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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태감 해로공(太監 海老公) 이윽고 그들은 북경에 도착했다. 성 안에 들어섰을 때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모십팔은 몇번이나 위소보에게 행동을 조심 하라고 당부했다. 북경은 포졸이나 강도들 그리고 이목이 많은 곳이니 어떤 빈틈도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준 것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나에게 무슨 빈틈이 있단 말이야? 모형아나 빈틈을 드러내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모형은 오배와 무공을 겨룬다고 하지 않았어? 이제 그를 찾아 갑시다." 모십팔은 웃음을 웃을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오배를 찾아 무공을 겨룬다고 한 것 은 오기로 한 마디 내뱉은 데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거칠고 경솔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강호에 서 이십년간 굴러먹은 사람이라 오배가 밑에 많은 부하를 거느리고 있는 벼슬아치라는 것을 모 를 리가 없었다. 그와 같은 사람이 자기와 같은 강호의 사내와 무공을 겨룰 이유가 없었다. 따 지고 보면 그 자신의 무공도 이류에 불과했다. 오배가 만약 만주의 제일 용사라면 십중팔구 그 를 이길 수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위소보 앞에서 큰소리를 친 끝이라 북경으로 들어오지 않을 수 없었다. 속으로 이 애를 데리고 북경성에서 열흘이고 보름 동안 돌아 다니며 경성의 경치를 구경하다가 통쾌하게 먹고 마신 후 양주로 되돌려 보내면 ㄷ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서쪽 어느 조금만 주점에 이르러 술과 음식을 시켰다. 술과 음식을 먹고 있을 때 갑자기 밖에서 두 사람이 들어왔다. 한 늙은이와 소년이었는데 늙은이는 육십여 세 되었고 소년 은 열 두세 살 정도 돼 보였다. 그런데 두 사람은 똑같이 이상야릇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위소 보는 그들이 어떤 사람인 줄 몰랐으나 모십팔은 그들이 바로 황궁의 태감(太監:내시)임을 알아 보았다. 늙은 태감의 얼굴은 누랬으며 허리는 구부정했고 끊임없이 기침을 했다. 아마도 심한 병에 걸려 있는 것 같았다. 나이 어린 태감은 공손히 그를 부축해 탁자 곁에다 앉혔다. 늙은 태감은 뾰족한 음성으로 말했다. "술을 가져와." 주보(酒保:술을 나르는 점원)는 공손하게 대답하면서 술을 날라왔다. 늙은 태감은 품에서 하나의 약봉지를 꺼내더니 펼쳤다. 조심스럽게 새끼 손톱으로 약간의 가루를 찍어서 술에 탔다. 그리고 약봉지를 품속에 갈무리하고 술잔을 들어 천천히 마셨다. 갑자기 그는 전신을 부 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 주보는 당황해서 물었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어디 아프십니까?" 나이 어린 태감이 호통을 내질렀다. "잔소리말고 어서가봐!" 주보는 허리를 구부리고 웃음을 지으며 한 켠으로 물러섰다. 그리고 두 사람을 아래위로 훑어 보았다. 늙은 태감은 두 손으로 탁자를 짚고 이빨이 서로 마주쳐 우드득 소리가 나도록 몸 을 떨어댔다. 잠시후 탁자마저도 흔들거렸고 탁자 위의 젓가락이 하나하나 땅바닥에 떨어지게 됐다. 나이 어린 태감이 당황해서 물었다. "공공(公公:할아버지라는 뜻) 약을 더 드시는게 좋지 않을까요?" 그리고 손을 뻗어 약봉지를 꺼내 펼치려고 했다. 그 늙은 태감이 고함을 쳤다. "안돼....안돼! 싫어........" 그 늙은 태감은 매우 긴장되어 보였다. 나이 어린 태감은 약봉지를 감히 펼치지 못했다. 바로 이때였다. 주점 문 밖으로부터 발걸음 소리가 들리며 일곱명의 대한이 걸어서 들어왔 다. 모두 윗 몸을 벌거벗고있었으며 아랫도리는 소가죽으로 만든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뒤 로 땋은 머리카락을 둘둘 말아 머리 위에 얹어놓고 있었는데 온몸은 번쩍번쩍 빛이 났다. 아마 도 기름을 머리 위에서 발 끝까지 바른 모양이었다. 일곱 명 모두 근육이 울퉁불퉁하고 가슴에 는 시커먼털이 숭숭 나 있었다. 손을 한번 뻗치는데 손바닥이 넓고 손가락도 굵었다. 일곱명은 나누어 두 개의 탁자에 갈라 앉더니 큰소리로 말했다. "빨리 술을 가져와! 그리고 쇠고기와 닭고기를 가져와. 빨리 빨리." 주보는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네.네." 그리고 술잔과 젓가락을 놓으며 물었다. "손님 어떤 음식으로 드시겠읍니까?" 그러자 다른 한 명의 대한이 노하여 부르짖었다. "너는 귀머거리냐?" 그러자 다른 한 명의 대한이 갑자기 손을 뻗어 주보의 뒷허리를 움켜잡았아서 공중으로 높 이 들어 올렸다. 주보는 놀라 손과 발을 버둥거리며 고함을 질러댔다. 일곱명의 대한은 껄껄 소 리내어 웃어ㅓ다. 그 대한이 손을 놓자 그 주보는 땅바닥에 쿵하고 떨어졌다. 주보는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아이쿠! 어머니!" 그 대한은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모십팔이 나직이 말했다. "저들은 씨름하는 사람들이야. 사람을 잡아서 반드시 멀리 내던지지. 그래야만 상대방이 반 격하는걸 막을 수 있거든." 위소보는 물었다. "모형은 씨름을 할 줄 아시오?" 모십팔이 말했다. "나는 배운 적이 없어. 씨름같이 우둔한 재간은 무공의 고수와 부딪치게 된다면 별로 쓸모가 없지. "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다면 모형은 저들을 이길 수 있겠네?" 모십팔은 미소했다. "멧돼지 같은 미련한 녀석들과 싸울 필요가 뭐 있어?" "모형이 저 일곱 사람과 싸우면 반드시 지고 말걸?" "재들은 나의 적수가 안돼." 위소보는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이봐요! 덩치큰 양반들. 내 친구가 그러는데 자기 혼자서 당신들 일곱사람을 이길 수 있다 고 했소!" 모십팔이 재빨리 말했다. "쓸데없는 시비를 일으키지 마라." 위소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시비를 불러 일으키는 거였다. 그 일곱 명의 대한이 죄없는 주보를 내동댕이 치는 것을 보고 울화가 치밀었던 것이다. 그는 모십팔이 혼자서도 일곱 명을 이길 수 있다고 하자 충동질을 하여 모십팔로 하여금 그들의 버릇을 고쳐놓고 싶었던 것이다. 일곱 명의 대한은 일제히 모십팔과 위소보를 쳐다 보았다. 한 사람이 물었다. "꼬마야. 무어라고 했지?" 위소보가 말했다. "내 친구가 당신들이 주보를 못살게 굴어서 영웅호걸이 못된다고 했소. 용기가 있다면 자기와 싸우자는 것이오." 한 명의 대한이 두눈을 부릅뜨고 모십팔을 바라보며 말했다. "후레자식! 정말 그렇게 말했느냐?" 모십팔은 일곱 명이 씨름하는 만주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일을 시끄럽게 하 고 싶지 않았으나 만주사람을 대하게 되면 그만 울화가 치밀었고 또 그 대한이 입을 열자마자 욕 을 하는 것을 보고 냅다 주전자를 들어 던졌다.그 대한은 손을 들어 막으려고 했다. 그런데 모십 팔이 내던지는 수법에는 이미 내공이 실려 있었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술 주전자가 그의 팔에 맞게 되었을 때 그 대한은 팔이 격렬하게 아픈 것을 느끼고 '아이쿠' 하고 부르짖었다. 그러자 다른 대한이 달려 들었다. 모십팔이 발을 들어 후려쳤다. 만주 사람이 씨름을 할 때 발을 쓰는 것은 지극히 드문 일이었다. 따라서 대한은 발길질을 피하지 못하고 아랫배를 걷어차이게 되어서 곧장 뒤로 날아가게 되었다. 너머지 다섯 대한은 후레자식이라는 욕을 마구하면서 다투어 달려들었다. 모십팔은 몸놀림 이 날렵했다. 대뜸 금나수법(擒拿手法)을 펼쳐 팔굽으로 부딪치고 손으로 내려치는 등 삽시간에 네 명을 쓰러뜨렸다. 한 명이 비스듬히 모십팔ㅇ 일장ㅇ르 받아낸 후 손을 뻗어 모십팔의 허리 를 잡고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의 몸을 빙글 돌렸다가 머리 쪽을 아래 쪽으로 해서 계단 쪽 에 부딪치도록 던지려고 했다. 그런데 모십팔이 두 다리로 걷어차자 퍽! 소리가 나며 그자의 가슴팍을 강타하게 되었다. 그 대한은 입을 벌리더니 피를 마구 뿜어내며 두 손을 놓았다. 모십팔은 그 대한이 뒤로 벌렁 쓰러지는 것을 보고 두 발로 가슴을 밟고 서서 두 손으로 회풍불유(廻風拂柳) 라는 일초를 펼쳐서는 비스듬히 내려쳤다. 그러자 얻어맞은 대한의 갈비뼈가 ' 우두둑'하는 소리를 내며 부러져 나갔다. 모십팔은 대뜸 위소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 꼬마야 너는 언제나 말썽을 불러 일으키기만 하는 구나! 빨리 나가자." 두 사람은 주점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그때 늙은 태감이 허리를 구부정한 뫼습으로 팔을 뻗어 왔다. 모십팔은 손을 들어 슬쩍밀었다. 그런데 손이 그의 어깨죽지와 맞닿게 되었을 때 전 신이 흠칫했다. 