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INRAG 소개
1958년 1월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 벨기에, 서독, 이탈리아, 프랑스는 유럽원자력공동체(European Atomic Energy Community, EURATOM)를 창설했다. EURATOM은 개별 국가가 아닌 유럽 차원에서 원자력산업 형성을 촉진하기 위해 설립됐으며, 원자력에너지 연구 및 평화적 이용 등을 목적으로 한다. 2007년에는 원전 위험을 유럽연합 차원에서 관리하기 위해 유럽원자력안전규제그룹(ENSREG)이 출범했다.
EURATOM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역할을 한다면 ENSREG는 규제기관 성격에 가깝다. 2017년 출범한 INRAG도 ENSREG와 비슷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현재 오스트리아 빈에 사무국을 두고 있으며, 오스트리아·불가리아·프랑스·독일·스웨덴·영국·미국의 학계, 전 규제기관, 기술 조직 등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민간조직이다.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었으며 EURATOM, ENSREG 등 제도권 기관을 외부에서 감시하고, 원전 안전 및 위험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실시한다. 유럽 차원의 원자력 규제기관이 이미 존재하지만 INRAG와 같은 민간 전문가그룹이 교차 감시를 하는 셈이다.
2. INRAG 보고서-Gösgen, Leibstadt 수명연장 문제
독일은 원자력 규제법상 위험단계를 ‘위험(Gefahr)-리스크(Risiko)-잔존리스크(Restrisiko)’ 3단계로 구분 짓고 있다. 위험과 리스크 개념의 경우 충분한 분석과 개연성을 통해 위험방지와 사전 대비가 가능하지만 잔존리스크의 경우 이미 알려진 위험보다 ‘알려지지 않은’ 위험이 문제가 된다. 즉 원전 운전, 특히 노후 원전의 존재는 사고 발생과 관련된 ‘잔존 위험(residual risk)’을 사회가 수용하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현재 유럽에서는 원자로 압력용기의 변형, 격납건물 균열 등 노후 원전의 안전성과 수명연장 문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INRAG는 몇 년 전부터 이 같은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포럼을 개최하고, 보고서를 지속 발간해 왔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 5월 INRAG가 스위스의 원자력발전소인 Gösgen(괴스겐), Leibstadt(라이프슈타트)의 수명연장 문제를 다룬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번역하여 소개한다. 장기 운영을 위한 투자는 큰 불확실성을 가진다. 필요한 투자 비용은 발전소의 위치와 상태, 규제 기관이 요구하는 기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원문: Nuclear Power Plants are aging… – INRAG – International Nuclear Risk Assessment Group)
스위스 원전인 괴스겐(KKG)과 라이프슈타트(KKL)는 각각 1979년과 1984년에 가동을 시작했다. 괴스겐 원전은 이미 40년 이상 운영되고 있고, 라이프슈타트 원전에서는 곧 장기 운영이 시작될 예정이다. 스위스 일각에서는 원전 수명을 최대 80년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연구는 이러한 장기 운영을 위해 어떤 투자가 필요하며, 이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지에 대해 다룬다. 스위스에서는 원전을 최신 기술 상태로 개조(retrofit)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는 다른 서방 국가의 동일 유형의 원전에서 수행된 개조 작업과 유사하다. 미국과 프랑스, 독일에서 40년 이상의 (계획된) 수명 연장을 통해 얻은 경험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는 원전의 수명 연장을 위해 가동 당시 적용되었던 안전 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용성 유지에 필요한 조치 외 규제 당국이 요구하는 안전 관련 개선이 필요하다. 터빈과 콘덴서, 발전기, 변압기 등 주요 구성 요소의 평균 수명은 60년 이하이며, 발전소의 가용성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2015년 대규모 원자로 수명 연장 프로그램인 ‘그랑 꺄레나주(Grand Carénage)’가 채택되었으며, 원전을 최신 기술 상태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요구 사항이 있다. 노심 용융 현상을 제어하기 위한 개조(코어 캐처, Core Catcher)와 설계 기준을 초과하는 외부 사건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안전 코어(Hardened Safety Cores)의 구현 등이 포함된다. 원자로 호기당 약 10~20억 유로(EUR 1-2 billion)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코어 캐처처럼 비용이 많이 드는 개조의 경우 아직 어느 곳에서도 수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비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 이전인 2010년 독일연방환경부(BMU)는 독일 원전에 대한 이른바 '개조 목록(retrofit list)'을 발표했다. 이는 당시 개조 기술 현황과 대략 일치했으며, 원자로 1기당 약 10억 유로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되었다. 운영 수명을 60년으로 연장하고, 항공기 충돌에 대비한 구조적 조치를 포함한 개보수를 위해서는 원자로에 따라 16억 유로에서 28억 유로 사이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었다.
