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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부갓네살 왕의 신상건립과 용광로 심판(3:1~30)
1. 느부갓네살의 거대한 금 신상 건립(3:1~2)
다니엘을 통해 자신이 꾼 꿈의 내용을 알게 되고 그에 대한 선명한 해몽을 들은 느부갓네살 왕은 다급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어떻게 해서든지 나름대로 특단의 방안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가 짜낸 생각은 바벨론 제국 안에 금으로 된 거대한 신상을 세우는 일이었다. 그는 그 신상을 만들어 자신을 비롯한 모든 백성들이 그것에게 숭배하면 다니엘이 해몽한 무서운 재앙을 피해 갈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그 거대한 신상을 만들면서 자기가 꿈에서 본 내용을 근거로 했을 것이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신상 문화가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보통 1.5m 정도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세운 거대한 신상은 꿈에서 얻은 영감에 기초하였을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꿈에서 본 다양한 재질로 된 신상이 아니라 전체를 금으로 만들었다. 즉 꿈에 나타난 거대한 신상은 머리만 순금이고 그 아랫부분은 은, 동, 철과 진흙으로 되어 있었지만, 느부갓네살이 만들어 세운 거대한 신상은 전체가 금으로 된 것이었다. 그는 아마 가장 값비싼 금으로 거대한 신상을 만들게 됨으로써 종교적인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느부갓네살이 만든 금 신상은 높이가 육십 규빗, 넓이가 여섯 규빗이었다. 이는 현대 우리의 도량형으로 환산한다면 높이가 대략 30미터, 넓이가 3미터 가까이 되는 엄청난 규모였다. 그 신상은 바벨론의 남동쪽에 위치한 두라(Dura) 평지에 세워졌다.
느부갓네살은 거대한 신상을 제작하여 세우면서 전국에 있는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을 소집하여 낙성식을 거행했다. 이는 바벨론 제국에 있는 모든 공직자들이 느부갓네살이 만들어 세운 금 신상을 섬기기로 다짐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느부갓네살 왕의 신상 제작과 전국의 중요한 관리들이 참석한 공적인 낙성식은 바벨론 제국의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2. 우상숭배 명령과 일반 백성들의 복종(3:3~7)
바벨론 제국의 전 지역에 흩어져 공직을 수행하던 느부갓네살 왕의 모든 신하들이 신상의 낙성식에 참여하기 위해 두라 평지에 모였다. 낙성식이 거행되는 동안 예식을 주도하는 신하가 큰 소리로 외쳐 왕의 명령을 선포했다. 그것은 바벨론 제국 내에 거하는 모든 백성들과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여러 종족들에 속한 자들은 예외 없이 그 금 신상 앞에 경배해야 한다는 명령이었다. 이제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을 비롯한 각종 악기 소리가 울려 퍼질 때 모든 백성들은 그 신상에 엎드려 경배해야 했다. 그것은 왕의 준엄한 명령이었으므로 그에 복종하지 않는 것은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물론 낙성식 현장에 있으면서 시각과 청각을 통해 모든 것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국한되지 않았다. 엄청나게 넓은 바벨론 제국의 전역에 흩어져 있는 모든 백성들이 그 악기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묘사하고 있는 것은 두라 평지에 세워진 금 신상의 의미가 지엽적인 것이 아니라 바벨론 제국 전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하여 느부갓네살이 특별히 만든 커다란 금 신상은 모든 백성들이 섬겨야 할 신으로 선포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떠한 핑계와 이유가 없는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느부갓네살이 만들어 세운 금 신상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꿈을 통해 보여주신 신상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그것은 느부갓네살이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신상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가 꿈속에서 본 신상을 기억하며 다니엘의 해몽을 염두에 두고 그 신상을 제작해 세웠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오해한 결과로 말미암은 엄청난 신앙의 오류를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에게 꿈을 통해 장래에 있게 될 일들에 대한 메시지를 주셨다. 하지만 즉시 잊어버린 그 꿈의 내용을 다니엘을 통해 다시 기억하게 되고, 해몽을 듣게 된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되는 참람한 행동을 했다. 그는 꿈을 꾸고 해몽을 들은 결과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꿈에서 본 신상을 우상으로 만들어 백성들에게 경배를 강요하였던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어리석게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이 통치하는 바벨론 제국을 위한 길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바벨론에 살고 있으면서 그 신상에 경배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극렬히 타는 용광로에 던져 넣어 극형에 처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므로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 등의 악기 소리가 신호가 되어 신상 숭배를 알릴 때 바벨론 제국 안에 있는 모든 백성들과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종족들은 느부갓네살의 금 신상에 경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서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바벨론 근교에 있던 두라 평지에 거대한 금 신상을 세운 느부갓네살은 바벨론 전역의 각 지방마다 그 신상을 위한 신당(神堂)들을 세웠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느부갓네살 왕은 그 신상에 연관된 신당들을 통해 제국 내의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신상에 경배하게 함으로써 종교와 정치적인 사상의 통합을 이룩하고자 했을 것이다.