자기도 모르게 휘청하며 옆으로 몇걸음 밀려나게 되었고 왼쪽 허리를 탁자에 부딪치게 되었다. 그 바람에 탁자가 옆으로 쓰러졌다. 그러면서 위소보도 함께 내동댕이 쳐졌다. 위소보는 큰 소리로 외쳤다. "아이구! 어머니 아파죽겠네!" 모십팔은 재빨리 두 다리에 힘을 주어 겨우 똑바로 섰다. 전신이 불길에 닿은 것처럼 뜨겁 게 달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는 속으로 크게 놀라고 말았다. 늙은 태감을 바라보니 허리를 구부정 해가지고 연신 기침을 하고 있었다. 조금 전일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모십팔은 고수를 만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대방은 십중팔구 몸에 사술(邪術:사악한 무공)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렇지 않으면 무공이 설사 자기보다 높다 하더라도 결코 자기 를 가볍게 나뒹굴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무공에는 차력반타(借力反打)라던가 사양발천근 (四兩發千斤)이라는 수법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상대방이 큰 힘을 써서 후려쳐 올때 얼마만큼 의 커다란 힘으로 반격을 하는 것이지 결코 조그만 힘을 큰 힘으로 변화 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모십팔은 급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아직도 큰 소리로 엄살을 떨고 있는 위소보를 들고 뒤 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세걸음을 달려가게 되었을때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ㄴ은 태감은 이미 그의 앞에 있었다. 모십팔은 깜짝놀라 발 끝에 힘을 주며 뒤로 몸을 날렸다. 헌데 그의 두발이 미쳐 땅 에도 닿기 전에 갑자기 등에 가볍고 부드러운 힘이 부딪쳐 왔다. 그는 급히 왼손을 뒤로 내밀어 일추를 펼쳤다. 그러나 허공을 치고 말았으며 그의 몸은 중심을 이ㄹ고 두명의 대한 몸위로 쓰러지게 되었다. 이번에 그는 매우 심하게 쓰러졌으나 다행이 두 명의 대한이 비대하고 건장하여 좋은 방석 이 되어 주었기 때문에 상처를 입지 않았다. 두명의 대한은 다리뼈가 부러져서 몸을 일으키지 못했지만 손과 팔은 이상이 없었다. 그들은 즉시 씨름 수법을 펼쳐서 그를 꼼짝 못하도록 얼 싸안았다. 모십팔은 항거하려고 했으나 손과 발에 전혀 힘을 쓸수가 없었다. 등에 있는 혈도를 이미 찍히고 만 것 이었다. 그는 등을 하늘 쪽으로 향한채 잡혀 있었기 때문에 등 뒤의 정경을 볼 수가 없었다. 그때 연신 늙은 태감의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늙은 태감은 힘 없이 나이 어린 태감을 꾸짖고 있었다. "너는 또 약을 먹이려고 하느냐? 이것이야말로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이 약을 조금 이라도 더먹게 된다면 이 늙은 목숨은 그만큼 더 짧아지게 되는 것이다. 쿨룩쿨룩.... 쿨룩쿨룩, 너 라는 아이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구나." 나이 어린 태감은 말했다.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이후에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늙은 태감은 말했다. "이후라니? 나는 며칠을 살지도 모르는 형편이다. 쿨룩......쿨룩...." 나이 어린태감이 말을 돌렸다. "공공, 이 녀석의 정체가 수상해요. 아무래도 반역의 무리 인 것 같아요." 늙은 태감이 말했다. "너희들은 어디서 온 포고(布庫:여기서는 씨름군이라는 뜻)들이냐?" 그러자 한명의 대한이 대답했다. "네. 저희들은 정(鄭)왕야의 밑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만약 공공께서 손을 써서 이 반 적을 막지 않으셨다면 저흰 큰 창피를 당할 뻔 했습니다." 늙은 태감이 콜록 거리며 말했다. "그야 당연하지. 쿨록.......쿨록...... 너희들은 이 사내와 어린애를 대궐안의 상선감(尙膳監: 황궁의 부엌을 돌보는 직책)에게 보내도록 해라. 궁안의 해로공(海老公)이 보낸 사람이라 고 말하면 될 것이다." 몇 명의 대한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늙은 태감이 어린 태감에게 말했다. "빨리 가마를 부르지 않고 뭐 하느냐? 내가 이 꼴로 걸음을 옮길 수 있을 것 같으냐?" 나이 어린 태감은 늙은 태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달려 나갔다. 늙은 태감은 탁자위에 엎드려서 끊임 없이 기침을 해댔다. 위소보는 모십팔이 잡히는 것을 보고 이야기꾼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푸른 산이 남아 있는 한 땔나무는 걱정이 없다고. 이때야 말로 대담하게 삽십 육계 줄행랑을 치는 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벽을 따라 살그머니 후문 쪽으로 나갔다. 그 누구도 자기를 주의하지 않아 속으로 기뻐했다. 그런데 그 순간 자칭 해로공리라는 늙은 태감 이 손가락을 한번 튕겼다. 그러자 한 개의 젓가락이 날아와 그의 오른쪽 무릎은 맞히는 것이 아 닌가? 위소보는 오른쪽 다리가 마비되는 것을 느끼고 땅바닥에 쓰러져 꼼짝할 수 없었다. 그는 욕 을 해댔다. "나쁜 늙은이.... 후레자식아!" 그리고 다시 수없이 많은 악독한 욕을 퍼부으려고 했는데 한 명의 대한이 살기어린 눈으로 노려 보았다. 그는 깜짝 놀라 하려고 하던 말을 되씹어 삼키고 말았다. 대문 밖에 한대의 교자가 다가왔다. 나이 어린 태감이 급히 들어와 말했다. "공공. 가마가 도착했습니다." 늙은 태감은 기침을 연신해 가면서 나이 어린 태감의 부축을 받으며 교자 안에 들어가 앉 았다. 두 명의 교자군은 그를 메고 나서 어린 태감의 뒤를 따랐다. 칠 명의 대한 가운데 네명은 가벼운 상처를 입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모십팔과 위소보를 밧줄로 꽁꽁 묶었다. 묶으면서 끊임없이 주먹과 발길질을 해댔다. 위소보는 참을 수가 없어서 입으로 욕을 했 댔다. 그러나 두 대의 심한 따귀를 얻어 맏고는 고분고분 해질수 밖에 없었다.이 때 그들은 두채 의 가마를 부르더니 다시 두 사람의 입 속에 몇 조각의 천으로 입속을 틀어 막고 천조각으로 눈 을 가린 후 가마에 태웠다. 위소보는 일곱 살 때 어머니를 따라 불공을 드리러 갈 때 교자를 타본 이후 처음 타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그 자신을 위로했다. (제기랄! 오랫동안 교자를 타지 못했는데 오늘은 효성이 지극한 아들 녀석이 교자를 태워 주는구나! 정말로 착한 아들이고 착한 손자들이다.) 그러나 어쩌면 모십팔과 함께 참수를 당하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무서워서 몸 이 떨려왔다. 가마는 계속하여 가기만 했다. 가끔 교자가 멈추게 되고 어떤 사람이 질문을 던졌다. 그러 면 밖의 대한들이 일제히 대답하는 것이었다. "상선감의 해로공께서 들여 보내라는 사람입니다." 위소보는 상선감이 무슨 곳인지 몰랐다. 해로공은 권세가 꽤나 높은지 교자는 무사통과였 다. 한번은 질문하는 사람이 교자의 휘장을 걷고 들여다보며 말했다. "꼬마로구나!" 위소보는 '너의 할아버지다'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입이막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교자가 멈춰 서면서 음성이 들렸다. "해로공께서 요구한 사람을 데려 왔습니다." 그러자 어린애의 음성이 들렸다. "알았소. 해로공께선 쉬고 계시니 사람을 이곳에다 내려 놓도록하시오." 위소보는 음성으로 미루어 조금 전 반점에서 만난 그 소년이라고 생각했다. 이 때 먼저 번 의 사람이 말했다. "저희가 돌아가서 정왕야에게 말씀을 올린다면 왕야께선 반드시 사람을 보내 해로공께 사의를 표할 것입니다." 그러자 그 어린애는 말했다. "그렇겠구료. 해로공꼐서도 왕야께 문안을 드리겠다고 여쭈어 주세요." 그 대한이 말했다. "예" 곧이어 누군가 모십팔과 위소보를 교자에서 끌어내고서 방 안으로 옮겨 내려 놓았다. 옮 겨 놓은 사람들의 발소리가 멀어지면서 해로공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위소보는 지극히 독한 약 냄새를 맡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늙공 병든자는 곧 죽게 될 모양이구나. 진작에 죽지 않은 것을 보니 아무래도 나와 모형이 먼저 염라대왕 앞으로 달려갈 것 같군!) 사방은 조용했다. 간혹 가다가 해로공의 기침 소리가 정막을 깰 뿐 이었다. 위소보는 손과 발이 묶여 있어서 온 몸이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 그런데 해로공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참 후 해로공이 나직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계자(小桂子)." 그 소년이 대답했다. "예."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네 녀석의 이름이 소계자 였구나. 