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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현대인에게 울리는 경종
헬렌 켈러가 한국을 방문한 것은 1937년 여름의 일이었다. 당시 57세였던 헬렌은 그 해 7월 13일 지금의 서울특별시 의회(시청 옆) 자리에 있던 부민관(府民館)에서 강연을 했다. 이 날 부민관에서 행한 연설에서 그녀는 “나의 유일한 소원은 세계 평화와 동포애”라 하며 “하나님이 나의 앞뒤에 계시니 내 두려울 것이 없고 또한 모든 일이 거룩한 섭리대로 되어 갑니다.”라고 신앙을 고백했다.
헬렌은 “나를 불구자라고 가엾게 보는 이들이 많으나 실상 가엾은 것은 내가 아니요, 눈뜨고도 바른대로 볼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라고 하며 감사에 넘치는 마음을 표현했다. 그녀는 시각과 청각을 가진 정상인들을 향해, “여러분의 눈에 광명을 주시고 여러분의 귀에 아름다운 소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서는, 어둠과 침묵 속에서 더듬고 있는 장애인들을 돕는 것이 크고 값진 일”이라고 강조했다.
개성역에 도착한 헬렌 켈러
농학자 류달영 선생(서울대 명예교수)은 그 무렵 개성의 호수돈 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헬렌 켈러가 서울에서 강연을 한다는 신문 기사를 접했다. 기사를 읽은 선생은 서울에 가서 강연을 들어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벌써 입장권이 다 팔려서 어찌해볼 방법이 없었다. 예정되어 있던 라디오 중계도 갑자기 취소되어 목소리조차 들어볼 수 없게 되었다. 선생은 당시 호수돈에서 교장 대리로 있던 선교사 넬 다이어를 통해 교섭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헬렌 켈러를 가장 존경하는 젊은 교사가 있으니 만날 수 있도록 해달라는 편지를 보낸 것이다.
얼마 후 폴리 톰슨(1936년 설리번 선생 작고 후 헬렌 켈러의 비서 역할을 맡았다)으로부터 회신이 왔다.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실망이 컸다. 그런데 다시 톰슨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헬렌이 평양으로 타고 가는 급행열차가 7월 15일 오후 4시 40분에 개성역에서 1분간 정차를 하게 되었으니 그 시간에 맨 마지막 객차의 뒤쪽 전망대에 나와서 이야기를 하겠다는 기별이었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류달영 선생은 그 날이 오자 모든 수업을 중단하고 50명의 담임반 학생들을 개성역으로 데리고 나가서 기다렸다. 열차가 기적을 울리고 플랫폼으로 들어오는데 벌써 열차의 맨 뒤쪽에는 헬렌 켈러가 비서 톰슨과 일본의 유명한 맹인 철학 교수 이와바시(岩橘武夫)와 함께 난간을 짚고 서 있었다. 열차가 서는 순간부터 헬렌은 강연을 시작했다.
톰슨이 손가락을 벌려 헬렌의 입술과 목에 대고 입술의 움직임과 목의 진동을 파악하여 명확하지 않은 그녀의 말을 정확한 영어로 수정하여 말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을 헬렌 켈러의 손바닥에 대고 마치 손가락으로 무선전신을 치듯이 두들겨서 주위의 상황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그 다음에는 이와바시 교수가 일본어로 역에 모인 사람들에게 통역을 해주었다.
