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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산 雲霧山 (980m : 횡성/홍천)
*일 시 : 2005. 3. 13(일), 제18차rtnah산행(22명), 날씨(맑다)
*코 스 : 먼드래재-717봉-안부-806봉-860봉-안부-운무산-송암-(된)원넘이재-황장곡
-운무산장-오대산생수공장[거평식품공장(舊 운무원식품)] 앞
(오전 9시 20분~오후 2시 26분 종료 → 9Km, 총 5시간 6분소요)
“일체의 <苦難>은 죄악과 인생을 깨끗이 씻어준다. 고난은 인생을 깊게 만든다.
이마의 깊은 주름이 생길 때 깊은 지혜가 생긴다. 살을 뚫는 상처가 깊을 때 영혼에서 솟아오르는 향기가 높다. 고난은 인생을 위대하게 만든다.“
함석헌님의 ‘뜻으로 본 역사’에서 잠깐 보았던 구절이다.
고난의 늪에 머물지 말자. 고난을 즐기고 넘어서자.
자기를 벗어날 때처럼 사람이 아름다운 때가 없다는 어느 시인의 표현이 아니더라도, 고난은 누구에게라도 해당하는 각자의 몫으로 할당된 인생의 무게다. 고난을 즐기는 세상이 될 때 우리는 더욱 아름답게 늙어간다. 인디언의 한 부족인 체로키족은 3월을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달’이라고 표현한다. 어언 3월도 중순이 신나게 흘러가는 이 아침에서 현재를 응시하는 여유를 가져보자.
雲霧山!
산이 높아 항상 구름과 안개가 끼어있는 山이라하여 구름 <雲>자가 들어간 운무산이다.
구름 <雲>자가 들어간 산치고 호락호락한 산이 없다. 두 번 중 한 번은 비나 눈을 만나기 일쑤이고, 코스도 대체로 까다롭다. 운악산-운달산-운문산-운길산 등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운무산은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과 홍천군 서석면 경계에 있는 규모는 작으나 아름다운 암봉과 암릉을 을 갖춘 산이다. 횡성군에는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산꾼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아름다운 산이 적지 않다. 발교산-덕고산-봉복산-어답산-수리봉-병무산-태기산-오음산-금물산-운무산 등 부지기수다. 그 중 운무산은 육산과 골산의 요소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산이다. 골짜기 아래에서나 위에서나 단애와 암릉이 조화를 이룬 독특한 암봉미와 아기자기한 능선을 갖추고 있어 산을 즐긴다는 매니아들이 즐겨 찾는 산이다.
운무산은 한강기맥이 오대산 두로봉-비로봉-계방산-덕고산을 지나며 요동치듯 일어난 암산이다. 운무산 남쪽 800고지 절벽주변의 석축흔적은 고구려시대나 궁예가 활동하던 시기에 축조했다는 城址가 있다. 일설에는 태기왕이 태기산성에서 신라군에게 패해 이곳 운무산성으로 옮겨 최후의 저항지로 삼았다는 구전도 전한다.
운무산을 오르는 코스는 속실리나 운무산산장, 또는 홍천군 동두천에서 들머리를 잡기도 하지만 2004년 9월 26일 <발교산-수리봉>의 들머리였던 먼드리고개 좌측에서 717봉-806봉-운무산 정상-운무산 안부-운무산장으로 내려오는 한강기맥 일부코스를 잡기로 진작부터 생각해둔 코스다.
서울에서 운무산으로 가려면 여러 갈래 길이 있다.
흔히 영동고속도로 원주-중앙고속도로 횡성IC에서 청일면 속실리로 온 뒤 홍천군 서석면으로 넘어가는 먼드리 재 마루에 올라서기도 하지만, 수도권에서 6번 국도로 횡성읍-19번 국도를 따라 29km 청일면 속실리(-운무산 입구에서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하여 5km-운무산장-200m 더 올라간 삼거리가 산행들머리로 잡을 수 있다. 또는 홍천읍-서석에서 19번 도로로 먼드래재 마루에 올라서기도 하는데 사정에 따라 취사선택하면 된다.
