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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요한계시록 2장 1절로 7절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 이런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보통 “우리들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성도님들도 그렇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에베소 교회에게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생각 들어본 적 있습니까?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에게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요한계시록 2장 1절에 보면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편지하라”
편지를 쓴 거죠.
여기는 이렇게 편지를 통해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주님의 음성을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오늘은 좀 생각을 하려고 합니다.
오늘 아침뿐만 아니라 며칠 전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이제 이런 것은 좀 정리해야 되겠다.”
여러분은 주님의 음성을 어떻게 듣습니까? 제가 들은 음성은 생각으로 다가오는 거였습니다.
내 마음에 생각이 나는 겁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그런 생각이 제게 들어왔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서 잠깐 있는데, 그냥 컴퓨터 켜기 전인데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이렇게 해야 되는데.”
이런 생각이 왜 이렇게 들었을까요?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때 여러분이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들을까요?
그것은 음성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말하듯이 들을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는 어떤 영적인 음성인 것처럼 이렇게 꽝꽝거리면서, 감동이 되면서, 뭉클뭉클하면서 이렇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 때 일주일 금식 기도 마치고 중간고사를 보기 위해서 기도원에서 차를 타고 나가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내게 들렸습니다. 뭐라고 들리는가 하면 “내가 너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이 말씀은 성경에 있는 말씀인데 그 말씀이 영적으로 확 들렸습니다.
영적인 음성으로 들리는데 그 음성을 들으면서 내 영이 감동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들을 수도 있습니다.
늘상 이렇게만 들리면 우리가 명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대개의 주의 음성은 우리의 심령을 통해서, 영을 통해서, 양심을 통해서 옵니다.
여러분에게 양심의 소리가 있죠? 그렇죠? 그것은 여러분의 영의 소리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지만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의 양심은 삐뚤어져 있어서 그들이 양심을 어기면서 그들 나름대로의 정의를 세워 갑니다. 하지만 그들의 양심은 사회법으로 보면 도덕으로 보면 도덕적으로 보면 거기에도 맞지 않아요. 남의 것을 탈취하고 나누고서 자기들끼리 합법적으로 법을 세워서 그들이 나누어 가집니다. 그리고서 그들은 공평하고 정의롭게 나누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하는 데 있어서 공평하고 정의롭게 나름대로 나누는 것에 있어서 아무런 거리낌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게 맞는 건가요? 우리들이 볼 때는 그것은 한없이 잘못된 것이잖아요. 그렇죠? 그들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을 그렇게 정의하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영이 살아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말이 뭐예요? 하나님과 교재가 교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의 영을 통해서 들어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음성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다가올 때, 이 생각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아닌지, 내 생각인지 하나님의 음성인지 헷갈려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럴때는 가만히 생각을 해봐야 됩니다.
제가 사실은 오늘 아침에 다가왔던 생각이, 잠자리에 일어나서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런데 이 생각은 며칠 전에도 들었던 것이고 그전에도 조금 있었던 생각입니다.
그때 가만히 생각하니까 “이게 하나님의 음성일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우리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들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까?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의 양심을 통해서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그래서 우리의 양심이 우리의 생각이 올바른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제가 이런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요한계시록 2장에 있는 에베소 교회에 대하여 주님께서 책망하시는 말씀을 제가 읽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에베소 교회는 지금도 굉장히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어쩌면 교회가 부흥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말씀에 보면 일반적인 교회에서는 할 수 없는 참으로 놀라운 일들을 많이 하고 있는 게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볼까요?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요즘 같으면 대단히 훌륭한 신자입니다. 진짜 보기 드문 신자일 거예요. 그렇죠? 진짜 여러분도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까? 저는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이런 에베소 교회의 성도다운 삶, 성도들이 행했던 그런 삶을 나는 살기를 원합니다.