구경 나온 사람들에게는 진기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역장과 차장도 구경하느라고 정신이 빠져서 열차가 예정을 넘겨 5분 동안이나 정차하게 되었다고 한다. 류달영 선생이 당시 수첩에 기록한 헬렌 켈러의 연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러분 나는 부자유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도 여러 가지 아름다운 세계에 접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 젊은 여러분, 인간 사회의 어두운 면을 개척할 사람들은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 여러분이 힘을 모아 열심히 일하면 그 앞에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 이 세상을 향상시키는 것은 오직 사랑 뿐, 사랑이 없는 국가와 사회는 퇴보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들의 앞과 뒤에는 항상 정의의 하나님이 지키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류달영 지음, <소중한 만남―나의 인생노트>에서)
잊혀진 20대 이후의 삶
헬렌 켈러는 생후 19개월 되던 때 심한 병을 앓은 뒤 보고, 듣고, 말하는 신체 기능을 모두 잃어버렸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헬렌은 6세 때부터 애니 설리번(당시 20세)을 선생님으로 맞이하여 헌신적인 교육을 받았다. 설리번은 헬렌 켈러의 손바닥에 수화(手話) 알파벳을 가르쳤으며, 자신의 후두에 손가락을 닿게 하여 떨림을 느끼도록 함으로써 말을 ‘듣도록’ 했다. 이런 헌신적인 지도를 통해 헬렌은 수화를 익히고, 점자도 읽고 쓸 수 있게 됐다. 스무 살 되던 해 헬렌은 하버드 대학교의 자매학교인 명문 래드클리프 대학교에 입학했으며, 설리번 선생이 손바닥에 적어주는 강의 내용을 ‘들으며’ 공부했고, 마침내 우등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1959년 윌리엄 깁슨의 희곡 <기적을 일으킨 사람(The Miracle Worker)>을 통해 재현되었다. 이 작품은 1960년에 퓰리처상을 받았고, 1962년에는 영화로 제작되었다. 흑백 필름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에 상영된 적이 있다. ‘기적의 소녀’ 헬렌 켈러의 눈물겨운 인간 승리 이야기이다. 하지만 헬렌의 삶을 전하는 책이나 역사 교과서는 대부분 여기에서 끝난다. 여든 여덟까지 살았는데도, 그녀의 이야기는 20대 초반으로 끝난다.
그러나 헬렌 켈러의 생애 대부분은 매우 치열한 것이었고, 그녀의 삶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강렬한 빛을 발산한 시기는 오히려 생애 후반부라고 말할 수 있다. 유년 시절부터 20대 초반까지의 삶이 한 개인으로서의 성장 과정이었다면, 그 후의 삶은 투철한 확신과 목적의식을 지닌, 봉사의 시기였다. 그녀의 청․장년기는 실로 정력적이고 열정적인 것이었다. 그녀는 시각 및 청각장애인을 위한 봉사를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한창 때는 강연 원고 준비와 대중 상대 연설 등, 장애인을 돕는 일에 하루 18시간씩이나 바칠 정도였다.
헬렌의 활동은 장애인을 돕는데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사형 제도를 반대하고 인종주의를 거부했다.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긴 했지만 노동자들의 파업권과 여성의 투표권을 지지하기도 했으며, 이로 인해 미국 주류 사회와 언론으로부터 철저한 따돌림을 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교통수단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던 시절, 삼중고(三重苦)의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지구를 아홉 바퀴나 돌며 39개 나라를 방문했다. 전 세계인들을 상대로 장애인들의 어려운 처지를 호소하고 또 장애인들이 갖고 있는 잠재 능력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유럽, 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등 그야말로 전 세계를 누비며 놀라운 활약상을 보여주었고, 앞서도 언급했듯이 1937년에는 식민지 한국 땅에까지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던 것이다.
내적 힘의 원천
그렇다면 과연 헬렌 켈러로 하여금 시각-청각 장애를 극복하고, 이에 더하여 전세계의 장애인과 소외된 이웃을 위한 헌신적인 사랑과 봉사를 하게 만든 확신과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육신이 멀쩡한 사람들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드는 그녀의 놀라운 열정과 활력은 그 원천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책에서 헬렌은 자신의 내적 힘의 근원이 그리스도교 신앙이었다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말한다. 헬렌은 영혼불멸과 사후 세계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헬렌은 사후 세계에서는 자신이 볼 수도 들을 수도 있으리라는 확고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1950년 영화배우 릴리 파머(Lilli Palmer)는 헬렌(당시 70세)과의 대화를 나눈 후 그 내용을 이렇게 들려준다.
헬렌의 얼굴은 저 높은 곳에 사는 성인(聖人) 같았다.
헬렌이 말했다.
“보고 싶은 것이 아직 많아요.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요.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그건 걱정이 안돼요. 정말 전혀 걱정이 안돼요.”
내가 물었다.
“사후 세계를 믿으세요?”
헬렌이 힘주어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이지요. 죽음이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가는 것일 뿐입니다.”
갑자기 헬렌이 다시 말을 꺼냈다.
“하지만 나는 여느 사람과 좀 다를 겁니다. 그 새로운 방에서 나는 앞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보통 사람들과 달리 헬렌은 노년과 죽음을 즐겁게 맞이했다. 여든 한 살 되던 1961년에 접어들어 건강이 급속히 나빠지기 전까지, 만년의 헬렌은 거의 온종일 앉아서 죽기 전에 읽고 싶었던 책들을 읽어댔다. (헬렌은 1961년말부터 7년 동안 병석에 누워 있다가 1968년 타계했다.)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읽고 쓸 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헬렌은 그 밖의 외국어를 비롯해서 역사, 고고학, 철학 등을 배우고 싶어 했다. 특히 철학 분야에서는 플라톤, 칸트, 스베덴보리의 저작을 읽고 싶어 했다. 헬렌은 또한 자연계의 신비에 사로잡혀 그 분야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일흔일곱의 나이에 헬렌은 앞으로도 쉬지 않고 공부에 전념하겠다고 말해서 친구들을 놀라게 했다.
