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3월 3일(화) 학개 2:10-19 찬송 265장
10. 다리오 왕 제이년 아홉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1.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12.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니라 하는지라
13. 학개가 이르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하니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부정하리라 하더라
14.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15.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를 기억하라
16. 그 때에는 이십 고르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고르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고르를 길으러 이른즉 이십 고르뿐이었었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
18.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19.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개역 개정)
- 순종과 정결에 대한 촉구와 축복 약속 -
오늘 말씀은 학개가 선포한 네 편의 설교로 구성된
본서의 내용 가운데 세 번째 설교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본문은 새 성전에 임할 영광을 선포함으로써 솔로몬 성전에 비해
왜소한 스룹바벨 성전의 외형으로 인해 낙담한 백성들을 격려한
두 번째 설교(1-9절)에 이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전 재건을 재개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임할 것을 예언적으로 선포하고 있다.
즉 본문은 새 성전에 임할 영광을 선포한 두 번째 설교가 있는지
약 2개월이 지난 때에 선포된 것으로(10절)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통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내용은 없었던 지난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식적 예배 의식과
또 성전 재건에 대한 태만 등의 잘못(11-15절)과 이로 말미암아
지난날에 재앙이 끊이지 않았던 사실을 회고하면서 순종과 성결의 삶을
촉구하고(16-19a절) 이제 모든 잘못을 회개하고 성전 재건 사업의 재개 명령에
순종하여 성전 재건에 힘쓰는 백성들을 축복해 주실 것(19b절)을 말씀한다.
특별히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성전 재건 사업의 재개 이전의 빈궁함과
성전 재건 사업의 재개 이후의 풍성함의 차이를
‘기억하다’와 ‘오늘부터’라는 말을 통해 대비시켜 강조하신다.
한편 이러한 성전 재건 사업의 재개는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정립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성전 재건의 재개에 따른 축복 역시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 받을 각양의 복들을 예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우리들은 늘 성실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후7:1; 요일1:6)
만약 이것을 게을리하여 영적 나태함에 빠진다면
그로 인한 영육간의 빈곤은 성전 재건을 중단했던 때의 이스라엘과 다름 없을 것이다.
15절)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를 기억하라」
15절과 같은 촉구가 18절에 다시 한번 반복되고 있다.
여기서 ‘기억하라’는 것은 ‘돌이켜 보라’, ‘추억해 보라’는 말이다.
즉 지난날의 자신들의 삶이나 처지, 형편 등이 어떠하였는지 돌아보라는 말이다.
특별히 하나님은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
‘오늘’이란 18절에 의하면 9월 24일
곧 학개가 세 번째 메시지를 선포한 바로 그 날을 가리킨다.
18절은 포로 귀환 선민들이 바로 그 날 새성전 공사를 재개하였다고 말씀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포로 귀환 선민들이 새성전 건축을 다시 재개한 날을 기점으로
하나님의 뜻과 자신들의 사명을 망각하고 성전을 황폐한 채로 버려두었던 때의
그들의 삶과 처지와 형편 등이 어떠하였었는지를
돌아볼 것을 촉구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포로 귀환 선민들에게 그들의 과거를 돌아볼 것을 촉구하신 하나님은
16절과 19절 전반절에서는 직접 그들의 형편이 어떠하였었는지를 말씀하고 있다.
곧 그때에는 이십 고르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고르 분량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고르를 길으러 이른즉 이십 고르뿐이었으며,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포로 귀환 선민들은 그들이 수고한 것에
턱없이 부족한 만큼만을 수확하여 엄청난 기근에 시달려야 하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포로 귀환 선민들을 향하여
‘오늘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과거의 형편을 돌아보라고 촉구하시는 것인가?
그것은 단순히 그들의 과거의 형편이 어떠하였는지 알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과거를 추억할 것을 촉구한 것은 그들이 과거에
그렇게 곤고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하기 위함이다.
이어지는 19절 하반절에서 하나님은 ‘오늘부터’ 곧 포로 귀환 선민들이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여 성전 지대를 쌓았던 바로 그날부터
그들에게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즉 본문이 제시한 ‘오늘’을 기점으로
그들의 삶의 형편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결국 그들이 오늘을 기준으로 그들의 과거를 추억함을 통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를 절실하게 깨닫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삶을 경계하고
순종의 결단을 새롭게 할 것을 요청하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들이 ‘오늘’을 기준으로
과거를 추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 역시도 ‘오늘’을 기준으로 하여 자주 과거를 추억해야 한다.
우리의 ‘오늘’의 형편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또 우리의 과거 역시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여하튼 우리가 오늘을 기준으로 과거를 추억하고 반성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을 경계하고
반대로 순종을 새롭게 결단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하거나
과거는 좋았으나 현재는 좋지 않은 것은
우리가 과거를 바르게 추억하며 반성하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과거에 얽매여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분명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오늘, 그리고 과거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이 사실을 바르게 헤아린다면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정확히 직시하고
또 그와 관련해 과거에 대한 바른 추억과 반성을 병행해야 한다.
그리할 때 우리는 무엇을 붙들어야 하며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좀 더 정확하게 깨달아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더욱 미래 지향적인 삶, 복된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엡2: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