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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근무지에서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휴게소에서 사망소식을 전해 들었다.
회한의 눈물을 한없이 흘리며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면서 운전을 했다.
도착하여 보니 이미 영안실에 계셨다.
평소에 아버지께 불효만 했기때문에 가슴은 터질 듯 아팠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아버지를 위해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생각해보았다.
49일 동안 지장경을 100독을 읽어드려야 겠다고 마음을 정하였다.
아침에 1권 저녁에 한권씩 읽기로 하고 열심히 하였으나 아침기도는 그르지 않았으나 저녁기도가 회식때문에 차질이 생겼다.
일주일을 남겨두었는데 49권을 더 읽어야 했다. 막재날까지 마칠려면 하루에 7독(14시간)을 독경해야했다.
마침 휴가기간이라 막재날 아침까지 겨우 100독을 마치고 재를 마치던 날 몽중 가피기가 있었다.
옥상에서 팡파레와 축제가 열리는 듯한 소리에 올라가 보니 스님이 상여를 매고
"자! 서편 공덕장으로 가자"는 소리가 들렸다.
재를 마치고 큰 스님이 관해보시더니 보살님과 주변 식구들이 열심히 기도를 해서 좋은 곳에 가셨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여러 차례의 기도를 해왔지만 가장 힘들었던 기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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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다시 찾은 건강과 행복
광륵사를 처음 찾아왔던 날은 우연찮게도 음력으로 12월 8일 성도재일이었다. 아픈 사람들이 많이 나았다는 말을 듣고서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만 갖고 있다가 그날 불쑥 마음이 내켜서 발걸음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한 발걸음이 있기까지는 너무 많은 고통과 방황이 계속되고 있었고 스물하나의 젊은 나이로서는 버티기 힘든 나날이었다.
나는 전문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취직을 하였으나 몸이 아파 일주일만에 그만두었다.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열정은 높았지만 아무 것도 못 하고 집에만 있으니 몸도 그렇고 마음까지 점점 불안하여 헤어날 수 없는 괴로움의 늪에 빠져 들어갔다. 부모님과 가족들의 걱정은 태산 같았다.
고 3때부터 시작된 알 수 없는 병.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척추 교정으로 유명하다는 활기원으로, 지압 받는 곳, 단전호흡원, 한의원 등등...지치도록 돌아다녔지만 허사였다. 병원에서는 급히 입원하라해서 입원하여 종합진찰을 하면 병명을 모른다고하고, 활기원에서도 다른 아픈 사람들은 모두 치유가 되어 나가는데 나 만 치료가 되지 않으니 특이체질인 것 같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척추에서 물까지 빼 보았고, 단전호흡원에 가서 체조도 해 보고, 나중에는 마음의 병인가 싶어 성당에도 다녀 봤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괴로움으로 찌들려갔고 어느 때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서 뛰어내려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부모님께 불효한다는 생각이 들어 행동으론 옮기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몸이 아프니 밤에는 불면증마저 생겼다. 내가 이러니 어머니의 걱정은 태산이셨다.
그러다가 아는 언니와 함께 ㅇㅇ사를 찾게 되었고, 법사님으로부터 많은 말씀을 듣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원인 모르게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것은 우연이라고 하기보다는 내가 알게 모르게 지은 업의 과보이지 않을까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전
생의 악업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 지금 살아가면서 더 커다란 선업을 지어야 한다고 하시며 지장경을 열심히 읽으라고 하셨다.
더구나 예전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취미로 사냥을 자주 하셨고 할아버지는 교통사고로 객사하셨다는 사실에서 우리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불쌍하게 죽은 영가들을 천도하는 것이 병을 낫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게되었다.
그래서 하루에 지장경을 2번씩 독송하기로 했다. 몸이 아파 걷기도 힘든 내가 소리를 내어 독송을 하고 경전 한 품이 끝날 때마다 3번씩 절을 한다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의심이 갔다.
다행히 함께 온 언니도 어려서부터 몸이 아파 고생하던 사람이라 이번 기회에 지장경을 백 번 읽기로 발원하고 함께 기도를 시작했다. 아침에 절에 와서 법당에 가서 예배를 드린 후 지장경을 한 번 읽고 방에서 누워 쉬다가 오후에 다시 일독을 하였다.
난생 처음 들어가 본 법당은 모든 것이 어설프고 서투르기만했다. 하지만 아픈 몸이 나을 수 있다는 말만을 믿고 아픈 것을 참고 독경을 겨우 마쳤다. 절을 하는데도 온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통증을 느꼈다. 사람들은 내 몸이 이렇게 아프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 생겼다. 첫날 지장경 독송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 잠을 자는데 다른 때와는 달리 불면증으로 시달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대신 밤에 꿈을 꾸었다. 초췌해 보이는 어떤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 칼로 나의 얼굴을 여러 번 그었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얼굴인데 왠지 낯설지 않 아서 그를 피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꿈속에서 약간의 아픔을 느 낀 것도 같고, 손으로 얼굴을 만지면 약간의 점액이 느껴지기도했다.
이런 꿈을 꾸고 난 다음 날은 전날보다 몸이 가벼워져 절도 조금 더 할 수 있었다. 그날도 지장경을 두번 독경하였다. 한번에 2시간 정도 걸리니 하루에 꼭 4시간을 소리내어 지장경을 읽은 것이다. 그날 밤에도 꿈을 꿨다.
어느 조그마한 방이었다. 그런데 방문이 미닫이인 것으로 봐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아닌 것 같았다. 혼자 방안에 있는데 초록뱀이 자꾸만 방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평소 뱀을 가장 싫어하는 나는 뱀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문을 닫았다. 그래서 그 뱀은 중간쯤 들어오다가 방문에 걸려 죽고 말았다.
셋째 날에도 다시 꿈을 꾸었다. 사람들이 많고 의사와 간호사들도 많았다. 아마도 종합병원인 듯했다. 그런데 한 장소에서 접수도 받고 진찰도 받았다. 칸막이도 없었다. 난 빨리 진찰을 받고 싶어 접수를 하고 차례를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내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다. 의사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화가 난 나는 간호사에게 "왜 진찰을 받을수 없어요?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세요."하고 항의를 했다.
내가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화내 본 적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나의 의견만 주장하다가 깨어났다.
넷째 날의 꿈이다. 엄마와 숙모, 나 이렇게 셋이서 버스를 탔다. 처음 본 거리의
풍경이 차창에 나타났다. 버스를 내려 어떤 동네로 올라갔는데, 지대가 높은 것으로 보아 산동네인 것 같았다. 올라가기도 힘들고 다리도 아팠다. 그런데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조그마한 절이 보였다.
엄마와 숙모는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먼저 법당으로 들어가시고 난 그곳에서 전에 지압을 해 주시던 아저씨를 만났다. 어떤 아저씨랑 둘이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나에게 왜 요즘은 지압 받으러 오지 않느냐며 걱정하셨다.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저씨가 "그럼 내가 네 몸을 낫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마. 첫째는 잠잘 때 베개를 허리에 놓고 자고, 둘째는 어떤 책을 주면 이 책을 열심히 보아라."라고 하셨다.