헬렌이 이 세상과 저 세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기고 있음을 아는 친구들은 헬렌이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고 느꼈다. 헬렌은 죽음을 고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다가올 일을 반갑게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헬렌은 천국이 즐거운 곳이라고 믿었다. 천국에서는 누구나 두 번째 운명을 맞이한다. 헬렌은 그곳에서 볼 수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며, 먼저 세상을 떠난 설리번 선생님과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었다. 헬렌의 한 친구는 “영원불멸에 대한 믿음은 적혈구만큼이나 많이 헬렌의 핏줄 속에 흐르고 있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헬렌이 가진 신앙은, 18세기의 저명한 과학자, 철학자이자 신비주의자였던 에마누엘 스베덴보리(Emanuel Swedenborg)에 의해 제창된 그리스도교였다. 헬렌이 스베덴보리를 알게 된 것은 1893년, 즉 13세 되던 해에 스위스 태생으로 주미 스위스 총영사를 지낸 존 히츠(John Hitz)라는 노신사를 만나면서부터였는데, 그와의 교제와 우정은 그 후 헬렌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의 하나로 간직되기에 이른다.
그는 헬렌의 학업, 소녀 시절의 꿈, 대학 생활의 어려움, 맹인을 위한 봉사 활동 등 모든 일에 깊은 사랑과 관심을 기울여 주었다. 그는 헬렌의 교육을 위해 단순한 의무감의 차원을 넘어선, 헌신적인 봉사를 했다. 헬렌과의 서신 교환을 위해 일부러 점자를 배웠고, 날마다 아침식사 하기 전 따로 시간을 내어 헬렌의 정신적 성장을 위해 스베덴보리의 저술들을 부지런히 점자로 옮겨 적었다. 히츠는 실로 헬렌의 정신적 스승(mentor)이었던 것이다. 헬렌은 그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쁨을 충만하게 느꼈고 그 기쁨은 그녀의 생애를 통해 찬란하게 빛났다.
“열여섯 살 이후로 나는 에마누엘 스베덴보리가 세상에 전해준 교리를 확고하게 믿어왔습니다. 그가 받은 사명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 여론이나 시끄러운 논쟁보다는 내면의 음성을 듣도록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경건하게 ꡔ성경ꡕ을 공부하고 난 후, 나는 나의 어둠을 빛으로 바꾼 신앙을 갖게 된 것이,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스베덴보리에게 크게 힘입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ꡔ성경ꡕ을 더욱 깊이 있게 해석하고, 그리스도교의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 것, 그리고 이 세상에 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값진 관념을 갖게 되는데 있어서 스베덴보리에게 힘입은바 크다는 것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영적 실재의 편재성(遍在性)과 보편적 형제애, 사랑의 하나님, 신체적 장애와 제약 등의 어려움이 전혀 없는 내세의 존재 등을 설파했다. 헬렌의 마음은 이 사상에 강하게 끌렸으며, 이 스웨덴 예언자의 저작들에서 수많은 영감과 통찰력을 이끌어냈다. 헬렌은 스베덴보리의 저작들을 “내 어둠 속의 빛이며, 내 침묵 속의 음성”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대가 서있는 곳, 그곳이 바로 그대의 세계이다.”