여기 이 기준에도 못 미치는 엄청나게 많은 성도들이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살다가 그들이 수명이 다 한 다음에 결국에는 지옥에 끌려가는 그런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참으로 우리가 흠모할 만한 그런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의 삶 속에서도 치명적인, 암적인 그런 행동들이 그런 일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주님을 향한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사도 바울이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고전 16:22, 개정)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우리들이 진짜 예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그 하나를 두고, 지금 이렇게 이 에베소 교회를 흔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충성과 헌신이 잘못됐다는 얘기가 아니고, 그들이 이단과 거짓된 사도를 분별해 낸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닌데, 그러나 그런 것들은 다 외적인 것들이고 핵심적인 그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님을 향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있는가?” 이것을 여러분이 돌아봐야 됩니다.
원수 마귀가 근래에 있어서 저를 좀 흔드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좀 바른 길을 가는 것 같으니까 그냥 안두는 것이죠.
얼마 전에 서울 사랑하는 교회를 담임하는 변 목사님이 금식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변목사님께서 특별한 어떤 소원이 있어서, 어떤 은혜를 사모하기 때문에 금식을 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노회에 가서 사랑하는 교회에 있는 목사님한테 물어보니까 아니었대요. 설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영적으로 심하게 공격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영적인 공격 때문에 할 수 없이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몇 주간 동안 설교를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 금식하면서 영적인 회복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매달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회복하고서 강단에서 잘 서고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김옥경 목사님을 통해서인가요? 하나님께서 "담임 목사를 위해서 성도들이 전체적으로 금식하며 기도하게 하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이처럼 주의 종이 영적으로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금식하며 기도하고 매달렸더니 하나님께서 다시 붙잡아주셨던 것입니다.
변 목사님이 큰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그분이 가는 길이 바른 길인데, 계속 바른 길을 가면 사단의 나라에, 사단의 왕국에 큰 피해가 될 것 같으니까 그것을 막고자,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방해하고자 변 목사님을 영적으로 공격을 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주의 종들이 바로 섰다가 어느 순간 무너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잘 나가는데, 잘 가는데 무너집니다. 교회가 무너집니다. 목사가 죄를 짓고 타락을 합니다. 성도들이 죄를 짓고 타락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무슨 문제가 있었겠죠? 그런데 그 원인을 보면 마귀의 괴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마귀가 그를 끌고, 그 길로 끌고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 일을 미리 알고, 성도들이 지켜주고 또 중보자들이 막아 줬어야 되는데, 외로운 나무처럼 혼자서 그 모든 시련을 견뎌내다가 주의 종이 결국 넘어진 것입니다. 주의 종이 결국 쓰러진 것입니다.
주의 종들을 위한 중보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를 위해서도 제가 가끔 바르게 섰다가, 작은 상태지만 바로 섰다가 혼자 휙하고 넘어졌다가 또 바로 섰다가 휙 하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이러면서 시간을 그냥 보내는 겁니다.
여러분이 저를 위해서도 기도를 많이 해줘야 됩니다.
아무튼, 아침에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과연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내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이 나를 뭐라 그러실까? 너 왜 교회에 부흥시키지 못했어? 라고 주님이 야단을 치실까? 아니라고 봅니다.
요즘은 제가 하나님 앞에 좀 구하는 것도 있는데, 뭐 많긴 한데 부러운 것 중에 하나가 변 목사님을 하나님이 쓰시고 계시구나 하는 것입니다. 나랑 신학교에서 같이 오솔길 걸으면서, 낚시 다니면서 정담을 나누던 친구가 저렇게 세계적인 주의 종이 되어서 저렇게 쓰임 받는구나! 참 부럽습니다.
