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5일 '환경의 날'에 맞춰 발간된 포스코의 지속가능보고서/ 포스코
지난해 전세계 기업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넷제로’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2050년 탄소중립이 대부분이지만, 일부 기업은 2022년(넷플릭스) 혹은 2040년(월마트)으로 더 과감한 목표를 제시했다. 지금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한 국가는 120여개국, 기업은 420여개 정도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은 글로벌의 탄소중립 선언(Carbon neutral Commitment) 흐름을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탄소중립 과정이 험난할 뿐 아니라,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음을 알기 때문에 ‘먼저 나서서 고생하지 말자’는 암묵적 공감대가 형성된 게 그 원인이었다.
그 와중에 지난해 12월 포스코가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포스코?” 하는 물음표가 상당수 관계자들의 첫 반응이었다. 포스코는 대한민국에서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기업이다. 2019년 8050만톤을 배출했는데, 이는 전체 배출량의 11%가 넘는다. 철강은 1톤 생산할 때마다 이산화탄소 2톤을 발생시킨다. 탄소중립이 가장 어려운 철강업체에서 어떤 로드맵을 갖고 탄소중립을 하겠다는 것일까.
지난주 포스코는 올해 지속가능보고서의 첫 스타트를 끊으며, ‘2020 기업시민보고서’ 발간을 알렸다. 이용자 접근이 쉽도록 반응형 웹PDF 형식을 이용했고, ESG 데이터만을 따로 모아 놓은 ‘ESG Factbook’을 발간하는 등 글로벌 톱 기업들의 최근 지속가능보고서 트렌드를 발빠르게 도입했다. 포스코 지속가능보고서 리뷰, 포스코 기업시민실 ESG그룹 관계자들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포스코의 2050 탄소중립은 어떻게 가능할지’, 그 스토리를 들여다봤다.
2030년 온실가스 20% 감축, 어떻게 하나
2020년 12월 11일, 포스코는 이사회 의결을 거쳐 ‘2050 탄소중립’을 공식 발표했다. 2030년까지 20%를, 2040년까지 절반인 50%를 감축한다는 로드맵이다. 포스코에선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티센크루프, 아르셀로미탈 등 글로벌 철강기업은 2030년까지 30%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아시아 철강기업 중 최초로 탄소중립을 선언한 우리에겐 20% 감축이 매우 과감한 목표”라고 설명했다.
포스코의 2050 탄소중립 로드맵/포스코 지속가능보고서
10년내 20%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업장 감축 10%, 사회적 감축 10%를 병행하는 전략을 세웠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업장 감축을 위해 ▲제선 Coal(철강을 만들 때 사용하는 석탄 코크스) 사용량 저감 ▲자가발전 효율 향상 ▲부생가스(제철공정에서 발생하는 폐가스) 방산량 최소화 등 에너지 효율향상, ▲철스크랩(고철) 사용 확대 등 저탄소 연료 대체 등을 1단계로 추진한다. 이렇게 사업장 10% 감축분만 해도 788만톤이다.
사회적 감축을 위해서는 ▲저탄소 제품 공급 ▲부산물 자원화 확대 ▲이차전지소재(리튬, 양극재, 음극재) 공급 확대 등을 위해 노력키로 했다. 예를 들어 기존 자동차 강판 대비 0.6톤의 탄소를 추가 감축할 수 있는 고효율 전기강판을 판매하거나, 제철 부산물로 발생하는 고로 슬래그를 활용해 자원순환형 슬래그시멘트를 만드는 등의 방법이 그것이다. 이렇게 794만톤 가량을 줄일 방침이다.