그 책을 받고 법당으로 들어갔으나 엄마와 숙모는 안 계시고 법당 안은 허전했던 것
같다.
다섯째 날의 꿈이다. 같이 기도하는 언니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아는 어떤 할아
버지가 있는데 산 속에서 할머니와 같이 아주 젊고 건강하게 사신다." 그런 말을 듣고 한 번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 산속으로 가니 그 분들은 흰 머리가 하나없이 건강한 모습을 하고 계셨다. 그곳에는 조그마한 방이 많이 있었고 그 방안에는 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큰 건물이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계단식 강당처럼 아주 큰 공간이 나왔다. 위에서 내려다 보니 앞은 아주 작게 보일 정도로 컸다. 맨 앞 단상에는 동으로 된 부처님이 모셔져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법회를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한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옆에 언니와 그 친구가 있었다. 중간에 땅콩을 나눠 주면서 이걸 먹어야 한다고 했다. 난 받아서 맛있게 먹고 노래도 부르면서 법회를 마쳤던 것 같다.
여섯째 날 꿈이다. 고등학교 때 별로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던 친구들이 내 생일을
축하해 준다면서 제과점으로 불렀다. 가 보았더니 서너 명의 친구가 한 테이블에 앉아 음료수, 피자, 치킨 등을 시켜 놓고 자기들은 먹지 않으면서 나더러 살이 쪄야 하니까 많이 먹으라고해서 나 혼자 맛있게 먹었다.
일곱째 날 꿈이다. 그리 깨끗하지 않은 물이 내 눈 앞에 끝이 없이 펼쳐졌다. 물 위에 크나큰 다리들이 줄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한강인 것 같았다. 나는 그 물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여덟째 날 꿈이다. 산 속에 초가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는 백발의 노인이 한 분
살고 계셨다. 영화 속에서 본 듯한 그런 첩첩 산중이었다. 밖에서 혼자 놀고 있는데 초가집 마루에 많은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아마도 할아버지로부터 뭔가를 배우고 있는 듯했다.
이런 꿈을 꾸며 지장경 독송을 4주일쯤 계속했다. 그런데 차 차 잠도 잘 자고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이 편안해져갔다. 지장경을 읽으며 인과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그런 뒤로는 '내 인생은 이렇게 망가져 불행하고 어둡기만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없어졌다. 지금은 내가 지은 악업으로 괴로움을 받지만 이제부터 선업을 지으면 언젠가는 즐거운 과보도 받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몸이 조금 나아지니 이제 생활에 대한 욕심도 생겼다. 지금은 하루에 한 번씩만 독경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취직 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 한 달 전만 해도 죽음을 생각했던 내가 이렇게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지장보살님께 너무나도 감사하다. 집안 식구들도 나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너무도 놀라신다. 다시 한 번 지장보살님의 위신력에 감사드리며 더욱 더 정진할 것을 다짐한다.
출처: 광륵사(www.ekayan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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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방광(放光)을 한 장처사의 지팡이
수십 년 전 경북 예천에 장처사(張處士)라는 분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처사는 지팡이를 하나 짚고 다니면서 어디를 가든지 지극하게 '지장보살'을 염했습니다.
어찌나 지극하게 불렀던지 ,잠을 자면서도 지장 보살을 염하였다고 합니다.
장처사가 죽고 난 뒤 가족들이 제상(際床)을 차려놓고 아침저녁으로 상식(上食)을 올렸는데 ,그 제상에 올려놓은 지팡이가 밤만 되면 방광(放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팡이에서 뿜어 나온 빛이 온 방을 밝혀 불을 켜지 않아도 방이 환하게 밝았습니다.
그뒤 화장을 하면서 그 지팡이도 같이 불에 태웠는데 ,지팡이의 손잡이 부분에서 사리가 나오기까지 하였습니다.
출처: 일타큰스님저 기도 (도서출판 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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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1)
약 20년 전 , 서울에 사는 법연거사는 40대중반에 이르러 조상님을 공경하고 공양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 조상의 영가천도와 누이동생의 임신을 기원하며 백일 지장기도를 시작하였다.
누이동생이 결혼을 한지 10년이 넘도록 아기를 갖지 못하여 불화가 잦았고 ,자주 친정으로 쫓겨 오기도 하였다.
법연 거사는 매일 진관사의 지장보살님께 나아가《지장보살본원경》총13품중 1품 또는 2품을 읽은 다음 ,〈지장보살예찬문〉을 읽으며 158배를 드렸다.
그리고 30분정도 ‘지장보살’의 명호를 외웠다.
이렇게 매일 같이 지장기도를 한지 80일가량이 되었을 때 아기를 갖지 못했던 누이동생이 임신을 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리고 백일기도를 끝마치는 날 새벽녘에 참으로 묘한 꿈을 꾸었다.
꿈에 보통보다 약간 작은 키에 남루한 한복 차림의 노인이 나타나 말을 하였다.
“나는 장호원 할아버지다. 너의 덕을 입어 좋은 곳으로 가게 되었기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왔다. ”
그리고 집안 어른들로부터도 장호원에 조상이 살았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하였으므로 , 의아해 물었다.
“누구신지요” 저는 감사의 인사를 받을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노인은 서울 장위동에 살았던 법연거사의 아저씨를 데리고 와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내 손자다.”
그리고는 조금 있다가 포졸 두 사람이 나타나 노인을 모시고 나갔다가 돌아왔다.
노인은 이미 남루한 한복 대신에 찬란한 장군복을 바꾸어 입고 있었다.
노인은 거듭 법연거사에게 ‘고맙다’ 는 인사를 하였고 포졸들도 합장하고 정중히 인사를 한 다음 노인을 모시고 사라졌다.
너무나 실감나는 꿈을 꾼 법연거사는 집안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당숙모에게 전화를 하여 장호원 할아버지에 대해 물었다.
“ 그와 같은 할아버지가 계셨다는 말은 들었으나 나도 뵈온 적은 없다.
네가 그 할아버지를 어떻게 아느냐 ?
이렇게 법연거사는 지장기도를 통하여 집안의 근심 이었던 누이동생의 잉태를 도왔고 , 가족들에게 완전히 잊혀져 있었던 선대 조상을 천도하였던 것이다.
【 출전: 지장신앙,지장기도법, 김현준, 효림, 2000년도 】
2) 산이 다하고 물이 다 한 곳에
지장보살님이 주신 아기 -
불광법회를 만나고서 비로소 부처님의 크신 위덕과 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상님 공경하고 공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백일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조상님께서 극락 왕생하시고 저의 누이동생도 보살펴 주시고 형제들을 돌보아 주시기를 기원하고 감사하였습니다.저는 9남매 중에 맏이인데 집안과 형제들에 대한 책임도 컸지만 그무렵 출가한 동생이 소생이 없어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아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개울에서 목욕하고 가까이 있는진관사를 찾아 갔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작은 정성이나마 부처님 앞에 공양올리고 지장보살님 앞에 엎드려 기도를 하였습니다.
