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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겨울,온정각광장주위_2003/ 2005
* 98/100
나는 2003년 가을과 2005년 겨울 두 번 금강산을 다녀왔다.
가을 온정각 광장
식당과 기념품 점이 있다.
온정각 주위 산세
관광으로 개방된 곳은 금강산의 외금강이다,내금강은 당시에 개방되지 않았다.
온정각 주위 산세
북한 평양교예서커스단, 환영 공연을 관람했다.
온정각 광장 공연장
온정각 광장의 문화회관에서 평양교예단(서커스)을 관람하였다. 북한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서커스단이라 그 곡예는 탄성을 자아냈다. 촬영은 공연 도중에는 허용되지 않고 마치고 인사를 할 때는 가능하다.
온정각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금강산온천
금강산 온천 주위 우리들 임시 숙소 시설, 한 곳에 10명 내외 숙박이 가능하다.
2003년에는 이곳에서 숙박하였고, 2005년에는 장전항의 선박에서 잠을 잤다.
두 번 다 육로 버스로 이동하였다.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 묘소, 온정각 주위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 묘소, 온정각 주위
남한에 묘소가 있고, 북한은 가묘다. 바로 올해 2003년에 사망했다.
정몽헌 (1949~2003)
여기 조선땅의 숨결이 맥동하는 곳 금강에 고이 잠들다.
아버지 아산 정주영의 유훈을 이어 세계사의 모든 갈등을 한 몸에 불사르며
남북화해의 새로운 마당을 열었다.
그의 혼백 영원히 하나된 민족의 동산에서 춤추리. / 도올
정몽헌 회장은 김대중 정권이 김정일과 회담하는 댓가로 지불한 대북송금 사실이 밝혀지자 그와 관련하여 의문의 죽음(자살 혹은 타살?)을 했다.
김대중은 돈을 주고 사서 회담하고,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함께한 일인데 한분은 노벨상을 받고 한분은 목숨을 잃었다.
이로부터 20여년 후 2004년에는 남북이 애써 연결한 도로와 철길의 연결 부위를 북한이 폭파해 버렸다,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 묘소, 온정각 주위
출발할 때 남한에서 수속을 밟은 곳
북한 화가가 그린 삼선암. 판매중 구매함.
🟫 학정 역사시편
금강산1,2,3,4, 이재익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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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1>
-마의태자, 사명대사, 이승만-
'저리 비키오, 말뚝을 뽑고 북으로 더 가야겠소'
노산 선생* 철조망 앞에 주저앉아
파도와 함께 울부짖던 '그리운 금강산'.
백두대간 준령(峻嶺)의 영묘(靈妙)한 숲을 헤치니
화랑들의 호연지기(浩然之氣),
마의태자(麻衣太子)의 눈물이 어려있다.
'조선에는 보물이 있소?'
가등청정의 위세에
'있고말고요, 당신의 목이지요!'
승의군(僧義軍) 사명대사의 배포 또한 서렸다.
'지금도 한국에는 호랑이가 있소?'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이 다 잡아가고 없소!'
400년 후 한일정상*들이 연장전을 또 치렀으니
이승만 대통령의 호기도 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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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산 ; 노산 이은상(1903~1982) 선생님 ; 시인. 문학박사
* 한일 정상 ; 일본 수상 요시다 시게루吉田茂가 "지금도 한국에 호랑이가
있느냐" 고 비웃자 이승만 대통령은 "없소,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이 다 잡아갔소."
라고 했다. (1953년 1월, 도쿄의 미군사령부에서 회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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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2>
-정주영, 목란관, 신계사
정주영 회장이 일천오백마리 소 떼*로 길을 트자
그 관성으로 서전중동불절(西戰中東不絶)*터니
실낱같은 육로길도 열렸다.
목란관 맑은 물에
이산가족들의 짠 눈물도 보태고
온정각 정몽헌 회장의 무덤은
천추(千秋)에 깔린 통일의 밑거름.
흥망이 산중에도 있다고 하였던가
효봉 스님이 경외(敬畏)와 속죄로 살던 신계사*
돌배나무 고목은 베어지고 다시 선 위용은
남북화합의 싹으로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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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주영 회장과 소떼 방북 ; 1998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두 차례 소떼를 몰고 방북하여 금강산 관광사업을 시작하였다.