너의 할아버지인 나처럼 이름에 소(小)자가 있구 나!) 이 때 해로공이 말했다. "두 사람의 밧줄을 풀어 주어라. 내가 그들에게 물어볼 말이 있다." 소계자는 대답하며 위소보와 모십팔의 밧줄을 끊고 입속의 천 조각과 눈가림을 풀어 줬다. 위소보의 눈에 비치는 방 안은 생각보다 매우 작았다. 하나의 탁자와 하나의 의자가 있을 뿐이고 탁자 위에는 차주전자와 찻잔이 놓여 있었다. 해로공은 바로 의자 위에 앉아 있었는데 반쯤 누운 모습이었다. 그는 두 빰이 움푹 패여져 있었으며 두 눈 역시 반쯤은 감겨진 상태였다. 이미 날은 저물어져 있어서 두개의 촛대 위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촛불에 비춰진 해로공 의 싯누런 얼굴은 갑자기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곤 했다. 해로공이 말했다. "이 녀석은 입이 더러우니 입을 다시 막아라." 위소보는 다시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해로공이 말했다. "의자를 가져와서 그 자를 앉혀라." 소계자는 옆 방으로 가서 의자를 가져와 모십팔을 앉혔다.위소보는 자기에겐 의자를 주지 않자 땅바닥에 주저 앉았다. 해로공은 모십팔에게 물었다. "노형의 존성대명은 어떻게 되시며 어느 문파에 속하시오? 귀하의 무공은 ㄱ찮은 것 같더 구료. 그런데 우리 북쪽의 무공같지는 않습디다." 모십팔이 말했다. "저의 성은 모이며 이름은 십팔이라고 합니다. 강북태주(江北泰州)의 오호단문도(五虎斷門 刀)의 문하입니다." 해로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모십팔! 모노형이시군. 나 역시 그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소. 소문을 들으니 노형은 양주 일대에서 남의 집을 털었을 뿐 아니라 관병을 죽이고 탈옥까지 하셨다고? 정말 적지 않은 큰일을 해냈구료." 모십팔이 말했다. "맞소." 그는 이 폐병에 걸린 늙은 태감의 놀라운 무공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감히 함부로 반박하지 못했다. 해로공이 말했다. "귀하가 서울로 온 것은 무슨 일 때문인지 나에게 애기해 줄 수 있겠소?" 모십팔은 말했다. "당신들 마음대로 살리든지 죽이든지 하시오. 나는 강호의 사나이로서 눈 하나 찌푸리지 않 겠소. 그러나 문초를 하겠다면 그건 사람을 잘못 본 것이오." 해로공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모십팔이 꿋꿋한 사내임을 그 누가 모르겠소? 문초는 무슨 문초를 한단 말이오? 그런데 귀하는 운남 평서왕(平西王)의 심복이라고 하던데....."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모십팔은 의자에서 일어서며 호통을 내질렀다. "오삼계(吳三桂)같은 매국노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이오?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이 모십팔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오." 해로공은 기침을 몇 번 하더니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평서왕은 청나라에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폐하께서는 그를 매우 신임하고 있소. 귀하가 만약 평서왕의 심복이라면 우리는 왕야의 얼굴을 봐서라도 조그만 잘못은 용서해 주겠소." 모십팔은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오. 아니외다. 이 모십팔은 오삼께라는 도적과는 전혀 상관이 없소. 이 모가는 결코 그 매국노의 덕을 보고 싶지는 않소. 죽이려면 죽이시오. 나를 매국노의 심복이라고 한다는 것 은 이 모가의 선조까지도 재수 옴 붙게 만드는 것이오." 오삼계가 청나라 군사를 이끌고 산해관(山海關)을 넘어 들어옴으로써 명나라가 망하게 되 었다. 따라서 위소보는 거리에서 사람들이 오삼계를 들먹일 때마다 매국노니 좀도둑이니 잡놈이 니 하고 욕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늙은 이는 모형이 오삼계의 심복인척 한다면 놓아줄 것 같은데 모형은 빌어먹을..... 그런 척하지 않는구나. 그러나 뼈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살가죽이 벗겨지는 고통을 당하 게 될 것이다. 우리가 되는 대로 오삼계와 어쩌구 저쩌구 하는 사이이며 신임을 받고 있다고 거 짓말을 한 이후 이 곳에서 놓여나면 오삼계의 십팔대 조상까지 욕을 한다 하더라도 늦지 않 을 탠데.....) 이 때 그의 혈맥의 점차 통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손을 들어 입 안의 베 조각을 뽑아냈다. 해로공은 모십팔의 안색을 살피고 있었기 때문에 위소보가 몰래 수작을 부리는 것을 볼 수 없었다. 해로공은 모십팔이 매우 정색을 하여 말하는 것을 보고 웃었다. "나는 평서왕이 보내온 것으로 알았는데 내 짐작이 틀렸군." 모십팔은 생각했다. (이 번에 북경에서 잡힌 몸이 되었으니 황제가 사는 곳이라 빠져 나가기는 틀렸다. 호랑이 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모십팔이 죽는건 상관이 없으나 애매한 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 그러자 위소보가 자기를 바라보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말했다. "솔직이 말하자면 남쪽에서 강호 사람들이 하는 오소보가 만주 제일의 용사이고 맨 주 먹으로 미친 소를 때려 죽였다느니 발로 호랑이를 걷어차서 잡았다느니 하는 말을 들었소. 이 모가는 그와 함께 겨루어 보려고 찾아온 것이오." 해로공은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대가 오소보와 무공을 겨루겠다고? 오소보는 지극히 높은 벼슬자리에 있소. 북경성 안 에서는 황상과 태후를 제외하고는 오소보가 제일이오. 모형이 북경에서 십 년을 기다린다고 하더라 도 한번도 만날 수 없을 것인데 어찌 그와 무공을 겨룬다는 것이오?" 모십팔은 등 뒤의 혈도가 이제야 천천히 풀리는 것을 보고 그 수법이 즈극히 높은 내공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다 이 늙은 태감의 표정으로 보아 만주 사람이 틀림 없었다. 그 자 신으로 말하면 만주의 폐병장이도 이길 수 없는데 어찌 만주 제일 용사와 겨루어 이길 수 있겠 는가? 그는 양주 득승산 아래에서 사송과 싸우게 되었을 때 형세가 다급한 상황이었으나 조금도 기가 죽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 이 늙은 태감을 대하게 되자 호기가 모조리 없어지게 되었다. 해로공이 물었다. "귀하는 아직도 오소보와 무공을 겨루어 볼 작정이오?" 모십팔이 말했다. "실례이지만 그 오배의 무공이 당신보다 뛰어납니까?" 해로공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오소보는 장수와 재상을 지낸 대신으로 부귀와 영화를 한 몸에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니오. 나로 말하면 팔자 사나운 천민 이외다. 오소보와 비하면 하늘과 땅인데 어찌 견줄 수 가 있겠소." 그는 두 사람의 신분과 지위를 말했을 뿐 무공에 대하여는 슬쩍 피하고 언급하지 않았다. "그 오소보의 무공이 만약 당신의 반쪽만 되더라도 나는 전혀 상대가 될 수 없을 것이오." 해로공이 말했다. "모형은 너무나 겸손한 말씀을 하시는구료. 모형이 보러 때 나의 천박한 무공을 천지회의 회주인 진근남과 비교한다면 어찌 되겠소?" 모십팔이 풀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당신....당신. 뭐라고 말씀하셨소?" 해로공이 말했다. "나는 귀하의 총타주 진금남을 묻고 있는 것이오. 진 총타주는 응혈신조(凝血神爪)를 연마 하여 내공의 고강함은 사람으로써 해아릴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인연이 없어서 만나 보지 를 못했소. 비천한 몸이라 진 총타주와 같은 분을 만나 뵙지 못하는 게 아니겠소?" "나는 천지회의 사람이 아니오. 또 진 총타주를 만나 볼 만한 복을 타고 나지도 못했소. 소 문에 들으니 진 총타주이 무공은 지극히 고강하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 고강한지 알 수가 없소." 해로공은 한 숨을 내쉬었다. "모형, 나는 이미 그대가 호한임을 알고 있소. 그대와 같은 뛰어난 솜씨를 가지고 어째서 황실을 위해 힘을 바치지 않으시오? 장래에 제독이나 장군이 된다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외 다. 천지회를 따라다니며 반란이나 일으킨다는 것은 아........."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는 다시 말했다. "결국 좋은 최후를 마치지 못할 것이오. 나의 충고를 받아들여 지금 당장 결단을 내리고 천지회에서 탈퇴하도록 하시오." 모십팔은 말했다. "나는....나는 천지회 사람이 아니외다." 그는 갑자기 목소리를 돋우며 말했다. "나는 결코 억지를 써서 부인 하는 것이 아니외다. 