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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 정순복
민지는 얼마 전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이유도 없이 낯선 두 분의 아저씨가 오셔서 누가 민지를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면서 민지를 끌고 가려 할 때, 민지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쓰다 깨어보면,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자신은 그저 꿈을 꾸었던 것뿐이었다.
똑같은 꿈을 밤마다 꾸는 것이 이상했다.
민지는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도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누웠다.
모든 만물이 고요히 잠든 이 시간에 풀벌레 소리만이 고요한 적막을 깨우려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민지가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잠에 들고 있을 때, 누군가 민지의 방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
“누구세요?”
대답이 없었다.
“누구세요?”
밖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민지는 이상해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집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방에 들어와 괘종시계를 보니 새벽 2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민지는 잘못 들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잠자리에 누우려 하는데,
“똑 똑 똑.”
“누구세요?”
“…….”
“똑 똑 똑.”
민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누 누 누구세요?”
“…….”
“이 늦은 밤에 누구세요?”
하고 방문을 확 열었으나 아무도 없었다.
다시 한번 집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늦은 밤에 누가 왔다 갔을까’하는 생각에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민지가 잘못 들은 것이라고 하기엔 노크 소리가 너무도 크고 정확했다.
그런데.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정확하게 새벽 2시 40분이 되면 민지의 방문을 두드리곤 하는 것이다.
민지는 처음과 두 번째는 아무 생각 없이 밖으로 나가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세 번째는 덜컥 겁이 났다.
무섭고 불안한 생각이 뇌리를 흔들고 있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이상하고 끈적이는 그 무언가 민지의 가슴을 조이며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민지는 오빠인 창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때마침 한여름이라 시골에 크게 할 일이 없어 창수는 민지를 도와줄 수가 있었다.
무더운 여름밤이라 민지와 창수는 방문을 열고 문에 발을 쳐 놓았다.
여치 우는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고요의 적막을 요란하게 흔들어 깨운다.
밤이 깊어 가면 갈수록 풀벌레 소리는 북을 두드리듯 민지의 마음까지 두드리고 있었다.
민지는 오빠와 함께 방에서 숨소리도 죽이고 발자국 소리가 나는지 밖의 동정을 살피다가 피곤에 지쳤는지 먼저 잠이 들고 말았다.
여름밤이라 그런지 달빛이 유난히도 밝았다.
정각 2시 40분이 되자,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고, 문발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비추었다.
창수는 민지가 잠든 것을 모르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밖에 누가 왔어.”
“…….”
민지는 기척이 없었다.
창수는 그제야 민지가 잠든 것을 알고 민지를 건드려 깨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왜 그래?”
하고 민지는 큰소리로 귀찮다는 듯 돌아눕는다.
순간 방을 엿보고 있던 밤 그림자는 신발을 벗어들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창수가 밖으로 나와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민지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도둑질을 하러온 사람이라면, 낮에는 항상 문을 잠그지 않고 출근을 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도둑질을 해갈 수도 있었다.
민지를 납치하러 온 사람들이라면 또한 얼마든지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처음에 문을 두드릴 때 민지는 어두운 밤 혼자 겁 없이 집 주위를 한바퀴씩 돌았었다. 그때 충분히 납치할 수가 있었는데도, 왜 밤이 되면, 그것도 깊은 밤 2시40분에 문만 두드리는 것일까?
민지가 지금 지내고 있는 곳은 작은집으로, 작은집은 시내의 변두리에 있는 비닐하우스 집이었다.
집 앞에는 아주 넓은 파밭이 있고 파밭 앞에는 전자 회사인 ‘행운전자’ 라는 커다란 간판이 보이고, 파밭 옆에는 돼지를 기르는 돼지막이 있었다.
한쪽 옆엔 넝쿨인 포도밭이 있었고 또 다른 옆은 민지의 사돈집과 푸름을 자랑하는 논이 있었고 뒤쪽엔 한 가구의 동네 어른이 살고 계셨다.
조금 떨어진 동네에서 저마다 돼지 막에 있는 총각들이 민지를 좋아하기에 밤마다 민지의 방문을 두드린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래서 민지와 창수도 혹시나 돼지 막의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지기도 했다.
어제는 방문을 열어놓고 있었는데 오늘은 창수도 겁이 나서인지 방문을 잠그고 방문의 문고리에 드라이버까지 끼워 놓는다.
