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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천궁(天弓), 제천존(帝天尊)이 되거라 "독황전(毒皇殿)이나 살황독교(薩荒毒敎)는 본후인 만독부(萬毒府)에 패한 것을 수치로 알고 있다!" "음......" 백리천궁은 만독존후의 이야기를 들으며 침중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침음하며 내심 생각을 굴렸다. (만독존후의 위의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독황전과 살황독교는...... 만독존후만 사라진다면 이내 반발하여 천 년 만에 이루어진 독종일통(毒宗一統)은 다시 허물어지고 말리라.) (......) 생각에 잠긴 백리천궁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만독존후. 그녀의 입가로 흐뭇한 미소가 감돌았다. (총명한 아이다. 이 아이라면...... 독종(毒宗)의 전통을 맡길만하다.) 만독존후는 잔잔하고 그윽한 미소로 백리천궁을 주시했다. 그녀의 눈길에는 신뢰와 믿음의 빛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만큼 가까운 죽음의 그림자도 함께 어른거리고 있었다. 백리천궁은 점점 죽음의 그늘이 짙어지는 만독존후의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저려옴을 느꼈다. 비록 그녀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웬지 낯설거나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친혈육을 만난 듯한 따스함을 느끼지 않았던가? 마치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를 만난 듯한 안온함을 느꼈건만.... (훌륭한 여독종(女毒宗)이셨는데...... 좀더 일찍 만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백리천궁은 안타까움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는 만독존후의 모습에서 어머니(母)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 가슴 뭉클한 그리움의 감정을 만독존후를 처음 보면서 느꼈었다. 핏덩이 때부터 아버지 천기대제의 손에서 자란 백리천궁이었다. 그런 탓으로 그의 가슴 속에는 늘상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어머니의 환영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이제, 죽음을 앞에 하고 그 자신을 믿음과 온화함으로 바라보는 만독존후 화빈영의 모습은 백리천궁이 늘상 그려오던 어머니의 잔상, 바로 그것이었다. "......" "......" 죽음 같은 적막이 흘렀다. 문득, 화빈영의 입가로 화사한 미소가 감돌았다. (회광반조(回光返照)......) 그것을 본 백리천궁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마지막 생명을 꽃피우는 화빈영의 모습은 더할 수 없이 아름답고 처연해 보였다. 죽음의 순간에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그 또한 여인이 가진 특권일까? 남아 있는 한줄기 생명으로 화사한 꽃을 피우는 화빈영의 옥용은 그 어느때 보다 아름답고 숭고해 보였다. 문득 백리천궁은 물기가 차오르는 눈으로 화빈영을 올려다 보았다 "소자에게...... 청이 있습니다." "그래, 말해 보거라!" 만독존후 화빈영은 옥용 가득 화사한 미소를 띄운 채 온화한 음성으로 말했다. "소자가...... 어머님이라고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화빈영의 교구가 바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그녀의 옥용은 놀라움과 기쁨으로 환히 빛났다. 그녀의 고운 볼 위로 주르르! 옥구슬이 굴러내렸다. 눈물이 흐르고 있지만 그녀의 옥용은 감격과 기쁨으로 화기를 발하고 있었다. "노신은...... 그럴 자격이 없는 늙은이인데...... 너 같은 아들을 만년에 두게 되다니......" "어머님! 소자 천궁의 절을 받으십시오!" 백리천궁은 화빈영에게 큰 절을 올렸다. "아이야......" 화빈영의 목소리가 감격으로 떨렸다. 그녀는 정이 듬뿍 담긴 그윽하고 온화한 눈빛으로 백리천궁을 내려다 보았다. 그것은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따사로운 눈길이었다. "어미도...... 네게 부탁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구천(九泉)이라도 갈 것입니다!" 