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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빈양은 2년 전부터 백혈병을 앓고 있다. 200여일간 진행된 항암치료, 합병증으로 발생한 심장판막 염증을 치료하기 위한 심장수술까지 받았다. 이런 투병생활 속에 혼자 공부해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또 경남과학고까지 합격한 것이다.
경남과학고는 국어·영어·수학·과학 등 4과목의 전교 석차가 모두 1% 이내여야 합격할 수 있는 경상남도에서 하나뿐인 명문 과학고다. 은빈양은 지난 4월에 있었던 고입검정고시에서도 국어·영어·수학·과학 등 총 6과목의 시험을 봐서 평균 점수 99점(100점 만점)으로 경남지역 수석을 차지했다.
은빈양은 경남 진주의 삼현여중 1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6년 9월 감기 기운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임파구성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은빈양은 그 길로 학교를 휴학하고 진주에 있는 경상대 대학병원에 입원해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혈액 속의 암세포를 죽이기 위한 독한 항암제는 은빈양의 멀쩡한 세포까지 파괴했다. 항암제가 투여되기 시작한 뒤부터 식사만 하고 나면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먹은 것을 모두 토했다. 속에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데도 헛구역질을 했다. 먹는 것이 고통스러워 나중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으려 했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 화장실에 가다가 병실 바닥에 쓰려져 얼굴과 팔꿈치에 멍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은빈양은 공부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토하고 엉금엉금 기어서 침대로 돌아와 20~30분 숨을 고르고 난 뒤, "엄마, 책!"이라고 보챘다고 한다.
어머니 최씨는 "책상으로 쓴 침대용 식탁 위에 토하기도 하고 앉아 있을 힘이 없어서 양 팔을 식탁에 기대 몸을 지탱하면서 책을 봤다"며 "몸이 먼저라고 말리고 싸우기까지 했지만 도저히 말을 듣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왜 그런 상황에서도 공부했냐는 말에 은빈양은 "내가 건강할 때 잘했고, 병실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고, 공부를 할 때는 내가 무서운 병에 걸렸다는 걸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복학할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은빈양에게 더 큰 시련이 찾아왔다. 항암치료 한 달 만에 심장판막에 염증이 생기는 합병증이 온 것이다. 은빈양은 2006년 10월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심장판막 수술을 받고, 결국 지난해 4월에는 학교를 자퇴해야만 했다.
"자퇴하고 난 직후인 어느 날 은빈이가 갑자기 병상에 누운 채 펑펑 우는 겁니다. 깜짝 놀라 '왜 우냐'고 했더니 은빈이가 '엄마, 아빠한테 고생만 시킨 내가 나중에 효도하려면 공부를 잘하는 길밖에 없는데 하루도 안 아픈 날이 없으니 효도를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겁니다. 얼마나 안쓰럽던지…"
하지만 은빈양은 마음을 다시 추스렸다. 포기하지 않고 고입검정고시 준비에 들어갔다. 항암치료에 심장판막 수술까지 받은 터라 더 힘겨워했다. 일주일간 대변을 보지 못해 고통스러워한 적도 있고, 심장수술을 받은 후로 앉아 있어도 갑자기 숨이 차서 병상에 누워 숨을 고르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공부한 끝에 지난 4월 고입검정고시에서 경남지역 수석을 차지했고, 지난 5일 교과 성적 우수자로 경남과학고 합격 통보를 받은 것이다.
경남과학고 합격자 예비소집일인 11일 은빈양은 참석하지 못하고 서울대병원 입원실에 누워 있었다. 지난달 말 폐렴 때문에 기침을 많이 해 심장판막 재수술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12일 오후 서울대 병원 중환자실에 누운 은빈양은 산소 호스를 코에 끼고 있었다. 어머니 최씨가 병실로 들어서자 "아버지는 잘 챙겨 드신대요?"라고 물었다. 택배회사 종업원인 은빈양의 아버지 송윤경(45)씨는 경남 진주에 남아 일을 하고 있다.
송씨 부부의 한 달 소득은 150만원. 은빈양 병원비로 인해 5000만원 정도의 빚을 지고 있었지만 다행히 지난해 여름부터 어린이재단을 통해 진료비와 수술비 지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외래진료비와 약값 등으로 한 달에 60만원 이상을 지출한다.
은빈양은 "이제껏 많은 분들이 우리 가족을 도와주셨다"며 "나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어려운 이웃들을 꼭 돕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