날마다 정진하는 것이 신장(信藏), 청정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이 계장(戒藏),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참장(慙藏), 과거의 부끄러움도 기억하는 것이 괴장(愧藏), 항상 법문을 들으려 하는 것이 문장(聞藏), 내 귀한 것들을 아낌없이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시장(施藏), 세상 모든 것을 제대로 아는 지혜를 가동시키는 것이 혜장(慧藏), 정법을 바르게 믿고, 이해하는 것이 염장(念藏), 정법을 받아 지니고, 언제나 실천하는 것이 지장(持藏), 정법의 수호자가 되며 전법으로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것이 변장(辯藏)이다.”
* 계(戒, 빠알리어 sīla) ․ 정(定, samādhi) ․ 혜(慧, paññā)---계(戒) ․ 정(定) ․ 혜(慧) 삼학(三學)을 부처님
가르침의 요약 이라고 한다. 따라서 계학, 정학, 혜학의 삼학은 수행자가 닦아야 할 세 가지 영역이다.
계(戒)는 계율을 말하고, 정(定)은 삼매를 말하며, 혜(慧)는 반야를 말하는 것이다.
<청정도론>은 “계(戒)는 나쁜 세계를 뛰어넘는 수단을 나타내고, 집중(定)은 욕계를 뛰어넘는 수단을,
지혜(慧)는 모든 존재(삼계)를 뛰어넘는 수단을 나타낸다.”라고 적고 있다.
이를 경전에 연계시킬 경우, 계는 율장(律藏)이고, 정은 경전(經典)이며, 혜는 논서(論書)에 해당한다.
계 ․ 정 ․ 혜 이 세 가지 가운데 특히 계(戒)가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도덕적 기초 없이는 어떠한 정신적 발전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지계는 선정이나 지혜를 얻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지계를 다른 말로 ‘심신(心身)의 조정(調整)’이라고도 한다.
‘심신의 조정’ 없이는 정신을 통일 · 집중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유행경(遊行經)>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세존께서는 발지국(拔祗國)을 돌아 다니시다가
구리(拘利)촌에 이르러 어느 나무 밑에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기 네 가지 깊은 법이 있다.
첫 번째는 거룩한 계(戒)이고, 두 번째는 거룩한 선정[定]이며, 세 번째는 거룩한 지혜이고,
네 번째는 거룩한 해탈(解脫)이다. 이 법은 미묘해 알기 어렵다. 나와 너희들은 이것을 밝게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나고 죽는 가운데 끝없이 떠돌아 다니고 있는 것이다.”
※ 발지국(拔祗國, 산스크리트어 vṛji, 빠알리어 vajji)---지금의 파트나(Patna) 북쪽에 인접해 있던 인도 고대국가, 바이샬리(vaiśālī)를 중심으로 비데하족(videha族)ㆍ릿차비족(licchavi族)ㆍ브리지족(vṛji族) 등으로 형성돼
있었는데, 기원전 6세기에 마가다국(magadha國)에게 멸망당했다.
그리고 또 부처님은 콜리성 북쪽 한 나무 아래에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청정한 계율을 지니고 선정을 닦으며 지혜를 구하라. 청정한 계율을 지니는 사람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따르지 아니하고, 선정을 닦는 사람은
마음이 어지럽지 않게 되며, 지혜를 구하는 이는 애욕에 매이지 않으므로 하는 일에 걸림이 없다. 계ㆍ정ㆍ혜가 있으면 덕이 자라고, 그 이름이 널리 퍼지리다. 그리고 마땅히 행할 것을 행하면 죽은 뒤에 다시 윤회하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삼학(三學, 산스크리트어 tisso sikkhā) 참조.
* 계(戒)ㆍ정(定)ㆍ혜(慧) 삼학의 조화와 문제점---불교의 교학 및 실천 체계는 전통적으로 계ㆍ정ㆍ혜 삼학의
완성으로 설명된다. 이들 세 가지는 서로 바탕이 되고 떠받들면서 향상하고 확장, 심화되는 관계에 있다.
