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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복음서의 열두제자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타대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루가복음 6장, 12-16]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신 다음,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마르코복음 3장,13-19]
1. 시몬과 유다 [교리상식]
시몬과 유다는 성경의 열두 사도 명단에서 열 번째나 열한 번째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나옵니다. 이번 호에는 시몬과 유다에 대해 알아봅니다.
시몬
시몬은 열두 사도 명단에서 '열혈당원'으로 소개됩니다(마태 10,4 ; 마르 3,18 ; 루카 6,15 ; 사도 1,13). 열혈당원은 당시 이스라엘을 식민통치하던 로마제국에 맞서 무력으로 이스라엘의 자주 독립을 꾀하던 이들을 일컬었지요.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들이 한결같이 시몬을 열혈당원이라고 소개한 것을 보면 시몬은 예수님께 제자로 부름 받기 전에 이 민족주의 운동에 가담했던 것 같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구별하기 위해 이름 앞에 '열혈당원'이라는 별칭을 붙였을 수도 있습니다만, 별칭을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시몬이 열혈당원으로 활동했음을 확인해주는 표시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열두 사도 명단 외에는 시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다른 대목에서 시몬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기도 합니다만 그는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 형제인 시몬입니다(마태 13,55 ; 마르 6,3). 따라서 애석하게도 사도 시몬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다만 시몬 역시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예수님께 부름을 받았다는 전승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께서 첫 기적을 행하신 카나 혼인잔치의 주인공 신랑이었다는 설도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 탄생 소식을 천사에게서 전해들은 목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6세기쯤에 유포된 「시몬과 유다 수난기」 같은 위경에 따르면, 시몬은 소아시아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톱질로 몸이 잘리는 형을 받아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래선지 시몬 사도의 상이나 그림은 톱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책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하는데 이것은 시몬의 율법에 대한 열정을 나타낸다고 하지요. 열혈당원이라는 말 자체에 열정이 담겨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시몬 사도 축일은 10월 28일에 지냅니다.
유다
유다는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로 나옵니다(루카 6,16 ; 사도 1,13). 반면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에서는 타대오라고 부르지요(마태 10,3 ; 마르 3,18). '다두'라는 세례명은 이 타대오를 한자식으로 표기해서 부른 것입니다.
복음서들에서는 이렇게 유다와 타대오로 이름이 달리 표기돼 있을까요. 어쩌면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의 저자들은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을 혼동하지 않도록 일부러 타대오라고 기록했을지 모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유다의 그리스식 이름이 타대오라는 설도 있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한 사람이 두 가지 이름을 갖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에 이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교회 전통은 초기부터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타대오를 같은 인물로 여겨왔습니다.
성경에서 열두 사도 명단 외에 이 유다의 이름이 나오는 곳이 딱 한 군데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2절로, "유다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라고 나오지요. 이 표현으로 미뤄 초기 교회에서도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유다 이스카리옷을 구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가톨릭 전통은 오랫동안 이 유다가 유다 서간을 쓴 저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야고보의 동생인 유다"(유다 1,1)와 동일인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이 유다는 예수님의 형제인 셈입니다. 마르코복음 6장 2절에서는 예수님에 대해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하고 예수님의 고향 나자렛 사람들이 말하는 대목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들은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유다서 저자이자 예수님의 형제라는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열두 사도의 하나로 야고보의 아들이자 타대오라고도 불리는 유다에 대해서도 더 확인할 길이 없는 셈입니다. 하지만 전승이나 전설에 따르면 유다는 시몬과 함께 열혈당원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또 위경인 「시몬과 유다의 수난기」에서는 유다가 시몬과 함께 소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으며 페르시아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시몬이 톱질로 순교당한 데 비해 유다는 창에 찔려 순교했거나 또는 도끼로 참수형을 당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다 사도는 창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는 유다 사도 축일을 시몬과 같은 날인 10월 28일에 지내는데, 이 또한 시몬과 유다가 함께 활동하고 순교했다는 전승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화신문, 2008년 9월 7일, 이창훈 기자]
2. 유다 이스카리옷 [교회상식 교리상식]
이번 호에는 예수님을 팔아 넘긴 배반자 유다 이스카리옷에 대해 알아봅니다.