진관사 부처님은 그전부터 자주 참배한 부처님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기도를 시작하는 날 법당 문앞에 서니, 무서운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가 쭈뼛쭈뼛해지고, 머리카락이하늘로 올라가는것 같았습니다. 몸은 굳어지고 어떤 전율같은 것이 온몸을 휘감았습니
다.
저는 손에 염주를 들고 단단히 마음먹고 법당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한걸음 법당에 발을 들여 놓았을때 그때의 지장보살님과 시왕님의 무서운 상호를 지금껏 잊을 수 없습니다. 크게 노하신 것처럼 저에게는 느껴졌습니다.
어떤 힘이 저를 법당 밖으로 밀어내는 것같은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도 첫날이니까 물러갈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에는 시험도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만 그렇게 무서운 때는없었습니다. 저는 눈을 꽉 감고 일심으로 합장하고 부처님께 예경드렸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지장보살경 1품 또는 2품을 읽고, 지장예찬문을 읽으며 백 오십 팔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30분간을 일심염불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기는 듯 법당에서 나오곤 하였는데 이러한 힘든 경계가 1주일 후에야 바뀌었습니다.
차차 그런 경계가 사라져 1주일이 지난 후부터는 지장보살님이 반겨 주시는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독자들은 어찌 장부가 그런 요망한 말을 하느냐고 꾸지람 하시겠지만저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표정이 나날이 반겨하시고, 기뻐하시는 표정으로 바뀌었으며 법당 근처에 오기만 하여도 반겨주시는 것이 가슴으로 와 닿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백일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를 하였고 그 사이에는 오직 환희심과 감사로나날이 지나갔습니다. 집안 이야기를 드리자면, 제 여동생이 충청도 제천에 사는데 결혼하여10년이 넘도록 아기를 갖지 못했습니다.
집안 어른들은 한결같이 후사를 바랐지만 아이를 낳지 못한채 세월이 흐르니 어른들의 불만이 겹쳐서 불화가 빚어지고 마침내는 몇번이나 친가로 쫓겨 오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일을 여러차례 겪고 나니 친정의 큰 오라비라고 하는 책임에서 고민하다가 부처님께 기도를 드
리자고 하였던 것입니다.
기도를 시작한 후 세달 가까이 되니 임신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동안 하도 걱정했던 일이라믿기지 않더니 드디어 달이 차 금년 봄에 아들을 순산했습니다. 병원에서 의사는 난산을 예고했습니다만 저는 부처님만 믿고 아들 순산을 선언하고 집에 왔더니 과연 꿈만 같은이 이루어졌습니다.백일 기도를 마친 저는 계속하여 또 백일기도에 들어갔는데 하루는 희한한 꿈을 꾸었습니다.
어떤 분은 또 꿈이야기냐 하시겠지만 이 꿈은 정말 꿈같지 않은 꿈이었습니다. 새벽녘인데 꿈속에 어떤 노인이 나타났습니다. 키는 보통보다 약간 작은편이고 남루한 한복 차림에 아무렇게나 수염이 났으며 머리에는 갓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너의 덕을 입어서 내가 좋은 데 간다. 그래서 인사하러 왔느니라. 나는 장호원 할아버지라고 한다." 저는 반문했습니다.
"누구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런 인사 받을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하였더니 서울 장위동에 사시는 저의 아저씨를 모시고 왔습니다.
그리고서는 "이 사람이 내 손자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더니 역사물 TV에서 보던 포졸형식을 한 두사람이 나타나서 그 노인을 모시고 갔습니다. 그리고 금방 다시 돌아왔는데 그때 노인은 새옷으로 갈아 입었고 그것은 옛 장군복 같았습니다.
저에게 가까이 와서 거듭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포졸 형색을 한 사람도 합장하고 정중히 인사하고 노인을 모시고 갔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실감있는 꿈이었습니다. 아침에 잠이 깨자 저는이상한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일찍이 그런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
습니다 진관사에 가서 기도하고 그 길로 사무실로 나가 당숙모댁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당숙모는 올해 83세이신데, 16세에 시집오신 저희 집안의 산 역사이십니다. 전화로 "장호원할아버지가 계셨습니까."하고 물으니 형상을 물으셨습니다. 제가 본 대로 형상을 말씀드리니 "내가 그 할아버지를 뵙지는 못하였지만, 그러한 할아버지가 계시다는 말은 들었다. 그
데 너는 그 할아버지를 어떻게 아느냐."하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조상님을 위한 기도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당숙모는 "참 잘했다. 나는 천주교를 믿고 있지만 조상님을 위해서 그렇게는 해보지 못했다. 너는 참으로 잘했구나"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지. 경전 말씀에 일체중생이 미혹하여 어둠을 방황하고 불보 살님이 능히 이를 구원하신다 하였고 일심으로 염불 기도하면 모든것이 이루어진다고 한 것을 생각할 때 신기하기도 하지만은 우리가 알수없는 세계에서 일어난 현실의 한 단면
이라고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의 조상님은 확실히 이름모를 분까지 모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꿈에 본 무주고혼
그런데 저에게는 저의 생친이 계시고 또 큰아버님이신 아버님이 계십니다. 말을 바꾸면 큰아버님 앞으로 몫이 지어진것입니다. 두 어른모두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신 지 오래입니다.
저는 편모 슬하에서 자란 까닭인지 아버님에 대한 사모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습니다. 부처님 법을 믿으면서부터 제사는 정성드려 올렸지만 그래도 모자라는 듯하여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다. 매일 아침 개울에 가서 냉수욕을 하고 진관사에 참배하고 지장보살님 앞에 무릎
을 꿇었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지장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리고 염불하며예배하고 예배하며, 염불하는 것으로 정근일과를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기도에는 아버님을 위한 기도와 아울러 저의 기도인연 으로 무주고혼들까지도 모두 부처님 은혜를 입기를 기원했었습니다.