그중에 하나가 빠지거나 온전치 못하면 나머지 둘은 무의미한 것이 되며, 하나 하나는 다른 둘의 조건이자
결과가 되는 셈이다. 따라서 이렇게 삼학의 유기적 이해와 실천이 있어야 올라른 불교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제점은? 앞으로 채우고 이루어내야 할 과제는? 아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계율을 소홀히 여기는 일반적 풍조다. 여기에는 여러 문제가 뒤섞여 있지만,
우선 계율 가운데는 지킬래야 지킬 수 없는 조항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소승불교의 편협한 계율 이해와 형식적 지계(持戒)를 지적하고 비판하면서도 환경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필요 없게 됐거나 불합리한 조항들을 삭제, 수정하거나 새롭게 제정하지도 못한다.
이렇다가 보니, 율(律)은 초심자 길들이기에나 필요한 장치이고, 계(戒)는 편할 대로 늘였다 줄였다 말 그대로
자심계(自心戒)가 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책무에는 무관심이다.
자비, 평등, 평화의 원칙과 실천을 등한시하고 있다. 21세기 사회에 적합성을 묻는 대중공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둘째, 일반적으로 교학과 특정 교리의 역사적 이해가 부족하다. 한글로 번역돼 유통되고 있는 대부분의 경전들을 보면 한눈에 우리 실력이 보이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오래전에 동국역경원에서 펴낸 한글대장경을 보면 우리
스승님들의 한문 실력, 우리말 솜씨, 거기다 가장 기본적인 교리의 이해 정도가 드러난다.
‘覺’ 자만 나오면 무조건 ‘깨달음’이고, ‘法’ 자는 그냥 ‘불법(佛法)’이며, ‘空’ 자는 모두 ‘텅 빈’이다.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소의경전이라는 <금강경>은 말할 것도 없고,
어린이 불교 법회에 나오는 코흘리개 들도 달달 외우는 <반야심경>을 앞뒤 맞춰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한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시치미 떼고,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심심 미묘한 도리라고 한다.
계율, 아비달마, 위빠사나(vipassanā) 말만 나오면 소승 딱지를 붙이려 든다. 그러나 소위 대승경전에서
지계(持戒)나 혜(慧), 관(觀) 자를 다 빼면 무엇이 남고, 아비달마를 모르는데 어떻게 유식, 화엄을 읽을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교입선(捨敎入禪)을 할 수 있게 하려면 먼저 제대로 담아 줘야 한다.
셋째, 수행과 일상생활의 괴리이다. 중국불교 역사에서 인도식 출가 수행자의 기본 정신인 무소유의 원칙을
버리면서 까지 ‘선농일치(禪農一致)’ 즉 ‘생산활동과 수행을 분리하지 않음’을 내세운 것은 가히 혁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 선종을 그 기원으로 삼는 우리 승가에 이 전통은 다만 전설로 남아 있을 뿐이다.
불교 수행의 근본 바탕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업설(業說)이다.
경전에서는 업(業, karma)을 ‘의도된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수행자가 성성하게 깨어 있으라는 것은 신(身)ㆍ구(口)ㆍ의(意) 삼업 모두를 의도된 행위로 만들라는 말이다.
업설은 따라서, 모든 행위가 ‘주체적 결단’을 통한 의도된 행위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전적으로
내가 지겠다는 정신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정신에 입각한 자기 개발 노력은 모두 수행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얼토당토 않은 무아 논리를 들이미는 것은 가소롭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일반 재가불자 들에게 조차 좌선만이 최고의 수행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고,
수행이 특정 카스트의 전유물로 전락한 것 같은 현실이 실로 안타깝다.
거기다 이미 고타마 붓다에 의해 정리된 사마타(samatha-止, 定, 寂)와 위빠사나(vipa-ssanā-觀, 慧, 照)의 문제를 지금까지 따지고 있다. 삼매(samādhi)를 ‘등지(等持)’라고 옮긴 옛사람들이 이미 답을 준 것이다.
이것은 곧 지(止)와 관(觀)의 균형을 말한다. 지가 빠진 관이나 조(照)가 작동하지 않는 적(寂)은 바른 선정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성적적(惺惺寂寂) 대 적적성성(寂寂惺惺)의 논란은 둥근 공을 놓고
어디가 앞이냐를 따지는 불필요한 싸움이다.
