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자.........시조
1. 한여름
창으로 바라보는 산, 들 다 초록이네
한 해의 한복판을 푸르게 덮고 번져
늙음도 세상시름도 뭐 별거냐 는 듯이
2. 나비 분주히 날고
꽃 따라 고운 한 철 꿈길인 듯 바람인 듯
만나고 헤어짐도 사뿐히 스치우네
가벼이 날아 노니는 흰나비 때 한 무리
3. 묵정밭
한 일 년 버려둔 땅 잡풀이 점령했네
보나마나 저 풀 뽑기 된씨름 해야겠지
그러게 새풀 돋을 때 못본체를 왜했나
4. 장하(長夏)
춘하추동 장하 더해 오(五) 계절을 일렀다지
무성한 푸르름이 철들어 가는 시간
여름과 가을 사이에 숨어있는 긴 시간
코로나 팬데믹에 지쳐가는 소시민들
자영업자 한숨소리 마스크 속 눈물들
기다림 길고도 길다 이 길 끝은 그 언제
5. 한가위 유감
명절은 장터에서 흥성이고 있건마는
올해도 코로나에 발이 묶인 자식 귀향
정붙여 말 나눌 이 없는 휑덩그런 한가위
들녘엔 익어가는 갖가지 농작물들
두레밥상 채워 앉던 웃음 가득 한 식구들
오란 말 차마 못하며 쳐다보는 둥근 달
6. 층간 소음
현관에 붙어있는 분홍색 포스트잇
설렘 반 궁금증 반 찬찬히 읽어보니
소음을 자제해달라는 아래층 집 당부네
혼자라 적막강산 숨소리도 죽이는데
오해다 싶었지만 없는 일은 아닐테고
도대체 뉘 집 발소리 벽을 타고 흘렀나
때때로 사막에서 뒷걸음 했다는데
걷는 소리 뛰는 소리 사람 사는 소리구만
아직은 외로움 알기 젊은 그대 글인가
툭하면 방송 타는 층간 소음 자제 당부
공공의 예의란 말 이해는 하지마는
그래도 살아있다는 안부 주고 받고 삽시다
7. 변심
풍미 듬뿍 냉커피를 한 잔에 단돈 천원
동네 빵집 후한 가격 줄 이은 고객님들
맛있지 가격 부담 없지 종종 와야 하나봐
구수한 숭늉자리 어느 새 밀어내고
브라질 콜롬비아 케냐AA 에디오피아
슬-쩍 입맛 바꿔친 붉은 유혹 한 모금
며칠 후 들렀더니 두 잔 계산 칠천 원
이유는 모르겠고 어쨌든 가격 인상
좋았던 마음 싹 가시고 이거 맛이 왜이래
8. 유월
올해도 어김없이 유월은 푸르른데
역사책 한 페이지를 이리 썼다 저리 썼다
이 나라 삼천리 강토 다 피값이 아니던가
쇠조각도 녹아버린 칠십 년 세월에도
남북의 철책선은 걷힐 줄을 모르는가
삭아진 그리움 안고 바라보는 푸른 창공
이제는 손주세대 말 다르고 뜻 다른데
애틋함 뉘게 있어 서로 손 마주잡나
하나 둘 속울음 삼키며 떠나가는 이산가족
9. 몸뻬
참 편한 옷이겠다 엄마 입던 옛날 그 옷
봄날 같은 꽃무늬에 고된 삶도 향기로워
철없이 기대어 살던 기억 저 편 고향 품
꽃중년 고집해도 무릎 뼈가 소리치네
앉을 때 아이구구 일어설 때 아이구구
나날이 편안함 찾게되니 꼼짝 없이 나도 노년
10. 12월
어제 같은 오늘인데 달랑 남은 달력 한 장
분주히 오가던 길 찬 바람만 휘휘하고
매달린 가로수 몇 잎 안타까이 흔들리네
목주름 느는 세월 거울이 들통내고
마음 속 쌓인 고집 위장약이 고발하네
마지막 달력 넘기며 허허로운 내 마음
후조문학 제 5집 시조작품 10편 올립니다..........임춘자
얼굴 마주 보게되는 날을 고대합니다............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