3. 다니엘의 친구들의 우상숭배 거부(3:8~18)
바벨론 제국의 모든 백성들은 느부갓네살의 금 신상을 경배하라는 왕명에 복종했다. 이런 와중에 예기치 못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것은 중요한 위치에서 바벨론을 위한 공직자로 근무하던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의 명령을 단호히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니엘의 이름이 빠져 있다. 즉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의 신상에 경배하지 않으므로 인해 문제를 일으켰다는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부 학자들은 이때 다니엘이 몸이 아파서 낙성식에 참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고, 또 어떤 학자들은 그가 다른 중요한 일을 하느라 낙성식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 진실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다니엘이 직접 현장에 가지 않음으로써 신상 숭배를 피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바벨론 제국의 행정 지역을 관할하는 관료로서 신상 숭배를 위한 직무를 감당하며 일반 백성들에게 신상 숭배를 강요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위해 두라 평지에 세워진 금 신상을 섬기는 지방 신당들을 만들고 백성들로 하여금 그에 경배하도록 강요하며 감독하는 역할을 해야 했을 것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위기에 직면했던 것은 바로 그 명령을 강력하게 거부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 느부갓네살 왕에게 충성을 다하던 신하들 가운데 여러 사람들이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신상 숭배를 하지 않는 그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게 되었다. 왕명을 거역하는 것은 충성된 신하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유다 출신의 세 공직자들의 소행을 느부갓네살 왕에게 고발했다. 각종 악기들이 울려 퍼질 때 금 신상을 향해 경배하도록 명한 왕의 준엄한 명령을 어긴 배역한 신하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참소로 말미암아 고위 공직자였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 왕 앞으로 불려 갔다. 국가 정책에 솔선수범해야 할 공직자들이 개인적인 판단으로 왕의 명령을 거부한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국가를 위해 일하는 공직자로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기본적인 자세였기 때문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당시 느부갓네살 왕은 유다 출신의 그 신하들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저들이 자기가 아끼는 다니엘의 가까운 친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왕은 그들에게 즉시 벌을 내리려 했던 것이 아니라 전후 사실을 파악한 후 용서하려고 마음먹었다.
느부갓네살 왕은 먼저 그들이 정말 자신의 명령을 어겼는지 확인했다. 본문의 문맥으로 보아서는 왕이 저들의 신상 숭배 거부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제라도 그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왕명에 따라 신상에 절을 하게 되면 용서하리라고 말했다. 앞으로 언제든지 신상 숭배를 위해 각종 악기가 울려 퍼지게 될 때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지난 일들에 대해서는 문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저들이 그때 가서도 신상 숭배를 거절할 경우에는 뜨거운 용광로 가운데로 던져 사형에 처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되면 저들이 섬기고 있는 하나님은 물론 어떠한 신이라 할지라도 저들을 구해낼 수 없으리라는 엄포를 놓았다. 이것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이스라엘 민족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인해 자신이 만든 금 신상에 대한 숭배를 거부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느부갓네살 왕의 심적 갈등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잊어버린 자신의 꿈의 내용을 알게 해주고 그에 대한 해몽을 했던 다니엘의 모든 언사(言事)가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잘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이스라엘 민족의 신이라 할지라도 능히 자신의 손에서 저들을 구할 수 없으리라고 말했을 때는 상당한 심적인 부담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의 말을 들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일언지하에 왕명을 거부했다. 이는 왕 앞에서는 침묵하고 있다가 나중에 가서 왕명을 거역한 것이 아니라 왕의 면전에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저들의 의사를 분명히 밝혔던 것이다. 그에 대해 달리 대답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명백하다는 것이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아뢰었다. 굽어살펴 주십시오. 이 일을 두고서는, 우리가 임금님께 대답할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임금님, 우리를 지키시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활활 타는 화덕 속에서 구해 주시고, 임금님의 손에서도 구해 주실 것입니다.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임금님의 신들은 섬기지도 않고, 임금님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을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굽어살펴 주십시오”(단3:16~18, 표준새번역).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인한 그들의 결심은 확고하여 흔들리지 않았다. 왕이 저들을 극렬히 타는 용광로에 던져 넣는다 해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능히 건져내실 것임을 말했다. 그것은 느부갓네살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반하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즉 왕이 자신과 바벨론 제국을 위해 꿈에서 본 거대한 금 신상을 만들어 온 백성으로 하여금 그에 숭배하게 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행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선언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설령 왕이 극렬히 타는 용광로 가운데 던져 거기서 죽게 될지라도 왕명을 따를 수 없음을 분명히 말했다. 참된 하나님을 알고 믿는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바벨론의 이방신을 섬기거나 왕의 금 신상에 절할 수 없음을 밝혔다. 이것은 사실 바벨론 제국의 녹을 먹고 있는 공직자로서 감히 왕을 향해 할 말이 아니었다. 이 말은 그들이 바벨론 제국에 충성할 의지가 없음을 선포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자녀로서 바벨론 제국의 신앙과는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 있음을 분명히 선언한 것이었다.