양쪽은 똑같이 삼매를 구성하는 요소일 뿐이고, 삼매 또한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교는 발상지인 인도에서 이미 여러 부파의 발생과 성쇠를 거쳤고, 인도반도 밖으로 퍼져 나가면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처음부터 불교는 중도임을 표방하고 나섰지만 늘 중심을 곧게 유지했던 것은 아니다.
긴 불교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의 핵으로 기억하는 용수, 무착, 세친, 보리달마, 혜능 등 옛 스승들의 업적은
다름 아닌 고타마 붓다의 연기, 중도의 정신, 현실 세계로의 복귀였다. 어느 한쪽으로 심하게 치우쳤을 때,
대사회적 유연성을 잃고 굳어 갈 때, 혹은 전통이라는 장애물에 걸려 흐르지 못하고 정체돼 있을 때,
둑을 뚫고 새물을 끌어들인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분들이 끌어들인 새물은 이미 거기 있었던 우물,
고타마 붓다의 연기, 중도에서 퍼 올린 것이다. 가장 오래된 샘에서 새물을 길어 냈다는 것은 역설적이기도 하다. 우리가 파야 할 우물도 바로 그 자리다. - 재연 스님
* 계족산(鷄足山, 쿠르키하르/Kurkihar)---인도 동북부, 비하르주(州)에 있는 산.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붓다가야(buddhagayā) 동북쪽에 인접해 있는 산으로 정상에 큰 불교승원지가 있다.
사방 약 200m와 사방 40m인 2개의 유적구(遺跡丘)가 있다. 1930년 발굴에 의해 큰 유적구에서 약 150체의
상(像, 대부분은 브론즈)을 위시해서 대좌, 수정 소탑, 종, 도기 등 230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현장(玄奘)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기록된 계족산이 이곳에 해당된다고 한다.
닭발처럼 세 가지로 나누어진 듯 생긴 산으로, 마하가섭(摩訶迦葉) 존자가 여기서 부처님 의발을 간직하고
있다가 다음 세상에 미륵불이 나타나면 전한다고 하는 전설적인 산이다. 이런 성스러운 계족산이기에
그 이름을 따서 중국과 우리나라 여러 곳에 계족산이란 이름의 산이 있다.
* 계청정(戒淸淨)---마음청정에는 7단계가 있는데, 계청정(戒淸淨), 심청정(心淸淨), 견청정(見淸淨),
도의청정(度疑淸淨), 도비도지견청정(道非道智見淸淨), 행도지견청정(行道智見淸淨),
지견청정(知見淸淨)의 단계이다.
여기서 계청정(戒淸淨)은 계율로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성격을 세탁해서 인간다운 성격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계청정에 성공하면 번뇌에 시달리지 않고 편히 생활할 수가 있다.
기타는 다음과 같다.
• 심청정(心淸淨) ― 마음을 세탁해서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 견청정(見淸淨) ― 견해ㆍ의견ㆍ사고방식을 세탁해서 어엿한 철학자, 과학자가 된다.
• 도의청정(度疑淸淨) ― 이것은「의심을 건넌다.」라는 단계이다.
• 도(道) 비도(非道) 지견청정(智見淸靖) ― 도의청정에서 진리를 아는 단계까지 이르면, 다음으로 지혜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올바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미 의심은 없다. 거기까지 이르면 올바름에 대하여
지혜가 나타난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도(道)와 도가 아닌 것(非道)에 대한 지견(智見)이다.
「마음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 깨닫기 위해,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이런 방식이다.」라는 방법론을 찾아낸다.
이 방법론은 과학의 세계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과 동일하다.
• 행도지견청정(行道智見淸淨) ― 「어느 것이 도(道)인가? 어느 것이 도(道)가 아닌가?」라는 지혜가 생겨난
사람은 다음에 그 도(道)를 실천해 보게 된다.
자신이 결정한 연구 방법대로 실제 연구하는 것이 행도지견청정(行道智見淸淨)이다.
