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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도량참법 읽고
이 참법은 종합적인 예참 문으로서 양무제가 죽은 왕후 치씨를 위하여 지공선사 등 고승들에게 명하여 편집한 것이라고 합니다.
편집 동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무제는 치씨가 죽은 뒤 몇 달이 지나도록 잊지 못하고 슬퍼하여 낮에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무제가 침전에 있는데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큰 구령이가 전상으로 기어 올라오는데 뻘건 눈알을 두리번거리고 찢어진 혀를 날름거리면서 무제의 앞에 이르러 무제를 바라보고 있으니 깜짝 놀란 무제는 일어나 구렁이를 향해 호통하되 짐의 궁전이 깨끗하고 탄탄하여 너 같은 무리가 생겨날 수 없을 터인데 네가 나타났으니 반드시 요망한 정령이 짐을 해치고자 하는 것이 아니더냐? 하니.
이런 호령에 구렁이는 사람의 말로 대답하는데 자신은 죽은 치씨 황후라는 것.
자기가 생전에 질투가 심하여 궁녀들이 행여 황제의 총애를 받게 될까 하는 걱정 때문에 구박도하고 죽이기까지 했다는 것.
그 죄보로 지금 구렁이의 몸을 받았는데 그 고통이 이루 헤아릴 수 없다는 것.
이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 하나 자신은 축생의 몸으로 어쩔 수 없다는 것.
지난날의 총애하던 은혜를 버리지 마시고 어떤 방법으로든지 자신을 위해 공덕을 닦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무제는 당대의 고승들을 궁궐로 청하여 이 사실을 고한 뒤 무슨 묘책이 없겠느냐고 물으니 지공스님이 대답하기를 참법을 닦아 부처님께 지극히 행도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니.
무제는 지공스님 등의 말을 받아들여 그로 하여금 이 참법을 짓게 한 뒤에 지성으로 봉행 하였는데 어느 날 궁전에 이상한 향기가 진동하고 주위에 아름다운 상서로운 기운이 돌더니 예뿐 선녀가 나타나서 이르기를 자신은 죽은 황후 치씨의 후신인데 폐하의 참회공덕으로 구렁이의 몸을 벗고 도리천에 왕생케 되어 감사의 말씀을 드리러 왔노라 하고는 사라졌다는 내용으로 이 참법의 공덕을 풀이하고 있습니다.
양나라 때부터 오늘날 까지 천여 년 동안 전해져 오는 이 참회 법 을 지성으로 예참하면 원하는 것 모두 감응 한다 하였습니다. 참법의 공덕은 본인과 망령들의 업장을 소멸을 하고, 보살의 환희 지를 높이고, 죄가 없어지고 또 원결이 풀린다고 하였습니다. 자비도량참법기도를 해서 업장을 소멸하여 나를 위한 회향이기 보 다 남을 위한 회향을 하여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부 처님께 귀의하고, 중생을 제도한다는 마음으로 실천 수행한다는 그 마음을 먼저 베풀면, 그것이 온 세상에 퍼져 모두가 행복한 불 국토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이루어진 이 참법은 우리나라에 유통되는 참법 중에 제일 많이 읽혀지고 있습니다.
자비도량참법은 10권으로 되어 있으며
1권부터 2권까지는 정 삼업으로 신구의 삼업을 맑히는 것이고
3권에서 6권까지는 현과보로 인과법을 이야기한 것이고
7권에서 10권까지는 자경으로 스스로 경하한다는 것으로 귀의삼보 하여 숙세에 맺어진 인과의 매듭을 풀고 윤회를 벗어나게 된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1권에서 2권까지의 내용은 정 삼업으로 이 참법을 행하는 이가 몸과 마음으로 준비해야할 내용이 실려 있는데 그중
첫째가 귀의삼보로 불 법 승 삼보에 귀의해야할 이유와 삼보에 귀의하는 의식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인과를 꼭 믿어야 된다는 것과 자비도량 참법기도수행을 하여 전생부터 지어온 업장을 소멸 할 수 있을까하는 등의 의심이 참법기도를 하는데 장애가 되므로 의심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의 법문과 그에 따른 의식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셋째는 지은 죄를 뉘우쳐 없애는 참회의식을 설명한 것으로 비록 삼보에 귀의하고 자비도량참법 기도를 하여 업장을 소멸 할 수 있다는 믿음을 확실하게 가졌다 할지라도 전생에 지은 묵은 죄업이 남아 있으면 발심기도에 장애가 되므로 참회를 하여 죄업을 없애야 된다는 법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넷째는 참법기도를 통하여 업장만 소멸 할 것이 아니라 마음을 깨달아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으로 의심도 일으키지 않고 참회를 하여 묵은 죄업을 깨끗이 하여 깨끗한 법기(불법을 담을 수 있는 그릇)가되었으니 부처님과 같이 깨달아야 하겠다는 불교의 최고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모두가 허사이므로 보리심(깨달음을 이루겠다는 마음)을 일으켜야 할 필요성과 아울러 불보살님께 보리심을 일으킨 것을 알리고 이 마음이 게을러지거나 퇴전되지 않기를 다짐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다섯째는 큰 서원을 세우는 것으로 보리심이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목표를 세운 것이라면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원이 있어야 깨달음을 이룰 수 있기에 서원은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이정표가 되는 것이기에 이 서원은 다음 생에 태어나는 곳마다 불법을 만나기를 원하고 행하기 어려운 기도 수행을 만나도 물러남이 없기를 원하는 것 등을 수록하였습니다.
