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세 가지 의미와 현대 언어의 모호성
❚ 가상과 실재는 모호하거나 경계가 없는 개념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일상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언어 중 하나가 ‘가상’이라는 용어이다. ‘가상세계’ ‘가상현실’ ‘가상화폐’ 등이 그러한 용어이다. 그래서 철학자들 중에는 “가상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가상이 되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곧 현대문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상과 현실이 모호하게 뒤 섞이고 그 경계가 모호하게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정확한 분석이 아니다. 어쩌면 이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일 수 있다. 가상과 실재, 혹은 가상과 현실의 의미를 분명히 밝혀보면 결코 가상과 현실이 모호한 개념이거나 서로 뒤 섞일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 세 가지 구분되는 가상 개념 : 가상세계, 시뮬레이션, 가상화폐
현대 사회가 사용하고 있는 가상의 개념은 아직은 분명하게 개념적으로 분화되지 않은 모호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그 의미를 크게 3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그 3가지는 가상세계(혹은 가상현실)에서의 가상, 시뮬레이션으로서의 가상, 그리고 가상 화폐에서의 가상이다. 이 세 가지 개념은 모두 동일한 가상이란 용어를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그 의미는 본질적으로 다른 지평 혹은 다른 범주에 있다. 게임이나 어떤 대체체험으로서의 가상세계는 그것을 향유하고 삶을 누린다는 측면에서 실제적(현실적) 삶을 대신하는 것의 의미가 있다. 현실의 삶에서 이룰 수 없는 것을 가상의 삶에서 맛보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현실을 대체하는 가상일 수 있다. 반면 ‘시뮬레이션으로서의 가상’은 보다 나은 미래의 현실을 위해 잠정적으로 어떤 이상적인 것(현재의 것보다 가치 있는 것)을 상상력을 통해 창조해 보는 것이다. 가령 가장 위험을 적게 하면서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방법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험해 보는 것이다. 이는 가상 그 자체를 즐기거나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는 현실을 대체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새로운 현실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적인 것, 잠정적인 현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세 번째는 가상화폐의 가상은 사실상 언어만 가상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지 전혀 가상의 의미는 아니다. 가상 화폐의 본질은 화폐라는 현실의 물리적인 대상을 대신할 수 있는 ‘일종의 컴퓨터 속의 이미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화폐라는 것이 일종의 ‘잠재적인 가치’를 의미한다. 1만원의 지폐란 종이 그 자체만 보면 1천원의 가치도 없겠지만, 약속을 통해 ‘1만원의 가치를 가진 것’이란 ‘잠재적 가능성’을 항시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 가치를 사용하고자 의지하기만 하면 즉시 실제적인 가치가 발생하는 ‘잠재성으로서의 가치’이다. 그런데 가상화폐는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화폐가 사용하기에 불편하니 이를 컴퓨터 속의 이미지로 대신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가상화폐는 엄밀한 의미에서 ‘가상’이 아니라 그냥 물리적인 수단을, (물리적인 몸체가 없는) 영상 이미지로 대신하고자 하는 것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약속부호로서의 화폐라는 차원에서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만 물리적인 몸을 가지고 있는가 아닌가의 차이일 뿐이다. 즉 가상화폐는 약속의 징표로서의 물리적 대상의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물리적 몸체를 가지지 않는 이미지로 일종의 약속의 변경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만일 대다수 사회구성원이 이러한 약속기호의 교체에 동의(합의) 한다면, 그 때부터 가상(이미지)화폐가 곧 실제적인 화폐가 될 것이며, 종이 화폐는 폐기될 것이다. 따라서 원칙상 사회구성원들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은 가상화폐는 잠정적인 가치도, 실제적인 가치도 가질 수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가상화폐란 가상세계나 시뮬레이션으로서의 가상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 '가상현실'이란 모순된 표현이 가상을 '현실'로 여기게 한다!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 가상세계는 자연스런 표현이지만, 가상현실은 모순된 표현이다. 왜냐하면 가상(가짜 형상)이란 실재(실제적인 사물)에 대립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실재가 인간의 삶에 적용 될 때 우리는 이른 ‘현실’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상현실’이라는 용어는 ‘가상실재’라는 말과 같고, 이는 ‘가짜-진짜’ 혹은 ‘짝퉁-진품’이라는 말처럼 모순된 말이 되어 버린다. 물론 게임이나 가상체험과 같이 비록 가상세계이지만 이미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아 누구나 그것이 자신의 현실의 삶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가상현실’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경우 정확한 표현은 ‘나의 현실의 삶의 일부로서의 가상의 삶’이지, 가상 그자체가 나의 구체적인 현실의 삶을 대신할 수 있는 '가상현실'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가상세계 속의 부모의 사랑이나 남녀 간의 사랑은 그것이 아무리 리얼하게 느껴진다고 해도 결코 현실 속의 ‘진정한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모순되는 용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것을 만드는 사람들이 '가상'이 더 이상 '가상'이 아니로, 이제부터는 이것이 또 다른 '현실'이라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