‘ESG 10대 핵심이슈’, 어떻게 관리하나
포스코 지속가능보고서에 소개돼있는 'ESG 핵심 이슈 및 대응 현황' 표. 정량적 목표와 KPI, 달성현황 등이 한눈에 담겨있다/ 포스코 지속가능보고서
포스코는 이번 보고서에서 ‘ESG 10대 핵심이슈와 대응현황’이라는 한 페이지 표를 삽입했다. 글로벌 ESG 리더기업의 경우 대부분 달성 목표와 KPI, 달성현황(progress)을 담은 한두 페이지 팩트시트(fact sheet)가 지속가능보고서에 담겨있다. 국내기업 보고서의 경우 팩트시트도 없을 뿐 아니라 있더라도 정량적 목표나 달성현황을 담지 않은 것이 대다수다. ESG그룹 관계자는 “10~20년 후 재무제표에 담길 수 있는 데이터가 무엇인지 분석한 후, 170여개 내부데이터를 뽑아냈고, 가치 있는 데이터를 3년째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표를 보면, 포스코의 중장기 방향이 일부 잡힌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현행 788만톤(3년 평균)에서 2023년까지 750만톤으로 감축하고, 양·음극재를 현재 8억9000톤에서 24억5000톤으로 확대하며, 리튬·니켈의 경우 현재 생산준비단계이나 3년 후 10억톤으로 생산할 계획이다. 또 6개 친환경시장(친환경차, 경량차체, 풍력, 태양광, LNG, 수소)과 관련, 22개 세부아이템별로 판매량을 240만톤에서 2023년까지 332만톤으로 높일 방침이다. 부산물 자원화의 경우 이미 현재에도 98.8%나 진행돼 있어 98.9%로 확대한다. ESG그룹팀에선 “ESG 목표 및 KPI 설정을 위해서는 포항, 광양의 현장 기술팀을 비롯한 타부서와의 협업과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포스코의 탄소중립 방향은 결국 ▲저탄소 철강 ▲이차전지 소재산업 ▲수소(LNG)라는 세 축으로 좁혀진다.
탄소중립 거버넌스, 어떻게 구성했나
포스코 이사회 구성표. 2021년 'ESG위원회'를 신설했다./ 포스코 지속가능보고서
수많은 이행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ESG 거버넌스가 필수적이다. 국내 대기업들은 2021년 초 너도나도 ‘ESG위원회’부터 경쟁적으로 신설해놓고, ESG위원회의 역할 및 목표를 뒤늦게 설정하느라 분주하다. 내재화를 위한 실행조직을 탄탄히 한 후, 필요할 경우 이사회 산하 ‘지속가능위원회’를 신설하거나 아니면 기존 위원회에 신규로 ‘ESG 혹은 지속가능경영’ 의사결정을 위임하는 글로벌 기업들과 정반대다.
포스코는 탄소중립 거버넌스를 어떻게 구축했을까. 보고서에 따르면, 핵심실무 조직은 안전환경본부와 생산기술본부 두 축이다. 안전환경본부 산하에 환경기획실을 두고, 탄소중립환경그룹, 부산물자원화그룹, 친환경컨설팅지원단을 배치하고 있다. 환경기획실은 회사의 에너지환경 전략 및 지표 수립, 전사 차원의 온실가스 배출목표 이행, 자원 및 부산물의 활용과 수익창출 등 각종 기후변화 대응 전략을 실행하는 조직이다. 생산기술본부는 탄소중립 기술 로드맵을 수립, 이행하는 역할을 맡는다.
탄소중립 관련 중요 의사결정은 이사회와 경영위원회에서 이뤄진다. 2020년 5월 탄소배출권 매매, 8월 기후행동보고서 발간, 2050년 탄소중립 비전 선포 의사결정이 이뤄졌다.
CEO 주재로 그룹운영회의(연 4회), 철강부문장 주재 의사운영회(연8회)에서 온실가스 배출 목표 달성 여부를 보고 및 관리한다. CEO를 포함한 본사 경영진과 사업장의 KPI를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량 및 원단위를 설정해 관리한다.
또 철강부문장 주재로 생산기술본부장, 안전환경본부장 및 산하 임원이 참여하는 ‘저탄소친환경 카운슬(위원회)’를 분기별 1회 운영한다. 이곳에서 저탄소 친환경 전사 목표 이행을 점검하고, 기후변화 관련이슈와 정책동향 등을 보고 및 논의한다.
포스코는 특히 “투자관리 규정에 신규 투자사업 의사결정 시,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 등 환경 리스크가 예상되는 사업은 환경기획실과 협의과정을 거치도록 명시하고 있다”며 “투자 검토 시에도 배출량 증가에 따른 탄소 비용을 반영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탄소중립 기술, 어디까지 왔나
최근 철강업체 티센크루프는 독일 뒤스부르크에서 2025년까지 친환경 직접환원철(DRI) 공장을 완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직접환원철은 철광석에서 산소를 제거한 철원으로, 석탄 대신 천연가스를 사용해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다. 티센크루프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30% 감축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글로벌 철강업체들은 지금 저탄소 기술 전쟁에 돌입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의 아르셀로미탈, 중국 바오우철강, 일본제철 등도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으며, 아르셀로미탈은 484억 달러(약 53조 5788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탄소포집 및 저장(CCUS), 수소 등 다양한 형태의 기술들이 총동원되는 형국이다.
포스코의 최종목표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이다.