저는 매일 기도 일과를 정확히 지켜 나갔습니다. 그런데 100일 기도를 하면서 홀로 정근하고부처님앞에 약간의 공양을 올렸을 뿐 무주고혼들을 위하여 시식은 8월18일 회향날로 잡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지고 진관사 개울에는 빠알간 꽃물이 다 흘러가고 어느덧 여름이 한창인때였습니다. 그때가 7월말 경이었는가 합니다. 새벽 늦게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낯익은 진관사 일주문 안에 서 있었습니다. 그건데 별안간 수십, 수백명의 낯설은 사람들이 모여들
어 저를 둘러쌌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진관사를 향하여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저를 둘러 싸며 "배가 고프오, 못살겠소. 어서 먹을 것을 주오."하고 일제히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저는 말하기를 "오는 8월 18일까지 기다려 주시오. 그때는 소참이나마 준비해서 대접하겠오."하였으나 저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배가 고파 못견디겠오. 어서 밥을 주시오." 하고 외치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잠시 난처해졌는데 순간 저의 곁에 위풍이 당당하고 키가9척이나 됨직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대대장이오. 이대로 있어서는 아니니오. 우리 병력을 풀어야 하겠오. 객귀들 하나라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하오." 하더니 금방 일단의 병력이 나타났습니다. 모두가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도 군모와 군복이 배당되어 곧 입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팔짱을 끼어 스크럼을 짜고 빈틈없이 줄을 서서 전진하였습니다.그런데 여전히저들은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도 20일만 기다리라고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데 저 대대장이라는 사람을 말하기를 저들에게 무엇인가 먹여야지 그냥 두면
안된다."하더니 어디서 날라 왔는지 큰 밥통에 밥과 나물이 운반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비빔밥을 만들어 군대용 반합에 담아서 우리 군인들이 숟가락으로 퍼서 저들을 먹였습니다.
수백명의 군인들이 한줄로 서서 그 앞에 밥을 먹겠다고 모여들어 웅성대는 군중들에게 큼지막한 숟가락으로 비빔밥을 쉴사이 없이 퍼먹이는 광경은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 한참동안 그러는 사이에 거기에 모여 있는 모든 객귀들을 배부르게 먹였습니다.
그러고 나니 앞서의 대대장이라는 9척이나 되는 사람이 앞에 나와 일장연설을 하였습니다.그것은 좀체 들어보지 못한 훌륭한 법문을 설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너희들은 마음이 어두워 이런 고생을 한다. 마음을 밝히자면 부처님을 믿어라. 그리고 이제까지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라. 그리고 부처님 믿고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나아가라. 이번에 너희들이 배부르게 먹고 극락세계에 가는 것은 법연거사의 은덕이니 그 은혜를 잊지 말
라"
이말을 들은 군중들은 일제히 저를 향하여 절을 하며 감사인사를 하고 기쁜 얼굴로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대대장이라는 사람은 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혹 기독교신지가 있으면 손을 들어라"하니 역시 여러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말하는 것 이었습니다.
너희들은 법연거사의 은덕으로 하늘나라보다 더 좋은 극락세계로 가게 된다." 하며 앞서 말을 기독교적 표현으로 바꾸어 되풀이하고 나서 "법연거사에게 감사하라"하였습니다. 역시 그들도 앞으로 나와 저에게 각별한 인사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눈으로 보는듯 생생한 것은 그들의 기쁨에 넘치는 얼굴입니다.
그것은 흡사 법회를 마치고 나오는 저희들의 얼굴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꿈을 꾸고 나서 "객귀"라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 듣는 말이라 스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것은 "무주고혼"이라는 말씀을 들었을때 저는 비로소 이번 기도의 목표인 선망부모와 무주고혼을 위한 기도가 성취됐음을 알았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다시 실감합니다.
분명히 인간은 육체나 현실생활이 다가 아니며 사후 영혼의 생활만도 다가 아닌 불멸의 세계가 또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도에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저와 같은 제가불자의 독경,염불의 공덕이 경전말씀 그대로 불가사의하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지장보살은 절에서만 부르는 것이라 하는데 이 말은 정말 잘못된 말입니다 또한 가지는 중생세계에는 무주고혼과 같이 시장(배고픔)을 견디지 못하는 불쌍한 중생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을 누가 보살펴 주고 구재하여 밝은 길로 인도하여 주겠습니까? 불법만이 제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진정 우리 부처님만이 모든 생명을 밝히고, 구원해 주는 영원한 광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효성을 일으키고 자비심을 일으켜 조상님과 무주고혼에
게 부처님의 법문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1983년)
출처: 산이 다하고 물이 다한곳에 (불광출판부 법연 이광연님의 체험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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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여든을 바라보고 있는 서울의 홍서주 보살이 약 20년 전에 체험한 일이다. 당시, 그녀의 아들은 합판상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대리점으로부터 거래대금 300만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돈을 달라고 하자 대리점 사장은 묘한 제안을 하였다.
"지금은 나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한 건만 해결하고 나면 아주 괜찮아집니다. 1,500만원만 융통해 주십시오. 300만원도 바로 드리고, 1,500만원은 약속어음을 발행하여 500만원씩 세 달 동안 갚겠습니다."
아들은 300만원을 받을 욕심으로 누나의 남편인 매형에게 1,500만원을 빌려 대리점 사장에게 주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서주보살은 은행에 대리점의 신용을 알아보았더니 언제 부도가 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1,500만원은 매우 큰 돈이었고, 잘못되면 딸의 가정에도 큰 회오리가 몰아칠 판이었다.특별한 방법이 없었던 서주보살은 지장기도를 시작하였다.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10시에 <지장보살예찬문>을 독송하며 158배씩의 절을 올리고, 지장보살염불을 하였다. 자비하신 지장보살님께서 이 어려움을 막아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마침내 500만원 1장의 기한이 돌아왔고, 그 전날밤 보살은 꿈을 꾸었다. 많은 조상들이 배를 타고 떠나려고 하는데 배가 진흙벌에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가 애를 태우고 있을 때 한복차림의 키가 훤칠한 남자가 나타나 배를 밀었고, 배는 물에 떠 순조롭게 바다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은행에서는 오후 5시 10분전까지도 입금이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보살은 지난밤의 꿈을 생각하면서 꼭 도와주실 것을 믿고 속으로 소리쳤다.'부처님, 감사합니다. 지장보살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5시가 되자 은행원이 '현찰로 줄까, 수표로 줄까' 하고 묻는 것이었다. 보살의 기쁨과 놀라움과 감사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뒤에도 서주보살은 지장기도를 계속하였고 두 번째 약속 날짜가 다가오자 또 꿈을 꾸었다.
아들이 큰 나뭇가지에 매여 있는 그네를 타고 있는데, 갑자기 한쪽 그넷줄이 끊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네를 멈추려 하였지만 어찌나 힘차게 흔들리는지 잡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넷줄이 막 끊어지려는 순간, 지난 번 꿈에 배를 밀어주었던 분이 나타나 나무 위로 뛰어오르더니 말을 하였다.
"손에 쥐고 있는 밧줄을 던져라."
어느새 보살의 손에는 밧줄이 쥐어져 있었고, 그것을 던졌더니 곧바로 받아 끊어지려는 그넷줄을 고쳐 매는 것이었다. 보살은 꿈 속에서도 조이던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좋아하였고, 두 번째 약속어음 500만원도 마감시간이 다 되어 해결되었다.
세 번째도 서주보살에게는 현몽이 있었다. 아들과 함께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들을 따라가자 법당과 비슷한 넓은 방이 나타났으므로 거기로 들어가 대중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잠시 뒤 모습이 매우 수려한 스님 한 분이 나타나 문밖에서 안을 살피더니 보살을 보고 손짓을 하며 부르셨다.