화빈영은 미소하며 자신의 교수로 등을 찌른 중년문사를 가리켰다. "어미는...... 네가 담오라버니도 의부로 모셔주기 바란다." "......" 뜻밖의 말에 백리천궁은 흠칫하며 중년문사를 바라보았다. 백리천궁은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만독존후 화빈영이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천하의 단 일 인. (기절천존(奇絶天尊) 제갈담(諸葛曇)......) 백리천궁은 흔들리는 시선으로 중년문사를 바라보았다. __기절천존(奇絶天尊) 제갈담(諸葛曇)! 천하제일현자(天下第一賢者)! 이론(理論)만으로라면 능히 고금제일(古今第一)이 될 수 있다는, 만박통지의 제일기인(第一奇人)이 바로 중년문사였다. "허허...... 빈영은...... 여전히 욕심이 많군!" 제갈담은 껄껄 너털웃음을 웃었다. 상식대로라면 화빈영보다도 제갈담이 먼저 죽었어야 했다. 그는 마종지주(魔鍾之主)의 암습을 받아 전신심맥이 갈가리 끊긴데다가 화빈영의 교수가 명문혈을 박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어가는 화빈영에 비하여 제갈담은 전혀 죽음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백리천궁이라도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었다. "호호...... 천궁이 담오라버니마저 의부로 삼게 된다면......" "허허...... 그것참......" 죽음이 곁에 있음에도 두 노기인들은 소탈하게 웃었다. 백리천궁의 눈가로 물기가 맺혔다. (두 분은 자존심(自尊心)이 강하신 분들이다...... 서로 사랑하시면서도 끝내 결합하지 못하셨다. 이제 내가 두 분을 의부모로 모시게 된다면 두 분은 저승에서라도 하나가 되시리라!) 백리천궁은 두 사람의 결합을 진정한 마음으로 이루어주고 싶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기절천존 제갈담 앞에 섰다. "아버님! 소자의 절을 받으십시오!" 그는 정중히 제갈담에게 이 배(二拜)를 올렸다. "헛허...... 삼 갑자 넘게 살고서야 아들을 얻게 되다니......" 제갈담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백리천궁을 내려다 보았다. 그의 두 눈으로 잔잔한 기쁨의 열류가 흐름을 백리천궁은 볼 수 있었다. 이때, 화빈영이 사색이 완연한 얼굴로 말했다. "담오라버니...... 소매가 먼저 가야겠어요!" "나도...... 곧 빈영을 따라가리다!" "네......" 두 절대자는 아주 초연하게 죽음의 순간을 맞고 있었다. 화빈영은 백리천궁의 준수한 모습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런 그녀의 옥용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점점 더 짙어졌다. 청아하고 고운 그녀의 음성도 마치 바람 앞의 등불처럼 여리게 꺼져들고 있었다. "천궁(天弓)...... 의부께서...... 많은 것을 가르칠 것이니......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함이 있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화빈영은 죽음의 그늘 아래서도 미소를 잃지 않으며 온화한 음성으로 당부했다. "각골명심하겠습니다, 어머님!" "암! 그래야지, 그렇고 말고......" 백리천궁을 믿음직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화빈영은 다시 제갈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 두 사람의 시선이 뜨겁게 어우러졌다. 온갖 감회와 헤아릴 수 없는 감정들이 서로 교차되었다. 가슴속에서 뜨겁게 파도치는 감정의 열류.....그것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가슴으로 잔잔하게 흘러들었다. 제갈담은 만감이 서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때가 되었구만!" 화빈영도 마주 고개를 끄덕이며 살포시 눈을 감았다. "먼저...... 가겠어요. 오라버니......"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 화빈영의 교구는 기절천존 제갈담의 등에 교수를 박아 넣은 채 그대로 조각인 양 굳어졌다. "어머님!" 백리천궁은 이미 예정된 일이었지만 가슴이 철렁하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다급히 화빈영을 불렀다. 그러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단좌한 만독존후 화빈영의 두 눈은 다시는 떠질 줄을 몰랐다. __만독존후(萬毒尊后) 화빈영! 