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통. *사물어사전/홍일표
1) 휴지통은 묵언수행 중이다. 늘 입을 닫고 있다.
2) 줄창 열려 있는 동네 나팔수와 다르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울화가 쌓이면 조용히 자신을 비우고 본래의 가부좌 자세로 돌아간다. 미련도 원망도 없다. 비움과 묵언이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시선으로 세계를 사유하며 살아가는 휴지통의 삶이 그만하면 됐다. 책상 아래 있는 휴지통을 발로 툭차 본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날 뿐 별 반응이 없다.
3 확장) 타자에 대한 우월성을 내세워 자신의 고통을 줄이려는 자들의 폭력 앞에서도 그의 중심은 서늘하다. 흔들리지 않는다. 니체가 '지구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은신처'라고 했던 스위스 질스마리아에 가고 싶다. 그곳에는 표면적 언어에 구속되지 않는 비존재의 목소리와 '바깥'의 풍경들이 가득할 것 같다.
쓰레기통
*51가지 사물체험
팔에 묵직한 무게가 느껴진다. 내가 버린 쓰레기를 모은 쓰레기통은 매일 가득 찬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평균적으로 한 사람이
하루에 배출하는 양을 통제해야 할 정도로 쓰레기가 많아졌다. 건물 한쪽 구석에 내다 버릴 쓰레기 봉지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면서 나는.쓰레기통의 존재 방식에 대해 생각한다.
1) 복잡한 것은 없다. 이 사물은 사라질 물건들을 모아두는 기능을 한다. 가정에서 부서지고 치워지고 버려진 쓰레기와 폐기물이 여기에 모여 함께 종말을 맞이한다. 물론 상품이나 제품이 부엌이나 욕실을 잠시 거치고 나서 곧바로 쓰레기차에 실려 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짧은 과정은 현대적 삶의 수단에 대한 일회용 성찰을 유도할 수 있다. 오늘날 소비에 대한 우리의 허영심은 개탄할 만하다.
2) 버려진 사물도 사물이다. 사물은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우리는 그것을 버리기로 했기에 그것이 소멸되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는 정확한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이 계속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색이 바랬거나, 망가졌거나, 곰팡이가 줄었어도 그것은 여전히 남아 있다. 쓰레기통이 창조하는 저 다른 세상에서 사물의 삶은 계속된
다. 지하나 갓길에서, 어떤 소멸도 없이 그것은 하나의 충만한 세상을 구성한다. 내가 들고 있는 플라스틱 봉지를 열어 내용물을 대충 살펴보니 화장지, 계란 껍데기, 찻잎, 천조각, 닭 뼈, 커피 가루, 라벨, 과자부스러기, 표면에 도판이 인쇄된 요구르트 포장,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무질서하게 서로 뒤엉키고 얼룩져 섞여 있다.
3) 쓰레기통은 쇼핑 카트와 원리는 같지만, 하나는 내보내는 물건들을 담고 있고, 다른 하나는 들여오는 물건들을 담고 있다. 쓰레기통은 배출하고, 퇴장시키는 역할을 하며 바깥의 어두운 세상을 향한다. 그곳은 오염된 사물들의 천국이며 악취가 나는 세계다. 그곳에서 모든 것은 썩고, 흘러
내리고, 쉰내가 나며, 침하하고, 변형된다. 플로베르의 소설 『살람보』앞부분에 등장하는 부족에게나 익숙할 법한 공간이다. 그들은 부패한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4) 이 쓰레기들을 꼼꼼히 살펴보자. 한때 반짝이던 사물, 마음을 사로잡았던 사물이 마술처럼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썩고, 부서지고, 낡고, 해지고, 비워진 사물과 그 사물이 들어 있던 포장과 용기가 계속 쌓인다. 요구르트 포장을 동정심을 품고 한동안 바라본다. 이런 동정심은 우스꽝스럽다. 아니, 어쩌면 우스꽝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동정을 느낀다는 것은 요구르트 포장이라는 존재의 불합리에 불합리로 대응하는 것이다. 디자이너는 이 포장을 디자인했고, 인쇄공은 인쇄했고, 기술자는 확인했고, 위생사는 검사했고, 기계는 붙였고, 창고
담당자는 보관했고, 인부들은 운반했고, 매장 담당자는 진열했고, 나는 냉장고에 넣었다가 다음 날 그 안에 든 요구르트를 먹고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5) 이처럼 우리는 사물의 이면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매일 수많은 사물을 버린다. 그것들은 우리의 눈길조차 끌지 못한 채 오로지 무(無)로 돌아가기 위해 무에서 태어난다.