여섯째는 자신이 닦은 기도수행의 공덕을 요즘 말로 사회 환원 하는 것으로 회향할 마음을 일으킨다 해서 발회향심이라는 불교 용어가 있습니다. 이미 세운 발원이 이루어졌을 때 얻어지는 공덕을 혼자서 누리지 않고 모든 일체대중에게 주어 그들과 함께 깨달음을 얻고 행복하기를 원해야 한다는 법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비인데 자비의 정신은 나눔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기 어려울 때 는 사회 환원이니 복지니 하는 말들이 생소했지만 이제는 이런 말들이 생소하지가 않습니다.
이런 말들이 생소하지 않아진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인간답게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환원한다는 것은. 나눈다는 것은. 회향한다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고 어려운 이웃에게 나눌 수 있는 정신은 인간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왜 동물이 아니고 인간인가는 회향의 정신 즉 사회 환원의 정신이 있는가? 없는가가 동물인가 인간인가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 입니다.
불교의 지순한 정신은 회향의 정신이고 나눔은 곧 자비인 것입니다.
자비의 「자」는 다른 말로 최고의 우정을 뜻합니다.
특정인에게 대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우정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비」의 원래 의미는 탄식한다는 뜻으로 중생의 괴로움에 대한 깊은 이해와 동정 연민의 정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광대한 자비를 말할 때 대자대비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자비는 중생의 괴로움을 자신의 괴로움으로 하기 때문에 다른 말로 무개대비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볼 때 회향이나 사회 환원 나눔 등은 자비를 실천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할 세상에서 나만의 평화란 존재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나누어 받고 나의 기쁨을 다른 사람의 즐거움으로 나눠주는 세상이 인간의 세상이고 나눔으로 하나가 되는 세상일 것입니다.
3권에서 6권까지를 현과보장으로 과보가 나타나는 현상을 소개한 것으로 그중에
첫째는 현재에 있는 여러 가지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상황은 이러이러한 업에 의해 이루어 진 것이니 이를 화보(중간과보)라 하고 그러한 현재에서 수행을 쌓지 않으면 미래에는 더 나쁜 과보(확정된 과보)를 받을 것이라 하고 인과의 무서움을 보이는 한편 금생에 이 자비도량참법을 행해야 한다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출옥지옥으로 위에서 말한 과보의 내용으로서 과보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 자비도량참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뜻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해원석결은 원한 맺은 것을 푼다는 뜻이니
현실의 삶에서 사람끼리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함은 서로의 원한 때문이니 나와 남과의 원한 남과 남과의 크고 작은 모든 원한을 풀어야만 지옥 같은 우리의 삶이 행복하여 지고 내생에 생길 과보가 없다는 내용의 설교와 의식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예로부터 원수는 대문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문 안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원한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끼리 맺어지고 마음에 상처도 모르는 사람에게 받는 것이 아니라 대문 안에 있는 사람에게 받는다는 것입니다.
좋은 인연 나뿐 인연이 모여 부부가 되고 자식이 되고 일가친척이 되어 마음고생을 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특히 부부는 반절이상이 전생에 맺은 나쁜 인연을 금생에 풀면서 살아야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로가 부처님 같이 생각하며 살아야 된다고 합니다.
넷째는 발원이니 발원은 서원을 세운다는 뜻입니다.
어떠한 서원인가 하면 나와 남 사이의 모두 원한을 풀어 성냄, 어리석음이 생겨나지 않게 하는 서원입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모두가 안락해질 수 있다는 내용의 설법과 의식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불교에서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마음! 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데 하지만 이 마음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찾을 수 없는 것을 붙들고 갖은 시시비비를 다 따지고 할 소리 못할 소리를 다 합니다.
나라는 것을 찾아보면 어디에도 없습니다.
피부에도 살결에도 힘줄에도 골수 속에도 없고 위장 간장 심장에도 없습니다.