현대 승용차를 판문점을 통하여 처음으로 북한으로 수출하였고 그 대금은 금강산 입산료와 상계했다.
* 서전중 동불절 ; 2002년 한일월드컵 경기 도중에 북한이 도발한 서해 교전, 동쪽으로는 금강산 관광이 그치지 않았다.
* 효봉 스님 ; 일제시대 외금강 신계사에서 출가하여 인간과 자연을 경외(敬畏)하며, 세속생활에서 쌓인 죄를 속죄하는 삶을 살았다. 신계사 터 남북화합의 싹 ; 금강산 4대 명찰은 내금강에 유점사, 장안사, 표훈사, 외금강의 신계사인데 6,25때 불타 없어지고 내금강의 표훈사만 남아있었다. 최근 남북 불교계가 협력하여 소실된 신계사를 다시 복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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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3>
-만물상 계곡, 천선대-
무주공천(無主空天) 홍엽이
아름다워 눈 시린 슬픔이여.*
삼선암, 절부암, 망장천, 세지봉
만물상 계곡은 전설의 바다
삭풍(朔風) 낙엽에 시름을 실려 보낸다.
국화 향기롭다고 추색(秋色)인가
향비*의 홍안(紅顔)도 청산은 어디인지.
천선대(天仙臺)* 무아경(無我境)의 조각들
너 만물상(萬物相)은 영원한 향기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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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시려 슬픔이여 ; 너무 아름다워서 말문이 막히고 슬픔 같은 것도 느껴진다.
* 향비(香妃) : 청나라 건륭제의 비였다.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항상 몸에서 향긋한 냄새가 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위구르인으로 청이 카슈가르(Kashgar)를 정복하고 전리품으로 데리고 온 여인. 이미 정혼한 몸이었으므로 품위를 지키다가 오래 살지 못하고 죽었다.
묘는 청황제 능역과 카슈카르 두 곳에 있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는 모른다.
* 천선대 ; 만물상 경관을 가장 가까이에서 잘 조망할 수 있는 장소. 여러 개의 철사다리를 지나서 하늘문 돌문을 통과하여야 오를 수 있다. 오묘한 바위군들을 만물상이라고 하고, 만물상을 또 '만물초'라고도 부른다. 천선대에서 바라보는 만물상을 신만물상(新萬物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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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4>
-만물상-
저 오묘한 돌기둥 돌병풍들은
누구의 기치창검들인가.
춘맹추엽(春萌秋葉) 달밤에
천녀 호위하던 천군(天軍)들이
넋을 잃고 노닐다가
황망(慌忙)중에 잊고 간 것이라네.
하무동풍(夏霧冬風)에 예봉을 감해도
하늘을 향한 외침이 아직 들리네.
아, 만물상!,
'돌이 되도록 기다릴 줄 알라,
그러면 통일부국(統一富國) 오리라'는
민족에 내리는 상제(上帝)의 계시(啓示)여라.
만물상 가는 계곡
만물상 가는 계곡
만물상 가는 계곡
구룡폭포가는 길
구룡폭포 위
구룡폭포 위
구룡폭포 위
구룡폭포가는 길
구룡폭포
구룡각 정자, 일명 관폭정, 1961년 준공.
우측 인솔자 정용진 부교육감
부산교육청 우수교원으로 선발되어 포상으로 금강산 관광을 함께 간 교사들!
겨울 금강산 2005
온정각 광장에서
구룡폭포는 얼어붙었고.
폭포 위에 상팔담을 바라 볼 수 있는 곳은 위험해서 올라가지 못했다.
▪️신계사절 / 폐사지에 남한 불교계가 지원해서 복원되고 있다.
▪️현대의 고승 효봉 스님이 출가한 절이다.
구룡폭포 가는 길
구룡폭포 가는 길
삼일포
삼일포
만물상 올라가는 입구, 만상정에서
원래는 버스가 만상정 여기까지 올라온다. 그런데 눈이 많이 와서 저 아래 중간에 주차하고 걸어서 여기까지 올라왔다. 만물상 입구에서 더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 되돌아 내려갔다. 겨울에는 올게 못되었다.
▪️결국 2008년 7월, 박왕자씨 피살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은 중단됐다.
교감 황금석
교감 황금석
구룡폭포앞 정자. 관폭정 또는 구룡정이라고 칭한다.