그런데 또 진성원 목사님을 봤는데, 수양관에서 뵀을 때는 “참 겸손하고 좋은 분이다” 그 정도였습니다. 그다음에 나중에 그 호텔에서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할 때도 참 좋은 모습 그런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지금은 세계적인 주의 종이 됐습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치유 집회를 하면 진짜 놀라운 기적들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앞을 보고, 걷지 못하던 사람들이 걷고, 각종 암이 막 떨어져 나가고, 뭐 그냥 이거는 일반적인 치유가 아닙니다. 놀라운 표적과 기적들이 수도 없이 막 나타났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지금 놀랍게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지금 아프리카에서 놀라운 사역을 하고 계시는데, 금년도에 그분을 변 목사님께서 불러들여서 국내에서 세 번 치유 집회를 하신다고 광고가 나왔습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저렇게 사용하시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진성원 목사님에 대하여 우연히 들은 것인데, 진성원 목사님이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다닐 때에, 어느 날 본 성전에 자리가 없어서 예배를 드리러 소규모 성전에 들어갔는데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 스크린으로 이제 조 목사님 설교가 예배 진행 상황이 나오는데 그때 갑자기 환상이 보였다고 합니다.
“본캐 목사님처럼 너도 저런 사역을 하게 될 것이다.”
그냥 저는 그런 얘기를 듣고만 말하는데, 지금 어떻게 보면 진성원 목사님보다 더 놀라운 치유 사역을 하시는 분이 내 귀에는 안들립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종이 되어서, 세계적인 치유의 종이 되어서 지금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저는 언제나 쓰임 받을까요? 저를 돌아보면 다른 분들처럼 저는 주님으로부터 저의 사역에 대하여 받은 계시가 없습니다.
아무튼 제가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분들은 왜 쓰임을 받을까?
답은 하나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변승우 목사님에 대해서 예전에 어느 분이 기도를 했는데, 잘은 기억이 안나지만, 환상인가? 아무튼 주님께 물었대요. 기도 중에 “주님 변 목사님은 어떤 분입니까?”
그러니까 주님께서 “저는 내게 대하여 눈이 먼 자다”
제가 이런 내용을 사랑하는 교회 카페에 올려진 글에서 읽었는데 제 기억에 계속 남아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변승우 목사님에 대하여 평가하실 때, 그는 “주님을 사랑하는데 눈이 먼 사람이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는 거죠.
아마 진성원 목사님도 그러니까 하나님이 쓰실 것입니다.
"주여 이 사람의 병을 고쳐주십시오."하고, 일일이 안수 기도할 틈이 없으니까, 그 수만 명이 모인, 수천 명이 모인 그 자리에서 그냥 하나님의 감동을 따라서 선포를 하는데, 선포한 말을 듣고 병이 그냥 떠나가는 겁니다. 진목사님이 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하시는 겁니다. 사람이 하는 게 아닙니다. 진목사님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겁니다. 왜 하나님께서 진성원 목사님을 쓰실까요? 진목사님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사랑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떻게 했길래 주님만 사랑하는 이런 일들이 그에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김옥경 목사님이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고 천국을 기도하면서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분이라고 하는데, 제가 김옥경 목사님을 직접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김옥경 목사님에 대해서 들으면 굉장히 주님을 사랑하는 분이고 해외 선지자들한테도 인정받는 영적으로 깊이 있는 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굉장히 주님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설교 할 때의 모습이 영상으로 가끔보게 되는데, 어떤 때는 눈물이 글썽글썽하면서 설교를 합니다. 왜 그런 일들이 가능할까?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내가 이런 것을 더 이상 하면 안 되겠다. 이거 이렇게 하면 이거는 뭐 해도 무방할지 모르지만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데 이득이 없어. 내가 이렇게 가면 나는 소망이 없는 거야.”
내 스스로가 그런 말을 내가 답을 내리고 있더라고요.
신앙생활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4장 8절인가요?
(롬 14:8, 개정)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주님을 위해서 산다는 겁니다.
여러분 주님을 위해서 산다는 말이 뭘까요?
그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진짜 핵심이 뭘까요?
저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정의합니다.
