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에서는 동료상담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에서는 동료상담과 나와의 관계 또한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기술하려고 합니다. 동료상담과 나의 관계는 휴먼 캐어 협회와의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1983년 일미 자립 생활 세미나가 개최되고 중증 장애인이 자립 생활에 꿈을 크게 가졌던 그 때에 저는 대학 졸업 후에 오랫동안 근무하던 사회복지 협의회를 그만두고 이전부터 공부하고 있던 카운슬링을 활용한 전화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사회복지 협의회를 그만 둔 때는 자원 봉사자 육성과 주민의 복지 활동을 관여하고 있을 때입니다. 매일 매일 행정 기관에서 위탁 사업을 받고 있던 터라 본래 그러한 것에는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여태까지 부정해 왔던 나 자신에게 다시 한번 장애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장애를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탐구해 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우측 반 마비 (우측 마비)의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상 생활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한 경증 장애인입니다. 장애를 피해 사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장애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 그러한 근원을 찾아보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여태까지 장애인 중에서도 경증 장애인이라고 생각했던 그 턱을 넘어서 카운슬링을 통하여 보다 새로운 장애에 대하여 지원하는 일을 해 보고자 그러한 일을 찾고 있을 때였습니다. 1986년 6월 휴먼 캐어 협회가 발족하는 정보를 듣게 되었고 제가 생각했던 대로 그 일을 하고자 그 조직에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이 것이 나의 새로운 인생의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왜 곧바로 그러한 조직에 가담하게 되었는가? 휴먼 캐어 협회에 들어가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중증 장애인 자신이 모든 면에 있어서 리더쉽을 가지고 있다는 점 두 번째는 당사자 주체의 사업을 전개한다는 점에서 저는 이곳에 참여하고자 노력했던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주최자가 중증 장애인이 된다는 것 즉, 장애인이 주체라는 것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장애인이 주체가 되어 사업을 전개한다면 이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것을 지원하는 일에 내가 가담한다고 생각하니 매우 흥미 있는 일 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휴먼 캐어 협회에 들어가 얼마 동안은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별 세계에 와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별 세계라고 제가 말했습니다만 일반 세계 가운데는 비 장애인도 있고 장애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만해도 휴먼 캐어 협회에는 장애인만이 일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물론 비 장애인이 같이 일하고 있었지만 당사자 주체를 강조한 나머지 비 장애인은 장애인의 종처럼 느껴졌습니다. 여태까지 만나 보지 못했던 중증 장애인들이 경증 장애인들과 같이 함께 일하며 내가 진정 그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까 라고 하는 심리적인 부담감이 저를 짖눌렀습니다. 중증 장애인과 자신의 장애를 비교해 보았을 때 이것은 매우 많은 면에 있어서 중압감으로 느껴졌습니다. 휴먼 캐어 협회 가운데 관여하여 2년 동안 나의 일은 캐어 코디네이터 이것은 Attendant care service coordinator 이였습니다. 즉 이용자와 클라이언트를 연결해 주는 어드바이저와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985년에 동료상담을 본격적으로 도입함으로인 해서 이러한 카운슬링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까지 저는 이 동료상담에 있어서는 중증 장애를 가진 사람과 연결된다고 하는, 그리고 내 자신도 그들의 동료라는 인식을 한번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과 함께 만나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카운슬링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고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료상담은 나 자신을 크게 변화시켰다고 생각합니다. 동료상담과 함께 걸어온 오랜 길은 자립 생활과 동료상담의 발자취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은 하나의 일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동료상담과 자립생활, 이것을 일체라고 말씀드렸지만 저는 동료상담의 역사에 있어서 제 자신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휴먼 캐어 협회에 들어가 처음에는 소외감과 중압감 때문에 망설인 적이 한, 두 달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일에 몰두하다 보니 이러 중압감이나 부담감은 언제인지 모르게 사라졌습니다. 또한 중증 장애인과 같이 생활하는 그 일 이야말로 저에게는 도전이었습니다. 도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저는 그들과 함께 이야기 할 수 있었고 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행복하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그들의 Role Model을 통하여 내 자신과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받았습니다. 당시 사무 직원이었던 장애인은 다섯 명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로가 적은 월급에도 불구하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모습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 외에 4명의 직원들은 미국에서 자립 생활 센터를 견학하고 연수를 받은 경험을 가진 가진 사람이어서 그런지 아이디어가 매우 풍부하였으며 자신감과 활기에 넘쳐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상식에 세계에서만 살았던 저에게 어! 어! 하는 감탄사와 놀라움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토록 중증 장애인이 저런 일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되는 일반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었습니다. 1988년 7월 처음으로 동료상담 집중 강좌를 개최하기 위해 사무국 직원이 계획 회의를 할 때였습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강좌를 개설하는 것이었으므로 그 내용과 평가, 스케줄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매우 큰 기대와 부담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1회 동료상담 집중 강좌는 아사카씨가 중심이 되어 재평가 카운슬링을 기초로 하여 프로그램을 실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카운슬링 기법을 공부한 저는 아사카씨가 도입한 재평가 카운슬링을 체험한 수강자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재평가 카운슬링의 본격적인 학습은 이러한 동료상담의 기초 이론이 된다고 하는 것에 납득이 갔습니다. 이 기법, 즉 재평가 카운슬링은 결국 동료상담과 같이 동료들끼리 서로가 지지하며 서로가 도와주는 관계라고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카운슬링에서 클라이언트와 카운슬러는 상대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때에 따라서는 상하 관계 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료상담이나 재평가 카운슬링에서는 대등한 관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데 큰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Discharge(자기 해방) 라는 새로운 기법을 통하여 매우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휴먼 캐어 협회의 세 분의 리더가 동료상담의 보급을 위하여 열심히 활동하고 또한 번역 작업에도 열심히였습니다. 동료상담을 통해 그들이 장애인의 자기 변화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고 여기저기에서 저는 강사로 초대되어 많은 사람들 앞에 동료상담을 개최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