나라고 하는 헛된 이름을 붙들고 온갖 사건을 다 저지르고 다닙니다. 그래서 부모 자식 부부 형제 남남 사이에 자꾸 응어리가 생깁니다. 우리 마음의 응어리는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그것이 업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미 저질러 놓은 업도 앞으로 지을 업도 참으로 무서운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중에 지난 생에 가족에게 저질러놓은 업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가족은 전생부터 자주 만나면서 서로 좋아하고 애를 먹이거나 서로 서로 크게 베풀고 치고 박고 싸운 그 인연으로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나간 날의 버릇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깊은 인연으로 맺어진 가족일지라도 너 때문에 내가 그랬다는 마음이 맺혀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원결로까지 맺혀있습니다.
때때로 가족이 보기 싫고 미워지는 역작용을 하는 원결들을 풀 수 있을까요?
가장 쉬운 방법은 가족을 향해 참회의 절을 하는 것입니다.
아침저녁으로 가족들을 향해 3배만이라도 하면 아주 작은 이 정성이 가족 사이에 들어가면 맺혔던 원결들이 스스로 풀어집니다. 그리고 법당의 부처님과 나 내 가족과 삼위일체가 될 수 있다면 그 이상 다행스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법당의 부처님께는 무릎을 꿇지 않더라도 내 가족을 향해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내가 세세생생 당신에게 잘못한 것 참회합니다.
이렇게 가족 한 사람에게 3배씩 3년만 계속하면 가족 사이에 맺힌 사소한 응어리는 물론이요 매우 강한 원결까지도 모두 풀어집니다. 그러나 내 가족 앞에는 무릎이 잘 굽혀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라는 아만심 때문입니다. 가족 앞에서 참회의 절을 할 수 없으면 절에 가서해도 됩니다.
빛깔도 모양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나라는 것 때문에 내 가족한테는 무릎이 안 굽혀 질 것입니다.
집안에서나 절에 가서 피부에도 살결에도 힘줄에도 골수에도 없는 나라는 것을 죽이고 내 가족에게 예불을 드릴 수 있을 때 가족 사이의 다툼이 떨어지고 응어리가 풀어집니다.
가족에게 드리는 기도는 여러 가지 영험도 가져다주고 기적도 일어나게 합니다.
가족에게 서로 기도하는 가정은 서로에게 고맙습니다. 감사 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항상 웃고 삽니다.
모든 인연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어떤 식으로든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연을 자꾸 찾고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가족 사이에도 절대 모진 연을 만들지 말고 좋은 연을 자꾸 만들어 가야 합니다.
자비도량참법의 원한 맺은 것을 풀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엉뚱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 응어리를 풀어 가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마음속의 응어리를 모두 풀어 버리는 것 바로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교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하고 싸움을 하고나면 미워서도 응어리가 맺히고 괴심 해서도 응어리가 맺힙니다.
어떤 경우에는 억울해서도 응어리가 맺힙니다.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 일들이 응어리로 맺힘으로써 결국은 세세생생 윤회하는 고리가 거기에서 이루어집니다.
먼저가신 선망부모님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는 천도도 같은 원리입니다.
염불이나 독경이나 주력 등을 의지해서 먼저 그분들에 대한 내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풀어야 그 분들의 응어리를 풀 수가 있습니다.
내가 얽혀 있으면 그 분들의 천도가 되지 않습니다.
돌아가신 영들에게는 바깥으로 나타나는 물질이나 행동 같은 것으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정성으로 우리의 마음으로 하는 대화만이 서로 통할뿐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먼저 풀어져야 조상님의 천도가 이루어집니다.
내 마음의 응어리가 있는 동안에는 아무리 경을 읽고 재를 지내더라도 그 공덕이 영가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마음과 정성이 먼저 가신 선망부모님의 응어리를 풀어 불국세계로 천도하는 비결입니다. 따라서 늦었지만 미리 가신 어른들의 천도를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대우주세계에는 시간과 공간이 차이가 없습니다.
벌써 돌아가신지 20년 30년이 넘었어도 부지런히 경을 읽어 드리거나 염불을 해드리면 천도가 됩니다.
고맙다. 나는 너에게 별로 해준 것이 없는데 너는 나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주니까 내가 너를 도와줘야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대우주세계의 물건은 생겼다 없어졌다 하지만 대우주의세계의 일은 생멸을 뛰어 넘어 내가 지금 정성을 드리면 그 공덕이 그대로 조상들에게 전달이 되고 나에게로 돌아오게끔 되어 있습니다.
가족에게 맺혀있는 응어리들도 내가 먼저 풀어야 상대방에게서 메아리가 올 것입니다.
7권에서 10권까지의 내용은 자경장으로 스스로 경하한다는 뜻입니다.