출신
성경에서는 유다 이스카리옷이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라는 것과,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것, 그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것 외에는 그에 관한 별다른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어디 출신인지, 어떻게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됐는지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다만 요한복음에서는 그를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6,71; 13,26)이라고 부르는데, 이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몇 가지 견해가 있어 왔습니다. 우선, 이스카리옷은 히브리어로 '카리옷 사람'이란 뜻을 지니는데, 카리옷은 유다 지방에 있는 도시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여호수아기 15장 25절에는 유다 지파의 성읍 가운데 하나라 크리욧 헤츠론이 나오는데 이 크리옷과 카리옷이 같은 곳이라는 견해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유다 이스카리옷은 다른 제자들과 달리 갈릴래아가 아닌 유다 지방 출신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카리옷이 '자객'을 뜻하는 그리스말 '시카리오스'(σικαριοs)와 관련된다고 보아, 유다가 자객 활동을 한 집단, 곧 당시에 로마 제국에 맞서 무력으로 독립을 쟁취하려 했던 젤롯당원의 일원이 아니었을까 하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 지방 카리옷 출신이라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는 것 같습니다.
배반
왜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했을까요?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은 배반과 관련해 유다 이스카리옷이 주도적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보도합니다. 유다가 수석 사제들을 찾아가 예수님을 넘겨주는 대가에 대해 흥정을 하는 점이 그렇습니다(마태 26,14-16 ; 마르 14,10-11).
그런데 이 두 복음은 유다의 배신 기사 바로 앞에 어떤 여자가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렸다는 기사를 전하고 있습니다(마태 26,6-13; 마르 14,3-9).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붓는 것을 본 제자들(마르코복음에서는 '몇 사람')이 불평을 하지요. 그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는 게 더 좋지 않느냐는 겁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내용을 전하는 요한복음(12,1-8)에서는 여인의 행위에 불평하는 사람이 여러 사람(제자들 또는 몇 사람)이 아니라 유다 이스카리옷 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게다가 요한복음의 저자는 유다가 불평한 것은 그가 도둑이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사도들의 돈주머니를 맡고 있는 경리로서 평소에도 틈틈이 돈을 빼돌리곤 했다는 것입니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을 비교해보면 공관복음에서는 왜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배반하게 됐는지 결정적 이유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면에 요한복음에서는 단정적으로 제시되는 것 같습니다. '돈에 눈이 먼 도둑'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배반한 것이 단지 돈 때문이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여러 견해를 종합하면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배반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예수님에게서 기대한 메시아 상과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보여주신 메시아 상이 크게 달랐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예수님께서 세우실 하느님 나라, 메시아 왕국이 현세적 왕국 이 지상의 왕국이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곧 메시아'라는 시몬 베드로의 고백을 인정하시면서도 오히려 당신이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르 8,27-31).
이 말씀에 유다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유다만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겠지요. 다른 제자들은 이 충격을 극복할 수 있었지만 유다는 그렇게 극복할 만큼 믿음이 강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았을까요?
죽음
유다 이스카리옷의 죽음과 관련해 성경에서는 두 가지 다른 설명이 나옵니다. 마태오복음은 유다가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시는 것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다가 결국 예수님 몸값으로 받은 은돈을 성전 안에 내던지고는 목을 매달아 죽었다고 전합니다(마태 27,3-10). 이에 비해 사도행전은 유다가 예수님 몸값으로 받은 돈으로 밭을 산 후에 "거꾸로 떨어져서 배가 터지고 내장이 모조리 쏟아져서" 죽었다고 전하지요(사도 1,15-20).
학자들은 유다 이스카리옷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설명이 다른 것은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기보다는 신학적 의미를 제시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목을 매달아 자살한 것은 다윗의 친구였다가 배반자가 된 아히토펠이 목을 매달아 자살한 것(2사무 17,23)을 상기시킵니다. 아히토펠의 죽음 방식은 이후 배반자의 최후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본보기였다고 합니다.