운무산장을 들머리로 하는 경우 속실리로 들어가는 주막거리 삼거리에서 오른쪽 골짜기로 약 3Km. 들어가면 계곡 왼쪽으로 운무원식품(거평식품)을 만난다. 계속해서 임도를 따라 골짜기로 들어가면 운무산장이 나오고, 200m 더 진입하면 운무산등산안내판이 있는 공터에 닿는다. 예서 좌측 계류를 건너 계곡길로 들어서면 된넘이고개 안부와 연결된다.
옛 메모를 들춰보니 오늘로서 4번째 찾은 운무산이다.
1988년, 1966년에 이어 1999년 9월 5일이 마지막 상면이었다. 생각해보면 지난 세 차례 방문이 모두 어려운 기후였었다. 비나, 아니면 잔뜩 내린 운무로 시계확보 없이 주마간산으로 미친 듯 산행을 마쳤다는 메모와 일부 산행후기가 남아있다.
마지막 산행도 종일 비가 내렸던 하루였다. 운무산은 그 이름값답게 우리들에게 우중산행을 치르게 했고, 그 날 이후 만 5년 6개월만의 재회인 오늘만은 하늘은 맑은 문을 열어 주었다. 그동안 운무산과 맺었던 악연(?)과 고통스럽던 일체의 기억은 아름답게 각색된 과거였다면 오늘의 날씨는 그 동안의 보상차원의 작은 축복이다. 나이를 들수록 과거를 씹고 산다는 얘기가 허언은 아닌가 보다. 지난 과거는 모두 아름답게 느껴지는 감회가 말이다.
오전 9시 20분.
먼드래재에 내려 절개지 사면을 곧장 오르면서 산행을 시작했다.
예상대로 눈은 깔렸지만 발목부근만 적시는 그런 적설이다. 절개지사면을 가르며 4분간 오르자 한강기맥의 주능선이 보인다. 발교산-수리봉에서 이어오던 한강기맥이 잠시 19번 도로인 먼드리재에서 잘려 동쪽으로 운무산-덕고산-구목령으로 이어간다. 진달래-굴참나무-신갈나무 나목이 늘어선 주능선 눈길의 따사한 아침기온이 낭만을 넘어선다. 예상 밖의 포근한 기온이다. 이제 봄은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다.
오규원님의 ‘봄’ (진정 봄이 온단 말인가)이다.
「봄은 자유롭다,
자 봐라, 꽃 피고 싶은 놈 꽃 피고,
잎 달고 반짝이고 싶은 놈은 반짝이고,
아지랑이고 싶은 놈은 아지랑이가 되었다.
봄이 자유가 아니라면 꽃 피는 지옥이라고 하자.
그래 봄은 지옥이다.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던가.
내 말이 옳으면 자,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
오전 9시 43분.
능선 좌측사면에 깔린 이깔나무 나목군락을 바라보며 올라선 무명봉이다.
북쪽으로는 서석면의 마을과 병풍을 친 듯 보이는 아미산이 가깝고 서쪽의 수리봉이 눈썹위에 걸쳐있다. 활엽수 낙엽수림을 덮은 눈길 능선은 생각보다 행보가 까다롭다. 비탈일 경우 발길이 무뎌진다.
인생도 自然처럼 순환이다. 다시는 이 샘물을 먹지 않겠다며 침을 뱉으면 언젠가는 그 샘물을 다시 마셔야하는 순환의 고리가 바로 대자연의 순리다. 오늘 산행엔 신입회원 조윤익님과 K-C님 등 세 분이 참여했다.
지난 해 여름 어느 날 밤의 헤프닝이 기억나 씁쓸했다. 人生流轉이라던가.
한 바퀴 갑자년을 보낸 연륜이 지난 지금도 뛰어넘지 못하는 감정의 골짜기에는 여전한 흔적이 상처처럼 남아있다. 한강기맥의 능선에 그 흔적들을 밟아버리려는 안간 힘이 발끝마다 무게를 더한다. 먼드레고개 들머리부터 항공기 소리가 시차를 두고 다시 간헐적으로 들린다. 마침 김성현 기사께서 일러준 대로 속실리 <청일관광농원>에 중식주문 여부를 확인하는 연락이 왔다.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쌈밥정식(1인당 6000원)을 결정하라는 연락을 주었다.
10시 6분.
717봉이다. <등산로 하산길 → > 안내판이 우측 지능선 방향에 서 있다.