이미 귀의삼보 하였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원한의 매듭까지 푸니 육도에 윤회하다 만나기 어려운 인도(人道)에 들어 인간으로 태어난 보람이 없을 수 없고 이러한 보람은 혼자만 누릴 것이 아니라 진정 누군가와 나누어야 하고 누군가와 나누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기쁨이 된다하여 다음 여러 항목과 같이 예참해야 할 당위성을 제기하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진실한 예참에 들어가는데 다시 자경 위육도예불 발회향 발원 촉루 등 다섯 항목이 있고 자경에 다시 자경 경연삼보 참주사대중 총발대원 등 네 항목이 있습니다.
자경에 첫째 자경은 스스로 경하다는 말로 그 기쁨을 15가지로 나누어 열거하였습니다.
첫째는 불법을 만나 바른 안목으로 살게 되어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으로 시작하여 열다섯 번째는 깨달음에 이르는 공부를 하게 되어 기쁘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경연삼보는 이렇듯 스스로의 기쁜 보람은 나와 관계되는 모든 인연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남의 은혜에 보답하는 행동으로 그 들의 죄업을 소멸해주는 예참이 여법히 이루어지자면 불법승 삼보의 가피력에 의하지 아니하면 안 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삼보에 의지하라는 법문과 예참법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셋째 참주사대중은 법주가 대중에게 감사한다는 뜻이니 이 참법은 나 혼자서만 할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해야 하고 여럿이 할 때엔 다 같이 영원토록 발보리심이 퇴전치 않도록 다짐해야 한다하며 그러한 뜻으로 모인 대중에게 법주가 감사하는 법문과 다시 그 뜻을 불보살님께 알리는 예참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넷째 총발대원은 총괄적으로 큰 서원을 세운다는 뜻이니 다음 항목 위육도예불에서 예참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 천상의 무리로부터 지옥중생에 이르기까지 그들 모두를 이고득락케 하려는 서원의 내용이 총괄적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자경의 큰단 둘째 위육도예불은 육도 중생을 위하여 예불예참 한다는 뜻입니다.
이 육도는 천도 제선 범왕 아수라 용왕 마왕 인도 삼악도의 순으로 그들을 위해 예참해야할 이유와 예참법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위육도예불의
첫 번째 봉위천도예불은 하늘 무리를 위해 예참한다는 뜻입니다.
하늘들은 우리에게 많은 해택을 주는데 그들의 은혜에 감사드리자는 법문과 예참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둘째 봉위제선예불은 여러 신선들을 위해 예불한다는 뜻입니다.
신선은 신통이 자재하여 보살의 경계와 가까우니 그들의 고행에 감사하고 그들로 하여금 중생제도의 길에 동참해 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예불해야 한다는 법문과 예참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셋째 봉위범왕등예불은 범왕을 위해 예불한다는 뜻으로 취지는 선도와 같습니다.
넷째 봉위아수라도일체선신예불은 아수라도에 있는 모든 선신을 위하여 예불한다는 뜻입니다.
아수라는 원래 포악하고 용맹한 종류인데 이미 발심한 선신에겐 감사하다는 뜻과 아울러 불법을 잘 지켜 달라는 뜻으로아직 발심하지 않은 아수라는 속히 발심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예참하자는 법문과 예참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다섯째 봉위용왕예불은 용왕을 위해 예불한다는 뜻으로 내용은 아수라와 같습니다.
여섯째 봉위마왕예불은 마왕을 위해 예불한다는 뜻으로 내용은 역시 아수라와 같습니다.
일곱째 봉위인도예불은 인간무리를 위해 예불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일곱 개의 작은 항목이 있는데 생략하겠습니다.
자경장의 그 세 번째 발회향은 회향심을 내라는 뜻입니다.
자경장에 의해 육도중생을 위해 예참한 공덕이 있다면 그것마저 다시 모든 곳으로 돌려보낼 원을 세우라는 법문과 예참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설회향법과 보살회향법이 있습니다.
자경장의 그 네 번째 발원은 원을 세운다는 뜻이니 이미 육도중생을 위해 예참한 공덕을 회향했으나 자신이 다시 육근을 잘못 조절하면 모두가 허사이므로 다시 육근을 잘 단속할 원을 세우라는 법문과 예참문을 수록하였습니다.
자경장의 다섯째 촉루는 뒷일을 누구에겐가 위탁한다는 뜻이니 이상과 같은 육도중생 및 자신을 위해 예참하고 회향하고 발원하였으니 할 일이 이미 끝났으나 이들이 다시 물러서지 않게 하려면 여러 보살들게 부탁해야 한다는 법문과 예참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참법이 고려대장경 보유부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로 볼 때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려 고종 이전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