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국 건국을 품은 재송 당사
장산국 건국신화는 <해운대구지(1994년 발행)>와 <기장군지(2001년 발행)>에 나타나 있다. <기장군지>에는 장산국 건국신화 편이 따로 기재되어 있는 데 비해 <해운대구지>에는 재송 당사 편에 담겨있다. 내용은 둘 다 대동소이한데 <해운대구지>가 먼저 발간된 만큼 더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 고당(姑堂)인가, 고당(高堂)인가?
재송 당사는 재송2동 장산 400m 중턱에 위치해 있다. 당사 내 위패는 고당(姑堂)신위·구룡(九龍)신위·성주(成主)신위·세주(歲主)신위가 있다. 이중에서 고당은 ‘고(姑 : 시어미, 여자의 통칭 고)’당과 ‘고(高 : 높을 고)’당이 장산국 관련 기록에 혼재해 등장하고 있다.
만일 ‘高’당으로 보면 ‘高씨할매’는 선인과 결혼한 이가 ‘高선옥’이 되어 선인이 당도한 곳이 기록대로 ‘高씨 집성촌’이란 말이 성립된다.
하지만 ‘姑’로 볼 경우 高씨할매가 하닌 ‘위대한 여인 즉, 위대한 선인의 여자’인 뜻으로 ‘姑선옥’이 된다. 자연 선인이 도착한 마을이 高씨 집성촌이 아닌 성씨가 없었던 민초들의 마을이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 성씨들의 유래를 살펴볼 때 당시 해운대 바닷가 마을에 高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는 말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래서 高씨 성을 가진 여인이 아닌 선인의 아내로서 ‘위대한 여인’이란 뜻의 姑선옥이 맞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김해 김씨가 고당(姑堂)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김해 김씨가 고당(姑堂)이 되었다’고 <해운대구지> 재송 당사 편에 적혀 있다. 이는 또 무슨 말인가?
김해 김씨라면 금관가야 김수로 후손인데 이 표현에 따르면 선인을 김수로의 후손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김해 김씨가 고당이 되었다’란 중대한 기록은 다른 매체로 옮겨지면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 결과 이런 표현은 <해운대구지> 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왜 ‘김해 김씨가 고당이 되었다’라는 기록을 삭제했을까? <해운대구지>에 기록되어 있는 의미를 몰랐든지 아님 별 의미가 없다고 여겼는지는 모르지만 이 표현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선인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기록에 따라 유추하면 장산국 신화속 선인은 김해 김씨로 금관가야 세력권에서 황산강을 건너 해운대로 왔을 것이다. 이후 다시 백성들에겐 옥황상제로 인식된 선인의 왕의 부름으로 금관가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성립한다.
이후 또다른 금관가야 지배층의 후손이 장산국으로 와서 장산국 통치도 돕고 고당도 잘 관리하여 사람들이 김해 김씨의 고당 쯤으로 여긴 것이 아닐까….
/ 예성탁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