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선희
누구에게나 아픔이다. 제거하자니 깊숙히 자리잡았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그냥 내버려 두자니 이따금 까작까작 괴롭힌다. 일이 영 손에 잡히지 않는다.
큰 아들은 군에 있을 때부터 아팠다 안아팠다 괴롭혔다 했다. 작은 아들은 하나가 눕혀 나서 뽑아 버렸다고 했다. 결혼을 곧 앞둔 마흔에 낳은 막동이 딸아이는 빼는 것이 낫다며 두 개를 언젠가는 뺄거라고 한다. 생기다가 만 것처럼 계속 신경을 건드려 난, 네 개를 손가락으로 흔들어 뽑아 버렸다. 뿌리가 깊지 않았다. 그 후련함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젖니, 대생치, 가생치, 영구치 서른 두 개 중에 사랑니가 제일 늦게 나며 애를 먹인다. 늦게 나도 그처럼 사랑하라고 사랑니라고 했던가!
아침밥을 다 먹고 간 자리에 앉으니 멍하다. 내가 먹을 차례인데 제일 먼저 나가는 남편.
그다음 작은 아들 그 다음 큰 아들 이어 막내 딸아이 순이다. 곤히 자는 아이들을 모두 새벽같이 깨울 수는 없는 노릇. 이 아이 저 아이 순서데로 맞추자니 아침은 북새통이다. 남편 도시락 아이들 도시락까지. 초등학교 다니는 딸아이는 일찌감치 집으로 왔다. 다음부터는 급식이 실시된다고 했다. 딸아이와 모처럼 별식을 만들었다. 왜그렇게 한가로운지 근데 올 시간이 되었는데 큰 아들도 작은 아들도 오지 않는다. 이상하게 생각은 들었지만 오겠지 하고 우리끼리 모처럼 격식을 갖추고 예쁜 접시에 포크를 갖다 댄 순간 형광등 불빛이 휙 갔다. 일제히 휙 가버렸다. 전에도 어쩌다 그런적이 있어 그러려니 하고 초를 가지러 건너 방으로 갔다.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밖으로 난 창문을 열어 보았다. 건너 집들의 창문들은 훤했다. 이상하다 생각을 하면서도 수녀님이 기도하는 초로 쓰세요 하고 미사때 쓰고 남은 색색깔의 동가리 초를 많이 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굵고 듬직한 보라색 초를 양쪽에 꽂고 포크를 든 순간 촛불이 휙휙 연달아 나가버렸다. 주위가 컴컴했다. 무서웠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어찌하여... 어린 딸아이에게 내색하기 싫었다. 불이 들어왔다.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며칠전 남편은 우리가족 모두 건강검진을 받아보자는 얘기를 진지하게 잠자리에서 했다. 억수로 건강을 생각해주는 사람처럼 물어왔다. 그전날 형님네 맏이인 딸이 응급실에 아직 있다며 당신이 아는 병원장에게 부탁 좀 해보라는 부탁이 있어 찾아 가서 얘기를 했을때 어떻게 병실이 하나 나서 입원했던 것이다. 감기인줄 알아 약을 먹었는데 안 나아서 검사를 했더니 급성 간염이라 얼른 수술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고 싶으면 당신이나 건강검진을 해요 나는 절대로 하지 않을테니 그리고 아이들도 건강검진 하라고 말하지 말아요 하고 싶으면 당신이나 해요.'' 하고 딱 잘라 말했다. 바늘구멍 들어갈 틈도 안나니 두번다시 말을 붙이지 않았다. 아버님 어머님 돌아가시고 그많은 재산 나누지 않고 혼자서 다 가진 형님네가 무슨 낯짝으로. 이 등신같은 남자는 재산포기 각서까지 나 모르게 써 주곤 무슨 충성이라고 기가 찰 노릇이다. 그렇게 엄포를 놓았는데 두 아이가 똑같이 안 들어왔다. 찰나 스치는 뭔가가 있었다. 맞아 틀림없어. 막내가 다행히 그새 일찍 잠들었다. 깰까봐 살그머니 수화기도 내려놓고 내달렸다. 왜그리 잡히던 택시도 그날따라 안잡히고 버스는 버스데로 안왔다. 겨우 타고 가는데 시간이 이렇게 더디 가긴 처음이다. 제발 수술실에 가질 말기를. 수술이 집행되지 말기를. 간호사에게 연락을 어찌어찌해 취하니 건강검진 중이라고 했다. 설마 바로 수술은 아니겠지. 묻지도 않고 수술실로 직행했다.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두드려도 꿈쩍 않았다. 주변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조금 후 아주버님이 보였다. ''자기 자식 살리고자 남의 귀한 자식을 물어보지도 않고 함부로 수술시켜 뭐 이런 사람들이 있어'' 어디서 나타났는지 남편이 만류했다. 아무도 찾지 못하는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싸한 바람이 정수리를 쳤다. 차가웠다. 추웠다. 곧이어 밝은 한줄기 빛이 따스하게 스며들었다. 꽁꽁 닫힌 내마음을 그 빛은 열어 주었다. 신기한 노릇이다. 그 한 줄기 빛이 통로를 열어 주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처럼 애먹이던 사랑니를 빼고 아침도 제대로 못먹고 약만 먹고 나선 아이를 군에서 제대하고 채 얼마되지도 않은 큰 아이를 그렇게 제물로 삼다니, 그 사랑니 때문에 마음이 무척 아팠는데 더 처참하게 돌아왔으니 오히려 내 손을 꼭 잡아주던 큰 아이.
작은 아들은 말한다 ''형이 아니었으면 나 라도 했어. 주면 살 수 있다는데'' 라고. 막동이는 말한다. ''엄마 내가 아팠다면 엄마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을까?'' 큰 아들은 거울에 비추어진 위에서 아래로 니은자로 길게 그으진 수술자국을 보며 ''주었는데 잘 적응이 되어야 할 텐데 잘 맞아야 할 텐데...''라고. 옷을 갈아 입을때마다 보아야 하는 어미의 심정은 모르고. 남들은 말한다. ''그 집안은 사촌간에 정이 남아 있나 보네요.'' 의사는 의사데로 ''아드님이 싱싱한 간을 제공해 주어 수술을 잘 하였습니다.'' 라고 말했다. 네 자식을 낳거든 그런
말을 하여 보아라. 아직도 내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아직도 나혼자서 사랑니를 앓는것이다.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카페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