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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혈육의 비밀 이때 소대호는 두 눈을 굳게 감은 채 얼굴엔 희노(喜怒)가 엇갈렸다.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듯, 또는 한 가지 중대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생각하는 듯 그의 표정은 이해할 수 없는 야릇함을 품게 했다. 이때 소대호는 눈을 번쩍 뜨더니 형형한 눈길로 비류신을 바라보며 처량한 웃음을 지었다. “자네는 내 평생에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니 하는 수 없이 과거의 맹세를 어길 수밖에 없겠군… …” 비류신은 그의 느닷없는 말에 어리둥절하였다. “노 선배님의 말씀은 몹시 어려워 이해하지 못 하겠습니다… …” 소대호는 엷은 웃음을 띠었다. “나는 원래 한 가지 무림의 지보(至寶)를 내 몸과 함께 영원히 매장시키기로 했었지. 그러나 지금 나는 그 보물을 자네에게 물려줄 것을 결정했네.” “무림의 보물은 몸 밖의 물건이며 또한… …” 소대호는 급히 말을 받았다. “또한 모두 극히 불길한 물건이니 몸에 지니고 있으면 왕왕 살신지화(殺身之禍)를 초래한단 말이겠지? 그러나 이 보물이 만약 나의 동생이나 형님 수중에 들어가게 된다면 더욱 무궁한 화를 초래하게 되네. 그러니 자네가 어떻게 결정하는가에 달린 것일세. 자네가 갖고 싶다면 나는 자네에게 주겠네. 또 자네가 무림을 오시하는 천하무적의 고수가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 보물을 받아야만 하네.” “후배가 방금 드린 말은 절대로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후배는 아무 대가도 없이 어르신네께 많은 은혜를 입었는데, 또다시 보물을 주시겠다니 실로 받아들일 면목이 없습니다.” 소대호는 껄껄 웃었다. “자네가 그토록 많은 생각을 하다니 천만 뜻밖인걸.” 비류신은 소대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느끼며 낭랑하게 말했다. “선배님께서 후배에게 부탁하시려는 일은 무엇입니까? 어서 분부를 내리십시오.” 소대호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자네에게 부탁할 일은 세 가지가 있네… 첫째 내게는 딸이 하나 있는데, 아직 세상에 살아있는지 찾아보기 바라네… …” 비류신은 급히 그의 말을 가로챘다. “노 선배님의 영애(令愛)는 혹시 방명이 월녀(月女)가 아닙니까? 저는 그 낭자를 벌써부터 알고 있는데 지금 보 안에 편안히 있습니다.” 비류신은 처음에 소월녀가 지금의 보주인 지신도 소대천의 딸이라고 여겼으므로 소대호를 만난 후에도 소월녀에 대한 이야기는 끄집어내지 않았었다. 소대호는 은빛 수염과 백발을 부르르 떨면서 마치 잠꼬대하는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맞았어! 바로 그 애야. 아우는 나의 딸을 월녀라고 이름지으라한 것을 잊지 않았군. 아! 아우는 나의 딸을 몹시 귀여워할 테니까 다소 안심이 되는군.” 비류신은 급히 물었다. “노 선배님, 후배가 어르신네의 모든 사정을 따님에게 알려 줄까요?” 소대호는 이 말을 듣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처량하게 말했다. “필요 없네. 그 애는 지금 안정되고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는데… 내가 어찌 비통한 과거로 그 애의 어린 가슴에다 타격을 줄 수 있겠나! 그 애는 나의 유일한 딸이니, 그 애가 편안하게 생활을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눈을 감고 죽을 수가 있네.” “노 선배님, 그러나 따님이 어찌 도적을 부친으로 섬길 수 있단 말씀 입니까… …” 소대호는 갑자기 호통을 쳤다. “비류신, 함부로 말하지 말게. 내가 자네에게 다른 일은 참견하지 말라고 했으니 더 이상의 참견은 말아 주게. 아… …” 그는 서글픈 한숨을 쉬고 나서 다시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여보게, 자네는 물론 내 사정을 모르고 있을 거야. 내가 어찌 그에게 친아비가 나라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겠나? 사실 내가 지금 이토록 처량한 꼴이 된 것도 나 스스로 죗값을 받기 위한 것일세. 내 형제들은 비록 형제간의 정의(情意)를 버리고 지나치게 나를 괴롭혀 왔지만… …” 소대호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말을 계속했다. “그런 얘기는 할 필요가 없지. 