“용광로에 철광석과 석탄을 넣어 1500도 이상의 고온에서 녹이면 일산화탄소(CO)가 발생한다. 이때 철광석(Fe2O3)으로부터 산소를 분리시키는 환원반응(Fe2O3+3CO → 2Fe+3CO2)이 일어나는 데, 이 과정에서 CO2가 발생한다. 수소환원제철은 일산화탄소 대신 수소(H2)가 철광석(Fe2O3)에서 산소를 분리시키는 환원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포스코 지속가능보고서)
수소환원제철 기술이 구현 되면 석탄과 철광석을 한 데 녹이는 고로 공정이 없어진다. 대신 수소 환원을 통해 생산한 직접환원철(DRI)을 전기로에서 녹이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다. 포스코는 고유의 제선기술인 파이넥스 공정을 기반으로, 포스코형 수소환원제철 기술 ‘하이렉스(HyREX, Hydrogen Reduction)’를 개발중이라고 한다.
결국 문제는 ‘수소’ 기술이다. 포스코는 10년 내 100만톤 규모의 하이렉스(HyREX) 시험플랜트 가동을 시작으로, 2050년까지 수소환원제철 생산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ESG 그룹 관계자는 “포스코는 수소 이용기술로는 세계 1위에 필적할 정도로 기술력이 뛰어나다”며 “그린수소와 저탄소 기술 개발은 기업 한 곳에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 R&D 및 인프라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탄소중립, 앞으로의 과제는?
포스코는 2020년 3월 TCFD 지지 선언을 하고, 12월에는 TCFD 권고안을 반영한 ‘기후행동보고서’를 발간해 탄소 저감 목표를 공개했다. 2022년까지 1조500억원 규모의 환경 개선 투자도 진행중이다.
일단, 글로벌 투자자그룹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지난해 포스코는 ‘클라이밋 액션(Climate Action, CA) 100+’로부터 2050 넷제로 계획을 요구하는 편지를 받았다. CA 100+는 블랙록,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 등 500개 이상의 기관투자자들이 가입한 그룹으로,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을 모니터링한다. 국내기업으로는 한전, 포스코, SK이노베이션이 모니터링 대상이다.
최근 CA 100+에서는 벤치마크 기업들의 에너지 전환을 평가했는데, 포스코는 “단기목표 설정이 부족하지만, 이 계획대로라면 2050년 탄소중립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는 평가를 받았다.
CA 100+에서 최근 발간한 넷제로 이행계획에 대한 모니터링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포스코는 단기목표 설정 및 자본재할당 등의 이슈 현안을 해결할 경우 2050년 탄소중립 계획이 이뤄질 것"으로 예측했다.
포스코 ESG그룹팀 관계자는 “포스코가 2018년 ‘기업시민’을 새로운 경영이념으로 발표하고, 2019년에 기업시민헌장을 발표했으며, 2020년 1월에 기업시민실 산하에 ESG그룹을 만들었다”며 “처음 기업시민 이야기를 하자 노조에서는 ‘또 누구한테 퍼주려고 그러느냐’고 반발했지만, ‘제철보국’에서 ‘기업시민’으로 바뀐 경영이념을 꾸준히 내부구성원들에게 내재화시키는 전략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물론 어려움도 많다. 탄소중립이 공짜가 아니라는 사회 전반의 인식이다. 탄소와 원가를 동시에 줄여야 하는 어려운 과제인데다, 원가를 줄이는 것은 익숙한 반면 탄소를 줄이는 데는 익숙하지 않다.
글로벌 해결과제도 있다. 탄소제품별 표준화다. 온실가스 배출 측정기준만 해도 광양제철소의 배출량 측정기준과 EU의 배출량 측정 기준이 다르다고 한다.
일본 산업성의 경우 온도상승 2도, 3도, 4도 시나리오별 가이드라인이 있을 만큼,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 지원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한다. ESG그룹팀 관계자는 “TCFD 기준에 맞고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우리는 ‘국제에너지기구(IEA) Sustainable Development Scenario(SDS) 기준의 1.8도 상승에 근거해서 기후변화의 영향을 예측, 이를 숫자화했는데 쉽지 않았다”며 “올해 그린 어카운팅 섹션(팀)을 신설해, ESG와 탄소로 인한 재무적 영향을 측정하고 화폐화하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설명했다. ESG그룹팀에선 “기업의 ESG 및 기후관련 정보공개의 명확한 지표와 범위 마련이 필요하며, 이러한 공개를 통해 지속가능금융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는 등 인센티브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결국 중요한 것은 투자자나 고객사의 ESG 요구에 대한 대응이 아니다. 10년, 20년 후에도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기업 스스로 찾는 것, 그것이 바로 ESG 경영일 것이다. 포스코의 길을 지켜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출처 : IMPACT ON(임팩트온)(http://www.impact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