717봉을 내려선 동향능선이다. 선두에 선 최영복이사님의 행보는 놀랄 정도의 비약이다. 지난 주중 S산악회에 편승한 백화산(=포성봉) 산행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한다. 봄 날씨로 녹아버린 질척거리는 隘路와, 3시간가량 능선이 아닌 골짜기나 사면을 통해 정상에 닿은 백화산은 일천한 산행이지만 몹시 힘들었다는 푸념이다. K-C씨의 행보도 녹슬지 않았다. 옛 그대로의 체력이다.
이정표가 서 있고 급경사를 잠시 오르니 사방이 확 트인다. 오르내리는 안락한 눈길능선이다. 806봉을 향한 된 오르막이다. 3주일 만에 참여한 왕언니 김옥희씨의 희열에 찬 차탄이다. 이 좋은 구경을 놓치지 않은 오늘이 마냥 행복하다는 일갈이다. 어제 저녁까지 꾀를 부렸던 자신이 부끄럽다는 서슴없는 표현이 순진하다.
거대한 바위 아래 작은 공간에 선두가 모였다. 후미의 행보를 염려한 배려의 기다림이다. 앞에 나타난 암릉은 다서 까다롭다. 거대한 바위를 안고 S자로 돌아 오르고 내린다. 어린아이 손목굵기의 로프가 S 암릉코스를 따라 약 120m 가량 걸려있어 안전엔 문제가 없으나 눈길이라 경계를 늦출순 없었다. 주변 설경이 환상특급이다. 햇살을 듬북 받아 가는 철쭉 가지에 쌓인 눈꽃이 가히 선경이다.
10시 40분.
806봉을 지났다.
<다락골 하산 3Km, 능현사 1.2Km ↗, 운무사 → >
능선 우측 능현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정상으로 가는 능선요소마다 나뭇가지에 걸린 표지가 정겹다.
<한우 더덕의 고장, 아름다운 횡성>
한 줄기의 맥으로 연결되어 있는 청일면 서북쪽의 산들이 더욱 가까워져 있다. 수리봉-발교산-병무산-어답산이다. 이 일대의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섬강이 되어 횡성, 간현으로 나와 남한강과 합류한다. 이곳에서의 조망은 남동쪽으로는 봉복산, 덕고산 일대가 보이고 동쪽은 흥정산, 그리고 북쪽은 서석면과 풍암리 뒷산인 아미산이 뚜렷하다.
11시 10분.
860봉이다. 잠시 이어가는 노송이 그림처럼 다가드는 환상의 암릉이다.
다시 암봉을 우회하는 오르막이다. 60m 로프가 걸린 오르막 능선엔 스덴 기둥 우듬지에 작을 표지를 붙인 <등산로 → > 이정표가 가끔 눈에 띈다.
우측 산사면 들어찬 나목가지마다 얹어진 눈꽃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려했으나 카메라 밧테리 방전으로 취소된 편안한 수평능선에 선 일행들의 표정은 만족 그대로다. 3월의 크리스마스라며 환호하는 일행들이 표정과 이야기들이 햇살아래 더욱 현란하다.
11시 29분. 능선을 따라 오른 '수리봉'에 올랐다.
아찔한 단애를 이룬 암벽절벽이다. 이 절벽에 둥지를 튼 수리 가 동네 닭을 없애자 마을 사람들이 아예 둥지를 없애버렸다는 이름만 남은 수리봉이다.
12시 30분.
안부에서 잠시 행보가 멈칫했다.
북편에 솟은 운무산 정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퍽 낯설다는 느낌이다. 마치 처음 와 본 생소한 장소로만 생각됨은 나이와 더불어 나타나는 스트레스인가 모르겠다. 마땅한 손잡이 나목조차 없는 눈 덮인 급경사 내리막이다. 퍽 위험한 구간이다. 눈이 쌓인 것과 아닌 것의 차이이려니 생각했다. 안부에 내려서기 전 원뿔형 돌탑이 있는 지점이다. 안부를 지나면 이어 헬기장으로 오르는 된 비알이다. 잔돌이 널린 너덜지대다.
11시 48분.
헬기장에 올라섰다. 혼자 음미하기 아까운 기막힌 사방 전망이다.