그럼 자네에게 부탁할 일을 말하겠네. 첫째 자네는 내 딸애를 만나거든 특별히 그 애를 보살펴 주면 되네.” 비류신은 그들 형제간의 사정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어 도대체 어떤 은원의 관계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였다. 그는 속으로 훗날 기필코 그들 형제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소월녀에게 사실을 말하리라 마음먹었다. 소대호가 겉으로는 호통을 치면서 그녀에게 얘기하지 말 것을 부탁했지만, 사실은 사랑하는 딸에게 그가 생부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 할 것이라고 비류신은 생각했다. 소대호는 비류신의 속셈을 알아차린 듯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몹시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왼손으로 책상다리로 앉아 있는 포단 속을 더듬더니 조그만 꾸러미를 하나 꺼냈다. “둘째로 부탁할 일은… 바로 이 물건을 중윈 구대문파(九大門波)의 장문인(掌門人)들에게 각기 전달해 달라는 것일세. 아… 이것 또한 과거에 내가 범한 과오의 하나이지. 이 보자기 속의 물건은 모두 구대문파의 신물(信物)이니 자네는 절대로 남에게 빼앗겨서는 안 되네. 그것은 이 신물이 천만 무림 동도(同道)의 목숨에 관계되어 있으니 만일 그들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죽은 후에도 죄책감으로 고통을 받을 걸세.” 비류신은 그의 말을 듣고 속으로 몹시 놀랐다. 구대문파의 신물이 모두 그의 수중에 들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신물은 중원 무림 구대문파의 천만 생명의 안위(安危)를 좌우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닌가. 비류신은 두 손으로 그 물건을 받아 품속에 잘 간직한 다음 진지하게 물었다. “노 선배님, 안심하십시오. 후배는 몸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신물을 직접 각파의 장문인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절대로 실수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소대호는 수염을 쓰다듬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부는 자네가 꼭 그렇게 하리라고 믿고 있네… 세 번째 일은 내가 지금 자네에게 줄 무림의 보물을 목숨 걸고 보존해주기 바라네.” ‘그렇다면 그 보물은 틀림없이 매우 중요한 물건이겠구나.’ 비류신은 이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노 선배님께서 주시는 물건이라면 후배는 목숨처럼 귀중히 여기겠습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어찌 저를 총애하여 주시는 어르신네의 은혜를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가 있겠습니까.” 소대호의 얼굴에는 홀연 한 가닥 처량한 빛이 스쳐갔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물건은 천하 무림의 인물들이 모두 목숨처럼 아끼는 물건이지. 그러나 내 일생의 운명도 역시 이 보물로 인하여 변화된 것이니, 이 보물은 극히 불길한 물건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아… …” 그는 다시 한숨을 쉬고는 오른손으로 등 뒤를 더듬더니 금빛으로 번쩍이는 물건을 꺼냈다. 채찍과 같은 그 물건은 비류신이 지닌 잔금섭혼신편과 똑같은 색깔이었다. 단지 이 채찍은 채찍집에 들어 있어서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무기임에는 틀림없었다. 소대호는 빙그레 웃으면서 물었다. “여보게, 자네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나?” 비류신은 나직이 대답했다. “후배의 추측으로는 신묘한 무기인데 손잡이로 보아 긴 채찍인 것 같습니다.” 소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비스런 웃음을 짓더니 다시 물었다. “자네는 이 채찍의 명칭을 알겠는가?” 비류신은 고개를 저어 모른다는 표시를 하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신선도 아닌데 어찌 이 채찍의 명칭을 알 수 있단 말인가?’ 