4. 용광로 심판(3:19~23)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의 명령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반응을 보며 극도의 분노를 느꼈다. 그 자리는 여러 신하들이 동석한 자리였으므로 왕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는 낯빛이 변하여 즉시 저들을 사형에 처하도록 명령했다. 왕은 용광로를 평소보다 일곱 배나 뜨겁게 하도록 하고 극렬히 타는 불 가운데 던져 죽이라 했다. 그들은 재판도 없이 즉결 처분에 처해진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평상시에 입고 있던 복장 그대로 처형되었다. 그래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평상시처럼 입은 바지와 겉옷과 모자와 기타 의복 위에 특별한 겉옷을 걸친 채 거대한 용광로에 던져졌다.
이 과정에서 여러 명의 병사들이 그들을 끈으로 결박한 채 용광로에 던져 넣었을 때 그 뜨거운 불로 인해 병사들 가운데 몇 사람이 불에 타 죽게 되었다. 우리는 그 사실을 통해 그 용광로 불이 얼마나 뜨거웠나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그 불에 던져지는 무서운 극형에 처해진 것이다.
5. 용광로 속의 ‘신들의 아들 같은 이’(3:24~30)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뜨거운 용광로에 던져지는 극형에 처해졌다. 느부갓네살 왕을 비롯한 여러 관리들이 그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끔찍한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왕명을 거역하는 것에 대한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아무도 예견치 못한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그것은 뜨거운 용광로 불 가운데 네 사람이 걸어 다니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격렬한 불 가운데서 그들은 마땅히 타 죽어야만 했다. 그들을 결박하여 용광로에 던져 넣던 몇몇 병사들은 용광로 밖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불에 타 죽는 모습을 잠시 전에 목격한 그들이었다. 그런 뜨거운 불 가운데 던져진 다니엘의 친구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걸어 다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불 가운데 걸어 다니는 사람이 세 사람이 아니라 네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의 처형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용광로 불 속에 던져진 자들을 분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불 가운데 있는 저들의 얼굴을 분명히 볼 수는 없었을지 모르나 그들이 입고 있던 의상과 외형을 통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느부갓네살 왕은 용광로 불 가운데 거니는 네 사람 가운데 마지막 한 사람은 밖에서 던져진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왕은 불 가운데 던져 넣은 사람이 세 사람임을 신하들을 통해 다시금 확인한 후, 네 번째 인물의 모양이 ‘신들의 아들’과 같다는 말을 했다. 이는 왕이 자신의 눈에 비친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게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느부갓네살 왕은 심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왕은 용광로에 던져 넣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불러 밖으로 나오도록 했다. 그때 느부갓네살 왕은 그들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으로 지칭하여 불렀다. 이는 왕이 여호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의 놀라운 능력을 보고 당황했기 때문에 나타난 반응이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뜨거운 용광로 불 속에 던져진 인간들이 자기 능력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사실임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용광로에서 밖으로 나오라는 느부갓네살의 말을 들은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불 속에서부터 멀쩡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왕과 함께 사형 장면을 줄곧 지켜보던 모든 관리들은 불에서 나온 세 사람이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고 의복이 전혀 타지 않았던 점과 불탄 냄새조차 없는 상태를 확인하게 되었다.
그것을 본 느부갓네살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용광로 불에서 죽음에 처하게 되었을 때 특별한 사자를 보내 구출한 저들의 신에게 찬송한다는 말을 내뱉었다. 왕은 생명을 박탈당하는 두려운 위협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명령을 어기면서 신앙의 지조를 굳건히 지킨 그들을 칭찬했다. 그로 인해 저들이 섬기는 신이 자신의 종들을 구원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런데 왕을 비롯한 모든 신하들이 놀란 일은 그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뜨거운 용광로 불 가운데 거닐고 있던 네 사람이 함께 나온 것이 아니라 세 사람만 걸어 나왔다. 그것은 불 속에 있다가 사라진 신들의 아들 같은 그가 어디선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느부갓네살 왕은 바벨론 전국에 조서(詔書)를 통한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앞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자들을 엄벌에 처할 것이므로 그런 행동을 금하라는 것이었다. 만일 그 왕명을 어기는 자가 있다면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겠다고 했다. 이는 앞에서 자기의 꿈을 알려주지 않는 바벨론 제국의 술사들과 박사들을 향해 느부갓네살 왕이 했던 말과 동일하다(단2:5).
