婆娑尼師今立 儒理王第二子也[或云 儒理弟柰老之子也] 妃 金氏史省夫人 許婁葛文王之女也 初 脫解薨 臣僚欲立儒理太子逸聖 或謂 逸聖雖嫡嗣 而威明不及婆娑 遂立之 婆娑節儉省用 而愛民 國人嘉之
파사 이사금(婆娑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
유리왕(儒理王)의 둘째 아들이다.[혹은 유리의 아우 나로(柰老)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왕비는 김씨 사성부인(史省夫人)으로, 갈문왕 허루(許婁)의 딸이다.
앞서 탈해가 돌아가셨을 때 신하들은 유리의 태자 일성(逸聖)을 왕위에 오르게 하려 하였다. 그러나 누군가가 말하기를 “일성이 비록 맏아들이기는 하지만 위엄과 현명함이 파사에 미치지 못하다.”고 하여, 마침내 파사를 왕위에 오르도록 한 것이다.
파사는 절약하고 검소하며 물자를 아꼈고, 백성을 사랑하였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였다.
■81년 二年 春二月 親祀始祖廟. 三月 巡撫州郡 發倉賑給 慮獄囚 非二罪 悉原之
2년 봄 2월, 임금이 몸소 시조묘에 제사를 지냈다.
3월, 임금이 주와 군을 두루 살펴보며 창고를 풀어 백성들을 구제하고, 감옥에 갇힌 죄수를 살피어 두 가지의 사형 죄에 해당하는 자가 아니면 모두 풀어주었다.
■82년 三年 春正月 下令曰 今倉廩空匱 戎器頑鈍. 儻有水旱之災 邊鄙之警 其何以禦之. 宜令有司 勸農桑 練兵革 以備不虞
3년 봄 정월, 명령을 내렸다. “지금 나라 창고가 비었고 병기는 무디어졌다. 혹시라도 홍수나 가뭄이 생기거나 변방에 변고가 생기면 어떻게 막아내겠는가? 마땅히 관리들에게 농사와 양잠을 권장하도록 하고 병장기를 벼리어 의외의 일에 대비하도록 하라.”
■84년 五年 春二月 以明宣爲伊飡 允良爲波珍飡 夏五月 古陁郡主 獻靑牛. 南新縣麥連歧. 大有年 行者不齎糧
5년(서기 84) 봄 2월, 명선(明宣)을 이찬으로, 윤량(允良).을 파진찬으로 삼았다.
여름 5월, 고타(古陁) 군주가 푸른 소를 바쳤다. 남신현(南新縣)에서는 하나의 보리 이삭에 여러 가닥이 생겨났다.
크게 풍년이 들어서 여행하는 사람들이 식량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고타 : 경상도 안동부(安東府)의 신라 때 이름.
■85년 六年 春正月 百濟犯邊 二月 以吉元爲阿飡. 夏四月 客星入紫微
6년(서기 85) 봄 정월, 백제가 변경을 침범하였다. 2월, 길원(吉元)을 아찬으로 삼았다. 여름 4월, 객성이 자미(紫微)성좌에 들어갔다.
■87년 八年 秋七月 下令曰 朕以不德 有此國家 西隣百濟 南接加耶 德不能綏 威不足畏 宜繕葺城壘 以待侵軼 是月 築加召馬頭二城
8년(서기 87) 가을 7월, 임금이 명을 내렸다. “내가 덕이 없는데도 나라를 맡았다. 우리나라는 서쪽으로는 백제를 이웃하고 남쪽으로 가야와 닿아있다. 나의 덕망은 백성들을 편안히 살게 하지 못하고, 위엄은 그들로 하여금 두렵도록 하기에 부족하니, 성과 보루를 수리하여 침략에 대비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이달에 가소성(加召城)과 마두성(馬頭城)을 쌓았다.
*서쪽으로 백제와 인접하고 남쪽으로 가야(육가야 중 함창가야)와 닿아 있는 백두대간 소백산~덕유산 사이의 공간이 신라 영역
*가소성 : 경북 거창 부근으로 비정. ▶백제를 견제하기 위해 축성
*마두성 : 馬頭 지명이 牛頭 지명으로 전환되었다는 가설은? ▶가야를 견제하기 위해 축성. 고개마루라는 의미 함축.