• 지견청정(智見淸靖) ― 마지막은 지혜가 생겨나는 단계이다. 가설을 입증(立證)하기 위한 연구를 실제로
추진해 보면 어떻게 될까? 가설이 입증된다. 진리에 이르는 길(道)을 알고, 실제로 그 방법을 실천해 보면
비로소 7번째인 지견청정(智見淸淨)이 나타난다.---→견청정(見淸淨), 심청정(心淸淨) 참조.
*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고려 보조국사 지눌(知訥) 스님이 조계산에서 수선사(修禪社)를 만들고
새로운 선풍을 일으켰을 때, 처음 불문에 들어온 사람과 수선사의 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저술한 책이다.
이 책은 본문 907자로 구성된 한국판 백장청규(百丈淸規)라 하겠다.
수선사는 송광사(松廣寺) 이전의 옛 이름으로 불사 전에는 작은 암자에 불과했다.
조선 초기부터는 원효 대사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과 야운 스님의 <자경문(自警文)>을 합쳐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한 권으로 엮어져서 전국 사찰 규모의 청규로 널리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의 내용은 크게 세부분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처음 불문에 들어온 초심자를 경계한 것으로서 가장 많이 비중을 두었다.
둘째는 일반 승려를 경계하고 있다. 승려들이 대화. 토론. 대인관계. 출행(出行). 공양(供養) 때에 갖추어야 할 주의사항 등, 흔히 저질러 지고 있는 잘못들과 사원생활의 화합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를 경계했다.
셋째는 선방에서 수행하는 자들을 경계한 것이다.---→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참조.
* 계탁(計度)---의식의 작용으로 여러 사물을 잘 헤아려 분별함이란 말이다. 계(計)는 헤아린다는 뜻의 한자어로, 전통적인 용어인 계탁(計度)의 줄임말 이어서, 계탁이 곧 분별(分別)이란 뜻이다.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두루 계탁(計度)하여 집착하는 성질"이다.
변계(遍計)는 모든 것을 치우치게 헤아리고 억측한다는 뜻이고, 소집(所執)은 분별해 집착한다는 말이다.
우리 중생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고 모든 것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보고 집착한다는 말이다.
* 계학(戒學, 산스크리트어 sīlasikkhā)---불법수행자는 반드시 닦아야할 계학(戒學), 정학(定學), 혜학(慧學)의
삼학(三學) 중 계학은 마음의 청정을 지켜 마음을 맑게 하고, 말과 행실을 다스려 마음의 진실을 지켜가는
계율에 관한 것이다. 즉, 붓다가 제정한 계율을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불자는 계 ‧ 정 ‧ 혜(戒 ․ 定 ․ 慧)에 의지해 마음을 닦고 불법을 성취하게 되는데, 그 첫 과정이 계학(戒學)이다.
계를 행하면 선정(禪定)이 생긴다고 해 인계생정(因戒生定)이라고 한다. 수행을 위한 준비과정이 곧 계학(戒學)
으로서, 계가 갖추어 지지 않으면 정과 혜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붓다 가르침이다. →삼학(三學) 참조.
* 계합(契合)---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을 말한다. ‘상응(相應)’을 빠알리어로는 상윳따(saṃyutta)라
하며, 이는 계합(契合), 혹은 인과상순(因果相順: 인과가 서로 따름 또는 서로 순종함)과 통하는 말이다.
따라서 상응, 계합, 인과상순이 비슷한 말이라 하겠다.
① 예컨대, 하루는 오조 홍인(弘忍) 대사께서 대중에게 공포했다. “모두 공부한 바 소견(所見)을 글로 지어 바쳐라. 만약 진리에 계합(契合)하는 자가 있을 것 같으면 법(法)을 전해서 육대조(六代祖)로 봉(封)하리라.”
② 예컨대, 도(道)의 비밀스런 존재는 오직 증험(證驗)해 본 사람만이 아직 입을 열지도 않고 붓을 들기도 전에
묵묵히 계합(契合)할 수 있는 것이다.
③ 예컨대, 본성(本性)은 결코 연속적인 노력(가재가 사다리를 올라가듯)의 결과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본성은 그 성질상 결코 점차적으로 알아지는 것이 아니다. 본성은 어느 한 순간 그 자체와 계합(契合)돼
하나가 되는 것이지, 점진적으로 단계를 밟아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④ 예컨대, 본래 성불(成佛)이다, 깨닫고 나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깨닫기 전에도 부처님 이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모든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곳에서 벗어나자 비로소 그것과 계합(契合)이 되었다.