반면에 사도행전에 나오는 것과 같이 거꾸러 떨어져 배가 터지고 내장이 쏟아져 맞는 죽음은 죄인의 최후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평화신문, 2008년 9월 14일, 이창훈 기자]
3. 작은(小) 야고보[교회상식 교리상식]
열두 사도 가운데 야고보라는 이름을 지닌 사도는 둘입니다. 제베대오의 아들로서 요한의 형 야고보를 큰(大) 야고보라고 부르고,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를 작은(小) 야고보라고 부르지요. 이번 호에서는 작은 야고보에 대해 알아봅니다.
성경에서 보는 작은 야고보
신약성경에서 '작은 야고보' 곧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이름은 네 번 나옵니다. 네 번 모두 사도들의 명단과 관련해서지요(마태 10,3; 마르 3,18 ; 루카 6,15 ; 사도 1,13).
이와 별도로 '작은 야고보'라는 이름이 나오는 대목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숨을 거두실 때에 이를 지켜보던 여인들을 언급하는 부분에서입니다. "여자들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작은 야보고'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마르 15,40). 다른 한편으로 '주님의 형제' 야고보의 이름도 몇 차례 등장합니다(마태 13,55 ; 마르 6,3 ; 갈라 1,19). 또 예루살렘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지는 야고보 이름도 나옵니다(사도 12,17 ; 15,13 ; 갈라 2,9).
옆길로 새는 것 같습니다만 우리말 「성경」의 신약성경에는 '야고보'라는 이름이 41번 나옵니다. 이 이름 가운데서 제베대오의 아들로서 요한의 형인 큰 야보고는 항상 요한과 함께 나오기에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작은 야보고인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다른 야고보, 곧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야고보와 구별이 쉽지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를 주님의 형제 야고보와 동일시하면서 주님의 형제 야고보가 또한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여겨왔습니다. 이 주장대로라면, 신약성경에 41번이나 나오는 야고보는 두 사람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이고, 다른 하나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입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또한 주님의 형제 야고보와 동일한 인물이며,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교회의 기둥으로 여겨지는 그 야고보입니다(갈라 2,9).
따라서 알패오의 아들 작은 야고보 사도는 '작은 야고보'와 같은 인물로서 요세(요셉),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고 어머니가 마리아인 '작은 야고보'와 같은 사람입니다. 물론 이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아니라 그 친척 마리아입니다.
그런데 작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의 남편 이름이 요한복음에서는 알패오가 아니라 "클로파스의 아내"(요한 19,25)로 나옵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 문제에 대해 전통은 그 당시에 한 사람이 두 이름을 갖는 경우가 흔하다는 점을 내세웠습니다.
이런 전통적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사도는 성경에서 "주님의 형제"라고 부르는 인물로서,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초기 교회의 중추적 역할을 한 사도입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이런 주장은 최근 들어 반론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열두 사도의 하나로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주님의 형제 야고보와 동일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사도행전 1장에서는 열두 사도와 예수님의 형제들을 완전히 구분합니다(1,12-14). 바오로 사도도 야고보와 열두 사도를 구분합니다(1코린 15,5-7). 또 마르코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의 친척들이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하고는 예수님을 붙잡으러 나섰다고 하는데 이때는 이미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사도로 뽑으신 후였습니다(3장). 나아가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 사람들에게서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하는 말을 들으며 배척을 받으셨을 때에는 이미 사도로 뽑으신 제자들과 함께 계셨을 때였습니다(마르 6장).
이런 반론을 따라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주님의 형제로서 예루살렘 교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 야고보와 동일인이 아니라고 본다면, 우리는 사실상 야고보 사도에 대해서는 그가 알패오의 아들이라는 것 외에는 달리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전승에서 보는 야고보
유다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예루살렘의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를 동일시하면서 야고보 사도가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에우세비오의 「교회사」에서 헤제시푸스는 야고보가 성전 꼭대기에서 내던져졌는데 그래도 죽지 않자 몽둥이에 맞아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은야고보 사도는 때때로 몽둥이를 든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하지요.
작은 야고보 사도의 축일은 필립보 사도 축일과 함께 5월 3일에 지냅니다.