10여명의 일행들이 모였다. 김총무께서 배낭에서 꺼낸 행동식인 절편이 일행들에게 나눠졌다. 후미그룹이 많이 처진 상태다. 뒤에 처진 부모를 기다리는 오이사님 따님의 안쓰러운 시선이 안부 쪽 깊숙한 곳을 향해 멎어있다. ‘해병대출신 아저씨’인 정재근 감사님의 행보가 무척 더디다. 지난 주 산성산 때도 무릎관절통으로 고생하더니 오늘도 사정이 여의치 않나보다. 김옥희씨가 암릉에서 의외로 절절매며 겁이 많은 아저씨라는 이야기를 덧붙여 일행들이 잠시 웃었다. 신중한 행보라고 치부하자. 누구든 한, 두 가지 아킬레스건은 있으니까.
‘부파만 지우파좐(不怕慢 就怕站)’
(느린 것을 걱정하지 말고, 중도에 그만두는 것을 걱정하라)
중국 속담이다. 만만디(慢慢的)의 국민성답게 꾸준함을 제1 미덕으로 삼는 대륙기질과, 반도적 기질의 조급함을 대비하는 게 아니다. 산행의 첫째 조건은 누가 뭐래도 始終如一이다.
20분가량 머문 헬기장에 한기가 엄습한다.
헬기장에서 올려다본 치마바위와 운무산 정상이 지척(咫尺)이라는 느낌이다.
정오가 조용하게 지나가는 12시 6분이다. 내려선 안부에는 이정표가 서 있다.
<운무산 0.4Km 30분 ↔ 먼드레재>
내려온 만큼 다시 올라가는 자연의 이치대로 겼어야 하는 오르막이다.
등산로 좌우에 펼쳐진 무성한 신갈나무 숲과 진달래과 관목지대를 박관례씨가 선두에서 치고 올라갔다. 된 오르막에 마지막 가쁜 숨을 쏟아내는 시간이다. 봄바람에 서서히 녹아드는 나목가지마다 맺힌 雪花는 ‘꽃 대궐이 아닌 雪 대궐’이다.
올라선 능선 삼거리 갈림길에 이정표가 서 있다.
<치마바위 0.5Km 15분↑, 먼드레재 ↔ 운무산 0.2Km 10분>
철쭉 나목이 가득한 수평능선이다.
12시 20분.
가는 로프를 잡고 올라선 운무산 정상 공터가 생각보다 좁다.
<삼각점(1989 복구)> <운무산 980.3m>
<운무산 980.3m, 내촌 방향 하산 4.52km, 2시간>
정상표지목-삼각점-이정표, 횡성의 韓牛 마스코트가 그려진 안내판이 서있다.
10여명의 일행들과 사방을 조망하며 행동식을 나누는 시간이다. 운무산은 암릉과 소나무가 어우러지고 높은 단애가 곳곳에 서 있어서 계곡조망이 좋다. 남쪽 조망도 시원하다. 황장곡 운무산장과 오대산샘물 건물, 그 주차장에 머문 소형트럭과 승용차가 내려다보인다. 운무산 정상에서 홍천군 서석면과 횡성군 청일면 사이에 솟은 기맥줄기가 완연하다. 봉복산 서쪽으로 청일 벌판이 발치 아랫니고, 멀리 치악산이 잡히는 오늘의 청명한 날씨가 여간 돋보이는 게 아니다. 기맥 줄기가 먼드리재 아래로 수리봉, 발교산, 병무산, 공작산, 가리산 등이 일렁이고 있다. 북쪽으로는 서석면의 진산인 아미산-고양산이 지호지간이다. 남쪽의 주봉산 자락, 동쪽의 봉복산-흥정산-회령봉 너머 선자령-소황병산을 담고있는 백두대간, 서쪽의 발교산 능선과 어답산이 염주알처럼 꿰어있다. 정상을 중심으로 발교산-수리봉-병무산-어답산 등 청일면의 고산들이 운무산을 호위하고 있는 ‘장다름’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배낭을 둘러매고 막 하산하려는데 굳이 정상주 한 잔씩 나눠야한다는 김총무님의 고집이다. 그네가 준 매실주 한 잔은 일행들이 맞는 早春을 녹여준다. 로프가 걸려있는 가파른 내리막은 다소 거칠다. 다시 로프로 이어진 급 오르막과 내리막이다. 올라가는 힘겨움과 내려가는 긴장감의 반복이다. 암봉 전망대 바위다. 운무가 쌓인 덕고산과 봉복산이 하늘에 닿아 있고 봉막골을 거슬러 오르는 임도는 하얗게 쌓인 눈길로 언듯 보면 동결한 폭포같다. 주변은 온통 철쭉밭이다.