"길을 잃어 집으로 갈 수가 없지? 이 길을 따라가라."
보살과 아들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조금 걸어 내려오자 아래쪽에 사는 동네와 빈집이 보이는 것이었다. 물론 세 번째 약속어음도 잘 해결되어 1,500만원을 모두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그 대리점은 그 후 곧 부도가 나서 망하였다고 한다.
출처: 도서출판 효림 불교신행총서 김현준저 지장신앙 지장기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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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법운거사부부의 죽음을 초월한 지장기도
며칠 전 불성계발훈련이 실시되고 있을 때였다. 이날의 주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과 가장 기뻤던 순간의 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자기 노출을 하는 것이었다.
법운(法雲)거사가 초대받자 눈을 지그시 감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지난 1년 6개월은 나의 생애 가운데 가장 힘들었지요. 그러나 그 고통이
끝난 날은 생애 최고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법운 거사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가 포교원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내 자비행 보살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겼지요.
아내는 열심히 절에 나가고 신심도 깊었지만 자신의 문제를 혼자 해결하기에
너무 힘이 들었던지 나에게 의논을 했어요.
글쎄, 그 고민이라는 것이 너무나 황당한 것이었어요.
매일 저녁 꿈에 저승사자가 나타나 날짜까지 정확히 알려주면서 1년 6개월후에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아내가 다니는 사찰 스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기도만 열심히 하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나 생각대로 기도는 되지 않고 고민만 점점 깊어 갔던 모양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신심이 너무나 약해서 걱정이 태산 같았어요.
그래서 법사님께 상담을 드렸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하시기에 순간 무슨 해결방법이 있구나 하고 안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때 법운 거사의 모습은 너무나 근심스러워 보였다.
젊은 나이에 아내가 잘못 될 수도 잇다는 생각을 잠시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법운 거사님, 지금부터 아내를 끔직히 사랑해 주세요.
신혼부부 시절의 사랑으로 돌아 가세요. 아내를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공덕을 지으면 지금의 이 고통이 오히려 기쁨으로 변할 것입니다.
공(功)을 드려 덕(德)이 생기는 것 아니겠어요.
『지장경』「제6품 여래찬탄품」에보면 '만약 십재일에 불 ·보살과
모든성현의 존상 앞에서 『지장경』을 읽으면 모든 재앙과 고난이 없으며 ,
그가 사는 집안에 어른이나 어린이가 현재 또는 미래 백천 세계에 영원히
악도를 여의게 될 것이다'하였지요
그러니 지금부터 십재일뿐만 아니고 매일 지장 보살의 말씀을 믿고 함께 기도해 나갑시다.
법운 거사님은 이 제의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하고 있었다.
다음날, 법운 거사의 자택에 방을 비워 작은 원불을 모시고 몇 사람이 모여
점안법회를 실시하였다.
법문을 통하여 지장보살의 원력에 대하여 설법을 하였다.
"지장보살님은 구원의 보살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힘들어 하실 때 지장보살님은 여러분을 구원해 주십니다.
여러분의 믿는 마음이 깊으면 깊을수록 불심은 믿는 이의 마음속으로 배어듭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마음으로 섞이고 ,그러함이 느껴져서 서로 통할 때
부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일심으로 기도할 때 신앙의 힘은 솟아나고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화·복은 자재롭게 될 수 있습니다.
지장보살은 '염부제 중생을 살펴보니,몸 움직이고 생각 일으킴에 죄
아닌 것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열반경』에서'온갖 제유(諸有)를 벗어남을 이름하여
열반이라 한다 '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이 말씀 하시는 제유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되는 여러 가지 차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밝은 태양이 높이 떠오르고 대자연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데
유독 인간의 마음은 탐욕으로 가득 차서 지옥을 떠도는 모습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장보살은 인간의 고통의 세계를 절대로 피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고통받는 중생을 건져주시려는 지장보살의 원력을 믿고 나면 어떠한
고난도 극복할 수 있을 것 있을 것입니다.
이날부터 법운거사 부부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예불을 모시고 『지장경』을 읽었다.
부처님을 향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일관하게 생활했다.
법운거사를 아끼는 법우들은 매월 정기적으로 한번씩 모여 『지장경』을 독경하며 ,강설을 들었으며 ,함께 기도하였다.
저승사자가 나타난다는 마지막 날 저녁에 많은 법우들이 가정법회를 열고 법우들이 돌아간 후 우리부부는 계속해서 간절히 기도하면서 기다렸어요.
그때 갑자기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지장보살 님이 구름을 타고 나셨어요. 금빛 찬란한 빛을 발하면서 서서히 아내 앞으로 다가 오셨어요.
우리는 너무나 감격했어요. 지장보살님을 친견(親見)하다니, 어찌된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요.
지장보살 님의 입안에서 향내음이 넘쳐 나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온몸을 감싸니 1년 6개월 동안 긴장된 몸과 마음이 일시에 가벼워짐을 느꼈어요.
너무나 편안 했어요!
세상에 태어나 가장 환희로운 순간을 맞이했던 겁니다.
이곳이 극락이구나 생각하면서.'아!지장 보살님 감사합니다'하고는 눈을 뜨니 새벽이었어요. 온몸이 촉촉이 젖어 있었어요.
우리는 말없이 서로 마주 보고 빙그레 웃었어요.
살아 있구나 하는 확인이었지요. 나는 아내의 땀을 딲아 주었어요.
부부는 3천겁의 인연이라 했던가, 부부는 이생에서 인연맺어 살아 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맞이하게 된다.
아내의 고통을 덜어주고, 괴로움에서 구제하기 위하여 가정에 부처님을 모시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내를 위하여 기도하던 법운 거사님이 오늘은 왠지 존경스럽다.
1년6개월의 긴시간 동안 조금도 흔들림 없이 정진하던 법운거사 부부의 사랑은 불자들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온들 법운거사 부부처럼 깊은 종교적 믿음과 사랑이 있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랴?
『출전:기도가 간절하니 가피를 입지,이동성,정우서적,2000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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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불연(佛緣)을 맺게 해준 지장 기도
콜레라에 걸린 첫돌 된 아기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싸고 토하고 밤새 울고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태였다.
몇날 며칠을 그렇게 싸고 토하니 아이는 탈진상태가 되고 나의 몸은 지칠 대로
지쳐서 죄받을 소리지만 서도 저 아이가 차라리 죽었으면 싶었다.
오죽이나 보기에 안타깝고 가슴이 메어지면 그런 무서운 생각을 했을까 ,
탈진한 아기는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물론 병원은 매일 매일 열심히 다녔으나 웬일인지 설사도 멈추지 않고
토하는 것도 별차도가 없었다.
마침내 아이는 눈을 아예 감고 헐떡거리고만 있었다.