소대호가 다시 물었다. “자네는 자네 수중에 있는 그 잔금섭혼신편의 내력을 알고 있는가?” “후배는 견문이 부족하여 이 채찍의 내력은 알지 못하고, 단지 이것이 진편독자의 물건이란 것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소대호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자네의 잔금섭혼신편은 내 옛 친구인 진편독자가 잔금섭혼신편을 모방하여 만들어 낸 것이지.” 비류신은 이 말을 듣고 몹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잔금섭혼신편이 진짜와 가짜가 있단 말씀입니까?” “자네의 잔금섭혼신편이 진짜였다면 벌써 내 큰 형님의 모략에 빠져 빼앗겼을 거야… …” 비류신은 이 잔금섭혼신편을 얻은 이래 줄곧 신병이기(神兵利器)로 여겨 왔었다. 그래서 항상 몸에 귀중히 간직하고 다니며 다른 사람에게 보인 일이 극히 드물었다. 대체 소대호는 어떻게 이것이 가짜라는 것을 알았으며, 또 진짜 잔금섭혼신편을 무림 인물들이 미친 듯 탐내고 있는 보물이란 것을 알았는가. 비류신은 서서히 입을 열었다. “노 선배님, 제가 가지고 있는 잔금섭혼신편은 극히 예리하여 결코 백련정강(百煉精鋼)으로 만든 보검(寶劍)에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채찍은 더욱 예리한 것입니까?” 소대호는 미소를 지었다. “진짜 채찍은 가짜보다 예리할 뿐 아니라 보는 사람이 혀를 내두를 만큼 신묘한 위력을 지니고 있지. 그래서 진짜 잔금섭혼신편을 손에 들고 있기만 하면 무림의 일류 고수라 할지라도 두려워한다네. 그 채찍의 예리함은 간장(干奬)과 막사(莫邪)와 같은 보검에 비해 손색이 없지. 그러나 무림의 인물들은 간장과 막사와 같은 보검보다 더욱 귀중히 여긴다네.” 비류신은 그의 말을 반신반의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채찍이 어찌 간장, 막사와 같은 신병이기보다 예리할 수 있단 말인가… …’ 눈빛이 예리한 소대호는 비류신의 안색을 보자 대뜸 그가 자기의 말에 의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담 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즉시 자네의 의심을 털어내 주겠네.” 말을 마치는 동시에 순간 쩡! 하고 마치 용이 가볍게 부르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어둠침침한 실내에는 옅은 금색 광체가 번갯불처럼 번쩍거렸다. 이때 소대호의 오른손에는 금빛이 번쩍이는 채찍이 하나 들려 있었고, 그 채찍에는 온통 낚시 바늘처럼 가늘고 예리한 갈고리가 거꾸로 달려 있었다. 잔금장편(殘金長鞭)… 채찍에서 쏟아져 나오는 금빛은 음산한 냉기마저 풍기고 있었다. 비류신은 이 채찍을 보자 자기의 잔금섭혼신편보다 월등한 보물이라고 느껴졌다. 자신의 채찍은 그런 음산한 냉기를 풍기지 않는데 반하여 이 채찍은 온통 싸늘한 금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소대호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이 채찍의 묘한 점은 결코 채찍의 광채가 아닐세. 내가 이것을 떨쳐 보일 테니까 유심히 관찰해 보게.” 말을 마치자 소대호는 오른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절묘할 정도로 맑고 예리한 음향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실내에는 즉시 해살처럼 찬란한 광채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더구나 그 주위의 광채는 마치 수천 마리의 조그만 금사(金蛇)들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듯했다. 비류신은 놀라고 기쁜 마음을 금치 못하고 연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훌륭한 채찍이군요! 정말 훌륭한 채찍입니다! 실로 천하제일의 채찍입니다. 과연 듣던 대로군요… …” 소대호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자네는 이미 이 채찍의 신기한 점을 알아봤단 말인가?” 그러나 비류신은 단지 채찍이 내뿜는 광채에 눈이 부시다는 것을 느꼈을 뿐, 사실 채찍의 신비한 점은 알아 챈 것이 아니었다.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후배는 다만 그 채찍이 비할 데 없이 현묘하다는 것만 알 뿐, 그 기묘한 점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노 선배님께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방금 이 채찍의 위력이 보검보다 월등하다고 말한 것은 절대로 거짓이 아닐세. 