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들판, 백색 물결
손 원
황금 들판은 자연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다. 수확기의 황금빛 벼는 곡간을 채우는 기쁨을 가져다준다. 배고팠던 시절, 황금빛 들판은 풍요와 함께 넉넉한 인심을 가져다주었다. 노년기에 들어선 지금도 그때의 황금빛 들판이 자주 떠 오른다. 물질이 우선시되고 인정이 팍팍해지고 있지만, 황금빛 들판은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했다. 그저 배고픔을 잊고 넉넉한 한 철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각인되었다.
산천이 유구하듯 들판은 변함없이 지금도 그대로다. 다만 들판의 풍광이 달라져 보인다. 예전에는 작물의 생육기는 초록 물결, 수학기에는 황금물결이었다. 요즘 승용차로 넓은 들판을 지나칠 때면 비닐하우스가 바다를 이루고 있어 백색 물결이다. 참외 주산지 성주에는 일 년 내내 곳곳이 비닐하우스 물결이다. 전국이 비닐하우스 바다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연중 저렴하고 맛있는 과일이며 채소를 실컷 먹을 수 있다.
비닐하우스는 종전 하늘에 의존했던 온도와 수분 공급을 인위적으로 조절하여 연중 작물 재배를 할 수 있다. 하우스 재배는 노지재배보다 손이 많이 가고 비용도 많이 든다. 하지만 고소득을 보장하기에 들판은 온통 시설재배 하우스로 채워지고 있다. 원예작물일 경우, 온실 덕분에 수확기가 훨씬 앞당겨졌다. 이른 봄에 딸기가 나고, 여름이 제철인 수박, 참외가 봄 과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노지 재배보다 당도가 높아 맛도 좋다. 상치, 깻잎, 오이는 한겨울에도 푸짐하다. 우리의 밥상은 늘 신선 채소로 입맛을 돋우고 있다.
온실은 계절을 초월하여 원예작물을 생산할 수가 있다. 바나나, 파인애플 등 열대작물 재배도 가능하다. 요즘 지구 온난화로 열대작물 재배지가 계속 북상하고 있다. 반면에 서늘한 기후에 적합한 작물은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과거 대구는 사과, 나주는 배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충청 이북까지 북상한 상태다. 남부지방에서 사과를 재배하려면 시원한 인위적인 시설이 필요할 정도다. 서늘한 냉온 실이 없다면 남녘의 사과 생산은 전설로 남을 것이다.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으로 지구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어 작물 재배에도 인위적인 온도조절이 필수적이다. 주요 작물이 철과 관계없이 생산되면 좋겠지만, 그보다 부정적일 수도 있다. 농작물은 자연 상태로 재배됨이 바람직하다. 대규모 비닐하우스 온실은 먹거리를 풍부하게 하여 우선은 좋다. 하지만 자재 생산에 따른 지구 온난화와 높은 생산비용으로 소비자 가격이 상승하는 등 부정적인 요소도 많다. 들판을 뒤덮은 비닐하우스보다는 철 따라 드러나는 자연의 빛깔이 친환경적이고 생태환경에도 유익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비닐하우스보다는 자연 상태로의 작물 재배를 우선해야 한다. 기온에 맞는 적절한 작물을 재배하고 품종을 개량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시설하우스의 일반화로 지역의 특산품이 무색해지고 있다. 고령 딸기가 명성을 잃은 지 오래다. 딸기는 전국적으로 하우스 재배를 하고 있어 일반작물이 되었다. 성주의 참외, 수박도 마찬가지다. 낙동강 퇴적층의 비옥한 토질과 기온이 적당하여 아직 명성은 유지하고 있지만, 재배지가 전국적으로는 확산되는 추세다. 오래지 않아 거의 모든 작물이 지역 특산물의 명성을 잃고 일반화될 듯하다. 즉 과학영농의 영향이다.
소득이 높은 작물로 친다면, 예전에는 가을 수확기 벼로 가득한 황금들판이었으나, 요즘은 이른 봄 비닐하우스 안의 잘 익은 딸기나 참외로 바뀌었다. 과거 농부들은 벼 수확으로 곳간을 가득 채우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요즘은 벼농사 후작으로, 딸기 등 원예작물로 더 많은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 하우스 딸기는 2월부터 5월까지 출하된다. 겨우내 하우스에서 키워 낸 딸기는 농부들에게는 벼농사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수익이 높다. 딸기 농사는 벼 수확이 끝난 가을부터 이듬해 모내기 무렵까지 가는 긴 기간이다. 그동안 많은 노력과 경비가 들어가지만, 부유한 농촌을 보장한다. 특히 벼농사 후, 엄동설한 농사로 연중 농사를 가능하게 한다. 늦봄에 출하되는 참외, 수박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만 해도 황금들판의 풍요로움에 감사했다. 요즘은 비닐하우스로 뒤덮인 백색 들판이 더 소중하니 격세지감이다. 과거의 황금들판보다 훨씬 많은 소득을 보장하는 효자 작물이기 때문이다. 시설하우스 재배는 앞선 기술, 꾸준한 노력과 의지, 많은 자본이 들어가는 현대식 영농으로 농부들의 자부심도 크다. 외지 생활을 하고 있지만 우리 농촌이 보다 잘 살 수 있어 흐뭇하다. 최근들어 농촌이 고령화되고 인구도 급격히 줄고 있어 소멸 위기라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아직은 농촌이 활력을 잃은 것은 아니다. 들판을 뒤덮고 있는 비닐하우스의 장관만 보더라도 왕성한 생육의 현장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년에 힘을 다하여 농사를 지으시는 어르신들의 덕분이다. 젊은이들이여,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농업에 도전하여 보자. 황금들판이 백색물결로 업그레이드 되는 풍요로운 농촌의 변화를 볼 때, 우리는 희망을 갖는다.