6, 확장) 이제는 나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눈물겨운 연민에 빠진다. 이런 연민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왜 쉽사리 그럴 수 없는 걸까? 아마도 사물과 똑같은 운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혼란, 악취, 피할 수 없는 종말이 예정되어 쓰레기속으로 사라진다. 게다가 유기체로서의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사회, 문명, 지식, 염원도 언젠가는 모두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쓰레기통이 이 세상의 미래라는 사실을 오늘 갑자기 깨달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왜 하필 지금 그런 사실이 새삼 놀랍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
망할 놈의 쓰레기 봉지가 점점 더 무겁게만 느껴진다.
[사물의 철학] 쓰레기통 - 이 통에 담긴 건 `쓰레기`일까 https://naver.me/xWBg2fqj
함돈균 문학평론가]
한 인간에 대한 평가가 담긴 말로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최하의 말은 무엇일까. 타인에게 듣는 욕설 중에서 가장 모욕적으로 들리는 말, 자존심으로 중심을 지지하고 있던 나의 자아를 거꾸러뜨리는 말이 무엇일까. 육두문자가 섞인 욕설일까? 이성을 잃고 쏟아져 나오는 욕설 중에 동물로 비유된 인간일까? "쓰레기 같은 놈."
내가 느끼기에는 이 말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떤 타락의 마지막, 구제불능에 대한 가치평가를 담고 있다. 이 말이 담고 있는 가치평가의 범주는 현재 시간만이 아니라 미래 시간까지다. 어떤 가능성의 제로.
'쓰레기'라는 말은 그런 뜻이다. 그런 '쓰레기'를 담고 있는 사물이 바로 '쓰레기통'이다. 연필을 깎고서 생겨난 부스러기를 쓰레기통에 쓸어 넣다가 문득 그 안에 담긴 '쓰레기'들을 본다.
방금 깎던 연필의 부스러기들이 있다. 깎아낸 연필을 가지고 이제 나는 책상 위의 공책에 여러 가지 생각을 담은 문장을 적어 나갈 것이다. 그 문장 중에는 어떤 작가를 위한 것도 있고, 미지의 얼굴을 모르는 독자를 향한 것도 있으며, 제자로 교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을 위한 강의 노트도 있을 것이다. 어제 지방에서 선배 선생님이 보낸 책을 싸던 누런 소포 서류봉투도 있다. 그 봉투에는 보낸 이와 받는 이의 주소를 적은 단정한 손글씨가 또렷하게 보인다. 그 손글씨에는 오랜 시간 고독한 연구 끝에 책을 출간한 학자의 자존감과 설렘이 느껴지기도 하고, 한참 보지 못했지만 책을 받을 후배를 늘 잊지 않고 있던 이의 얼굴이 배어 있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아침 수업에 늦어 식사를 하지 못하고 출근했다가 배가 고파서 아침 식사 대용으로 먹었던 빵봉지와 빈 우유갑도 있다. 자동차보험 만료를 알리는 보험 갱신 안내 고지서도 있다. 한꺼번에 잔뜩 시킨 온라인 서점의 책 배달 후 버린 영수증도 있다. 내가 시킨 책 목록이 적혀 있다. 온라인 서점에서 그 책의 목록들을 클릭하면서 무척이나 즐겁고 신이 났던.
연필 부스러기, 선배 선생님의 손글씨가 적힌 소포용 우편봉투, 바쁜 아침의 허기를 채우게 했던 빵과 우유의 봉지, 보험 갱신 고지서, 그리고 내가 구입했던 책의 목록들. 이게 모두 '쓰레기통'의 내용물이다. 이 통을 채운 것들은 정말 '쓰레기'일까.