전망대 아래로 능선을 덮은 경사진 암반은 매어진 로프를 타고 내려서야한다. 계속되는 급경사 내리막마다 수 십 m짜리 로프가 걸려있어 비록 눈길능선이지만 그런대로 견딜만하다는 생각이다.
오후 1시.
3거리 갈림길이다. < 송암(松巖) →>이란 이정표가 걸려있고 남쪽으로 내려진 급경사 내리막에 로프가 끝없이 걸려있다. 예서 송암은 50m 앞이다. 바위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고고한 자태로 하늘을 향해 박혀있어 모양 그대로 松巖인 모양이다. 우뚝한 암봉 위의 소나무 한 그루는 한 폭의 동양화다. 기다리는 동안 송암에 올라 바라보는 풍광에 빠졌다. 오대산 두로봉에서 비로봉-계방산-회령봉을 지나온 기맥은 구목령에서 한 호흡을 맺고, 다시 솟구친 덕고산에서 서남으로 갈라진 봉복산이 하늘금을 이룬다. 섬강의 발원지라는 '돼주우물 터'가 덕고산과 봉복산 사이로 깊숙이 박힌 계곡 끝의 봉막골 산기슭이 가려있다.
계속 안부로 내려선 일행들을 안내하고 오랫동안 후미를 기다렸다.
드디어 정감사님 팀(일명 ‘해병대 아저씨’라는 명칭을 오늘 급조한 바 있음)과 오이사님 가족들을 마지막으로 모두가 합류한 시각은 1시 33분이었다. 기맥을 따라 덕고산을 중심으로 잡고 따라내려 가면 이내 된넘이고개(=원넘이고개)다.
오후 1시 48분.
한강기맥 주릉(698m)인 된넘이재(=원넘이재) 안부다.
좌측인 북쪽은 홍천군 서석면이고, 우측인 남쪽은 횡성군 청일면이다. 상록인 잣나무림이 가득 찬 대규모 숲이다. 여름철이면 그윽한 잣향기 냄새로 가득한 숲을 편안하게 생각하는 여유를 가졌다. 무난한 경사로를 한참이나 내려오며 산죽지대다. 산죽차를 끓이기 위해 잘생긴 산죽 잎을 한 손아귀만큼 땄다. 후미에 쳐져 아픈 관절을 절룩이며 빈속에 먹은 진통제가 속을 후려 다시 위장약을 먹는 과정을 어렵게 치른 정감사님이 내리막이란 지형때문인지 행보가 경쾌하다. 홍대장님과 후미에서 돼지꼬리처럼 일행을 뒤따라 내려갔다.
황장곡의 황장소 위치를 확인하지 않았다.
봉막골 콘테이너 박스가 있는 너른 공터를 지나 작은 개울을 건너 운무산 등산안내도 간판이 서있는 지점에 선 시각은 2시 18분이다. 2분 후 평탄한 비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이내 '운무 산장 가든'(033-344-5959) 건물이 나온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흰둥이 두 마리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행인을 쳐다보고 있다.
2시 26분.
오대산생수공장[거평식품공장(舊 운무원식품)] 앞에 닿았다. 버스가 공장 앞마당에 정차하고 있다. 1000미터 안팎의 고산군인 태기산-덕고산-봉복산-운무산, 발교산-병무산으로 이어지는 산맥에서 흘러나온 물은 맑고 풍부한 수량을 이용한 생수공장이다. 홍천군 서석면과 횡성군 청일면의 군계인 이 산의 골짜기들로부터 흘러나오는 물은 합수하여 횡성으로 흘러가는 개울이 갑천이다.
들머리였던 먼드리재에서 출발, 717봉-806-860-운무산 정상-안부-송암-운무산장까지 도상거리 약 9Km를 주파하는데 소요된 시간은 5시간 6분이다. 이어 봉복산과 운무산 사이에 형성된 계곡 입구 속실리에 위치한 청일관광농원으로 이동했다. 예서 5분 거리다.