자네는 방금 내가 이 채찍을 떨칠 때 수천 마리의 금사들이 꿈틀거리는 듯한 광경을 보았겠지?” 비류신은 이상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노 선배님, 그럼 그 채찍의 예리한 갈고리를 경력에 따라 뻗어낼 수 있단 말입니까?” 소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이 채찍에 거꾸로 달려 있는 갈고리들은 경력을 운행할 때 모두 일제히 뻗어지지. 그 길이는 자네 말대로 경력의 강약으로 정해지는 것이야. 가장 길게 뻗치면 두 자까지 늘어난다네. 그래서 이 채찍을 휘두를 때는 채찍에 달려 있는 백여덟 개의 조그만 갈고리가 모두 길게 뻗쳐 비할 데 없이 묘한 위력을 발생하여 적들은 도저히 막아 내지 못한다네. 실로 날카로운 무기인 셈이지.” “… …” “더욱이 채찍에 달려 있는 갈고리와 가는 탄사(彈絲)는 아주 예리하여 어떠한 무기라도 부딪히기만 하면 즉시 끊어져 버린다네. 그리고 이 채찍을 휘두를 때 맑고 고운 음향이 일어나는데, 그 음향은 사람의 심혼(心魂)을 위협하는 마력이 있어서 더욱 이 채찍의 위세를 증가시키지. “비류신은 이 말을 듣자 찬탄해 마지않았다. 인간이 어떻게 조물주가 무색할 정도로 오묘한 수법으로 이런 신병이기를 만들어 냈단 말인가. 소대호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이 잔금섭혼신편은 자네에게 물려주겠네. 자네는 이 채찍을 잘 보존하여 무림을 위해서 힘써주기 바라네.” 비류신은 약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후배는 재기가 부족하여 실로 이런 신물이기(神物利器)를 지니기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 소대호는 별안간 서릿발 같은 안색이 되더니 냉랭히 외쳤다. “그럼 자네는 이 채찍이 다른 사람의 수중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는 것인가?” 소대호는 잔금섭혼신편을 채찍집에다 넣고 다시 말했다. “이 채찍을 지금 자네에게 주 네.” 말을 마친 소대호는 두 손으로 채찍을 받들어 비류신 앞으로 내밀었다. 비류신은 더 이상 사양할 수가 없어 무릎을 꿇고 채찍을 받아들었다. 사실 그는 이 채찍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소대호는 잠시 생각하는 눈치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의 그 가짜 잔금섭혼신편은 노부의 옛 친구인 진편독자 탁성군이 만든 물건일세. 그는 채찍 만들기를 좋아했는데, 나한테 이 채찍이 있다는 것을 알자 곧 모방하여 가짜를 만든 것일세. 그는 절세의 기재라서 실로 교묘하게 만들어 놓아 진짜와 구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그러나 이 신기한 변화와 보광만은 모방할 수 없었다네. 아… 그 옛 친구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등질 줄이야… …” 비류신은 이 말을 듣고 쓸쓸히 한숨을 쉬었다. 자기의 처참한 과거가 생각나자 더욱 슬퍼졌다. 소대호는 별안간 두 눈에 싸늘한 광채를 쏟아내면서 비류신의 얼굴을 주시하더니 침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 잔금섭혼신편은 내가 평생 동안 지니고 있던 물건일세. 지금 자네에게 물려주었으니 잘 보관해야만 하네. 이 채찍은 일찍이 강호를 공포에 떨게 할 정도로 참혹한 살상(殺傷) 을 무수히 빚었지. 이 채찍이 벌써 십팔 년 동안이나 강호 무림에 출현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아직도 적지 않은 무림의 고수들이 천하의 방방곡곡을 뒤지면서 이 채찍의 행방을 찾고 있을 걸세. 그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다음 말을 계속했다. “더욱이 그 참혹한 유혈극을 연출한 몇 명의 노마두들은 아직도 현세에 건재하고 있을 것이니, 자네는 그 진귀하면서도 상서롭지 못한 물건을 아주 신중히 갈무리하여 다녀야 할 걸세.그 채찍은 형상이 특이하고 또 눈부신 광채를 발산하므로 일단 노출되기만 하면 즉시 강호에 널리 소문이 퍼져서 반드시 일장(一場)의 풍파를 일으키게 될 걸세.” “… …” “내 큰 형과 아우도 모두 그 채찍을 뺏으려는 마음을 품고 있으니, 자네는 그들을 경계해야만 하네.” 비류신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노 선배님, 이 채찍으로 인하여 일어난 참혹한 사건이 얼마나 됩니까? 후배는 견식을 넓히고자 하오니 상세히 말씀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소대호는 쓸쓸히 한숨을 쉬었다. “시간이 촉박하여 자네에게 그 사건들을 일일이 설명해 줄 수가 없네. 