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수의 파라독스(Archer’s Paradox)란?
화살은 우리가 겨냥(겨냥의 정의는 3-1 궁수의 파라독스에서 설명하였으니 참조바랍니다)한 방향으로 날아가서 과녁이나 표적을 맞힌다. 이때 시위는 활의 중심선을 따라 진행한다. 따라서 발시 순간부터 시위를 떠나는 순간까지 화살의 끝(오늬)은 시위에 붙어있어야 한다. 이점을 마음에 두고 다음을 생각해보자. 발시 순간의 화살방향과 시위를 벗어나는 순간의 화살방향은 서로 같을까?
왼쪽 그림은 만작되어 발시 되는 순간부터 출전피를 떠나는 순간까지 시간 순 으로 화살이 향하는 방향을 그린 개념도이다. 그림에서 녹색은 줌통 바로 위 출전피가 위치한 활의 단면, 붉은색 점선은 활 중심선 그리고 검은 화살표는 활을 의미한다. (가) ~(라)까지는 발시부터 매 순간 화살의 모습을 형상화한 개념도이다. 화살 끝(오늬)이 시위에 붙어 있어야 된다는 점을 상기하면 화살이 앞으로 진행함에 따라 최초 향했던 방향을 벗어나 오른쪽으로 점점 편향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양궁과 같이 화살이 활 중심선을 통과하도록 특별히 고안된 현대식 활을 제외하고는 우리 국궁과 같이 중심에서 벗어나 걸쳐서 쏴야하는 활들은 절대로 최초 겨냥한 표적을 맞힐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즉 현대적 양궁이 개발되기 전까지 그 누구도 활로써 표적을 맞출 수 없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궁수의 파라독스(Archer’s paradox)란 “생각해보면 절대 맞힐 수 없는데 실제로는 맞히는 이 모순적 상황”을 의미한다.
파라독스의 해결 : 화살의 휘어짐 현상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활을 쏴서는 표적을 도저히 맞히지 못할 것 같은데 어떻게 현실에서는 가능할까? 이에 대한 학문적 해답은 여러 논문에서 수학적, 그리고 공학적으로 자세하게 제시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간단히 그 원리만을 언급하기로 한다(본 코너의 제목이 알쓸활이-알아둬도 쓸데없는 활 이야기- 이므로)
현실에서 화살이 목표한 표적으로 날아갈 수 있는 이유는 화살은 발시와 더불어 휘어지기 때문이다. 화살은 발시와 동시에 마치 낚싯대가 휘어지듯 휘어지면서 활 모서리(출전피)에서 살짝 떨어진 채 원래의 겨냥방향과 나란하게 진행한다. 아래 그림은 저자 James L. Park. Oliver Logan이 학술지 Proceedings of the Institution of Mechanical Engineers Part P Journal of Sports Engineering and Technology (June 2013)에 게재한 논문에 수록한 양궁 발시 모습을 고속 촬영한 그림들을 시간 순으로 편집한 내용이다.(아쉽게도 국궁에 대한 문헌은 ... 없다- 아니 못 찾겠다)
그림의 제일 왼쪽은 발시순간(0msec)이고 제일 오른쪽은 화살이 시위를 완전히 벗어난 순간(15.5msec=15.5 × 10-3sec)이다. 그림을 보면 최초 직선 형태의 화살이 발시 이후 왼쪽(나를 기준으로 하여)으로 점점 크게 휘어졌다가, 9msec에서 다시 평형위치 즉 직선,이후 오른쪽으로 휘어졌다가, 15.5msec에서 또 다시 원래의 평형 상태 즉 직선으로 되는 것을 볼 수 있다(즉 화살은 기타 줄 튕기듯이 진동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15.5msec에서 화살은 시위에서 벗어나 있지만 화살 깃은 아직 활의 riser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림에는 없지만 이후 화살은 다시 왼쪽으로 휘어지면서 화살 깃이 활 옆면 모서리에서 멀어지면서 벗어나게 된다(화살은 활 옆면을 치지 않고 진행한다)
이 그림에 이제 아주 약간의 과학적 설명을 보태보자.
1) 양궁선수는 화살대가 향하는 방향으로 “겨냥”하고 있다. 이때 선수의 그립(Grip)은 지중해 형이다. 따라서 발시와 동시에 현은 손끝에서 오른쪽으로 튕겨진다.