일대를 풍미하던 독종최후의 강자이며 고금제일 여고수의 최후였다. 백리천궁의 볼 위로 뜨거운 것이 주르르 흘러 바닥을 짚은 그의 손 끝으로 떨어졌다. 이때, 제갈담이 마주 무릎을 꿇고 앉은 백리천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천기(天機)를 보았다. 죽음(死)은 피할 수 없으나...... 제천존(帝天尊)이 될 대기재를 만날 수 있음을 알았다!"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 보낸 그의 안색은 물같이 담담하기만 했다. 이미 초인의 경지에 이른 그였지만 그래도 아픔이 없겠는가? 하지만 그는 슬퍼하지 않았다. 지금의 헤어짐은 곧 영원한 만남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굳이 죽음을 피하려고 아둥바둥 하지 않았다. 자신의 죽음조차도 광대한 천의(天意)에 속하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제천존(帝天尊)......" 백리천궁은 문득 가슴 벅찬 격동을 느끼며 나직이 그 이름을 되뇌었다. "제천존(帝天尊)...... 그것은 하늘이 열리면서부터 있어 온 무림의 전설이니라!" 기절천존은 엄숙한 안색으로 백리천궁에게 설명해 주었다. <제천존(帝天尊)> 절대무이(絶代無二)! 그것은 고금영세(古今永世)를 통하여 군림(君臨)하는 절대최강자(絶代最强者)를 일컫는 영예로운 이름이었다. "제천존은.... 곧 고금제일존(古今第一尊)을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절대인 천존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제갈담은 형형한 눈초리로 백리천궁을 바라보았다. 기절천존(奇絶天尊) 제갈담(諸葛曇)은 천기(天機)를 읽을 줄 아는 현자(賢者)였다. 그도 절대신검존과 같이 귀보의 초청을 받았으며 그가 귀보(鬼堡)가 죽음의 땅임을 알면서도 귀보로 든 것은 자신의 최후를 애녀(愛女) 화빈영과 함께 하려고 한 까닭이었다. 약종(藥宗) 대(對) 독종(毒宗). 그것은 영원한 상극(相克)이다. 화빈영은 제갈담을 보자마자 광풍같은 기세로 독강을 일으켰으며, 제갈담도 탄식하며 마주 약종지기(藥宗之氣)를 일으켰다. 그렇게 두 절대강자(絶代强者)는 십주십야를 대치하였다. 그들의 싸움은 치고 받는 식의 싸움이 아니었다. 서로의 독강과 약종지기가 무형의 광풍을 일으킬 뿐이었다. 열흘간의 대치, 어지간한 두 절대자도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마종 혈뢰(魔鍾血雷)의 종음(鍾音)이 두 절대자를 사경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것은...... 양인으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암습이었다. 그리고 그것까지도 기절천존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제갈담은 진세를 펼쳐 마종지주가 자신들의 진전을 얻는 것을 방비할 수 있었던 것이다. __오라버니만은...... 더 오래 버티셔야 해요. 화빈영은 담담한 음성으로 뒤를 부탁하고는 자신의 독종지기(毒宗之氣)를 모조리 제갈담에게 불어 넣어 주었다. 독종지기(毒宗之氣)와 약종지기(藥宗之氣), 극과 극을 달리는 이 종(二種)의 절대지력(絶代之力)이 제갈담의 내부에 고이고, 그 두가지 절대지력이 충돌하며 일어나는 잠력은 실로 가공한 것이었다. 제갈담은 그 잠력의 힘을 빌어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문득, 제갈담은 신비한 미소를 지으며 백리천궁에게 물었다. "제천존(帝天尊)에 가장 가까왔던 인물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글쎄요. 소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금부지존(禁府至尊)이 아닐까요?" 백리천궁의 말에 제갈담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 일백천상무존의 제일인자인 금부지존(禁府至尊)이 제천존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였던 분이다. 그러나......"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천마대제(天魔大帝)가...... 천외(天外)로 피해 달아났던 사실이 그 첫째이다." "......" 백리천궁은 진지한 안색으로 제갈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__천마대제(天魔大帝). 마교사상 최강자이며 사상 최강의 마종(魔宗)이었던 대마(大魔). 