왕은 여러 신하들이 있는 자리에서 유다 민족이 섬기는 신 이외에 참된 신이 없음을 언급했다. 그리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그 전보다 더 높은 지위에 앉도록 했다. 그러나 그것이 느부갓네살의 회심(回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는 단지 자신의 위급한 상황을 피하려 했을 따름이다.
당시 바벨론 제국의 전반적인 형편과 기록된 다니엘서의 문맥을 살펴볼 때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이 만들어 세운 그 금 신상을 즉시 파괴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나아가 전체 백성들에게 금 신상에 대한 숭배를 중단하도록 명령한 것 같지 않다. 단지 이스라엘 민족에게 부분적으로 종교적 자유를 허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6. 메시야 예언
다니엘의 세 친구들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 왕이 만들어 두라 평지에 세운 금 신상에 숭배하지 않음으로써 뜨거운 용광로에 던져진 사건 가운데는 중요한 메시야 예언이 나타나고 있다. 즉 그것은 단순한 이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오시게 될 메시야 예언에 대한 구속사적 사건이다.
뜨거운 용광로 불에 던져진 다니엘의 세 친구는 도저히 살아날 수 없는 죽음의 형편에 처하게 되었다. 그들을 그 처참한 상황에서 구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굳이 있다고 말한다면 유일하게 바벨론 제국을 통치하는 느부갓네살 왕이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이 직접 그들을 무서운 사형에 처하도록 명령했다. 감히 그 명령에 저항할 사람은 아무도 있을 수 없다.
그렇지만 누부갓네살의 판단과 행동에 대해 하나님께서 직접 강한 제동을 거셨다. 느부갓네살이 죽이고자 하는 자들의 생명을 하나님이 지키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억압하고 세계적인 대제국을 통치하는 느부갓네살 왕에게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드러내셨던 것이다.
느부갓네살이 자신의 우상숭배 대열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용광로에 던져 넣었을 때 그곳에는 ‘신들의 아들 같은 이’가 그들과 함께 있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그는 용광로 밖에 있는 자들에게 사람 같으면서 동시에 신의 아들 같은 존재로 보였다. 즉 인간은 인간인데 보통 인간과는 다른 매우 특별한 인간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풀무 불 속에 있었던 이 네 번째 인물이 과연 누구였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약간씩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그가 억울하게 죽음에 처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보호하기 위해 보내진 하나님의 천사였다고 말하며 또 다른 어떤 학자들은 그가 곧 그리스도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과 같으면서 신의 아들 같은 이’가 용광로 불 가운데 있는 것을 본 느부갓네살은 두려움에 빠져 자신의 악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느부갓네살은 원래의 자기 판단에 따라 사형에 처하려 했던 자들을 ‘그 신의 아들 같은 사람’의 존재로 말미암아 저들의 생명을 박탈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들에게 그전보다 더욱 높은 지위를 주어 존귀한 자리에 앉히게 되었다.
우리는 이 사건에 연관된 모든 사실과 하나님의 사역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던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역시 좁은 의미에서는 우상숭배를 거절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위한 것이었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절망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것이었다.
느부갓네살 왕의 용광로 사형집행의 중단과 그에 관련된 모든 소문은 당시 전 세계로 퍼져나갔을 것이 틀림없다. 바벨론 제국의 일반 시민들은 그것이 사실인지 헛소문인지 긴가민가하면서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냥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매우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소망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사람’과 같으며 동시에 ‘신들의 아들’ 같은 존재가 느부갓네살이 꿈에서 보았던 ‘사람이 손대지 않은 돌’이라는 사실이다. 거대한 신상의 발을 쳐서 전체를 무너뜨리고 세상을 가득 채운 커다란 무더기가 되어 새로운 왕국을 세운 그 돌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을 용광로 속의 특별한 인물을 통해 다시금 보게 되었던 것이다.
느부갓네살 왕이 신상에 관한 꿈을 꾸었을 때는 혼자 꾸었으며 곧장 그 내용을 잊어버렸다. 나중 다니엘을 통해 그 꿈의 내용을 알게 되었으며 그에 대한 해몽을 듣게 되었다. 그것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침실과 밀실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런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 대한 느부갓네살 왕의 사형집행은 공개적이었다. 그 죽음의 현장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특별한 한 ‘사람’을 보내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저들의 생명을 구출한 것은 공개적인 메시지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바벨론 제국을 비롯해 앞으로 있게 될 역사적인 큰 왕국들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언약의 왕국을 건설하게 될 ‘사람이 손대지 아니한 돌’이 곧 ’그 사람‘이라는 사실을 선포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