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을 지키기 위해 쇄국을했는가? 주자성리학
[4회] 조선은 왜 쇄국을 했을까? /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법률방송 2024.06.09
[4회] 조선은 왜 쇄국을 했을까? /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 명나라는 1368년 건국하였고 조선은 1392년 건국하엿다. 조선은 명나라로 부터 모든 문물을 받아 들여 함께 발전하고 나라가 흥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일어나며 나라가 흐트러진다.
4-1. 임진왜란
- 1592년-1598년(7년) 임진왜란은 조선에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농업과 산업기반이 대거 파괴되었고, 경작지가 크게 줄어 들었다. 인구는 100만명 이상 감소하였고 경작지의 2/3가 소멸하였다. 조선의 경제력이 큰 타격을 입었다.
- 명나라 수군의 도움을 받아 왜군을 물리쳤다 (왜군 30만 대군 참전. 명나라 17만 대군 참전)
- 임란 후 일본과는 단절하였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요구로 1609년 기유조약으로 부산 초량진만 교역 가능. 일본과는 쇄국 시작
- 1876년 조일수교조규(강화도 조약) 때까지 267년간 일본과는 외부 단절
4-2. 병자호란과 명의 멸망
- 1636년 12월 청태종이 12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입. 붕과 두 달간의 전쟁이었지만, 임진왜란에 버금가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50만명의 조선인이 심양으로 인질로 잡혀갔다.
- 1643년 청이 산해관(만리장성의 끝)을 공략하였고, 1644년 자금성에 입성하였다 (명의 멸망).
- 만주에 유조변책(버드나무 철책)을 설치 - 한족이나 조선족이 못 들어감.
- 조선의 사신들은 의주를 거쳐 바닷가로 가서 산해관을 거침. 지리적인 고립이 생김.
- 소현세자는 귀국 후 한달 만에 인조에 의해 독살당함 (1645년).
4-3. 송시열의 출현과 소중화 사상
- 봉림대군이 효종으로 즉위 (14=649년). 송시열은 옛 봉림대군의 스승.
- 송사열: 병자호란 굴욕 후 청이 명을 멸망시킴. 비록 명이 망했지만 명의 은혜를 지키고 청과는 관계를 끊고 소중화( 小中華)의 나라 조선이 명의 주자성리학을 지킨다 (. 쇄국정치 시작). 송시열은 청을 제거하기 위한 북벌을 주장했지만 어쨌거나 쇄국의 시작이 되었다.- 환향녀: 병자호란 때 잡혀간 50만명 중 일부 여자들이 환향함. 송시열이 효종에게 환향녀는 모두 이혼 시켜고 내 쳐야한다고 주장함. 정절 지킴 여부 불문하고 환향녀는 이혼시키고 내쳐야 한다.
- 남자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여성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여자는 이름도 없고, 재산도 없고, 시집가서 남자집에 귀신이 된다.
4-4. 쇄국정치의 끝판
- 달레 신부에 의하면 우발적이던 또는 의도적이던 외간 남자들이 여자의 손을 만졌을 경우, 딸들은 아버지 손에, 부인은 남편 손에 죽었고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Isabella Bird Bishop의 <조선과 그 이웃들>). 이는 인도나 파키스탄에서 일어나는 honor killing!과 같다.
- 이게 닫힌 사회의 모습이다. 잔인한 조선의 유교! Hell Choseon!
- 19세기 중엽 조선이 외부적 변화를 겪게된다. 이때 바른 것(?)은 지키고 사악한 것(?)은 물리치고자 하는 반외세 운동이 위정척사(衛正斥邪)운동이다. 주자성리학만이 바른 것이고 서양 오랑캐 문명은 사악한 것이다.
- 조선 후기의 민족사상이된 위정척사론의 기원은 이항로이다 위정척사운동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항로의 제자 최익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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