그가 새외로 쫓겨가 칼을 갈며 어떤 경지에 이르렀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생각에 잠긴 백리천궁의 귓전으로 제갈담의 말이 이어졌다. "천외금부(天外禁府)로 든 일백천상무존들이 결코 할 일 없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두 번째로 기억해 두어야 한다." "......" "세 번째로 기억해야 할것은 네가 진전을 얻은 절대신검존(絶代神劍尊)의 초극검예(超極劍藝)이다." "만상귀원초극류(萬象歸元超極流)!" 백리천궁은 나직한 음서으로 부르짖었다. 만상귀원초극류는 인간으로서는 그 이상 이룰 수 없는 최극의 절예가 아닌가? 그것은 가히 제천존을 탄생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제갈담은 엄숙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실상 우리 오천존(五天尊) 중 최강(最强)은 절대신검존이었다!" (절대신검존 뇌노선배님......) 백리천궁은 절대신검존 뇌공우의 태산같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모습에서 그는 능히 고금제일의 절대자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았던가? "뇌공(雷公)이 반 갑자만 더 젊었어도...... 우리 오천존의 시대에서 제천존(帝天尊)의 탄생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문득 제갈담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백리천궁도 제갈담의 말에 수긍이 갔다. 만상귀원초극류! 단 삼 성에 이른 그 화후로 무적의 신위를 보인 절대신검존이 아니던가? "마지막으로...... 이 아비의 천존십절예(天尊十絶藝)가 있다!" 기절천존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천존십절예(天尊十絶藝)!" 백리천궁의 두 눈이 휘황한 신광을 발했다. 기절천존, 그는 천성적으로 무공을 연마하는 데에 결함이 있는 체질을 타고났다. 그 대신 그의 지혜는 가히 고금제일이라 할만한 것이었고 그는 이론상의 수많은 절기를 창안하였다. 그 중 가장 뛰어난 일백 종의 절기가 있었으니 그것을 일컬어 다음과 같이 부른다. __기절일백천예(奇絶一百天藝). 기절일백천예는 그 어느 것이라도 극에 이르면 절대오천존(絶代五天尊)의 절기만큼 강해질 수 있다고 한다. "아비는 백 년 간 세외(世外)에 살면서 기절일백천예를 십종절기(十種絶技)로 함축시켰다!" "아......" 제갈담의 말에 백리천궁은 나직한 탄성을 발했다. 그는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절일백천예가 어떤 절기들인가? 하나하나가 절대오천존의 절기들과 대등한 절정절기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 백 종의 절기를 다시십 종(十種)으로 함축하였다니... 그 위력을 가히 상상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제갈담은 은은한 자부심이 깃든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십종절기는 완벽, 그 자체다. 십종절기를 완전히 수습한다면 그 경지는 곧 무적경지로, 그것은 곧 제천존(帝天尊), 고금제일(古今第一)의 경지가 될 것이다." "......!" 백리천궁의 가슴이 물방아같이 심하게 쿵쾅거렸다. 백리담의 말은 듣기만 해도 그에게 벅찬 격동과 설레임을 불러 일으켰다. (제천존(帝天尊)! 고금제일(古今第一)...... 아! 그 경지에 들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진 것이다.) 그는 기대와 흥분으로 벅찬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제갈담은 그런 그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기절천존(奇絶天尊) 제갈담(諸葛曇). 천존십절예(天尊十絶藝). 제일기재(第一奇才) 백리천궁(百里天弓). 운명의 크나 큰 안배는 이 모든 조건을 구비시켜 놓았다. 천하제일의 스승(師)이 될 제일기인, 무적의 절기(絶技) 천존십절예(天尊十絶藝), 그리고 천고제일기재인 백리천궁, 모든 조건은 완벽하게 구비된 것이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그것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확실한 단 한 가지, 그것은 대풍운(大風雲)이 이로하여 일어나 천지(天地)를 그 큰 그림자(巨影)로 뒤덮어 버릴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대풍운(大風雲)의 그림자(影). 