3시 30분까지 걸귀처럼 차려진 식탁을 말끔히 비우고 고픈 술배도 거나하게 채운 시간이었다. 숱한 반찬 중 고등어조림에 눈이 갔다. 고향이 내륙인 나에겐 감회어린 생선인 고등어를 奧地인 이곳에서 맛보는 고등어 맛은 별미다. 그것도 1년에 두어 차례 정도가 당시 모든 가정의 형편이었다.
안동 <간고등어>가 생각났다.
해안에서 80㎞ 떨어진 내륙 안동에선 기껏 소금에 절인 고등어로 생선 입맛을 달래야 했다. 구한말부터 장사치들은 영덕 ‘강구항’에서 안동 ‘챗거리’ 장터까지는 200리 거리다. 도보로 한나절 길을 등짐지고 안동에 들어서면 고등어는 상하기 시작했다. 그 대안으로 장사치들은 강구항에서 한 번, 안동에서 또 한 번, 두 번 염장을 해 ‘안동 간고등어’를 만들었다. 이것이 ‘살아서 썩는다’는 고등어가 도중에 상하지 않게 서민의 밥상에 올랐던 안동 간고등어의 유래다.
말하자면 제주도 연근해에서 잡힌 고등어가 안동을 살린 셈이다.
보도에 의하면 올해 안동지역 간고등어의 예상 매출액은 400억 원이다. 4억 매출로 시작했던 1999년에 비해 6년 만에 100배로 급성장이다. 안동시 제조업체 중에서도 최다 액수로, 지역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며 제조업 불모지대인 양반골 안동의 최대 산업으로 변신했다. 지역적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한 역발상의 개가다. 바다 없는 안동 "고등어로 부자 됐네"는 헤드라인의 보도가 연일 소개된다.
6년 전 한 업체가 상품화를 시작했을 때 자반고등어보다 배 이상 비싼 값에 판매가 되겠냐는 의심은 杞憂였다. 생산업체만 10곳 넘게 생겨났고 미국-칠레를 비롯한 7개국에 수출한다. 1999년 4억 원에 이어 2001년 50억 원, 2003년에는 18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400억 원을 달성할 것이란 예상이다. 육류보다는 생선류를 찾는 웰빙 붐을 탄 급성장이다. 고용·원료구매·관광 효과까지 치면 경제적 가치가 1000억 원을 훌쩍 넘는다는 얘기다. 2,500원짜리 고등어가 5,000원짜리 간고등어로 변신하며 2,500원 부가가치가 창출된 것이다. 간고등어 한손(2마리)당 판매가가 400g 경우엔 4,000원, 500g은 5,000원, 700g은 7,000원, 800g은 1만원, 1,000g은 12,000원, 1200g은 18,000원으로 호가한다.
고등어는 여러 여론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으로 꼽혔다.
맛 좋고 영양가 높고 값싼 자반고등어만큼 서민의 마음을 알아주는 생선도 드물다. 짭쪼름하고 쫀득한 안동 간고등어 맛은 100년 넘게 전래된 염장·숙성 비결에서 나온다. 배 가르고 소금 뿌리는 ‘염장 지르기’를 당한 간고등어는 서민 밥상을 이끄는 1등 반찬이다. 20년 전 어느 가수가 부른 대중가요가사에도 올랐던 고등어는 등푸른 생선으로 우리네 밥상의 최고식품이다. 영양면에서도 다른 식품에 비해 손색이 없는 1등 반찬인 간고등어에는 DHA(도코시핵사엔산)와 EPA(에이코사펜타엔산) 가 풍부하다. DHA는 뇌를 구성하는 물질이며 EPA는 모세혈관에 산소를 공급하는 물질로서 혈액의 찌꺼기가 뭉치는 것을 막고, 혈액순환이 잘되도록 도와서 두뇌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물질이다.
선어상태→활복(내장제거작업)→1차 세척→2차 세척→염도측정→탈수→염장(다시마또는 마늘)→숙성과정(24시간이상)→포장(진공포장)→냉동→완제품의 작업공정이 특이하다.
안동 간고등어 백반(보통 7,000원)은 파는 식당도 시내에서 성업 중이다.