도저히 살아날 가망은 없는 듯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를 등에 업고 며칠 밤을 꼬박 세우기도 했다.
하루는 아이를 윗목에 이불을 덮어씌운 채 밀어 놓았다.
이젠 도저히 어쩔 수도 없으니 차라리 죽으면 저 헐떡거리는 숨소리는
멎으면 그만 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파서 정신이 없는데 설상가상 애들 아빠는 집에를 며칠째
안 들어오고 있었다.
애들 아빠가 능력이 없어서 친정 건넌방에 잠시 와 있을 때였다.
그땐 어디에도 매달릴 끄나풀도 없으며 의지할 곳도 없는 처지였다.
종교가 무엇인지 조차도 알지 못하던 때였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친정 건넌방에 얹혀 있는 처지인데도 ,아이들
고모가 결혼을 했다가 아이를 하나 낳아 놓고 억울하게 죽었기에 ,나는 아무것도
해놓지 못하나 항상 마음속으로 그 고모가 좋은 곳으로 극락 왕생 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음력 4월이면 그 고모의 밥 한 그릇 이라도 형식상으로라도 윗목에 떠놓았다.
물론 뭔가를 알고 했음이 아니고 다만 이상하게 아이들을 위하여 그
고모님의 밥을 떠놓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 몇 년 전에 우연히 ,아주 우연히 금호동 극장 옆 민가에 절이 있기에
아이를 업고 지나가다가 무심코 들렀던 적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으나 그곳은 너무 작고 초라했으며 다시 되돌아
나오고 싶었던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아이를 업은 나 역시 젊고 초라한 모습이었으리라.
머리를 기른 나이든 아주머니가 힐끗 쳐다보더니 본체 만체 하고 자기 일만
계속 했다.
나 역시 계면쩍어서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밖으로 나오려는데
가만히 아주 조용하게 "지장보살"하는 소리가 안에서 들려 왔다.
밖으로 나오려던 나는 뒤를 돌아봤다.
저게 무슨 소린가? 나는 소리나는 데로 몇 발짝 옮겼다.
냄새까지 나는 집 ,아주 더럽고 지저분한 집이었다.
한쪽 방에 문이 조금 열려 있어서 그곳을 들여다 보았더니 아주
초췌하고 늙고 나이든 남자가 냄새나는 방에 누워 있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아주 가느다란 목소리로 지장보살을 외고 있었다.
나는 잰걸음으로 빨리 그 집을 나와 버렸다. 왜 그리 그곳이 지저분하고 싫었던지....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 아이가 사경을 헤매는 데 나도 모르게 그때의
그 꺼림 직한 집에서 흘러나오던 "지장 보살"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러 나오는 것이었다.
"지장보살"아마도 아픈 사람이 불러서 좋은 말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초라하고 병에 찌든 모습의 그 남자가 부르던 소리.
"지장보살"나는 무심코 아이를 윗목에 밀어 놓은 뒤에 눈물을 흘리면서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사람인지 귀신인지 누군 지는 몰라도
나는 울면서 한참을 그렇게 앉아서 찾았다.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무엇인지 모를 상대를 그렇게 애절하게 찾았다.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30년이 넘는 그때부터 나는 지장 보살 님과 인연이
맺어진 것이리라.
잘되면 내 탓이요, 못되면 부모 조상 탓이라고 내가 이렇게 되어야만 하는
환경 자체도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몇 시간인가, 얼마 나였나 모르는데 문득 이게
아니다.
아이를 업고 오랜 경험이 있는 나이 드신 의사가 있는 소아과를 찾아가자
하고 정신이 퍼뜩 들었다.
정신 없이 지장기도를 하다 보니 윗목에 아이는 헐떡이고 있고 밖은
어느덧 밤11시가 넘었는지 깜깜했다.
어떻게 아이를 업고 달려갔는지 모른다. 다른 때는 병원간판도 많이도
보이더니 그날 따라 아무리 병원을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밤11시가 넘은 뒤라 문도 다 닫았을 것이다.
나는 엉엉 소리를 내어 울면서 송장처럼 차디찬 아이를 등에 업고
얼마나 한참을 헤맸는지 모른다.
저 만큼서 아주 히미 하게 ㅇㅇ의원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아이가 하도 말라서 등에 아이가 있는지 조차도 감각이 없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불빛을 만난 듯 ㅇㅇ의원 앞으로 가서 무작정 문을
두드렸다.
아무런 기척이 없다. 또 두드렸다. 양심도 체면도 없었다.
한참 만에야 문을 비스듬히 열고 그때 내 생각으로는 60이 훨씬 넘은
할아버지가 짜증스런 얼굴로 내다보았다.
"할아버지 , 살려 주세요. 아이가 죽어요"크게 소리쳤다.
"누구요?"
하더니 그 할아버지는 다시 문을 닫으려 했다.
"살려주세요, 우리 아이를 구해 주세요. 제발!"하고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마지못해 할아버지는 "들어와"하고 문을 열어 주었다.
아이를 데리고 들어간 곳은 낡고 허름한 진찰실이었다.
정말로 수리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아이를 딱딱한 침상에
눕히고는 아이의 눈을 벌려보고 배를 만지더니 할아버지는 혀를 찼다.
이런 애를 이렇게 될 정도로 놔두었어 ,죽일 것들 ……"무서운 눈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그러더니 천천히 다 낡은 서랍 속에서 천천히 알약을 몇 개 꺼내서 하얀
그릇에다 득득 갈기 시작했다.
약을 가는 그릇이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고 그릇이 너무 더러웠다.
약을 갈아서 또 물약 같은 것을 꺼내더니 "이 것 먹여" 하면서 퉁명스럽게
내주었다.
나는 무조건 밤에 의사를 만난 것이 감사하고 약을 받은 것이 기뻤다.
어떻게 집을 왔는지 모른다. 인사나 제대로 했을 리가 없다.
아이는 너무나 탈진 상태로 죽은 듯이 입을 벌릴 줄 몰라서 내 입에다 약을
한 모금 물어서 아이 입에다 조금씩 흘려주었다.
반은 아마도 흘렸기에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결에 잠이 들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잤을 까? 찬기가 느껴져서 아이가 있는 자리에서 이불이
들썩들썩 거렸다.
놀란 가슴에 이불을 벗기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아기는 두손을 저으며 까만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나는 아가! 아가! 소리치며 아이를 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무심코 시계를 바라보았더니 새벽 5시가 넘어 있었다.
서너 시간을 잔 듯 했다. 나도 지친 몸이라 잠이 들었으리라.
우리 아기는 그렇게 살았다.
필히 죽을 것을 그 할아버지가 살리 신게 아니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무작정 아이를 안고 허공에 대고 절을 했다.
보리차를 미지근하게 데워서 입에다 떠 넣어주니 아이는 받아먹었다.
그리곤 곧 잠이 들었다.
나도 아기를 안고 잠이 들었다.