* 계향훈수(戒香薰修)---이 말은 대승경전의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나오는 말이다.
계율의 향기가 몸에 배어 그 사람의 덕의 향기가 사방으로 번져 가는 것"이라는 뜻이다.
훈수(薰修)는 훈습(薰習)이라고도 쓴다. 그 몸에 스며들어 떨어지지 않게 된 상태를 가리킨다.
불교는 사부대중을 불문하고 오계. 팔계. 십계. 비구/비구니계 등의 계율을 지키는 것을 중시해왔다.
이런 점에서 붓다는 모든 사부대중의 스승으로서 철저하게 계율을 지키고 모범을 보였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오계의 첫 조항인 "생명 있는 것을 죽이는 일에서 떠나는 것"을 일생 지키겠다고 맹세하고 그것을 되풀이 해서
마음에 새겨갈 때 생물을 해치지 않는 일종의 잠재적인 힘이 그의 몸에서 생겨나 어떤 상황에서
생명을 죽이고자 손이 움직여도 계율의 자재력과 힘이 들어 올렸던 손을 내리게 만든다.
스스로가 이런 상태에 이르면 비로소 계율을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계율의 원어 sila의 원래 의미는 "습관"이란 뜻이다. 경전이 한문으로 번역이 되면서 대부분의 계율사항이
명령조 이거나 또는 계율을 법을 설법하듯 공부하는 가르침으로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으나
불교에서 계율이란 타율적인 것이 아니라, 계율을 스스로 적극 지켜간다는 자율적인 의미이다.
따라서 계율이 완전히 몸에 배어 습관화가 되는 수행이야말로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모습일 것이다. - 실론섬
* 계현(戒賢, 산스크리트어 Sīlabhadra, 529~645)---동인도출신 유식학 승려. 마가다국(Magadha國)
나란타사(Nālandā, 那爛陀寺)에 출가해 호법(護法, 530~561)의 가르침을 받고, 그의 뒤를 이어 나란타사를
총괄했으며, 현장(玄奘, 602~664)의 스승이다. 629년에 인도에 들어간 현장이 630년 나란타를 방문했을 당시
계현은 나란타사 주지이자 학장이었다.
계현은 무착(아상가) - 세친(바수반두) - 진나(陳那, 디그나가/Dignāga, 480~540)와
호법(護法, 다르마팔라/Dharmapāla, 530~561)으로 계승되는 유가행파(瑜伽行派)의 대학승이었으며,
현장이 궁금해 하던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의 최고 권위자였다.
그 때 계현(戒賢, 실라바드라)은 현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장이 중국을 떠나던 해에 계현은 중병에 걸려
죽게 됐다. 그러나 그 때 미륵보살이 꿈에 나타나 “삼년 뒤에 동방에서 한 구도승이 찾아올 것이니 살아남아서
그에게 법을 전하도록 하라.”는 수기를 받고 병이 씻은 듯이 낫는 몽중가피를 입은 터였다.
현장을 보자마자 그가 미륵보살에게 부촉 받은 그 구도승임을 한눈에 알아보고 5년 동안 유식학(唯識學)을
가르쳐서 그의 법을 잇게 했다. 시험도 없이 바로 입학하는 특혜에다가 상수 제자로 특별 수업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현장의 구도 열정에 제불보살이 감동했기 때문이라 하겠다.
계현은 그때 106세의 고령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열과 성을 다해 현장에게 <유가사지론>, <현양론>,
<대법론>, <인명론> 등 여러 논서를 집중해서 직접 가르쳤다.
현장은 여기서 수학한 것을 바탕으로 귀국한 후에는 일생을 역경에 바친다.
그리고 630년 현장이 나란타사를 방문하기 바로 전에 학장의 자리에서 은퇴한 호법(護法)은 유식학의 양대
분파 중 하나인 유상유식(有相唯識)을 발전시켰던 인물로서 <성유식보생론(成唯識寶生論)>을 저술했으며,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계현(戒賢)은 호법의 사상을 현장에게 전수시켜 중국 법상종(法相宗)을 개창케 하기도 했다.