이 모가는 정말 천지회에 가담하고 싶 소. 그러나 소개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소. 강호에서는 '진근남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영웅호걸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소. 해로공 이 말은 들어 봤을 것이오. 이 모가는 당당한 한나라 사람이오. 천지회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청나라를 무찌르고 명나라를 되찾을 것을 결심한 바 있는데 어찌 청나라에 귀의하여 매국노가 되겠냔 말이오. 빨리 나를 죽이시오. 이 모가는 사ㄹ을 죽이 고 불을 지르는 등 죄지은 것이 너무나 커서 진작 죽었어야했소. 다만 진근남을 보지 못하고 죽 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오." 해로공이 말했다. "사람들이 청나라 사람이 천하를 얻은 사실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을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 나는 그대가 영웅호걸이란 점을 높이 사서 오늘 죽이지 않겠소. 그대가 진근남을 보게 된 이후 죽더라도 눈을 감을 수 있게 해 주겠소. 그대가 한시라도 빨리 진근남을 보게 되기 를 바라오. 그를 만나면 이 해로공이 무척 만나고 싶어 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나는 그의 응혈신 조라는 재간이 도대체 얼마나 무서운지 가르침을 받고 싶은 것이외다. 한시바삐 경성으로 왕림 해 주십사 하고 전해주시오. 아! 늙은이는 목숨이 며칠 남지 않았소.진 총타주가 곧 이 북경으 로 찾아 오지 않는다면 나는 그를 보게 되지 못하지요. 허허허! '진근남을 모른다면 영웅호걸이 될 수 없다.' 진근남이 어떤 영웅호걸이기에 강호에서 그토록 뛰어난 명성을 날리고있는 것이오?" 모십팔은 그가 자기를 놓아준다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자기 귀를 의심했다. 몸을 일으키기 는 했으나 엉거주춤하고 그 자리에서 떠나지를 못했다. 해로공이 말했다. "그대는 무엇을 기다리는 것이오? 어째서 가지 않으시오?" 모십팔이 말했다. "좋습니다." 그리고 위소보의 손을 잡고 몇 마디 체면치레를 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 다.해로공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대는 강호에서 오래 굴러먹은 사람인데 어찌 예의를 모르시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그 냥 떠나겠다는 것이오?" 모십팔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맞소이다. 이 모가가 너무 소홀히 생각했구료. 소형제 칼을 빌려 주시 게. 나는 이 왼손을 잘라내겠네." 그리고 소년 태감의 옆에 놓여 있는 비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비수는 길이가 여덟 치 정도 였으며 조금 전 그의 밧줄을 잘랐던 것이었다. 해로공이 말했다. "왼손 가지고는 부족하지." 모십팔은 얼굴이 새파래져서 물었다. "당신은 나보고 오른손도 자르라는 말이오?" 해로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두 손이지. 원래는 한쌍의 눈도 달라고 해야 겠지만 쿨룩....쿨룩.... 그러나 그대가 진근남을 만나봐야 한다기에 눈동자가 없으면 사람을 볼 수 없지 않겠소? 이렇게 하지. 그대가 스스로 왼쪽눈을 찌ㄹ도록 하시오. 오른쪽 눈은 남기고." 모십팔은 두 걸음 물러서며 위소보의 손을 놓고 한우망월(汗牛望月)의 초식을 펼치는 자세 를 취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의 왼쪽 눈과 두 손마저 자른다면 병신이 되는데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랴. 차라리 너와 사생결단하는 싸움을 벌여 너ㅇ 손 아래 죽는게 낫겠다.) 해로공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끊임없이 기침을 했다. 소계자가 말했다. "공공, 다시 약을 드시는 게 어떻습니까?" 해로공은 고개를 가로저었으나 좀처럼 기침을 멈추지 않았다. 나중에는 참을 수 없는듯 왼손으로 자기의 목을 얼싸안고 매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모십팔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때 가지않고 언제까지 기다리겠느냐?) 그리고 위소보의 손을 잡고 문 쪽으로 몸을 날렸따. 해로공 은 오른쪽 엄지와 식지 두 손가락으로 탁자를 움켜 쥐었다.탁자에서 한 조각의 나무를 잘라 내더니 퍽! 하고 튕겨냈다. 모십팔은 방 밖으로 한 걸음 내딛으려는 참인데 그 나무 조각은 그의 오른쪽 복토혈(伏兎 穴)을 때렸다. 오른발이 시큰해지면서 무릎을 꿇는데 다시 한 조각의 나무조각이 날아와 모십팔의 왼쪽 허리마저 적중시켰다. 그 바라람에 모십팔은 위소보와 함께 쓰러지고 말았다. 소계자는 말했다. "다시 약을 반만 자셔 보시지요. 십중팔구 ㄱ찮을 것 입니다." 해로공이 말했다. "좋아. 좋아. 조금이라도 분량이 많으면 너무 위험해." "예" 그리고 그는 품 속에서 약봉지를 꺼내더니 내실로 들어가 하나의 술잔을 가져 왔다. 약 봉지를 펴서는 새끼 손가락을 뻗어 새끼 손톱으로 흰 가루를 묻혔다. 해로공이 말했다. "너무....많다...." 소계자는 말했다. "예" 그리고 그는 손톱에 찍힌 가루를 약간 약종지에 털어 넣더니 해로공을 바라 보았다. 해로공 은 끄덕이고 허리를 구부리더니 큰 소리로 기침을 했다. 그는 별안간 몸을 앞으로 숙였다가 아 예 땅바닥에 엎드려서 몸을 뒤틀어댔다. 소계자가 깜짝 놀라서 달려가 부측하며 물었다. "공공, 어떻게 된 거예요?" 해로공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너무....너무 덥구나. 나를 부축해.... 그 항아리 속으로.... 집어넣어다오." "예" 그는 힘을 주어 노인을 부축해서 내실로 서둘러 들어갔다. 곧이어 풍덩하며 물 속으로 뛰 어드는 소리가 들렸다. 이 모든 광경을 위소보는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 보고 탁자로 가 손가락으로 약 가루를 듬뿍 찍어 술에 탓다. 그리고 약봉지를 접었다 폈다 해서 손자국을 지워 버렸다. 소계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공, 괜찮으셔요? 너무 오랫동안 물속에 계시지 마세요." "너무 뜨겁구나.... 너무 뜨거워서 불에 타는 것 같아." 위소보는 비수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얼른 손에 들고 모십팔의 곁으로 돌아와 서 땅바닥에 엎드렸다. 얼마 후 물소리가 첨벙첨벙 나더니 해로공은 물에 젖은 몸으로 소계자의 부축을 받으며 내 실 쪽에서 걸어 나왔다. 여전히 기침을 해댔다. 소계자가 술잔을 들어 그의 입가로 가져갔다. 해 로공은 연신 기침을 하느라고 마시지를 못했다. 위소보는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 긴장 되어 해로공을 바라보았다. 해로공이 말했다. "먹지 않았으면..... 역시 이약을 먹지 않는 것이..... 것이 가장 좋은......." 소계자가 말했다. "예" 그리고 그는 술잔을 탁자 위에 놓고 약봉지를 싸더니 해로공의 품 속에 다시 집어 넣었 다. 그러나 해로공은 다시 기침을 하기 시작했으며 술잔을 손가락질했다. 소계자는 술잔을 들어 그의 입가로 가져갔다. 이번에 해로공은 단숨에 마셨다. 모십팔은 그만 참지 못하고 '아'하는 소리를 냈다. "그대가....그대가 만약에 ..... 살아서 나가고 싶다면....." 갑자기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가 내려 앉았다. 그리고 해로공의 몸뚱이가 탁자위 로 엎어졌다. 그 기세로 탁자까지 넘어지게 되자 소계자는 깜짝 놀라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공공!공공!" 그러면서 달려가 부축하려고 했다. 소계자는 등을 위소보와 모십팔 쪽으로 돌리게 되었다. 위소보는 가볍게 몸을 일으켜 칼을 들어 그의 등을 맹렬히 찍렀다. 소계자는 나직이 신음소리를 토해내더니 곧 숨을 거두었다. 해로공은 여전히 땅바닥에 쓰러져서 몸을 비틀어댔다. 위소보는 다시 비수를 들고 해로공의 등을 노리고 찌르려고 했다. 바로 이때 해로공이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 "소...소계자 약이 잘못되었다." 위소보는 이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비수를 들고 찌를 수가 없었다. 해로공은 등을 돌리더 니 손을 뻗쳐 위소보의 왼쪽 손목을 잡고 말했다. "소계자 조금 준 이 약이 잘못되지 않았느냐?" 위소보는 애매하게 말했다. "잘.....잘못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 그의 왼쪽 손목은 마치 쇠갈고리에 잡힌 듯 뼈마디가 아파왔다. 해로공이 말했다. "빨리....빨리 촛불을 켜라. 시커먼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구나." 위소보는 크게 의아하게 생각했다. 분명 방안의 촛불은 켜진체였다. 