교감 변희천
교감 변희천
교사 이경원
겨울 온정각 광장
구룡폭포 가는 길
목란관
목란은 북한 국화. 북한에서는 목란이라고 부르고, 우리는 산목련, 함박나무라고 한다.
↓ 참고사진
신계사
신계사 배밭
구룡폭포 가는 길
여기는 푸른 물이 담긴 옥류담인데. 겨울이라 얼고, 눈이 덮혀 의미가 없어졌다.
김일성 좌우명, 지원(志遠, 금강산 김부자 찬양 많은 글귀중 유일한 한자, 삼국지 제갈공명이 좋아했던 용어)
구룡폭포 가는 길
구룡폭포 가는 길
구룡폭포 가는 길
비봉폭포/ 계절폭포
구룡폭포 가는 길
구룡폭포
구룡폭포
▪️수직높이 74m, 폭포의 길이 84m
▪️전설 ; 동해의 9룡이 유점사 53불과 싸우다 패하여 쫓겨와 구룡연 속에 숨었다는 것.
우측 미륵불 각자는 1920년 김규진(1868~1933) 3자의 높이 19m 폭 3.6m,불자의 긴 획의 길이가 13m.
만물상 방향, 눈이 왔을 때 임시 중간 주차장
만물상 일부 원경
만물상 입구 만상정까지 걸어왔다가 되돌아 내려간다.
만물상 입구 만상정/ 더 이상 못간다. 북한 군인들이 제설작업을 하고 있었다.
만물상 계곡 입구
만물상 계곡 입구
삼일포 들어가는 입구에서 들판 너머로 멀리 금강산을 바라본다.
삼일포에서 바라본 금강산 원경
삼일포 연화대
삼일포 연화대
삼일포 연화대
삼일포 단풍관
삼일포 호수
삼일포 호수 / 와우도
삼일포 호수 / 와우도
삼일포 호수 / 와우도
삼일포 도선장, 배를 타는 곳. 건너편에 단풍관이 보인다.
삼일포에서 멀리 해금강 방향/ 두 번 왔으나, 해금강은 못갔다. 태풍 매미로 길이 파괴되어 복구가 안됐다고 한다. 해금강 못내 아쉽다.
삼일포
삼일포 출렁다리
삼일포 출렁다리
삼일포 장군대
* 가보지 못한 내금강에 대하여
▪️내강리에서 장안사터→삼불암→표훈사→정양사터→만폭동→보덕암→마하연→묘길상 →은사다리금사다리→비로봉, 영랑봉에 오를 수 있다.
▪️만폭동계곡 : 회양군수 양사언이 만폭동 계곡 너럭바위에 '蓬萊楓嶽元化洞川' (봉래풍악원화동천) 이라는 유려 장대한 글을 새겼다. 만폭동 계곡이 금강산의 으뜸가는 계곡이라는 뜻이다.
▪️명경대(업경대); 우뚝솟은 바위 밑에 황천담이 있어서 저승길 입구의 거울처럼 생전의 선악 행실이 물에 비칠 수있다는 것.
▪️묘길상 : 금강산 8기의 마애불 중에 묘길상이 대표적이다. 높이 15m 아미타여래 좌상은 우리나라 최대의 좌상마애불로 고려시대 걸작품이다. 삼불암 마애삼존불 역시 고려 후기의 것으로 뒷면에는 60보살을 새겼다.
▪️보덕암 : 조선시대 누대의 걸작으로 벼랑에 7m 남짓의 구리기둥 1개가 떠받치고 쇠줄을 동여매어 벼랑에 제비집 같아 보이는 이 작은 암자에서는 아름다운 만폭동 계곡을 조망할 수가 있다.
▪️은사다리금사다리 : 비로봉 바로 아래에 있는 바위능선으로 톱날처럼 생겨서 하늘을 오르는 사다리를 연상한다. 아침 해살에는 은빛이 나고 저녁 햇살에는 금빛이 난다.
▪️대체로 내금강의 산수 특징이, 외금강이 남성미 적이라면 내금강은 우미(優美)하고 유정(幽靜)한 여성적 산수미가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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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금강산의 봄
내금강 계곡
벽파담
명경대
백운대
금은사다리
표훈사
보덕암
묘길상
마애삼존불
세존봉
비로봉
중향성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산 외금강 일부 봉우리
해금강(해금강문)
통천 총석정
전형적인 주상절리
통천 총석정
통천 총석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