세 국가와의 비교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원전 투자 비용에 대한 추정치는 큰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상기 언급된 금액은 필요한 투자 비용이 장소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원전의 상태와 각 당국이 규정한 기준이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부 계획된 개조 작업 중 일부는 수행된 적이 없다. 따라서 기술적 실행 가능성과 비용은 여전히 큰 불확실성에 영향을 받는다.
아직 어떤 국가도 원전을 최첨단 과학 기술 수준으로 현대화하지 않았다. 유럽 가압 경수로인 EPR은 원전의 최신 과학 및 기술 상태를 나타내는 기준 발전소로 볼 수 있다. 프랑스 원전의 개조는 명시적으로 EPR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노심 용융 현상을 제어하기 위한 코어 캐처나 이와 유사한 요소의 설치를 비롯하여 비용이 많이 들며 기술적으로 까다로운 개조 작업은 아직 시행되지 않았다.
프랑스는 고도로 표준화된 원자로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점이 있어 개조 개발 비용을 다수의 원자로에 분산할 수 있는 반면, 스위스의 경우 각 원자로에 맞게 설계해야 한다. 또 구식 안전 개념의 기본적인 약점이 개조를 통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프랑스가 최신 과학 및 기술 상태로 개조하겠다는 주장을 실현할 수 있을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
과학 및 기술 수준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으며, 개조 기술의 최신 상태도 마찬가지다. 원전의 안전 요구 사항은 예상치 못한 취약점이 드러나거나 위험이 잘못 평가된 것으로 밝혀지면 증가한다. 새로운 위협 시나리오가 추가되는 것이다. 위기 지역의 원전이 야기하는 위험은 주로 자포리자(Zaporizhzhya) 발전소 주변의 전투로 인해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문제는 전투 가능성을 안전 고려 사항에 어느 정도 포함시켜야 하며, 특정한 개조 작업이 필요한 지 여부다. 프랑스와 같은 국가는 기존 발전소를 개조하여 최신 과학 및 기술 상태에 해당하는 안전 수준을 달성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이 계획이 실현된다면, 개조 기술의 최신 상태를 발전시키게 되며, 이는 스위스 당국이 요구하는 개조 기준이 될 것이다.
현재 괴스겐(Gösgen), 라이프슈타트(Leibstadt) 원전의 장기 가동(60년 초과)을 위한 투자 규모를 추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투자 요구 사항을 결정하려면 어떤 현대화 및 개조 조치가 필요한지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규제 당국은 장기 운영을 위해 충족해야 할 요구 사항을 지정한다. 스위스에서 요구되는 개조 기술 수준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현재 국제적으로 진행 중인 현대화 프로그램을 고려할 때, 코어 캐처와 같은 매우 고가의 개조가 미래의 개조 기술 상태를 충족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동시에 필요한 투자는 개별 구성 요소의 (노후화)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60년을 초과하는 장기 가동에 대한 결정은 관련 추기적 안전 검토 시에만 가능하며, 그 이전에는 결정할 수 없다. 발전소 운영에 중요할 역할을 하는 구성 요소들은 이미 스위스 원전 두 곳에서 일부 교체되었다. 이러한 구성 요소들이 60년 이상의 장기 운전 조건에서 다시 교체되어야 할 필요성은 현재 계획된 운전 시간이 끝나기 직전의 상태를 고려해야만 평가할 수 있다. 또 다른 복잡한 요소는 모든 구성 요소를 점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안전 관련 구성 요소의 경우, 유지보수나 현대화 조치를 통해 다음 운영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는 수십 년 전 미리 평가할 수 없다. 장기 운영의 비용과 이점을 명확하게 평가할 수 있을 때까지 더 유리한 다른 비핵(non-nuclear) 옵션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