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입술
소주 잔에 들어 있는 것이
술인지 꿀인지
말 수가 많아지는 걸 보면
술이 맞고
입술에 착착 붙는 걸 보면
꿀이 분명하다
소주 한 잔에
닫혀 있었던 입술 촉촉이 열리고
나비와 벌이 찾아 올 것같이
입술에는 꿀물이 반지르르하다
캬~
꽃잎 입술 술이 달다
두 잔 술에 인생 고뇌
세상 근심 걱정 무거워지는 술 잔
힘들었다고 고독했다고 외로웠다고
세상 역경 다 짊어지고 살아왔다고
주정인지 투정인지 타령인지
소주 잔 입술에 댈때마다
피어나는 꽃잎 입술
술 잔 입 속으로 털어넣고
내뱉는 한숨 소리
측은해서 불쌍해서 안타까워서
또 한 잔의 술을 따라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진심은 말할 수 없어
아들과 손녀 생일을 맞아
아들네 가족이 왔다
손녀는 영어유치원에서
성대하게 생일파티를 했고
친구들과도 파티하고 놀이공원가서
공주 놀이 이벤트에 참가도 했고
사진관에서 화장하고 공주처럼 드레스 입고
예쁘고 귀여운 포즈를 취하며
많은 사진을 찍었다
반면 아들은
손녀와 한 날로 묶어서
우리집에 와서 생일파티를 한다
아들 중심으로
생일파티가 되었으면 하는
어미의 마음
생일 축하 노래에서 들어난다
아들 이름을 먼저 부르고
손녀 이름을 부르며
생일 축하합니다 하며
제일 큰 목소리로 노래했다
아들 이름을 먼저 불렀을 때
멈칫했던 손녀의 표정
서운했던 기색이 역력하다
아마도 손녀는
평소에도 할머니가
아빠를 많이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생일파티 하기 전
자유롭게 놀고 있을 때
할머니는 아빠가 좋아 내가 좋아
다섯살 손녀의 갑작스런 질문에
순간 당황해서 대답을 못했다
손녀는 할머니의
진심을 알고 싶어하는 눈치
그 눈치에 진심을 말 할 수 없고
난감해서 얼버무렸다
아직도 말을 못했지만
손녀는 알고 있을 것이다
할머니는 아빠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때가 흘러갔다
한 아이가 불쌍해서
내가 거둘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 아이 볼 때마다
애처로운 마음
돌아서 집으로 올 때
차 안에서 눈물 쏟았던
그때의 날들
고작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명절 때마다 옷 한 벌 사 주고
가끔 방 정리와 청소 뿐
그 이상은 힘에 부치고
보장할 수 없는 앞날에 두려움
그 해법 찾으려고 간 점집
고민을 털어 놓았지만
신통한 점괘 없고 보이지 않는
내일이 버거웠다
잘해야 본전 잘 안 되면 나의 업보
혼자서 눈물 쏟으며 가슴 아파했던
그때가 흘러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달탱이 얼굴
사과대추따서 넘치게 채운
쪼그리 앞치마를 양손으로 받쳐 안고
밭고랑 나오는 나를 보고
성훈엄마 얼굴이 달탱이 같아요라며
인사하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남편친구
살쪘다는 말이 틀림없는데
나는 부잣집 맏며느리같다는 덕담으로 듣는다
달탱이는 달덩이, 달덩이 같은 얼굴
부잣집 맏며느리감이라는
옛어른들이 후덕함을 칭송했던 얼굴
처녀 적 내 얼굴 부잣집 맏며느리감 이었는데
얼굴만 내세워 부잣집 맏아들과 결혼할 수 없었던
그때의 형편
나는 짚신 짝을 만나 사십년을 살았다
단칸방에서 아이 둘 낳고
젊음이라는 자산 하나로
무서울 것없이 뚝심으로 살았다
한때는 밥맛을 잃었고
얼굴은 핼쑥했고 몸매는 멀대 같았고
자신했던 건강은 암이라는 복병에
모든 것을 놓아버린 적도 있었다
그 시간들 가고
시부모님께 유산받은 육백평 논
객토해서 밭으로 만들고
대추나무 심고 가꾼지 6년
자연의 이치와 섭리따라 가을을 맞이 한다
대추나무에 붉은 대추메달이 주렁주렁
보기만해도 부자가 된다
대추메달 하나에 채워지는 넉넉함
이 순간 부잣집 맏며느리 부럽지 않은
부잣집 마나님의 후덕한 기분을 품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나비와 꿀벌은 내 마음 알려나
대추가 익어가는 가을이다
흰구름 바람붓을 잡고
자유로이 그림을 그려 넣는
파란 도화지
탱그탱글 불그레하게 익어가는 대추
마음이 넉넉하다
몇 걸음 뒤에서 본
나무에 맺은 대추열매 좋아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아도 실하면 좋을 텐데
농부의 마음은 속상하다
가을 하늘 그림 위안 삼아
시원치않은 대추 솎아내는데
나비와 꿀벌이 떼로 모여 앉아 있는 나무
자세히 보니
대추를 먹고 있었다
우리 대추 먹지 말고
꽃 찾아가라고 때찌하며 쫒았더니
다른 나무로 날아가서
성한 대추를 탐한다
이러면 안되지
나비야, 꿀벌아,
먹던 나무에 열린 대추만 허락할께
나비와 꿀벌은 내 마음 알려나
농부가 콩 세알 심는 이유를
나 지금, 너희에게
콩 세알 심는 농부의 나눔을 실천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유경옥 프로필
가산문학회 카페지기
(사) 한국반달문화원 시낭송 대회 : 대상
문학의 집 서울 : 금상
(현) 서초문화원 시낭송반 회장
첫댓글
손녀보다 아들 이름을 크게 부르신 시인님 마음 , 우리 딸도 어릴때부터 할머니 마음 알아버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