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12:38-45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38-40절에서는 사람들이 표적을 보기를 원했지만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시면서 41절에서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가 외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여 회개한 것을 예로 들으셨습니다. 이것은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에 대하여 마음을 열고 회개한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42절에서는 솔로몬에게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찾아왔던 남방 여왕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이 또한 지혜 즉 진리를 사모했던 남방 여왕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43-45절에서 집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더 심하게 망가뜨리는 귀신의 역사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이 또한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귀신이 먼저 있던 사람에게서 나갔던 이유가 여행이나 가려고 나갔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기 때문에 견딜수 없어서 쫓겨나갔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사라지자 이제 귀신이 다시 들어올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이 사람의 나중 형편이 더욱 안좋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중요한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을 어떻게 얻을 수 있으며 또한 이미 얻은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마11:27).
(마 11:27, 개정)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우리들에게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심히도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스스로 이것을 깨달아야 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렘 17:9, 개정)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그래서 다윗처럼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시 51:17, 개정)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일찌기 모세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의 중요성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총을 의지하여 구하였습니다.
(출 33:13, 개정)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자주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 25:5, 개정)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시 40:11, 개정)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시 43:3, 개정)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시 61:7, 개정) 『그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거주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그를 보호하소서』
예수님도 제자들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요 17:17, 개정)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9, 개정)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해야만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의 심령에 임해서 우리들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시 107:9, 개정)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둘째로 마음이 부패하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43-45).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예를 드신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게된 사람은 그가 타락하게 된 것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귀신이 왜 처음에 나가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대로 더 강한자가 그 집에 들어왔기 때문에 귀신이 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막 3:27, 개정)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마귀가 그 사람에게서 더 이상 머물수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떠난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람의 마음이 부패하여져서 은혜와 진리되신 예수님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황량하게 되자 마귀가 들어와서 활개를 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의 서신에서 이러한 일들을 자세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딤전 6:5, 개정)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딤후 3:8, 개정)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
사도 요한도 그의 서신에서 진리가 사람의 심령에서 사라지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일 2:4, 개정)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그러므로 마음이 부패하여 진리가 우리들의 심령에서 사라지는 것을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들의 마음의 상태를 양심이라고 말하면서 양심의 여러 단계를 말하였습니다.
1. 청결한 양심(딤후 1:3), 착한 양심(딤전 1:19)
2. 선한 양심 - 자신 속에서 깨끗한 양심을 잃어버리면 그 사람은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사람의 양심에 더러운 것이 들어오기 시작해서 깨끗한 양심을 잃어 버리고 양심의 오염된 부분이 깨끗한 부분과 공존하는 선한 양심의 단계로 내려가게 됩니다. 선한 양심은 양선과 미덕을 의미합니다. 선한 양심을 가진자는 도덕적인 탁월함을 가집니다.
3. 찔림받은 양심 - 그 다음으로 타락하게 되면 찔림받은 양심이 됩니다. 죄로 인한 많은 찔림을 받은 상태입니다. 양심을 더럽힌다는 의미는 하수구의 더러운 물을 몇방울 뭍혀서 깨끗한 양심을 상징하는 깨끗한 물 속에 떨어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4. 더러워진 양심 - 네번째 타락의 단계는 더러워진 양심입니다. 더러워진 양심은 죄로 인한 것입니다. 음란한 장면, 생각, 그림을 보는 것입니다.
5. 악한 양심(히 10:22) - 악한 양심은 다른 사람들의 악한 부분만 생각하게 됩니다.
6. 화인맞은 양심(딤전 4:2) - 성령께서 주시는 죄의 찔림에 대해 수도없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거절하였기 때문입니다.
(밥 존스 『너는 나의 친구라』 pp. 380-387.)
이와같은 양심의 단계를 기억하며 청결한 양심, 깨끗한 양심을 가질 수 있도록 늘 자신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만약 우리들의 마음이 부패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에 대하여는 사도 요한이 잘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첫째로 우리의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요일 1:8, 개정)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요일 1:9, 개정)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1서는 불신자들에게 쓰여진 것이 아니라 신자들에게 보내진 것입니다. 신자들이 살아가다가 실수와 연약함으로 죄를 짓게 되었을 때 자백하면 깨끗하게 해주신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우리들의 불순종과 불신앙이 깨달아질 때 바로 죄를 자백하고 깨끗함을 입어야 합니다.
또한 히브리서 9:14에서 예수의 피의 능력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예수님의 피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보혈이 우리들에게 힘이 되고 능력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이 이 피의 능력을 믿음으로 마귀와 싸워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요한계시록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계 12:11, 개정)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둘째로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마 12:50, 개정)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셋째로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달라고 했던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꼬투리를 잡아서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가로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진리에 대해서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안녕과 부귀를 누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길가에 떨어진 씨앗과 같이 진리가 그들의 마음에 들어갈 틈도 없이 마귀가 빼앗아 가버리고 만 것입니다.
(요 18:37, 개정)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요 18:38, 개정)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러 왔다고 말하니 "진리가 무엇이냐"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진리에 대하여 닫혀있었던 것입니다.
또 어떤 무리들은 진리 때문이 아니라 육신적으로 도움을 입었기에 예수님을 따랐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요 6:26, 개정)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하지만 우리들은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요 6:68, 개정)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진리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4:6, 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가리켜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이란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교회에 대한 말씀을 보면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렸을 때 첫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계 2:4, 개정)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 2:5, 개정)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그러므로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주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 마음이 식어지지는 않았습니까?
그 마음을 다시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열정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불타오르기를 바랍니다.
이와같은 은혜가 오늘 함께한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