* 고(苦, 빠알리어 dukkha, 산스크리트어 duhkha)---고(苦)는 무상(無常)ㆍ무아(無我)와 더불어
삼유위상(三有爲相-현상계에 있어서의 세 가지의 모습)으로서 불교의 기본 입장이다.
그러나 제행무상(諸行無常)이나 제법무아(諸法無我)에 대해서는 불교도 이외의 일반사람 이라도
이를 쉽게 인정하지만, ‘일체개고(一切皆苦)’에 대해서는 무상이나 무아처럼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명에 대한 기본가치는 죽어서 천상에 태어나는 것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일체개고의 사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제법무아(諸法無我)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이며, 이 세 명제는 불교의 인식론이고,
일체개고(一切皆苦)라는 명제를 알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병이 무명(無明)이다.
무명 때문에 일체개고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러한 주제들은 인간들이 당면한 괴로움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처님은 형이상학적 질문에 답하기를 거부했다. 이것을 무기(無記)라고 했다.
불교의 당면목적은 중생이 겪는 고통의 해결이다. 그런데 중생의 마음에 일어나는 탐 ․ 진 ․ 치가 고를
만들어내고, 그 결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탐 ․ 진 ․ 치를 만들어내는 원인이 무명(無明)과
갈애(渴愛)에 따른 무지와 집착이라고 했다. 따라서 무명이 괴로움의 뿌리라면 갈애는 줄기와 같고, 괴로움은
그 열매라고 할 수 있다. 즉, 중생이 겪는 고통이란 마음이 이런 과정으로 만들어내고, 그런 마음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고(苦)에 대한 인식의 기본 입장이다.
그리고 부처님은 이러한 마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오취온(五取蘊)이 바로 고(苦)라고 하셨다.
오온과 고는 하나이지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오온이란 바로 우리 몸뚱아리 이니 우리 몸뚱아리 자체가
고의 덩어리란 말이다.
그리하여 사바세계에 사는 중생은 모두 고통을 겪고 있기에 경전에는
‘모든 것은 고다[일체개고(一切皆苦)]’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러한 고(苦)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때는 이고(二苦), 삼고(三苦), 사고(四苦), 팔고(八苦)의 구분이 있다.
• 이고(二苦)란 것은 자기 내부에서 나오는 내고(內苦)와 밖에서 들어오는 외고(外苦)을 가리킨 것이다.
• 삼고(三苦)란 것은 내고와 외고를 합해 고고(苦苦)라 하고, 낙(樂)의 부정, 곧 낙이 파괴되는 것을 괴고(壞苦)라 하며, 모든 것에 상(常)이 없고 자꾸 변하기 때문에 불안과 공포가 생기는 것을 행고(行苦)라 해서,
고고ㆍ괴고ㆍ행고를 삼고라 한다.
• 사고(四苦)란 생ㆍ로ㆍ병ㆍ사(生老病死)를 일컫는다.
• 팔고(八苦)는 생ㆍ노ㆍ병ㆍ사에다가 다음 넷을 더한 것이다.
구부득고(求不得苦) -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
애별리고(愛別離苦) -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괴로움.
원중회고(怨憎會苦) -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괴로움.
오음성고(五陰盛苦) - 우리 몸과 마음 자체가 괴로움이란 말이다.
그런데 삼고에 대해서는 좀 더 살펴봐야 하겠다. 성질에 따라 설명을 추가하면 다음과 같다.
• 고고(苦苦, dukkha-dukkhata)---고고(苦苦)란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말한다.
보통 고통이라고 하는 것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심신(心身)의 고통이다.
그 중에서 중생의 몸을 괴롭게 하는 고통, 곧 배고프고, 목이 마르고, 병으로 아픈 경우, 비바람, 추위, 더위,
힘든 노동 따위 몸이 느끼는 괴로움이다. 바로 ‘몸이 괴로우니까 괴롭다’고 하는 것이 고고성이다.
