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용,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편소설, 뫼비우스 그림, 전미연 옮김, 열린 책들, 2007.7.10
베르베르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인간의 가능성, 그리고 동시에 인간의 한계이다. 희망이 없는 곳을 탈출할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 상상력과 창의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에서 인간이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시도한 새로운 사회적 모델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이브의 말대로 인간 유전자에 깊이 각인된 자기 파괴적 본능 때문일지도 모른다.
파피용이라는 유토피아적 사회에 금이 가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참으로 우습게도 치정 살인이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행성에 도착한 아드리앵과 엘리트가 서로 다투고 결별하는 장면은 베르베르식의 유머의 절정이다.
-옮긴이의 말 中-
나비 혹은 나방을 뜻하는 파피용은 지금 현재 우리 지구에서 일어나는 파괴적인 일들 - 환경오염, 살인, 폭행, 핵무기, 전쟁, 정치와 종교적 문제 등에 대해 <마지막 희망은 탈출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자체 제작한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책을 읽는 내내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에 대해 불만을 품은 나로서는....
- 특히나, 기름띠 유출사건(지구가 우리에게 주는 경고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도덕성 보다는 경제를 우선시한 대표자 선출의 시대적 흐름 등에 대해서...-
더더욱 책을 읽는 내내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어쩔 수 없는 인가의 파괴적 본능, 한계성이 나오는 부분에 있어서는 허탈감이 들기도 했다.
14만 4천명을 가려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우리들의 파괴적 본능, 질투, 사랑, 살인,...
어쩌면 인간 본능일지도 모르는 이런 성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에 대한 관점도 작가는 무척 사랑스러우면서도 원초적이고 때로는 관념적인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베르베르의 상상력, 다시 한 번 놀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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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한낱 환상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 있지. 사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는걸. 하지만 사랑에 속을 때는 또 얼마나 많으냐. 반대로 빛은 속이는 법이 없단다. 빛은 어디든지 있지. 빛은 환하게 밝혀 주고, 빛은 베일을 걷어 준다. 빛은 따뜻하게 덥혀 주고 꽃과 나무들이 자라게 해. 빛은 우리의 호르몬을 일깨우고 우리 몸에 영양분을 주지. 사랑 없이는 살 수 있지만 빛이 없이는 살 수 없단다. 빛이 모두 꺼지고 인류가 영원히 암흑 속에 갇힌 세계를 상상해 보렴. 그럼 이해가 갈거다.
그는 팀원들에게 <나쁜 성향을 적게 가진> 14만 4천명을 선별해 낼 테스트를 고안하라고 지시했다. 첫 번째 회의에서 서른 두명의 전문가들과 이브, 사틴, 가브리엘은 세 개의 선발 기준을 확정했다.
1. 자율성. 즉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일을 해결하는 능력.
2. 사회성, 즉 개인의 이익을 초월하여 집단과 공공의 이익을 생각할 줄 아는 능력.
3. 동기 부여. 즉 D. E. 프로젝트의 성공을 바라는 의지.
4. 건강(흡연자, 알코올 중독자, 마약 중독자, 약 복용하는 사람 제외
5. 젊음
현명하다는 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의식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언제나 무기력한 합의 속에 갇혀 있는 다수의 뜻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다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했을걸. 패스트, 콜레라, 세계 대전, 노예 제도가 있었던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은 초악의 시대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모든 세대마다 예전보다는 나아졌고 다음 세대에는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어. 어쩌면 결국 상황은 언제나 똑같을런지도 몰라. 단지 우리 시대는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끔찍하게 생각되는 거지. 그러니까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어.
짝을 짓는 문제에 있어서 나비인들은 <자유로운 결합>이라는 원칙을 따랐다. 그녀의 주례사는 <이제 두 사람은, 사랑이 식어 서로 헤어지는 순간까지 하나가 되었습니다>하고 마치곤 했다. <유머리스트> 질은 자신의 공연 레퍼토리에 이를 패러디한 냉소적인 문장을 하나 넣었다. <이제 두 사람은... 둘 중 하나가 더 괜찮은 사람을 찾기 전까지 서로 하나가 되어 상대방에게 충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