헬렌은 자신의 신체적 장애가 천벌이라고 생각해본 일이 한번도 없다고 말한다. 놀라운 일이지만 헬렌은 오히려 장애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장애를 통해 “나와 나의 일, 나의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헬렌에 의하면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제약과 한계는, 자기 계발과 자발적 활동을 격려하고 응원하고자 위로부터 가해지는 채찍질이었다. 장애와 제약은 우리의 뛰어난 재능을 덮어씌운 단단한 돌을 깎아내게 하기 위해 우리 손에 쥐어진 도구였다. 세상은 전적으로 기쁨으로 가득한 곳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혹독한 곳이기만 한 것도 아니어서, 마치 땅에 엉겅퀴가 자라고 장미에 가시가 달리듯, 인간의 삶에는 시련이 따르게 마련이라는 것이 헬렌의 생각이었다. 헬렌은 자신의 장애를 결코 기이하거나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전 세계 장애인의 복리 증진을 위해 바친 분투의 생애에서도 잘 나타났듯이, 헬렌의 신비주의적 내세신앙은 결코 그녀를 현실도피로 매몰시키지 않았다. 헬렌은 천국이 우리 “밖”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고 확신했으며, 그런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는 내세 같은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적극적인 행동과 사랑으로, 그리고 단호한 의지로써 우리 주변의 어둠을, “지금 여기” 우리 안에 내재하는 천국의 아름다운 색깔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헬렌처럼 확고한 내세 신앙을 갖고 있으면서, 그토록 단호한 현실 개혁 의지를 천명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예수 믿고 천당 가는 것에만 관심 있는 한국 기독교계 일각의 천박한 내세주의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누구 못지않게, 원치 않는 가난과 열악한 외부 환경을 회피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는 만일 우리가 현재의 위치에서 성공할 수 없다면 다른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웁니다. 더럽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백합꽃처럼 순수하고 강인하게 자랄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도덕적으로 허약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서있는 자리에서 세상을 도울 수 없다면, 우리는 설령 다른 곳에 서있다 하더라도 세상을 위해 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 어떤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매일 매일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어떤 이상을 추구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가 진정으로 어떤 종류의 인간인가 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랍 격언은 놀라운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그대가 서있는 곳, 그곳이 바로 그대의 세계이다.’”
물론 그녀는 영혼의 불멸성을 믿었다. 내면에 존재하는 ‘불멸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헬렌은 육신의 장애가 씻은 듯이 소멸되고 전개될 영적 세계를 다음과 같이 그려 보인다.
“무서운 꿈을 꾸다가 깨어났을 때 사랑스런 얼굴이 미소 지으며 당신을 쳐다본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겠습니까? 나는 이 세상에서 잠을 깨어 천국으로 가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나는 영혼의 불멸성을 믿습니다. 나의 내면에는 불멸의 갈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가 죽은 후에 맞이하는 상태가 우리의 동기, 사상, 행동 등에 의해 형성된다고 믿습니다. 나는 나의 육신의 눈 안에 있는 영의 눈이 다가올 세계에서는 활짝 열려, 내 마음의 고향에서 자의식을 갖고 살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이런 신앙이 없다면 내 인생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헬렌은 1936년 애니 설리번 선생이 죽은 후에도 애니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헬렌은 “내 영혼이 선생님의 존재를 또렷하게 느끼므로 선생님이 죽었다고 말할 수 없고 그렇게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헬렌은 가르치는 일을 사명이자 영광으로 여겼던 애니가 천국에서도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영혼 없는 현대인에게 울리는 경종
헬렌 켈러의 신앙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다. 기독교 사상의 전통에 우리의 막연한 인식을 뛰어넘는 심연이 있음을 깨닫고 경이로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헬렌의 비범한 신앙에 곤혹스러움을 느껴 애써 눈길을 돌리고자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양의 지적 전통에서 사후 세계라든가 영혼 불멸에 대한 믿음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소크라테스의 경우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소크라테스는 ꡔ변명ꡕ에서 죽음이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한다. 즉 완전히 아무런 의식도 없는 절멸(絶滅)의 상태이거나 또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의 영혼의 이동이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만일 죽음이 아무런 의식도 없이 꿈조차 꾸지 않는 깊은 잠이라면 그것은 큰 소득이다. 제아무리 호사스런 전제군주의 생애라 할지라도 숙면을 한 밤보다 더 쾌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편 죽음이 다른 곳으로의 여행이라면, 그리고 그곳에 모든 선인(先人)들이 있어서 의롭고 위대한 인물들과 사귈 수 있다면 그것은 커다란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만일 죽음이 그런 것이라면 열 번이라도 기꺼이 죽겠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에게 죽음이란 고통도 불행도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연속일 뿐이었다. 사실 그는 자신이 일생 아테네에서 해왔듯이, 저 세상에 가서도 신의 소명대로 사람들이 진정 지혜를 갖고 있는지 없는지 아니면 없으면서도 있다고 스스로 생각만 하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시험해보겠다고 말했다. 죽음을 현세에서의 삶과 내세에서의 삶(또는 잠)을 잇는 관문에 불과하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는 헬렌 켈러와 결코 입장이 다르지 않았다. (실제로 헬렌이 가장 존경한 철학자 중 하나가 플라톤이었으니, 그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변명>의 저자였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란 행위의 결과가 행복이 되건 불행이 되건 이에 관심을 두지 말고 오직 옳은 일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자는 장차 그에게 죽음이 올지 삶이 올지를 헤아리는데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그는 어떤 일을 하건 한 가지만을 고려해야 한다. 즉 올바르게 행동하는가 또는 그릇되게 행동하는가, 선인(善人)으로서 행동하는가 또는 악인(惡人)으로서 행동하는가 만을 고려해야 한다.”