짐승조차도 고고의 괴로움은 안다. 배고픔과 갈증, 상처, 추위, 더위 등 생물이라면 인간도 동물도 다름없이
느끼는 객관적인 고통이다. 이런 고통을 외부적 고통, 즉 외고(外苦)라고 한다.
이에 비해 내고(內苦)는 내부적 고통, 정신적 고통이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자기만이 안고 있는 고통이다.
자라면서 겪는 정신적 방황이나 갈등, 살아가면서 겪는 갈등, 치밀어 오르는 분노, 고독과 우울, 노년의 슬픔
등의 정신적 고통을 말한다. 인간 생활에서 겪지 않으면 안 되는 온갖 갈등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다.
• 괴고(壞苦, viparināma-dukkha)---괴고란 상실, 무너지는 괴로움이다. 오직 본인만이 소중히 여기고
애착해 왔던 물건, 사람, 그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을 잃었을 때 느끼는 괴로움이다. 즐거운 상태, 행복한 상태가
사라질 때 경험하는 괴로움, ‘나’의 환경이나 신분의 변화 때문에 생기는 괴로움이다.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물러나야 하거나 의지하고 사랑하던 사람이 죽는 등의 변화로 인해 순경에서 역경으로 전락할 때 받는 고통이다. 또 하고자 하나 뜻과 같이 안 되고, 이루어 놓은 것이 무너지는 고통이다.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부모, 자녀들이 자기보다 먼저 가는 것이 무너지는 것이다.
내가 애지중지 하던 결혼반지를 잃어버리는 것도 무너지는 것이다. 주식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보는 것,
부동산 투자했다가 손해를 보는 것도 전부 무너지는 괴로움이다.
그렇게 다정했던 사이인데 어쭙잖은 일로 오해가 생겨 사이가 나빠지는 고통,
그렇게 사랑했던 애인이 배반하고 가버린 실연의 고통도 모두 괴고이다.
• 행고(行苦, sankhara-dukkha)---행고(行苦)란 변해가는 것을 보고 느끼는 괴로움이다. 무상(無常)한 현실에
대해서 느끼는 고통을 말한다. 즉, 무상(無常)의 법칙에 바탕 해서 일어나는 변화하고 무너지는 고통을 말한다.
행고의 ‘행’은 옛날부터 ‘천류(遷流)’라는 뜻으로 해석돼왔다. 변천하며 흐른다. 곧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무상하게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괴로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행고의 뜻이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잠시도 가만히 있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이 모든 것 속에서 사는 우리 인간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하고 젊은 사람은
반드시 늙어야한다. 그래서 생로병사(生老病死-四苦)의 육체적 고통이 행고에 해당한다.
시시각각 변해갈 수밖에 없는 건강문제, 젊음 등 허망한 변화의 현실에서 느끼는 고통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반드시 변화하고 언젠가는 사라지게끔 돼있다. 그야말로 제행은 무상한 것이요,
이와 같은 세상에 사는 우리는 흘러가면서 변화하는 괴로움을 받게끔 돼있으니 이것을 행고성이라고 한다.
현실적으로 곧바로 느끼는 고고와 괴고 두 가지가 당연한 괴로움인데 비해 행고성(行苦性)은 약간 다르다.
행고라는 것은 괴로움의 뿌리와도 같다. 여기서 고통의 뿌리라 하는 이유는 현상계 자체가 업과 번뇌로
이루어져 있어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업과 번뇌로 이루어진 삶 혹은 오온(오음성고)을 바로 행고라
하는 것이다. 우리 존재의 본질이 오염된 마음과 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 때문에 받게 되는 고통을 말한다.
인간 존재 자체가 고통의 덩어리라는 말이다.
조건에 의해 생겨난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의미에서의 괴로움을 말한다. 내적, 외적으로 그 어떤 조건에 의지해서 경험하는 모든 행복이나 불행도 행고에 해당한다. 일체개고(一切皆苦)라고 할 때, 일체가 바로 제행(諸行)을
의미하며, 모든 행 즉 조건에 의해 생겨나 모든 현상은 괴로움이라는 의미이다.
→고제(苦諦, 苦聖諦, 빠알리어 Dukkha-saccā), 괴로움(빠알리어 duhkha)의 극복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