2시 40분이 다가오자 민지와 창수의 가슴은 뛰기 시작한다.
또다시 긴장되는 순간, 밖에서 살금살금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비닐하우스 집에 창호지로 창문을 만들어 놓은 것이 있었는데 오늘 저녁 창수는 밖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창문에 침을 살짝 발라 구멍을 내놓았다.
발자국 소리가 멈추자 밤 그림자는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창수가 뚫어놓은 구멍으로 살며시 방안을 들려다 보고 있다. 창수가 밤 그림자를 향해 찌르려는 순간, 민지가 겁이 나서인지 창수의 손목을 잡는다.
밖에서 눈치를 채곤 또다시 사라졌다.
밤을 꼬박 지새우고 어둠이 걷히기 시작할 때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민지는 창 밖을 보았다.
창밖을 보는 순간 민지는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오빠! 저기 파밭 건너편에 사람 있어.”
“그래. 사람이다. 이 새벽에 누가 이쪽을 보고 있다!”
집 앞의 넓은 파밭 건너편에서 어떤 사람이 우산을 들고 민지가 살고 있는 집을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창수와 민지는 억수같이 내리는 비 사이로 낯선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움직이지도 않고 굳어버린 동상처럼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동상처럼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면서도 무서움이 앞서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렇게 두 시간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날이 밝아지자 그 사람은 온데간데없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밤새 귀신에 홀린 것인지 아니면 잠을 못 자서 헛것을 본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혼자서 본 것이라면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는데 분명 창수와 민지, 민지의 사촌 동생과 함께 보았기 때문에 헛것을 본 것은 분명 아니었다.
민지는 날로 여위어가고 있었다.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던 민지는 회사에다 결근계를 내고 쉬기로 했다.
아침에 출근해 결근계를 내고 돌아와 그동안 지쳐있는 몸을 잠에 맡기고 오후 늦게 잠에서 깨어났다. 언제 비가 왔는가 싶을 정도로 맑은 하늘이 민지의 지친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다.
민지의 작은어머니께서는 걱정이 되어 안방에서 함께 잠을 자자고 하셨다.
민지의 작은아버님께서는 건축일을 하셔서 지방에 내려가 계시기 때문에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을 모르신다.
민지의 사촌 동생들과 함께 모두 한자리에 잠을 청했다.
모두 잠들었지만 창수와 민지 그리고, 민지의 사촌 동생인 창호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달빛의 그림자가 창문을 스쳐 무언가가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이었다.
모두 숨을 죽이고 눈만 크게 뜨고 창문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 검은 그림자 두 사람이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는가.
“누구야!”
하고 창수 자신도 모르게 용수철처럼 밖으로 퉁겨져 뛰어 나왔지만 그들은 온데간데없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오늘은 비가 온 뒤라서 밤 그림자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창수와 민지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또 그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출근 도장을 찍고 있는 것이다.
아침이 되어 마치 형사가 되어 수색하듯 집 둘레를 살펴보았다.
발자국은 돼지 막 쪽에서 온 발자국이었다.
틀림없이 돼지 막의 총각들이라고 생각하기엔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창호가 갑자기 비닐하우스 지붕 위에서,
“형, 형…….”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창수와 민지는 창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지붕 위에 흙이 묻은 발자국이 있었다.
한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또 무슨 단서가 있을까 싶어 여기저기를 살피고 있는데 돼지 막 부부가 민지에게로 다가오며,
“어제도 왔었지?”
“아줌마가 어떻게 아세요?”
“어제 우리 부부가 밤새 지켜보았는걸. 우리 집 앞을 건장한 두 사람이 지나가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무섭기도 했지만…… 아니 그것들이 말이여, 민지 오빠가 나오니까 파밭에 박스를 깔고 납작하게 숨을 정도로 훈련이 되어 있는 것 같았어.”
하시며 그들이 숨어있는 것을 보고서도 알려 줄 수가 없어서 안타까웠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듣고 창수와 민지는 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오빠! 우리 경찰에 신고하면 안 될까?”
“이런 일을 경찰에서 도와줄까?”
“도와 줄 거야. 도와주든 안 도와 주던 경찰에 신고하자. 응, 오빠!”
민지는 오빠에게 매달려 본다.
