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란? ‘학교에서 학기나 학년이 끝난 뒤 또는 더위나 추위를 피하기 위하여 여름이나 겨울에 수업을 일정 기간 동안 쉬는 일’ 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요즈음은 학교 이외의 많은 교육 기관이나 하던 일을 쉬는 경우도 재미있는 표현으로 방학을 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쨌든 방학은 가기 싫은 학교를 가지 않으므로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마냥 즐거운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방학이라는 단어 속에는 그려지는 그림이 너무 많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숙제다. 그 긴 방학 동안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만큼은 방학숙제를 다 해 보리라 다짐 한다. 언제나 앉은뱅이책상이 놓여진 벽에는 시계일정표가 붙어 있다. 방학숙제는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빠짐없이 들어 있다. 고장난 시계는 하루에 한번은 맞는데 일정시계는 맞은 때가 없다. 언제나 개학날이 가까워지면 마음만 천근이 된다.
방학하면 가장 먼저 외갓집이 생각난다. 아마 어머니 다음으로 나를 사랑해 주시는 외할머니 때문이리라.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물놀이, 썰매타기, 연날리기, 팔이 빠져라 바람을 일으키던 딱지 내기, 소꼴 내기, 구술치기, 자치기, 축구(축구 공으로 하는 경기가 아닌 돌을 넘어 뜨리는 놀이의 하나), 버들피리 불기, 숨바꼭질 등 놀이라고는 없었을 것 같은 그 시절 함께 놀던, 철따라 색다른 놀이에 젖어 있던 친구들 모습이 주마등처럼 빛바랜 추억의 나래를 펼친다. 즐거운 추억 속에 우리들 시골뜨기에게는 농사일을 거들어야 하는 고달픔도 있었다. 수많은 방학의 기억 가운데 초등학교 시절 방학숙제에 관한 추억 주머니 속에서 웃음이 먼저 번져나는 마음으로 소중한 기억하나를 끄집어 내 본다.
초·중·고 스무 번이 넘는 방학가운데 숙제가 없었던 방학은 없었다. 방학하면 아킬레스건처럼 떠오르는 것이 방학숙제이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숙제 가운데 여름방학 단골 메뉴는 뭐니 뭐니 해도 채집이다. 채집 숙제가 없는 방학은 없었던 것 같다. 다른 숙제들은 난리가 일어난 듯 발을 동동 구르며 벼락치기로 할 수 있었으나 채집만큼은 밤을 새워서 할 수 있는 숙제가 아니었다. 여름 방학이 되면 학교 앞 문방구에는 곤충채집통과 식물채집용 스케치북이 즐비하게 놓여 꼬마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곤충채집통은 A4 용지크기에 두께가 5cm 정도 되는 윗면은 엷고 투명한 셀룰로이드 재질로 마감된 종이 상자였다. 상자 안에는 수수깡을 잘게 썰어서 접착제로 붙여 놓은 것이 전부였다. 수수깡 숫자만큼 바늘 못이 들어 있었고 약방의 감초처럼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은행 알 크기의 흰색 나프탈렌이 한 알 들어 있었다. 저학년 때는 그게 무슨 역할을 하는지 몰랐지만 고학년이 되면서 방부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학날이 되어 엄마가 소꼴을 시켜서 숙제를 못했다고 떼를 쓰는 나에게 이슬 내린 텃밭을 뒤지시던 어머니가 참매미, 참나무 하늘소, 고추 잠자리 옆 빈자리에 방아깨비와 메뚜기와 여치를 꽂아 주면서 앞치마자락으로 눈물을 닦아 주던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지금은 떼를 쓰는 대신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드리고 싶은데 하늘나라에 계시는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다. 지금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어머니 은혜였고 지혜였다. 쉽게 잡을 수 있고 변질되기 쉬운 곤충의 자리를 남겨두셨다는 것을 일흔이 넘어서야 깨닫는 불효자가 어머니의 끝없는 자식 사랑에 감사의 눈물을 흘립니다. 신주단지 모시듯 채집통을 들고 학교를 향해 뛰었다. 지각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앞서서 방아깨비를 고정시킨 핀이 빠지고 셀룰로이드 덮게 접착이 떨어진 줄도 몰랐다. 급기야는 책상 밑에 둔 채집통에서 힘이 센 방아깨비가 자유를 찾아 길을 나섰다. 공고롭게도 방아깨비는 내가 마음속으로 좋아하던 여학생 예쁜 머리핀 옆으로 탈출을 했다. 교실은 자지러질 듯 웃음과 괴성소리 더불어 도망 다니는 방아깨비를 잡느라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도 무섭던 선생님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고개를 들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부끄러움에 어떻게 수습이 되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부끄러운 순간을 넘기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던 것 같다.
고희가 넘은 나이에 다시 학생이 되었다. 수필학교 학생이 되었다. 수필학교는 의무교육이 아니다. 걸어온 길 되돌아 보아 마지막 잎새를 그리기 위해 입학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수필학교 숙제는 빠짐없이 하리라 다짐해 본다. 오늘은 빛고을을 다녀와서 몹시 피곤하다. 숙제를 반드시 해야 하는 이유 또한 더욱 명백해졌다. 빛고을에 간 걸음에 한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답이 없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더니 몹시 바쁜가 보다며 혼자서 피식 웃었다. 집에 도착해서 문자 하나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김영배 아들 김상수 입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4월25일 돌아 가셨어요. 아버지께 용무가 있으신 걸까요?” 왠지 마지막 잎새를 완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섬광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