도덕률의 지상성(至上性), 지고성(至高性)에 대한 주장인 것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평생을 돌아다니며 아테네 시민을 상대로 육신이나 재산을 으뜸가는 관심사로 삼지 말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영혼을 최고도로 향상시키는 일에 마음을 쏟으라고 설득했다.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헬렌 켈러의 입장과 너무나 흡사하다. 헬렌 역시 “우리가 처한 환경이 어떤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며, 매일 매일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어떤 이상을 추구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어떤 종류의 인간인가 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저 세상에서 위대한 선인들과 만나 배움의 기회를 갖겠다고 한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애니 설리번 선생이 천국에서도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리라고 믿었던 헬렌의 생각과도 다를 바 없다.
2400년 전의 소크라테스가 그랬듯이, 헬렌은 영혼 없는 현대인의 삶을 깊이 우려했다. 헬렌은 현대의 삶이 현 세대는 물론이고 다가올 세대로부터도 상상력을 빼앗아간다고 걱정했다. 헬렌이 남긴 다음의 글은 자본주의의 물질만능과 과시소비에 도취한 채, 내면적으로는 한없이 시들어가고 있는 우리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미래의 문명이 메마르고 현실적이며 무미건조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 소름이 끼친다. 나는 내가 문명에 뒤떨어진 사람인 것이 참 다행스럽다. 조각 작품의 아름다운 선을 감상하고 시를 읽으며, 이 황폐한 신체장애 속에서도 행복한 듯이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가 영성의 철학과 상상력을 갖도록 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해 보인다. 영성의 철학과 상상력이 있다면, 설령 시적 영감과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시대가 온다 할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아침 이슬을 머금을 수 있을 것이거늘.
지금의 세대는 내적 삶을 즐기는 능력을 잃고 있다. 그들은 타고난 손재주를 발휘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버리고, 대신 기계로 만들어진 제품들을 택한다. 노래해주고 놀아주고 말해주고 읽어주는 기계를 그들은 원한다. 그들은 내면의 기쁨을 얻을 줄 모르고 밖에서 즐거움을 구하려 한다."
이 책의 초판은 1927년에(헬렌 켈러의 나이 47세 때) 간행되었으나, 편집자인 레이 실버먼에 의한 대폭적인 수정․증보를 거쳐 2000년에 새로운 모습으로 출간되었다. 하지만 역자는 이 책을 옮기면서 몇 가지 오류를 수정했다. 가령 ꡔ성경ꡕ의 장절(章節) 표기에 잘못된 부분이 상당수 발견되어 일일이 <표준 새번역 성경전서>(대한성서공회, 1993)를 참조하여 고쳤다. 안데르센(Andersen)이 앤더슨(Anderson)으로, 프레드릭(Fredrik)이 프레데릭(Frederick)으로 표기되는 등의 잘못된 고유명사 표기도 바로잡았고, “작가”인 헨리 제임스를 “철학자”(philosopher)로 오기(誤記)하는 따위의 편집상의 착오도 바로잡았다.
독자들에게 의미가 분명히 전달될 수 있도록, 옮기는 과정에서 우리말 표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으나,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실수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의 질정을 바란다.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애써준 옛오늘 편집진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01년 12월
옮긴이 박상익
첫댓글 좋은 책 번역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신 교수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읽어주시니 더욱 감사..^^
우와, 헬렌켈러가 한국에 왔었는지를 오늘 처음 알았어요!^^
켈러 여사님, 너무 멋져요! 이럴 때 "장애는 아름답습니다."라고 하는 것이겠죠?
비장애인 백만 명보다 더 훌륭한 켈러 여사님, 만세! 설리번 선생님 만만세!(^^)
헬렌 켈러에 대해서는 이 책이 참 흥미롭습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6370268
@박상익 감사합니다, 방금 알라딘 댕겨왔어요!^^*
@우산 책을 정말 사랑하시는 분이시군요~
헬렌 켈러의 숨은 이야기가 정말 흥미롭습니다.
CIA의 감시대상이었고,
설리번 등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
종교문제로 인한 가족과의 갈등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