어떻게 하든 오늘은 밤마다 2시 40분이면 나타나는 밤 그림자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창수는 몸을 떨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아이디어를 생각해서 그대로 실천하기로 했다. 저녁 늦게 비닐하우스 지붕 위에 올라가서 밤 그림자를 기다리기로 했다.
민지는 저녁을 일찍 먹고 나서 저녁노을이 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저녁노을은 민지에게 희망과 낭만을 생각하게 했고 또한 삶에 있어 깨달음도 주며 아름다움에 행복까지도 얻어주던 노을이었다. 그런데 유난히도 오늘은 노을이 빛을 잃고 어둠 속에 묻히듯 서서히 힘을 잃고 어디론가 떠난다.
민지는 멍하니 푸른 파밭만 바라보고 서 있을 뿐이었다.
서서히 어둠이 밀려오자 파밭 건너편에서 살 속을 파고드는 휘파람 소리가 드렸다. 파밭 건너편에 ‘행운전자’ 라는 커다란 간판 앞에 희미한 두 사람의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길 가운데서 두 사람의 희미한 그림자는 파밭을 향해 사라져 버렸다.
파밭이 너무 커서 그림자는 누구인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머리가 하늘로 치솟고 살 떨림만이 근육을 진정시키려 애를 쓴다.
무더운 여름밤이라 바람 한 점 없는 잔잔함과 민지의 심장
소리만이 숨 가쁘게 뛸 뿐…….
“오빠! 창호야!”
민지는 다급하게 창수와 창호를 부르며 쓰러지듯 현기증을 느낀다.
“무슨 일이야?”
창수가 달려 나와 민지를 부추겼다.
“파밭 건너편에 두 사람이 휘파람으로 서로가 신호를 보내더니 파밭으로 사라졌어.”
“뭐라고. 정말이야? 창호야!”
창수와 창호는 비닐을 들고 숨 가쁘게 하우스로 된 지붕 꼭대기로 올라갔다.
한여름이라 모기가 너무 많아 비닐을 뒤집어쓰고 머리만 내놓고 밤 그림자를 기다렸다. 비닐을 쓰고 있어서 모기는 물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비닐 속에 있는 자신들의 몸이었다. 살이 무를 정도로 무더운 여름 날씨에 비닐을 쓰고 있는 자신들이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차라리 경찰에 신고를 할까 생각했었지만 이런 사소한 일에 도움을 줄까 하는 생각에, 자신들이 나서기로 한 것이다.
달은 점점 환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밤 그림자가 마치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듯이…….
시간이 다가오면 올수록 창수와 창호는 자신의 심장소리가 더 크게만 들려왔다.
밤 2시 40분이 되자 창수와 창호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자신들의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이게 웬일인가! 파밭 끝에서 하얀 소복 입은 사람이 보이는 것이다.
파밭을 재빨리 걸어오다 돼지 막 앞을 지나 민지의 방 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창수와 창호는 크게 뜬눈을 더 크게 뜨고 보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여자였다. 단발머리에 하얀 반소매 티셔츠. 치마는 하얀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였다.
단발머리 여자는 민지의 방 앞을 지나다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선다. 민지가 미리 검정 고무줄에 깡통을 매달아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 놓았었다.
“딸깍 딸깍…….”
깡통 소리에 잠시 뒷걸음질하다 다시 민지의 방문 앞에 섰다.
그런데, 더 놀란 것은 민지의 방 옆에 언제 왔는지 키가 큰 건장한 남자가 있는 것이다.
창수와 창호는 그들을 잡기 위해 얼른 하우스 지붕 위에서 내려와 살금살금 낮은 포복으로 기어 옆집의 사돈을 깨우고 그들을 포위했다.
그런데 또 이게 웬일인가 우리가 포위한 것은 민지의 작은 어머니께서 쓰레기를 버리려고 담아놓은 하얀 포대 자루를 포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포대 자루인 것을 확인하는 순간, 그들은 벌써 이곳을 떠난 뒤였다.
모두 지친 모습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건 귀신일까? 사람일까? 하얀 옷을 입은 여자만 봤다면 귀신을 보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키가 큰 남자를 본 것은 분명 사람이었다.
“카메라만 가지고 있었어도…….”
창수는 한숨을 내쉰다.
