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8월 25일(금) 시편 5:1-12 찬송 488장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관악에 맞춘 노래)
1.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5.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6.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8.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9.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이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10. 하나님이여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내소서 그들이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11.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12.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개역 개정)
- 악인의 응징과 의인의 보호에 대한 아침 기도 -
시편 3-5편은 모두 역사적으로 압살롬 반란 사건으로 인하여
다윗이 직면하였던 환난과 위기 상황을 배경으로 지어진 다윗의 비탄시이다.
그중 제 3, 4편은 대적으로 인한 고난 중에 있는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에 대한 호소와 확신을 노래한 것이다.
반면 제 5편은 악인에 대한 심판과 의인에 대한 보호를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이라는 차원에서 간구하며
고난 가운데서의 구원을 확신하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한편 3절에 근거해서 볼 때 본시는 아침 희생 제사에서
제사장들에 의해 공식적으로 낭송되었던 시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본서는 전(全)12절로 이루어진 시로서
그 내용을 개요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전반부 1-3절은 하나님만이 현재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소유하신 분이라는 확신 가운데
이른 아침부터 부르짖는 다윗의 기도 응답의 촉구이다.
중반부 4-7절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의거한
의로운 다윗 자신의 보호에 대한 간구이다
후반부 8-12절은 악인에 대한 심판의 호소와
의인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확신이다.
이러한 본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 악인과 의인의 삶의 태도와 그에 상응하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은
각자의 서로 다른 운명이 대조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이에서 우리는 본시가 단순히 다윗 개인의 고난에 대한 간구가 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성도들이 마땅히 소망하며 기도하여야 할
하나님의 공의의 완전한 실현이라는 그의 열망을 노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둘째, 성도들이 악인들이 들끓고 죄의 세력이 판치는 이 세상 속에서도
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공의의 하나님을 방패로 삼아
의를 행하며 사는 것이라는 성도의 마땅한 삶의 자세에 대해 잘 보여 주고 있다.
만왕의 왕이시며 우주와 역사의 주관자이신 ‘나의 왕, 나의 하나님’(2절)
곧 그분이 우리의 보호자가 되신다면
그 누가 우리를 해하며 넘어뜨릴 수 있을 것인가?
또 그 반대로 그분께 나아가 보호를 구하지 아니하고
어디서 확고한 안전을 구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환난 중에 어떤 인간적인 해결책을 강구하기에 앞서 아침 일찍(3절)
먼저 여호와께 나아가 구원을 호소하는 다윗의 신앙 자세를 통해
진실하고 간절한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음을 알기에
우리 또한 문제 해결의 제 1방법이 하나님께 대한 기도이어야 한다.
8절)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다윗은 매우 귀한 고백을 하고 있다.
곧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윗이 하나님께서 반역자들을 일으키신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하게 깨달아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반역자들을 일으키신 것이
자신을 하나님의 의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깨달음이 있었기에 그는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낙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었다.
다윗이 위대한 이유도 바로 이처럼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을
깨달아 아는 데 빨랐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을 빨리 깨닫고 그에 따라 즉시 회개하며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았기에 위기를 오히려 축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즉시 멸하지 않으시고
그들에 대한 심판을 유보하시는 이유에 대하여 의구심을 가질 때가 많다.
그리고 그러한 의구심은 악인들에게 핍박을 받을 때나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더욱 커지게 된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하나님은 과연 정의로우신가 하는 회의에 빠지기도 한다.
실제로 그러한 문제를 가지고 많은 논의를 한다.
그러한 모든 논의를 가리켜 신정론(神正論, Theodicy) 이라 부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공의로우시고 선하시다는 것은 성경의 명백한 증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악인이 세상에 존재하도록 허용하시는 것이나
그들이 의인들을 핍박하는 것을 허용하시는 것도 선하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악인을 존재하게 하시는 것이나
그들이 성도를 핍박하게 하는 것도 선한 것이 되는가?
다윗은 그 이유를 하나님이 악인들을 통하여
자기를 의의 길로 인도하심에서 찾고 있다.
성도들의 대적 곧 악인들은 성도들을 의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이다.
그러므로 악인들이나 그들의 행위는 선하지 않지만
그들이 존재하는 것이나 그들이 성도들을 핍박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서 나온 것으로 근본적으로 선하다.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당시에
가나안 족속을 다 멸하지 않고 그 일부를 남겨두셨다.
가나안 족속의 일부가 살아남은 것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그 큰 원인이 있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섭리도 작용하였다.
즉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의 일부를 남겨두어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고
그들이 그릇된 길로 갈 때에 그들을 징계하는 도구로 삼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결국 의의 길로 가게 하셨다.
이스라엘이 그 숱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떠나지 않고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원수들을 남겨두어
그들이 그릇 행할 때마다 찌르는 가시가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악인들을 남겨두시고
어떤 때는 그들로 하여금 성도들을 핍박하게 허용하시는 것도
우리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것으로 근본적으로는 다 선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과 함께 한 세상을 살아감으로,
그들로 인하여 핍박을 당함으로 때로 곤고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로 인하여 도리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이 악인들을 통하여 우리를 징계하심을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우리가 파멸로 달려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브레이크로 삼으셨음을 감사하고 악인들을 질시하기보다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삿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