그는 서 시커멓다고할 까? 병이 있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촛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공공 볼 수가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까?" 그는 소계자의 음성을 흉내내어 어린애 말투를 쓰고 있었다. 해로공이 부르짖었다. "나는..... 볼 수가 없다. 누가 촛불을 켰다고 하더냐, 빨리 켜라." 그리고 위소보의 손목을 놓았다. 위소보는 대답했다. "녜,녜." 급히 옆으로 비켜서서 재빠른 걸음으로 벽에 꽂아 놓은 촛대 옆으로 가서 손을 뻗어 촛대의 아래 쪽을 건드려 딸가닥거리는 소리를 내게 했다. 그리고 말했다. "불을 켰습니다." 해로공이 말했다. "뭐라고 터무니 없는 소리, 어째서 밝게 켜지 않지?...." 한 마디 말을 뱉고 몸을 한차례 뒤틀더니 뒤로 벌렁 쓰러졌다. 위소보는 급히 모십팔에게 손짓을 했다. 빨리 도망치라는 시늉이었다. 모십팔은 그에게 손 짓을 했다. 위소보는 몸을 돌려 문쪽으로 다가갔다. 이 때 해로공의 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소....소계자 난....." 위소보가 말했다. "녜, 저는 여기 있습니다." 위소보는 왼 손을 연신 휘둘렀다. 모십팔에게 먼저 도망지고 보라는 것이며 자기는 방법 을 강구해서 해로공이 어떤 조치를 못하도록 해야한다는 시늉을 했다. 모십팔은 몸을 버둥거리며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두 다리가 혈도에 찍혔으니 몸을 일으 킬 수가 없었다. 그는 두 손을 뻗어 스스로 허리와 다리의 혈도를 풀려고 해도 풀리지 않아서 속으로 생각했다. (두 다리를 꼼짝 할 수 없느니 이젠 죽을 수 밖에 없다. 저 애는 영악하기 이를데 없고 어 린애이니 만큼 옆의 사람도 별로 주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도망치기는 어렵지 않다. 나와 함께 도망을 치게 된다면 적을 만났을 때 오히려 그에게 짐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즉시 위소보에게 손짓을 하고 두 손을 내려 땅을 짚고 살그머니 기어나갔다. 해로공의 신음소리는 반복해서 가벼워졌다가 더 높아졌다.위소보는 감히 떠날 수가 없었다. 혹시나 그가 속이 달아 이미 소계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소리를 내지른다면 그의 아래 사람들이 나서서 대들것이고 그렇다면 자기와 모십팔은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 일은 모두 내가 일으킨 것이다. 모형은 두 다리로 걸음을 옮길 수 없으니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려서야 멀리 도망칠 수 있을까? 될 수 있으면 나는 이곳에서 긴 시간을 두고 버 텨 봐야 한다. 이 해로공이라는 폐병장이가 내가 가짜라는 사실만 발견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늙은이는 병이 들어 정신이 왔다 갔다하고 있으니 그가 정신이 없을 때 한 칼에 치고 도망치면 될 것이다.) 잠시후 멀리서 초경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날이 밝게 된다면 도망치기가 어려울 것이다. 야밤을 틈타 도망쳐야지.) 그런데 해로공의 신음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위소보는 비수를 들고 그의 몸을 찌를 용가가 나지 않았다. 이 노인의 무공이 너무 무서웠던 것이다. 칼 끝이 그의 몸에 닿기만 한다면 그는 즉시 알아차리고 일장을 후려쳐 자기의 골통을 빠개버릴 것이다. 잠시후 한 자루의 촛불마저 거졌다. 어둠 속의 위소보는 소계자의 시체가 손만 뻗으면 닿을 데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무 서움에 떨었다. 도망치고 싶었으나 해로공이 불렀다. "소...소계자 너는.... 이곳에 있느냐?" 위소보는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저는 이곳에 있습니다." 반 시진이 흘러도 아무런 소리가 없자 슬그머니 문가로 다가가려고 할때 해로공이 다시 불 렀다. "소계자 어디로 가려는거냐?" 위소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저는... 소변을 보려고요." 해로로공이 다시 말했다. "어째서... 엊재서 집안에서 소변을 보지 않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녜, 그러지요." 그는 내실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문안으로 들어서서 두걸음을 옮기게 되었을때 그는 쿵! 하고 탁자에 다리를 부ㄷ히게 되었다. 해로공이 물었다. "소....소계자. 무얼 하고 있는거냐?" 위소보는 대답했다. "아....아무것도 아닙니다." 손을 뻗자 탁자위에 불을 켜는 화석(火石)과 화도(火刀)가 손에 만져졌다. 재빨리 불을 켜고 보니 탁자 위에는 십여 자루의 촛대가 있었다. 한 자루의 초에 불을 붙이고 촛대 위에 꽂 았다. 내실에는 하나의 커다란 침대와 조그만 침대가 놓여 있었다. 동쪽에는 커다란 물항아리가 놓여 있었는데 매우 컸고 바닥에는 물이 흘러 흥건히 ㅈ셔 있었다. 그는 창문으로 도망칠 수 있을까 만져보고 있을때 해로공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소변을 보지 않지?" 위소보는 깜짝 놀랐다. (늙은이가 왜 나를 부를까? 혹시 그는 나의 목소리가 틀린 것을 알아차린게 아닐까? 그렇 지 않다면 내가 소변을 보던지 말던지 상관할게 뭐냔 말이다.) 그러나 그는 대답했다. "예" 그러면서 그는 조그만 침대 아래서 요강을 찾아내어 소변을 보면서 창문을 바라보니 창문 은 꼭 닫혀 있었다. 창문은 비단 종이로 발라져 있었다. 아마도 해로공은 기침을 무섭게 하기 때 문에 찬 공기가 새어들어올까봐 조그만 빈틈도 그대로 두지 않은 듯 했다. 그가 힘을 주어 창문 을 연다면 해로공은 기척을 알아챌 것이고 창 밖으로 나가기 전에 잡힐 것이 뻔했다. 그는 방의 이곳저곳을 살폈지만 빠져나갈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만약 바깥 방에서 도망을 친대도 해로공에게 잡히고 마는 것이다. 이 때 침대 위에 놓여 있는 새옷이 보였다. 마음 속으 로 집히는 데가 있어 재빨리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을 벗고 새 옷을 걸쳤다. 해로공이 다시 바깥 쪽에서 불렀다.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거냐?" 위소보가 말했다. "갑니다. 가요" 단추를 끼우면서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소계자의 모자를 머리에 쓰며 말했다. "촛불이 꺼졌으니 한 자루 불을 켜야 겠습니다." 그리고 내실로 들어가 두 자루의 초에 불을 켰다. 해로공은 한숨을 내쉬더니 나직이 말했다. "너는 정말 촛불에 불을 켰느냐?" 위소보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방 안이 보이지 않는단 말입니까?" 해로공은 한참 동안 말 없이 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이약을 너무 많이 먹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기침이 심하고 너무 고통 스러워 조금씩 먹는다고 먹었는데 약이 너무나 독하고 약효가 누적되어끝내 시력을..... 시력을 잃어 버리고 말았구나.눈이 고장나고 말았어." 위소보는 마음이 느긋해졌다. (늙은이는 술에 가루약을 더 탄걸 모르고 여러 번 마셨기 때문에 후유증이 생긴 걸로 알고 있구나!) 이때 해로공이 다시 말했다. "소계자 이 공공이 평소 너를 어떻게 대해 주었지?" 그는 평소 해로공이 소계자를 어떻게 대했는지 몰랐으나 제빨리 대답했다. "참 잘 대해 주셨지요." 해로공이 말했다. "나는....눈이 점점.... 이 세상에서 너 하나밖에 나를 봐 줄 사람이 없구나.너는 이 공공의 곁을 떠나지 않겠지? 그리고 내버려 두지 않겠지?" 위소보는 말했다. "그럼요... 물론 그렇지 않죠." 해로공이 말했다. "그 말이 정말이나?" 위소보는 재빨리 말했다. "물론 조금도 틀림없는 말입니다."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으며 매우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공공. 모실 사람이 없는데 제가 모시지 않는다면 누가 공공을 모시겠습니까? 제가 보기 에 눈 병도 며칠이면 나을 것이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해로공은 히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아질 수가 없어. 나아질 수가 없어." 잠시후 다시 물었다. "그 모가는 이미 달아났느냐?" 위소보가 대답했다. "예" 해로공이 말했다. "그가 데리고 들어온 애는 네가 죽였지?" 위소보는 흠ㅊ했으나 곧 대답했다. "예. 그의 시체는 어떻게 하죠?" 해로공이 생각하는 듯 잠시 시간을 두고 말했다. "우리 방에서 사람이 죽은 것을 남이 알게되고 그래서 조사를 받게 되면 귀찮다. 너는.... 나의 약상자를 가져오도록 해라. " 위소보는 대답했다. "네." 