제가 저를 돌아보니까 주님을 향한 사랑이 굉장히 적어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 사랑을 좀 키워내 보려고 합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적어지다 보니까 “전에는 힘들어도 와서 기도하고 그랬는데, 억지로라도 와서 기도하고 주님과 시간을 보내려고 하고, 해야 되는 일들이 있지만 그걸 제껴놓고 먼저 기도를 우선 하고 그다음에 나머지 시간을 보내고 그 일 처리를 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 일들이 우선이 되고 기도는 뒷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게 왜 그렇게 됐을까요?
주님을 향한 사랑이 뒤처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이 나중에 심판대 앞에 가면 어떤 판결을 받을까요?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우리들이 판결을 받을까요? 그것은 사랑이 기준일 겁니다. 사랑의 정도가 심판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네가 사랑으로 했느냐? 사랑으로 기도했느냐? 사랑으로 예배드렸느냐?
오늘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비결이 뭘까요?
주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어떤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네가 얼마나 봉사를 했느냐? 네가 얼마나 헌신을 했느냐? 전도했느냐? 진리에 굳게 서서 진리로 판별해서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했느냐 그것도 중요하겠죠.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데 그것은 “네가 지금 주님을 사랑하느냐” 이게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기준으로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지금 많은 것을 하고 있다. 그거 다 좋은 거다. 나도 안다. 내가 그거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데 그것은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네가 나를 향한 사랑을 지금 잃어버리고 있다. 그래서 결국에는 내가 너를 내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속히 나를 향한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주님께서 권면하시는 겁니다.
오늘 우리들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마음속에 다른 건 몰라도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있느냐?
한마디로 얘기하면 여러분이 주님을 향한 사랑 때문에 뭘 하느냐? 주님을 향한 사랑 때문에 뭘 안 하느냐? 이런 것이 있느냐 하는 겁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뭘 해야만 하는, 사랑 때문에, 사랑에 얽매여 있는 여러분의 삶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을 사랑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과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과 고통과 그 희생을 통해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이러한 예수님의 그 사랑을 보고 그 사랑을 자기 마음속에 받아들이면서 그 사랑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이기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은 없고 주님의 희생을 통해서 자기가 얻어먹을 것이 있는 것, 그것을 향해서 달려갑니다. 마치 사나운 맹수가 자기 밥을 찾아서 돌진해 나아가는 것처럼 그것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교회 나오고, 기도하고, 공부하고, 그들의 목적은 주님의 은혜를 기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더 깊이 사모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욕을 예수님을 통해서 정욕을 채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그걸 또 그렇게 합당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다 이루어 놓으신 것이니까.
주님께서 우리의 갈 길을 위해서 예비해 두신 것이니까 누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죠.
그러나 그게 우선이 되면 그게 주가 되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엇이 주가 되어야 되느냐? 예수님이 주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그 은혜에 대해서 감동하는 것, 그것에 대해서 사랑하고 감사하는 것, 이것이 우선이 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신앙생활이 바르게 되어질 수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신앙생활을 그리 오래 했으면서도 왜 사람의 인격이 변화되지 않습니까?
왜 성경을 그렇게 많이 알면서도 봉사를 그렇게 많이 하면서도 왜 기도 생활을 그렇게 많이 한다고 하면서도 그들의 삶이 왜 근본적으로 변화가 되지 않습니까?
주님에 대한 사랑, 주님의 은혜에 대한 사랑을 그들이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이 언제 변합니까? 철없던 철부지 아들이 언제 변화가 됩니까?
어머님에 대한,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기억하게 되었을 때, 사랑을 깨닫게 되었을 때, 이 철 없던 아들이 철없던 자녀들이 비로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게 뭐예요? 철이 들었다는 겁니다. 자신을 자신만 생각하지 아니하고 이제 부모님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게 철이 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되는 겁니다.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게 되는 겁니다.