■90년 十一年 秋七月 分遣使十人 廉察州郡主 不勤公事 致田野多荒者 貶黜之
11년(서기 90) 가을 7월, 열 명의 사신을 나누어 파견하여 주주와 군주들을 조사하고, 공무에 성실하지 않거나 밭과 들을 많이 황폐하게 한 자가 있으면 관직을 아래로 내리거나 파면하게 하였다.
■93년 十四年 春正月 拜允良爲伊飡 啓其爲波珍飡 二月 巡幸古所夫里郡 親問高年 賜穀. 冬十月 京都地震
14년(서기 93) 봄 정월, 윤량(允良)을 이찬으로 삼고, 계기(啓其)를 파진찬으로 삼았다. 2월, 임금이 고소부리군(古所夫里郡)에 행차하여 나이 많은 백성을 몸소 위문하고 곡식을 주었다. 겨울 10월, 서울에 지진이 있었다.
*고소부리군 : 전북 정읍으로 비정. 고소부리군에 있는 같은 동족 방문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경도 : 석씨 부족이 떠나온 원지역을 의미
■94년 十五年 春二月 加耶賊圍馬頭城 遣阿飡吉元 將騎一千 擊走之. 秋八月 閱兵於閼川
15년(서기 94) 봄 2월, 가야의 적군이 마두성을 에워싸자, 아찬 길원을 보내어 기병 1천을 거느리고 격퇴하게 하였다. 가을 8월, 알천(閼川)에서 군대를 사열하였다.
*알천 : 특정한 지명이 아니라 북쪽에서 발원한 시내라는 의미.
■96년 十七年 秋七月 暴風自南 拔金城南大樹. 九月 加耶人襲南鄙 遣加城主長世拒之 爲賊所殺 王怒 率勇士五千出戰 敗之 虜獲甚多
17년(서기 96) 가을 7월, 남쪽에서 폭풍이 불어와 금성 남쪽의 커다란 나무가 뽑혔다. 9월, 가야 사람들이 남쪽 변경을 습격하였다. 가성(加城) 성주 장세(長世)를 보내 방어하게 하였으나, 적에게 살해당하였다. 임금이 노하여 용맹한 병사 5천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그들을 물리치고 많은 포로를 붙잡았다.
■97년 十八年 春正月 擧兵欲伐加耶 其國主 遣使請罪 乃止
18년(서기 97) 봄 정월, 병사를 일으켜 가야를 정벌하려 하였으나, 가야 임금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였으므로 중지하였다.
■98년 十九年 夏四月 京都旱
19년(서기 98) 여름 4월, 서울에 가뭄이 들었다.
■100년 二十一年 秋七月 雨雹 飛鳥死 冬十月 京都地震 倒民屋 有死者
21년(서기 100) 가을 7월, 우박이 떨어져 날아가던 새가 죽었다. 겨울 10월, 서울에 지진이 일어나 민가가 쓰러지고 죽은 이가 생겼다.
< 이상 북부 사벌국의 기록으로 보임>
■101년 二十二年 春二月 築城 名月城 秋七月 王移居月城
22년(서기 101) 봄 2월, 성을 쌓고 월성(月城)이라 이름 지었다. 가을 7월, 임금이 월성으로 옮겨 살았다.
