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混沌)
서문원
1
태초에 운행하는 수면은
빛이 비치지 않는 혼돈이었다
물빛도 하늘도 땅도 뒤섞여
그곳에 무엇이 깃들까마는
어디서 비롯된 지혜의 숨결
억만의 시간이 하루처럼 지난다
어지러운 공간이라도
들어차지 않았기에
설계자의 꿈은 도리어 자유로운가
나누어지고 밀리며
떠오르고 내리느냐
구름은 부딪혀 비를 뿌리고
새싹 움트는 검은 대지
갯벌 아래 웅크린 이는
섭식할 잎 쫓아 천천히 일으킨다
생명의 시초는 바다라 하려나
수억 년 내리 굽이치는 물결
쉴 틈 없는 또 다른 하루 되어 저물고
이러해도 부수고 짓느니보다는
막막한 곳이라도 빈터가 좋아
누구 흔적도 예단도 간섭도 없이
저만의 홀로 아름다운 질서
오랜 수고 뒤에 태를 열지라도
영원히 잇고픈 작품 끝끝내 내놓겠다
2
모든 것이 뒤엉킨
혼돈의 땅에 서서
하늘 우러러보더라도
그마저 먹구름 덮여
으르렁으르렁거리다
벅적대는 소리는
쫓는 바람인가
깊은 울음인가
짐승의 포효일 수도 있겠다
태초의 어둠 휩싸인 듯
아무것 할 수 없어
생명은 부디 자비를
이러해 낮아지고 부서져라
희망마저 던질지니
멀리 빛줄기 열리느냐
3
언제고 마주칠 날들이여
필경 어둠의 혼돈이겠지
분노의 붉은 잔도
심판의 불칼도
정화의 파도도
거스르지 못할 소용돌이
이런 시절 지나야
새 땅 내리려나
꿈결 같은 낙원
그같이 돌아오더라도
누가 어둠을 바라는지
신세계 기대하여도
이 땅 밝히는 소망
나는 물리치지 않겠다
혼돈의 잔 손에 든 이도
쏟아부어 내몰고 싶을까
밀어(密語)
서문원
사랑을 말하자면
그 많은 이들 중
오직 한 사람만 보이는 것이다
사랑을 말하자면
이 너른 세상보다
둘만의 살뜰한 공간 찾는 것이다
사랑을 들여다보면
누구가 알겠는가
옆에만 있어도 꿈꾸듯 행복하며
좋은 것은 시샘도 넘쳐
어여쁜 내 사랑아
바람이라도 틈탈까
둘만 알아듣는 언어로
사근사근 속삭이고 전하는 것이라
이처럼 하나하나 사랑하여
너만을 사랑한다
내밀하게 띄우나니
무리들 애써 둘러서도
홀로 사랑의 밀어 품어 담지 않겠니
삼일(三日)
서문원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은
지난날과 하루하루의 삶
다음날을 바라는 경이로운 삼일
이같이 다가오는 날들이여
내 영혼에 곱게 새겨져
감사의 날들로 분향되어 피어오르라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을 보내고
선인은 마음 돌려 회개의 때 선포했지
비늘 덮인 동자로 어둠의 삼일 지낸 후
선인은 경외의 눈으로 하늘을 보았다
신인께서 완전한 죽음의 삼일 이겨 낸 뒤
세상은 영원한 생명의 신비 찬송드렸네
혹여 되살아나 삼일을 산다면
그대는 나는 무얼 할 것인가
그제는 가까운 이웃들 모두 불러
사은의 큰 잔치 베풀어 드리다
이제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산과 들, 강, 마을을 돌며
하나하나 깊이 곱게 새겨 담고
내일은 홀로 침묵 가운데
살아온 날들 봉헌드리며
감사와 흠모의 정 바치느니
이처럼 지나는 삼일의 시간
삼일은 영원으로 이어지며
내 영혼은 기뻐 춤추고 노래하리라
서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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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약력
등단 문학고을(2024, 시), 시학과 시(2025, 수필)
저서 시집 『상사화』(2025)
문학활동 청주교구 가톨릭문인회 회원, 국제PEN한국본부 충북지역위원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