절대오천존의 한(恨)이 빚어낼 그 큰 그림자는...... 제천존(帝天尊)___! 바로 고금제일인(古今第一人)의 그림자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는가? "천해구전환우대법(天解九轉環宇大法)!" 츠츠츠츠! 신비로운 금무(金霧)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그 가운데서 금빛의 명주실보다도 가는 강기들이 쏟아져 만방(萬方)을 가득 메웠다. 한 칸의 석실. 금빛 자욱한 서기가 흐르는 가운데 석벽에는 한 장의 인체도(人體圖)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한 명의 백의청년이 우뚝 서 있었다. 문득, 경쾌한 파공음과 함께 금빛 운무 속에서 석벽에 그려진 인체도에 정확히 삼백육십 개의 작은 구멍이 생겼다. "아버님...... 아버님! 보십시오. 약종(藥宗)은 절정(絶頂)에 이르렀습니다!" 격동과 감회에 찬 떨림의 일성이 그 속에 나직이 흘러나왔다. 스스스스! 이윽고 신비로운 금무(金霧)가 흩어지며 단아한 기품을 지닌 청년의 모습이 드러났다. 바로 백리천궁이었다. 백리천궁은 한 쪽의 석벽을 향해 단정히 무릎을 끓었다. 그 석벽 앞에는 하나의 큼직한 석관이 놓여 있었다. <의부(義父) 기절천존(奇絶天尊) 제갈공지위(諸葛公之位)> <의모(義母) 만독존후(萬毒尊后) 화씨지위(華氏之位)> __의자(義子) 백리천궁읍립(百理天弓泣立). 석관 앞에는 청석으로 깎아 만든 하나의 비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비석에는 이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바로 기절천존과 만독존후가 영면한 석관이었다. "......" 큰 절을 올린 백리천궁은 단정하게 앉아 비문을 바라보았다. 기절천존이 절명한 것은 이미 열흘 전의 일이었다. 백리천궁의 뇌리속에 자애롭고 인후하던 의부 제갈담의 마지막 모습이 선연히 떠올랐다. 위이이잉! 기절천존의 쌍장으로부터 두 줄기 서로 다른 기운이 노도같이 백리천궁의 몸으로 흘러들었다. 백리천궁은 기절천존이 불어 넣어 주는 내공을 받아들이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헛허...... 울지 마라. 아비는 어차피 오늘을 넘기지 못함을 잘 알지 않느냐?" 기절천존은 마지막 순간에도 의연함을 잃지않고 초탈하게 웃었다. (아버님......) 백리천궁의 가슴은 뜨거운 격동과 슬픔으로 파동쳤다. 그런 그의 귓전으로 제갈담의 인후한 음성이 계속 흘러들었다. "약종지기(藥宗之氣)는 만종영약(萬種靈藥)의 정화니라. 만독(萬毒), 만사(萬邪), 만악(萬惡)이 네게 범접하지 못할 것이다!" 그와 함께 지극히 맑고 깨끗한 기운이 백리천궁의 좌반신으로 밀물같이 몰려들었다. 그것은 바로 약종지기였다. "이 약종지기는...... 아비의 선물이니라...." 쿠쿠쿠...... 그리고 다시 이번에는 강렬하고 패도적인 흐름이 백리천궁의 배심을 새까맣게 태우며 밀려들었다. 그것은 만독(萬毒)의 정화(精華)가 지극히 자순하게 응고된 천지지간에서 가장 독한 기운이었다. __독종지기(毒種之氣)! 바로 그것이었다. "빈영을 대신하여 독종지기(毒種之氣)를 전해준다! 빈영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백리천궁의 꼭감은 눈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찌...... 어머님의 은혜를 잊겠습니까?) 의 내부에서는 서로 상반된 두 가지 기운이 서로 격렬하게 휘돌며 흐르기 시작했다. 그 기세는 가히 엄청났다. 그리고 마침내, 그 두 가지 상극의 절대지력(絶代之力)이 서로 충돌하며 거창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릉____! "으......" 백리천궁은 전신이 터져 나가는 듯한 고통에 정신이 가물가물 해짐을 느꼈다. 그런 그의 귓전으로 기절천존의 목소리가 각인이 되어 박혔다. "제.... 천존(帝天尊)이 되거라. 절대신검존...... 빈영, 그리고 아비의 염원이...... 네 일신에서 꽃이 피기를......" __제천존(帝天尊)이 되라! 제천존이 되라! 제천존(帝天尊)이...! "아버님! 어머님! 지켜 보아 주십시오!" 백리천궁은 주먹을 불끈 움켜 쥐었다. 그의 봉목으로부터 뇌전보다도 강렬한 신광이 쏟아져 나왔다. "반드시 제천존(帝天尊)이 되어..... 두 분이 제천존의 의부모셨음을...... 천하가 알도록 할 것입니다!" 그는 굳은 신념과 의지가 깃든 결연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비석 앞에 놓여 있던 한 권의 양피지의 비급을 집어 들었다. <천존무보(天尊武譜)> 비급의 표지에는 용비봉무의 필체로 이와같은 제목이 적혀 있었다. 바로, 천존십절예가 담긴 비급이었다. 백리천궁은 경건한 자세로 비급의 겉장을 넘겼다. __제천존을 위하여 기절천존이 남긴다. 