며칠 뒤 나는 몸을 추스르고 아이를 회복시킨 다음에 그냥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 아이를 업고 그 감사한 할아버지를 찾아 길을 나섰다.
헌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런 경우를 두고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 하는가.
어디가 어딘지 도저히 몰라서 찾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다시 간 길을 돌아서 또 가고 또다시 되돌아서 그 날밤의 기억을 아무리
되새겨서 그곳을 찾으려 하였으나 허사였다.
그 이튿날도 또 그 이튿날도 아무리 찾으려 하였으나 허탕을 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갔다.
이 불쌍한 인간을 가슴아픈 일을 당하지 말라고 부처님께서 지장보살님을
시켜서 우리아이를 구해주신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금호동을 며칠씩이나 뒤져도 못 찾다니 …
우연한 기회에 우연한 인연으로 몇마디 흘러들은 "지장보살님"감사합니다.
지장 보살 님의 위신력은 무궁 무진 하다는 것도 이제야 비로소 진지하게
나마 느끼고 살고 있지 않은 가 생각한다.
내가 이제 지장보살의 위신력을 관찰해 보니,
항하사 겁을 설하여도 다 할 수 없네.
한 순간만 보고 듣고 우러러 예배하여도,
한량없는 이익이 하늘과 땅에 넘쳐나리라.
지심귀명례 백천방편 교화중생 지장보살!!
두손을 모아 나무 대자비 대원본존 지장왕보살 마하살!!!
출처: 오! 지장보살님 나는 언제 지옥문을 두드리나이까?(박영옥 , 관음문화사, 2002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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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교통 사고 후 새 삶을 열게 한 간절한 지장기도
오늘 혜광(慧光) 거사는 5계를 받고 불자가 되었다.
특별한 계기가 아니고는 남자신도가 수계를 받는다는 것은
불교계의 현실로 대단히 드문 일이다.
그래서인지 오늘 수계법회에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30여 명의 새 불자 가운데 혜광 거사는 첫 번째로 수계를 신청했으며 ,
오늘 만큼은 직장을 뒤로하고 부처님 전을 찾은 것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혜광 거사는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직장에 야간근무를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연락을 받고 대학병원으로 올라갔다. 중 환자실에 누워있는 환자를
바라보니 앞이 캄캄했다.
온몸에 붕대를 감아 놓아 도무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식물인간이 되어 피부는 검게 변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넋이 나간 상태라 도무지 위로의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혜광 거사의 아내 보명심 보살은 포교원의 자원봉사 활동을 열심히 해온 신심이
돈독한 보살이었다.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보살님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지장보살님이 옆에 계십니다.
오늘처럼 어려 울 때 지장보살을 부르면 반드시 가피를 주실 것입니다.
자, 힘내세요. 저와 함께 이 순간부터 함께 기도합시다.
생명은 존귀한 것입니다. 회복할 가능성이 단 1%뿐이라도 기도하면 불보살님은
응답해주십니다."
그것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간과 위, 장의 파열로 인하여 오장육부에 지혈이 되지 않아 의사 선생님도 가재로
그냥 봉해 놓은 상태였다.
중 환자실을 나오는 사람들마다 말을 못하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보살님의 손을 잡고 다시금 지극한 마음을 다하여 기도했다.
"대원본존이신 지장보살이시여,당신의 고통받는 중생이 찾으시면 기꺼이 다가오셔서
고통속의 중생을 건지시기 위하여 성불도 늦추셨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당신의 제자 보명심 보살의 남편이 교통사고로 인하여 생명이 위독하오니
살펴주시옵소서.
오늘 이러한 병고는 모두가 지난날 지은바 어두움의그림자라고 생각합니다.
지장 보살님, 이 고통 속에 잇는 가엷은 중생이 생명을 건지면 저는 반드시
진실한 불자로 평생토록 살아가도록 인도하겠나이다.
이러한 원을 세우고 보명심 보살님과 약속을 했다.
100일 동안 매일새벽4시, 그리고 사시(오전9∼11시),저녁7시에 함께 기도하며
회향은 환자가 완쾌된 후 포교원에서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도저히 이루어지기 어려운 원이었지만 지잘 보살님의 원력은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고 하였으니 최선을 다해보기로 결심하였다.
이때부터 간절한 기도는 시작되었다. 새벽부터 기도를 시작해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오직 한 생명을 살려 보려는 순수한 열망으로 기도했다.
포교원 신도들도 각종 기도나 법회를 봉행 하면서 다함께 마음을 합하여
기도에 임해주었다.
간절한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지나가듯이 숨죽이며
환자를 지켜보기를 50여 일이 되던 날 새벽,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보살님의 전화였다.
"법사님 남편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의사 선생님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조금씩
좋아진다고 그러셨어요."
"아. 그래요 잘됐군요. 올라가 뵙겠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환자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2차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2차 수술 후 회복만 되면
생명을 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까진 산 넘어 산이었다. 불 보살 님께 감사 드렸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시금 간절함을 더하여 기도에 몰입했다.
드디어 환자는 다행스럽게 2차 수술을 마치고 며칠 후 눈을 떴다.
그리고 고통을 호소하듯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였다. 환자의 이마를
어루만져주고 ,합장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환자는 눈을 뜨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쉬는 모양이었다. 병실을 나왔다.
"보살님 ,힘 내세요.이제 확실하게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더욱 열심히 기도합시다"
보살님도 표정이 많이 밝아져 있었다.
환자를 면회하는 시간외에는 오직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을 일과로
삼고있었다.
환자는 3차 수술을 받아야 했다.
오장육부가 성한 곳이라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3차 수술이 무난히 끝나 회복되었고 산소마스크
도 뗄 수가 없었다.
조금씩 움직이고 말을 하더니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문병을 갈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몸의 피부 색깔도 조금씩 제 색깔을 띠기 시작하였다.
70여 일이 지나면서 조금씩 죽을 먹기 시작했다.
지옥을 넘나들며 처절한 고통을 당하던 혜광 거사는 이제 계절이 바뀌면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육신 어느 한곳도 성 한곳이라고는 없지만 모두가 회복되었고 전신건강도
되찾게 되었다.
100일이 되던 날 환자는 그렇게도 원하던 퇴원을 했다.
그리고 포교원에 도착하여 회향기도를 봉행하였다.
많은 신도들의 축하 속에 조금은 힘들어 하면서도 그의 눈에는 삶에 대한 강한 집념과 새로운 출발에 대한 환희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 순간 불자의 길을 가기 위하여 수계를 받는 저 모습이 마치 도를 구하려
출발하는 수행자의 모습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계사가 수계자에게 연비하는 동안 헤광거사는 대중과 함께 끓임 없는 참회진언을 하고 있었다.
다시금 계사스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연비 할 때의 따끔한 그 찰나에 여러 생에 지은 모든 죄업이 마치 마른
풀이 불에 타면서 사라지듯 순간에 소멸되었습니다."