[평화신문, 2008년 8월 31일, 이창훈 기자]
4. 야고보(大)[교회상식 교리상식]
12사도 가운데 야고보 이름을 가진 사도는 두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요한의 형 야고보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입니다. 두 사도를 구별하기 위해 요한의 형 야고보를 큰(大) 야고보, 다른 야고보를 작은(小) 야고보라고 부르지요. 이번 호에서는 큰 야고보에 대해 알아봅니다.
◇ 성경에서의 야고보
야고보는 제베대오 아들로서 요한의 친형입니다. 또 관련되는 성경 말씀들을 종합하면(마태 27,56; 마르 15,40 ; 16,1), 어머니는 살로메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시몬 베드로의 동업자(루카 5,10)로서 직업이 어부였습니다.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야고보는 아버지 제베대오와 동생 요한과 삯꾼들과 함께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지요(마태 4,18-22; 마르 1,16-20).
아버지가 삯꾼을 부릴 정도인 것으로 보아 야고보 집안은 시몬 베드로에 비해 경제적 형편이 나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 살로메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갈릴래아에서 복음을 선포하실 때부터 함께 따라 다니며 시중을 들 수 있었을 것이고(마태 27, 55-56), 예수님께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마태 29,21)하고 청을 드릴 수도 있었겠지요.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뽑으실 때에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신 것처럼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별명을 붙여주셨습니다(마르 3,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은 야고보와 요한의 불같은 성격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두 형제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자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해 저들을 불살라 버릴까요?'하고 말할 정도로 과격한 성격을 드러냅니다(루카 9,51-56). 야고보가 나중에 사도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순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야고보는 시몬 베드로와 동생 요한과 함께 열두 제자 가운데서도 예수님의 최측근 제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타볼 산에서 당신이 영광스럽게 변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실 때에 이 세 사람만을 따로 데리고 가셨으며(마르 9,2), 수난 전날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이 세 제자만 따로 데리고 가신 것이(마르 14,33) 이를 말해 주지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일곱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함께 있었던 야고보는(요한 21,2) 예수님께서 승천하시자 예루살렘의 이층 다락방에서 사도들과 함께 기도하며 지내다가 마티아 사도를 뽑고 마침내 오순절에 성령을 가득 받아 복음을 선포합니다(사도 1-2장).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가 스테파노의 순교와 함께 박해를 받기 시작할 때에도 다른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습니다(사도 8,1-2). 그러다가 44년 쯤에 헤로데 임금에 의해 순교합니다(사도 12,2). 이 헤로데 임금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유다를 다스린 헤로데 임금의 손자인 헤로데 아그리파 1세입니다. 그는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교회에 대한 박해를 자행했지요.
◇ 전승에서의 야고보
전승에 따르면, 야고보는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러 사방으로 흩어졌을 때에 유다와 사마리아에서 활동하다가 스페인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채 다시 유다 지방으로 돌아왔다가 순교했다고 합니다.
스페인 서북부 지방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이곳 대성당에서는 야고보 사도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스페인 북부 지방에 모셔져 있던 야고보 사도의 유해가 이슬람교도들의 침입을 받은 후 행방이 묘연해졌는데 별빛이 쏟아지는 들판의 한 동굴에 야고보 사도의 유해가 발견돼 그 위에 교회를 세우고 그 도시 이름을 '별의 들판' 곧 콤포스텔라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9세기쯤의 일이었습니다. 이후 이 도시는 또 이슬람교도들에게 침공 받았다가 재건됐는데 그때부터 야고보 사도 이름을 따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고 불렀습니다.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입니다.
이후 야고보 사도의 무덤에서 많은 기적이 일어나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그리스도인들이 즐겨 순례하는 성지가 됐고, 오늘날도 유럽인들에게는 예루살렘과 로마와 더불어 3대 순례성지 중 하나로 꼽히지요.
다른 한편 사도 야고보는 중세기에 이슬람교도들이 스페인 중북부 지역을 침공했을 때 백마를 탄 투사가 돼 이들을 앞장서서 무찔렀다는 전설도 전해져 옵니다. 그래서 스페인 예술작품들에서 종종 말을 탄 기사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사도 야고보는 스페인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이탈리아에서는 순례자의 수호성인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지요. 로마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 있는 야고보 사도 조각상도 지팡이를 든 순례자 모습입니다.