천존십예(天尊十藝) 기십절(其十絶)---- 제일 먼저 수려한 서체로 이와같이 적혀 있었다. 기절천존이 제천존이 될 백리천궁을 위해 남긴 것이었다. 그 아래로는 기절천존의 모든 일신무학이 집약된 눈부신 정화가 일목요연하게 담겨 있었다. <약종비전(藥宗秘傳)> 약종(藥宗)! 그것이 어떤 전통인가? 만독(萬毒)과 상극을 이루는 파사(破邪), 해독(解毒)의 절대성맥(絶代聖脈)이 아닌가? 그런데, 그 약종이 겨우 천존십절예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약종비전은 깨알 같은 글씨로 백여 장의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약종비전의 끝, 그곳에는 천하제일의 암기수법이며 또한 사자(死者)마저 회생시킬 수 있다는 회천대법(回天大法)이 기록되어 있었다. __천해구전환우대법(天解九轉環宇大法)! 바로 이것이었다. "약종은 더 이상 볼 필요가 없고......" 스스스스! 문득 약종비전 부분의 백여 장이 재로 스러졌다. 물론, 그 중의 내용은 글자 한 자 틀리지 않고 백리천궁의 뇌리에 이미 기억된 후였다. __천존십절예(天尊十絶藝) 기구절(其九絶). <천역만환둔신술(天易萬幻遁身術)> 가히 고금제일이라할 만한 완벽한 역용술(易容術)! 그것이 천존십절예의 제이절(第二絶)이었다. 일반의 역용술에는 많은 소도구들이 필요하다. 역용환, 변성환, 인피면구 등등...... 그러나, 천역만환둔신술에는 이런 소도구가 필요없다. 기묘한 내공심법 하나로 모든 소도구의 역활을 대신하는 것이다. 또한, 이 중에는 주위 사물에 동화되어 적의 눈길에서 벗어나는 지상(至上)의 은신술마저 포함되어 있었다. __천존십절예(天尊十絶藝) 기팔절(其八絶). <대제천류검(大帝天流劍)> 천존십절예의 여덟 번째는 검법(劍法)이었다. 물론, 이것은 평생을 검 한 자루에 바친 절대신검존의 검예만은 못하다. 그러나 대제천류검(大帝天流劍)은 한 방면에서는 무적이고 완벽, 그 자체였다. 그 요결(要訣)은 바로 중(重)이라 표현할 수 있었다. 대제천류검(大帝天流劍)에 기절천존은 하늘(天)의 무게를 담았다. 비록 느린 듯이 보이나 대제천류검의 검세를 저지할 만한 절기는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제팔 서열의 절기였다. __천존십절예(天尊十絶藝) 기칠절(其七絶). <벽섬전궁강지(碧閃電弓 指)> 천지지간에서 가장 빠른 것은 무엇일까? 바로 뇌전(雷電)이 아니겠는가? 천존십절예의 제칠절(第七絶)은 바로 뇌전(雷電)의 지공(指功)이었다. 뇌전(雷電)을 누가 피하겠는가? 번---- 쩍! 문득 눈부신 섬광(閃光)이 석실을 갈랐다. 폭음이 들썩 주위를 뒤흔드는가 싶더니 놀랍게도 석벽의 일각이 새까맣게 타서 석 자 깊이로 구멍이 뻥 뚫리고 말았다. "삼성(三成)화후......" 백리천궁은 구멍이 뚫린 석벽을 바라보며 침중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의 성취에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기절천존이 알았다면 혀를 내두를 엄청난 진척이었다. 벽섬전궁강지야말로 천하제일쾌섬지공(天下第一快閃指功)이었다. __천존십절예(天尊十絶藝) 기육절(其六絶). <군림뇌정천환보(君臨雷霆天幻步)> 신법(身法)! 그러나 이것은 신법이기는 하나 무적이 되는 절기였다. 이는 모두 세 가지 요결로 이루어진다. __군림(君臨). 일 보(一步)를 움직임에 태산(泰山)이 함께 움직인다. 무형의 기도가 폭풍같은 기세로 일어나 마상을 제압하니 이를 군림보(君臨步)라고 한다. __뇌정(雷霆). 빠름은 보법의 생명이다. 우뢰성(雨雷聲)이 천지를 뒤덮으면 오로지 일 섬 뇌전(雷電)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고금을 통하여 가장 빠른 신법의 요결이 바로 이것이니, 이름하여 뇌정신보(雷霆神步)라 불린다. 천환(天幻)__ 환(幻)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미(迷)이며 허(虛)다. 그림자(影)가 하늘(天)로 흐르니 만방(萬方)이 오직 허환(虛幻)뿐이다. 누구도 실체를 보지 못하며, 누구라도 환영(幻影)을 따르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천환신보(天幻神步)였다. 가히 고금제일의 이름으로 불리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경공절기였다. 군림뇌정천환보(君臨雷霆天幻步)___ 그것이 천존십절예(天尊十絶藝)의 제육절(第六絶)이었다. "오절기(五絶技)를 수습하면 이곳을 떠나도 좋다고...... 아버님께서는 말씀하셨지!" 스스스...... 중얼거리던 백리천궁의 손에서 사절예(四絶藝)가 적힌 부분도 역시 재로 스러졌다. "......" 백리천궁은 잠시 기절천존과 만독존후가 잠든 석관(石棺)을 바라다 보았다. "아버님, 어머님! 