헤광 거사는 자신에게 들려오는 청정한 스님의 말씀에 합장으로 공감하여
감격해 하였다.
나무 유명교주 지장보살 마하살!
나무 남방화주 지장보살 마하살!
나무 대자비 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
(출전: 기도가 간절하니 가피를 입지,이동성법사,정우서적,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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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마음이 답답하고 외롭고 허전할 때 , 나와 그 형님은 각각 홀로 이름
난 절에 바람처럼 다녔었다. 절은 교회와 달리, 왔다고 잘왔노라 반기
는이 없고, 간다고 잘가라고 배웅하는 이 없었다. 물론 그런 점이 우리
를 더욱부처님 앞으로 끌려가게 한 힘 이었는지, 혹은 인연이 그런것이
었는지...
절하는 법도 몰랐고, 염불도 모른채 , 답답한 마음에 보문사, 전등사,
수덕사, 구룡사, 낙산사,,,기타 도착해서는 고작 남들 절하는 모습
뻘쭘히 넘겨다 보다가 경내 한바퀴 휘돌아 보고 돌아 오는게 고작이었
다. 그래도 다녀오지 않은것 보다는 나았으니까.
그러길 수년이 흐른 어느날 어느 보살님의 권유로 작은 절에 이름을 올
리고 지장경 한권과 108염주를 스님께 서 주신걸 받아 가방에 챙겨넣고
인연을 맺은지 불과 6개월 남짓 되었을까?
형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100일 지장경 완독 하는 기도를 시작하셨다.
일이 바빠 새벽에 귀가하는 날 에도 2시간 넘게 걸리는 기도를 빠지지
않고 지성으로 하셨는데, (나는 7일 만 하였는데도 엄청 힘들어 서 7일
기도로 끝내고 나의 능력에 맞게 천수경 1독씩 으로 매일 바꾸어 하고있다.)
100일 기도 완료 이틀전 형님을 경제적으로 너무나 힘들게 하던 부동산 매매가
이뤄질 거 같다는 부동산사장님의 전갈이 왔다. 누가 봐도 그 물건은 임자가
나설 것같지 않아 모두가 포기 하라고 했던 물건 이 었는데 매월 수백만원의 고
리만 지불하면서 골머리를 썩혀 왔었으며, 명의가 4명이나 더 되어 있어
문서에 도장 찍을 일 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당시로선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도저히 성사가
불가능 해 보였다. 한옥 보존지역 이라 신축은 도저히 불가능하며, 본채에
새로 증축을 하여 지붕이 기와 와 스렛트가 맞물려 외관도 우스워 보였으니...
그러나 기도도 무사히 끝내고, 잔금까지 무사히 받았다. 우리는 그 것을
지장기도의 영험이 아니면 불가능 했으리라 생각한다.
형님과 나는 그 이후 3000배 7번 완성을 하리라 하며, 참회기도를 하고
있다. 반드시 어떤 원을 세워놓고 하는것은 아니고, 올바른 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것 같아 너무나 즐겁다.
출처:나무아미타불카페 불교의 영험록 송 ㅇㅇ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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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석장을 짚고 단을 내려와 제게로 걸어오시던 지장보살님” 저는 오늘도 그 모습을 뵙니다
精進行/28기 출처:능인선원
세상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빛과 색이 있습니다. 들에 핀 이름 없는 한 포기 들풀도, 작은 조약돌 하나도 그만의 투명한 아름다움을 지닌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세상의 어느 것에도 비교 할 수 없는 아름다운 빛과 색을 지장보살님 모습에서 보았습니다.
소리가 잠든 세계, 승화된 빛으로 다가서시던 그 모습은 천상의 재현처럼 성스러운 한줄기 찬란한 빛이셨습니다. 석장을 짚고 불단을 내려와 춤을 추듯 제게로 걸어오시며 손을 흔드시던 지장보살님을 친견하며 저는 그저 머리를 조아리고 지장보살을 염송했습니다.
탐욕으로 지친 병든 육신을 이끌고 능인 법당을 찾아와 두 무릎을 꿇고 오열로 참회했던 그날은 묵묵히 미소로 저를 지켜만 보시던 지장보살님이셨습니다. 아버님 위패를 법당에 모시고 작은 일부터 찾아 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신문 접기, 교도소 봉사, 법당 청소 등을 하며 열심히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 이제야 고향에 온 것처럼 법당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져 집에 돌아 갈 생각조차 잊곤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기도 중에 지장보살님을 친견하고 보니 더욱 몸을 낮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위패들을 모셔 놓은 영가단에 초하루, 지장재일은 꽃을 사다 꽂기 시작한지 2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꽃을 꽂는 전날 밤 꿈에는 꼭 지장보살님이 매번 다른 색깔의 꽃을 들고 나타나십니다. 저는 지장보살님이 들고 계셨던 꽃을 사다 꽂습니다. 노란꽃, 빨강꽃, 국화, 백합 등등......
요즘은 상조회 시다림 봉사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원장스님 말씀처럼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망자를 위로하여 저승 먼길을 편안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도리이자 의무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 불자들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지난번 삼성병원 시다림 봉사를 나갔을 때였습니다. 어느 영가가 슬피 울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그 다음날 시다림을 나간 상조회 법우20명이 열심히 영가천도를 해주고 마지막 목탁을 치고 나서보니 어제 본 그 영가가 영정 속에서 밝게 웃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영가 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실이었습니다.
요즘도 우리 능인 상조회에서는 조를 나누어 쉴 틈이 없이 시다림 봉사를 다닙니다. 법당에서도 천도재, 49재, 막재등을 지냅니다. 쉼 없이 기도하고 수행 정진해야 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영가들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참회가 필요합니다. 육신을 벗은 영가들에게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영가천도를 해주고 난 날은 가끔은 극락에 가는 꿈을 꿉니다. 온 천지가 보석으로 장식된 그곳은 실크처럼 부드럽고 신비로웠습니다. 살갗을 스치는 감촉이 너무도 부드러워 꿈을 깨고 나면 화가 났습니다. 훗날 내가 육신의 몸을 벗으면 갈 곳이기에 결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곳이 그립기도 합니다. 지금은 지광스님 말씀 잘 듣고 부처님 법 따라 수행하며 열심히 봉사하고 살면 됩니다.
법당에 들어서면 하심하는 마음으로 청소하고 작은 물건 하나도 소중히 다루며 내가 아닌 남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는 것, 이것이 바로 도 닦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자칭 법당의 왕언니입니다. 누구라도 초발심으로 우리 능인선원을 찾아오는 법우들이 있으면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고자 합니다. 항상 지광 스님 화이팅을 외치며 작은 힘이지만 부처님을 위해 쓰고싶습니다.
내일도 삼성병원에 시다림봉사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생명이 영가가 되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우리 삶의 연장일 뿐입니다. 그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
출처: 능인선원 (www.gotobuddh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