그는 내실로 들어갔으나 약 상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궤설합을 뒤적이며 찾았다. 해로공이 노해 부르짖었다.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누가 너보고 설합을 뒤지라고 했느냐?" 위소보는 깜짝 놀라 속으로 생각했다. (알고보니 이 설합은 함부로 여는 것이 아니었구나!) 그리고 그는 말했다. "약상자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어디다 두었는지를 잊어버렸습니다." 해로공이 노해 소리쳤다. "무슨 소리냐? 약상자를 어디다가 놨는지 모른단 말이냐?" 위소보는 말했다. "저는... 저는 사람을 죽여 마음 속으로 ...... 여간 두렵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공공께 서....눈이 멀어지고 말았으니....저는....완전히 멍청해지고 말았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왁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약 상자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이 일로 인해서 마각이 드러날까봐 그만 울음을 터뜨린 것이었다. 운다는 것은 위소보에게 있어 조금 도 어렵지 않았다. 해로공은 말했다. "사람 하나를 죽인걸 가지고 무얼 그러느냐? 약 상자는 바 로 첫번째 서랍에 있다." 위소보는 말했다. "예.....예.... 저는....무섭기만 합니다." 두 개의 상자는 모두 쇠로 만든 열쇠가 잠겨 있었다. 열쇠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손을 뻗어 자물통을 잡고 비틀자 자물통이 열리는 것이 아닌가? 잠궈두지 않았던 것이 었다. 위 소보는 생각했다. (재수가 좋았다. 이 열쇠의 이상한 점을 내가 모르고 있었다면 ㄴ은이는 크게 의심을 했을 것이야.) 상자의 뚜껑을 열자 떠돌이 약장사들이 가지고 다니는 약 상자가 놓여 있었다. 그는 상자를 들고 나갔다. 해로공이 말했다. "화시분(化屍紛)을 찍어 시체를 없애도록 해라." 위소보는 대답했다. "예." 약상자의 조그만 설합을 하나하나 열어 보았다. 그 설합에는 모두 형상과 빛깔이 다른 자 기병들이 들어있었는데 어느 것이 화시분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물었다. "어느 병이죠." 해로공은 말했다. "이 애는 정말 멍청해지고 말았구나! 놀라서 머릴가 돈 것이 아니냐?" 위소보는 말했다. "저는....무섭기만 하네요. 공공.....눈은 ㄱ찮겠죠?" 그 말은 늙은이의 눈이 매우 걱정된다는 듯한 음성이었다. 해로공은 너무나 감격하여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그 세모꼴의 푸른 바탕에 흰 점이 있는 병이다. 이 약가루는 손톱만큼만 뿌리면 된다." 위소보는 연신 대답했다. "네,녜." 그는 청샥에 흰 점이 있는 병을 들어 병마개를 뽑았다. 한 장의 백지를 꺼내서는 그 약 가루를 조금 부어서 소계자의 시체 위에 뿌렸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해로공이 말했다. "어떻게 됐니?" 위소보가 말했다. "아무 변화도 없습니다." 해로공이 말했다. "그의 핏속에다 뿌렸느냐?" 해로공이 말했다. "너는 오늘 정말 이상하구나. 다른 때보다 크게 달라진 것 같아." 바로 이때 소계자의 시체에서 찍찍하는 소리가 나며 엷은 연기와 같은 것이 피어올랐고 상 처에선 끊임없이 누런 물이 흘러내렸으며 시큼하고 텁텁한 냄새가 났다. 시체의 상처는 점점 더 썩어 들어갔다. 시체의 살갖이 누런 물에 닿기만 하면 연기가 되어 피어올랐고 천천히 물로 화했으며 의복도 마찬가지였다. 위소보는 혀를 내두르며 자기가 입고 잇던 장삼을 시체 위에 던졌다. 자기의신발아 다 낡아서 서계자의 신발을 벋어 자기가 신고 다 떨어진 신발을 누런 물 속에 던졌다. 약 한 시간 남짓 흐르게 되자 소계자의 시체와 옷과 신발은 모조기 누런 물로 화하고 말 았다. 소보는 생각했다. (이 폐병장이가 이 때 기절한다면 저 독물에다가 넣어서 뼈도 남지 않게 물로 만들어 버릴텐데.....) 그러나 해로공은 기침은 했으나 기절은 하지 않았다. 창문이 점점 밝아 왔다. 위소보는 생각했다. (나는 이미 이 옷으로 갈아 입었으니 밖으로 나가도 알아볼 사람이 없을 것이다. 걱정할 필요는 없게 되었다.) 갑자기 해로공이 입을 열었다. "소계자 날이 밝았지?" "예" "물을 떠서 바닥을 깨끗이 닦아라. 냄새가 고약하다." 위소보는 대답을 하고 바가지에다 물을 떠서 방바닥의 누런 물을 닦았다. 해로공이 다시 말했다. "아침밥을 먹고 난후 넌 그들과 놀음을 하러 가도록 해라." 위소보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것은 일부러 거꾸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했다. "놀음을 하러 가라니요.저는 관두겠어요. 공공의 눈도 나쁜데 어떻게 놀러 갈 수 있겠어요." 해로공이 놀라 말했다. "누가 너보고 놀러 가라고 했느냐? 내가 너에게 몇 달 동안 가르치면서 수 백냥의 은자를 쓰지 않았느냐? 바로 큰일을 하기 위해서인데 너는 나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것이냐?" 위소보는 그의 뜻을 알 수 없어 애매하게 대답했다. "아니오. 분부를 듣지 않는게 아니라 공공의 몸이 좋지않고 또 무섭게 기침을 하시는 데....제가....그것을 한다면 공공을 돌볼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해로공이 말했다. "네가 나를 위한다면 그일을 해 주어야해. 다시 한번 던져 보아라." 위소보가 말했다. "던져요? 무엇을 던지라는 것입니까?" 해로공이 노해 말했다. "빨리 주사위를 가져와. 언제나 이 핑계 저핑계 대면서 노력을 하지 않으려고 한단 말이야. 이토록 오랫동안 연마를 했는데 진보가 없잖아!" 위소보는 주사위를 던지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났다. 그는 양주에 있을 때 이야기꾼에게 이 야기를 듣는 시간 이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주사위를 던지면서 놀았다. 나이는 어렸지만 양주의 골목길에서는 제법 고수로 알려진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 주사위가 어디 있는지 알수 가 없어서 말했다. "오늘은 어리벙벙합니다. 주사위를 어디다가 두었는지 잊었어요." 해로공이 말했다. "쓸모없는 것 같으니 주사위를 던지라는 말애 간이 콩알만 해진게로구나. 주사위는 상자안 에 넣어 두지 않았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네. 그렇군요." 그는 내실로 들어가 상자 안을 열었다. 한 비단장자 안에 조그만 자기 그릇이 있고 그 그릇 안에 여섯 알의 주사위가 놓여 있었다. 그는 고향 친구를 만난듯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이 여섯알의 주사위를 손에 넣는 순간 그는 이것이 속에 수은을 넣어 만든 사기꾼이 사용하는 주사위인 것을 알았다. 그는 자기그릇과 주사위를 가지고 해로공의 곁으로 가며 말했다. "정말 놀음을 하러 가라는 것인가요? 혼자 계셔도 괜찮겠어요?" 해로공이 말했다. "쓸데 없는 잔소리 말아라. 열 번 던져 한번은 반드시 천(天)이 나오게 던져야 한다." 그 당시 주사위를 사용 할때는 여섯 알이나 네알을 사용했다. 만약 여섯알을 사용하게 되었을 때 네 알이 똑같은 숫자가 나오고 나머지 두 알이 육점(六點)이 된다면 천이고 두알이 일점이 이루면 지(地)라고 불렀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주사위는 수은을 넣은 것이다. 열 번을 던져 한 번은 천이 나오게 하라면 나를 너무 얕잡아 본 것이지.) 그러나 수은을 넣은 주사위로 요령을 부린다는 것은 흑연을 넣어 만든 주사위보다 요령을 부리기가 어려웠다. 그는 잇달아 너댓번을 던졌으나 좋은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여서번째 이르게 되었을 때 두 알은 여섯 점이 나오게 되고 세 알은 세 점이 나왔으나 한알은 네 점이 되었다. 따라서 이 네 점 짜리 주사위가 세점짜리를 얻었다면 천이 되는 것이다. 그는 엄지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여서 네 점짜리위 주사위가 석점이 나오도록 하고 손뼉을 치며 부르짖었다. "아! 좋다, 이 것이 천이 아니고 무었이겠는가?" 해로공은 말했다.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속일 생각은 하지 말아. 이리 가져와라. 어디 한번 만져보자." 그는 손을 내밀어 자기 그릇안을 더듬었다. 과연 네알은 삼점이고 두 알은 여섯점 이었다. 해로공이 말했다. "오늘은 운이 퍽 좋구나. 이번에는 매화(梅花)가 나오도록 던져 보아라." 위소보는 주사위를 던지려고 했다. 그런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의 말투로 미루어 소계자라는 녀석이 주사위를 던지는 재간은 형편이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매화가 나오도록 던지게 된다면 필시 이 늙은이의 의심을 사게 될 것이다.) 그리고 힘을 주어 빙글 돌렸다. 잇달아 일곱 여덟 번을 던졌으나 매화가 아니었다. 한번 더 던진 후 한숨을 내쉬었다. 