무를 넣은 고등어조림 한 접시 앞에 감회를 섞어 모은 각종 자료를 끄집어 낸 횡설수설이 다소 지루하다. 식당주인 여자의 농장에 관한 소개가 있었고, 많은 홍보를 당부하며 팜플렛을 배부하는 시간도 가졌다. 팜플렛에 의하면 청일관광농원에서 생산된 유기농산물로 식단이 구성된 식당으로 청일더덕구이정식-청동오리와 토종닭 등 메뉴가 있다. 유기농더덕-유기농포도-유기농마-유기농머루-유기농 건고추-장뇌 삼 등을 판매하는 총면적 14,000평 너비의 농원이다.
가능하면 서둘러 자리를 털어야 했다. 포만한 뱃구레를 앞세우고 주차한 버스가 있는 낮은 구릉지대를 걸어 올라오는 일행들의 표정은 태평성대 그대로다. 주차한 버스에서 뒤돌아 본 황장곡과 운무산 정상일대가 聖山처럼 보인다.
오후 3시 33분.
산행에서 얻은 피로와 포식에서 오는 식곤증에 곯아떨어진 버스는 조는 듯 마는 듯 횡성읍을 통과해 용두리-용문-양평읍을 지났다. 귀로 중 한 차례 휴식을 위한 정차가 있었고, 양수리에 접어들면서 관행처럼 차량은 지, 정체다. 두런거리는 회원들간의 대화가 죽음보다 깊었던 잠을 비로소 쫓아 버렸나보다.
예상대로 7시 35분 발산역에 내렸다.
이른 귀가인데도 왠지 피곤한 밤이라는 생각이다.
다음 주 산제준비를 두고 오만가지 생각이 엉키는 귀로다.
*교통 :
․수도권에서 6번 국도로 횡성-19번 국도를 따라 29km 청일면 속실리(-운무산 입구에서 우회전하여 5km-운무산장-200m 더 올라간 삼거리가 산행들머리)-먼드레고개
․홍천읍-서석-19번 도로로 먼드래재 마루가 들머리
․서울~원주 I.C(경부, 영동고속도로 114km, 1:30 소요)-원주 I.C(횡성 방면)~횡성 사거리
(직진) 5번국도(12km, 15:00 소요)-횡성 사거리(갑천면 방향)~매일(갑천면)~유동(청일면)
~속실리 19번 (구 441번) 지방도(33km, 0:40 소요)-속실리~주막거리(우회전)~골짜기 공터
-대중교통 :
서울상봉버스터미널-횡성(하루9회 운행 2시간10분소요)
횡성-속실리(횡성에서 서석행 버스 하루 17회 운행,
*숙식 :
-속실리의 청일주말관공농원가든(033-342-5230 344-5230. 344-6161 정천근)
-속실양어장 횟집의 송어회(033-344-5633), 봉막골의 마지막 집 운무산산장(033-344-3478)
-청일면 소재지 솔이네숯불갈비(033-344-5007), 횡성군 숙박시설 다수
*볼거리
-정규시 효자각 운무산 북쪽 서석면 청량리에 1923년 건립되어 도로변에 있다.
효자 정규시가 병든 아버지를 고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다가 마지막으로 자기의 살을 베어 약으로 드려 아버지의 병환을 고쳤다 한다. 또 잉어를 구하려 노력했으나 구하지 못해 고심하던 중 하늘에 기도하니 천둥 소나기가 쏟아지며 잉어가 떨어진 것을 아버지께 드렸다고 한다. 후인들이 그를 기려 효자각을 세워서 오늘에 전한다.
-횡성민속장 재래시장
'동대문 밖에서 제일가는 장' 이라 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민속장이다. 1919년 3월1일 횡성 장날을 기해 강원도에서는 처음으로 만세운동을 벌였고 왜정시대에 일본 상인들이 상권 형성을 이루려 노력했으나 횡성 상인들과 주민들이 단합하여 불매운동을 벌여서 일본 상인을 쫓아낸 곳이다. 아직도 새벽 저자거리가 형성되는 유명한 장터다. 신토불이 장터로 지정되어 무공해 농산물과 산나물 등을 살 수 있다. 횡성장은 1-6일에 열린다. 횡성은 한우와 더덕, 그리고 애국의 고장이다.