자네는 다만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로 그 채찍을 남의 눈에 띄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만 명심하면 되네.” “명심하겠사오니 노 선배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소대호는 고개를 들어 허물어진 천정을 바라보며 한동안 깊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 채찍은 비할 데 없이 진귀할 뿐만 아니라 참혹한 사건까지 일으켰고, 동시에 무림 인물들의 마음을 격동시킨 비밀을 한 가지 지니고 있지. 내 일찍이 그 비밀을 어느 누구에게도 누설시키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었네. 천하의 비보(秘寶)는 모두 연분이 있는 사람이 얻게 되는 것이지만, 잔금섭혼신편을 이미 자네에게 물려 줬으니 자네가 그 채찍에 얽힌 비밀을 밝혀낼 수 있는지의 여부는 복록(福錄)과 재간에 달린 것이지.” 비류신은 이 말을 듣자 가슴이 철렁 했다. ‘이 채찍에 또 다른 비밀이 얽혀 있다니 도대체 무슨 비밀일까?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구나… …’ 그는 잔금섭혼신편의 자루를 살펴보았지만 이상한 점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그는 채찍줄기에는 온통 예리한 갈고리가 거꾸로 달려 있어서 이곳엔 비밀이 숨겨져 있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는 채찍의 자루로 눈길을 돌렸던 것이다. 소대호는 예리하고 싸늘한 눈으로 비류신을 슬쩍 쓸어 본 후, 고개를 가볍게 저으면서 몹시 처량한 한숨을 내쉬더니 부드럽고 온화하게 말했다. “여보게, 어서 그 채찍을 허리에 두르게! 채찍집은 특별히 연금(軟金)으로 만든 것이므로 자유자재로 굽혔다 폈다 할 수 있으니까… 자네는 비록 무양무음진경의 초식을 터득했다 하지만, 잔금섭혼신편의 절초를 펼치는 데에는 아직 부족하니 노부가 곧 삼초(三招)의 비할 데 없이 날카로운 편법(鞭法)과 맨손으로 겨루는 기묘한 수법 몇 가지를 전수해주지. 맨손으로 겨루는 수법이란 상대방을 낚아채고 혈도를 찌르고 혈맥에 타격을 주는 절학을 말 하는 것이네.” 비류신은 이 말을 듣자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소대호의 자신에게 쏟는 정이 마치 바다와 같이 깊어, 이러한 인정을 남한테서는 처음 받아 보는 느낌이 들었다. 비류신은 소대호에게 받은 잔금섭혼신편을 옷자락 안의 허리에 두르고 채찍자루가 약간 보이도록 했다. 그런 다음 그의 면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노 선배님께서 저에게 이토록 깊은 온정을 베푸시면 후배더러 훗날 어떻게 보답하라는 것입니까?” 소대호는 돌연 두 눈에서 기이한 광채를 쏟아내며 무거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여보게, 자네가 내게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한다면 이후부터 나의 딸애를 잘 보살펴주게. 그렇게만 해 준다면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네. 자네가 그렇게 해 줄 수 있겠나?” 비류신이 어찌 소대호의 말뜻을 알지 못하겠는가. ‘나에게 소월녀를 잘 보살펴 달라고 하는 것은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라는 말이겠지.’ 소대호의 그 한마디 말에 비류신은 내심 지극히 처량함을 금치 못했다. 그는 모친과의 관계를 맺은 후 세상을 살아갈 낯이 없다고 생각해 왔었다. 가슴 가득 피맺힌 원한과 분노를 품고 있지 않았다면 절대로 더러운 굴욕을 참아가면서 아직까지 이 세상에 살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굳게 결심했었다. 이미 그에게 행복이란 있을 수 없다고. 오직 피맺힌 원한만 갚게 된다면 곧 죽음을 택하겠다고… 그래서 그는 여자에 대해선 추호의 관심도 없었다. 설사 절세의 미녀가 그의 눈앞에 있다 할지라도 그는 절대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소대호는 비류신이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고 처량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자 크게 실망한 나머지 은빛 수염과 백발이 떨리도록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의 인연이란 하늘이 정하는 것이니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강요할 순 없지. 