[평화신문, 2008년 7월 20일, 이창훈 기자]
5. 사도란 무슨 뜻인가요? [교회상식 교리상식]
사도란 무슨 뜻인가요. 또 열두 제자만 사도라고 부를 수 있는지요?
신약성경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 가운데 12명을 따로 불러 그들을 '사도'로 삼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르 3,13-19; 마태 10,1-4; 루카 6,12-16).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12제자에 속하지 않는 바오로나 바르나바도 사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사도 14,14). 사도에 대해 좀 더 알아봅니다.
사도란 그리스어 '아포스톨로스'(αποστολοs)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인데, 아포스톨로스는 '보내다''파견하다'는 뜻을 지닌 동사 '아포스텔로'(αποστελλω)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아포스톨로스는 원래 사절, 특사 같은 일반적 의미로 사용됐고 종교적 의미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는 사도란 말이 80번 가량 나올 정도로 빈번하게 사용됐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자 파견된 사람'이라는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복음서를 살펴보면 대략 파악할 수 있습니다. 네 복음서 가운데 마태오ㆍ마르코ㆍ루카 세 복음서를 공관복음서라고 부릅니다. 구조와 내용이 비슷하고 일치하는 부분도 많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를 사도로 부르시고 파견하신 부분을 공관복음서(마태 10,1-4; 마르 3,13-19; 루카 6,12-15. 또한 마태 10,5-15; 마르 6,7-13; 루카 9,1-6)에서 보면 공통되는 점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직접 부르셔서 뽑으셨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병을 고치는 능력과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을 주시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도록 파견하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의 이런 내용을 요약해 보면 사도란 예수님께서 직접 부르시고 선택하신 제자로서 예수님에게서 능력을 받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도록 파견된 사명을 띤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공관복음서가 증언하듯이 예수님께서 이렇게 친히 뽑으신 사도는 모두 12명이었습니다.
12사도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반석이 되라는 뜻에서 '베드로'라고 이름을 바꿔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인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열혈당원으로 알려진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입니다.
그런데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구별하기 위해 대(大)야고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알패오의 야고보는 소(小)야고보가 되겠지요. 또 유다 이스카리옷은 예수님을 팔아넘긴 뒤에 죽고 맙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기도한 후 제비를 뽑아 마티아를 사도로 선택하지요(사도 1,15-26).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제기됩니다. 사도는 이 12사도밖에 없느냐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에서는 바오로와 바르나바에 대해서도 사도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르나바는 사도들의 증언에 감화를 받아 자기 밭을 판 돈을 몽땅 사도들에게 바친 인물로(사도 4,36-37), 나중에 바오로와 함께 이방인 선교를 위해 사도들에 의해 안티오키아로 파견됩니다(사도 15,22-35).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오로는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부르심을 받고 사도로 파견됐다는 점을 신약성경 서간 여러 곳에서 강조합니다(예를 들면 로마 1, 1; 1코린 1,1; 갈라 1,1 등). 바오로가 이처럼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당시 교회에서는 누구를 사도라고 부르느냐와 관련해 논쟁이 있었음을 시사한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당시에 이른바 '사도 논쟁'이라는 것이 있었든지 아니든 간에, 성경의 기록과 교회 전통은 바오로를 사도로, 그것도 베드로와 쌍벽을 이루는 사도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바오로는 자신과 열두 사도 외에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와 바르나바, 안드로니코스와 유니아 등을 사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1코린 9,6; 15,7; 갈라 1,19; 로마 16,7 등 참조). 따라서 사도란 열두 사도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 정리합시다
우선 엄밀한 의미에서 사도란 예수님께서 직접 부르셔서 복음선포의 사명을 맡기신 12제자를 가리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고 특별히 이방인의 사도가 된 바오로 사도의 주장에 비춰보면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복음선포 사명을 띠고 파견된 이들도 사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중세기 성인 치릴로(827∼869)와 그의 형 성 메토디오(825∼885)는 슬라브 민족의 복음화에 크게 기여한 분들로 '슬라브인의 사도'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사도라고 하면 흔히 12사도로 이해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뽑으신 12제자가 대표성을 지니는 사도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평화신문, 2008년 6월 15일, 이창훈 기자]
6. 사도 마티아 [교회상식 교리상식]
마티아는 예수님께서 친히 사도로 택하신 제자는 아닙니다. 마티아는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 이스카리옷 대신으로 사도단이 뽑은 사도입니다. 열두 사도 이야기 마지막으로 이번 호에는 마티아 사도에 대해 알아봅니다.