2) 화살 오늬는 시위에 붙어있기 때문에 화살의 오늬 역시 최초 위치보다 오른쪽으로 튕겨진다.
- 2ms, 5ms 그림에서 화살 끝이 향하는 선수의 턱을 보면 최초 위치에서 오른쪽으로 튕겨짐을 볼 수 있다.
3) 화살 끝과 달리 몸통은 왼쪽으로 휘어진다. 그 이유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관성” 때문이다.
화살의 끝은 시위가 밀기 때문에 앞으로 가려하지만 관성 때문에 화살은 멈추고 싶어 한다. 그래서 몸통이 휘어진다. 이때 휘어지는 방향은 왼쪽, 오른쪽 모두 가능하나 2)에서 화살 끝이 오른쪽으로 튕겨졌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 몸통은 왼쪽으로 휘어진다.
4) 그림에서 붉은 원을 주목해보자. 0ms에서 화살의 앞 부분은 활 장치에 닿아 있으나 9msec에서는 떨어져 있다. 9msec의 순간은 휘어졌던 활이 원래의 “직선”으로 돌아온 순간이다. 좀 어려운 이야기 일 수 있으나 바로 이 순간이 향 후 “진동의 평형위치”이기 때문에 화살은 원래의 겨냥방향이 아니라 아주 근소하게 평행이동한 지금의 직선 방향을 기준으로, 횡으로는 기타 줄처럼 진동하면서 직진하게 된다.(국궁에서는 상관없지만 양궁은 점수 경기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을 보정하기 위해 총의 가늠자처럼 탄착점을 수정할 수 있는 장치를 구비한다)
5) 그림에는 없지만 이상적인 경우 화살의 깃은 활 모서리를 지나는 순간, 모서리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진동을 한다. 따라서 화살은 활의 손잡이를 치지 않고 직진 할 수 있다. 바로 궁수의 paradox가 해결되는 순간이고 거의 “겨냥”한 방향으로 직진하는 순간이다.
6) 국궁에서는 화살의 휘어지는 방향이 위와 반대이나 내용은 동일하다
7) 그럼 모든 문제가 해결 되었는가?
애석하게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화살의 강도(Spine)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도가 너무 약하면 화살은 너무 많이 휘어져서 원래의 궤도를 벗어나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할 수도 있고 너무 세면 충분히 휘어지지 못해 화살 뒷 부분, 심한 경우는 화살 몸통이 활 모서리를 치고 나갈 수도 있다. 지면 관계상 화살의 강도는 따로 다루기로 한다.
이제 3-1의 내용까지 포함하여 지금까지의 내용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겨냥이란 눈과 촉을 이은 직선이 아니라 화살대가 향하는 방향으로 국궁의 경우 눈의 겨냥 방향과 화살대의 겨냥방향은 5cm ~ 10cm의 평행이동 관계에 있다. 따라서 이 차이를 줄이려면 반드시 눈이 바라보는 직 후방으로 “뒤로, 뒤로” 당겨야하고 이렇게 하기 위해선 만작 시 각지손은 겨냥방향과 최대한 근접하도록 반드시 어깨에 걸머져야 한다. 궁수의 파라독스에 의하면 화살은 모조건 활 옆면을 치게 되어 있고 그에 따라 화살은 원래 겨냥방향에서 크게 벗어나야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발시 후 화살은 최초 겨냥방향과 근소한 평행이동 관계인 진동의 평형상태를 기준으로 좌・우로는 기타 줄이 튕기듯 진동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따라서 겨냥이 가능하다(파라독스 해결). 마지막으로 이상적인 발시, 즉 화살이 활 옆면을 치지 않고 최초 겨냥점에 최대한 근사하게 도달하기 위해선 화살의 강도(spine)를 점검해야 한다.
참고사항 : 궁수의 파라독스를 처음 언급한 사람은 1913년 E.J. Rendtroff 이지만, 이 현상은 그보다 앞선 1859년 Horace A. Ford가 쓴 책 "Archery: Its Theory and Practice"에서 최초로 설명되고 있다. - 출처 Archer's paradox, https://en.wikipedia.org/wiki/Archer%27s_paradox#cite_not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