아… …” 비류신은 구슬프게 부르짖었다. “노 선배님, 저는 어르신네의 아름다운 뜻을 받들겠습니다… … 비류신은 비할 데 없이 감정이 풍부한 사람인지라 소대호가 그에게 그토록 두터운 은총을 베풀자 그의 인자한 모습이 가슴 속에 깊이 새겨졌다. 그는 소대호가 너무나 고독하고 처량하다고 생각했었다. 그가 어찌 자기에게 바다와 같이 깊은 은혜를 베풀어 준 노인에게 실망과 슬픔을 안겨 줄 수 있겠는가.게다가 그는 소대호가 사람의 연분이란 하늘이 정하는 것이라고 탄식하는 말을 듣고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그의 요구를 수락한다 할지라도 소월녀 본인은 나를 싫어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생각 덕에 괴로움을 참고 그의 요구를 수락했던 것이다. 소대호의 심정을 더욱 슬프게 하지 않으려는 심사에서였다. 소대호는 비류신의 말을 듣자 몹시 기쁘고 위안이 되었는지 매우 기쁜 표정이 되었다. 그는 곧 비류신에게 비할 데 없이 정묘한 비학(秘學)을 상세히 전수해 주기 시작했다. 비류신은 원래 총명이 과인한 사람인데다가 피맺힌 원한을 품고 있는지라 오직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연마했다. 어느덧 석양이 서산으로 서서히 넘어가고 저녁놀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소대호는 갑자기 유실 밖의 하늘을 슬쩍 바라보더니 수염을 쓰다듬으며 빙그레 웃었다. “여보게, 자네는 극히 총명하군. 나는 벌써 내가 알고 있는 비교적 정묘한 초식을 모두 전수해 주었네. 자네가 무양무음진경의 초식과 잘 배합시킬 수 있다면 멀지 않아 자네는 무림에서 명성을 떨칠 수 있을 걸세. 자네가 지금 터득한 것은 다만 공력상의 심도(深度)가 문제지. 그러나 나는 힘껏 자네를 도와 공력을 완전히 상실한 자네로 하여금 다시 수십 년의 공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 주겠네… …” 비류신은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 망연히 물었다. “노 선배님의 말씀은 제가 잠시 후에 수십 년의 공력을 지닐 수 있다는 뜻입니까?” 소대호는 처량한 음성으로 말했다.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한 시간 후에 자네는 최소한 이십 년 이상 동안 수련한 공력을 지니게 될 걸세.그리고 다시 일 년 후에는 자네의 공력이 육십 년 이상 수련한 정도로 진경을 보일 수 있지.허나 정진의 속도는 자네의 재간과 자질에 달린 걸세.” 비류신은 그래도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나직이 물었다. “노 선배님, 저의 체질은 이미 바뀌었습니까?” “아직 바뀌지 않았네. 이제 노부가 공력을 운행하겠으니 자네는 잠시 책상다리를 하고 내 앞에 앉아 있게.” 비류신이 그의 말대로 가부좌를 틀고 단정히 앉자 소대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보게, 내가 자네에게 한 가지 깨우쳐줄 일이 있네. 그것은 공력이 극도로 정진되기 전에는 너무 자기의 무공을 과시하지 말라는 것일세. 노부가 보기엔 자네는 지금의 무공으로써 충분히 무림의 일류 고수와 겨룰 수 있네.그러나 강호에는 음모와 흉계가 많아서 무공으로 막아 내지 못할 일들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하네.” “… …” “더욱이 나의 큰 형 소대풍과 아우 소대천의 공력은 아마 자네의 지금 공력보다 훨씬 뛰어날 걸세. 그리고 십팔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그들 두 사람이 또 어떠한 무예를 배웠는지 알 수 없으니, 자네는 결코 그들의 적수가 될 수 없네. 그러나 자네의 절묘하고 심오한 초식으로 보아 아마 자신의 안위는 지킬 수 있을 걸세.” 소대호는 잠시 숨을 돌리고 나서 말을 이었다. “방금 내가 전수한 비학은 모두 교묘한 경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자네가 노련하게 발휘만 한다면 자네의 부족한 공력을 잠시 보충시킬 수 있지.내 아우 지신도 소대천은 사람됨이 잔인하고 악독하며 절세의 기지를 지니고 있네. 그리고 그는 한 권의 독경(毒經)을 터득하여 독공(毒功)을 펼치는 데는 현 무림계에서 제일이라 할 수 있지. 그러나 자네는 그와 맞닥뜨리게 되거든 가급적이면 피하는 게 좋을 걸세.” “… …” “아! 십팔 년 동안 아우 소대천이 지령보를 관장했으니 아마 많은 녹림(錄林)의 거물과 극히 흉악한 도적들이 그의 휘하에 들어갔을 거야. 그들은 서로 힘을 합해 제멋대로 악행을 저지르고 있겠지. 