■102년 二十三年 秋八月 音汁伐國與悉直谷國爭疆 詣王請決. 王難之 謂金官國首露王 年老多智識 召問之. 首露立議 以所爭之地 屬音汁伐國 於是 王命六部 會饗首露王 五部皆以伊飡爲主 唯漢祇部 以位卑者主之 首露怒 命奴耽下里 殺漢祇部主保齊而歸 奴逃 依音汁伐主陁鄒干家 王使人索其奴 陁鄒不送 王怒 以兵伐音汁伐國 其主與衆自降 悉直押督二國王來降 冬十月 栱李華
23년(서기 102) 가을 8월, 음집벌국(音汁伐國)과 실직곡국(悉直谷國)이 국경 문제로 다투다가 임금에게 찾아와서 이를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임금이 어려워하다가 금관국(金官國) 수로왕(首露王)이 나이가 많고 아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하여, 그를 불러와 물었다. 수로가 의견을 내어 다투던 땅을 음집벌국에 귀속하게 하였다. 이에 임금은 6부에 수로왕을 위하여 연회를 베풀도록 명하였다. 5부는 모두 이찬으로 연회의 주인을 삼았는데, 오직 한기부(漢祇部)만은 직위가 낮은 자를 연회의 주인으로 삼았다. 수로가 노하여 그의 종 탐하리(耽下里)를 시켜 한기부의 우두머리 보제(保齊)를 죽이게 하고 돌아갔다. 종은 도망하여 음집벌국 우두머리인 타추간(陁鄒干)의 집에 의탁하였다. 임금이 사람을 보내 그 종을 찾았으나 타추는 돌려 보내지 않았다. 임금이 노하여 병사를 일으켜 음집벌국을 공격하니, 그 우두머리가 무리와 함께 스스로 항복하였다. 실직(悉直) 압독(押督) 두 나라 임금도 와서 항복하였다. 겨울 10월, 복숭아와 오얏나무 꽃이 피었다.
*음즙벌국音汁伐國 : 경북 안강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
*실질곡국 : 강원도 삼척지방에서 영덕 지방까지 걸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동해시 송정리 유적이 실직국 관련 유적으로 추정. 동해안을 따라 북쪽 강릉시의 동예, 남쪽 울진군의 파조국과 함께 창해삼국(滄海三國)으로 불렸다.
■104년 二十五年 春正月 衆星隕如雨 不至地. 秋七月 悉直叛 發兵討平之 徙其餘衆於南鄙
25년(서기 104) 봄 정월, 운석이 비오듯 떨어졌으나, 땅에 이르지는 않았다. 가을 7월, 실직이 배반하자 병사를 보내 토벌하여 평정하고, 남은 무리를 남쪽 변경으로 옮기도록 하였다.
■105년 二十六年 春正月 百濟遣使請和 二月 京都雪三尺
26년(서기 105) 봄 정월, 백제가 사신을 보내 화해를 요청하였다. 2월, 서울에 눈이 석 자나 내렸다.
■106년 二十七年 春正月 幸押督 賑貧窮. 三月 至自押督 秋八月 命馬頭城主 伐加耶
27년(서기 106) 봄 정월, 임금이 압독에 행차하여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3월, 압독으로부터 돌아왔다. 가을 8월, 마두성주(馬頭城主)에게 명령하여 가야를 정벌하라 하였다.
■108년 二十九年 夏五月 大水 民飢 發使十道 開倉賑給 遣兵伐比只國 多伐國草八國幷之
29년(서기 108) 여름 5월, 홍수가 나서 백성들이 굶주리므로 10도에 사자를 보내 창고를 열어 구제토록 하였다.
병사를 보내 비지국(比只國), 다벌국(多伐國), 초팔국(草八國)을 정벌하여 병합하였다.
■109년 三十年 秋七月 蝗害穀 王遍祭山川 以祈禳之 蝗滅 有年
30년(서기 109) 가을 7월, 메뚜기떼가 곡식을 해쳤다. 임금이 산천에 두루 제사를 지내어 기원하자 메뚜기떼가 없어지고 풍년이 들었다.
■111년 三十二年 夏四月 城門自毁 自五月 至秋七月 不雨
32년(서기 111) 여름 4월, 성문이 저절로 무너졌다. 5월부터 가을 7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았다.
■112년 三十三年 冬十月 王薨 葬蛇陵園內
33년(서기 112) 겨울 10월, 임금이 돌아가셨다. 사릉원(蛇陵園)에 장사 지냈다.
[네이버 지식백과] 파사 이사금 [婆娑尼師今]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김부식, 박장렬, 김태주, 박진형, 정영호, 조규남, 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