모두들 잠들었는데 민지와 창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민지가 오빠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오빠! 나 오늘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
창수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지 조심스럽게 민지에게 묻는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데?”
“오빠! 오늘밤에 나타난 사람들……. 친아버지가 보낸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들었어.”
“민지도 그런 생각을 했니? 나도 그런 느낌이 들었어.”
“여자가 나타나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안 했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왜 하필이면 하얀 옷을 입고 나타난 걸까?”
“아마 그건 달빛이 너무 밝으니까 땅에서 바라보면 달빛에 반사되어 잘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랬을 거야. 우리가 지붕 위에서 보았기 때문에 하얀 옷을 입은 것이 눈에 더 잘 띄었을 거야.”
“차라리 나에게 와서 말하면 되잖아. 왜 밤 2시 40분이면 나타나는지…….”
“글쎄 아버지가 아닐지도…….”
서로가 손을 꼭 잡았다.
민지의 눈에는 이슬이 맺힌다.
창수는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부르고 있었다.
‘차라리 친아버지가 우리 남매를 찾고 있었으면……. 아니 우리 앞에 자신 있게 나타나 주었으면……. 이렇게 가슴이 저며 오지는 않을 텐데…….’
이제 다시는 밤 그림자가 이곳에 나타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음날도 또 찾아와 민지의 방문을 두드린다.
민지는 더 이상 회사에 결근할 수 없어 출근하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부지런히 회사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아가씨! 아가씨!”
하고 민지를 부르는 것이다.
민지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키가 보통인 어떤 낯선 남자가 민지를 보더니,
“아가씨! 평산 회사에 다니지요?”
“아니에요. 안 다니는데요.”
민지는 그 회사를 다니지만 냉정한 어투로 말을 던지고 빠른 걸음으로 가던 길을 재촉하고 있는데 그 남자가 따라오면서,
“있다가 또 만날 거예요.”
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회사를 걸어가면서도 민지는 그 사람을 다시 만날까 두려워 부지런히 걸었다.
집과 회사의 거리는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이나 되는 거리였지만 어떻게 회사까지 왔는지 민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까 그 남자는 벌써 회사 앞에 와서 민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로 들어가는 민지를 보고는,
“평산 회사 안 다닌다고요?”
하고 그 남자가 묻는데 민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사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하루 종일 일을 하는데도 마음은 불안했다.
누구일까? 무엇 때문에…….민지는 힘이 들었다.
민지는 많은 생각 끝에 회사 기숙사로 들어가기로 했다.
민지가 기숙사로 들어간 이후에는 민지의 작은집에도 밤 그림자는 사라졌다고 했다.
대신 민지는 기숙사에서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기숙사 생활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민지는 그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직장으로 옮겼다.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차츰 사람들과 정들기 시작했다.
민지는 다행히도 동생과 함께 방을 얻어 자취를 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안심이 되는 것은 항상 동생과 함께 있다는 것과 자취하는 집이 민지와 자매처럼 지내는 숙이네 집이어서 민지는 더더욱 마음이 놓였다.
민지가 숙이네 집에서 자취한지 1년이 넘어서의 일이다.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갔는데 숙이 어머니께서는,
“민지야! 너 결혼한다면서. 기찬이 하고……. 민지한테 정말 서운하다. 어떻게 다른 사람한테 결혼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니?”
하시면서 서운한 마음을 꾸짖듯 말씀하셨다.
민지는 이상했다.
본인도 결혼이라는 것은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누구에게 결혼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숙이 어머니께서는 몹시 화가 나 계셨다.
민지는 자신도 모르는 일이라고 결혼하게 되면 제일 먼저 말씀드리겠노라고 말씀드리고 나서 민지는 누가 결혼한다고 그랬냐고 여쭈어 보았다.
옆에 서있던 숙이가
“언니! 어떤 모르는 아저씨 한 분이 오셔서 언니가 기찬이 오빠랑 결혼하느냐고 묻던데……. 그래서 아니라고 하면서 언니 조금 있으면 들어오니까 들어와 기다리라고 하니까 괜찮다고 하면서 그냥 갔어.”
“숙이가 아는 사람 아니야?”
하고 다시 물어 보았지만 숙이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하기에 민지는 앨범을 꺼내 보였다. 앨범에 있는 사람 중에 있느냐고 물어 보았지만 앨범 속엔 없는 사람이었다.