해로공이 말했다. "그래 무엇을 던졌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저.....저....." 해로공은 코웃음을 치더니 손을 뻗어 자기 그릇 안을 만졌다. 네 알은 두점 짜리이고 한 알 은 사 점 한알은 오 점짜리였으니 두알의 것을 합쳐볼 때 바로 구점(九點)이 나온 것이다. 해로공이 말했다. "손목의 힘의 조그만 차이로 매화가 나올 것이 그만 구점이 되고 말았구나. 그러나 구점 역 시 작지 않다. 다시 한번 더 시험해 보아라. " 위소보는 십 칠팔번을 시험해 보았다. 그렇게 하여 장삼(長三)이 한번 나오게 되었다. 이 장 삼은 매화보다 한 끝이 다른 셈이었다. 해로공은 던지는 소리를 듣더니 말했다. "조금 진보했구만. 오늘은 오십.....오십냥의 은자를 가져가도록 해라." 위소보는 조금 전 상자를뒤질 때 이미 십여개의 원보(元寶)를 보았다. 도박이라 한다면 그 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다만 첫번째로 밑천이 없고 둘째로 너무 사기를 잘 쓰기 때문에 양주의 거리에서는 그가 나이 어린 사기꾼인 것을 다알고 있는 형편이라 외지에서온 양고(羊 고:풋나기란 뜻) 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그의 수작에 말려들지 않았다. 이 때 가까스로 놀란 가슴을 진정하게 된 그는 놀음을 할 밑천이 오십냥 이나 된다는 말헤 어안이 벙벙해 졌다. 이는 실로 그로서는 꿈에도 생각지 못할 큰 놀음판 이었다. 더군다나 요령을 피울 수 있는 주사위를 가져 간다는 것은 막 지옥에서 나오자마자 천당으로 오른 셈이라 할 수 있었다. 설사 도박이 끝 난 후 목을 자른다해도 이대로 도망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적수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서 놀음을 해야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모른다고 일일이 물어 볼 수도 없었다.그는 상자 뚜껑 을 열고 두개의 원보를 꺼냈다. 한 원보가 스물 다섯냥에 해당되었다. 그리고 어떤 방법을 써서 해로공에게 사실을 알아낼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던 중 문 밖에서 그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계자....소계자.... 나랑 놀자." 해로공이 나직이 말했다. "너를 데리러 왔다. 바로 가보도록 해라." 위소보는 기뻐서 문을 나서려고 햇으나 별안간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 노름꾼들은 눈 먼 봉사가 아니니 내가 소계자가 아닌 것을 알텐데 어떻게 한담!" 이때 문 밖에서 그 사람이 다시 물었다. "소계자 나오너라. 네게 할 말이 있다." 위소보는 말했다. "다녀올께요." 그리고 내실로 들어가 하얀 베 조각을 꺼내 머리와 얼굴을 감았다. 그리고 두 눈과 입만 빼놓고는 해로공에게 말했다. "갔다 오겠습니다." 그리고 방문을 나섰다. 문 밖에는 한 삼십여세 되는 사내가 서있다가 나직이 물었다. "어떻게 된거냐?" 위소보는 말했다. "돈을 잃어서 공공에게 얻어 맞아 눈이 시퍼렇게 멍들고 얼굴이 엉망이라서 싸맸소." 그 사람은 헤! 하고 웃더니 더이상 위심하지 않았다. "밑천을 뽑아낼 용기가 있어?" 위소보는 그의 옷자락을 잡고 나직이 말했다. "공공에게 들리지 않도록 해. 물론 밑천을 찾아야지!" 그 사람은 엄지 손가락을 내세우며 말했다. "좋았어. 사내답군! 바로가자?" 위소보는 그 자를 자세히 쳐다봤다. 이마는 좁고 안색이 시퍼랬다. 수 장을따라가게 되었 을 때 그 사람이 말했다. "온씨(溫氏)형제 두 사람과 평위(平威), 그들은 먼저 갔다. 너는 운수가 좀 나아져야 하는 데." 위소보가 말했다. "오늘도 따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큰일이지." 길을 가다 보니 모두가 복도였다. 이윽고 정문과 화원을 지나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 생각 했다. (빌어먹을! 이 부잣집은 정말 돈이 많은 가보다. 이처럼 화려한 집을 짓다니!) 처마 아래 석가래에도 그림을 그려 놓았고 기둥과 대들보에도 꽃을 새기는 등 휘황찬란했 다. 그는 한평생 이와 같은 화려한 큰 집을 본 적이 없었다. (우....여춘원은 양주에서 첫째,둘째 가는 기녀원인데 이 곳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군! 야. 이것 봐라. 이 곳에다가 커다란 기녀원을 차리게 된다면 많은 손님들이 모여들겠구나. 이토록 커다란 기녀원에서 백여 명의 아가씨를 내세워 시중을 들게 한다면 어울릴거야!) 위소보는 그를 따라 한참 동안 걸어갔다. 한 칸의 외딴 집으로 들어가 두 개의 방을 가로질 러 가더니 손을 내밀어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며 주사위 떨어지능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듣기가 아름다운가? 방 안에는 대여섯명이 모여 있었다. 모두가 똑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으며 주사위를 던지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한 이십여세 되는 사람이 물었다. "소계자. 왜그래?" 그를 데리고 온 사람이 껄껄 웃스며 말했다. "밑천을 자꾸 날려서 해로공에게 얻어 맞았대" 그 사람은 헤헤 웃더니 혀를 끌끌 찾다. 위소보는 몇사람의 등 뒤로 가서 섰다. 여러 사람 들은 판을 걸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한 점을 걸었고 어떤 자는 오 점을 걸었다. 모두가 대나무 로 만든 주마(籌口馬)를 드었다. 그는 하나의 원보를 꺼내 하나에 오점씩 하는 오십매의 주마 를 샀다. 한 사람이 말했다. "소계자. 오늘은 얼마나 잃으려고? 몇 푼이나 훔쳤니?" 위소보는 말했다. "쳇! 훔치다니! 잃는다구? 듣기 싫은 소리 그만해!" 그는 후레자식이니 개새끼라고 욕을 하려고 했으나 자기위 말 하는 음향이 그들과는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게 되면 마각이 들어날 것이라 생각하고 될 수 있으면 입을 다 무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들이 말하는 투를 주의해 들었다. 이 때 그를 데리고간 사내가 주마를 들더니 약간 주저하는 빛을 띠었다. 이 때 한 사람이 말했다. "오(吳) 이 번에 전주는 끝발이 세지 않을 것이니 좀더 많이 걸어." 오형이란 사내는 말했다. "좋아." 그리고 두냥의 은자를 걸고 말했다. "소계자, 너는 얼마 걸을래"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남들이 나를 주의 하지 않는게 좋다. 너무 많이 날리지도 말고 많이 따서도 안돼. 거는 것도 너무 크게 걸어서도 안되지.) 그는 오전의 은자를 걸었다. 그 사람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전주는 뚱뚱한 사내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평(平)형이라고 불렀다. 위소보는 옹가라는 사내가 평위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이 평형이 평위가 분명했다. 이 때 평위라는 사람이 주사위 를 들고 손바닥에 놓고 한동안 주물러대더니 부르짖었다. "모두 죽었다." 그러면서 주사위를 땅으로 던졌다. 위소보는 그의 손짓을 유심히 살피다가 마음을 놓았 다. (저 사람은 양고(풋나기)였군.) 그의 생각에는 요령을 피울 줄 모르는 사람은 모두가 양고 인 셈이었다. 평위는 여섯번의 주사위를 던져서 우두(牛頭)라는 것을 던져냈다. 이것은 작은 패 가운데서는 큰 점수였다. 나머지 사람도 차례로 던졌다. 어떤 사람은 지고 어떤 사람은 이겼다. 그런데 오가는 여덟 점을 얻어 털리고 말았다. 위소보는 한 사람씩 주사위를 던질 때 마다 속으로 외쳤다. (양고다!.) 그리고 잇달아 양고라는 소리를 질러대고는 마음을 크게 놓았다. 그는 품속에 해로공이 준 수은 주사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반 쯤 눌이를 한 후 바꿔치기 를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돈을 딴 후 되바꿔칠 계획이었다. 가짜 주사위를 던지는 것은 지극히 연마하기가 어려웠다. 주사위를 바꿔치기하고 또 뒤바꿔친다는 것도 눈이 밝고 손 이 빨라야 했다. 마치 요술을 부리듯 다른 사람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끌어야 했다. 예를 들어 갑자기 걸상을 걷어차 쓰러뜨린다거나 찻잔 따위를 뒤엎어서 뭇 사람들이 걸상이나 찻잔을 주 시하게 되었을때 바꿔치기해야 되는 것이었다. 만약 솜씨가 뛰어나면 걸상을 거더 차거나 찻잔을 뒤엎는 수법을 쓸 필요가 없었다. 대개 손목 사이에 여섯 알의 주사위를 몰래 숨기고 있다가 손가 락으로 여섯 알을 끄집어 내서는 던져내는 것인데 그 누구도 바꿔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재간은 위소보가 아직도 배우지 못한 상태였다. 흑연을 넣은 주사위는 돈을 따기는 어렵지 않으나 수은을 넣은 주사위로 돈을 따기란 여간내기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수은과 흑연은 무거웠다. 