그 기세는 아마 극히 강대하여 전 무림을 단숨에 삼켜 버릴 만할 걸세. 이 모든 것은 나의 죄악 일세… …” 비류신은 소대호의 긴 얘기를 듣고 있다가 낭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노 선배님, 안심하십시오. 제 능력이 미치기만 한다면 반드시 영제의 악행을 저지하겠습니다.” “무림의 성패는 모두 자네에게 달려있네. 더구나 자네는 지금 몇 가지 극히 중요한 보물을 몸에 지니고 있으니, 얼마 후 몸의 상태가 좋아지거든 즉시 숭산(嵩山) 소림사로 달려가게. 그리고 구대문파의 신물을 소림사 장문인 해동선사에게 전해 주게.” 소대호는 별안간 두 눈에서 예리한 광채를 쏟아 내면서 묵직한 음성으로 다시 말했다. “그럼 어서 정신을 바짝 차리게. 아무리 참기 어려운 고통이라도 참고 견디어야 하네.” 이어 소대호는 열 손가락을 뻗치더니 비류신의 전신 경맥(經脈)을 찔러대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소대호의 두 손은 일제히 비류신의 전신을 안마했다. 손바닥이 닿는 곳에는 열기가 체내로 스며들어 몹시 그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비류신은 몇 가닥의 뜨거운 기류가 전신의 혈맥으로 퍼져 단지 혈액순환을 빠르게 한다는 것을 느낄 따름이었다. 순식간에 비류신은 전신의 기혈이 용솟음쳐 오르기 시작하여 고통을 참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두 눈을 감은 채 서서히 조식(調息)을 하였다. 그는 자기의 운명이 한 번의 거동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어떻게 서든 고통을 참아야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고통은 갈수록 더욱 강렬해졌다. 이때 소대호의 손가락은 불 속에서 시뻘겋게 달아오른 두 개의 쇠막대기처럼 뜨거운 열기를 띠고 그의 전신을 주물렀다. 따라서 비류신은 전신을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으로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참기 어려운 고통은 아니었다. 더욱 심한 고통은 소대호의 손가락이 그의 몸을 주무를 때 두 줄기의 강한 열기가 그의 전신 기혈을 뒤집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굽힐 줄 모르는 강한 성격을 지닌 그는 이를 악물고 비할 데 없는 고통을 참으면서 한마디도 신음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고 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욱 극렬해졌다. 이제 비류신은 전신이 예리한 칼날에 의해 천만 조각으로 찢기는 것 같기도 하고, 온 몸뚱이가 거대한 바위에 짓눌려 납작한 육장(肉漿)이 되는 것만 같았다. 이 엄청난 고통이 이미 그로 하여금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했다. 그의 정신은 차츰 흐려져서 의식이 희미해져 갔다. 이때 소대호의 얼굴에는 한 가닥 기쁨과 만족의 빛이 떠올랐다. 비류신은 이미 정신을 완전히 잃어 그의 몸뚱이를 지탱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바로 이때 귓전으로 청천벽력과도 같이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그는 자기의 정신과 몸의 각 부분이 그 벽력같은 고함소리에 의해 산산 조각이 나서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철컥! 가볍게 일어나는 음향. 이것은 비류신의 몸뚱이가 줄이 끊어진 연처럼 육칠 장 밖으로 날려가 정원에 쌓여 있는 백골 더미 위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비류신의 귓전으로 돌연 가느다란 음성이 들려왔다. 순간, 그는 물 속에 잠겨 있는 듯 전신이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앞에는 온통 흰빛만 보였다. 자기가 누워 있는 곳은 백골이 잔뜩 쌓인 정원이었으며, 하늘에선 폭우가 쏟아지고 있어 온몸이 빗물에 흠뻑 젖어 있었던 것이다. 주위는 더욱 처량하고 음산하여 공포가 감돌았다. 비류신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전신이 아주 홀가분한 것이 악몽 같은 그런 고통은 조금도 없었다. 진정 악몽에서 시달리다 깨어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즐독 ㄳ
재미납니다.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