숙이의 식구들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왔기 때문에 숙이는 민지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대부분 다 알고 있었다.
민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말 결혼이라는 단어는 생각지도 않았었는데…….
그런 일이 있고 1년이 되었을까, 정말 거짓말처럼 자취 집에
찾아와서 남기고 간 낯선 아저씨의 말처럼 이상하게도 민지와 기찬 이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식의 날짜가 다가오면 올수록 민지는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결혼식 날 누군가가 나타날 것만 같은 생각이 민지를 붙들고 있었다.
그래서 민지는 오빠에게 결혼식 하는 날 누가 오는지 유심히 살펴달라고 미리 부탁을 했다.
민지의 결혼식 날.
많은 사람들이 민지를 축복해 주었다.
창수는 맨 뒤에서 이상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창수는 깜짝 놀란다.
단발머리를 하고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하얀 축의금 봉투를 들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창수가 다가서며,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하고 묻자,
“아- 아- 아니에요…….”
하고 말을 얼버무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창수는 아주머니를 찾아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잠깐 눈을 돌린 것이 실수였다.
결혼식이 시작되어 창수는 잠시 민지를 바라보고 서 있었는데,
“아이 예쁘다! 아이 예쁘다!”
아까 그 단발머리 아주머니께서 당황하시던 모습은 사라지고 편안한 얼굴로 창수 옆에 서서 연신 민지를 보고는 예쁘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 예쁘다고 하기에 창수는 잠깐 동안 민지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눈을 다시 돌렸을 때 그 단발머리 아주머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혹시나 밖으로 나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밖으로 뛰어나와
보았지만 이미 사라진 뒤였다.
진심으로 민지를 축하해 주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금방 사라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 실수였다.
창수는 생각했다.
‘단발머리. 밤 그림자. 파밭. 그래, 그때 그 사람일지 몰라. 그렇다면 그 사람이 혹시 고모님. 그래 고모님일지도 몰라.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모습이었어. 왜 그러면 그렇게 또 떠나야 했을까. 끝까지 축복해주고 가야지.’
창수는 소리 없이 눈물을 삼킨다.
민지가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결혼식 때 촬영한 비디오를 볼 수가 있었다. 혹시나 단발머리 아주머니께서 찍혔을까 비디오를 보면서도 단발머리만 찾아보았다. 그러나 단발머리 아주머니는 안개 속에 숨은 듯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결혼해서 민지는 작은집과 조금 떨어진 동네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신혼살림을 차린 지 2달쯤 되어서 민지는 뜻밖에 같은 시골에 살던 수환이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응, 너 민지구나. 반갑다.”
“오빠는 웬일이세요?”
“여기 가게에 잠깐 왔지.”
“집이 여기세요?”
“응, 집은 이 근처이고 회사는 여기 행운전자에 다니고 있어.”
“뭐라고요. 이 근처에 있는 행운전자 말이에요?”
“그래. 여기…….”
하며 손가락으로 행운전자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민지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때 일들이 민지를 수렁으로 밀어 넣는 듯이 힘이 짝 빠진다.
“…….”
민지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수환이가,
“결혼 축하한다.”
“고마워요, 오빠.”
“민지 이곳에서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못 가봐서 미안하다. 호성이 오빠는 수원에 있다…….”
민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지나간 파밭과 행운전자가 앞을 가로막는 듯했다.
호성이는 민지를 너무도 좋아했었다. 그러나 민지는 호성이를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고 같은 동네의 오빠라고 생각하며 지내 왔는데 호성이는 민지를 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성으로 좋아했던 것이다.
호성이의 성격은 한번 한다면 하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왜 수환이는 호성이의 소식을 묻지도 않았는데 가르쳐 주는 것이며 또 호성이와 제일 친한 친구인 수환이가 그 무서웠던 파밭 건너편 행운전자에 다니고 있다니 민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그때 밤 그림자는 호성이와 수환이였단 말인가?
아니다. 그들이었다면 창수가 모를 리 없다. 창수의 2년 선배인 그들의 모습을 모를 리 없을 것이고…….
민지는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호성이 오빠는 수원에 있다…….’
민지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파밭에 나타난 단발머리. 결혼식에 나타난 단발머리 아주머니와 행운전자. 모든 것이 무슨 의미를 주는 것인가.
그때 그런 일들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어 민지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