'쓰고 남은 것' '쓰고 버린 것'을 살펴보라. 우리가 '쓰레기'라고 부르는 그것들은 실은 나를 구성하고, 나를 염려하고, 나를 돌보던 것들의 목록이다. 그것들이 모여 있는 사물이 바로 이 '통'이다. 다른 명명을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내 방에는 쓰레기통이 없다 / 강형철
버릴 것 추려 버리고
지닐 것 정돈하여 차곡차곡 쌓아둘 마음이 없다
누군가 내 방에 들어와 정돈을 하면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작자임을 금방 알겠지만
만원버스처럼 빼곡한 지하철처럼
꼿꼿하게 서 있는 책들이 그 사람 일생의 사연이고
동전, 성냥갑, 붓펜은 물론 갓 나온 문학잡지, 고장난 전축 이 모두가 내 내력임을 어쩌랴
수북하게 쌓인 담배 재털이는 내 폐부의 실상
답장을 미뤄둔 채 모아둔 연하엽서는 내 사랑의 채무
방에는 전기난로의 코발트선이 뜨겁게 달아올라
영원히 정리되지 않을 내 방과 내 생을 부끄럽게 한다
살이라도 지지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이 정체
*강형렬 시집 <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 창비 2002>
음식물쓰레기통의 뷔페 / 고형렬
음식물쓰레기통에 봄이 온다
제일 먼저 새들이 나뭇가지에서 내려온다
한강 오후 햇살도 그곳을 들렀다 지나간다
담 밑에 모자를 둘러쓰고 침묵하는 쓰레기통
두 마리 애인 새가 음식물쓰레기통에 날아와
날개를 파닥이고 공중부양한다
새들의 나뭇가지빛 부리가 반짝인다
아름다운 파리들의 부패축제가 시작되었다
음식물쓰레기통에서 나오는 향기는
고양이 발톱에게 비닐봉지를 뜯긴다
장미가 곧 이 냄새를 맡고 찾아올 것이다
버킷에 저 쓰레기빛들을 공중에 날려 보낸다
*고형렬 시집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거울이다, 창비 2015>
쓰레기통 / 박성우
짜샤 지저분하게 굴지 마
학생이면 학생다워야지
어디서, 침 찍찍 뱉고 발길질이야
너만 열 받냐
여차하면 나도 뚜껑부터 열린다!
*박성우 시집 <난 빨강, 창비 2010>
쓰레기통 / 전민정
나는 껴안는다
모든 이들이 찌푸리는 걸
불평 한마디 없이
편안한 자리 마다하고
구석에 자리한 채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받아먹으며
누추한 삶의 처마 아래
거북하게 속 가득 찬
당장 버려야 할 것들
온몸으로 껴안고
더러움 속에 슬그머니
버린 알량한 양심까지도
세상에 떠돌던
한때 아끼던
낱말들을 소중히 보듬는다
간밤에 버리지 못한
쉬어빠진 추한 목소리까지
거르지 않은 채 터질 듯 물고
굳게 다문 입술로
모퉁이에 버티고 서 있다
누구나 한때는 다 버려지는
아픔을 견디며
버려진 쓰레기통 / 조경선
https://naver.me/xq51RLhP
쓰레기통은 몰랐다 쓰레기가 될 줄은
가장 먼저 필요한데 구석으로 밀려나
내 앞에
떨어진 슬픔
모두 다 받아낸다
오늘을 지키는 일은 어제보다 무거워
무관심 받아내느라 모서리가 얼룩졌다
한자리
피하지 않아
마음까지 긁혔다
깨질 듯한 침묵이 쌓여 나를 눌러놔도
어둠을 담아두면 온전한 나를 꺼낼까
마음껏
텅 빈 얼굴로
살지 못한 내 이름
우리 집 쓰레기통은 네 개 / 정진규
저로서는 과분하게도 우리집 房이 네 개입니다 하나는 우리 內外가 쓰고 하나는 저의 長男이 쓰며 하나는 제 사랑스러운 딸이 또 하나는 제 막내가 외할머니와 함께 쓰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네 개의 쓰레기통을 버리는 것이 저의 소임입니다 무심코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막내와 외할머니의 쓰레기통엔 졸음에 겨운 옛날 이야기의 꼬리가 버려져 있고 나의 딸의 쓰레기통엔 한밤내 만난 꿈의 꽃잎 하나가 실로 부끄럽게 떨어져 있으며 나의 長男의 쓰레기통엔 英雄 몇 명이 무릎 꿇어 깊은 잠에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 內外의 쓰레기통은 언제나 비어 있습니다 버릴 것이 없사오며 없사온 까닭인즉 저들의 쓰레기통을 채워주고 다시 채워주어도 모자라는 탓이오며 용서를 바라옵기는 가득히 비어 있는 충만을 또한 사랑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 세상의 쓰레기통 속엔 무엇이 버려지고 있는지요
수건 / 전영모
세면장 수건 보관함
차곡차곡 접혀 차례를 기다린다
정년이 되어가는 샐러리맨들 하나 둘 누적되듯
불려나가 다시 후줄근한 모습으로 변신할 수건들
물소리에 예민하다 누군가의 몸을 거치면
세탁기 속으로 던져질 수건들
제 살로 누군가의 몸을 닦아 헐었다
언젠가는 걸레로 뒹굴다가 마침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소모품들
50대 중반에 정년퇴직한 사내들
반경이 줄어 거동이 불편하다
세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공원에서 하루를 보낸다
나도 올 풀린 수건 같아지면
아무도 거들떠 보지않겠지, 갈 곳이 묘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