주님께서 나를 용서하셨는데 내가 내게 피해 입힌 이 정도의 이 사람을 내가 용서하지 못하겠느냐, 내가 관용하지 못하겠느냐, 그러면서 용납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성질은 나지만, 화도 나겠지만, 그러나 그것보다 이전에 주님에 대한 사랑을 그가 기억하기 때문에, 그 사람한테 자비를 베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게 신앙생활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돌아봐야 됩니다.
과연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주님과 깊은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제가 이렇게 살고 있다고 하는 게 아니라, 저도 이렇게 살려고, 그리고 말씀에서 그렇게 가르치니까 제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이렇게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살아가면 주님께서 변승우 목사님을 쓰시고, 진성원 목사님을 쓰시고, 김옥경 목사님을 쓰시는 것처럼,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을 쓰실 것입니다.
그 규모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만큼,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쓰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동기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행하는 그 모든 일들을 행하는 그 원인이, 그 근본적인 그 동기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과 함께할 것이고, 여러분이 감히 생각할 수 없는 크고 놀라운 일들을 여러분이 경험하게 되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돌보심도 경험하게 되어질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 하나님의 공급하심, 그 밖의 모든 것들도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것을,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는 것을 여러분들이 누리게 되어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구하느냐 마느냐 이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곁에 와 계신 성령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불러일으켜 주실 때 그 생각을 거부하지 않고 그 생각을 받아들이고 그분이 원하시는 그 생각을 따라서 우리의 삶을 절제하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마태복음 6장 33절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뭘까요?
저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그 나라와 그의 의가 시작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약 성경과 구약 성경을 다 통틀어서 성경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뭡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두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마 22:37, 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38, 개정)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 22:39, 개정)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40, 개정)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 말씀을 한마디로 줄여서 얘기를 하기를 바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롬13:8-10).
신앙생활을 잘하는 비결이 뭘까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잘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마디로 쉽게 정의하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성령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실 때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고 그 음성을 따라 우리들이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들이 바른 신앙생활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삶을 살기를 마음은 원하지만, 우리들이 육신의 정욕에 이끌려 때로는 마귀의 속임에 빠져서 헛된 길을 걸어가고 시간을 낭비하고 방탕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의 허물과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시간을 낭비한 것을, 방탕한 생활한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심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 말씀하심에도 불구하고, 그 음성을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내 마음, 내 뜻대로, 내 정욕이 이끄는 대로, 마귀가 이끄는 대로 끌려다니며 살아왔던 것들을 회개합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마귀의 근본적인 얽매임들이 이 시간 예수의 이름으로 끊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마귀의 결박들은 예수 이름으로 우리 모두에게서 끊어질지어다.
잘못된 생각과 사상들은 끊어질지어다. 헛된 욕망과 욕심들은 끊어질지어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이 자유케 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영에 계신 것은 곳에는 자유가 있다 하셨사오니 보혜사 성령 하나님, 우리와 늘 함께하여 주시고,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만을 바르게 찾고,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며 하나님을 힘써 사랑하는 길로 갈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부터 우리의 삶의 동기가 정욕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행하는, 사랑의 동기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주님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사랑으로 날마다 승리하며, 그 사랑의 깊이가 날로 더해 갈 수 있도록, 주의 은총에 은총을 더하여 주시옵시고,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그때쯤 되어서 우리가 큰 사랑을 가지고 주 앞에 설 수 있는, 큰 사랑의 열매를 가지고 주 앞에 설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헛된 욕망에 끌리지 아니하고, 사랑하기에 힘쓰는 저희들이 될 수 있도록 주여 은총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생각이 변화되게 하시고, 우리의 가치관이 변화되게 하여 주셔서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시고, 진정한 성도의 길을 걸어가게 하여 주시옵시고, 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길을 걷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우리에게 귀한 은혜를 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의 고난과 고통과 은혜를 기억하면서, 예수님을 마음속에 기억하면서,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만을 생각하며, 한평생 살다가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우리들이 될 수 있도록 은총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 이기고, 이기고 나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