그 주사위의 한 쪽이 가볍고 한 쪽이 무거웠기 때문에 자기의 뜻에 따라 움직 일 수 있었다. 그러나 흑연은 딱딱했고 수은은 끊임 없이 출렁 거렸다. 흑연의 주사위는 매우 던 지기 쉽지만 수은을 넣은 주사위는 매우 던지기 어려웠다. 흑연을 넣은 주사위는 쉽게 발견돼 며 자기의 점수가 크게되면 상대방도 큰 점수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수은을 넣은 주사위로 어 떤 점수를 내고자 할 때는 반드시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다. 웬만한 솜씨로써는 되지않았다.위소 보는 흑연을 넣은 주사위는 자신이 있었지만 수은을 넣은 주사위를 다루는 데는 별로 자신이 없 었다. 하지만 열 번중 한 두번만 이긴다 하더라도 몇 시간 동안 놀음이 벌어지게 된다면 상당한 돈을 따게 될 것이다. 진정한 일류도박사는 일반 주사위라 하더라도 마음대로 던져 원하는 점수 를 냈으며 흑연이나 수은을 넣은 것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상대할 사람이 모두 양고인 것을 보고 주사위를 바꾸는데 별 위험이 따르지 않 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서둘러 주사위를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가 판에 끼어들때 두개의 원보를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주마로 바꾸었고 다른 하나의 원보는 왼 손으로 들고 있었다. 주사위를 바꿔치기 할때 이 원보를 사용할 예정이었다. (소계자가 평소 돈을 잃었다면 나 역시 먼저 진 이후에 이겨야 남의 의심을 사기 않을것이 다.) 주사위를 던지자 겨우 여섯점 밖에 되지 않아 자연히 털리고 말았다. 한번 지고 한번 이기는 방법을 써서 다섯 냥의 은자를 잃고 말았다.시간이 흐를수록 판이 커졌다. 위소보는 여전히 오전을 걸었으며 펴위는 그의 주마를 밀며말했다. "적어도 한냥은 걸어야지 오전은 받지 않겠다." 위소보는 즉시 하나의 주마를 더 던졌다. 전주가 던져낸 것은 인패(人牌)였다. 위소보는 자 기의 오전을 받아주지 않은데 대해 은근히 화가나서 반드시 이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네가 오전을 잃지 않고 한 냥을 잃어 준다면 좋다. 내가 천패로 너 를 이기지 못한다면 사내 대장부가 아니다.) 그는 오른 손으로 주사위를 잡고 왼손의 팔굼을 한번 뻗쳤다. 그러자 하나의 원보가 땅 바닥에 떨어지면서 탕하는 소리를 냈다. 바로 그의 왼쪽 발등에 떨어지자 그는 엄살을 떨었다. "아이고! 아파죽겠다." 그리고 몇 번을 펄쩍펄쩍 뛰었다. 함께 도박을 하던 일곱 사람은 모두 껄껄 소리를 내어 웃으면서 그가 허리를 구부려 다리를 주무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 주사위를 바꾸어 단숨 에 내던졌다. 네 알은 삼 점이었고 두알은 한 점씩 나왔다. 한 장의 지패(地牌)가 나온 것이 다. 평위는 지게 되자 욕을 해댔다. "빌어먹을! 오늘은 꼬마의 재수가 괜찮구나." 위소보는 속으로 놀랐다. (아니다. 내가 이와 같이 이긴다면 다른 사람이 주의를 하게 되고, 내가 소계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는 다음에 던지게 되었을 때 한냥을 져 주었다. 제각기 다투어 판은 점점 커지게 되었다. 위소보는 두 냥을 이겼으며 한냥을 잃어 주 었다. 저녁 무렵이 되었을때 위소보는 이십 냥 정도를 따게 되었다. 매번 건 돈이 적었기 때문 에 그누구도 주의를 하지 않았다. 오(吳)가는 가져온 은자를 모조리 잃고 맥이 빠진 표정을 하 고 두손을 벌려 보었다. "오늘은 재수가 좋지 않군. 그만 두겠어." 위소보는 도박을 할때 욕을 해대곤 했지만 그 누가 돈을 다털리면 돈을 빌려주곤 했다. 위소보가 간혹 가다 사내 대장부 노릇을 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돈 밑천을 빌려줄 때였다. 그 사람이 빌려쓰고 갚지 않아도 그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어찌 됐든 그 돈은 자기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때 오가가 몽땅 잃고 가려는 것을 보자 그는 대뜸 한 웅큼의 주마를 집어 주며 말했다. "밑천을 되찾도록해요. 이후에 다시 갚도록 하고." 오가는 매우 기뻐했다. 이들은 도박을 할 때 남에게 돈을 빌려 주지 않았다. ㅊ째로 돈을 빌려 주게 되면 대부분 갚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는 돈을 빌려 준다는 것은 자기의 운수가 나빠 진다는 미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가는 위소보가 이토록 시원하게 나오자 크게 기뻐했으며 잇달아 그의 어깨를 치며 칭찬했다. "정말 훌륭한 형제야. 정말 훌륭한 동생이야." 이 때 전주인 평위는 끝발이 한창 좋을 때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한참 지게 될때 놀 음판이 깨지게 될까 두려웠던 참이라 위소보의 일거 일동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하하, 소계자가 이제 탈바꿈을 했군!오늘은 괜찮은데." 다시 놀음판이 벌어지고 위소보가 육칠냥을 따게 되었을때 누군가가 말했다. "밥먹을 시간이다. 내일 와서 다시 놀자." 뭇사람들은 밥먹을 시간이 되었다는 말을 듣자 즉시 손을 멈춰 주마 를 은자로 바꾸었다. 위소보는 미처 수은을 넣은 주사위를 되바꿔치기 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속으로 이 자들은 모를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 에 두지 않았다. 위소보는 오가를 따라 나오며 생각했다. (도대체 어디로 가서 밥을 먹지?) 오가는 십여냥의 빌렸는데 그 돈마저도 거의 다잃은 후여서 말했다. "소형제 내일 갚을 수밖에 없구나." 위소보는 말했다. "뭐 다 같은 형제끼리 무슨 상관이 있어?" 오가는 웃으며 말했다. "헤헤헤, 그래야 훌륭한 형제지. 빨리 가봐. 해로공이 밥을 먹고 기 다릴지 모르잖아." 위소보는 말했다. "그래." 그러나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돌아가서 늙은 폐병장이와 함께 밥을 먹게 되는구나. 이 때 도망가 지 않는다면 바보가 아닌가?) 이때 오가가 어느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 곳에는 대청도 있고 화원도 있으며 마루도 있구나. 그런데 대문 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군!) 그는 이리저리 걸음을 옮겨 놓았다.때때로 그와 같은 복장을 한 사 람을 만났지만 감히 대문이 어디에 있는제 묻지 못했다. 그는 점점 당황해졌다. (안 되겠다. 해로공에게 돌아가서 물어 봐야겠다.) 그러나 이 때 해로공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길마저 잊어버리고 말았 다. 가는 곳마다 한번도 보지 못한 거리였다. 때때로 벽에 문패가 붙 어 있었으나 글자를 모르는 그라 주의해 보지도 않았다. 다시 한동안 걷게되자 만나는 사람조차 없게 되었다. 뱃 속에선 쪼 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한참 걷다 보니 왼쪽에 한채의 집이 있었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문가로 다가가자 갑자기 안에서 구수한 음식 냄새가 풍겼다. 그만 침을 삼키며 가볍게 문을 열고 발을 들여 놓았다. 탁자 위에는 십여개의 접시가 놓여 있고 그 접시 위에는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집 안은 조용했다. 그는 살그머니 들어가 한 조각의 천 층고(千層米羔)를 입에 넣었다. 몇번 씹자 자기도 모르게 맛있다고 부 르짖었다. 이 천층고는 한 겹의 말가루 사이에 밀당저유(密糖猪油)를 끼운 것이었고 매화 향기마저 나고 있었다. 양주 지방의 간식은 이름 이 나있었다. 기녀워에선 종종 천층고라는 음식으로 손님을 대접했다. 위소보는 손님이 맛보기 전에 주모가 아무리 구짖고 욕을 해도 슬그머 니 훔쳐먹곤 했다. 기녀원에서 먹는 음식보다 맛과 색이 정교했다. (천층고는 정말 잘 만들었다. 북경성에서 제일 가는 기녀원일것이 야!) 그는 한조각 천층고를 먹고 인기척이 없자 다시 한 알의 조그만 소 매(燒賣)를 입속에 넣었다. 음식을 훔쳐먹는 경험은 풍부했고 한 접시 에서 많이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야만 쉽게 잡히 지 않는다. 그는 하나의 완두황(豌豆黃)과 한 조각의 떡을 집어 먹었 다. 그리고 잡시의 음식을 약간 흔들어 놓는 것일 잊지않았다. 한참 신나게 먹고 있는데 문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한 조각의 육말소병(肉末燒餠)을 집어들고 방 안을 들러 보았다. 벽 쪽으로 가죽으로 만든 인형이 놓여 있었고 대들보에는 몇개의 커다란 포대가 매달려 있었는데 포대 안에는 쌀가루나 모래알이 들어 있었다. 그 밖에는 음식이 놓여 있는 탁자였고 탁자 앞에는 탁자보가 걸려 있 었다. 그는 생각해 보지도 않고 탁자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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