소자 천궁은... 이제 강호로 나갈까 합니다!" 그는 석관에 대고 삼 배(三拜)를 올렸다. __헛허...... 너를 믿는다. 다시 돌아올 때는 제천존으로 성장해 있어야 할 것이니라. 기절천존 제갈담의 온후한 목소리가 귓전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 하였다. (기필코.....뜻을 이루겠습니다!) 백리천궁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어, 그는 천존오절예(天尊五絶藝)가 적힌 천존무보(天尊武譜)와 절정신검(絶頂神劍)을 집어 들고 일어섰다. "......" 일어서서도 백리천궁은 잠시 발길을 떼어 놓지 못했다. 자신에게 엄청난 기연을 안겨 준 두 기인 제갈담과 만독존후 화빈영이 잠들어 있는 곳. 두 의부의모가 영면한 그곳을 떠나자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떠나야 했다. 그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제천존이 되어 그분들의 숙원을 이루어 드려야만 했다. 이윽고 백리천궁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쿠쿠쿠쿠! 진세(陣勢)는 여전히 맹렬한 선풍을 일으키며 휘돌고 있었다. 백리천궁은 표표히 진세를 빠져 나왔다. "우야! 야압!" 콰르르르르...... 쿠쿠쿠쿵! 진세 밖에서는 또 다른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한 명의 거한(巨漢)이 우뚝 선 채 태산 같은 권세(拳勢)를 내치고 있었다. 일권일권에 천번지복할 강풍이 내뻗어 대기를 갈가리 찢어내고 있었다. 실로 엄청난 위세가 아닐 수 없었다. 백리천궁은 그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패왕(覇王)! 묵강선풍권을 완성했군." 그제서야 거한은 백리천궁을 발견하고 급히 권세를 거두었다. 그는 바로 거령패왕(巨靈覇王)이었다. 백리천궁은 기절일백천예 중 몇 가지를 거령패왕에게 전수하였고, 묵강선풍권도 그 중의 하나였다. 거령패왕은 우직한 겉모습과 달리 매우 뛰어난 이해력을 지니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는 이미 절정의 경지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주공(主公)!" 거령패왕은 백리천궁이 석실을 나오자 반색하며 외쳤다. 그는 우직한 얼굴에 기쁜 빛을 감추지 못하며 즉시 무릎을 꿇고 일 배(一拜)를 올렸다. "패왕(覇王)...... 이제 이곳을 나갈 것이네!" 백리천궁은 그런 거령패왕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이어 그는 한쪽의 석문(石門)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나가신다고요? 강호로!" 거령패왕의 넓적한 얼굴이 아냐 흥분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급히 백리천궁의 뒤를 따라갔다. 쿠르르르릉! 백리천궁이 다가서자 석문이 절로 활짝 열리며 칙칙한 어둠이 흐르는 밀로(密路)가 나타났다. 백리천궁은 표표히 밀로 안으로 들어섰다. 거령패왕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이곳은...... 밖으로 나가는 길이 아니고...... 귀궁(鬼宮)의 중심부로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까?" 그의 물음에 백리천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네. 귀궁을 떠나기 전에...... 귀궁(鬼宮)의 주인(主人)을 만나보고 가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는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있던 거령패왕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귀중주라니요? 설마 이 귀궁의 주인이 이 안에 있단 말씀입니까?"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리부리한 호목을 부릅떴다. 백리천궁은 모호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지. 귀궁주는 오백 년 간이나 이곳 귀궁(鬼宮)을 지키고 있었지!" "오백 년...... 사람이 어떻게 오백 년을......" 거령패왕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핫하! 가서 귀궁주를 만나 보면 알게 될 것이네!" 백리천궁은 호쾌하게 웃으며 밀로를 따라 귀궁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