성경에서 본 마티아
신약성경에서 마티아는 사도행전에서 딱 두 번 나옵니다. 마티아를 사도로 선출하는 대목에서입니다(사도 1,13.26).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열한 사도는 다른 제자들과 성모님과 다른 여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마티아가 사도로 뽑힌 것은 이때쯤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이 전하는 당시 모습(사도 1,15-26)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하루는 백스무 명가량 되는 형제들이 모여 있을 때 베드로가 일어나 유다 이스카리옷의 직책을 대신할 사도를 뽑는 문제와 관련해서 발언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서에서"(사도 1, 21-22) 사도를 뽑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제안에 따라 바르사빠스라고도 하고 유스투스라는 별명도 지닌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 가려서 앞에 세우고 나서 기도한 후 제비를 뽑아 마티아를 사도로 선출하게 됩니다.
이 대목에서 마티아의 신상에 대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티아는 예수님 공생활 초기부터 다른 사도들과 줄곧 함께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예수님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 수난과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까지 목격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티아는 처음부터 열두 사도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을 측근에서 따라 다니던 가까운 제자에 속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겠지요. 후대 전설에 따르면, 마티아가 예수님의 일흔 두 제자(루카 10,1-2) 가운데 하나라고도 하는데,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승과 전설에서 본 마티아
마티아는 사도단에 합류한 후 처음에는 유다 지방에서, 나중에는 콜키스(오늘날 흑해 동부 그루지아 일대)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다고 합니다.
마티아 사도는 세바스토폴리스(오늘날 흑해 동부 연안 도시 수후미)에서 죽어 그곳에 묻혔다가 로마 제국에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248?~330)에 의해 로마로 옮겨졌습니다. 그후 다시 독일 남서부 국경 도시 트리어로 이장됐습니다.
그러나 다른 설도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마티아 사도는 유다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첫 순교자 스테파노처럼 예루살렘에서 유다인들에 의해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유다인들은 마티아 사도를 돌로 쳐 죽인 후에 다시 도끼로 목을 쳤다고 합니다. 유해는 나중에 로마로 옮겨졌다가 다시 트리어로 옮겨졌다고 하지요.
트리어로 옮겨진 마티아 사도의 유해는 베네딕토 수도원 성 마티아 성당에 안치됐다고 합니다. 트리어는 마티아 사도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트리어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마티아 사도는 유다 지파 출신으로, 베들레헴의 지체 높은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마티아 사도 축일은 5월 14일에 지냅니다. 예전에 부르던 '마지아'라는 세례명은 마티아를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여기서 마티아 사도의 이름과 관련해 잠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마티아라는 이름은 당시 그리스어 권에서는 흔한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이 이름은 히브리어 '마티티아'에서 유래하는데 "야훼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흔한 이름인 마티아가 제비뽑기를 통해서 마침내 유다 이스카리옷을 대신해 열두 사도단에 합류한 것은 그 이름이 뜻하는 그대로 "야훼의 선물", "하느님 은총"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세례를 받고 하느님 자녀가 된 것은 우리 자신이 잘 나서라고 보시는지요, 아니면 참으로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보시는지요.
[평화신문, 2008년 9월 28일, 이창훈 기자]
*** 배신자 유다 이스카리옷이 빠진 11명에 유다를 대신할 새로운 12사도로 마티아가 추가되었다.
[그러고 나서 그들에게 제비를 뽑게 하니 마티아가 뽑혀, 그가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다.](사도행전 1장 26절).
***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12사도는 아니지만 사도라고 언급되었다.
[회중이 흩어진 뒤에 많은 유다인과 유다교로 개종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이 따라오자,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들에게 이야기하며 하느님의 은총에 계속 충실하라고 권하였다.] (사도행전 13장 4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