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제(齊) 자의 운〔齊字之韻〕
이경양(李敬養)이 국자장(國子長 대사성)이 되어 승보시(陞補試)를 설치하고 시제(詩題)를 출제하기를 “자유(子游)와 자하(子夏) 사이에서 섭제(攝齊)하지 못함이 한스럽다.”라고 하며 제(齊) 자를 운자로 뽑았다. 제생들이 “제(齊) 자는 어떤 운으로 지을까요?”라고 물으니, 이경양이 “제 자의 운을 왜 다시 묻는가? 응당 제 자로 운을 달아야지.”라고 대답하였다. 제생들은 처음에 지(支) 운으로 할지, 가(佳) 운으로 할지 의심이 되어 물었던 것인데 시관의 말이 이미 이와 같으니, 드디어 제 자로 운을 달았다. 지금 그때 과거 답안을 고찰하면 알 수 있다.
통진 현감(通津縣監) 김광백(金光白)이 석채(釋菜) 때에 유생으로 하여금 축문을 쓰게 했는데, 생폐(牲幣)와 예제(醴齊)라는 구절에서 제(齊) 자로 읽으니, 크게 놀라서 “이 글자는 재(齋) 자로 읽어야 한다. 유생들이 참으로 무식하구나.”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사람들이 섭제 대사성(攝齊大司成), 예재 태수(醴齋太守)로 비웃었으니, 이는 단지 제(齊) 자가 가지런하다〔齊整〕는 의미의 제(齊)만 되는 줄 알고 옷 아래를 꿰맨다〔衣下縫〕는 의미에선 자(粢)로 발음됨을 알지 못한 것이며, 제사에 재계〔齋〕만 있는 줄 알고 알맞게 섞는다〔和齊〕라는 의미에서는 제(劑)로 발음됨을 알지 못한 것이다. 천하의 모든 것에는 상대가 있다.
그러나 김광백은 본래 무인이라 괴이할 것이 없지만, 국자 선생이라면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아, 사람이 배우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주-D037] 이경양(李敬養) : 1734~?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호(聖浩)이다. 1772년 문과에 급제하였여 호조 참의, 이조 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정조실록》에는 1780년 8월에 성균관 대사성으로 삼았다는 기사와 1784~85년에 성균관 대사성으로 삼았다는 기사가 있다.[주-D038] 섭제(攝齊) : 섭자 또는 섭재로도 읽는다. 공경의 예를 표하기 위하여 당에 오를 때 옷자락을 잡아 살짝 들어 올리는 행위를 가리킨다. 《논어》 〈향당(鄕黨)〉에 ‘攝齊升堂’이란 구절이 있는데, 내각본(內閣本)에서는 ‘齊音咨’라 하여 ‘자’로 발음하였고, 언해(諺解)에서는 ‘셥승당’이라 하여 ‘재’로 발음하였다.[주-D039] 석채(釋菜) : 소나 양(羊) 따위의 희생(犧牲)을 생략하고, 다만 소채(蔬菜) 따위로 간소하게 약식(略式)으로 공자(孔子)의 제사를 지내는 일.[주-D040] 생폐(牲幣)와 예제(醴齊) : 제사에 쓰는 희생과 폐백과 술을 가리킨다. 예제는 종묘(宗廟) 등의 대제(大祭)에 사용하는 다섯 가지 술인 오제(五齊)의 하나로, 첫 번째는 술찌끼가 떠 있는 범제(泛齊), 두 번째는 찌끼를 거르지 않은 예제, 세 번째는 탁주인 앙제(盎齊), 네 번째는 찌끼가 밑에 가라앉아 있는 붉은색의 제제(緹齊), 다섯 번째는 탁주와 청주가 반반씩 섞여 있는 침제(沈齊)이다. 《周禮 天官冢宰 酒正》
[齊字之韻]
李敬養爲國子長。設陞補出詩題。曰恨不得攝齊游夏間而押齊字。諸生問曰齊字以何韻賦之乎。李曰齊字之韻。更何問乎。當以齊韻押之矣。諸生始以支佳爲疑而問之。試官之言旣如此。遂以齊字韻押之。今考其科作可驗。通津倅金光白當釋菜。令儒生寫祝文。至牲幣醴齊。以齊字讀之。大駭曰此字音當以齋字讀之。儒生眞無識哉。時笑以爲攝齊大司成,醴齋太守。盖徒知齊之爲齊整之齊。而不知衣下縫之義則當音粢。徒知祭之有齋。而不知和齊之義則當音劑。天下無不對也。然金固武人無足怪。而國子先生寧不羞乎。噫。人可以不學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