액티브 시니어 자화상
손 원
"액티브 시니어"란 뛰어난 체력과 경제력을 갖추고 있어 퇴직 후에도 사회적으로 왕성한 문화 활동과 소비 활동을 하는 중년층과 장년층을 일컫는 말이다. '신박하다'라는 신조어 즉, 신선함이 대박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나 역시 여기에 해당되어 신박함이란 용어가 어색하지 않다. 그동안 노인으로 분류되었던 이 시대의 어르신 일부는 현재 액티브 시니어 또는 신중년으로 일컬어지며, 자기 자신을 가꾸고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며 활력 넘치는 삶을 추구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영태 교수의 "인구 미래 공존"에 따르면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제1차(1955~1964년생) 및 제2차 베이비붐 세대(1965~1974년생)로 나뉜다. 이들은 각각 10명 중 2~ 3명가량이 대학에 진학했으며, 이후 대학 진학률과 여성 교육 수준이 급상승한 X세대, 밀레니얼 세대의 부모 세대이기도 하다.
통계청 잠재 인구추계에 따르면 55∼69세 인구는 2029년엔 전체 인구 중 24.7%를 차지하며 거대한 소비 집단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한다. 전체 인구 중 액티브 시니어의 인구가 한동안 늘어날 것으로 보여 액티브 시니어 시장의 소비파워 중요도는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액티브 시니어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여가 활동 등에도 적극적이다. 해외여행 경험률도 높으며 외모를 꾸미거나 건강을 위해 상당한 돈을 지출한다. 자기 계발이나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으며 은퇴 후에도 경제 활동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액티브 시니어가 증가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펼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진정한 엑티브 시니어의 자화상은 어떤가? 모두가 은퇴 후 안락한 생활로 누리기만 하는 액티브 시니어만은 아니다. '나를 위한 삶'을 추구하는 액티브 시니어의 속성에 공감하지만, 나에게는 다소 거리가 있는 듯하다. 먼저 외모를 꾸미거나 건강을 위한 지출은 미미한 정도다. 유명메이크 옷 한 벌 사는 것에 장고(長考)를 거듭한다. 값비싼 전자제품을 사려면 몇 개 점포를 드나들며 가성비를 따져 보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구매율도 그다지 높지 않다. 외모에 대한 투자는 더 궁색하다. 아내는 늘 얼굴 기미 제거와 눈썹 문신을 권하지만 듣지 않았다. 반면에 건강관리는 제대로 하고 있다. 그것도 돈 안 드는 걷기, 조깅이다. 그나마 건강검진은 적절히 하고 있다. 밀레니엄 시니어가 무색하고, 배고픈 시절을 겪은 전형적인 베이비부머의 사고방식이다. 한편으로는 길지도 않은 인생 가진 만큼 누릴 수도 있지만 마음뿐이다.
은퇴한 엑티브 시니어들은 어른으로서 가장으로서의 역할도 크다. 부모가 살아 계신다면 끝까지 부양책임을 진다. 뿐만아니라 부모의 뜻을 존중하여 전통과 관습을 이어간다. 점점 퇴색되고 있는 제사나 선산을 돌보는 마지막 세대가 될 듯하다. 요즘은 기성세대, 신세대를 불문하고 부모가 돌아가시면 제사도 간소하게 지내고, 선산 관리도 느슨하게 하려 한다. 즉 벌초도 줄이거나 아예 폐지하는 경우도 많다. 시대의 조류에 따른다는 것과 번거롭고 힘든 일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다. 엑티브 시니어들은 오랜 미풍양속이 사라져 가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대신에 더 풍요롭고 여유로운 미래지향적인 자손의 세대를 위하여 자신들이 짊을 지려는 모양새다.
아직 그들은 가족이 의지할 큰 언덕이 되고 있다. 자식들의 생활에 보탬이 되게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결혼한 자녀의 집 마련에 도움을 주고, 직장 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손자 돌보미를 자처하기도 한다. 사회봉사자 조끼를 입고 길거리 청소나 급식 봉사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시니어를 가리켜 부담을 주는 노인 취급만 하면 억울하다. 은퇴 후 이들은 왕년에 못지않은 의욕을 가지고 사회에 도움을 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액티브 시니어들은 경제적 시간적으로 여유로움을 즐기지만은 않는다. 여생을 가족과 사회에 기여하고자 땀 흘리는 이도 있다. 물론 가족을 위해 몸 받친 지난날의 보상으로 '나를 위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부류도 만만찮다. 무엇을 어떻게 누리든 탓할 일은 아니다. 그들의 행복한 여생이 보장되어야 한다. 한편으로 이 시대의 어른 역할을 생각해 본다. 액티브 시니어로서 모범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헌신적인 삶을 살고있는 베이비 붐 세대도 많다. 액티브 시니어를 자청하는 이들도 젊은 세대와 함께하고 아량을 보인다면 더불어 잘사는 세상이 될 수 있다. 후대에 도움을 주는 자애로움으로 존경받는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